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1-16조회 29추천 1
2025년 11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134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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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로 합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합시다. 사람이 사는 모든 생활이 현재의 생활이므로 현재가 잘못되면 평생이 잘못됩니다. 지금 현재 바로 살면 모든 것이 바로되고 잘되고 지금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눈물 흘리고 뉘우치게 합니다. 눈물 흘리게 하고 미래를 향하여 이를 갈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고 마귀의 미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후회하고 뉘우치므로 결심하고 다짐함으로 성령의 인도가 되는 것이고 과거로 뉘우치는데 후회하면서 열 시간 기도에 아홉시간을 그리하고 한 시간을 각오하고 그러는데 현재는 그 열 시간을 기도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면 마귀의 미혹입니다. 다 헛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그렇게 미혹합니다. 눈물로 현재를 빼앗아갑니다. 각오와 결심하고 현재를 빼앗갑니다. 현재를 빼앗기면 전부 다 빼앗기는 겁니다. 마귀는 그렇게 우리를 미혹을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왜 그렇게 기억하느냐, 미래를 소망하기 위해서,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이고 인생의 흐름입니다. 무궁세계는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은 시간이 해당되지 않는 분입니다. 처음과 나중이고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무궁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나라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나라가 무궁세계입니다. 물질계는 시공의 제한을 받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인생은 흘러가고 넓고 노쇠해지고 죽는 것이고 한 세대가 오고 돌고 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왔고 살게 되어진 겁니다. 살아온 세월은 과거, 살아올 세월을 미래, 살고 있는 세월을 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현재는 과거가 만들었고 미래를 만듭니다. 미래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하기 위해서, 마귀의 미혹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니까 가만히 있다가 두 사람이 잘 지냈는데 과거에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잘못한 게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잊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잘못한 걸 생각하니까 화가 나고 괴씸합니다. 그게 마귀의 미혹입니다. 그게 죄가 되는 것이고 미혹이 되는 겁니다. 그런 과거는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잘한 것은 잊어버립니다. 남에게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도 안 잊어버리고 기억을 합니다. 복입니까 불행입니까. 반대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에게 잘해주는 거 다 잊어버리고 그 반대는 기억합니다. 자기는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은 만들어도 헛일입니다. 향방없는 거 같지 아니고 허공을 치는 거 같지 아니하여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그렇게 될까 두렵다. 신앙생활의 가장 근본이고 여기서 출발하면 전부 다 헛일이 됩니다. 부부사이도 남편과 아내가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고치려고 하면 부부사이 해결이 되고 남편이 아내를 원망하고 그러면 해결은 없는 겁니다. 모든 사람 관계 다 같은 겁니다. 그 목사 교회는 그냥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 목사 그런 교인 교회는 어디가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28년 넘는 동안 이 설교만 하는 겁니다. 나 자신 고치는 게 중요합니다. 과거 기업 현재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신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할 것이라 하셨고 200만명 한 민족을 만드시고 인도해내신 겁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서 인도해내셨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갔으나 애굽 사람들이 아닙니다.
애굽 사람이 아닌데 애굽에 살다보니까 그들의 정체성을 잊었습니다. 힘이 드니까 애굽에서 그래서 가마 옆에 있던 생각이 난다고 그런 기억을 합니다. 그런 기억은 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없는 종, 미래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도 미래 없는 세상은 절망, 가장 고통 중에 큰 고통이 절망의 고통입니다. 내 자식은 바로 되겠지. 그 손자는 바로 되겠지. 소망을 바로 가지면 안되는 것이고 살 맛이 나지 않는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 사는 이상, 애굽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종입니다. 대대로 종입니다. 그 사실은 망각하고 따뜻했던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종이었던 사실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0일 만에 시내산에서 돌판에다가 10계명 기록해주시고 첫 머리 글자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낸. 잊지 말라는 겁니다. 잊지 말아라, 안 변합니다. 기억하라고
십계명 전체의 머리말입니다.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열 가지 의미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걸 박아놨습니다. 종 되었던 집을 기억해라. 따라가는데 종되었던 사실은 잊어버리고 따라갈 때는 순수했다고 말씀하시지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기업을 받았습니다. 달세방을 전전하다가 드디어 자가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좁아도 내 집이다. 달세 올릴라 전세 올릴라 그러다가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으니까 감사하다. 그러면서 좁아도 달세방을 생각해봐라, 감지덕지다. 그런데 뭐 같아서 그 욕심이 들어서 더 큰집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것 좋겠지만 계속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겠지요. 기업을 마련했습니다. 그걸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과거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현재가 불행한 겁니다.
