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8일 금밤
김동민2025-11-28조회 34추천 1
2025년 11월 28일 주일 오후
찬송: 91장, 92장
본문: 마태복음 25장 19절 -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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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의 충성과 실패를 생각해봤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최츤근이었습니다. 나라를 세울 때부터 그 전부터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부터 같이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였고, 가장 가까운 신복이기도 했고 나라 세울 때 아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세웠고 지킨 건국과 구국의 공신이 요압이었습니다. 충신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는데 가장 충신이었는데 어짜다가 실패를 하게 되었는가. 외부적으로 많은 충성을 했는데 그 내면에 속을 들여다보니까 속이 잘못되었습니다. 호박 수박 껍질 두꺼운 그런 과일들은 어지간히 썩어도 겉이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표가 날 정도면 못먹을정도가 되고, 사과나 감이나 겉과 속이 같이 짓무르고 표가 나는데 껍질이 두꺼운 건 표나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도 살펴야하지만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중심, 말의 동기, 목적, 그래서 사람을 상대할 때는 특히나 구역장 집사님들 식구를 거느린 반사 선생님들은 자기 맡은 식구를 상대할 때 좋은 뜻으로 심리를 살펴야합니다. 그 심리를 그래서 부모님이 또 선생님이 아이들의 심리를 모르면 바로 지도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의 모든 면에 잘 알아야하고, 탈선의 길도 알아야하고 방법도 알아야하고 좋아하는 것도 알아야하고 싫어하는 것도 알아야하고 알아야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 반사 선생님도 구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현장이 중요한데 저는 떨어져있어서 듣고 소식만 듣고 그러는데 현장에서 다니면서 접촉하면서 자기 식구들의 심리와 형편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네 양떼를 부지런히 살펴라, 그게 말하자면 자의 맡은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는 겁니다. 겉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무리 부드럽고 잘해도 행동도 참 잘해도 그러나 그 속이 잘못되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됩니다. 요압이 그런 경우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이고 행동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속마음입니다. 마음을 숨기고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일본하고 중국이 많이 부딪히는 거 같은데 정치학자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은 힘을 드러내고 있고 중국은 빨리 드러냈다고 합니다. 등소평 때 그 지향하는 방향이 도강양회 그렇지요. 힘을 숨기라는 겁니다. 드러내지 말아라. 힘을 숨기고 속으로 실력 길러라고 합니다. 지금 주석 시진핑은 너무 빨리 힘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일찍 쇠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회사도 개인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을 때 그게 튼튼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처럼. 반대가 되면 허풍쟁이 되고 마는 거지요.
그래서 요압이라는 사람은 많이 충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속이 잘못되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잘못 되어있었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신앙적으로도 잘못되 있었고 속으로 다 병이 들어있었던 거지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의 충성의 모든 것은 원동이,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였습니다. 뭐 때문에 그게 원인입니다. 모든 일은 다 동기가 있는 거지요. 동기 원인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이게 요압의 내면이었고 방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바른 동기, 바른 목적, 바른 방편은 하나님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그렇게 되어야 중심 받은 내면이 되는데 이게 정반대로 되어지고 그게 속이 잘못되니까 전부다 잘못되고, 그렇게 충성했지만 배신하고 비참한 결과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걸 마태복음 7장 말씀과 연결하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갈 것이 아니다. 복음을 듣고 믿고 믿으로 인정하면 구원받는다는 게 성경입니다. 예수 이름 예수를 인정하면 천국간다는 게 성경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인생은 끝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마지막을 보면서 삽니다. 일반적으로는 정해진 수명이 있으나 모든 사람이 다 100세를 사느냐, 60에 50에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갈 때 끝을 보면서 출발합니다. 시험공부하는 사람들이 뭘 보고 시험공부하나요. 시험치는 그날 보면서 하지요. 시험치는 그날보면서 시험공부하는 겁니다. 한 달 후든 두 달 후든, 그래서 그날의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종말,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주신 기회가 같고 그날 모든 사람들에게 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어떻게 오느냐, 임신은, 아기 가진 엄마가 해산 시간이 오는 것처럼 애기를 베었으면 해산을 해야하는데 요즘은 대강 예정일 알잖습니까. 그런데 대충이라 언제올지 모릅니다.
