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11-30조회 26추천 1
2025년 11월 30일 주일 오전
찬송: 122장, 16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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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은 다윗의 가장 최측근이었던 요압의 충성과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고 가장 충성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실패하게 되었을까. 속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신앙도 과일도 채소도 겉이 싱싱해도 속에 들어가면 시간문제지 다 버리게 되는 겁니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겁니다. 요압은 겉으로는 충신이었지만은 속을 들여다보니까 충신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의 충성스러운 모습의 많은 일은 무엇으로 했을까,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동기를 살펴보니까 원인을 보니까 하나님도 아니었고 나라도 아니었고 다윗도 아니었고 주군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충성의 원인이 되어야하는데 요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신하된 도리인데 요압은 그러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했습니다. 요압의 충성의 알맹이는 자기였고 자기 권력이었고 혈육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그런데도 많은 충성을 겉으로 했고 그게 사람입니다.
겉으로 많은 충성, 예배를 잘 드리고, 성경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하고 전도도 많이하고, 연보도 많이하고 봉사도 많이하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왜 그러냐, 교회 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그런 목사 장로 집사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압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이 중요하다 내면이 중요하다 이 뜻입니다. 하나님이 원인 되어야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구원이 원인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방편이 되어야하지 다른 거면 실패가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주님을 주라 부르면 구원 받습니다. 그게 성경인데 그 구주되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기를 주여 주여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들어가야합니까.
주님을 예수님으로 구주라고 믿어도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라야 들어간다, 그 요소가 들어간다니까 기본 구원 건설구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거 해석을 못합니다. 그래서 요압이 그렇게 충성하고도 마지막에 속이 잘못 되었음으로 실패했던 것처럼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을 고치고 많은 일을 했는데도, 우리 일반 교인들이야 그냥 하지만은 목사 중에서도 실력있는 부분도 수천명을 모아놓고 복음을 정합니다. 병도 고칩니다. 순복음교회는 80만명 그렇게 모였고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할 지라도 그 속에 동기가 목적이 방편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타의 구원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런 말이 됩니다. 무서운 말이죠.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와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했고 많은 능력도 행했는데 용접해주옵소서, 내가 너희를 도저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한다면 그거 붙들고 씨름하고 난리가 나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진수성찬은 먹으면 음식이 맛있고 좋습니다. 그런데 그 진수성찬을 때마다 먹으면 질려서 못먹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가끔으로 한 번 먹어야하지 가장 평생의 가장 중요한 식사는 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 밥입니다. 별미는 말 그대로 별미입니다. 아무리 별미라도 자주 먹으면 일반보다 보통이 되고 복음도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놀라서 충격을 다 받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부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졸고 앉았습니다. 하늘의 복음을 들으면서 절반이 조니까, 그게 사람이 듣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말씀 들을 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너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그랬으니까, 그래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했으니까 알면 쉽고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어려운 겁니다. 성경말씀은 다 비밀인데 모르면 그렇게 어렵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도 어려운데 이걸 그동안에 몰라서 이걸, 그게 물리고 지식이고 그런 겁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 만나는 게 복입니다. 거기 보면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소유를 맡깁니다 재능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와서 소유 맡긴 걸 불러서 회계결산합니다.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고 두 달란트를 만났습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주인 것을 그대로 돌려드린다고 하니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 생각에 그런 사람인 줄 알았냐, 그러면 은행이라도 맡겨놨어야지, 본전하고 이자라도 받았을 거 아니었을것이냐. 