2025년 12월 3일 수밤
김동민2025-12-03조회 15추천 1
2025년 12월 3일 수밤
찬송: 102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에서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말씀입니다. 나라를 세울 때 함께하고 나라를 여러 전쟁에서 구원하고 나라를 정복해서 강하게 만들 때 가장 외부로 충성되었던 요압이 왜 실패하게 되었던가, 겉은 충성인데 속은 충성이 아니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야하는데 착함이 없었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 중심이라 이 말입니다. 모든 충성의 동기라야하고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라야하고 방편이 하나님의 뜻이라야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원인도 과정도 방편도 하나님이 되어야하는데 요압은 그리되지 않고 자기와 관련된 혈육이었고 권력이었고 자기 입장이었고 그게 원인 그게 목적 방편은 자기 멋대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랬기 때문에 요압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걸 다시 연결시키면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자라야. 구원입니다. 뜻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무엇인가, 이게 참 이 시대에 어려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예수님께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화 있을 진저하고 일곱 번이나 내시고 외식한다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재앙의 저주를 받게 되느냐, 외식이란 속은 버려두고 겉만 꾸미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속은 다 썩었는데 껍데기만 포장해서 아름답게 해서 뭘 안다고요, 외식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외식이 뭐냐, 서기관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은 그때 1등신앙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니까 총회장 당회장하는 말이 왜 안식일에 고침을 받냐, 너희 소나 나귀나 안식일에 나가서 먹이지 않냐. 하나님의 백성을 병 고쳐주는 게 마땅치 않냐. 그 틀에 메여서 안식일을 왜 지키는지 몰랐다는 거지요. 아십니까, 주일을 왜 지킵니까. 계명이니까 그걸 껍데기라고 합니다. 맞는데, 왜 지킵니까. 모두 주일 지키는 목적, 성도의 주일 성수, 성경을 왜 읽습니까. 보고하기 위해서 장수 채우려고 좋은 겁니다.
저는 백목사님께 칭찬 듣고싶어서 반사했습니다. 일등하고 칭찬받고 싶어서.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외식이었습니다. 주일 지키고 성경읽고 기도를 왜 합니까. 왜 기도를 합니까. 또 전도는 왜하며 심방은 왜합니까. 연보는 왜 합니까. 왜 말씀대로 삽니까. 그걸 철저하게 잘한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로 치면 주일을 아주 잘 지킵니다. 성경을 열심히 잘 읽습니다. 전도도 잘합니다. 연보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 외식이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가 바로 되어야 착한 신앙 충성이 되는데 껍데기 다섯 가지는 잘 하는데 그 속의 뜻을 이뤄드리지 못하면 천국에 구원적으로 못 들어간다는 거지요. 구원이 뭐냐, 말씀을 드렸죠, 기본 구원은 건져내는 겁니다. 택함에서 되는 것이고 구원이라는 것은 자기를 고치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방편입니다.
성경 읽는 것도 방편이고 기도도 방편입니다. 천국에는 주일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성경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도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감사 찬송하는거지요. 천국에 연보가 있습니까. 그 전부는 다 가장 중요한 신앙 생활의 다섯 가지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에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게 목적이었습니다. 율법은 목적이 아닙니다. 방편입니다. 나라의 법이라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방편일 뿐입니다. 법은 목적이 아닙니다. 나라를 바로 다스려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게 목적이고 그걸 수단으로 하는 게 법이라는 겁니다. 법은 하나님 말씀은 법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요압의 충성은 믿는 사람들에게 충성은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종의 역할이고 본분입니다. 그 속에 알맹이가 빠져버리면 충성이 충성이 아니게 되는데 주인이 들어있지 않으면 주인이 그 속에 주격으로 들어있지 않으면 충성이 아닌 겁니다. 진정한 것은 안되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회사 다니는 직원이 진정한 충성이면 회사 사장 회장 그게 자기 모든 충성의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월급받는 게 목적이면 진정한 충신은 아닙니다. 계약 관계니까 그것만 잘해도 됩니다만은 진정한 출신은 아닌거지요. 충성한 그 속에 주님이 있어야하는 건데 요압은 그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뜻은 나를 주여주여 하는 그 순간을 통해서 사람이 바뀌여야합니다. 그게 가장 마지막입니다. 뭐부터 바꿔야할까요.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진짜 안하면 안되니까. 바른 지식대로 사람이 말이 고쳐져야합니다. 말이 바꾸어져야 사람이 바꾸어집니다. 말은 행동에 속한 겁니다. 말, 자기 모든 움직임 말하는 거 활동하는 거, 행동하는 거 연결되어있지요. 이게 바꾸어져야 사람이 바꾸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대로 언행심사가 되지 않고 있으면 그걸 고쳐서 말씀대로의 언행심사가 되어야 사람으로 점점 바꾸어지게됩니다.
