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1-23조회 26추천 2
2025년 11월 23일 주일 오후
찬송: 154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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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요압의 충성과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충성했는데 왜 실패했는가. 세상에는 참 억울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록 충성했는데 오히려 반대파의 시기를 받거나 같은 파라도 시기 받아서 억울하게 매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 목사님의 아들 중에서도 굉장히 실력있고 똑똑한 분이 계셔서,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문교부차관인가 차관급인데 그렇게 가라고 연락이 들었는데 가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죽는다, 다른 게 죽는다. 진짜 죽음을 당한다 그런 쪽이었습니다. 그런 쪽이 정치 쪽입니다. 정치는 모질어야하고 어지러워야하고 사기를 잘 쳐야하고 권무술수가 능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정치입니다. 다는 아니지만은, 목숨 걸고 가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 중에서 거의 다 전과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갔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감옥갔다왔다고 하면 대개는 뭔가를 했다는 말이고 좋게 말하면 똑똑하고 잘났다는 말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적질했거나 사기를 쳤거나 그렇게 갑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하다 왔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문제가 많은 겁니다.
충성을 위하여 문제가 많은 것인데 군신, 또 하나는요, 임금과 신하, 주종, 주인과 종 이런 관계에서 쓰는 말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주종의 관계고 군신관계가 되는 거지요. 다윗과 요압은 군신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에서 쓰는 말이 충성입니다. 신하가, 종이, 자기 임금에게 자기 마음과 힘을 다 바쳐서 섬기는 걸 충성이라고 합니다. 진정을 다 드려서 정말 자기를 위해서 주군을 위해서 자기의 마음 정성 힘과 노력을 다해서 바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압은 충신은 아니지요. 그런데 충성은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그렇게 붙이는 겁니다. 가장 최측근에서, 수십년을 같이 지냈을 건데, 온갖 말하자면 전쟁을 같이 치뤘고 생사를 넘나들었던 사람이 다윗에게 요압입니다.
그 요압이 왜 그렇게 실패를 했습니다. 성경에 요압 뿐만 아니고, 교회 사에도 서부교회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충성을 하고 마지막에 돌아서고 충성한 분 계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성경은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맹세는 거의 도장찍고 예사로 쉽게 말할 때 절대라는 말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쓰는 말입니다. 성경에 맹세하지 말아라, 사람은 그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게 있습니다. 나의 지능의 궁극은 나에게 달렸지 않습니다. 바늘로 찌르면, 접시물에도 빠지면 죽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 목숨이란 그런 겁니다. 그래서 장담 맹세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노력은 하겠습니다.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그게 하는 일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겸손한 것이고 자기를 바로 아는 겁니다.
요압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최측근에 용장이 되었겠지요. 사람 죽이는 게 전쟁터라도 쉽습니까. 그런데 그렇게하고도 마지막은 허무하게, 참 허무하게 죽습니다. 아주 허무하고 비참하게, 누구든 그리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일 먼저, 오늘 설교의 먼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로 오판하기 쉬운데 어머니입니다. 요합은 형제가 오전에 배웠지요, 삼형제입니다. 요압 다음에 동생 이름이 아비세 발이 빠른 동생은 아사헬입니다. 요압 아비세 아사헬 삼형제고 스루야라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입니다 다윗의 동생인지 누나인지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누이라고 하면 누나라고 하는 것이고, 다윗이 막내라고 하지만 단정하지 못합니다. 누나의 아들이 요압이니까 외삼촌이고 조카가 되는 겁니다. 이런 관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혈육이 되는 것이지요.
아브넬이 있습니다. 아브넬은 넬이라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다윗과 요압과 아마사는 유압지파고 넬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넬은 사울의 숙부입니다. 큰아버지, 사울의 숙부가 넬이고 넬의 아들이 아브넬이니까 사울하고 아브넬은 어떤 사람이지요. 사촌 지간입니다. 사촌 형제입니다. 사울 왕하고 대장 아브넬은 사촌지갑니다. 사울은 빵빵하고 용장이고, 그러니까 사울 집안이 말하자면 그런 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넬이 나온 거 보니까 모든 면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아마사가 있습니다. 아마사는 누구냐면 이름이 조금 복잡합니다. 아마사는 아버지 이름이 예델인데 다른 곳에 보면 이드라라고 또 나옵니다. 예델과 이드라는 같은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아비가일인데 다른 곳에 아비갈이라고 나옵니다. 아마사는 지파는 다른데 스루야, 누구지요. 요압의 어머니하고 아마사의 아비가일하고 자매지간입니다.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찾아봐야겠고, 아비가일과 스루야가 자매지간인데 스루야는 삼형제 나았고 아비갈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까 요압과 아마사는 어떤 관계지요. 이종사촌, 그런 관계입니다.
