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1-30조회 22추천 1
2025년 11월 30일 주일 오후
찬송: 29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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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상식 경험 중에 하나로 하나님은 외상을 하지 않는 분입니다. 무엇일까요 요즘 말로 하면 외상으로 다 물건 사시지요. 카드 결제가 다 외상입니다. 돈은 나중에 지불하고 물건은 지금 가져오는 게 외상입니다. 옛날에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 달아놓으세요, 아무집에 누구 달아놓고 월급 받으면 갚습니다. 요즘은 카드 결제가 다 그런 겁니다. 외상값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좀 있었습니다. 외상으로 준다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플 때 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해라, 그러면 줄게, 그러면 먼저해라 그러면 줄게 하나님은 사람은 서로 간에 신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면 안심해도 된다. 그 사람의 보증이면 말이면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밥 먹고 사는데에 있어서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면 돈은 따라옵니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 따라옵니다. 그래서 투자를 하라고 하지요. 당장 손해볼 것처럼 말해도 결국 남는 장사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영리 주의입니다. 먼지 한 톨도 손해보는 일은 안하십니다. 하나님과 모든 백성과 만물 전부에게 유익하고 복된 것만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거짓말하는 걸 봤냐, 그런데 너희들은 아니다. 하나님은 외상은 안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복 주시면 하겠습니다. 안되는 겁니다. 믿으면 하는 건데, 하나님 앞에 매 맞을 일을 해놓고 아무리 울고 불고 난리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맞아야합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쳐버리니까 잠도 안자고 빌다가 데려가버리니까 그날로 딱 금식 중단하고 씻고 옷갈아입고 밥 차려먹었습니다. 죽었으면 더 슬퍼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살았을 때는 혹시나 싶어서 그랬는데 데려가시면 뭐 어쩌냐. 그게 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합니다. 그 다음에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방법, 그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의 경험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도 부딪혀 봐야 아는 겁니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마디가 필요합니다. 마디가 뭐지요, 손가락에 마디가 한 개 두 개 세 개. 이걸 굽힐 때 관절 이게 마디입니다. 이게 마디가 날 수 있지요. 마디가 있으면 나고 안 그러면 안 난다.
신앙은 마디가 바로 살아가다가 자기가 경험하는 거 체험하는 게 신앙의 마디입니다. 이게 살아있는 신앙의 체험입니다. 마디 없는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 같은 분하고 우리하고 같겠습니다만은 손양원 목사님도, 우리대로 하나님 교제가 있는 것이고 자기 정도대로는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믿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모두 아이를 안 놓고 강아지 데리고 다니고 이제 강아지도 그러니까 요즘은 애완 완구, 인형들고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형 만들어서 기계 작동으로, 그럴지 모르겠는데 인형보다는 살아있는 동물이 나을 거고,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교감이 있거든요, 사람이 강아지 수준으로 가서 교감하면 되는 거지요. 참 낮아지는. 강아지가 사람 수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아이를 낳으면 사람과 사람끼리의 교감인데 안 낳았을 때는 힘들어서 그러는데 10이면 10 100이면 100 다 좋아합니다. 힘은 드는데 이게 행복이더라, 다 그럽니다. 그게 인격과 인격의 교제입니다.
이런 교제가 있어야하는 것이고 아니면 사명감에서 의무감에서 그런 생활로 이스라엘 종교 말년처럼 그런 문제가 되는 거고 마지막에 외식하고 구주를 못박아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방법,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압니다. 그를 아는 경험은 그분과 교제 거기서 나오는게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겁니다. 이건 신앙 경험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카드 결제하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해라, 네가 잘못하면 맞는 거다 그리 되는 겁니다. 제목을 무익한 종의 믿음이라, 무익한 종,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습니다. 무익한 종이 중심이니까 이익이 없다는 거지요. 자동차를 1억을 주고 샀는데 타보니까 1000만원짜리보다 못하네 그러면 돈 버리는 겁니다. 타보니까 1억짜리보다 낫네, 그러면 남는 장사가 되는 겁니다. 무익한 종인지 모르고 요압처럼 그러면 요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자기 알고 자기 근본 하나님을 아는 게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걸 두 글자로 뭐라고 하던가요. 정이지요. 그걸 겸손이라고 하는 겁니다. 교만은 어디서 나오는건가, 무지에서 나옵니다. 무지를 좀 심하게 하면 무식하다고 합니다. 무식함, 그래서 사람이 무식하면 교만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래야지 말아야겠습니다. 7절 너희 중에 열 두 제자들입니다. 열 두 제자들을 따라가는데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 믿는 사람 전부가 너희 중에라고 합니다. 사실은 실상은 아닙니다. 비유는, 실상과 비유로 가르치는 실상과 가까운 것은 예를 드는 게 비유입니다. 가장 가까운 자연 계시 중 가장 직접 가까운 것을 비유한 것인 겁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다. 말씀을 가르칠 그 당시 그 나라에서 일반적인 종이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대표적인 게 종이 밭을 갈고 양을 치는 겁니다.