그걸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겁니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진화는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자연 환경이 진화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니까 틀려먹을 것이지 자연 변화의 과정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못하는 게 되는 겁니다.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인이 칭친한 중에서 두 가지인데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했습니다. 착하다는 말은 싹싹하고 말 잘듣고 그것도 착한거지만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이 착하다는 겁니다. 그 충성된 종들의 원인 동기 목적 방편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크게 두 가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없는 데에서 하나님께 지음받은 것이 우리입니다. 원래 없었는데 있어서 한 것입니다. 좀 이해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무 가지고 인형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인형이 거짓말하면 코가 자꾸 길어져야. 이름이 뭐지요. 피노키오지요. 그게 나중에 거짓말하면 점점 길어지고 아버지 싫어서 밖에 돌아다니다가 나쁜 친구에게 이용당하고 고래 뱃속에 들어가고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야기지만 그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고 주인이고 없었는데 만들었으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새로운 걸 발명해내면 이거 몇 십 년 동안은 내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서 내가 생겼습니다. 학생들도 원래 없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미니가 나를 낳으셨는데, 아버지 어머니 낳고 싶다고 아기가 생기죠, 생길 때야 생기죠. 안 주시니까 우리 교회도 공회적으로 결혼한 부부들 아이를 주옵소서, 잉태복을 주옵소서 매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안 되시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만들어서 생겼습니다. 소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고 나귀도 임자를 아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 말이나 강아지나 주인을 몰라보면 그건 팔아치우든지 잡아먹던지 없애버려야합니다. 사람이 주인을 몰라보면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리는 분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걸 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영원히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므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서 그분의 것이 되었고 배신했는데 다시 그분의 것이 되었으니까 한량이 없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우리 각도를 돌아보는 말씀을 해야합니다. 누가복음 18장부터 보면 이 말씀의 출발은 사도들이 믿음을 크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냐, 믿음이 더해지는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는 겨자씨 믿음 하나는 유익한 종의 믿음, 오늘은 유익한 종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 이게 우리들이 가질 자세입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우리 중에 만약에 어떤 시대가 지금하고는 다른 시대, 지금은 종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만은 이때는 있을 때입니다.
종은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 종입니다. 종이란 사람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대접과 대우를 하는 것이 종이었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시점에 남북전쟁이 났지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예 때문에, 노예는 돈주고 사고 파는 겁니다. 사람을 돈을 주고 팔더니 인신매매 아닌가, 그때는 그게 합법이었습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노예고 그런 겁니다. 만약에 그 시대에 그런 게 있었고 인간 역사 6000년에 이런 게 있어왔습니다. 지금은 급이 달라졌지만 차별 차이는 있을 것이고 지금은 이런 노예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노예 역사를 만들어주셨고 왜 만들어두셔서 있게 하셨을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치는 자연 계시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몇 가지지요. 종이 하는 일입니다. 두 가지,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지금 비유를 가지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된 우리들이 할 일을 담아두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평생할 일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밭을 갈고 양을치는 것, 예수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정리하면 이 두 가지입니다. 누가하는 일이라고요, 본문이 하는 일, 나는 사무실에 다니는데 회사 직원인데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원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옛날에 주로 이 나라에 하신 분이 밭을 간다는 말은 밭은 왜 갈까요. 괭이나 삽이나 갈아서 물씬물씬하게 하는 겁니다. 곡식 심길 때 잘 하라고. 돌 자갈 골라내고 밭을 갈고. 자기 마음 밭은 가는 겁니다. 갈아서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맡이 네 종류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 밭, 둘째 돌밭, 셋째 가시떨기 밭, 네 번째 옥토. 전부다 제하고 나면 옥토가 됩니다. 밭을 가는 목적은 옥토를 만들기 위해서 잘 심겨져서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믿는 사람이 밭을 가는 것은 자기를 가는 겁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예배신에 말씀을 정하는데 고개 숙이고 있는 분들 다른 분들에게 하고 있으면 가지 떨기 밭이나 그거라고 안됩니다. 마음 속에 인간 모든 속에 다 뽑아버리고 예민한 마음으로 그래야 옥토밭이 됩니다. 또 하나 밭을 가는 것은 자기를 가꾸는 겁니다.