다윗 주변에도 전부 다 집안이 얽혀있고 성경적으로 백 목사님 보면 서로 다 친척이고 그랬습니다. 주변과 동네 사람들이 다 따라다녔지 그런 거지요. 이런 관계가 있는 걸 왔습니다. 요압이 어머니는 스루야입니다. 다윗의 누이입니다.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입니다. 아브넬은 넬의 아들이고 넬은 사울의 숙부입니다. 아마사라는 인물은 아비가일,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와 자매지간이고 그렇게 이종사촌 관계입니다. 이렇게 한 번 기억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요압이 충성을 했는데 충성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크게 말해서 아브넬 죽였고 아마사 죽였습니다. 그렇게 된 발단이 있습니다. 모든 원인이 다 있지요. 공연히 사람을 해치진 않은 겁니다. 자기 중심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다윗도 사람 많이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구약에는 그렇게 죽인 것이고 구약에는 전쟁에 나가서 적군을 쳐죽이고 아말렉 족속 다 죽이고 다 죽여버려라, 다 죽여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신약의 죽일 사람은 옛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마음의 잘못된 옛사람의 요소, 잘못된 습성들을 죽이는 게 사람입니다. 요압이 왜 아브넬을 죽이게 됐을까. 그 발단이 되는 전쟁이 기브온 전쟁입니다. 기브온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고나서 나라가 둘로 나뉘었지요. 전쟁 중 가장 비참한 전쟁이 내전입니다. 참 바참합니다. 역사적으로 내전은 서로 이루어졌고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 고구려는 북한입니다. 백제는 충청도 호남 쪽입니다. 세 나라가 싸웠으니까 내전입니다 보면 고려시대로 그랬고 조선시대는 괜찮았지요. 그런데 또 갈라진 겁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이 갈라진 상태로 기브온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총 대장인 아브넬이 요압에 소년들로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여러 의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데, 장난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두고 사람 목숨을 두고 장난이다. 그게 아브넬이 어찌보면 열 한 지파를 거느리고 있고 다윗이라도 쫓겨 다니다가 들어온지 얼마 안된 상태고 대부분은 아브넬쪽 군사입니다.
아브넬은 사울 때부터 총대장이고 요압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도망다니든 대장입니다. 다윗은 아주 요압 저거야 뭐 깔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난하자, 그렇게 해보니까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된거지요.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양쪽에 열 두 명 나왔는데 적군의 옆구리를 찔러서 죽습니다. 죽고 그 다음에 심히 맹렬하게 전개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내전인데 죽고 죽이는 피터지는 싸움이 된 거지요. 아브넬은 멀리까지도 계산하고, 인품이 있는 사람이니까 평등을 말하고 그런 사람들인데 평등을 부르짖는 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야하는데, 사람 목숨이 같은 목숨이냐, 가치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람 목숨을 값을 메겨놨습니다. 그거 메겨놨지 그럽니까. 종은 돈주고 파는 것이고, 70대 넘는 노인이 죽으면 얼마, 청년이 죽으면 얼마, 보상금이 다 틀립니다. 사람 목숨 값으로 메기는 거 아닌가요. 현실입니다. 지금도 장군이 죽으면 신문에 나고 장례 성대하게 치러주는데 졸병 100명은 상관없는거지요. 사단장 한 명하고 목숨 가치는 전쟁을 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넬 장난하게 하자, 그렇게 주었는데 아사넬이 아브넬 잡겠다고 죽었고 소년 하나 잡아라, 그렇게 되지 않냐는 거지요.
죽었으니까 그렇게 되는데 아사헬을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는 단정은 못하겠으나, 아브넬이 장난하게 하자. 아사헬이 죽고 나서 그 쫓아오는 요압에게 칼이 영영히 사람을 사람을 향하겠냐, 네가 아침의 그 말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다. 그렇게 되는거지요. 그거 때문에 요압은 동생을 잃었고 아사헬은 원치않게 원수가 되었고 마침 전쟁갔다 오니까 아브넬이 왔다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가서 따지는 겁니다. 적장이 우리에게 왔다갔는데 왜 돌려보냅니까. 신하가 왕에게 따질 수 있는 겁니까. 이건 목을 쳐버리는 건데, 이때 다윗은 요압이라는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인물입니다. 이미 많은 전쟁 치뤘고 군대장관이고 그래서 위에 왕들 정치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는 사람은 상대편이라도 유용한 사람은 등용하는 겁니다. 두는 겁니다. 아는 겁니다. 그래서 24절 보면 25절 보면 요압이 다윗에게 좋게 하는 말이 아니고 따지는 겁니다. 말이 그래도 어떻게 곱게 하겠습니까.