우리는 무익한 주의 종이니까 하나님에게 두 가지다 그 말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바깥일을 설명드렸고 양치는 걸 설명 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노력입니까. 평소 자주 쓰는 말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이걸 두 가지가 믿는 사람 평새의 전부인데 이걸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요, 자타의 구원. 이게 자타의 구원입니다. 밭을 가는 거, 양을 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평생의 생활은 자기 구원이 먼저고 이후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겁니다. 밭 가는 것은 자연 계시로 농사를 지어봐야 밭을 갈아봐야알지요. 화분이라도 나무 심어보면 아는데, 밭을 가는 것은 땅을 뒤집습니다. 왜 그럽니까 땅이 단단하면 뭐가 안들어가요. 씨앗이 안 들어갑니다. 우리 주차장에 저거 가지고 땅을 파서 그러면 잘 삽니다. 찰흙처럼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나무가 비실비실하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잘 삽니다. 그게 밭을 가는 겁니다. 첫째는 밭을 가는 것은 자연 계시로 말하면 밭을 뒤집어서 흙을 뒤집어서 하는 것, 그리고 잘 하게 하는 겁니다.
마음 밭을 갈아서 말씀이 잘 심어지게 하는 것. 마음 밭을 가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 욕심 그러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귀로 듣고 마음 속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새겨지도록 그렇게 만드는 게 밭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생활은 가꾸는 겁니다. 아름답게 보기 좋게, 세수도 하고 로션도 바르고 머리도 빗고 옷도 갈아입고 자기를 꾸며서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 빌라 할머니 또 뭐라고 소리 지르니까 선인이가 인사를 깍듯이 합니다. 그러니까 수월해지는 거 같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합니다. 그게 인사 잘하고 순종 잘하고 오는 말이 곱도록 할려면 가는 말이 곱게하고 그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역시 다르네, 밭을 가는 생활, 자기 구원입니다. 예배시간에도 지각하지 않고,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그걸 뭐라고 한다고요, 그걸 목양이라고 합니다. 다른 교회 가면 목사님 사무실에 가면 목양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목양실, 양을 기르는 걸 목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양을 기릅니까.
두실이라는 동네인데 양 무리들이 모이는 산이라고 해서 기도실 이름을 양산동이라고 해놨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는 뇌가 녹아져서, 낮아지고 베풀고, 굳은 일하고, 조심해서 그렇게 잘 갈면 그 자체가 바로 빛과 소금이 되고 양치는 그런 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종들의 일반적인 일이고 거기 도리를 담아놓으신 겁니다.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러면 뭐가 전제가 되어있지요. 밭일을 다 끝냈다는 거지요. 오늘 하루 할 걸 다 끝내고 오늘 하루를 다할 것을 다 끝낸 겁니다. 돌아오면 두 가지겠지요. 고치거나 회개하고 나면 고칠 것은 많은 거 고치고나면, 잘못된 습성 고치면 마음이 뿌듯하고 좋지요. 자기가 아는 자기 악습, 바로 해야하는데 앞으로 모를 찌라도, 매일같이 되풀이 되는 하루를 끊었습니다 굉장히 상쾌할 겁니다. 오늘로 술을 끊었다. 한편으로 금단 현상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좋을 것이고 기도를 안했는데 했다 좋을 것이고 그날 그날 자기로써 고칠 것을 고치는 그게 돌아오면 맡기신 거 하나 하고나면 그 말이지요.
오전에는 새벽 기도 마치고 나면, 못 나오면 그것도 없는 거지요. 밭을 갈던 양들이 돌아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돌아오면 저더러 앉아서 먹어라고 할 자가 있느냐, 아무리 주인이더라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땀을 일하고 그랬으면 고생했네, 이때는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이 대상이 종입니다. 노예. 이게 좀 심하지 않는가, 짐승도 휴식을 주는데 너무 심하지 않는가. 주인은 그럴 수 있습니다만은 여기는 주인이 아니라 종을 가르치는 겁니다.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앉아서 먹어라 할 자 있느냐. 어찌 감이 종이 일하고 돌아왔다고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를 바랄까. 그래서 씻고 먹어라 그런 대접을 할 수 없는 게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종으로 대접하는게 성경적으로 옳은 겁니다.
