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5일 금밤
김동민2025-12-05조회 27추천 1
2025년 12월 5일 금밤
찬송: 139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무익한 종을 생각해봅니다. 오늘 밤에 같은 말씀이라고 하지만은 말씀의 실상을 두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신앙 생활은 순서적으로 그 중요성의 순위보다 진행해 나가는 순서적으로 먼저가 지식입니다. 믿음이란 신앙생활의 이름이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인데 일단 알아야 그 다음에 행할 수 있는 겁니다. 지식이 중요하고 실제로 신앙 생활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신앙생활이 이어져야합니다. 신앙이란 실제로 하는 겁니다. 추워서 벌벌떨고 있는 사람에게 입을 것 먹을 걸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지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겁니다. 추운 날씨에 오리털 파카가 있어도 안 따뜻해지는 겁니다. 그게 실행히라고 합니다. 행함이라는 것이 지식이 잘못되면 잘못 행하게 됩니다. 안 행하는 것보다도 못하게 됩니다. 안 행하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 새로 해야하니까, 설계도가 있는데 돈이 아까워서 마음이 안 들어서 설계도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대충 지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집은 부실 공사라서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러면 새로지어야합니다. 그러면 다 걷어내는데 비용이 들고 이중으로 들어갑니다.
사람의 믿음의 잘못된 행위가 그렇습니다. 잘못 믿고 살아나가면 사람의 행위라는 것은 연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연습은 몸에 익어지는 걸 그렇게 됩니다. 몸에 잘못 익어지는 걸 악습이라고 합니다. 잘못 알아서 잘못 믿음생활하면은 그게 진짜인줄 알고 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첫 출발은 말로 못할 만큼 중요합니다. 바로 배워서 다른 지식 가지는 것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지식 가지고 있으면 잘못된 행동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천국에 맞지 않는 탈선된 생활 행동이 이어지고 마음에 박혀 들어가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그래서 지식이 중요합니다. 첫째 순서적으로 지식이 중요하고, 그런데 우리 공회 교인들처럼 잘 배워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실행에 따라가지 않으면 이것은 아무리 지식 가지고 있어도 실제가 없는 겁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 겁니다. 그래서 음식을 차려주고 먹어라 안 먹으면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니까 안 먹고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 음식 차려준 사람이 애타서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공회의 교인들, 저를 포함해서. 잘 배워놨는데 실행해나가면 참 유리한 사람이 되는데 지식은 가졌는데 실제가 이루어지지않는 것이죠. 장비도 자재도 다 갖다놨습니다. 자재가지고 집을 지으면 됩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장비 좋네, 비싸네, 최신식이네, 자제도 최고급이네, 오늘의 말만하고 있고 건설을 안하는 거지요. 100년 쳐다봐도 집은 안 지어지는 겁니다. 그게 실행에 없는 겁니다. 구원이 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이게 지식이고 그 다음이 실제 생활이 되어야 믿음이 되고 신앙 생활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 첫째 그리고 실행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한 번 하고 말고 하루 하고 말고 이틀 하고 말고 그래서 뭐가 또 필요하겠습니까. 인내가 필요하고 계속이 필요한 거지요. 계속 뛰어다닙니다. 옆을 볼줄 모르고 우리 교회 교인들이 그런 분들 많습니다. 앞만 봅니다 옆을 못 봅니다. 그럴 때 절제가 필요한 겁니다. 자기 혼자 달려갑니다. 아내도 자녀도 이웃도 모르겠고 혼자만 달려갑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뭡니까. 형제 우애가 필요한 겁니다. 믿음으로 살다보니까 하면 되지 다 던져버리고 집회가서 애가 예배시간에 운다고 잡아놨던지 애 소리 때문에 예배를 못 드리니까 그러니까 장로님이 애를 없는 데 가서 교육을 시키죠하면 대들어버립니다. 그러면 여기 말씀은 좋은데 별로라고 가버렸답니다. 그 사람에게 덕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면 절제도 가지고 인내도 가지고 여덟가지를 구비하게 되는 겁니다.
