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밤
김동민2025-11-19조회 21추천 1
2025년 11월 19일 수밤
찬송: 134장, 165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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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말씀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언제 과거를 기억할 것인가, 현재를 기억합니다. 과거와 현재 가운데 중 현재가 있습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세월은 과거고 앞으로 세월은 미래입니다. 일반적으로 과거는 오늘을 만들었고 현재는 미래를 만듭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현재는 미래를 만들며 현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머물지 않고 과거가 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만듭니다. 사람은 평생 현재만 살아갑니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현재를 떠나면 사람은 죽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생명도 없는 겁니다. 생명이란 살아있는 것이란 현재라는 뜻입니다. 맞나요. 현재가 지나면 뭐가 됩니까.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될지 안될지 모르는 겁니다. 안오면 모르는 것이고, 평생을 현재로만 사는 겁니다. 과거에 붙들려메어 산다, 그렇게 사는데 언제 메였느냐, 현재에서 과거에 메이는 겁니다.
미래에 꿈을 꾸고 산다, 현재 꿈을 꾸는 겁니다. 지나올 단어도 다가올 미래도 영광도 있고 필요도 있고 기억도 하고 소망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라. 마귀는 과거를 기억해라, 미래를 소망해라. 그런데 현재는 쏙 빼먹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현재가 빠졌습니다. 언제에 미래를 소망합니까. 현재, 언제 과거를 기억합니까. 현재. 그래서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미래를 소망하는 겁니다. 현재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귀하게 말씀이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었습니다. 계약서를 쓰면 계약과 관련된 모든 게 다 들어갑니다. 쌍방이 서명을 하면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계약서를 쓰고 그러면 법에 묶여버립니다. 쌍방이 다 파기하면 없어집니다. 그런데 한 쪽이 못한다고 하면 못하는 겁니다. 계약이라는 것은 다 들어가는 겁니다.
집을 매매 계약을 합니다. 사는 사람은 천 만원 깎읍시다. 그렇게 해서 샀습니다. 그러다가 집값이 내려버렸습니다. 서울 아파트 값이 그렇게 내린다고 하지요. 참 무서운 나라지요. 그러니까 4000만 들게 생겼으니까 못사겠는데 해약합시다 하면 장난합니까. 한국 사람 도장 찍을 때 무슨 색이지요. 빨간색이지요, 피를 말합니다. 상대방이 해약을 안하면 안되는 겁니다. 집을 사고 팔 때, 계약금 전부다 들어가는 게 계약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계약 속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임하니라. 네게 임하니라. 오늘 봉독한 성경이 뭐지요, 예레미야서, 이사야는 이사야 선지가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기록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이냐. 베냐민 땅, 어디 선지자입니까. 제사장 종 누구의 아들입니까. 베냐민 땅, 어느 지방입니까. 아나돗이라는 지방입니다. 아나돗 사람입니다. 베냐민 땅의 아나돗. 아나돗이라는 지방에서 제사장의 아들이 예레미야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고 아들은 선지자가 된겁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에 살던 힐기야라는 제사장 아들 예레미야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고 아들은 선지자인데, 제사장, 선지자, 왕이 그리스도직인데 가장 환란을 많이 겪는 직분이 뭐냐, 구약시대 때 제사장은, 자체가 도륙당할 일이 있는데, 환란 고난을 그렇게 받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고난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가장 많이 받았고 받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제사장을 영접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왕을 영접한다는 말도 없고.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대개 보면은 한자말입니다. 양약은 고구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일반적으로 몸에 좋은 인삼 홍삼같은 거 전부 씁니다. 그래서 양약은 고구. 무슨 뜻이라고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충언할려면 목숨을 내놔야하는데 옳은 말 바른 말 유익된 그런 말은 귀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충언은 역이라고 합니다. 선지자가 하는 말은 양약입니다 전부 다. 양약입니다. 그런데 씁니다. 먹으려고 하니까. 귀에 들으면 전부 충언입니다. 그런데 듣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선지자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필요한 경우는 애먹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겁니다.