그리할 자가 있느냐, 없다는 거지요. 도리아,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하루종일 고생했지만 남아있으니까, 주인의 밥상 차리는 것도 종이 할 일입니다. 그러면 또 이랬으니까 내 밥상을 차려야지 내 밥먹는 동안에 반찬 가져오고 필요한 거 다 갖다오고 그 말입니다.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나의 먹고 마시는 수중들고 이걸 해석을 하면 뭐냐, 주님 식사입니다. 주님을 식사하실 것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식사는 뭐지요. 이루는 것이다. 본문에서 찾으면 그게 뭐겠습니까. 주님 양식입니다. 주님이 배가 부른 거 그게 본문에 바로 밭갈고 약먹이는게 주인의 배가 부른 겁니다. 우리들의 고칠 거 고치고 그러면 배부른 양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고 왔는데 또 뭡니까. 주님 식사를 준비하라고 그럽니다. 내가 밭갈고 양치는 그런 걸 했는데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또 할 일이 고칠 건 뭐지, 어떤 유익을 주지 이걸 찾는 게 주인을 예비하는 겁니다. 예비하고 찾아서 띠를 띠고 마음놓지 말고 나의 먹고 마시는 것에 수종들어서 주일을 먹고 마십니다. 밭 갈고 양치는 내가 다른 사람에 구원을 주는 게 그것입니다. 내가 고칠 걸 고쳤고 심방을 했고 설교했고 인도했고 했습니다. 누가 했지요. 내 나쁜 습성을 고쳤습니다. 심방을 갔다왔습니다. 누가 있습니까. 내가 있지요. 그런데 나의 먹고 마신 자 수종들고 껍데기는 내가 했는데 나는 수종들 뿐입니다. 주님이 다 하셨다는 거지요. 오전에 다윗이 목동에 있을 때 사자가 양떼 새끼를 물어가면 찢어버리고 양을 데려와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거지요. 골리앗을 향해서 맷돌을 던졌습니다. 이마에 박히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게 한 겁니다.
믿음의 종들이 할 때는 내가 하는 거 같은데 나의 의지력과 충성으로 하는데 내 힘을 드렸는데 주님을 한 것입니다. 참된 종들의 깨달음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종들에게 하나님이 면류관을 씌워주시는데 던져버린다고 합니다. 주님이 하신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렸으니까 내 뜻을 이룰 차례인가, 먹고 마시라, 전부 다 종이 한 것은 숨쉬는 것조차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인을 위해 살아있는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종의 종자로 태어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인을 위한 것입니다. 전부 주인을 위해서 그 후에 먹고 마시라, 그게 이루는 것은 내가 하나 이루어 드렸는데 또 할게 뭐냐, 이걸 준비하는 게 먹고 마시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할 것이 뭐냐, 그래서 주님 잡수시는 거니까 먹는 겁니다. 이런 자세가 요압에게 없었습니다. 요압은 자기를 몰랐고 다윗을 몰랐고 하나님을 몰랐고 다윗과 자기 관계도 몰랐고 자기만 알았다. 자기만 아는 사람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두 글자로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게 심하면 악독하다고 합니다.
말세가 그러면 점점 악하여진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중심, 자기만 아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객관을 모르고 아는, 그래서 가정도 문제가 생기고 부부 사이에도 부부는 남편은 아내를 해야하고 댕겨야 올라갑니까 밀어야 올라갑니까. 밀어주는 겁니다. 땡기면 대등하게 지옥으로 가는 거고 밀면 천국이 되는 것이고 서로에게 잡아 당기면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부모도 자녀도 형제관계도 다 그런 겁니다. 이 원리라는 것은 천국의 원리라서 많은 적용이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니까 자기 범위도 모르는 거지요. 자기 위치도 모르니까. 자기도 모르지요, 모르니까 눈 먼 망아지.
복수로 괘씸하다고 다윗도 협박하고 배신해버리고 이런 자기가 자기를 모르니까 종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7, 8절이 종에 대해서 설명하신 겁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다. 너희 중에 열 두 제자를 가르쳤는데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하였겠느냐, 임금님이 신하에게 명령하는데 상급이 있는게 아니고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명령대로 했는데 마땅히 할 일입니다.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고 안하면 그때는 매가 오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그래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우리가 한다고 해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런 미혹이 들어갔냐 할만큼이겠습니다만은 마음에 이만큼이나 충성했는데 봉사하고 희생했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틈이 되는 것이고 그 틈을 마귀는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생기면 그때 완전히 폭발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마귀는 쉬지 않고 그렇게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그렇게 해주신 것은 머지만큼이라도 그런 틈이 생기면 원천적으로 그렇게하는 겁니다.