이리저리 치우쳐버리면 하나 보고 달려가는 건 쉽습니다. 물을 지름이 30센치 즈음 되는 통에 채워놨다가 쏟아버리니까 반도 안 차버립니다. 5리터 되는 높이의 물을 좁은 통에 있는데에 부으니까 이거 밖에 안됩니다. 그게 치우치는 겁니다. 그래서 종과 행이라는 것이 있지요. 앞으로 가는 거고, 옆으로 가는 걸 말합니다. 좌우 전후좌후 다 보면서 살피면서 하는 게 눈치보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살펴서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아니하고 세상 말에 과유불급, 신앙에도 해당되는 겁니다. 넘어가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넘치고 넘치도록 마귀는 더해라 더해서 치우치게 만들어버립니다. 실제 그대로 행동을 해야 바른 지식 가지고 행동해야 실증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걸 건설구원이라고 하고 성화구원이라고 그러고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건설은 행위 구원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참 중요하게 해야합니다.
실제로 행하기는 행해도 잘못해도 더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오늘 밤 말씀에서 우리는 존재적으로 주의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영장의 찬미의 목적으로 지음 받은 곳입니다. 말하니까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지만은 말씀이 얼마나 큰 말씀인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광의 찬미를 목적으로 지음받은 게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만물과 다르게 지어졌습니다. 인체보다 더 신비한 건 마음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입니다. 사람은 인격이라는 것도 묘한 겁니다. 참 심오하고 묘한 것이 사람의 인격입니다. 영광의 찬미를 위해서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같이 비교할 수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지음을 받았고 사람이 미혹받아서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탈선해서 영원히 지옥 형벌받는데 거기서 건지시려고 다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셨다.
마땅히 우리는 주를 위해서 주에 의해서 다 충성하는 것이 당연한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일꾼한테 돈주고 일하면 20만원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으십시오 그러면 수고했습니다하고 인사하지만 돈주고 하니까 의미 없습니다. 돈은 피와 땀이라는 겁니다. 내 돈은 피와 땀입니다. 저도 그만큼은 못 느끼는데 교회 연보는 피와 땀이라고 합니다. 교회들의 연보가 피와 땀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신풍 가면 할머니 집사님들이 시장 길바닥에 앉아서 나물 캐다 팔고 하루종일 벌벌 떨면서, 여름은 볕에 그러면서 연보합니다. 그거 보는 목사는 벌벌 떨립니다. 그러니까 자기 피땀을 그랬으니까 바꾸는 거니까 수고했다고 하지만 거래니까. 그런데 우리는 종이라는 것은 그런데 애초에 주인이 값을 많이 주고 사왔기 때문에 주인의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하는 겁니다. 종은 출퇴근이 없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주의 값에 팔린 종이므로 주를 위해서 내 전부를 바쳐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걸 느끼는 게 성경의 감동입니다. 그것이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그걸 부족할지라도 이렇게 애를 쓰고 살아나가는 게 실행이 되는 겁니다. 그게 주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할 일이 뭐냐, 밭을 갈고 양을 치는 게 할 일입니다. 이 나라에 이 지방에 거기만 그렇지 그러지 않으냐 그 시대는 전부 종이 있었고 종이나 노예 제도란 미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고 파는 거, 종이 주로 하는 일이 밭을 갈고 양을 치는, 바닷가에서는 하는 게 일이겠지요. 농사고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시대고 종된 우리들이 되는 겁니다. 주의 것이 되고 주의 우리된 할 일이 뭐냐, 평생을 통해서 주를 위해서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밭을 가는 거다.
