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11-23조회 25추천 2
2025년 11월 23일 주일 오전
찬송: 141장, 60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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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씀으로 예레미야 2장 1장에서 3절을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의 평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겁니다. 시점으로 말하면 과거가 있고 현재와 미래가 있으나, 사람의 살아가는 것은 늘 현재에서만 사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살이는 없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은 죽은겁니다. 현재를 살아야 믿는 겁니다. 현재를 바로 살면 과거가 좋아지고 현재를 바로 살면 미래도 좋아집니다. 현재를 잘못살면 과거도 나빠지고 현재를 추하게 살면 과거도 추하게 쌓여져갑니다. 농사짓는 땅에 파묻으면 옥토가 되지만은 그냥 올려놓으면 냄새가 납니다. 오늘을 좋게 쌓아놓으면 깨끗한 과거가 되어서 좋은 삶이 됩니다. 추하게 죄짓고 고깃덩어리 족하게 살아나가면 냄새나는 인생이 되어 추한 모습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미래도 그런 미래로 다가오게 되는 겁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오늘을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쌓아봐야겠고 2세들 3세들에게도 청소년 시절, 청년의 때를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가는 그런 때가 되는 거겠습니다.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은 망각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어져버립니다. 기뻤던 때도 잊어버립니다 과거로 가니까. 잊으면 안되는 것도 잊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사람에게 망각성을 준 것은 다 잊어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옛날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믿는 사람이 잊어버리지 않아야할 과거를 잊어버리면 현재를 바로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조강지처 그런 것들을 생각해봤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을 잊어버리면 개구리처럼 되는 겁니다.
어려웠던 때 함께 했던 사람, 어려워서 힘들었던 때 막막하고 캄캄했던 시절,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형편이 부러지고 안정이 되고나니까 자기도 그만 부러진 사람 되고 함께 고생했던 사람 잊어버리면 개구리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소망하며 오늘이 좋으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나가야겠고, 노력을 두었다하고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쥐구멍에도 그 다음은요, 그런 말들은 통계로 나온 속담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가난해도 좋을 때가 있다. 그걸 소망하며 현재 고난을 잘 이겨내는 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압. 기억해야합니다. 다윗의 신하인데 이 요압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중심으로 어떤 자세로 충성해야하며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상하 관계 윗사람을 대할 때 같은 관계, 원리는 같으니까, 어떤 자세로 되어야하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묘한 심오한 진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세상을 찾아가는데, 혈육이 아닌 성경 인물은 혈육 관계입니다. 직장에서 사업관계에서 교회에서 자기 맡은 일을 충성하면서, 사람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것으로 상대해야하는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다윗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아주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쫓겨다닐 때부터 같이 다녔습니다. 요압의 동생이 아비새인데 다윗을 목숨을 구하시도 했습니다. 요압을 아버지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다윗의 조카가 되는 거거든요. 요압의 어머니 이름이 무엇이라고 스루야, 성경 읽다가 스루야의 아들들아 하면 아버지가 나오는데 이 삼형제의 아버지 이름은 안 나옵니다. 어머니고, 어머니 스루야는 다윗과 남매지간, 누이입니다. 요압과 다윗은 다윗이 외삼촌되고 요압은 조카되는 관계입니다.
스루야 아들 삼형제 이 사람이 아주 참 용장들이고 충신들입니다. 그리고 아사헬의 발은 굉장히 빠르고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 삼형제가 특히 요압은 최측근으로 나라를 세울 때부터 1등으로 요압이 그렇게 공신으로 건국의 공신입니다. 역적의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사람을 어지간히 죽여도 공신은 벌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굉장히 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성 사람들이 다윗을 골려먹습니다. 다윗성애서, 장애인이라도, 저 성을 점령하는 사람은 바로 군총사령관으로 해준다 해서 요압이 올라가서 총사령관이 됩니다. 가장 다윗을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또 요압입니다. 양면을 다 가지고 있는 거지요. 가장 충성한 충신이면서 가장 다윗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든 사람이 요압입니다. 결국 다윗을 배신하고 비참하게 되게 됩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 사람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자기 맡은 직분에 충성을 하는데 그 충성하는 그 중심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고 세월 속에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전체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갈라지기 전에 전체 나라를 세운, 출애굽해서 광야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사사 시대,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되는 출발이 사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첫 왕이 사울이고 그 사울이 뒤에가서 망령부려서 실패했지만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다윗을 시기해서 자기 혈육 계통 요나단으로 이어가야하는데 백성들 전부가 다윗을 따르니까 내 핏줄이 왕이 되겠다 해서 다윗을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던 하나님께서 범죄함으로 떠나버렸고 다윗과 함께하시는데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다윗을 쫓아보내셨으므로 이때부터 쪼개진겁니다. 속으로 보면 왕이 된 상태고. 겉으로 드러나기는 한 나라의 왕이 사울인데 내적으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고 갈라진거지요.