그 틈 자체가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내가 누구인데 나는 종인데 무슨 사례를 합니까. 그래서 열심히 하거나 칭찬하면 화를 낸다고 합니다. 내 할을 했는데 칭찬을 받고자 합니까. 대접을 바라면 아예 잘못된 겁니다. 조짐이 안 보여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유익한 종이 나오는 겁니다.
10절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개인마다 사명은 다 다릅니다. 자기로써는 다 해야합니다. 마음 다 힘 다 뜻 다 정성 다 해야합니다. 그게 말이 쉽습니까. 고쳤고 다른 사람은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르기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를 무익한 종이라, 주인이 나를 만드시기를 느끼기가 어려운데 만드시기를 두 가지라고 했죠. 하나님이 구속하셨고 그게 우리들인데 성냥개비를 가지고 만드는 것은 나무젓가락으로 만들면 일반이 만드는 것은 뭘 만든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고급으로 올라가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면 세계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몇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우주선 만드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나라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만드셨는데 인공지능을 만든 세월이 6000년입니다. 인간들의 지식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최첨단의 인공지능, 사람이 만들었다 자연이 아니고 그 말이지요 그 말인데 인공 지능, 그 인공 지능이 대세인데 온 세상이 인공지는 대세입니다. 그걸 감안해보면 흩어놓은 그 지식을 모아가지고, 그것을 활용하고 응용하는 것이지요. 인공 지능이란 사람들이 흩어놓은 지식을 모아서 응용하는 게 인공지능입니다. 전부 다 빼버리면 깡통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그런데 그거 만드는데 6000년입니다, 온 세상이 환호를 합니다. 모든 걸 다 쏟아부을 만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뭘 만들면 기가 막히게 만든다고 하지요. 우리 달력 만든다고 애를 많이 쓰셨는데, 인공지능으로 만드는데 한 시간도 안 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 다 그렇게 됩니다. 박사 학위 논문 만드는 거 식은 죽 먹기라고 하지요. 그게 안에 모든 게 이 세상에 나와있는거 첨치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안다고 하지요. 이 세상에 사람들이 흩어놓은 지식만 인공지능인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 교리를 가지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모릅니다. 설교록으로 해서 하면 엉터리로 만들어놓겠지요,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다 이건 두고 영계 두고 다른 것보다도 내 몸을 만드셨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 마음에 대해서 생명을 만드셨다 인격을 만드셨다 영을 만드셨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해야 실감이 올까.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인데 나라는 존재는 없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었습니다. 생명이 만들어진 그 존재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나를 왜 낳았어요 하는 사람처럼 나쁘게 태어납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름이란 게 있으면 누가 짓습니까. 누가 짓지요. 이름을 내가 짓습니까 남이 짓습니까. 사람 이름은 자기가 짓습니까 남이 짓습니까. 전부 다른 사람이 짓습니다. 그걸 이름으로 만드는 사람은 제가 만듭니다.
남이 짓고 내가 만드는 것이 이름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살면 아름답게 되는 거고 더럽게 살면 더러운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자기가 복되게 살면 그렇게 되는 건데 부모가 애써 낳아주는 걸 가지고 그런 죄를 가지고 원망하는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습니까. 귀하고 귀하게 만드신 우리들입니다 만드신 그분의 뜻을 따라, 밭을 갈아서 양을 쳐서 귀하게 만들면 한 생명이 우리가 말하길 뭐보다 귀하다고 합니까. 우주보다 귀한 우리가 되는 겁니다. 우주보다 귀한 나를 만들어주신 겁니다. 백 목사님은 젊었을 때 기독교 신앙 만나기 전에 인생의 허무를 깨달아서 구더기 보다도 못하다. 인간으로 태어나니까 없어지지도 않을것이고 그러다가 주님 만났는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죄는 안 지었지요.
살아가면서 죄짓고 살면 그게 영원히 있는데 죄는 안 지었을 거 아닙니까. 태어났습니다. 그건 자기 잘못인 것이고 지으신 주님은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하라고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걸 생각해봐야겠고 인간이 배신해서 영원히 지옥에 던졌는데 나를 만드시고 값주고 사신 그게 너무너무 크기 때문에 평생을 날 구속하신 은혜를 영원토록 찬성하는 것입니다. 주의 몸된 것을 위해서 어디까지 충성을 해야하는지, 하고 하고 또해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을 드리겠냐 이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간의 의로 여기시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충성을 의로 여기십니다. 나로써는 전부 다 충성을 하고 마지막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나를 위해서 바치신 자본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감사할 뿐이고 이런 자세로 충성을 할 때 보시고 하는 겁니다.