다윗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몰래 사람을 보내서 죽였습니다. 표면적인 발단이 그겁니다.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였고 그거 때문에 요압이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압이라는 인물, 그 사람의 성격, 야심, 충성의 깊은 속을 짐작해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러면 그렇게 못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의 인격 인간 됨됨이 이런 걸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었고 압살롬을 보면 그때도 그렇습니다. 죽어 마땅한 패륜아입니다. 어디 감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저 어릴 때만해도 아버지와 겸상 못했습니다. 제가 집이 가난했는데도 아버지 밥상이 따로 차려드립니다. 쌀만 떠서 아버지 드리고 나머지 쌀 섞인 보리밥을 먹습니다. 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공자의 삼강오륜이 있지요. 이건 넘어가고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럴 때에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다, 이건 100번 죽어 마땅한 겁니다. 그래도 살려달라고 한 것은 그 원인은 다윗은 자기에게서 찾은 겁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걸 이어졌고 압살롬은 아까운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압살롬을 고쳐 회개시키려는 소망이 있었는데 요압이 무참하게 죽여버렸습니다.
다윗은 그 깊은 원인을 생각하고 나를 봐서 살려달라, 그렇게 일부러 부탁을 합니다. 전쟁 나가는 요압과 아비세와 장군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병사들도 들었고 머리가 무슨 나무에 걸려요, 상수리나무, 노새 타고 가다가 머리를 해마다 잘라서 찰랑찰랑한 거, 사슴이 자랑 거리가 뭐지요. 뿔을 자랑하는데 도망치는데 뿔이 걸리듯이, 머리가 그렇게 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군사가 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러니까 쳐죽이지 뭐하러 보고하냐, 부하가 임금이 다윗왕께서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어떻게 죽이냐 그러니까 요압이 죽였다고 그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열 명이 요압이 주변의 열 명이 쳐 죽였다고 나옵니다. 처참하게 죽인 거지요. 왜 그랬을까,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사헬을 죽인 것으로 치고 압살롬은 이유가 뭘까. 압살롬이 화해를 해야 알아야할 거 아닙니까.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그러면 안되니까 2년 동안 있으면 요압에게 왕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데 들은 척도 안합니다. 요압을 불렀는데 오지도 않습니다. 요압의 밭이 있으니까 불을 질러버려라, 보리밭입니다. 그러면 오겠지.
그래서 압살롬의 신하들이 불을 지었다는 소식을 듣고 왜 불을 질렀냐, 그리고 말하는 거지요. 너 왜 나 여기를 오게 했냐. 거기 두지 왜 오게 만들었냐, 그렇게 했으면 화해를 하게 만들어야지 책임져라고 한거지요. 그래서 불러서 화해를 시켜준겁니다. 그때 말하자면 보라밭에 불을 질러서 그게 될 수도 있는데, 그 출중한 인물에 대한 경계심, 그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는데 살려주라고 했고 반감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요압이 압살롬 죽인 것은 반역자니까 그렇지만 다윗이 그토록 사정하면 살려놓는게 신하되는 도리인데 무참하게 무시해버리고 처참하게 죽여버렸습니다. 요압의 인간성 성격 됨됨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었다 할 수 있고.
아마사는 왜 죽였느냐, 세바를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3일 내로 군사 모으라고 했는데 못 모았습니다. 아비새를 보냈습니다 열 두 지파 모두에게 버림받았던겁니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어수선한 그런 상황에서 세바라는 인물이 반역을 일으키니까 아마사를 보내면서 내가 너를 요압을 대신해서 군대장관에서 세울거다를 했습니다. 아마사는 압살롬 편에 있던 사람입니다. 요압을 대신해 군대 장관을 세울 겁니다. 그래서 아마사도, 반역에 가담했던 대장인데 죽여야하는데 군대장관삼는다고 하고 진압하라고 하니까 두고보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아마사를 죽인겁니다. 시기고 경쟁심이고 이렇게 볼 수 있겠지요. 그 새사람을 해친 것이 표면적으로는 이유가 있고 내면을 보면 전부 내면이고 요압이라는 것은 그 사람 됨됨이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사과라든지 배라든지 이런 것은 껍질이 두껍습니까 얇습니까. 사과 배 토마토 감 이런 껍질이 얇습니다. 그래서 상하면 표가 납니다. 그런데 수박, 호박 이런 것은 속이 상해도 겉에 표가 잘 안납니다. 수박이나 호박이 겉에 했으면 다 속은 썩은 겁니다. 그때까지 표가 났다면 못 먹을 정도로 써먹을 겁니다. 사람의 몸이 외부가 있고 안이 있는데 몸 안에 있는 장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심각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간이 암이 심해지면 황달이 옵니다. 배출하는 정수기 신장 콩팥에 문제 생기면 얼굴에 표가납니다. 다른 게 그래도 표가 납니다. 어서 살펴봐야합니다. 내부에 사람의 몸이 내장에 문제가 생기면 간단한게 표가 잘 안나는데 안 그런 것은 안되는 거지요.