주님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때에 그렇게 갑자기 오는데 오는 그날에, 그날 오면은 모든 게 다 끝이 나버렸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가지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많은 권능을 했습니다. 영접해주셔야지요 그럴 때 그날의 많은 사람이, 우리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가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설교도 했고 기도해서 병도 고쳤고 사람 변화도 시켰고 봉사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를 영접해주옵소서. 밝히 말하되, 도무지 모르는 자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물러나라.
예배 생활 잘 지키고 연보 많이하고 죽도록 충성했는데 마지막 그날에 가보니까 나는 모른다는 거지요.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기회가 남아있으면 고치면 되는데 끝날입니다.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기도했는데 예배를 드렸는데 병도 많이 고쳤는데 권능을 행했는데 불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무엇이 합법입니까.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만 하늘의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라야 들어간다. 그걸 제외하면 다 불법이라고 이겁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어야 충성이고 의가 되는 것이지 그 뜻이 맞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모르신다. 이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오늘 말씀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여기 보면 충성이 무엇인가, 충성이 무엇인가. 비유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라고 합니다.
달란트라는 말이 탈렌트 그런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더만요. 각 사람에게 달란트라는 것은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 분량의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선천적인 요소들 그런 게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디 가면서 종들에게 소유를 맡겼습니다. 그 각각 재능대로 그 말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대로 그 말입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한 종이에게는 몇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인데 오랜 후에 주인이 갔다와서 회계, 계산을 합니다. 결산을 해보자.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제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지요. 다섯 달란트를 장사해서 남겼습니다. 두 배니까 100퍼센트지요. 받은 분량을 다했다는 겁니다. 그만하면 100점입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몇 가지 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착하다, 충성했다. 요압은 이 충성이 안됐습니다.
겉으로는 충성했는데 착하지 않았습니다. 착하다는 말은 싹싹하고 이게 아닙니다. 착하다는 말을 한문 글자로 하면 이선유 선자가 착할 선자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라 그 말입니다. 착하다 그 말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 그리고 전부 다해서 다섯 달란트 남겼으니까 너 전부를 다했다. 백 목사님의 막내 사위 성함이 서영준 목사님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을 하고 사법고시 1차 합격 했고 2차 시험은 치지 말라고 해서 안 쳤고 내려와서 우동장사 하시고 그러다가 중간반 중간하시다가 공식적으로 서부교회 후임으로 정해놨던 분입니다. 그런데 청주 교회 가서 교회 부흥을 하고 목사님이 다시 거기 가는 바람에 교회를 아주 크게 부흥 시키던 중에 너무 과로해서 경북 청도에 가서 한주간에 쉬었다 와라고 했는데 심장마비로 가셨습니다. 장례식 설교할 때 이걸 교독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참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지요. 그런 분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 달란트 가져왔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에 대한 칭찬과 두 달란트 남긴 사람에 대한 칭찬이 같습니다. 그러면 네 달란트를 남겼으면 칭찬이 달라졌을겁니다. 두 달란트 이상을 못 넘깁니다.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은 전부를 다해야 충성이 되고 두 달란트 된 사람은 그 정도만 충성하면 됩니다. 다섯보다 둘보다 하나 받은 사람은 하나만 더 만들면 됩니다. 가장 쉽습니다. 그런데 이 한달란트를 가져다가 땅속에 파뭍어놨습니다. 