이게 변질되면 요압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요압의 실패에 이어서 무익한 종을 생각하면 은혜 생각하고 충성은 해야겠고 마지막에 결론은 무익한 종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29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앙의 상식 경험 중에 하나로 하나님은 외상을 하지 않는 분입니다. 무엇일까요 요즘 말로 하면 외상으로 다 물건 사시지요. 카드 결제가 다 외상입니다. 돈은 나중에 지불하고 물건은 지금 가져오는 게 외상입니다. 옛날에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 달아놓으세요, 아무집에 누구 달아놓고 월급 받으면 갚습니다. 요즘은 카드 결제가 다 그런 겁니다. 외상값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좀 있었습니다. 외상으로 준다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플 때 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해라, 그러면 줄게, 그러면 먼저해라 그러면 줄게 하나님은 사람은 서로 간에 신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면 안심해도 된다. 그 사람의 보증이면 말이면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밥 먹고 사는데에 있어서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면 돈은 따라옵니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 따라옵니다. 그래서 투자를 하라고 하지요. 당장 손해볼 것처럼 말해도 결국 남는 장사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영리 주의입니다. 먼지 한 톨도 손해보는 일은 안하십니다. 하나님과 모든 백성과 만물 전부에게 유익하고 복된 것만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거짓말하는 걸 봤냐, 그런데 너희들은 아니다. 하나님은 외상은 안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복 주시면 하겠습니다. 안되는 겁니다. 믿으면 하는 건데, 하나님 앞에 매 맞을 일을 해놓고 아무리 울고 불고 난리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맞아야합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쳐버리니까 잠도 안자고 빌다가 데려가버리니까 그날로 딱 금식 중단하고 씻고 옷갈아입고 밥 차려먹었습니다. 죽었으면 더 슬퍼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살았을 때는 혹시나 싶어서 그랬는데 데려가시면 뭐 어쩌냐. 그게 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합니다. 그 다음에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방법, 그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의 경험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도 부딪혀 봐야 아는 겁니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마디가 필요합니다. 마디가 뭐지요, 손가락에 마디가 한 개 두 개 세 개. 이걸 굽힐 때 관절 이게 마디입니다. 이게 마디가 날 수 있지요. 마디가 있으면 나고 안 그러면 안 난다.
신앙은 마디가 바로 살아가다가 자기가 경험하는 거 체험하는 게 신앙의 마디입니다. 이게 살아있는 신앙의 체험입니다. 마디 없는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 같은 분하고 우리하고 같겠습니다만은 손양원 목사님도, 우리대로 하나님 교제가 있는 것이고 자기 정도대로는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믿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모두 아이를 안 놓고 강아지 데리고 다니고 이제 강아지도 그러니까 요즘은 애완 완구, 인형들고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형 만들어서 기계 작동으로, 그럴지 모르겠는데 인형보다는 살아있는 동물이 나을 거고,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교감이 있거든요, 사람이 강아지 수준으로 가서 교감하면 되는 거지요. 참 낮아지는. 강아지가 사람 수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아이를 낳으면 사람과 사람끼리의 교감인데 안 낳았을 때는 힘들어서 그러는데 10이면 10 100이면 100 다 좋아합니다. 힘은 드는데 이게 행복이더라, 다 그럽니다. 그게 인격과 인격의 교제입니다.
이런 교제가 있어야하는 것이고 아니면 사명감에서 의무감에서 그런 생활로 이스라엘 종교 말년처럼 그런 문제가 되는 거고 마지막에 외식하고 구주를 못박아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방법,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압니다. 그를 아는 경험은 그분과 교제 거기서 나오는게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겁니다. 이건 신앙 경험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카드 결제하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해라, 네가 잘못하면 맞는 거다 그리 되는 겁니다. 제목을 무익한 종의 믿음이라, 무익한 종,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습니다. 무익한 종이 중심이니까 이익이 없다는 거지요. 자동차를 1억을 주고 샀는데 타보니까 1000만원짜리보다 못하네 그러면 돈 버리는 겁니다. 타보니까 1억짜리보다 낫네, 그러면 남는 장사가 되는 겁니다. 무익한 종인지 모르고 요압처럼 그러면 요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자기 알고 자기 근본 하나님을 아는 게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걸 두 글자로 뭐라고 하던가요. 정이지요. 그걸 겸손이라고 하는 겁니다. 교만은 어디서 나오는건가, 무지에서 나옵니다. 무지를 좀 심하게 하면 무식하다고 합니다. 무식함, 그래서 사람이 무식하면 교만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래야지 말아야겠습니다. 7절 너희 중에 열 두 제자들입니다. 열 두 제자들을 따라가는데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 믿는 사람 전부가 너희 중에라고 합니다. 사실은 실상은 아닙니다. 비유는, 실상과 비유로 가르치는 실상과 가까운 것은 예를 드는 게 비유입니다. 가장 가까운 자연 계시 중 가장 직접 가까운 것을 비유한 것인 겁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다. 말씀을 가르칠 그 당시 그 나라에서 일반적인 종이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대표적인 게 종이 밭을 갈고 양을 치는 겁니다.