헬조선이다, 요즘은 안 들리지요. 부부가 명문대에서 만나 결혼하고, 남편이 똑똑해서 사업해서 돈 많이 벌었고 자식들 잘 살고 있고 참 복인데, 외로워서 적적해서 바쁜 남편이 자기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배가 불러서 옛날 잊어버리니까 그런 것도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과거 배고팠던 시절 이걸 이저어리는 거니까. 그래서 과거를 잊어버리면 미래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예레미야를 보면 이사야 선지자들이 여러 면에서 성경 기록상 비교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다음입니다. 성경에 선지서가 12개인데, 가장 큰 대선지서가 이사야 선지서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네 왕 때 이스라엘이 고비를 남아서 내리막기로 가던 그 중간입니다. 그래서 멸망하기 까지는 안간 상태가 이사야 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때는 히스기야왕 6년, 이스라엘 호세아 9년인가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해버립니다. 흩어져버립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 때인데 호세아라는 마지막 왕이 망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열 두 지파를 전부 보면 열 지파가 망했지만 어디로 가겠습니까. 쫓아내면은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백 목사님 가시고 간 다음에 다른 교회 간 교인들이 많습니다. 4천명 중에서 3분지 1이 남았고 지금 오백명 정도 남았다는데 2000명 이상이 갔는데 대부분이 고신으로 갔을 겁니다. 가까운데니까. 그러면 열 두 지파가 나누어졌고 열 지파가 망했습니다. 백성들 쫓아내버렸습니다. 남쪽을 많이 오겠지요. 그래서 유다 쪽에 많이 왔을 것이고 망할 때까지는 안갔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킵니다 중심을 뒤에 보면 중심을 시험하시니라, 그 깊은 속 중심을 튀어나온 겁니다. 그렇게 잘했는데 18만 5000명을 다 물리치고 바벨론에서 환대하니까 히스기야가 교맨해서 잊어버린 겁니다. 아들들이 마지막에 돌아가면서 왕이 되지요. 아들인지 손자인지 히스기야가 아들이 손자인데 예레미야가 그때까지 삽니다. 살았고 바벨론이 유다나라 정복할 때 자기 밑에 정복한 장군에게 예레미야 보여주면서 잘 대우를 해라, 그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게 다 이스라엘이다 망해버렸기 때문에 나라 자체를 망하지 않게하는 기도를 하지말고 벌을 받아라. 그 대신에 다음을 기다려라, 기약해라 그 말이지요. 그런 말씀으로 항복해라, 내가 너희를 바벨론에 붙였으니까 맞아라. 바벨론에 항복한 사람은 산다.
히스기야 네가 항복하면 산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매를 안 맞겠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말했는데 마지막에 히스기야왕 11년이지요. 뱅 둘러쌓였습니다. 지금같은 나라 북한 같은 러시아 같은 미국과 적대국은 미국이 중심되어서 제재되니까 문제가 되어버리거든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양식을 가져서 보고품을 어디서 말하느냐, 빼앗아써라, 그때 명나라가 들어오고 그래가지고 전세가 뒤집어지면서 한쪽에 갖혔을 때 뱅 둘러쌓여있으니까 나중에는 짐승의 피를 마시기도 하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죽은 사람 추워죽은 사람, 전쟁 나면은 현장에서 그렇게 주는 사람보다는 굶어죽고 추워죽고 전염병으로 죽고 그렇게 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군사들이 벽 보고 도망을 치는데 히스기야는 눈을 빼버리고 아들들 다 죽어버리고 하나님 예언대로 되었지요.
밥통 목사들 먹사라고 하던가요, 그런 사람들은 선지자가 못됩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밝은 사람이 있으면 선지자입니다. 어떤 일을 두고 나올 때 목사는 전지자가 아닙니다.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 찾아보는 거지요. 그 의견이 바로 선지자의 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사람으로 고정되나 신약의 선지자는 달라지는 겁니다. 오늘은 선지자였다가 내일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옳은 말은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은 선지자를 핍박하는 겁니다. 옳은 말은 홀대하는 것은 믿는 것은 옳은 말을 기울여야합니다. 우리 공회에 노소원에 말하는 것이 심방할 때 심자가 하나님의 뜻을 참는, 심의기간이다. 뜻을 찾는 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 옳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선지자와 하나님을 동시에 멸시하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 지표가 될 건데, 이런 게 지표가 되는데, 그래서 선지자 여호와의 말씀. 그렇게 말할 때 가라, 사지로 가는 거지요. 정상으로 가면 예루살렘 그면이니까 가면 좋은 곳입니다. 잘 믿는 사람이니까 가장 좋은 곳이 되어야하는데 모두들 다 서울로 몰리지 않습니까. 서울 사람들이 다 편해가지고 반대쪽이 되어버리면 사지가 되는 겁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사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곳으로 가는 겁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 뒤에까지 이어보면 얼마나 거민들이 타락했는지 나오지요. 말씀하시기를 네 우의가, 우정, 친구 사이에 함께 지내는 게 우의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두고 소년때 우의를 기억한다. 소년들의 우의, 함께 지내는 어른들도 그런 게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잘 통하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잘 통하지요. 어른들은 여러 가지로 좀 생각도 많고 손익계산이 있어서 안되는데 친구들은 순수합니다. 손익계산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 중에서도 영악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참 조심을 해야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눈치보고 계산을 하면 조심을 시켜야합니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똑똑한데 사람 관계에 손익따지면 큰 문제 생기고 나중에 사람 다 잃어버립니다. 속을 보이면 근처에 안 모입니다. 그런 끼리끼리 모이는 사람만 모입니다. 순수한 사람들만 모입니다.