주인이 와서 너는 어떻게 했냐 하니까 여기 있습니다. 왜 장사 안했냐, 주인은 뿌리지 않고 거두고 모으는 그런 분인 줄 알아서 그냥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랬던이 이 종은 제멋대로 주인을 판단한 겁니다. 주인의 말씀에게 순종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판단한 그게 요압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하나님을 제 생각대로 생각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실상을 바로 알아야하는 것이지 자기대로 하는 건 아는 게 아닙니다. 시험을 쳤는데 답을 다 적었습니다. 50문제 답을 다 적었습니다. 답안지 받아보니까 0점입니다. 내가 아는 답은 이건데, 100날 해봐야 0점입니다. 정답을 적어야지. 많은 교회 믿는 사람들이 신앙을 알기를 그렇게 압니다. 요압처럼 제 대로 압니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지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선된 종과 반대입니다. 네가 나를 그렇게 알았더냐, 차라리 은행이라도 맡겨놨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거 아니냐. 다른 사람에게 줬으면은 남겼을 거 아니냐. 사람이 자기 받은 분량을 쓰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자기 재능 자기 소유 그런 걸 제 거라고 하지 않고 제멋대로 써버리면 도둑질이 됩니다 십일조 안 내는 것만 도둑질이 아닙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제멋대로 알아서 쓰면 전부 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한 달란트 더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뭔가 더 도움되는 걸 해야지, 땅속에 뭍어놨으니까 다 없어지겠지요. 그래서 다른 종류의 한 달란트를 뺏어버려라,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많은 사람은 많아지고 없는 사람은 없어지는 걸,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다다익선의 도입니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틀린 주장이 아닙니다. 틀린 것은 근본을 부인하니까 틀린 것이지 진화 그 자체는 성경적입니다. 진화의 이론 논리는 맞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짐승도 식물도 안 쓰면 퇴화되듯이 사람의 것은 도태됩니다. 쓰면 점점 좋아지는 게 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힘을 다해서 다 남기니까 전부 다 나왔습니다. 한 달란트는 그거조차도 안 쓰니까 빼앗겨버렸습니다.
이게 본문의 말씀인데 요압은 평생 충성했는데 스스로 마지막에 배신했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내면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충성은 해야합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라고 했지요. 우리란 존재 나라는 존재 원래 없었는데 있게 된 존재가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주인입니다. 존재 자체의 주인이시고 주인을 배반하고 내가 주인 되려고 하다가 죽었는데 주인되신 하나님이 살아나셔서 주의 것이 되는 겁니다. 1차적으로 2차적으로 주에게 팔린 것이 됩니다. 군신 관계도 되고 주종관계도 됩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게 마땅하고 당연합니다. 충성 안 하면 불충이 되는 겁니다. 충성 충성하니까 거리감이 있을 수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냐, 다른 말로 하면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충성입니다. 순종하는 중심이 뭐냐, 착하고 충성된 종,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건지 그거지요.
충성은 어디까지가 되는 것이냐, 다섯 달란트에서 다하게 됩니다. 두 달란트는 두 달란트를 하게 됩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의 정도가 아는 방법은 자기로써 하는 방법을 하면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헛되이 보내지 않고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쉴 수도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지만은 공부를 위해 쉬는 재충전이고 공부해야할 시간에, 그때 놀러다니고 게임이나 하고 오락이나 하고 잠이나 자고 꾸미기나 하고, 내용적으로 알차게 힘을 다해서, 말하자면 공부할 때 수업시간에 자기 마음을 다 드려서 이것도 말할려니까. 초등학교 4학년, 4학년이죠. 학예발표회라고 연습을 해서 누가 동영상을 보내줬는데 남학생 여학생이 섞여서 가수들 춤추는 발광을 하는데 그걸 잘한다 가르칩니다. 그 정도면 고학년인데, 생발광을 하는데 그걸 학예발표회라고 자랑스럽게 되었습니다. 속에서는 못보내겠구나 싶었는데 그런 거 뭐하러 가르칩니까. 밥이 생깁니까 돈이 됩니까 떡이 됩니까. 아이들 인성에 도움이 됩니까 교육에 도움이 됩니까 실력에 도움 됩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작귀라고 하는데 그걸 가르치는 게 선생들 머리 속에 뭐 같은 게 들어있으니까. 다는 아닙니다. 못보내겠구나 싶습니다.