우리는 무익한 주의 종이니까 하나님에게 두 가지다 그 말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바깥일을 설명드렸고 양치는 걸 설명 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노력입니까. 평소 자주 쓰는 말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이걸 두 가지가 믿는 사람 평새의 전부인데 이걸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요, 자타의 구원. 이게 자타의 구원입니다. 밭을 가는 거, 양을 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평생의 생활은 자기 구원이 먼저고 이후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겁니다. 밭 가는 것은 자연 계시로 농사를 지어봐야 밭을 갈아봐야알지요. 화분이라도 나무 심어보면 아는데, 밭을 가는 것은 땅을 뒤집습니다. 왜 그럽니까 땅이 단단하면 뭐가 안들어가요. 씨앗이 안 들어갑니다. 우리 주차장에 저거 가지고 땅을 파서 그러면 잘 삽니다. 찰흙처럼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나무가 비실비실하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잘 삽니다. 그게 밭을 가는 겁니다. 첫째는 밭을 가는 것은 자연 계시로 말하면 밭을 뒤집어서 흙을 뒤집어서 하는 것, 그리고 잘 하게 하는 겁니다.
마음 밭을 갈아서 말씀이 잘 심어지게 하는 것. 마음 밭을 가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 욕심 그러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귀로 듣고 마음 속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새겨지도록 그렇게 만드는 게 밭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생활은 가꾸는 겁니다. 아름답게 보기 좋게, 세수도 하고 로션도 바르고 머리도 빗고 옷도 갈아입고 자기를 꾸며서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 빌라 할머니 또 뭐라고 소리 지르니까 선인이가 인사를 깍듯이 합니다. 그러니까 수월해지는 거 같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합니다. 그게 인사 잘하고 순종 잘하고 오는 말이 곱도록 할려면 가는 말이 곱게하고 그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역시 다르네, 밭을 가는 생활, 자기 구원입니다. 예배시간에도 지각하지 않고,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그걸 뭐라고 한다고요, 그걸 목양이라고 합니다. 다른 교회 가면 목사님 사무실에 가면 목양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목양실, 양을 기르는 걸 목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양을 기릅니까.
두실이라는 동네인데 양 무리들이 모이는 산이라고 해서 기도실 이름을 양산동이라고 해놨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는 뇌가 녹아져서, 낮아지고 베풀고, 굳은 일하고, 조심해서 그렇게 잘 갈면 그 자체가 바로 빛과 소금이 되고 양치는 그런 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종들의 일반적인 일이고 거기 도리를 담아놓으신 겁니다.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러면 뭐가 전제가 되어있지요. 밭일을 다 끝냈다는 거지요. 오늘 하루 할 걸 다 끝내고 오늘 하루를 다할 것을 다 끝낸 겁니다. 돌아오면 두 가지겠지요. 고치거나 회개하고 나면 고칠 것은 많은 거 고치고나면, 잘못된 습성 고치면 마음이 뿌듯하고 좋지요. 자기가 아는 자기 악습, 바로 해야하는데 앞으로 모를 찌라도, 매일같이 되풀이 되는 하루를 끊었습니다 굉장히 상쾌할 겁니다. 오늘로 술을 끊었다. 한편으로 금단 현상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좋을 것이고 기도를 안했는데 했다 좋을 것이고 그날 그날 자기로써 고칠 것을 고치는 그게 돌아오면 맡기신 거 하나 하고나면 그 말이지요.
오전에는 새벽 기도 마치고 나면, 못 나오면 그것도 없는 거지요. 밭을 갈던 양들이 돌아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돌아오면 저더러 앉아서 먹어라고 할 자가 있느냐, 아무리 주인이더라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땀을 일하고 그랬으면 고생했네, 이때는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이 대상이 종입니다. 노예. 이게 좀 심하지 않는가, 짐승도 휴식을 주는데 너무 심하지 않는가. 주인은 그럴 수 있습니다만은 여기는 주인이 아니라 종을 가르치는 겁니다.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앉아서 먹어라 할 자 있느냐. 어찌 감이 종이 일하고 돌아왔다고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를 바랄까. 그래서 씻고 먹어라 그런 대접을 할 수 없는 게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종으로 대접하는게 성경적으로 옳은 겁니다.