속이 문제가 있으니까 겉이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다리 부러진다 팔 부러진다 이걸로 죽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런데 내장에 문제가 생기면 가는 경우가 많지요. 신앙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은 주일에는 껍데기 오후는 알멩이 밤예배는 안에 가장 교회를 진짜 측도를 보는 것은 뭡니까 새벽기도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병이들어가는 겁니다. 개인 신앙으로 가면요, 속병이 점점 들어가는 겁니다. 새벽기도가 중단되었으면 잠이깊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가장 깊은 겁니다. 밤예배 그 다음이고 요압이 아브넬 죽이고 압살롬, 아마사를 죽였는데 표면적으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압이 그런 이유를 대는 거지요. 관계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습니다. 아브넬도 압살롬도 아마사도 껍데기 보이는 면이고 속에 들어가보면 인간적인 문제, 성격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가 잘못된겁니다. 중심, 자세, 목적이 틀리거지요.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밖으로 표출이 되는 겁니다.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뤘고 다윗을 살리기도 했는데 충신이 아닌거지요. 그래서 요압과 다윗은 어떤 관계라고요, 외삼촌고 조카니까 같은 지파고 같은 집안이니까 입장이 그러니까, 다윗은 보니까 승승 장구하니까 떠오르는 태야이니까. 그래서 이겨나갔고, 요압이 다윗에게 한 것은 첫째로 인간적으로 야심이 있었습니다.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적으로 요압은 시기가 강했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펼치고자 하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요압은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알지 못했고, 그래서 네 가지 면으로 병이 들었고 잘못된 거지요. 인간적으로 성격적으로 충성적으로 신앙적으로 병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직장, 직분을 감당할 때 이 네가지를 조심하면서 기억해야겠다, 순수하게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사심을 버리고 진실하게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위치를 맡은 사람이 되면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참된 발언이 되는 겁니다. 바로 되어집니다.
이게 요압처럼 되면은 피를 데리고 있을지라도 속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을겁니다. 이 세상도 교회도 교회도 단체고 나라도 단체입니다. 회사도 단체입니다. 일꾼이 있습니다. 그 단체를 꾸려가는 일꾼이 있습니다. 일당백, 무슨 뜻이지요. 일당백, 한 사람이 백명을 다한다는 겁니다. 요압은 일당백이 있습니다. 혼자서 800명을 이긴 인물도 있습니다. 일당팔백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되고 회사가 되고 군대가 되고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일꾼이라고 합니다. 일을 굉장히 많이합니다. 교회도 어린 신앙 철없는 신앙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만 있으면 교회가 안 돌아갑니다. 유지가 되고 부흥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요압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일당백의 일꾼입니다. 집안에 빗자루 걸레 밥그릇도 있고 다 있습니다. 대충 대충 쓰고 던져놓으면 됩니다. 집안에 천만원짜리 도자기가 있습니다. 이거 보관하려고 하면 굉장히 비쌉니다. 비싼 물건일수록 보관비가 많이 들고 사용료가 비쌉니다.
어느 단체든 일등이 있어도 그 단체의 중요한 사람일수록 잘못하면 폐해가 큽니다. 요압이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목을 많이 받게 됩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일꾼입니다. 그런 분들이 칭찬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 시기도 받습니다. 양면이 다 있는 겁니다. 다 좋게만 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아주 일 많이한 분들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충성하는 만큼 커지게 됩니다. 어린 사람들, 손해가 됩니다. 주일학생이 해를 끼치는 건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심된 일꾼이 해를 끼치면 교회가 흔들흔들 합니다. 그게 잘못 나가면 요압처럼 나가기 쉽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뭘 하는지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일하는 분일수록 자기를 숨겨야하고 낮춰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지막 가는 결과가 요압처럼 가는 겁니다. 공회도 그렇고, 조례 목사님 거기서 다합니다. 조례 목사님은 늘 숨어있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하고도 숨어있습니다.