그짓하는 거 보고 나니까 못하겠덥니다. 수업은 잘 들어야합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그거 남학생이면 시키면 이런 거 안합니다. 하고 뛰어나와버려야하는데 그런 사람 되면 잘난 인물입니다. 그러면 안합니다 하고 그러면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걸 필요할 것이 없는 것이고, 배운 걸 읽고 쓰고 하는 겁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하다보면 초등학생 시험도 안치죠. 시험 칩니까. 그러니까 실력을 알 수가 있나, 중학생 때 시험 쳐보면 알겠지요. 그러면 결과가 나옵니다. 자기로써 힘껏 마음과 정성을 다 들여서 했는데 시험을 쳤는데 90점이면 그게 자기 분량입니다. 더 노력을 해봅니다. 그러면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면 보면 알겠죠, 60점이면 학교 성적이 인생을 좌우합니까. 학교 우등생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드시는 아닌데, 성적 좋다고 두 번째고 자기 정신이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열심히 하니까 다섯 달란트 남았고 죽도로 했는데도 두 달란트 밖에 못했습니다. 잘했다 착하다. 그게 자기 달란트 분량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래서 복권을 산다 주식을 한다 100프로 1000프로 다 망합니다. 차근차근 쌓아나가면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땀을 다른 말로 하면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한이라고 하는데 그거 말고, 다른 말로 말하면 노력이라고 합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게 충성입니다. 신앙생활도 자기로써 다해보면 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예배 드리고 깨달아지는대로 실행하다보면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성적으로 결과하듯이 그런 거 절약하면 신앙생활 그렇게해 나가면 중심과 노력을 보시고 역사하신 역사를 보십니다.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주신 분량 다하면 충성하게 되는 겁니다. 충성하실 때 진짜 충성은 하나는 착하고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인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이게 착한겁니다. 아무리 충성해도 이것만 빠지면 요압이 되는 겁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착한 우리 되어야하고 충성한 우리가 되어야겠다.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1장, 92장
본문: 마태복음 25장 19절 - 2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를 생각해봤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최츤근이었습니다. 나라를 세울 때부터 그 전부터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부터 같이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였고, 가장 가까운 신복이기도 했고 나라 세울 때 아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세웠고 지킨 건국과 구국의 공신이 요압이었습니다. 충신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는데 가장 충신이었는데 어짜다가 실패를 하게 되었는가. 외부적으로 많은 충성을 했는데 그 내면에 속을 들여다보니까 속이 잘못되었습니다. 호박 수박 껍질 두꺼운 그런 과일들은 어지간히 썩어도 겉이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표가 날 정도면 못먹을정도가 되고, 사과나 감이나 겉과 속이 같이 짓무르고 표가 나는데 껍질이 두꺼운 건 표나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도 살펴야하지만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중심, 말의 동기, 목적, 그래서 사람을 상대할 때는 특히나 구역장 집사님들 식구를 거느린 반사 선생님들은 자기 맡은 식구를 상대할 때 좋은 뜻으로 심리를 살펴야합니다. 그 심리를 그래서 부모님이 또 선생님이 아이들의 심리를 모르면 바로 지도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의 모든 면에 잘 알아야하고, 탈선의 길도 알아야하고 방법도 알아야하고 좋아하는 것도 알아야하고 싫어하는 것도 알아야하고 알아야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 반사 선생님도 구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현장이 중요한데 저는 떨어져있어서 듣고 소식만 듣고 그러는데 현장에서 다니면서 접촉하면서 자기 식구들의 심리와 형편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네 양떼를 부지런히 살펴라, 그게 말하자면 자의 맡은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는 겁니다. 겉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무리 부드럽고 잘해도 행동도 참 잘해도 그러나 그 속이 잘못되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됩니다. 요압이 그런 경우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이고 행동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속마음입니다. 마음을 숨기고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일본하고 중국이 많이 부딪히는 거 같은데 정치학자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은 힘을 드러내고 있고 중국은 빨리 드러냈다고 합니다. 등소평 때 그 지향하는 방향이 도강양회 그렇지요. 힘을 숨기라는 겁니다. 드러내지 말아라. 힘을 숨기고 속으로 실력 길러라고 합니다. 지금 주석 시진핑은 너무 빨리 힘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일찍 쇠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회사도 개인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을 때 그게 튼튼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처럼. 반대가 되면 허풍쟁이 되고 마는 거지요.