그리할 자가 있느냐, 없다는 거지요. 도리아,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하루종일 고생했지만 남아있으니까, 주인의 밥상 차리는 것도 종이 할 일입니다. 그러면 또 이랬으니까 내 밥상을 차려야지 내 밥먹는 동안에 반찬 가져오고 필요한 거 다 갖다오고 그 말입니다.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나의 먹고 마시는 수중들고 이걸 해석을 하면 뭐냐, 주님 식사입니다. 주님을 식사하실 것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식사는 뭐지요. 이루는 것이다. 본문에서 찾으면 그게 뭐겠습니까. 주님 양식입니다. 주님이 배가 부른 거 그게 본문에 바로 밭갈고 약먹이는게 주인의 배가 부른 겁니다. 우리들의 고칠 거 고치고 그러면 배부른 양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고 왔는데 또 뭡니까. 주님 식사를 준비하라고 그럽니다. 내가 밭갈고 양치는 그런 걸 했는데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또 할 일이 고칠 건 뭐지, 어떤 유익을 주지 이걸 찾는 게 주인을 예비하는 겁니다. 예비하고 찾아서 띠를 띠고 마음놓지 말고 나의 먹고 마시는 것에 수종들어서 주일을 먹고 마십니다. 밭 갈고 양치는 내가 다른 사람에 구원을 주는 게 그것입니다. 내가 고칠 걸 고쳤고 심방을 했고 설교했고 인도했고 했습니다. 누가 했지요. 내 나쁜 습성을 고쳤습니다. 심방을 갔다왔습니다. 누가 있습니까. 내가 있지요. 그런데 나의 먹고 마신 자 수종들고 껍데기는 내가 했는데 나는 수종들 뿐입니다. 주님이 다 하셨다는 거지요. 오전에 다윗이 목동에 있을 때 사자가 양떼 새끼를 물어가면 찢어버리고 양을 데려와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거지요. 골리앗을 향해서 맷돌을 던졌습니다. 이마에 박히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게 한 겁니다.
믿음의 종들이 할 때는 내가 하는 거 같은데 나의 의지력과 충성으로 하는데 내 힘을 드렸는데 주님을 한 것입니다. 참된 종들의 깨달음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종들에게 하나님이 면류관을 씌워주시는데 던져버린다고 합니다. 주님이 하신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렸으니까 내 뜻을 이룰 차례인가, 먹고 마시라, 전부 다 종이 한 것은 숨쉬는 것조차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인을 위해 살아있는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종의 종자로 태어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인을 위한 것입니다. 전부 주인을 위해서 그 후에 먹고 마시라, 그게 이루는 것은 내가 하나 이루어 드렸는데 또 할게 뭐냐, 이걸 준비하는 게 먹고 마시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할 것이 뭐냐, 그래서 주님 잡수시는 거니까 먹는 겁니다. 이런 자세가 요압에게 없었습니다. 요압은 자기를 몰랐고 다윗을 몰랐고 하나님을 몰랐고 다윗과 자기 관계도 몰랐고 자기만 알았다. 자기만 아는 사람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두 글자로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게 심하면 악독하다고 합니다.
말세가 그러면 점점 악하여진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중심, 자기만 아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객관을 모르고 아는, 그래서 가정도 문제가 생기고 부부 사이에도 부부는 남편은 아내를 해야하고 댕겨야 올라갑니까 밀어야 올라갑니까. 밀어주는 겁니다. 땡기면 대등하게 지옥으로 가는 거고 밀면 천국이 되는 것이고 서로에게 잡아 당기면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부모도 자녀도 형제관계도 다 그런 겁니다. 이 원리라는 것은 천국의 원리라서 많은 적용이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니까 자기 범위도 모르는 거지요. 자기 위치도 모르니까. 자기도 모르지요, 모르니까 눈 먼 망아지.
복수로 괘씸하다고 다윗도 협박하고 배신해버리고 이런 자기가 자기를 모르니까 종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7, 8절이 종에 대해서 설명하신 겁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다. 너희 중에 열 두 제자를 가르쳤는데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하였겠느냐, 임금님이 신하에게 명령하는데 상급이 있는게 아니고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명령대로 했는데 마땅히 할 일입니다.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고 안하면 그때는 매가 오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그래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우리가 한다고 해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런 미혹이 들어갔냐 할만큼이겠습니다만은 마음에 이만큼이나 충성했는데 봉사하고 희생했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틈이 되는 것이고 그 틈을 마귀는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생기면 그때 완전히 폭발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마귀는 쉬지 않고 그렇게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그렇게 해주신 것은 머지만큼이라도 그런 틈이 생기면 원천적으로 그렇게하는 겁니다.