사울이 다윗을 실패하고 다윗은 옆나라로 망명가버리고, 사울은 전쟁나서 죽습니다. 사울이 죽고 난 다음에 죽고 난 다음에 사울이 돌아옵니다. 헤브론에 거기 수도로 삼고 자기를 따르는 유다 지파를 하고 있고 유력한 교독할때 아브넬이라는 사람이 권세를 잡고 사울의 아들을 데려가서 왕을 세우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면 나라가 둘로 갈라져버렸지요. 사울의 계통을 이어 요나단은 죽었고 므비보셋이 왕이 되고 헤브론에서는 유다가 왕을 짓고 그렇습니다. 둘로 갈라지니까 내전이 일어나겠죠. 내전이라는 말은 나라 안에서 갈라져 싸우는 걸 내전이라고 합니다. 같은 나라 끼리 갈라져서 하는 걸 내전이라고 합니다. 둘이 전쟁하는데 기브온이라는 곳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데 기브온이라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양쪽이 대치하고 기브온 전쟁이라고 유명합니다. 그때 아브넬이 요압에게 소년들로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칼을 들고 창을 들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장군이 소년들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교독할 때 몇 명 씩 나왔습니까. 열 두 명씩 나왔는데 양쪽이 죽습니다. 그러니까 맹렬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말이 요압과 부하들 마음을 긁었을 겁니다. 그래서 요압의 밑의 동생 이름이 뭐라고요, 아비새, 세 번째 동생 아사헬. 아사헬의 특기가 뭐라고요, 발이 뭐처럼 빠릅니까. 들노루처럼 빠릅니다. 그래서 전쟁하는 중에 아사헬이 아브넬을 봤습니다. 저놈 잡아야겠다. 그래서 상대가 안되는데, 그래도 따라갑니다. 아브넬은 치면 이기지만은 뒤앞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굴립니다. 아브넬도 다윗을 알고 다 아는 건데, 백성들이 누구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라가 합쳐지게 되면 같이 볼 사람인데 그래서 아브넬은 피해서 도망을 겁니다. 도망가니까 공세울 욕심에 죽이려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아사헬아 쫓지 말고 다른 사람을 잡아서 공을 세워라 하니까 안 듣고 가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있었고 다윗 쪽의 총대장되는 요압이 셋째동생 이름이 뭐라고 아사헬이 어디서 죽었습니까. 기브온 전쟁에서 누구한테 죽었습니다. 아브넬에게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넬은 요압의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다 돌아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내전에 점점 길어집니다. 내전이 길어지고 싸우고 길어지는데
사울 쪽에서는 점점 나라가 망해들어가고 다윗은 점점 강성해집니다. 사울 쪽에 북한에 탈북민이 생기는 거처럼 그렇게 되고 점점 실권을 잡아서 왕하고 비슷할만큼 되는 겁니다. 아브넬이 세웠던 곳에서 사울의 왕은 반목이 생겼습니다. 이래서 안되겠다. 그래서 너것들이 항상 다윗으로 왕을 삼자했지 그러자 그래서 이 나라가 누구겁니까. 다윗을 왕으로 세운다고 하지않았습니까. 그래서 와서 만나겠습니다. 아브넬이 소수에 있는 자신의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다윗 지금 어디있지요.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북한에 있는 총사령관이 남한에 온 겁니다. 지금 그런 게 아니지만은. 나라를 통일 시켜주기 위해서, 다윗이 아브넬을 영접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해주고 다윗왕께서 다스리시도록 정리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아브넬이 있던 그 사울 쪽의 지파가 열 두 지파 중에서 열 한 지파입니다. 왕을 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자, 그렇게 하고 잘 대접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요압이 없었습니다. 요압은 그때 전쟁하러 가 있었고, 아브넬이 가고 나서 요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윗의 심복, 마음까지 다 믿을 수 있는 신하를 심복이라 되어있고, 심복입니까 신복입니까. 신복이죠. 신하, 신하와 종 복자입니다. 요압이 적군을 치고 한 후에 돌아왔습니다.