밭을 가는 게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자기를 고쳐서 빗고 깎고 다듬어서 고쳐나가는 겁니다. 말을 고쳐야하고 행동을 고쳐야하고 심보를 고쳐야하고 자존심을 고쳐야하고 이걸 고쳐야 사람이 고쳐지는 겁니다. 또 복음 운동은 양치는 복음 운동은 내가 다른 사람의 신앙의 구원에 유익을 주는 것이 복음 운동입니다. 그런데 오늘 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밭 가는 일이 어떤 것이냐, 밭 갈아 보신 분, 50세 이상 제외하고, 60세 이상 제외하고 밭 갈아 보신 분, 전 집사님 안 갈아보셨죠. 밭이 있습니까. 아시겠네요. 밭 가는 거 밭 가는 걸 노가다 중에서 삽질 하는 거, 삽질 그거 하는 게 쉬운 거 같은데 흙이나 모래나 자갈 떠서 차에 실는 게 몇 번 하고 나면 허리가 절단나 버립니다. 북한에서 70년대 운동 중에서 천리마 운동이라고 있습니다. 천리마,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입니다. 부산서 서울까지 하루에 간다는 거지요. 불가능 한데 그렇게 붙이고 노동 강화 운동 했습니다. 천삽 들고 허리펴기 운동, 허리가 절단나는 겁니다. 죽는거죠. 삽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벽별 보기 운동.
땅을 팔려면 경운기로 다 하고 소가 다 하는 겁니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서 지긋지긋해서 도망친겁니다. 그러다가 부자가 되어버렸죠. 밭가는 게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산에 가서 주인 없는 산을 자기 밭으로 만들려면 온 식구들이 산에 새벽에 올라가서 호미 가지고 나무 가지고 드러내고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겁니다. 그만큼 밭 갈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밭 가는 게 무엇이라고요, 회개, 그만큼 어렵다라는 겁니다. 자기를 고치는 것, 밭을 가는 것은 단단한 땅을 맨땅이 이 동네 어디있습니까. 다 아스팔트 깔아놓으니 이 동네에 없지요. 파봐야 이제 압니다. 삽이 튑니다. 얼마나 단단한지. 그걸 다 갈아내야합니다. 회개하는 것은 요소, 지식은 없고 욕심, 주관 감정, 자존심, 위신, 체면, 못된 속아지 그거 가지고 고치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거 뽑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고치는 게 밭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고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그런 겁니다. 밭을 가는 것
오죽하면 북한에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우리도 새마을 운동 붙여서 했지요. 지금 말씀 드리는 건 밭 가는 건데 회개운동, 자기를 고치는 겁니다. 몸에 잘못 익어진 것은 잘못 익어진 것, 눈으로 보는 거 귀로 듣는 것, 여기 혹시 주일 날 텔레비 보는 가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주일 날 그런 가정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텔레비는 안 보는데 휴대폰도 안 보시는지. 휴대폰 가지고 성경읽고 연구소 홈페이지 문답 이런 건 괜찮습니다. 게임하고, 그거나 텔레비전 보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요즘 새벽기도가 비어서 보니까 원인이 밤에 휴대폰 본다는데 다 안 좋은 겁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악습이라고 합니다. 휴대폰에서 손 못 떼고 눈 못 떼는 겁니다. 고쳐야 회개가 되는 것이고 뜻이 되는 겁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떼보지요. 회개란 그게 어렵습니다. 주여 잘못했습니다 해봐야 회개 아닙니다. 실제 고쳐야 회개가 되는 거지요. 구원이라는 건 실제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뭐가 있습니까. 천국에 영생은 없는데 천국을 차지한 그게 재벌 되는 것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겁니다. 복음 운동은 얼마나 어려우냐, 설교록에 나오는 예화인데 다른 사람 구원하는 겁니다. 성자가 있습니다. 이 성자가 모두 옛날에 문둥이들을 많이 상대해서 적대도 하고 목욕을 시켜준답니다. 이분이 길을 가다가 문둥이를 만났습니다. 집에 데려다가 방에 모셔다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씻어줬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죠. 그런데 특혜가 계속 되면 권리가 됩니다.