그 전에 집회장소는 부담스러웠습니다. 부탁할려고 하면 힘이들어서 부담이었는데 조례목사님 맡고나서 부담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사람은 별 사람 없습니다. 교회도 사람 단체고 사람 사는 곳입니다. 다윗과 요압의 관계나 교회의 관계나 꼭 같습니다. 요압 속에 그러지 말고 야심이겠습니까 고의로 그러겠습니까. 일을 많이하다 보면 이런 저런 말들 많이하게 되고 목소리 나올 수 있고 그런 겁니다. 일을 많이 하는 분일수록 말을 줄여야합니다. 숨어야하고,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되고 본인 신앙이 되게 되는 겁니다. 요압에서 충성과 실패를 가지고 돌아보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54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제목을 요압의 충성과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충성했는데 왜 실패했는가. 세상에는 참 억울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록 충성했는데 오히려 반대파의 시기를 받거나 같은 파라도 시기 받아서 억울하게 매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 목사님의 아들 중에서도 굉장히 실력있고 똑똑한 분이 계셔서,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문교부차관인가 차관급인데 그렇게 가라고 연락이 들었는데 가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죽는다, 다른 게 죽는다. 진짜 죽음을 당한다 그런 쪽이었습니다. 그런 쪽이 정치 쪽입니다. 정치는 모질어야하고 어지러워야하고 사기를 잘 쳐야하고 권무술수가 능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정치입니다. 다는 아니지만은, 목숨 걸고 가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 중에서 거의 다 전과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갔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감옥갔다왔다고 하면 대개는 뭔가를 했다는 말이고 좋게 말하면 똑똑하고 잘났다는 말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적질했거나 사기를 쳤거나 그렇게 갑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하다 왔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문제가 많은 겁니다.
충성을 위하여 문제가 많은 것인데 군신, 또 하나는요, 임금과 신하, 주종, 주인과 종 이런 관계에서 쓰는 말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주종의 관계고 군신관계가 되는 거지요. 다윗과 요압은 군신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에서 쓰는 말이 충성입니다. 신하가, 종이, 자기 임금에게 자기 마음과 힘을 다 바쳐서 섬기는 걸 충성이라고 합니다. 진정을 다 드려서 정말 자기를 위해서 주군을 위해서 자기의 마음 정성 힘과 노력을 다해서 바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압은 충신은 아니지요. 그런데 충성은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그렇게 붙이는 겁니다. 가장 최측근에서, 수십년을 같이 지냈을 건데, 온갖 말하자면 전쟁을 같이 치뤘고 생사를 넘나들었던 사람이 다윗에게 요압입니다.
그 요압이 왜 그렇게 실패를 했습니다. 성경에 요압 뿐만 아니고, 교회 사에도 서부교회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충성을 하고 마지막에 돌아서고 충성한 분 계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성경은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맹세는 거의 도장찍고 예사로 쉽게 말할 때 절대라는 말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쓰는 말입니다. 성경에 맹세하지 말아라, 사람은 그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게 있습니다. 나의 지능의 궁극은 나에게 달렸지 않습니다. 바늘로 찌르면, 접시물에도 빠지면 죽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 목숨이란 그런 겁니다. 그래서 장담 맹세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노력은 하겠습니다.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그게 하는 일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겸손한 것이고 자기를 바로 아는 겁니다.
요압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최측근에 용장이 되었겠지요. 사람 죽이는 게 전쟁터라도 쉽습니까. 그런데 그렇게하고도 마지막은 허무하게, 참 허무하게 죽습니다. 아주 허무하고 비참하게, 누구든 그리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일 먼저, 오늘 설교의 먼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로 오판하기 쉬운데 어머니입니다. 요합은 형제가 오전에 배웠지요, 삼형제입니다. 요압 다음에 동생 이름이 아비세 발이 빠른 동생은 아사헬입니다. 요압 아비세 아사헬 삼형제고 스루야라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입니다 다윗의 동생인지 누나인지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누이라고 하면 누나라고 하는 것이고, 다윗이 막내라고 하지만 단정하지 못합니다. 누나의 아들이 요압이니까 외삼촌이고 조카가 되는 겁니다. 이런 관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혈육이 되는 것이지요.
아브넬이 있습니다. 아브넬은 넬이라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다윗과 요압과 아마사는 유압지파고 넬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넬은 사울의 숙부입니다. 큰아버지, 사울의 숙부가 넬이고 넬의 아들이 아브넬이니까 사울하고 아브넬은 어떤 사람이지요. 사촌 지간입니다. 사촌 형제입니다. 사울 왕하고 대장 아브넬은 사촌지갑니다. 사울은 빵빵하고 용장이고, 그러니까 사울 집안이 말하자면 그런 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넬이 나온 거 보니까 모든 면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아마사가 있습니다. 아마사는 누구냐면 이름이 조금 복잡합니다. 아마사는 아버지 이름이 예델인데 다른 곳에 보면 이드라라고 또 나옵니다. 예델과 이드라는 같은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아비가일인데 다른 곳에 아비갈이라고 나옵니다. 아마사는 지파는 다른데 스루야, 누구지요. 요압의 어머니하고 아마사의 아비가일하고 자매지간입니다.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찾아봐야겠고, 아비가일과 스루야가 자매지간인데 스루야는 삼형제 나았고 아비갈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까 요압과 아마사는 어떤 관계지요. 이종사촌, 그런 관계입니다.