바꾸어지면 그걸 가르켜서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게 된만큼 구원이고 천국에 가는 겁니다. 믿기 전하고 믿고 나서부터 평생 수십년을 주일 지켰는데 꼭 같으면 그 사람은 기본 구원 밖에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연습만 되었지 안되는 거지요. 그 사람이나 평생 교회 안 다니다가 마지막 사람이나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씁니다. 그래서 설교라는 것은 사람이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 지식을 전하는 것이고 지식만 전하면 껍데기만 전하는 겁니다. 전하는 사람 그 지식 속에 자기가 그 말씀의 사람으로 바뀌어가지고 듣는 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이 따라야 살아있는 설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겁니다.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겁니다. 자기를 행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돈벌이보다, 공부보다. 자기를 고쳐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것만 되면 다른 건 알아서 하시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오늘 이번 공과를 통해서 연결되는 그걸 통해서 요압의 성공과 실패를 하고 착함이 없는 충성, 외식이었습니다. 그 착함을 다른 각도로 말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자기를 고치는 것이고 그걸 다른 사람 고치는데에 이어지는 겁니다. 이번 비유가 거기에 이어집니다. 충성하고 난 다음에 가질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인데, 주님에게 지음받은 종이고, 그게 주의 종입니다. 충성하는 게 마땅한 교리인데 마지막에 이만큼 했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되면은 믿음이 자라지 않고 유익한 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압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게을러서 세상이 좋아서, 충성하고는 거리가 먼 이 사람은 해당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항상 순서라는 게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에게 되는 말씀, 그러면 충성 못하고 있으면 우선 순위입니다. 충성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난 다음에 조심해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충성해야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에게 충성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기 때문 없는 가운데 만드셨다. 만드셨다는 없는데에서 생겨지게 했다는 겁니다. 만드는 게 아이들이 장난감 만들 듯이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 나를 지으셨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 그래서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있게 하셨다. 만드셨는데 나는 있게하셨는데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낳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만든다 그런 말을 쓰지요.
아이는 만드는 겁니까 낳는 겁니까. 그런데 만든다는 뜻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돌멩이처럼 모래알처럼 그렇게 무생물로 만드지 않고 나무, 풀, 물고기, 새, 소, 돼지처럼 만들지 않고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소나 돼지 속에서 그게 있습니다. 돼지의 장기를 이식시키는 그런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돼지의 콩팥을 사람에게 이식시키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돼지 콩팥을 이식했는데 2달 살았다 그렇게 합니다. 돼지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6000년 과학이 개미새끼 하나 못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체의 신비는 신비한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다 지으셨는데 마지막에는 흙으로 만드셨다. 날 빚어서 만드셨다.
그게 과정은 알기 어려우나 다른 만물과 사람은 존재 자체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내 몸, 내 마음, 내 영, 인격, 이거 다 신비한겁니다. 많아지면은 예사가 되고 반복하면 그렇게 되는데, 박사가 너무 많아서 박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말 정식코스 밟아서 박사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박사가 많아도. 요즘 대학은 대학이 아닌데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정식으로 다닌 사람의 실력은 있는 겁니다. 부산대정도 되는 서울에서 중급정도 되는 대학에 다닌다고 하며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런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인체는 그 누구 인체로 신비한겁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묘한 거지요. 우리를 만드실 때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내 몸을 만드시고 인체를 만드시고 영을 만드시고 그래서 이렇게 귀하게 고차원의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셨으니 그 바탕 위에 자기를 갈고 닦아서 만들면 참 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비싼 비행기는 몇천억씩 하는데, 몇조원씩 하는 것도 있을걸요. 잠수함이야 몇십조라고 하는데 여러 명이니 그런데 전투기는 비싼 비행기 조종사 만드는데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가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분들, 저를 탄식하는 말입니다. 세월을 아껴야합니다. 얼마든지 금보다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 세월 속에 우리 신앙으로 말하면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고 세월 속에 어떻게 귀한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신 겁니다. 귀한 세월 보내고 주께로 옵니다 그러죠. 건강 가졌을 때는 건강 귀한 줄 모릅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젊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젊음을 허비하지 말고 말씀으로 갈고 닦아서 정금같은 자기를 만들어야합니다.