그래서 하도 정성들여서 목욕시켜주니까 내가 이 사람에게 보배인가보다. 그래서 씻겨주지 안 그랬는가. 배짱을 부립니다. 그래도 이 성자는 정성들어 목욕 시키는데, 어느 하루는 주일일 하다가 끝나버렸습니다.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나 안 씻어 그러는 겁니다. 이 성자가 신앙 어린 사람이 그러니까 내가 미안합니다 사정사정을 해도 안 씻는 겁니다. 큰소리 팡팡 치고, 이 성자가 이 문둥이 혹시나 소홀히 했나 싶어서 기도하다가 회개하고 그때 씻겠다고 하는데 그걸 싹 낫게 하고, 내 평생 선생님으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거 우리는 이야기로 들으니까 재밌고 좋지요. 실제 그렇게 화를 낼 때 저 같으면 그냥 거기서 그 성자처럼 빌 사람 있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정도 되면 모르겠습니다. 성자는 그런 분들이 성자입니다. 그게 양 치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속을 다 뒤집어도 그래야 양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집사라 그러면 아무 이유없이 때리고 침을 뱉어도 화내지 않고 내가 잘못했는갑다 해야지 집사가 된다고하지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양치고 밭 가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몸이 아프면 자기도 그렇게 짜증이 납니다. 고쳐져야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짜증이 안 나야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해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어야 그게 되는 겁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밭 갈고 양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몇 분들은 충성이라는 것이 해당이 될까. 자기가 있어야 그러는 거지요. 자기 이에 타산 두고 혈육을 두고 세상 목적을 다 바치는 건 욕심이 아닙니다. 아무 상관 없는, 그러니까 원하니까 그분은 원하시는 게 나를 고치는 거시이니까, 욕심 하나 빼보려고 어떤 젊은 성녀가 정욕이 불타니까 안되겠냐 데굴데굴 굴렀답니다. 피투성이 되고 나니까 정욕이 빠져나가덥니다. 그것이 밭가는 겁니다. 그만큼 자기 고치는 게 어렵다는 거지요.
마지막 성자들 성녀들은 밭 갈고 양쳤는데 그렇게 했는데도 내가 한 게 아니구나. 주님이 하셨구나. 예비하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밭 갈고 양 치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우냐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고는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9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무익한 종을 생각해봅니다. 오늘 밤에 같은 말씀이라고 하지만은 말씀의 실상을 두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신앙 생활은 순서적으로 그 중요성의 순위보다 진행해 나가는 순서적으로 먼저가 지식입니다. 믿음이란 신앙생활의 이름이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인데 일단 알아야 그 다음에 행할 수 있는 겁니다. 지식이 중요하고 실제로 신앙 생활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신앙생활이 이어져야합니다. 신앙이란 실제로 하는 겁니다. 추워서 벌벌떨고 있는 사람에게 입을 것 먹을 걸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지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겁니다. 추운 날씨에 오리털 파카가 있어도 안 따뜻해지는 겁니다. 그게 실행히라고 합니다. 행함이라는 것이 지식이 잘못되면 잘못 행하게 됩니다. 안 행하는 것보다도 못하게 됩니다. 안 행하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 새로 해야하니까, 설계도가 있는데 돈이 아까워서 마음이 안 들어서 설계도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대충 지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집은 부실 공사라서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러면 새로지어야합니다. 그러면 다 걷어내는데 비용이 들고 이중으로 들어갑니다.