다윗 주변에도 전부 다 집안이 얽혀있고 성경적으로 백 목사님 보면 서로 다 친척이고 그랬습니다. 주변과 동네 사람들이 다 따라다녔지 그런 거지요. 이런 관계가 있는 걸 왔습니다. 요압이 어머니는 스루야입니다. 다윗의 누이입니다.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입니다. 아브넬은 넬의 아들이고 넬은 사울의 숙부입니다. 아마사라는 인물은 아비가일,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와 자매지간이고 그렇게 이종사촌 관계입니다. 이렇게 한 번 기억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요압이 충성을 했는데 충성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크게 말해서 아브넬 죽였고 아마사 죽였습니다. 그렇게 된 발단이 있습니다. 모든 원인이 다 있지요. 공연히 사람을 해치진 않은 겁니다. 자기 중심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다윗도 사람 많이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구약에는 그렇게 죽인 것이고 구약에는 전쟁에 나가서 적군을 쳐죽이고 아말렉 족속 다 죽이고 다 죽여버려라, 다 죽여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신약의 죽일 사람은 옛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마음의 잘못된 옛사람의 요소, 잘못된 습성들을 죽이는 게 사람입니다. 요압이 왜 아브넬을 죽이게 됐을까. 그 발단이 되는 전쟁이 기브온 전쟁입니다. 기브온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고나서 나라가 둘로 나뉘었지요. 전쟁 중 가장 비참한 전쟁이 내전입니다. 참 바참합니다. 역사적으로 내전은 서로 이루어졌고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 고구려는 북한입니다. 백제는 충청도 호남 쪽입니다. 세 나라가 싸웠으니까 내전입니다 보면 고려시대로 그랬고 조선시대는 괜찮았지요. 그런데 또 갈라진 겁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이 갈라진 상태로 기브온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총 대장인 아브넬이 요압에 소년들로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여러 의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데, 장난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두고 사람 목숨을 두고 장난이다. 그게 아브넬이 어찌보면 열 한 지파를 거느리고 있고 다윗이라도 쫓겨 다니다가 들어온지 얼마 안된 상태고 대부분은 아브넬쪽 군사입니다.
아브넬은 사울 때부터 총대장이고 요압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도망다니든 대장입니다. 다윗은 아주 요압 저거야 뭐 깔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난하자, 그렇게 해보니까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된거지요.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양쪽에 열 두 명 나왔는데 적군의 옆구리를 찔러서 죽습니다. 죽고 그 다음에 심히 맹렬하게 전개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내전인데 죽고 죽이는 피터지는 싸움이 된 거지요. 아브넬은 멀리까지도 계산하고, 인품이 있는 사람이니까 평등을 말하고 그런 사람들인데 평등을 부르짖는 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야하는데, 사람 목숨이 같은 목숨이냐, 가치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람 목숨을 값을 메겨놨습니다. 그거 메겨놨지 그럽니까. 종은 돈주고 파는 것이고, 70대 넘는 노인이 죽으면 얼마, 청년이 죽으면 얼마, 보상금이 다 틀립니다. 사람 목숨 값으로 메기는 거 아닌가요. 현실입니다. 지금도 장군이 죽으면 신문에 나고 장례 성대하게 치러주는데 졸병 100명은 상관없는거지요. 사단장 한 명하고 목숨 가치는 전쟁을 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넬 장난하게 하자, 그렇게 주었는데 아사넬이 아브넬 잡겠다고 죽었고 소년 하나 잡아라, 그렇게 되지 않냐는 거지요.
죽었으니까 그렇게 되는데 아사헬을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는 단정은 못하겠으나, 아브넬이 장난하게 하자. 아사헬이 죽고 나서 그 쫓아오는 요압에게 칼이 영영히 사람을 사람을 향하겠냐, 네가 아침의 그 말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다. 그렇게 되는거지요. 그거 때문에 요압은 동생을 잃었고 아사헬은 원치않게 원수가 되었고 마침 전쟁갔다 오니까 아브넬이 왔다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가서 따지는 겁니다. 적장이 우리에게 왔다갔는데 왜 돌려보냅니까. 신하가 왕에게 따질 수 있는 겁니까. 이건 목을 쳐버리는 건데, 이때 다윗은 요압이라는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인물입니다. 이미 많은 전쟁 치뤘고 군대장관이고 그래서 위에 왕들 정치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는 사람은 상대편이라도 유용한 사람은 등용하는 겁니다. 두는 겁니다. 아는 겁니다. 그래서 24절 보면 25절 보면 요압이 다윗에게 좋게 하는 말이 아니고 따지는 겁니다. 말이 그래도 어떻게 곱게 하겠습니까.