그래서 요압이라는 사람은 많이 충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속이 잘못되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잘못 되어있었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신앙적으로도 잘못되 있었고 속으로 다 병이 들어있었던 거지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의 충성의 모든 것은 원동이,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였습니다. 뭐 때문에 그게 원인입니다. 모든 일은 다 동기가 있는 거지요. 동기 원인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이게 요압의 내면이었고 방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바른 동기, 바른 목적, 바른 방편은 하나님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그렇게 되어야 중심 받은 내면이 되는데 이게 정반대로 되어지고 그게 속이 잘못되니까 전부다 잘못되고, 그렇게 충성했지만 배신하고 비참한 결과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걸 마태복음 7장 말씀과 연결하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갈 것이 아니다. 복음을 듣고 믿고 믿으로 인정하면 구원받는다는 게 성경입니다. 예수 이름 예수를 인정하면 천국간다는 게 성경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인생은 끝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마지막을 보면서 삽니다. 일반적으로는 정해진 수명이 있으나 모든 사람이 다 100세를 사느냐, 60에 50에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갈 때 끝을 보면서 출발합니다. 시험공부하는 사람들이 뭘 보고 시험공부하나요. 시험치는 그날 보면서 하지요. 시험치는 그날보면서 시험공부하는 겁니다. 한 달 후든 두 달 후든, 그래서 그날의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종말,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주신 기회가 같고 그날 모든 사람들에게 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어떻게 오느냐, 임신은, 아기 가진 엄마가 해산 시간이 오는 것처럼 애기를 베었으면 해산을 해야하는데 요즘은 대강 예정일 알잖습니까. 그런데 대충이라 언제올지 모릅니다.
주님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때에 그렇게 갑자기 오는데 오는 그날에, 그날 오면은 모든 게 다 끝이 나버렸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가지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많은 권능을 했습니다. 영접해주셔야지요 그럴 때 그날의 많은 사람이, 우리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가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설교도 했고 기도해서 병도 고쳤고 사람 변화도 시켰고 봉사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를 영접해주옵소서. 밝히 말하되, 도무지 모르는 자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물러나라.
예배 생활 잘 지키고 연보 많이하고 죽도록 충성했는데 마지막 그날에 가보니까 나는 모른다는 거지요.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기회가 남아있으면 고치면 되는데 끝날입니다.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기도했는데 예배를 드렸는데 병도 많이 고쳤는데 권능을 행했는데 불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무엇이 합법입니까.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만 하늘의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라야 들어간다. 그걸 제외하면 다 불법이라고 이겁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어야 충성이고 의가 되는 것이지 그 뜻이 맞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모르신다. 이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오늘 말씀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여기 보면 충성이 무엇인가, 충성이 무엇인가. 비유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라고 합니다.
달란트라는 말이 탈렌트 그런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더만요. 각 사람에게 달란트라는 것은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 분량의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선천적인 요소들 그런 게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디 가면서 종들에게 소유를 맡겼습니다. 그 각각 재능대로 그 말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대로 그 말입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한 종이에게는 몇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인데 오랜 후에 주인이 갔다와서 회계, 계산을 합니다. 결산을 해보자.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제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지요. 다섯 달란트를 장사해서 남겼습니다. 두 배니까 100퍼센트지요. 받은 분량을 다했다는 겁니다. 그만하면 100점입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몇 가지 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착하다, 충성했다. 요압은 이 충성이 안됐습니다.