아브넬은 돌아가고 난 다음입니다. 이 사람은 요압의 사람일 겁니다. 요압의 신복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요압의 부하가 그렇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을 말합니다. 아브넬이 왕에게 왔는데 아브넬은 왕에게 평안하게 돌려보내겠습니다 하고 말하니까 성경 흐름이기 때문에 들어놓으면 좋습니다. 왕이 찾아가서 왕이여 왜 그랬습니까. 적군 아닙니까. 그랬습니다. 여기 온 것은 염탐을 하고 치러오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왜 곱게 돌려보냈냐는 거지요. 그런데 뭐하러 왓지요. 제가 설명을 잘 못하는 건지 기억을 못하시는건지 안 들으시는 건지. 뭐하러 왔습니까. 나라를 다윗에게 바치려고 왔습니다. 다윗이 바보가 아닌데 보면 알지요. 요압이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다윗을 못 이기는데, 그런데 현실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다스리는데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천재라도 수족이 없으면 못 걷고 못 움직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수족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브넬이 나라를 통일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로 만들자고 하길래 돌려낸 거지요. 핑계가 되는 겁니다. 대장이 왔는데 뭐하러 온 거겠습니까. 죽여야하는데 왜 그랬습니까 하는데 다윗 몰래 부하를 보내서 아브넬 간지 얼마나 되었냐 해서 데리고 와라, 그런데 어디가서 데리고 왔다고요. 오늘 성경 읽었는데 봉독을 했습니다. 어디가서 데려왔습니까. 무슨 우물가요. 시라 우물가에서. 조용히 말하려듯이 성문으로 데리고 거기서 어떻게 합니까 배를 찔러서 죽였습니다. 복수를 한 거지요. 그래서 요압이 자기 동생 아사헬을 전쟁에서 아브넬이 죽였다고 그런 겁니다. 아브넬이 이럴 줄 알고 아사헬을 자꾸 피했던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였는데, 전쟁터에서 이러는 것은 정상적이면 가질 수 있지만 그러는 거 아니지만은 요압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된 겁니다. 요압도 눈이 있을 것이고 나라 합해지면은 아브넬은 사울 때부터 최고의 용장입니다. 요압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작은 다윗의 대장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볼 때 한참 아래입니다.
솔로몬도 다윗도 아브넬을 대인이라고 합니다. 아브넬은 전체의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그런 장군이었고 요압은 아브넬 보다는 밑에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해지면은 요압이 아브넬 밑으로 갈 가능성이 많아진 겁니다. 앞으로 보면 그렇게 된 거기 때문에 핑계를 대고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쨌든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다윗에게 듣고, 요압의 집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이르되, 아브넬에 대하여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아비의 집으로 돌아갈 지어다. 백탁병자, 백탁병자는 배출에 문제가 있는 병입니다. 그렇게 예언을 합니다. 그렇게하면서 나라가 둘로 나눠진 상태에서 11지파를 총 책임진 사람이 아브넬인데 그 사람이 다윗 쪽에 가서 죽었다, 그 소식이 열 한 지파에 들리면 아브넬 유인해서 죽였다 원수다 그렇게 되겠지요. 이걸 막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음식 먹지 않고 울면서 아브넬을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줍니다.