유익없는 그런 건 다 빼버려야하고 요셉이 13년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그때가 30입니다. 30살 요셉 총리는 그냥 30이 아닙니다 애굽 전국을 다스리면서도 아버지와 형제를 다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그게 요셉입니다. 다니엘도 그렇고, 다윗도 왕이 되었을 때 30이었죠. 세월은 귀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그런 소망을 가지고 만드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그렇게 지음 받은 인간이 참 어리석고 망령되게 사람이 왜 어리석어집니까. 사람은 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의지강한 사람도 예민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 바보가 되는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잘난 위대한 신앙의 사람도 한 순간에 바보가 됩니다. 멍청이가 되고, 아담이라는 사람은 인류 시조입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가인이 나왔지만 아벨이 아담의 아들입니다. 아벨 같은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 아담입니다. 그 위대한 아담이, 하와는 또 아담을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려면 아담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사람입니다. 하와도 마찬가지. 전 인류 역사에 아담 하와에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사람입니다.
그런 하와가 한 순간에 어리석었습니다. 왜입니까, 마귀 미혹을 받으니까. 한 순간에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어리석게 해서 선악과 따먹고 사망에 빠뜨린 인류 시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전부 다 바쳐, 성탄절이지요 곧, 무슨 날입니까. 올해는 성탄 트리 안합니까. 언제하나요, 다음 주 합니까. 성탄이 뭐지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날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모든 것을 내놓고 낮고 천하게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주님 대속입니다. 날 구원하시는 영원히 찬송해도 영원토록 찬송해도 은혜 갚을 수 없기
찬송: 102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에서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말씀입니다. 나라를 세울 때 함께하고 나라를 여러 전쟁에서 구원하고 나라를 정복해서 강하게 만들 때 가장 외부로 충성되었던 요압이 왜 실패하게 되었던가, 겉은 충성인데 속은 충성이 아니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야하는데 착함이 없었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 중심이라 이 말입니다. 모든 충성의 동기라야하고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라야하고 방편이 하나님의 뜻이라야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원인도 과정도 방편도 하나님이 되어야하는데 요압은 그리되지 않고 자기와 관련된 혈육이었고 권력이었고 자기 입장이었고 그게 원인 그게 목적 방편은 자기 멋대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랬기 때문에 요압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걸 다시 연결시키면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자라야. 구원입니다. 뜻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무엇인가, 이게 참 이 시대에 어려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예수님께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화 있을 진저하고 일곱 번이나 내시고 외식한다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재앙의 저주를 받게 되느냐, 외식이란 속은 버려두고 겉만 꾸미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속은 다 썩었는데 껍데기만 포장해서 아름답게 해서 뭘 안다고요, 외식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외식이 뭐냐, 서기관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은 그때 1등신앙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니까 총회장 당회장하는 말이 왜 안식일에 고침을 받냐, 너희 소나 나귀나 안식일에 나가서 먹이지 않냐. 하나님의 백성을 병 고쳐주는 게 마땅치 않냐. 그 틀에 메여서 안식일을 왜 지키는지 몰랐다는 거지요. 아십니까, 주일을 왜 지킵니까. 계명이니까 그걸 껍데기라고 합니다. 맞는데, 왜 지킵니까. 모두 주일 지키는 목적, 성도의 주일 성수, 성경을 왜 읽습니까. 보고하기 위해서 장수 채우려고 좋은 겁니다.