겉으로는 충성했는데 착하지 않았습니다. 착하다는 말은 싹싹하고 이게 아닙니다. 착하다는 말을 한문 글자로 하면 이선유 선자가 착할 선자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라 그 말입니다. 착하다 그 말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 그리고 전부 다해서 다섯 달란트 남겼으니까 너 전부를 다했다. 백 목사님의 막내 사위 성함이 서영준 목사님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을 하고 사법고시 1차 합격 했고 2차 시험은 치지 말라고 해서 안 쳤고 내려와서 우동장사 하시고 그러다가 중간반 중간하시다가 공식적으로 서부교회 후임으로 정해놨던 분입니다. 그런데 청주 교회 가서 교회 부흥을 하고 목사님이 다시 거기 가는 바람에 교회를 아주 크게 부흥 시키던 중에 너무 과로해서 경북 청도에 가서 한주간에 쉬었다 와라고 했는데 심장마비로 가셨습니다. 장례식 설교할 때 이걸 교독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참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지요. 그런 분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 달란트 가져왔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에 대한 칭찬과 두 달란트 남긴 사람에 대한 칭찬이 같습니다. 그러면 네 달란트를 남겼으면 칭찬이 달라졌을겁니다. 두 달란트 이상을 못 넘깁니다.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은 전부를 다해야 충성이 되고 두 달란트 된 사람은 그 정도만 충성하면 됩니다. 다섯보다 둘보다 하나 받은 사람은 하나만 더 만들면 됩니다. 가장 쉽습니다. 그런데 이 한달란트를 가져다가 땅속에 파뭍어놨습니다. 주인이 와서 너는 어떻게 했냐 하니까 여기 있습니다. 왜 장사 안했냐, 주인은 뿌리지 않고 거두고 모으는 그런 분인 줄 알아서 그냥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랬던이 이 종은 제멋대로 주인을 판단한 겁니다. 주인의 말씀에게 순종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판단한 그게 요압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하나님을 제 생각대로 생각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실상을 바로 알아야하는 것이지 자기대로 하는 건 아는 게 아닙니다. 시험을 쳤는데 답을 다 적었습니다. 50문제 답을 다 적었습니다. 답안지 받아보니까 0점입니다. 내가 아는 답은 이건데, 100날 해봐야 0점입니다. 정답을 적어야지. 많은 교회 믿는 사람들이 신앙을 알기를 그렇게 압니다. 요압처럼 제 대로 압니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지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선된 종과 반대입니다. 네가 나를 그렇게 알았더냐, 차라리 은행이라도 맡겨놨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거 아니냐. 다른 사람에게 줬으면은 남겼을 거 아니냐. 사람이 자기 받은 분량을 쓰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자기 재능 자기 소유 그런 걸 제 거라고 하지 않고 제멋대로 써버리면 도둑질이 됩니다 십일조 안 내는 것만 도둑질이 아닙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제멋대로 알아서 쓰면 전부 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한 달란트 더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뭔가 더 도움되는 걸 해야지, 땅속에 뭍어놨으니까 다 없어지겠지요. 그래서 다른 종류의 한 달란트를 뺏어버려라,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많은 사람은 많아지고 없는 사람은 없어지는 걸,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다다익선의 도입니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틀린 주장이 아닙니다. 틀린 것은 근본을 부인하니까 틀린 것이지 진화 그 자체는 성경적입니다. 진화의 이론 논리는 맞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짐승도 식물도 안 쓰면 퇴화되듯이 사람의 것은 도태됩니다. 쓰면 점점 좋아지는 게 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힘을 다해서 다 남기니까 전부 다 나왔습니다. 한 달란트는 그거조차도 안 쓰니까 빼앗겨버렸습니다.