가서 예루살렘에 외쳐 말할지니라. 예루살렘 거면이니까 하나님의 나라 중심된 곳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나라에 교파가 많습니다. 제일 바깥에 통합, 합동, 고신, 예루살렘은 우리 공회입니다. 그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고신은 고신대로 보겠고 합동은 합동대로 보는데 우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신앙 생활 가장 잘 하는 사람들. 예수를 성경 말씀대로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예루살렘 거면이라고 합니다. 우리 총공회라고 하면 자타가 다 인정합니다. 백 목사님 초기에는 이단이라고도 하다가 마지막에 사과 다 하고 총공회 교인들은 예수 잘 믿는 사람들, 그런 곳으로 믿음으로 퍼져나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냐 그랬죠 외쳐말할지니라. 포로된게 세 번인가 일텐데 그런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에게 가서 말해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거면에게 가서 그렇게 외칠 때 옳은 말씀이 듣기 싫은 귀들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애를 참 많이 씁니다.
예레미야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이런 선지자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고, 신약에 선지자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한 걸음 더 올라가면 레위인입니다. 우리 전부 다 레위입니다. 구약에는 레위 지파인데 오늘 우리는 다 레위인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입니다. 그것처럼, 신약은 우리 전부 다가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면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왕입니다. 그러면 좋아하지요. 굉장히 어려운 자리입니다 왕. 그래서 선지자는 우리 모두가 선지자인데 기름을 부워서 안식을 받아야하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지자냐, 겉으로 드러나기에 목사가 선지자입니다. 이건 외부적인 명분입니다. 실제 선지자는, 누구냐, 어떤 일이던지, 만나는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게 잘 찾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만나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찾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목사일수도 있고 장로일수도 있고 주일학생일수도 있고 목사일수도 있는 겁니다. 나아만 대장의 여종, 부엌에서 주모 도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그 여종, 그 노예로 잡혀간 그 여종이 선지자였고 엘리사같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오늘도 선지자는 자기 집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어머니니까 내 말 들어, 가장이 일을 철회할 때는 의논도 하고 이렇게 해야겠다. 그렇게 해야겠고 정확하지 않으면 더 좋은 의견이 없느냐, 정말 옳은 거, 바른 거 이걸 찾는 게 선지자를 영접하는 것이고 듣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란 우리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옳은 말이란 아무에게나 가는 게 아니고 주는 게 아니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인데 아모스 8장에 보니까 여호와께서는 발람이 발락이 갈 때 제물이 탐이 나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까 발람을 데려온 것은 저주하려고 데려온 겁니다. 그래서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라고 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을 쳐서 멸하려고 하는데 발람이 축복해라, 저주하지말라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제물에 욕심이 눈이 어두워서 이스라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나서 우상섬기고 죄를 지어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마지막에 술사가 되었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심술쟁이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름이, 요나라는 선지자입니다. 요나라는 선지자는 회개하라고 외쳐라, 40일 뒤에 무너진다고, 제가 가서 외쳤는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안 멸할 거 아닙니까. 나는 뭐가 됩니까.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다가 물고기 뱃속에 3일 있다 나왔는데, 외치니까 그 성 사람들이 회개를 철저하게 하니까 취소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니까 안 무너지네,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본다고 심술굳게 보고 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이 내려쬐는데 성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그 여름에 그늘에 하니까 좋거든요. 그런데 그날 밤에 벌레를 보내서 다 씹어먹게 하니까 다시 내리쬐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너가 심었냐 길렀냐, 이 성에는 얼마나 사람과 짐승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런 선지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선지자입니다. 우리는 발람같은 요나같은 그런 선지자가 되면 안되겠고.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그런 선지가 되어야겠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소년 때 우의, 뭐라고 했지요. 일반적으로 비옷을 우위라고 합니다. 네 소년 때 우정, 결혼 때 사랑,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이걸 왜 말하느냐, 곧 광야에서 어떻게 너를 기억하노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안타깝게 보시면서 옛날을 기억하는 겁니다. 과거 출애굽 하고 나서 광야 40년을 기억을 하는 겁니다.