저는 백목사님께 칭찬 듣고싶어서 반사했습니다. 일등하고 칭찬받고 싶어서.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외식이었습니다. 주일 지키고 성경읽고 기도를 왜 합니까. 왜 기도를 합니까. 또 전도는 왜하며 심방은 왜합니까. 연보는 왜 합니까. 왜 말씀대로 삽니까. 그걸 철저하게 잘한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로 치면 주일을 아주 잘 지킵니다. 성경을 열심히 잘 읽습니다. 전도도 잘합니다. 연보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 외식이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가 바로 되어야 착한 신앙 충성이 되는데 껍데기 다섯 가지는 잘 하는데 그 속의 뜻을 이뤄드리지 못하면 천국에 구원적으로 못 들어간다는 거지요. 구원이 뭐냐, 말씀을 드렸죠, 기본 구원은 건져내는 겁니다. 택함에서 되는 것이고 구원이라는 것은 자기를 고치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방편입니다.
성경 읽는 것도 방편이고 기도도 방편입니다. 천국에는 주일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성경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도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감사 찬송하는거지요. 천국에 연보가 있습니까. 그 전부는 다 가장 중요한 신앙 생활의 다섯 가지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에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게 목적이었습니다. 율법은 목적이 아닙니다. 방편입니다. 나라의 법이라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방편일 뿐입니다. 법은 목적이 아닙니다. 나라를 바로 다스려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게 목적이고 그걸 수단으로 하는 게 법이라는 겁니다. 법은 하나님 말씀은 법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요압의 충성은 믿는 사람들에게 충성은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종의 역할이고 본분입니다. 그 속에 알맹이가 빠져버리면 충성이 충성이 아니게 되는데 주인이 들어있지 않으면 주인이 그 속에 주격으로 들어있지 않으면 충성이 아닌 겁니다. 진정한 것은 안되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회사 다니는 직원이 진정한 충성이면 회사 사장 회장 그게 자기 모든 충성의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월급받는 게 목적이면 진정한 충신은 아닙니다. 계약 관계니까 그것만 잘해도 됩니다만은 진정한 출신은 아닌거지요. 충성한 그 속에 주님이 있어야하는 건데 요압은 그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뜻은 나를 주여주여 하는 그 순간을 통해서 사람이 바뀌여야합니다. 그게 가장 마지막입니다. 뭐부터 바꿔야할까요.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진짜 안하면 안되니까. 바른 지식대로 사람이 말이 고쳐져야합니다. 말이 바꾸어져야 사람이 바꾸어집니다. 말은 행동에 속한 겁니다. 말, 자기 모든 움직임 말하는 거 활동하는 거, 행동하는 거 연결되어있지요. 이게 바꾸어져야 사람이 바꾸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대로 언행심사가 되지 않고 있으면 그걸 고쳐서 말씀대로의 언행심사가 되어야 사람으로 점점 바꾸어지게됩니다.
바꾸어지면 그걸 가르켜서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게 된만큼 구원이고 천국에 가는 겁니다. 믿기 전하고 믿고 나서부터 평생 수십년을 주일 지켰는데 꼭 같으면 그 사람은 기본 구원 밖에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연습만 되었지 안되는 거지요. 그 사람이나 평생 교회 안 다니다가 마지막 사람이나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씁니다. 그래서 설교라는 것은 사람이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 지식을 전하는 것이고 지식만 전하면 껍데기만 전하는 겁니다. 전하는 사람 그 지식 속에 자기가 그 말씀의 사람으로 바뀌어가지고 듣는 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이 따라야 살아있는 설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겁니다.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겁니다. 자기를 행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돈벌이보다, 공부보다. 자기를 고쳐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것만 되면 다른 건 알아서 하시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오늘 이번 공과를 통해서 연결되는 그걸 통해서 요압의 성공과 실패를 하고 착함이 없는 충성, 외식이었습니다. 그 착함을 다른 각도로 말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자기를 고치는 것이고 그걸 다른 사람 고치는데에 이어지는 겁니다. 이번 비유가 거기에 이어집니다. 충성하고 난 다음에 가질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인데, 주님에게 지음받은 종이고, 그게 주의 종입니다. 충성하는 게 마땅한 교리인데 마지막에 이만큼 했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되면은 믿음이 자라지 않고 유익한 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압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게을러서 세상이 좋아서, 충성하고는 거리가 먼 이 사람은 해당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항상 순서라는 게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에게 되는 말씀, 그러면 충성 못하고 있으면 우선 순위입니다. 충성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난 다음에 조심해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충성해야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에게 충성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기 때문 없는 가운데 만드셨다. 만드셨다는 없는데에서 생겨지게 했다는 겁니다. 만드는 게 아이들이 장난감 만들 듯이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 나를 지으셨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 그래서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있게 하셨다. 만드셨는데 나는 있게하셨는데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낳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만든다 그런 말을 쓰지요.