신하들에게 알리면서, 다윗이 직접 장사하는 걸 보니까 이건 다윗이 아닌거거든요. 다윗이 아니거든요.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그렇게 보니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체의 백성이 돌아온 계기가 된겁니다. 다윗 이후 르호보암 때에 둘로 나눠지게 되지요. 이때 다윗의 자손들을 따라간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입니다. 왜 사울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따라갔겠습니까. 극진하게 된 거지요. 사울 원수였는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울 쪽의 자손들을 극진하게 품고 대접했습니다. 그걸 다 본거지요. 다 떨어져나가도 유다 지파는 누구 지파입니까. 다윗 지파지요. 베냐민 지파가 다윗을 따라간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의 원수인데 하나님의 기름부운 종이라고 한 것이고 품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이 되고 마지막에 결국 사울 쪽의 아들은 내부에서 배신이 나서 사울 아들을 그 부하 하나가 죽이고 죽고 다 하고 난 다음에 통일이 됩니다. 다윗이 강제로 한 게 아니고 우리 왕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군대 장관으로 전쟁을 해서 다 물리치고 세력을 넓히고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전부 안정 되어가고 나라가 많은 전쟁을 거쳤고 일등 공신을 세우고 아비세와 함께 나라 안정되는 어느날 요압과 군사들이 전쟁 나가고 하게 되었는데 마음이 풀어져서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울수록 더 날카롭게 징계해버립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중에서 압살롬이라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가장 아낀 사람이 압살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한 게 있어서 세웠지만은 아니면 압살롬이 아버지 이어서 왕감인데, 이놈이 일이 있어가지고 다윗의 장남이 망나니라서 이복동생을 건드려서 인생을 망쳐버리지요. 그래서 압살롬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백성들을 잘 구슬려서 민심을 사버립니다. 민심이 전부 다윗에게 떠나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버리니까 죽을 거니까 피신합니다. 피신해서 도망가고 그래된 상태에서 갔다가 이제 피난 갔던 다윗 쪽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압살롬은 다윗을 쳐야하니까, 참 못할 일이지요.
그때 군대에 나가는 요압하고 아비새하고 잇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당부합니다. 내 자신은 비록 반역해서 아비 목에 칼을 겨누는 사람이 되었지만 죽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걸 백성들이 다 들었습니다. 요압하고 다 들었는데, 당연히 압살롬이 졌습니다. 길었는데 무슨 나무에 걸렸다고, 상수리나무에 메달려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노새는 빠져나가고 걸려버려서 죽이지 보고하냐고 하니까 임금님이 장군들에게 압살롬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요압이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처참하게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또 반역이 일어나서 그런 틈에서 이제 압살롬의 군대 장군 중에서 아마사가 장군이었는데 어수선한 틈이 되었는데 돌아오고 나라 정리는 반역 때문에 어수선한 때에 세바라는 인물이 나와서 반역을 해서 만드니까 세바를 따라갑니다. 아직까지 유다지파 조차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한 상태라서 요압을 대신해서 삼을 거다 그렇게 말합니다. 유대 지파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 그래서 아마사가 세바를 치려고 가는데, 군대를 모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아비세에게 너는 아마사한테 가서 도와라고 할 때 요압이 따라갑니다. 도우러 오니까 어서오십시오하고 따라가는데 아마사를 또 죽입니다. 왜 죽입니까, 자기 이종사촌인데, 말이 들렸겠지요. 임금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군대장을 삼는답니다. 그러면 요압이 몇 명 죽이죠.
아브넬 죽이고 압살롬 죽이고 아마사 죽이고, 이게 요압입니다. 죽인 이유는 다 있지요.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아마사인데, 요압은 인간적으로 야심이 있었고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적으로 시기가 강했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습니다. 요압은 진정한 충성이 아니고 야심을 위한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을 몰랐고 알지 못했습니다. 요압의 실패 원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자기 위치에서 각자 충성할 때 야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사심을 버리고 진심하게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을 좀 맞췄습니다. 야심을 버리고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충성적으로,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 맡은 일이나 충성할 때 관계에서 그런 요소가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후에 생각해보고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41장, 60장
본문: 사무엘하 3장 2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고 바랍니다.