그때는 너희들이 나한테 이렇게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패악을 많이 부릅니다. 나오기 싫어서 그러니까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나오게 하셨고, 나오자마자 홍해바다 만나니까 또 모세를 원망을 하고, 건너가는데 3일 정도 지나고 나서 광야에서 물이 없으니까 원망을 하고, 기력이 쇠한다고 원망을 하고 그랬는데, 그 중에서도 그들은 인도자 모세를 따라서 구름기둥 불기등 따라서 가는 겁니다. 모세 아니면 어찌할 바를 못 두겠는 것이고 광야 40년 있으면 이스라엘 여정들은 어렸고 무지했고 한편으로 어리석었고 순수했고, 순진했다. 그렇게 따라갔지만은 그때가 그래도 좋았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보니까 3절에 그때 이스라엘에 나 여호와의 성물이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재물이었다. 이스라엘이 성물이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별된 하나님의 것이었고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다. 하나님께서 농사지은 첫 열매, 하나님 역사의 첫 열매는 그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어렵고, 어려서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연약했고 그랬지만은 하나님이 전부였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전부였고 모세가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아가면서 그렇게 갔는데 지나고 나서 사사시대를 거치고 왕정시대 거치고 그러고 보니까 이들이 광야에서는 어렵고 어리고 무지하고 어리석었고 그랬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니까 세월이 지났고 사사시대가 지나서 장성했고, 사사들 통해서 자랐고 왕정시대가 되니까 더 자랐습니다. 더 자랐으면은 하나님 관계에서 자란건데, 지식도 지혜도 인격도 관계도 점점 자라가면서 성화되고, 자라가면서 점점 더 멀어지고 타락해가는 겁니다. 더 나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때가 좋았다고 옛날을 기억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탄식을 하고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앞에 첫째 선지자임을 기억하고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있었던 거처럼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 그 과거로 기억하시는 것처럼 현재가 과거를 만드는데, 그보다 먼저, 지나온 우리 과거를 두고 우리를 돌아볼 때 현재 내 모습과 지나온 과거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현재 내 모습이 과거보다 더 나아졌는가, 자랐는가. 더 발전했는가 더 성화되고 좋아졌는가.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멀어지고 퇴보되고 가라앉고 식어졌는가. 옛날의 나와 현재의 나를 보실 때 자라간다 이러시느냐, 아니면 옛날에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보시는지, 자기와 하나님 관계는 아무도 몰라도 자기가 압니다.
과거를 대개 다 가진 우리들입니다. 옛날의 나의 신앙 생활, 그 신앙과 현재 내 신앙을 비유해보면서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로 살아갈지언정 나이가 들어서 못할지라도, 하나님과 관계라는 것은 사람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젖먹고 밥먹고 자라면 그게 아이의 하는 일입니다. 100점입니다, 아이는 공부도 못합니다. 일도 못합니다. 도와주지도 못합니다. 밥 잘먹고 안 아프고 놀고 그러면 100점입니다, 그런데 10살 즈음 되면 놀기만하고 공부안하면 그때는 나쁜 겁니다. 한 열 다섯 살 정도 되면 밥먹고 잘 먹고 부모님을 도와드려야합니다. 도와드려야합니다. 자라는 겁니다. 요즘은 캥거루족이 많아진다고요, 나이 30 40이 되어서도 부모님에게 얹혀산다고. 살아가다가 실수해서 그렇겠지만 두 번 다시, 내가 사람인데 그런가. 나이가 서른되고 마흔이 되어도 능골 빼먹으려고 하면 캥거루네.
점점 자라가야하는 겁니다. 자라가야하는데 과거보다 못하는 오늘이 되면 오늘처럼 그렇게 대하시는 겁니다. 옛날에 주일 지킬 때는 반사 활동할 때는 그러면 한 길을 같이 그렇게, 학생수가 많아도 그렇지만은 주일아침되면 나온다, 그런 분들 아직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일주일에 새벽기도 꼬박 나오더니 요즘 새벽기도 안 나오네, 하나님께서 옛날이 그립다고 그런 거지요. 꼭 같은 겁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겠냐, 그런겁니다.
현재라는 것은 시점으로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내 현재가 미래를 만듭니다. 나의 과거는 언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에 만듭니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오늘 내가 잘 살면 내일이 오늘되면 아름다운 오늘은 복된 과거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내 생활이 추하게 지저분하게 살면 그러면 과거됩니다. 과거가 추한 과거, 뒤집어놓은 과거가 되는 겁니다. 오늘을 바로 살아서 나의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어가야겠다. 현재를 만들어서 쌓아나가면 아름다운 과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참 감사하다. 잘 살았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현재를 잘못살면 과거가 잘못 쌓이게 되고 끔찍하다, 왜 그렇게 살았던고.
10년 전의 과거 생활,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죄만 지을 거 같지 않을 거 같은데 부끄러운 일들 죄송한 일들이 없으십니까. 그런 과거를 기억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벗어버리고 싶은 과거, 잘라내고 싶은 과거 그런 과거, 없으신가요. 없으면 참 좋겠습니다만은 저도 그런 과거가 참 많습니다. 과거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그 과거를 떼는 방법이 안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차근차근 쌓여서 그렇게 되면 떼내어버리고 싶은 과거는 묻히겠지요. 그게 우리가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주신 겁니다.