다윗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몰래 사람을 보내서 죽였습니다. 표면적인 발단이 그겁니다.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였고 그거 때문에 요압이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압이라는 인물, 그 사람의 성격, 야심, 충성의 깊은 속을 짐작해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러면 그렇게 못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의 인격 인간 됨됨이 이런 걸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었고 압살롬을 보면 그때도 그렇습니다. 죽어 마땅한 패륜아입니다. 어디 감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저 어릴 때만해도 아버지와 겸상 못했습니다. 제가 집이 가난했는데도 아버지 밥상이 따로 차려드립니다. 쌀만 떠서 아버지 드리고 나머지 쌀 섞인 보리밥을 먹습니다. 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공자의 삼강오륜이 있지요. 이건 넘어가고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럴 때에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다, 이건 100번 죽어 마땅한 겁니다. 그래도 살려달라고 한 것은 그 원인은 다윗은 자기에게서 찾은 겁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걸 이어졌고 압살롬은 아까운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압살롬을 고쳐 회개시키려는 소망이 있었는데 요압이 무참하게 죽여버렸습니다.
다윗은 그 깊은 원인을 생각하고 나를 봐서 살려달라, 그렇게 일부러 부탁을 합니다. 전쟁 나가는 요압과 아비세와 장군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병사들도 들었고 머리가 무슨 나무에 걸려요, 상수리나무, 노새 타고 가다가 머리를 해마다 잘라서 찰랑찰랑한 거, 사슴이 자랑 거리가 뭐지요. 뿔을 자랑하는데 도망치는데 뿔이 걸리듯이, 머리가 그렇게 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군사가 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러니까 쳐죽이지 뭐하러 보고하냐, 부하가 임금이 다윗왕께서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어떻게 죽이냐 그러니까 요압이 죽였다고 그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열 명이 요압이 주변의 열 명이 쳐 죽였다고 나옵니다. 처참하게 죽인 거지요. 왜 그랬을까,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사헬을 죽인 것으로 치고 압살롬은 이유가 뭘까. 압살롬이 화해를 해야 알아야할 거 아닙니까.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그러면 안되니까 2년 동안 있으면 요압에게 왕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데 들은 척도 안합니다. 요압을 불렀는데 오지도 않습니다. 요압의 밭이 있으니까 불을 질러버려라, 보리밭입니다. 그러면 오겠지.
그래서 압살롬의 신하들이 불을 지었다는 소식을 듣고 왜 불을 질렀냐, 그리고 말하는 거지요. 너 왜 나 여기를 오게 했냐. 거기 두지 왜 오게 만들었냐, 그렇게 했으면 화해를 하게 만들어야지 책임져라고 한거지요. 그래서 불러서 화해를 시켜준겁니다. 그때 말하자면 보라밭에 불을 질러서 그게 될 수도 있는데, 그 출중한 인물에 대한 경계심, 그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는데 살려주라고 했고 반감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요압이 압살롬 죽인 것은 반역자니까 그렇지만 다윗이 그토록 사정하면 살려놓는게 신하되는 도리인데 무참하게 무시해버리고 처참하게 죽여버렸습니다. 요압의 인간성 성격 됨됨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었다 할 수 있고.
아마사는 왜 죽였느냐, 세바를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3일 내로 군사 모으라고 했는데 못 모았습니다. 아비새를 보냈습니다 열 두 지파 모두에게 버림받았던겁니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어수선한 그런 상황에서 세바라는 인물이 반역을 일으키니까 아마사를 보내면서 내가 너를 요압을 대신해서 군대장관에서 세울거다를 했습니다. 아마사는 압살롬 편에 있던 사람입니다. 요압을 대신해 군대 장관을 세울 겁니다. 그래서 아마사도, 반역에 가담했던 대장인데 죽여야하는데 군대장관삼는다고 하고 진압하라고 하니까 두고보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아마사를 죽인겁니다. 시기고 경쟁심이고 이렇게 볼 수 있겠지요. 그 새사람을 해친 것이 표면적으로는 이유가 있고 내면을 보면 전부 내면이고 요압이라는 것은 그 사람 됨됨이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사과라든지 배라든지 이런 것은 껍질이 두껍습니까 얇습니까. 사과 배 토마토 감 이런 껍질이 얇습니다. 그래서 상하면 표가 납니다. 그런데 수박, 호박 이런 것은 속이 상해도 겉에 표가 잘 안납니다. 수박이나 호박이 겉에 했으면 다 속은 썩은 겁니다. 그때까지 표가 났다면 못 먹을 정도로 써먹을 겁니다. 사람의 몸이 외부가 있고 안이 있는데 몸 안에 있는 장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심각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간이 암이 심해지면 황달이 옵니다. 배출하는 정수기 신장 콩팥에 문제 생기면 얼굴에 표가납니다. 다른 게 그래도 표가 납니다. 어서 살펴봐야합니다. 내부에 사람의 몸이 내장에 문제가 생기면 간단한게 표가 잘 안나는데 안 그런 것은 안되는 거지요.