지난 주에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씀으로 예레미야 2장 1장에서 3절을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의 평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겁니다. 시점으로 말하면 과거가 있고 현재와 미래가 있으나, 사람의 살아가는 것은 늘 현재에서만 사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살이는 없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은 죽은겁니다. 현재를 살아야 믿는 겁니다. 현재를 바로 살면 과거가 좋아지고 현재를 바로 살면 미래도 좋아집니다. 현재를 잘못살면 과거도 나빠지고 현재를 추하게 살면 과거도 추하게 쌓여져갑니다. 농사짓는 땅에 파묻으면 옥토가 되지만은 그냥 올려놓으면 냄새가 납니다. 오늘을 좋게 쌓아놓으면 깨끗한 과거가 되어서 좋은 삶이 됩니다. 추하게 죄짓고 고깃덩어리 족하게 살아나가면 냄새나는 인생이 되어 추한 모습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미래도 그런 미래로 다가오게 되는 겁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오늘을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쌓아봐야겠고 2세들 3세들에게도 청소년 시절, 청년의 때를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가는 그런 때가 되는 거겠습니다.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은 망각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어져버립니다. 기뻤던 때도 잊어버립니다 과거로 가니까. 잊으면 안되는 것도 잊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사람에게 망각성을 준 것은 다 잊어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옛날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믿는 사람이 잊어버리지 않아야할 과거를 잊어버리면 현재를 바로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조강지처 그런 것들을 생각해봤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을 잊어버리면 개구리처럼 되는 겁니다.
어려웠던 때 함께 했던 사람, 어려워서 힘들었던 때 막막하고 캄캄했던 시절,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형편이 부러지고 안정이 되고나니까 자기도 그만 부러진 사람 되고 함께 고생했던 사람 잊어버리면 개구리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소망하며 오늘이 좋으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나가야겠고, 노력을 두었다하고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쥐구멍에도 그 다음은요, 그런 말들은 통계로 나온 속담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가난해도 좋을 때가 있다. 그걸 소망하며 현재 고난을 잘 이겨내는 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압. 기억해야합니다. 다윗의 신하인데 이 요압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중심으로 어떤 자세로 충성해야하며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상하 관계 윗사람을 대할 때 같은 관계, 원리는 같으니까, 어떤 자세로 되어야하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묘한 심오한 진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세상을 찾아가는데, 혈육이 아닌 성경 인물은 혈육 관계입니다. 직장에서 사업관계에서 교회에서 자기 맡은 일을 충성하면서, 사람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것으로 상대해야하는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다윗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아주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쫓겨다닐 때부터 같이 다녔습니다. 요압의 동생이 아비새인데 다윗을 목숨을 구하시도 했습니다. 요압을 아버지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요압이라는 사람은 다윗의 조카가 되는 거거든요. 요압의 어머니 이름이 무엇이라고 스루야, 성경 읽다가 스루야의 아들들아 하면 아버지가 나오는데 이 삼형제의 아버지 이름은 안 나옵니다. 어머니고, 어머니 스루야는 다윗과 남매지간, 누이입니다. 요압과 다윗은 다윗이 외삼촌되고 요압은 조카되는 관계입니다.
스루야 아들 삼형제 이 사람이 아주 참 용장들이고 충신들입니다. 그리고 아사헬의 발은 굉장히 빠르고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 삼형제가 특히 요압은 최측근으로 나라를 세울 때부터 1등으로 요압이 그렇게 공신으로 건국의 공신입니다. 역적의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사람을 어지간히 죽여도 공신은 벌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굉장히 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성 사람들이 다윗을 골려먹습니다. 다윗성애서, 장애인이라도, 저 성을 점령하는 사람은 바로 군총사령관으로 해준다 해서 요압이 올라가서 총사령관이 됩니다. 가장 다윗을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또 요압입니다. 양면을 다 가지고 있는 거지요. 가장 충성한 충신이면서 가장 다윗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든 사람이 요압입니다. 결국 다윗을 배신하고 비참하게 되게 됩니다.