사람의 믿음의 잘못된 행위가 그렇습니다. 잘못 믿고 살아나가면 사람의 행위라는 것은 연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연습은 몸에 익어지는 걸 그렇게 됩니다. 몸에 잘못 익어지는 걸 악습이라고 합니다. 잘못 알아서 잘못 믿음생활하면은 그게 진짜인줄 알고 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첫 출발은 말로 못할 만큼 중요합니다. 바로 배워서 다른 지식 가지는 것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지식 가지고 있으면 잘못된 행동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천국에 맞지 않는 탈선된 생활 행동이 이어지고 마음에 박혀 들어가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그래서 지식이 중요합니다. 첫째 순서적으로 지식이 중요하고, 그런데 우리 공회 교인들처럼 잘 배워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실행에 따라가지 않으면 이것은 아무리 지식 가지고 있어도 실제가 없는 겁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 겁니다. 그래서 음식을 차려주고 먹어라 안 먹으면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니까 안 먹고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 음식 차려준 사람이 애타서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공회의 교인들, 저를 포함해서. 잘 배워놨는데 실행해나가면 참 유리한 사람이 되는데 지식은 가졌는데 실제가 이루어지지않는 것이죠. 장비도 자재도 다 갖다놨습니다. 자재가지고 집을 지으면 됩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장비 좋네, 비싸네, 최신식이네, 자제도 최고급이네, 오늘의 말만하고 있고 건설을 안하는 거지요. 100년 쳐다봐도 집은 안 지어지는 겁니다. 그게 실행에 없는 겁니다. 구원이 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이게 지식이고 그 다음이 실제 생활이 되어야 믿음이 되고 신앙 생활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 첫째 그리고 실행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한 번 하고 말고 하루 하고 말고 이틀 하고 말고 그래서 뭐가 또 필요하겠습니까. 인내가 필요하고 계속이 필요한 거지요. 계속 뛰어다닙니다. 옆을 볼줄 모르고 우리 교회 교인들이 그런 분들 많습니다. 앞만 봅니다 옆을 못 봅니다. 그럴 때 절제가 필요한 겁니다. 자기 혼자 달려갑니다. 아내도 자녀도 이웃도 모르겠고 혼자만 달려갑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뭡니까. 형제 우애가 필요한 겁니다. 믿음으로 살다보니까 하면 되지 다 던져버리고 집회가서 애가 예배시간에 운다고 잡아놨던지 애 소리 때문에 예배를 못 드리니까 그러니까 장로님이 애를 없는 데 가서 교육을 시키죠하면 대들어버립니다. 그러면 여기 말씀은 좋은데 별로라고 가버렸답니다. 그 사람에게 덕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면 절제도 가지고 인내도 가지고 여덟가지를 구비하게 되는 겁니다.
이리저리 치우쳐버리면 하나 보고 달려가는 건 쉽습니다. 물을 지름이 30센치 즈음 되는 통에 채워놨다가 쏟아버리니까 반도 안 차버립니다. 5리터 되는 높이의 물을 좁은 통에 있는데에 부으니까 이거 밖에 안됩니다. 그게 치우치는 겁니다. 그래서 종과 행이라는 것이 있지요. 앞으로 가는 거고, 옆으로 가는 걸 말합니다. 좌우 전후좌후 다 보면서 살피면서 하는 게 눈치보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살펴서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아니하고 세상 말에 과유불급, 신앙에도 해당되는 겁니다. 넘어가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넘치고 넘치도록 마귀는 더해라 더해서 치우치게 만들어버립니다. 실제 그대로 행동을 해야 바른 지식 가지고 행동해야 실증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걸 건설구원이라고 하고 성화구원이라고 그러고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건설은 행위 구원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참 중요하게 해야합니다.
실제로 행하기는 행해도 잘못해도 더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오늘 밤 말씀에서 우리는 존재적으로 주의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영장의 찬미의 목적으로 지음 받은 곳입니다. 말하니까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지만은 말씀이 얼마나 큰 말씀인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광의 찬미를 목적으로 지음받은 게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만물과 다르게 지어졌습니다. 인체보다 더 신비한 건 마음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입니다. 사람은 인격이라는 것도 묘한 겁니다. 참 심오하고 묘한 것이 사람의 인격입니다. 영광의 찬미를 위해서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같이 비교할 수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지음을 받았고 사람이 미혹받아서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탈선해서 영원히 지옥 형벌받는데 거기서 건지시려고 다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셨다.