아이는 만드는 겁니까 낳는 겁니까. 그런데 만든다는 뜻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돌멩이처럼 모래알처럼 그렇게 무생물로 만드지 않고 나무, 풀, 물고기, 새, 소, 돼지처럼 만들지 않고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소나 돼지 속에서 그게 있습니다. 돼지의 장기를 이식시키는 그런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돼지의 콩팥을 사람에게 이식시키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돼지 콩팥을 이식했는데 2달 살았다 그렇게 합니다. 돼지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6000년 과학이 개미새끼 하나 못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체의 신비는 신비한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다 지으셨는데 마지막에는 흙으로 만드셨다. 날 빚어서 만드셨다.
그게 과정은 알기 어려우나 다른 만물과 사람은 존재 자체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내 몸, 내 마음, 내 영, 인격, 이거 다 신비한겁니다. 많아지면은 예사가 되고 반복하면 그렇게 되는데, 박사가 너무 많아서 박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말 정식코스 밟아서 박사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박사가 많아도. 요즘 대학은 대학이 아닌데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정식으로 다닌 사람의 실력은 있는 겁니다. 부산대정도 되는 서울에서 중급정도 되는 대학에 다닌다고 하며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런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인체는 그 누구 인체로 신비한겁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묘한 거지요. 우리를 만드실 때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내 몸을 만드시고 인체를 만드시고 영을 만드시고 그래서 이렇게 귀하게 고차원의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셨으니 그 바탕 위에 자기를 갈고 닦아서 만들면 참 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비싼 비행기는 몇천억씩 하는데, 몇조원씩 하는 것도 있을걸요. 잠수함이야 몇십조라고 하는데 여러 명이니 그런데 전투기는 비싼 비행기 조종사 만드는데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가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분들, 저를 탄식하는 말입니다. 세월을 아껴야합니다. 얼마든지 금보다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 세월 속에 우리 신앙으로 말하면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고 세월 속에 어떻게 귀한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신 겁니다. 귀한 세월 보내고 주께로 옵니다 그러죠. 건강 가졌을 때는 건강 귀한 줄 모릅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젊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젊음을 허비하지 말고 말씀으로 갈고 닦아서 정금같은 자기를 만들어야합니다.
유익없는 그런 건 다 빼버려야하고 요셉이 13년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그때가 30입니다. 30살 요셉 총리는 그냥 30이 아닙니다 애굽 전국을 다스리면서도 아버지와 형제를 다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그게 요셉입니다. 다니엘도 그렇고, 다윗도 왕이 되었을 때 30이었죠. 세월은 귀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그런 소망을 가지고 만드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그렇게 지음 받은 인간이 참 어리석고 망령되게 사람이 왜 어리석어집니까. 사람은 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의지강한 사람도 예민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 바보가 되는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잘난 위대한 신앙의 사람도 한 순간에 바보가 됩니다. 멍청이가 되고, 아담이라는 사람은 인류 시조입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가인이 나왔지만 아벨이 아담의 아들입니다. 아벨 같은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 아담입니다. 그 위대한 아담이, 하와는 또 아담을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려면 아담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사람입니다. 하와도 마찬가지. 전 인류 역사에 아담 하와에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사람입니다.
그런 하와가 한 순간에 어리석었습니다. 왜입니까, 마귀 미혹을 받으니까. 한 순간에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어리석게 해서 선악과 따먹고 사망에 빠뜨린 인류 시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전부 다 바쳐, 성탄절이지요 곧, 무슨 날입니까. 올해는 성탄 트리 안합니까. 언제하나요, 다음 주 합니까. 성탄이 뭐지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날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모든 것을 내놓고 낮고 천하게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주님 대속입니다. 날 구원하시는 영원히 찬송해도 영원토록 찬송해도 은혜 갚을 수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