속이 문제가 있으니까 겉이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다리 부러진다 팔 부러진다 이걸로 죽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런데 내장에 문제가 생기면 가는 경우가 많지요. 신앙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은 주일에는 껍데기 오후는 알멩이 밤예배는 안에 가장 교회를 진짜 측도를 보는 것은 뭡니까 새벽기도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병이들어가는 겁니다. 개인 신앙으로 가면요, 속병이 점점 들어가는 겁니다. 새벽기도가 중단되었으면 잠이깊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가장 깊은 겁니다. 밤예배 그 다음이고 요압이 아브넬 죽이고 압살롬, 아마사를 죽였는데 표면적으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압이 그런 이유를 대는 거지요. 관계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습니다. 아브넬도 압살롬도 아마사도 껍데기 보이는 면이고 속에 들어가보면 인간적인 문제, 성격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가 잘못된겁니다. 중심, 자세, 목적이 틀리거지요.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밖으로 표출이 되는 겁니다.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뤘고 다윗을 살리기도 했는데 충신이 아닌거지요. 그래서 요압과 다윗은 어떤 관계라고요, 외삼촌고 조카니까 같은 지파고 같은 집안이니까 입장이 그러니까, 다윗은 보니까 승승 장구하니까 떠오르는 태야이니까. 그래서 이겨나갔고, 요압이 다윗에게 한 것은 첫째로 인간적으로 야심이 있었습니다.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적으로 요압은 시기가 강했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펼치고자 하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요압은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알지 못했고, 그래서 네 가지 면으로 병이 들었고 잘못된 거지요. 인간적으로 성격적으로 충성적으로 신앙적으로 병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직장, 직분을 감당할 때 이 네가지를 조심하면서 기억해야겠다, 순수하게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사심을 버리고 진실하게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위치를 맡은 사람이 되면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참된 발언이 되는 겁니다. 바로 되어집니다.
이게 요압처럼 되면은 피를 데리고 있을지라도 속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을겁니다. 이 세상도 교회도 교회도 단체고 나라도 단체입니다. 회사도 단체입니다. 일꾼이 있습니다. 그 단체를 꾸려가는 일꾼이 있습니다. 일당백, 무슨 뜻이지요. 일당백, 한 사람이 백명을 다한다는 겁니다. 요압은 일당백이 있습니다. 혼자서 800명을 이긴 인물도 있습니다. 일당팔백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되고 회사가 되고 군대가 되고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일꾼이라고 합니다. 일을 굉장히 많이합니다. 교회도 어린 신앙 철없는 신앙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만 있으면 교회가 안 돌아갑니다. 유지가 되고 부흥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요압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일당백의 일꾼입니다. 집안에 빗자루 걸레 밥그릇도 있고 다 있습니다. 대충 대충 쓰고 던져놓으면 됩니다. 집안에 천만원짜리 도자기가 있습니다. 이거 보관하려고 하면 굉장히 비쌉니다. 비싼 물건일수록 보관비가 많이 들고 사용료가 비쌉니다.
어느 단체든 일등이 있어도 그 단체의 중요한 사람일수록 잘못하면 폐해가 큽니다. 요압이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목을 많이 받게 됩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일꾼입니다. 그런 분들이 칭찬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 시기도 받습니다. 양면이 다 있는 겁니다. 다 좋게만 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아주 일 많이한 분들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충성하는 만큼 커지게 됩니다. 어린 사람들, 손해가 됩니다. 주일학생이 해를 끼치는 건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심된 일꾼이 해를 끼치면 교회가 흔들흔들 합니다. 그게 잘못 나가면 요압처럼 나가기 쉽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뭘 하는지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일하는 분일수록 자기를 숨겨야하고 낮춰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지막 가는 결과가 요압처럼 가는 겁니다. 공회도 그렇고, 조례 목사님 거기서 다합니다. 조례 목사님은 늘 숨어있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하고도 숨어있습니다.
그 전에 집회장소는 부담스러웠습니다. 부탁할려고 하면 힘이들어서 부담이었는데 조례목사님 맡고나서 부담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사람은 별 사람 없습니다. 교회도 사람 단체고 사람 사는 곳입니다. 다윗과 요압의 관계나 교회의 관계나 꼭 같습니다. 요압 속에 그러지 말고 야심이겠습니까 고의로 그러겠습니까. 일을 많이하다 보면 이런 저런 말들 많이하게 되고 목소리 나올 수 있고 그런 겁니다. 일을 많이 하는 분일수록 말을 줄여야합니다. 숨어야하고,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되고 본인 신앙이 되게 되는 겁니다. 요압에서 충성과 실패를 가지고 돌아보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