마땅히 우리는 주를 위해서 주에 의해서 다 충성하는 것이 당연한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일꾼한테 돈주고 일하면 20만원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으십시오 그러면 수고했습니다하고 인사하지만 돈주고 하니까 의미 없습니다. 돈은 피와 땀이라는 겁니다. 내 돈은 피와 땀입니다. 저도 그만큼은 못 느끼는데 교회 연보는 피와 땀이라고 합니다. 교회들의 연보가 피와 땀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신풍 가면 할머니 집사님들이 시장 길바닥에 앉아서 나물 캐다 팔고 하루종일 벌벌 떨면서, 여름은 볕에 그러면서 연보합니다. 그거 보는 목사는 벌벌 떨립니다. 그러니까 자기 피땀을 그랬으니까 바꾸는 거니까 수고했다고 하지만 거래니까. 그런데 우리는 종이라는 것은 그런데 애초에 주인이 값을 많이 주고 사왔기 때문에 주인의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하는 겁니다. 종은 출퇴근이 없는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주의 값에 팔린 종이므로 주를 위해서 내 전부를 바쳐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걸 느끼는 게 성경의 감동입니다. 그것이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그걸 부족할지라도 이렇게 애를 쓰고 살아나가는 게 실행이 되는 겁니다. 그게 주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할 일이 뭐냐, 밭을 갈고 양을 치는 게 할 일입니다. 이 나라에 이 지방에 거기만 그렇지 그러지 않으냐 그 시대는 전부 종이 있었고 종이나 노예 제도란 미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고 파는 거, 종이 주로 하는 일이 밭을 갈고 양을 치는, 바닷가에서는 하는 게 일이겠지요. 농사고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시대고 종된 우리들이 되는 겁니다. 주의 것이 되고 주의 우리된 할 일이 뭐냐, 평생을 통해서 주를 위해서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밭을 가는 거다.
밭을 가는 게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자기를 고쳐서 빗고 깎고 다듬어서 고쳐나가는 겁니다. 말을 고쳐야하고 행동을 고쳐야하고 심보를 고쳐야하고 자존심을 고쳐야하고 이걸 고쳐야 사람이 고쳐지는 겁니다. 또 복음 운동은 양치는 복음 운동은 내가 다른 사람의 신앙의 구원에 유익을 주는 것이 복음 운동입니다. 그런데 오늘 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밭 가는 일이 어떤 것이냐, 밭 갈아 보신 분, 50세 이상 제외하고, 60세 이상 제외하고 밭 갈아 보신 분, 전 집사님 안 갈아보셨죠. 밭이 있습니까. 아시겠네요. 밭 가는 거 밭 가는 걸 노가다 중에서 삽질 하는 거, 삽질 그거 하는 게 쉬운 거 같은데 흙이나 모래나 자갈 떠서 차에 실는 게 몇 번 하고 나면 허리가 절단나 버립니다. 북한에서 70년대 운동 중에서 천리마 운동이라고 있습니다. 천리마,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입니다. 부산서 서울까지 하루에 간다는 거지요. 불가능 한데 그렇게 붙이고 노동 강화 운동 했습니다. 천삽 들고 허리펴기 운동, 허리가 절단나는 겁니다. 죽는거죠. 삽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벽별 보기 운동.