현재는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가자. 생각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4장, 165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오후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말씀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언제 과거를 기억할 것인가, 현재를 기억합니다. 과거와 현재 가운데 중 현재가 있습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세월은 과거고 앞으로 세월은 미래입니다. 일반적으로 과거는 오늘을 만들었고 현재는 미래를 만듭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현재는 미래를 만들며 현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머물지 않고 과거가 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만듭니다. 사람은 평생 현재만 살아갑니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현재를 떠나면 사람은 죽는 겁니다. 현재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생명도 없는 겁니다. 생명이란 살아있는 것이란 현재라는 뜻입니다. 맞나요. 현재가 지나면 뭐가 됩니까.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될지 안될지 모르는 겁니다. 안오면 모르는 것이고, 평생을 현재로만 사는 겁니다. 과거에 붙들려메어 산다, 그렇게 사는데 언제 메였느냐, 현재에서 과거에 메이는 겁니다.
미래에 꿈을 꾸고 산다, 현재 꿈을 꾸는 겁니다. 지나올 단어도 다가올 미래도 영광도 있고 필요도 있고 기억도 하고 소망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라. 마귀는 과거를 기억해라, 미래를 소망해라. 그런데 현재는 쏙 빼먹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현재가 빠졌습니다. 언제에 미래를 소망합니까. 현재, 언제 과거를 기억합니까. 현재. 그래서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미래를 소망하는 겁니다. 현재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귀하게 말씀이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었습니다. 계약서를 쓰면 계약과 관련된 모든 게 다 들어갑니다. 쌍방이 서명을 하면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계약서를 쓰고 그러면 법에 묶여버립니다. 쌍방이 다 파기하면 없어집니다. 그런데 한 쪽이 못한다고 하면 못하는 겁니다. 계약이라는 것은 다 들어가는 겁니다.
집을 매매 계약을 합니다. 사는 사람은 천 만원 깎읍시다. 그렇게 해서 샀습니다. 그러다가 집값이 내려버렸습니다. 서울 아파트 값이 그렇게 내린다고 하지요. 참 무서운 나라지요. 그러니까 4000만 들게 생겼으니까 못사겠는데 해약합시다 하면 장난합니까. 한국 사람 도장 찍을 때 무슨 색이지요. 빨간색이지요, 피를 말합니다. 상대방이 해약을 안하면 안되는 겁니다. 집을 사고 팔 때, 계약금 전부다 들어가는 게 계약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계약 속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임하니라. 네게 임하니라. 오늘 봉독한 성경이 뭐지요, 예레미야서, 이사야는 이사야 선지가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기록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이냐. 베냐민 땅, 어디 선지자입니까. 제사장 종 누구의 아들입니까. 베냐민 땅, 어느 지방입니까. 아나돗이라는 지방입니다. 아나돗 사람입니다. 베냐민 땅의 아나돗. 아나돗이라는 지방에서 제사장의 아들이 예레미야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고 아들은 선지자가 된겁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에 살던 힐기야라는 제사장 아들 예레미야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고 아들은 선지자인데, 제사장, 선지자, 왕이 그리스도직인데 가장 환란을 많이 겪는 직분이 뭐냐, 구약시대 때 제사장은, 자체가 도륙당할 일이 있는데, 환란 고난을 그렇게 받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고난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가장 많이 받았고 받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제사장을 영접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왕을 영접한다는 말도 없고.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대개 보면은 한자말입니다. 양약은 고구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일반적으로 몸에 좋은 인삼 홍삼같은 거 전부 씁니다. 그래서 양약은 고구. 무슨 뜻이라고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충언할려면 목숨을 내놔야하는데 옳은 말 바른 말 유익된 그런 말은 귀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충언은 역이라고 합니다. 선지자가 하는 말은 양약입니다 전부 다. 양약입니다. 그런데 씁니다. 먹으려고 하니까. 귀에 들으면 전부 충언입니다. 그런데 듣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선지자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필요한 경우는 애먹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겁니다.
가서 예루살렘에 외쳐 말할지니라. 예루살렘 거면이니까 하나님의 나라 중심된 곳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나라에 교파가 많습니다. 제일 바깥에 통합, 합동, 고신, 예루살렘은 우리 공회입니다. 그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고신은 고신대로 보겠고 합동은 합동대로 보는데 우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신앙 생활 가장 잘 하는 사람들. 예수를 성경 말씀대로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예루살렘 거면이라고 합니다. 우리 총공회라고 하면 자타가 다 인정합니다. 백 목사님 초기에는 이단이라고도 하다가 마지막에 사과 다 하고 총공회 교인들은 예수 잘 믿는 사람들, 그런 곳으로 믿음으로 퍼져나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냐 그랬죠 외쳐말할지니라. 포로된게 세 번인가 일텐데 그런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에게 가서 말해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거면에게 가서 그렇게 외칠 때 옳은 말씀이 듣기 싫은 귀들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애를 참 많이 씁니다.