찬양대 여학생은 거울 보고 오신 분, 머리 빗고 오셨죠. 그게 자기를 가꾸는 겁니다. 겉모습도 가꾸고 공부해서 지식도 가꾸고 행실도 가꾸고 인격도 가꾸고 신앙도 가꾸고 자기를 갈고 닦아 밭을 만든다고 합니다. 말씀에 잘 들어오게 하는 거 그걸 인격자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밭을 가는 겁니다. 밭을 갈거나 우리는 종이니까. 두 번째는 양은 치거나. 어려운 말록 우리는 잘 안쓰는 말인데 목양이라고 합니다. 일반 교계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잘 안 씁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양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차 안내를 하고 예배시간에 안내를 하고 전도를 하고 말씀을 전하고 그것입니다. 너희 중에서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엇, 하루 종일 새벽별 보고 나가서 양을 치고 해가 져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새벽별 보고 나와서 그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고생했다 앉아서 먹고 쉬어라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그러겠느냐 라는 겁니다.
그 종이 하루 종일 밭 갈고 양치고 그러면 애썼다 고생했다고 하고 그러겠냐. 모질고 독합니다 주인이. 그런데 그 대상이 뭐라고요 종입니다. 소가 하루 짐지게 하면 쉬게 하는데, 옛날에는 하겠느냐, 도리어 저더러 밭 갈고 왔냐 양치고 왔냐, 내 밥 차려라, 저녁 밥상 차려라. 그리고 띠를 띠고 나 먹고 마실 동안에 반찬 물도 갖다주고 그리고 먹어라 이게 종이라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밭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그 다음 주인 먹을 걸 예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 하고 나면 주일을 지키고 나면 또 오늘 주일 날 하루 수고를 하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주일이 지나고 나면 집회가 끝나고 나면 깔끔하게 잘 해놨습니다. 그때를 하나를 하고 나면 한 가지 하고 나면 하루 마치고 나면 이게 돌아오면 그 말입니다. 이제는 쉬어도 되겠냐 그게 아닙니다.
주인이 종에게 고맙다고 사례하겠느냐, 하루종일 밭갈고 양치고 와도 그래도 또 일을 시킵니다. 이제는 내 먹을 거 예비하고 수중들고 먹고 그거 다 떠나고 나면 사례하겠느냐, 그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10절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각자 자기가 하나님께 바른 후에 하기를 무익한 종이다. 유익이 없는 종이라는 거지요. 종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9000만원치 일을 합니다. 일 억 주고 사놨는데. 이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손해지요, 100억주고 사왔는데 1억원치를 하면 무익한 종이지요. 무익한 종이다. 요 자세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요압이, 자기 자신을 몰랐기 때문에 다윗과 자기 관계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요압이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실패하게 된 겁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다윗은 유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목동 초군입니다. 양치는 목동인데, 믿음으로 사람이 진실하게 살아나가면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있고 자기 지능으로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지능으로 안되는데 그 일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윗은 양치면서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새끼를 물어갑니다. 우리는 사자나 곰을 잘 모릅니다. 곰이라는 것은 한 번 치면 죽어버립니다. 곰의 앞발 한 대는 죽어버립니다. 쫓아가서 수염을 갖고 찢어버립니다. 안되는데 되었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은 살아있는 신앙 생활은 뭐라뭐라 말해도 사실을 말하면 대상 자체가 없는 것이거나 착각이거나 그런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기독교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인격 존재, 인격과 신격의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생명의 작용, 희로애락이 있는 겁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왜 싸움이 생기느냐, 희로애락을 가졌으니까 이런 작용이 일어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은 인격인 신앙 생활과 그런 겁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활동은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주일 안 지키고 죄짓고 잘못 사니까 이렇게 매를 때리더라, 주일을 빼먹어도 예배를 안 드려도, 아무런 감각이 없고 반응이 없으면 뭐하러 믿습니까. 시간 아깝고 돈 아깝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은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사생자라고 합니다. 잘못 믿으면 하나님이 있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다윗만 그런 게 아닙니다 바로 믿지 않으니까. 그래서 다윗이 그렇게 믿을 때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와 곰을 찢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걸 봤기 때문에 골리앗이 나왔을 때 당대하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 다윗인데 승승장구해서 왕이 되었습니다. 나는 목동 초기입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을 두고 무익한 종입니다. 안 잊어버렸기 때문에 평생을 두고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령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가지겠나이까. 종이 어찌 감히 사를 기다리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주님 앞에 주일에 충성하고 봉사하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고생했는데 노력했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요압의 길로 가는 겁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종이 가질 마음 자신은 무익한 종입니다.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는데 그 만드신 것이 요즘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은 흩어놓은 지식을 취합하고 응용하는 것 뿐입니다. 4000천년 2000년 그걸 모아서 응용하는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지식을 다 빼버리면 깡통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세월이 6000년입니다. 만들어냈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신 걸 보면 가장 탁월한 게 첫째 사람의 몸이고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영입니다. 이걸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지요. 나를 만드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이 만들어 있게 되었습니다.