땅을 팔려면 경운기로 다 하고 소가 다 하는 겁니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서 지긋지긋해서 도망친겁니다. 그러다가 부자가 되어버렸죠. 밭가는 게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산에 가서 주인 없는 산을 자기 밭으로 만들려면 온 식구들이 산에 새벽에 올라가서 호미 가지고 나무 가지고 드러내고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겁니다. 그만큼 밭 갈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밭 가는 게 무엇이라고요, 회개, 그만큼 어렵다라는 겁니다. 자기를 고치는 것, 밭을 가는 것은 단단한 땅을 맨땅이 이 동네 어디있습니까. 다 아스팔트 깔아놓으니 이 동네에 없지요. 파봐야 이제 압니다. 삽이 튑니다. 얼마나 단단한지. 그걸 다 갈아내야합니다. 회개하는 것은 요소, 지식은 없고 욕심, 주관 감정, 자존심, 위신, 체면, 못된 속아지 그거 가지고 고치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거 뽑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고치는 게 밭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고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그런 겁니다. 밭을 가는 것
오죽하면 북한에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우리도 새마을 운동 붙여서 했지요. 지금 말씀 드리는 건 밭 가는 건데 회개운동, 자기를 고치는 겁니다. 몸에 잘못 익어진 것은 잘못 익어진 것, 눈으로 보는 거 귀로 듣는 것, 여기 혹시 주일 날 텔레비 보는 가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주일 날 그런 가정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텔레비는 안 보는데 휴대폰도 안 보시는지. 휴대폰 가지고 성경읽고 연구소 홈페이지 문답 이런 건 괜찮습니다. 게임하고, 그거나 텔레비전 보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요즘 새벽기도가 비어서 보니까 원인이 밤에 휴대폰 본다는데 다 안 좋은 겁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악습이라고 합니다. 휴대폰에서 손 못 떼고 눈 못 떼는 겁니다. 고쳐야 회개가 되는 것이고 뜻이 되는 겁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떼보지요. 회개란 그게 어렵습니다. 주여 잘못했습니다 해봐야 회개 아닙니다. 실제 고쳐야 회개가 되는 거지요. 구원이라는 건 실제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뭐가 있습니까. 천국에 영생은 없는데 천국을 차지한 그게 재벌 되는 것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예수 믿는 겁니다. 복음 운동은 얼마나 어려우냐, 설교록에 나오는 예화인데 다른 사람 구원하는 겁니다. 성자가 있습니다. 이 성자가 모두 옛날에 문둥이들을 많이 상대해서 적대도 하고 목욕을 시켜준답니다. 이분이 길을 가다가 문둥이를 만났습니다. 집에 데려다가 방에 모셔다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씻어줬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죠. 그런데 특혜가 계속 되면 권리가 됩니다.
그래서 하도 정성들여서 목욕시켜주니까 내가 이 사람에게 보배인가보다. 그래서 씻겨주지 안 그랬는가. 배짱을 부립니다. 그래도 이 성자는 정성들어 목욕 시키는데, 어느 하루는 주일일 하다가 끝나버렸습니다.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나 안 씻어 그러는 겁니다. 이 성자가 신앙 어린 사람이 그러니까 내가 미안합니다 사정사정을 해도 안 씻는 겁니다. 큰소리 팡팡 치고, 이 성자가 이 문둥이 혹시나 소홀히 했나 싶어서 기도하다가 회개하고 그때 씻겠다고 하는데 그걸 싹 낫게 하고, 내 평생 선생님으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거 우리는 이야기로 들으니까 재밌고 좋지요. 실제 그렇게 화를 낼 때 저 같으면 그냥 거기서 그 성자처럼 빌 사람 있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정도 되면 모르겠습니다. 성자는 그런 분들이 성자입니다. 그게 양 치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속을 다 뒤집어도 그래야 양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집사라 그러면 아무 이유없이 때리고 침을 뱉어도 화내지 않고 내가 잘못했는갑다 해야지 집사가 된다고하지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양치고 밭 가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몸이 아프면 자기도 그렇게 짜증이 납니다. 고쳐져야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짜증이 안 나야 회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해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어야 그게 되는 겁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밭 갈고 양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몇 분들은 충성이라는 것이 해당이 될까. 자기가 있어야 그러는 거지요. 자기 이에 타산 두고 혈육을 두고 세상 목적을 다 바치는 건 욕심이 아닙니다. 아무 상관 없는, 그러니까 원하니까 그분은 원하시는 게 나를 고치는 거시이니까, 욕심 하나 빼보려고 어떤 젊은 성녀가 정욕이 불타니까 안되겠냐 데굴데굴 굴렀답니다. 피투성이 되고 나니까 정욕이 빠져나가덥니다. 그것이 밭가는 겁니다. 그만큼 자기 고치는 게 어렵다는 거지요.
마지막 성자들 성녀들은 밭 갈고 양쳤는데 그렇게 했는데도 내가 한 게 아니구나. 주님이 하셨구나. 예비하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밭 갈고 양 치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우냐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고는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