요압의 충성과 실패, 사람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자기 맡은 직분에 충성을 하는데 그 충성하는 그 중심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고 세월 속에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전체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갈라지기 전에 전체 나라를 세운, 출애굽해서 광야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사사 시대,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되는 출발이 사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첫 왕이 사울이고 그 사울이 뒤에가서 망령부려서 실패했지만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다윗을 시기해서 자기 혈육 계통 요나단으로 이어가야하는데 백성들 전부가 다윗을 따르니까 내 핏줄이 왕이 되겠다 해서 다윗을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던 하나님께서 범죄함으로 떠나버렸고 다윗과 함께하시는데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다윗을 쫓아보내셨으므로 이때부터 쪼개진겁니다. 속으로 보면 왕이 된 상태고. 겉으로 드러나기는 한 나라의 왕이 사울인데 내적으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고 갈라진거지요.
사울이 다윗을 실패하고 다윗은 옆나라로 망명가버리고, 사울은 전쟁나서 죽습니다. 사울이 죽고 난 다음에 죽고 난 다음에 사울이 돌아옵니다. 헤브론에 거기 수도로 삼고 자기를 따르는 유다 지파를 하고 있고 유력한 교독할때 아브넬이라는 사람이 권세를 잡고 사울의 아들을 데려가서 왕을 세우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면 나라가 둘로 갈라져버렸지요. 사울의 계통을 이어 요나단은 죽었고 므비보셋이 왕이 되고 헤브론에서는 유다가 왕을 짓고 그렇습니다. 둘로 갈라지니까 내전이 일어나겠죠. 내전이라는 말은 나라 안에서 갈라져 싸우는 걸 내전이라고 합니다. 같은 나라 끼리 갈라져서 하는 걸 내전이라고 합니다. 둘이 전쟁하는데 기브온이라는 곳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데 기브온이라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양쪽이 대치하고 기브온 전쟁이라고 유명합니다. 그때 아브넬이 요압에게 소년들로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칼을 들고 창을 들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장군이 소년들 일어나서 장난하게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교독할 때 몇 명 씩 나왔습니까. 열 두 명씩 나왔는데 양쪽이 죽습니다. 그러니까 맹렬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말이 요압과 부하들 마음을 긁었을 겁니다. 그래서 요압의 밑의 동생 이름이 뭐라고요, 아비새, 세 번째 동생 아사헬. 아사헬의 특기가 뭐라고요, 발이 뭐처럼 빠릅니까. 들노루처럼 빠릅니다. 그래서 전쟁하는 중에 아사헬이 아브넬을 봤습니다. 저놈 잡아야겠다. 그래서 상대가 안되는데, 그래도 따라갑니다. 아브넬은 치면 이기지만은 뒤앞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굴립니다. 아브넬도 다윗을 알고 다 아는 건데, 백성들이 누구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라가 합쳐지게 되면 같이 볼 사람인데 그래서 아브넬은 피해서 도망을 겁니다. 도망가니까 공세울 욕심에 죽이려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아사헬아 쫓지 말고 다른 사람을 잡아서 공을 세워라 하니까 안 듣고 가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있었고 다윗 쪽의 총대장되는 요압이 셋째동생 이름이 뭐라고 아사헬이 어디서 죽었습니까. 기브온 전쟁에서 누구한테 죽었습니다. 아브넬에게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넬은 요압의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다 돌아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내전에 점점 길어집니다. 내전이 길어지고 싸우고 길어지는데
사울 쪽에서는 점점 나라가 망해들어가고 다윗은 점점 강성해집니다. 사울 쪽에 북한에 탈북민이 생기는 거처럼 그렇게 되고 점점 실권을 잡아서 왕하고 비슷할만큼 되는 겁니다. 아브넬이 세웠던 곳에서 사울의 왕은 반목이 생겼습니다. 이래서 안되겠다. 그래서 너것들이 항상 다윗으로 왕을 삼자했지 그러자 그래서 이 나라가 누구겁니까. 다윗을 왕으로 세운다고 하지않았습니까. 그래서 와서 만나겠습니다. 아브넬이 소수에 있는 자신의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다윗 지금 어디있지요.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북한에 있는 총사령관이 남한에 온 겁니다. 지금 그런 게 아니지만은. 나라를 통일 시켜주기 위해서, 다윗이 아브넬을 영접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해주고 다윗왕께서 다스리시도록 정리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아브넬이 있던 그 사울 쪽의 지파가 열 두 지파 중에서 열 한 지파입니다. 왕을 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자, 그렇게 하고 잘 대접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요압이 없었습니다. 요압은 그때 전쟁하러 가 있었고, 아브넬이 가고 나서 요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윗의 심복, 마음까지 다 믿을 수 있는 신하를 심복이라 되어있고, 심복입니까 신복입니까. 신복이죠. 신하, 신하와 종 복자입니다. 요압이 적군을 치고 한 후에 돌아왔습니다.