이게 본문의 말씀인데 요압은 평생 충성했는데 스스로 마지막에 배신했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내면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충성은 해야합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라고 했지요. 우리란 존재 나라는 존재 원래 없었는데 있게 된 존재가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주인입니다. 존재 자체의 주인이시고 주인을 배반하고 내가 주인 되려고 하다가 죽었는데 주인되신 하나님이 살아나셔서 주의 것이 되는 겁니다. 1차적으로 2차적으로 주에게 팔린 것이 됩니다. 군신 관계도 되고 주종관계도 됩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게 마땅하고 당연합니다. 충성 안 하면 불충이 되는 겁니다. 충성 충성하니까 거리감이 있을 수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냐, 다른 말로 하면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충성입니다. 순종하는 중심이 뭐냐, 착하고 충성된 종,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건지 그거지요.
충성은 어디까지가 되는 것이냐, 다섯 달란트에서 다하게 됩니다. 두 달란트는 두 달란트를 하게 됩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의 정도가 아는 방법은 자기로써 하는 방법을 하면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헛되이 보내지 않고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쉴 수도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지만은 공부를 위해 쉬는 재충전이고 공부해야할 시간에, 그때 놀러다니고 게임이나 하고 오락이나 하고 잠이나 자고 꾸미기나 하고, 내용적으로 알차게 힘을 다해서, 말하자면 공부할 때 수업시간에 자기 마음을 다 드려서 이것도 말할려니까. 초등학교 4학년, 4학년이죠. 학예발표회라고 연습을 해서 누가 동영상을 보내줬는데 남학생 여학생이 섞여서 가수들 춤추는 발광을 하는데 그걸 잘한다 가르칩니다. 그 정도면 고학년인데, 생발광을 하는데 그걸 학예발표회라고 자랑스럽게 되었습니다. 속에서는 못보내겠구나 싶었는데 그런 거 뭐하러 가르칩니까. 밥이 생깁니까 돈이 됩니까 떡이 됩니까. 아이들 인성에 도움이 됩니까 교육에 도움이 됩니까 실력에 도움 됩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작귀라고 하는데 그걸 가르치는 게 선생들 머리 속에 뭐 같은 게 들어있으니까. 다는 아닙니다. 못보내겠구나 싶습니다.
그짓하는 거 보고 나니까 못하겠덥니다. 수업은 잘 들어야합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그거 남학생이면 시키면 이런 거 안합니다. 하고 뛰어나와버려야하는데 그런 사람 되면 잘난 인물입니다. 그러면 안합니다 하고 그러면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걸 필요할 것이 없는 것이고, 배운 걸 읽고 쓰고 하는 겁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하다보면 초등학생 시험도 안치죠. 시험 칩니까. 그러니까 실력을 알 수가 있나, 중학생 때 시험 쳐보면 알겠지요. 그러면 결과가 나옵니다. 자기로써 힘껏 마음과 정성을 다 들여서 했는데 시험을 쳤는데 90점이면 그게 자기 분량입니다. 더 노력을 해봅니다. 그러면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면 보면 알겠죠, 60점이면 학교 성적이 인생을 좌우합니까. 학교 우등생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드시는 아닌데, 성적 좋다고 두 번째고 자기 정신이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열심히 하니까 다섯 달란트 남았고 죽도로 했는데도 두 달란트 밖에 못했습니다. 잘했다 착하다. 그게 자기 달란트 분량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래서 복권을 산다 주식을 한다 100프로 1000프로 다 망합니다. 차근차근 쌓아나가면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땀을 다른 말로 하면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한이라고 하는데 그거 말고, 다른 말로 말하면 노력이라고 합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게 충성입니다. 신앙생활도 자기로써 다해보면 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예배 드리고 깨달아지는대로 실행하다보면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성적으로 결과하듯이 그런 거 절약하면 신앙생활 그렇게해 나가면 중심과 노력을 보시고 역사하신 역사를 보십니다.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주신 분량 다하면 충성하게 되는 겁니다. 충성하실 때 진짜 충성은 하나는 착하고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인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이게 착한겁니다. 아무리 충성해도 이것만 빠지면 요압이 되는 겁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착한 우리 되어야하고 충성한 우리가 되어야겠다.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