예레미야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이런 선지자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고, 신약에 선지자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한 걸음 더 올라가면 레위인입니다. 우리 전부 다 레위입니다. 구약에는 레위 지파인데 오늘 우리는 다 레위인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입니다. 그것처럼, 신약은 우리 전부 다가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면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왕입니다. 그러면 좋아하지요. 굉장히 어려운 자리입니다 왕. 그래서 선지자는 우리 모두가 선지자인데 기름을 부워서 안식을 받아야하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지자냐, 겉으로 드러나기에 목사가 선지자입니다. 이건 외부적인 명분입니다. 실제 선지자는, 누구냐, 어떤 일이던지, 만나는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게 잘 찾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만나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찾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목사일수도 있고 장로일수도 있고 주일학생일수도 있고 목사일수도 있는 겁니다. 나아만 대장의 여종, 부엌에서 주모 도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그 여종, 그 노예로 잡혀간 그 여종이 선지자였고 엘리사같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오늘도 선지자는 자기 집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어머니니까 내 말 들어, 가장이 일을 철회할 때는 의논도 하고 이렇게 해야겠다. 그렇게 해야겠고 정확하지 않으면 더 좋은 의견이 없느냐, 정말 옳은 거, 바른 거 이걸 찾는 게 선지자를 영접하는 것이고 듣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란 우리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옳은 말이란 아무에게나 가는 게 아니고 주는 게 아니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인데 아모스 8장에 보니까 여호와께서는 발람이 발락이 갈 때 제물이 탐이 나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까 발람을 데려온 것은 저주하려고 데려온 겁니다. 그래서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라고 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을 쳐서 멸하려고 하는데 발람이 축복해라, 저주하지말라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제물에 욕심이 눈이 어두워서 이스라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나서 우상섬기고 죄를 지어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마지막에 술사가 되었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심술쟁이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름이, 요나라는 선지자입니다. 요나라는 선지자는 회개하라고 외쳐라, 40일 뒤에 무너진다고, 제가 가서 외쳤는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안 멸할 거 아닙니까. 나는 뭐가 됩니까.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다가 물고기 뱃속에 3일 있다 나왔는데, 외치니까 그 성 사람들이 회개를 철저하게 하니까 취소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니까 안 무너지네,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본다고 심술굳게 보고 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이 내려쬐는데 성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그 여름에 그늘에 하니까 좋거든요. 그런데 그날 밤에 벌레를 보내서 다 씹어먹게 하니까 다시 내리쬐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너가 심었냐 길렀냐, 이 성에는 얼마나 사람과 짐승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런 선지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선지자입니다. 우리는 발람같은 요나같은 그런 선지자가 되면 안되겠고.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그런 선지가 되어야겠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소년 때 우의, 뭐라고 했지요. 일반적으로 비옷을 우위라고 합니다. 네 소년 때 우정, 결혼 때 사랑,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이걸 왜 말하느냐, 곧 광야에서 어떻게 너를 기억하노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안타깝게 보시면서 옛날을 기억하는 겁니다. 과거 출애굽 하고 나서 광야 40년을 기억을 하는 겁니다.