뭐로 만들었을까 어찌보면 바로 살아나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믿음으로 바로 살면 귀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자식이 탈선해서 잘못되면 왜 나를 낳았습니까. 나쁜 놈. 나쁜 놈이지요. 잘 되면 그 영광을 부모에게 돌립니까. 자기가 가지고 가지.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이 귀한 사람, 거기에 전지 전능자니까 수고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 만든 인간이 하나님 배반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당신 전부를 바쳤습니다. 날 구원하시려고, 생명 다 바쳐서 나를 구원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사시려고, 값을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억지로 맞추는 게 아니고 사실이 그러하고 그런 게 있을 때 겸손한 사람이 되고 요압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오후에 좀 더 깊이하고 정리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목숨걸고 충성했는데 없었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뜻대로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하지 그 속에 중심이 잘못되면 헛일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많은 자본 들여서 만드셨고 사셨는지 생각해서 무익한 종이라는 걸 깨달아서 알게되는 겁니다. 요압처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잊지 않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2장, 16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7절 =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은 다윗의 가장 최측근이었던 요압의 충성과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고 가장 충성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실패하게 되었을까. 속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신앙도 과일도 채소도 겉이 싱싱해도 속에 들어가면 시간문제지 다 버리게 되는 겁니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겁니다. 요압은 겉으로는 충신이었지만은 속을 들여다보니까 충신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의 충성스러운 모습의 많은 일은 무엇으로 했을까,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동기를 살펴보니까 원인을 보니까 하나님도 아니었고 나라도 아니었고 다윗도 아니었고 주군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충성의 원인이 되어야하는데 요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신하된 도리인데 요압은 그러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했습니다. 요압의 충성의 알맹이는 자기였고 자기 권력이었고 혈육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그런데도 많은 충성을 겉으로 했고 그게 사람입니다.
겉으로 많은 충성, 예배를 잘 드리고, 성경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하고 전도도 많이하고, 연보도 많이하고 봉사도 많이하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왜 그러냐, 교회 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그런 목사 장로 집사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압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이 중요하다 내면이 중요하다 이 뜻입니다. 하나님이 원인 되어야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구원이 원인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방편이 되어야하지 다른 거면 실패가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주님을 주라 부르면 구원 받습니다. 그게 성경인데 그 구주되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기를 주여 주여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들어가야합니까.