영악한 사람 옆에는 영악한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렇게 모이면 다 하니까 서로 다 눈치 계산하다가 그렇게 되겠지요. 소년들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주기도하고 받기도하고 마냥 좋고 좋은 겁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컸고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이없습니다. 그래서 같이하다보면 친구 그렇게 다 좋다봅니다. 남자든 여자든, 마냥 좋은 겁니다. 함께 있으니까 좋고 그러면 좋은 거지요. 결혼 때 사람도 그런 겁니다. 결혼 때 첫사랑 신혼부부도 마냥 좋은 겁니다. 어린 부부일수록 이게 해당됩니다. 나이많은 부부는 덜해당됩니다. 15살 때 결혼하면 어떨까요. 빠르네, 18, 19에 결혼하면 진짜 부부가 되는 겁니다. 성경적인 부부로, 18, 19살, 철이 없다고 합니다. 신랑 신부가 뭘 알겠습니까. 자기들 딴에는 알지요.
모르는데 그렇게 좋은 겁니다. 일찍 결혼할수록, 연애를 안해봤을수록, 마냥 좋은겁니다. 그런데 이런 걸 하나님께서 인용하셔서 그렇게 되는거지요.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씨를 뿌려야 먹을 게 나오지요. 하늘 양식을 만나먹었습니다. 하나님께 끊어져버리면 원망불평하면서도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도 울고 회개하고 그랬습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순수햇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였고 떠나면 죽습니다. 이걸 가지고 있었던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 이것도 찾아봐야하는데,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 10가지인가 있습니다. 부모가 어머니가 정상적이면 자기 자식을 버려두고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힘들고 괴로워도 자식을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걸 똘망똘망뜨고 그러면 버려두지 못하는 겁니다. 광야 40년을 그렇게 살았다는 거지요.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너를 향하여 기억한다. 마냥 좋았다. 순수했다. 구름기둥 불기둥도 따랐고 좋았습니다. 했는데, 그때는 이스라엘은 나의 여호와의 성물이었다. 거룩하게 구별된 제물입니다. 나의 소산 중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소산이니까 농사지은 거, 생산물 공산물 중에서 초실이다 초태생이다 그런 뜻인데 그걸 전체로 두고 보면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이어져야하고 아담도 모든 사람 인물도 이어져야 성경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도 유일무이고 아벨도 그렇고 전부다 그런데 전부 다 묶어서 하나님의 첫 열매인데, 하나님의 전부가 되는 이게 이스라엘이고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보면 진리의 말씀을 낳았다, 기록되어있습니다.
너를 기억하노라, 그때는 이스라엘은 나의 소산 중 첫 열매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전부를 다 쏟아붓는 기업인데, 사랑이 대상인데 목적이고 전부인데, 그것을 건드리면 그냥 두겠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한다. 그런 겁니다. 그런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러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소년 때, 그런 게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런 게 있었는가. 있었습니까. 과거 있어야겠지요. 하나님 보시는 과거는 하나님 사이가 너무 좋았던 하나님 백성된 그가 순수하게 충성했던 전부 삼았던 열심히 달렸던 그런 때, 우리 장로님은 젊으실 때 4km 정도 될련가요. 왕복 2차선이었습니다. 지금의 반이었습니다. 제법 긴데 그 범호동에서 서부교회를 새벽기도를 몇 년을 다녔는데 걸어다녔습니다. 좋아서 찬송을 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때가 이런 때입니다.