그때는 너희들이 나한테 이렇게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패악을 많이 부릅니다. 나오기 싫어서 그러니까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나오게 하셨고, 나오자마자 홍해바다 만나니까 또 모세를 원망을 하고, 건너가는데 3일 정도 지나고 나서 광야에서 물이 없으니까 원망을 하고, 기력이 쇠한다고 원망을 하고 그랬는데, 그 중에서도 그들은 인도자 모세를 따라서 구름기둥 불기등 따라서 가는 겁니다. 모세 아니면 어찌할 바를 못 두겠는 것이고 광야 40년 있으면 이스라엘 여정들은 어렸고 무지했고 한편으로 어리석었고 순수했고, 순진했다. 그렇게 따라갔지만은 그때가 그래도 좋았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보니까 3절에 그때 이스라엘에 나 여호와의 성물이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재물이었다. 이스라엘이 성물이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별된 하나님의 것이었고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다. 하나님께서 농사지은 첫 열매, 하나님 역사의 첫 열매는 그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어렵고, 어려서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연약했고 그랬지만은 하나님이 전부였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전부였고 모세가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아가면서 그렇게 갔는데 지나고 나서 사사시대를 거치고 왕정시대 거치고 그러고 보니까 이들이 광야에서는 어렵고 어리고 무지하고 어리석었고 그랬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니까 세월이 지났고 사사시대가 지나서 장성했고, 사사들 통해서 자랐고 왕정시대가 되니까 더 자랐습니다. 더 자랐으면은 하나님 관계에서 자란건데, 지식도 지혜도 인격도 관계도 점점 자라가면서 성화되고, 자라가면서 점점 더 멀어지고 타락해가는 겁니다. 더 나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때가 좋았다고 옛날을 기억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탄식을 하고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앞에 첫째 선지자임을 기억하고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있었던 거처럼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 그 과거로 기억하시는 것처럼 현재가 과거를 만드는데, 그보다 먼저, 지나온 우리 과거를 두고 우리를 돌아볼 때 현재 내 모습과 지나온 과거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현재 내 모습이 과거보다 더 나아졌는가, 자랐는가. 더 발전했는가 더 성화되고 좋아졌는가.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멀어지고 퇴보되고 가라앉고 식어졌는가. 옛날의 나와 현재의 나를 보실 때 자라간다 이러시느냐, 아니면 옛날에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보시는지, 자기와 하나님 관계는 아무도 몰라도 자기가 압니다.
과거를 대개 다 가진 우리들입니다. 옛날의 나의 신앙 생활, 그 신앙과 현재 내 신앙을 비유해보면서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로 살아갈지언정 나이가 들어서 못할지라도, 하나님과 관계라는 것은 사람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젖먹고 밥먹고 자라면 그게 아이의 하는 일입니다. 100점입니다, 아이는 공부도 못합니다. 일도 못합니다. 도와주지도 못합니다. 밥 잘먹고 안 아프고 놀고 그러면 100점입니다, 그런데 10살 즈음 되면 놀기만하고 공부안하면 그때는 나쁜 겁니다. 한 열 다섯 살 정도 되면 밥먹고 잘 먹고 부모님을 도와드려야합니다. 도와드려야합니다. 자라는 겁니다. 요즘은 캥거루족이 많아진다고요, 나이 30 40이 되어서도 부모님에게 얹혀산다고. 살아가다가 실수해서 그렇겠지만 두 번 다시, 내가 사람인데 그런가. 나이가 서른되고 마흔이 되어도 능골 빼먹으려고 하면 캥거루네.
점점 자라가야하는 겁니다. 자라가야하는데 과거보다 못하는 오늘이 되면 오늘처럼 그렇게 대하시는 겁니다. 옛날에 주일 지킬 때는 반사 활동할 때는 그러면 한 길을 같이 그렇게, 학생수가 많아도 그렇지만은 주일아침되면 나온다, 그런 분들 아직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일주일에 새벽기도 꼬박 나오더니 요즘 새벽기도 안 나오네, 하나님께서 옛날이 그립다고 그런 거지요. 꼭 같은 겁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겠냐, 그런겁니다.
현재라는 것은 시점으로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내 현재가 미래를 만듭니다. 나의 과거는 언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에 만듭니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오늘 내가 잘 살면 내일이 오늘되면 아름다운 오늘은 복된 과거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내 생활이 추하게 지저분하게 살면 그러면 과거됩니다. 과거가 추한 과거, 뒤집어놓은 과거가 되는 겁니다. 오늘을 바로 살아서 나의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어가야겠다. 현재를 만들어서 쌓아나가면 아름다운 과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참 감사하다. 잘 살았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현재를 잘못살면 과거가 잘못 쌓이게 되고 끔찍하다, 왜 그렇게 살았던고.
10년 전의 과거 생활,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죄만 지을 거 같지 않을 거 같은데 부끄러운 일들 죄송한 일들이 없으십니까. 그런 과거를 기억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벗어버리고 싶은 과거, 잘라내고 싶은 과거 그런 과거, 없으신가요. 없으면 참 좋겠습니다만은 저도 그런 과거가 참 많습니다. 과거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그 과거를 떼는 방법이 안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차근차근 쌓여서 그렇게 되면 떼내어버리고 싶은 과거는 묻히겠지요. 그게 우리가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주신 겁니다.
현재는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가자. 생각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