주님을 예수님으로 구주라고 믿어도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라야 들어간다, 그 요소가 들어간다니까 기본 구원 건설구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거 해석을 못합니다. 그래서 요압이 그렇게 충성하고도 마지막에 속이 잘못 되었음으로 실패했던 것처럼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을 고치고 많은 일을 했는데도, 우리 일반 교인들이야 그냥 하지만은 목사 중에서도 실력있는 부분도 수천명을 모아놓고 복음을 정합니다. 병도 고칩니다. 순복음교회는 80만명 그렇게 모였고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할 지라도 그 속에 동기가 목적이 방편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타의 구원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런 말이 됩니다. 무서운 말이죠.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와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했고 많은 능력도 행했는데 용접해주옵소서, 내가 너희를 도저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한다면 그거 붙들고 씨름하고 난리가 나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진수성찬은 먹으면 음식이 맛있고 좋습니다. 그런데 그 진수성찬을 때마다 먹으면 질려서 못먹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가끔으로 한 번 먹어야하지 가장 평생의 가장 중요한 식사는 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 밥입니다. 별미는 말 그대로 별미입니다. 아무리 별미라도 자주 먹으면 일반보다 보통이 되고 복음도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놀라서 충격을 다 받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부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졸고 앉았습니다. 하늘의 복음을 들으면서 절반이 조니까, 그게 사람이 듣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말씀 들을 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너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그랬으니까, 그래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했으니까 알면 쉽고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어려운 겁니다. 성경말씀은 다 비밀인데 모르면 그렇게 어렵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도 어려운데 이걸 그동안에 몰라서 이걸, 그게 물리고 지식이고 그런 겁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 만나는 게 복입니다. 거기 보면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소유를 맡깁니다 재능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와서 소유 맡긴 걸 불러서 회계결산합니다.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고 두 달란트를 만났습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주인 것을 그대로 돌려드린다고 하니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 생각에 그런 사람인 줄 알았냐, 그러면 은행이라도 맡겨놨어야지, 본전하고 이자라도 받았을 거 아니었을것이냐. 그걸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겁니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진화는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자연 환경이 진화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니까 틀려먹을 것이지 자연 변화의 과정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못하는 게 되는 겁니다.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인이 칭친한 중에서 두 가지인데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했습니다. 착하다는 말은 싹싹하고 말 잘듣고 그것도 착한거지만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이 착하다는 겁니다. 그 충성된 종들의 원인 동기 목적 방편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크게 두 가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없는 데에서 하나님께 지음받은 것이 우리입니다. 원래 없었는데 있어서 한 것입니다. 좀 이해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무 가지고 인형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인형이 거짓말하면 코가 자꾸 길어져야. 이름이 뭐지요. 피노키오지요. 그게 나중에 거짓말하면 점점 길어지고 아버지 싫어서 밖에 돌아다니다가 나쁜 친구에게 이용당하고 고래 뱃속에 들어가고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야기지만 그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고 주인이고 없었는데 만들었으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새로운 걸 발명해내면 이거 몇 십 년 동안은 내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서 내가 생겼습니다. 학생들도 원래 없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미니가 나를 낳으셨는데, 아버지 어머니 낳고 싶다고 아기가 생기죠, 생길 때야 생기죠. 안 주시니까 우리 교회도 공회적으로 결혼한 부부들 아이를 주옵소서, 잉태복을 주옵소서 매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안 되시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만들어서 생겼습니다. 소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고 나귀도 임자를 아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 말이나 강아지나 주인을 몰라보면 그건 팔아치우든지 잡아먹던지 없애버려야합니다. 사람이 주인을 몰라보면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리는 분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걸 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영원히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므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서 그분의 것이 되었고 배신했는데 다시 그분의 것이 되었으니까 한량이 없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우리 각도를 돌아보는 말씀을 해야합니다. 누가복음 18장부터 보면 이 말씀의 출발은 사도들이 믿음을 크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냐, 믿음이 더해지는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는 겨자씨 믿음 하나는 유익한 종의 믿음, 오늘은 유익한 종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 이게 우리들이 가질 자세입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우리 중에 만약에 어떤 시대가 지금하고는 다른 시대, 지금은 종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만은 이때는 있을 때입니다.