아브넬은 돌아가고 난 다음입니다. 이 사람은 요압의 사람일 겁니다. 요압의 신복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요압의 부하가 그렇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을 말합니다. 아브넬이 왕에게 왔는데 아브넬은 왕에게 평안하게 돌려보내겠습니다 하고 말하니까 성경 흐름이기 때문에 들어놓으면 좋습니다. 왕이 찾아가서 왕이여 왜 그랬습니까. 적군 아닙니까. 그랬습니다. 여기 온 것은 염탐을 하고 치러오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왜 곱게 돌려보냈냐는 거지요. 그런데 뭐하러 왓지요. 제가 설명을 잘 못하는 건지 기억을 못하시는건지 안 들으시는 건지. 뭐하러 왔습니까. 나라를 다윗에게 바치려고 왔습니다. 다윗이 바보가 아닌데 보면 알지요. 요압이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다윗을 못 이기는데, 그런데 현실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다스리는데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천재라도 수족이 없으면 못 걷고 못 움직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수족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브넬이 나라를 통일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로 만들자고 하길래 돌려낸 거지요. 핑계가 되는 겁니다. 대장이 왔는데 뭐하러 온 거겠습니까. 죽여야하는데 왜 그랬습니까 하는데 다윗 몰래 부하를 보내서 아브넬 간지 얼마나 되었냐 해서 데리고 와라, 그런데 어디가서 데리고 왔다고요. 오늘 성경 읽었는데 봉독을 했습니다. 어디가서 데려왔습니까. 무슨 우물가요. 시라 우물가에서. 조용히 말하려듯이 성문으로 데리고 거기서 어떻게 합니까 배를 찔러서 죽였습니다. 복수를 한 거지요. 그래서 요압이 자기 동생 아사헬을 전쟁에서 아브넬이 죽였다고 그런 겁니다. 아브넬이 이럴 줄 알고 아사헬을 자꾸 피했던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였는데, 전쟁터에서 이러는 것은 정상적이면 가질 수 있지만 그러는 거 아니지만은 요압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된 겁니다. 요압도 눈이 있을 것이고 나라 합해지면은 아브넬은 사울 때부터 최고의 용장입니다. 요압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작은 다윗의 대장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볼 때 한참 아래입니다.
솔로몬도 다윗도 아브넬을 대인이라고 합니다. 아브넬은 전체의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그런 장군이었고 요압은 아브넬 보다는 밑에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해지면은 요압이 아브넬 밑으로 갈 가능성이 많아진 겁니다. 앞으로 보면 그렇게 된 거기 때문에 핑계를 대고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쨌든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다윗에게 듣고, 요압의 집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이르되, 아브넬에 대하여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아비의 집으로 돌아갈 지어다. 백탁병자, 백탁병자는 배출에 문제가 있는 병입니다. 그렇게 예언을 합니다. 그렇게하면서 나라가 둘로 나눠진 상태에서 11지파를 총 책임진 사람이 아브넬인데 그 사람이 다윗 쪽에 가서 죽었다, 그 소식이 열 한 지파에 들리면 아브넬 유인해서 죽였다 원수다 그렇게 되겠지요. 이걸 막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음식 먹지 않고 울면서 아브넬을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줍니다.