그 틈 자체가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내가 누구인데 나는 종인데 무슨 사례를 합니까. 그래서 열심히 하거나 칭찬하면 화를 낸다고 합니다. 내 할을 했는데 칭찬을 받고자 합니까. 대접을 바라면 아예 잘못된 겁니다. 조짐이 안 보여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유익한 종이 나오는 겁니다.
10절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개인마다 사명은 다 다릅니다. 자기로써는 다 해야합니다. 마음 다 힘 다 뜻 다 정성 다 해야합니다. 그게 말이 쉽습니까. 고쳤고 다른 사람은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르기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를 무익한 종이라, 주인이 나를 만드시기를 느끼기가 어려운데 만드시기를 두 가지라고 했죠. 하나님이 구속하셨고 그게 우리들인데 성냥개비를 가지고 만드는 것은 나무젓가락으로 만들면 일반이 만드는 것은 뭘 만든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고급으로 올라가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면 세계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몇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우주선 만드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나라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만드셨는데 인공지능을 만든 세월이 6000년입니다. 인간들의 지식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최첨단의 인공지능, 사람이 만들었다 자연이 아니고 그 말이지요 그 말인데 인공 지능, 그 인공 지능이 대세인데 온 세상이 인공지는 대세입니다. 그걸 감안해보면 흩어놓은 그 지식을 모아가지고, 그것을 활용하고 응용하는 것이지요. 인공 지능이란 사람들이 흩어놓은 지식을 모아서 응용하는 게 인공지능입니다. 전부 다 빼버리면 깡통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그런데 그거 만드는데 6000년입니다, 온 세상이 환호를 합니다. 모든 걸 다 쏟아부을 만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뭘 만들면 기가 막히게 만든다고 하지요. 우리 달력 만든다고 애를 많이 쓰셨는데, 인공지능으로 만드는데 한 시간도 안 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 다 그렇게 됩니다. 박사 학위 논문 만드는 거 식은 죽 먹기라고 하지요. 그게 안에 모든 게 이 세상에 나와있는거 첨치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안다고 하지요. 이 세상에 사람들이 흩어놓은 지식만 인공지능인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 교리를 가지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모릅니다. 설교록으로 해서 하면 엉터리로 만들어놓겠지요,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다 이건 두고 영계 두고 다른 것보다도 내 몸을 만드셨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 마음에 대해서 생명을 만드셨다 인격을 만드셨다 영을 만드셨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해야 실감이 올까.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인데 나라는 존재는 없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었습니다. 생명이 만들어진 그 존재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나를 왜 낳았어요 하는 사람처럼 나쁘게 태어납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름이란 게 있으면 누가 짓습니까. 누가 짓지요. 이름을 내가 짓습니까 남이 짓습니까. 사람 이름은 자기가 짓습니까 남이 짓습니까. 전부 다른 사람이 짓습니다. 그걸 이름으로 만드는 사람은 제가 만듭니다.
남이 짓고 내가 만드는 것이 이름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살면 아름답게 되는 거고 더럽게 살면 더러운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자기가 복되게 살면 그렇게 되는 건데 부모가 애써 낳아주는 걸 가지고 그런 죄를 가지고 원망하는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습니까. 귀하고 귀하게 만드신 우리들입니다 만드신 그분의 뜻을 따라, 밭을 갈아서 양을 쳐서 귀하게 만들면 한 생명이 우리가 말하길 뭐보다 귀하다고 합니까. 우주보다 귀한 우리가 되는 겁니다. 우주보다 귀한 나를 만들어주신 겁니다. 백 목사님은 젊었을 때 기독교 신앙 만나기 전에 인생의 허무를 깨달아서 구더기 보다도 못하다. 인간으로 태어나니까 없어지지도 않을것이고 그러다가 주님 만났는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죄는 안 지었지요.
살아가면서 죄짓고 살면 그게 영원히 있는데 죄는 안 지었을 거 아닙니까. 태어났습니다. 그건 자기 잘못인 것이고 지으신 주님은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하라고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걸 생각해봐야겠고 인간이 배신해서 영원히 지옥에 던졌는데 나를 만드시고 값주고 사신 그게 너무너무 크기 때문에 평생을 날 구속하신 은혜를 영원토록 찬성하는 것입니다. 주의 몸된 것을 위해서 어디까지 충성을 해야하는지, 하고 하고 또해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을 드리겠냐 이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간의 의로 여기시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충성을 의로 여기십니다. 나로써는 전부 다 충성을 하고 마지막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나를 위해서 바치신 자본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감사할 뿐이고 이런 자세로 충성을 할 때 보시고 하는 겁니다.
이게 변질되면 요압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요압의 실패에 이어서 무익한 종을 생각하면 은혜 생각하고 충성은 해야겠고 마지막에 결론은 무익한 종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