종은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 종입니다. 종이란 사람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대접과 대우를 하는 것이 종이었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시점에 남북전쟁이 났지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예 때문에, 노예는 돈주고 사고 파는 겁니다. 사람을 돈을 주고 팔더니 인신매매 아닌가, 그때는 그게 합법이었습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노예고 그런 겁니다. 만약에 그 시대에 그런 게 있었고 인간 역사 6000년에 이런 게 있어왔습니다. 지금은 급이 달라졌지만 차별 차이는 있을 것이고 지금은 이런 노예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노예 역사를 만들어주셨고 왜 만들어두셔서 있게 하셨을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치는 자연 계시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몇 가지지요. 종이 하는 일입니다. 두 가지,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지금 비유를 가지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된 우리들이 할 일을 담아두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평생할 일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밭을 갈고 양을치는 것, 예수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정리하면 이 두 가지입니다. 누가하는 일이라고요, 본문이 하는 일, 나는 사무실에 다니는데 회사 직원인데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원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옛날에 주로 이 나라에 하신 분이 밭을 간다는 말은 밭은 왜 갈까요. 괭이나 삽이나 갈아서 물씬물씬하게 하는 겁니다. 곡식 심길 때 잘 하라고. 돌 자갈 골라내고 밭을 갈고. 자기 마음 밭은 가는 겁니다. 갈아서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맡이 네 종류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 밭, 둘째 돌밭, 셋째 가시떨기 밭, 네 번째 옥토. 전부다 제하고 나면 옥토가 됩니다. 밭을 가는 목적은 옥토를 만들기 위해서 잘 심겨져서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믿는 사람이 밭을 가는 것은 자기를 가는 겁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예배신에 말씀을 정하는데 고개 숙이고 있는 분들 다른 분들에게 하고 있으면 가지 떨기 밭이나 그거라고 안됩니다. 마음 속에 인간 모든 속에 다 뽑아버리고 예민한 마음으로 그래야 옥토밭이 됩니다. 또 하나 밭을 가는 것은 자기를 가꾸는 겁니다.
찬양대 여학생은 거울 보고 오신 분, 머리 빗고 오셨죠. 그게 자기를 가꾸는 겁니다. 겉모습도 가꾸고 공부해서 지식도 가꾸고 행실도 가꾸고 인격도 가꾸고 신앙도 가꾸고 자기를 갈고 닦아 밭을 만든다고 합니다. 말씀에 잘 들어오게 하는 거 그걸 인격자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밭을 가는 겁니다. 밭을 갈거나 우리는 종이니까. 두 번째는 양은 치거나. 어려운 말록 우리는 잘 안쓰는 말인데 목양이라고 합니다. 일반 교계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잘 안 씁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양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차 안내를 하고 예배시간에 안내를 하고 전도를 하고 말씀을 전하고 그것입니다. 너희 중에서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엇, 하루 종일 새벽별 보고 나가서 양을 치고 해가 져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새벽별 보고 나와서 그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고생했다 앉아서 먹고 쉬어라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그러겠느냐 라는 겁니다.
그 종이 하루 종일 밭 갈고 양치고 그러면 애썼다 고생했다고 하고 그러겠냐. 모질고 독합니다 주인이. 그런데 그 대상이 뭐라고요 종입니다. 소가 하루 짐지게 하면 쉬게 하는데, 옛날에는 하겠느냐, 도리어 저더러 밭 갈고 왔냐 양치고 왔냐, 내 밥 차려라, 저녁 밥상 차려라. 그리고 띠를 띠고 나 먹고 마실 동안에 반찬 물도 갖다주고 그리고 먹어라 이게 종이라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밭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그 다음 주인 먹을 걸 예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 하고 나면 주일을 지키고 나면 또 오늘 주일 날 하루 수고를 하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주일이 지나고 나면 집회가 끝나고 나면 깔끔하게 잘 해놨습니다. 그때를 하나를 하고 나면 한 가지 하고 나면 하루 마치고 나면 이게 돌아오면 그 말입니다. 이제는 쉬어도 되겠냐 그게 아닙니다.