신하들에게 알리면서, 다윗이 직접 장사하는 걸 보니까 이건 다윗이 아닌거거든요. 다윗이 아니거든요.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그렇게 보니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체의 백성이 돌아온 계기가 된겁니다. 다윗 이후 르호보암 때에 둘로 나눠지게 되지요. 이때 다윗의 자손들을 따라간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입니다. 왜 사울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따라갔겠습니까. 극진하게 된 거지요. 사울 원수였는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울 쪽의 자손들을 극진하게 품고 대접했습니다. 그걸 다 본거지요. 다 떨어져나가도 유다 지파는 누구 지파입니까. 다윗 지파지요. 베냐민 지파가 다윗을 따라간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의 원수인데 하나님의 기름부운 종이라고 한 것이고 품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이 되고 마지막에 결국 사울 쪽의 아들은 내부에서 배신이 나서 사울 아들을 그 부하 하나가 죽이고 죽고 다 하고 난 다음에 통일이 됩니다. 다윗이 강제로 한 게 아니고 우리 왕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군대 장관으로 전쟁을 해서 다 물리치고 세력을 넓히고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전부 안정 되어가고 나라가 많은 전쟁을 거쳤고 일등 공신을 세우고 아비세와 함께 나라 안정되는 어느날 요압과 군사들이 전쟁 나가고 하게 되었는데 마음이 풀어져서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울수록 더 날카롭게 징계해버립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중에서 압살롬이라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가장 아낀 사람이 압살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한 게 있어서 세웠지만은 아니면 압살롬이 아버지 이어서 왕감인데, 이놈이 일이 있어가지고 다윗의 장남이 망나니라서 이복동생을 건드려서 인생을 망쳐버리지요. 그래서 압살롬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백성들을 잘 구슬려서 민심을 사버립니다. 민심이 전부 다윗에게 떠나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버리니까 죽을 거니까 피신합니다. 피신해서 도망가고 그래된 상태에서 갔다가 이제 피난 갔던 다윗 쪽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압살롬은 다윗을 쳐야하니까, 참 못할 일이지요.
그때 군대에 나가는 요압하고 아비새하고 잇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당부합니다. 내 자신은 비록 반역해서 아비 목에 칼을 겨누는 사람이 되었지만 죽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걸 백성들이 다 들었습니다. 요압하고 다 들었는데, 당연히 압살롬이 졌습니다. 길었는데 무슨 나무에 걸렸다고, 상수리나무에 메달려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노새는 빠져나가고 걸려버려서 죽이지 보고하냐고 하니까 임금님이 장군들에게 압살롬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요압이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처참하게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또 반역이 일어나서 그런 틈에서 이제 압살롬의 군대 장군 중에서 아마사가 장군이었는데 어수선한 틈이 되었는데 돌아오고 나라 정리는 반역 때문에 어수선한 때에 세바라는 인물이 나와서 반역을 해서 만드니까 세바를 따라갑니다. 아직까지 유다지파 조차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한 상태라서 요압을 대신해서 삼을 거다 그렇게 말합니다. 유대 지파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 그래서 아마사가 세바를 치려고 가는데, 군대를 모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아비세에게 너는 아마사한테 가서 도와라고 할 때 요압이 따라갑니다. 도우러 오니까 어서오십시오하고 따라가는데 아마사를 또 죽입니다. 왜 죽입니까, 자기 이종사촌인데, 말이 들렸겠지요. 임금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군대장을 삼는답니다. 그러면 요압이 몇 명 죽이죠.
아브넬 죽이고 압살롬 죽이고 아마사 죽이고, 이게 요압입니다. 죽인 이유는 다 있지요.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아마사인데, 요압은 인간적으로 야심이 있었고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적으로 시기가 강했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습니다. 요압은 진정한 충성이 아니고 야심을 위한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을 몰랐고 알지 못했습니다. 요압의 실패 원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자기 위치에서 각자 충성할 때 야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사심을 버리고 진심하게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을 좀 맞췄습니다. 야심을 버리고 충성으로만, 시기를 버리고 충성적으로, 신앙으로만 인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 맡은 일이나 충성할 때 관계에서 그런 요소가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후에 생각해보고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