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수밤
김동민2025-11-26조회 25추천 1
2025년 11월 26일 수밤
찬송: 154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라는 제목입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다윗과의 관계, 신하로써 왕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을 하고 건국의 공식이고 구국의 공신이고 형제로 말하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어려운 관계 쉽지 않은 입장이고 공을 많이 세웠는데 마지막에 어쩌다가 실패가 되어졌을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요. 토사구팽, 유명한 말이니까 같이 해 봅시다. 학생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뜻입니다. 토끼를 잡을 때는 이용하다가 이후 삶아먹는, 사람을 버릴 때 쓰는 말입니다. 한신이라는 장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군이 마지막에 자기 왕에게, 유방이지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을 아주 비참하게 사형을 시켜버립니다. 세상에서 아마 우리 나라에도 그런 게 있었죠. 태종 이방원이지요. 공신들 하나 하나 다 제거를 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 밑에 자기 아들 때 태평성대를 이뤄야하는데 태종 이방원이 아주 잔인하게 했지만 뒤에가서 보면 태종 이방원이 누구 아버지인지 압니까. 아들이 세종대왕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공을 세우고 그 공을 가지고 권력을 누릴 그런 사람들을 없애버립니다. 기반을 닦아 주는 거지요. 그런 일은 세상에 흔하게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압의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신하가 왕이 보고 토사구팽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윗과 요압의 관계, 조카였지요 요압이. 같은 유다 지파고 같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나라를 내세우고 생사거락을 함께한 그런 사람이 다윗과 요압의 관계고, 그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건 누구나 다 자주 쓰는 말, 요압의 충성과 실패를 하는 것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고도 마지막에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보를 하는 겁니다. 다윗의 집안, 군신 관계 그런 관계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여러 가지가 되어서 충성이라는 그런 일이 들어갈 일은 관계로 맺어지게 된다면, 말하자면 지금 임금 신하 이런 건 없지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으면 충성하는 게 있는 것이고 군대가면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고용 관계 직원으로 들어가면 충성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 것이 원인 근거가 되어서 그렇게 되는 건데 충성이라는 그런 표현, 관계에 있어서는 이거는 권력가진 이런 관계에서 정부 관계에서 고용으로 맺어져도 직원을 충성하는 의미가 다르지만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과 요압의 관계는 군신의 관계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주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군신의 관계라면 신하고 임금이면 주인이고 종이면 신하로써는 충성하는 게 당연한겁니다. 위치적으로 그렇고 당연히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런데 충성을 하되 그 충성이 이제 요압처럼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실패되는 그런 결론을 맺게 되는 건데, 주님과 우리 관계 주님과 우리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생각해보는 겁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없는 가운데에서 만들어서 있게 된, 나의 없는 데에서 우리를 만드셨으니까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고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셨으니까 피로 값주고 사신 이런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주종의 관계 군신의 관계가 되면 자기로써 충성을 하는 게 당연한 도리고 그 충성이 바로 될 때 충신이 되는 것이고 주인 관계가 바로 맺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요압이라는 사람은 충성을 했지만 순수하지 않은, 네 가지를 생각해
찬송: 154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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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의 충성과 실패라는 제목입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다윗과의 관계, 신하로써 왕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을 하고 건국의 공식이고 구국의 공신이고 형제로 말하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어려운 관계 쉽지 않은 입장이고 공을 많이 세웠는데 마지막에 어쩌다가 실패가 되어졌을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요. 토사구팽, 유명한 말이니까 같이 해 봅시다. 학생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뜻입니다. 토끼를 잡을 때는 이용하다가 이후 삶아먹는, 사람을 버릴 때 쓰는 말입니다. 한신이라는 장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군이 마지막에 자기 왕에게, 유방이지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을 아주 비참하게 사형을 시켜버립니다. 세상에서 아마 우리 나라에도 그런 게 있었죠. 태종 이방원이지요. 공신들 하나 하나 다 제거를 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 밑에 자기 아들 때 태평성대를 이뤄야하는데 태종 이방원이 아주 잔인하게 했지만 뒤에가서 보면 태종 이방원이 누구 아버지인지 압니까. 아들이 세종대왕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공을 세우고 그 공을 가지고 권력을 누릴 그런 사람들을 없애버립니다. 기반을 닦아 주는 거지요. 그런 일은 세상에 흔하게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압의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신하가 왕이 보고 토사구팽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윗과 요압의 관계, 조카였지요 요압이. 같은 유다 지파고 같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나라를 내세우고 생사거락을 함께한 그런 사람이 다윗과 요압의 관계고, 그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건 누구나 다 자주 쓰는 말, 요압의 충성과 실패를 하는 것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고도 마지막에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보를 하는 겁니다. 다윗의 집안, 군신 관계 그런 관계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여러 가지가 되어서 충성이라는 그런 일이 들어갈 일은 관계로 맺어지게 된다면, 말하자면 지금 임금 신하 이런 건 없지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으면 충성하는 게 있는 것이고 군대가면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고용 관계 직원으로 들어가면 충성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 것이 원인 근거가 되어서 그렇게 되는 건데 충성이라는 그런 표현, 관계에 있어서는 이거는 권력가진 이런 관계에서 정부 관계에서 고용으로 맺어져도 직원을 충성하는 의미가 다르지만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과 요압의 관계는 군신의 관계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주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군신의 관계라면 신하고 임금이면 주인이고 종이면 신하로써는 충성하는 게 당연한겁니다. 위치적으로 그렇고 당연히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런데 충성을 하되 그 충성이 이제 요압처럼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실패되는 그런 결론을 맺게 되는 건데, 주님과 우리 관계 주님과 우리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생각해보는 겁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없는 가운데에서 만들어서 있게 된, 나의 없는 데에서 우리를 만드셨으니까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고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셨으니까 피로 값주고 사신 이런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주종의 관계 군신의 관계가 되면 자기로써 충성을 하는 게 당연한 도리고 그 충성이 바로 될 때 충신이 되는 것이고 주인 관계가 바로 맺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요압이라는 사람은 충성을 했지만 순수하지 않은, 네 가지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