주인이 종에게 고맙다고 사례하겠느냐, 하루종일 밭갈고 양치고 와도 그래도 또 일을 시킵니다. 이제는 내 먹을 거 예비하고 수중들고 먹고 그거 다 떠나고 나면 사례하겠느냐, 그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10절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각자 자기가 하나님께 바른 후에 하기를 무익한 종이다. 유익이 없는 종이라는 거지요. 종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9000만원치 일을 합니다. 일 억 주고 사놨는데. 이익입니까 손해입니까. 손해지요, 100억주고 사왔는데 1억원치를 하면 무익한 종이지요. 무익한 종이다. 요 자세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요압이, 자기 자신을 몰랐기 때문에 다윗과 자기 관계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요압이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실패하게 된 겁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다윗은 유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목동 초군입니다. 양치는 목동인데, 믿음으로 사람이 진실하게 살아나가면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있고 자기 지능으로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지능으로 안되는데 그 일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윗은 양치면서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새끼를 물어갑니다. 우리는 사자나 곰을 잘 모릅니다. 곰이라는 것은 한 번 치면 죽어버립니다. 곰의 앞발 한 대는 죽어버립니다. 쫓아가서 수염을 갖고 찢어버립니다. 안되는데 되었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은 살아있는 신앙 생활은 뭐라뭐라 말해도 사실을 말하면 대상 자체가 없는 것이거나 착각이거나 그런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기독교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인격 존재, 인격과 신격의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생명의 작용, 희로애락이 있는 겁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왜 싸움이 생기느냐, 희로애락을 가졌으니까 이런 작용이 일어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은 인격인 신앙 생활과 그런 겁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활동은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주일 안 지키고 죄짓고 잘못 사니까 이렇게 매를 때리더라, 주일을 빼먹어도 예배를 안 드려도, 아무런 감각이 없고 반응이 없으면 뭐하러 믿습니까. 시간 아깝고 돈 아깝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은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사생자라고 합니다. 잘못 믿으면 하나님이 있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다윗만 그런 게 아닙니다 바로 믿지 않으니까. 그래서 다윗이 그렇게 믿을 때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와 곰을 찢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걸 봤기 때문에 골리앗이 나왔을 때 당대하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 다윗인데 승승장구해서 왕이 되었습니다. 나는 목동 초기입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을 두고 무익한 종입니다. 안 잊어버렸기 때문에 평생을 두고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령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가지겠나이까. 종이 어찌 감히 사를 기다리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주님 앞에 주일에 충성하고 봉사하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고생했는데 노력했는데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요압의 길로 가는 겁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종이 가질 마음 자신은 무익한 종입니다.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는데 그 만드신 것이 요즘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은 흩어놓은 지식을 취합하고 응용하는 것 뿐입니다. 4000천년 2000년 그걸 모아서 응용하는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지식을 다 빼버리면 깡통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세월이 6000년입니다. 만들어냈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신 걸 보면 가장 탁월한 게 첫째 사람의 몸이고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영입니다. 이걸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지요. 나를 만드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이 만들어 있게 되었습니다.
뭐로 만들었을까 어찌보면 바로 살아나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믿음으로 바로 살면 귀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자식이 탈선해서 잘못되면 왜 나를 낳았습니까. 나쁜 놈. 나쁜 놈이지요. 잘 되면 그 영광을 부모에게 돌립니까. 자기가 가지고 가지.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이 귀한 사람, 거기에 전지 전능자니까 수고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 만든 인간이 하나님 배반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당신 전부를 바쳤습니다. 날 구원하시려고, 생명 다 바쳐서 나를 구원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사시려고, 값을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억지로 맞추는 게 아니고 사실이 그러하고 그런 게 있을 때 겸손한 사람이 되고 요압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오후에 좀 더 깊이하고 정리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목숨걸고 충성했는데 없었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뜻대로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하지 그 속에 중심이 잘못되면 헛일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많은 자본 들여서 만드셨고 사셨는지 생각해서 무익한 종이라는 걸 깨달아서 알게되는 겁니다. 요압처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잊지 않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