왜 좋은지 모르는데, 구원의 기쁨 감사,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박철희선생님 그런 때가 있었던가요. 결혼하고 나서 찬송인도 시작할 때가 그때가 아닐까. 그때랑 지금을 생각하면 어떨지. 자기 그러니까 잠을 안 자도 잠이 안오고 돈벌이도 모르겠고 마냥 좋아서 성경읽고 기도하고 그런 때가 있었어야합니다. 없으면 지금 만들어가야합니다. 있어야, 현재 과거를 기억을 하지요. 없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합니까. 우리 처녀들 총각들 새벽기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올 때를 기억해야합니다. 시대가 변했지만은 서부교회 때 열 몇 명 전도하고 심방할 때, 장수한 오래산 시절이더라도 지금이라도 주일되면 30명 정도 식사하고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그게 옛날을 기억하고 계속하는 겁니다. 한 분 한 분 더러더러 있는데 말은 안해도, 없으면요, 지금 그런 때를 자기로써 만들어가야합니다. 백 목사님은 빠지면 안되니까 이런 말씀가지고 자기 말씀 가져야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어야하고 참 간절하게 기도하고 자기 죄를 진정하게 뉘우치고 소망적으로 충만하고 신앙에 불이 붙으면 찬송가 하나하나에 회개 찬송가를 그렇게 하는게 됩니다. 회개 찬송이 하게 됩니다. 나 어느 곳에 있던지 늘 맘이 편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은 한도 없는거지요. 그래야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종교와 다른게, 이종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살아있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거라서 신비성이 있습니다. 신비한 역사가 없으면 죽음입니다.
속에 일일이 설명 못해도 객관 역사라는 그게 있어야합니다. 몇 년 신앙생활하면 그런 게 있어야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지금 가라앉아버린 다 죽다싶이 해버린 그때는 이렇지 않았느냐. 그때가 좋았는데. 다시 일어서라 그 말이지요. 새벽기도도 간절함도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직장 출근하면, 해 나가다 보면 예사가 됩니다. 살아가다 보면 예사가 되는데 옛날을 기억해야합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예사가 되버리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오전에 잠깐 말씀드렸지요, 한 달 일거리 없고 두 달 일거리 없으면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알차게 합니다 소문나서 점점 많아지게 하면은 그렇게 되는데 과부화가 되어버리는데 그 일이 알찬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작아집니다. 그게 내리막길로 가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초심을 잃지 않아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조강지처라는 말을 쓰는 것이고 개구리 올챙이 적을 기억을 못하는겁니다.
가난할 때 친구를 사귀었는데, 올라가버리니까 친구 버리면 내려갈 몸입니다. 초심불망이라는 말도 있더구만요. 신앙생활도 사업도 인간관계도 모든 면이 다 그렇습니다. 계속 되는 것이고 빨리 잊어버리면 망하는 것이고 안 잊어버리면 승승장구하는 것이고. 이런 거 다 설명하면 그러니까 본문 말씀해서 씨뿌리지 못한 땅에서 어떻게 좇았음을 기억한다. 그때는 나의 성물이 되어있었고, 지금은 버릴 정도 되어졌는데 다시 회개하고 매를 맞고 기다리자. 그래서 이사야서는 망하기 전에 주신 소망이었고, 소망의 말씀이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려앉아도 소망가지고, 과거를 기억함으로 현재를 바로 살고 미래를 소망함으로 바로 살아서 현재를 바로 살기위해서 미래를 소망해야겠다. 여러 면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34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로 합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합시다. 사람이 사는 모든 생활이 현재의 생활이므로 현재가 잘못되면 평생이 잘못됩니다. 지금 현재 바로 살면 모든 것이 바로되고 잘되고 지금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눈물 흘리고 뉘우치게 합니다. 눈물 흘리게 하고 미래를 향하여 이를 갈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고 마귀의 미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후회하고 뉘우치므로 결심하고 다짐함으로 성령의 인도가 되는 것이고 과거로 뉘우치는데 후회하면서 열 시간 기도에 아홉시간을 그리하고 한 시간을 각오하고 그러는데 현재는 그 열 시간을 기도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면 마귀의 미혹입니다. 다 헛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그렇게 미혹합니다. 눈물로 현재를 빼앗아갑니다. 각오와 결심하고 현재를 빼앗갑니다. 현재를 빼앗기면 전부 다 빼앗기는 겁니다. 마귀는 그렇게 우리를 미혹을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왜 그렇게 기억하느냐, 미래를 소망하기 위해서,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이고 인생의 흐름입니다. 무궁세계는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은 시간이 해당되지 않는 분입니다. 처음과 나중이고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무궁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나라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나라가 무궁세계입니다. 물질계는 시공의 제한을 받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인생은 흘러가고 넓고 노쇠해지고 죽는 것이고 한 세대가 오고 돌고 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왔고 살게 되어진 겁니다. 살아온 세월은 과거, 살아올 세월을 미래, 살고 있는 세월을 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현재는 과거가 만들었고 미래를 만듭니다. 미래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하기 위해서, 마귀의 미혹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니까 가만히 있다가 두 사람이 잘 지냈는데 과거에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잘못한 게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잊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잘못한 걸 생각하니까 화가 나고 괴씸합니다. 그게 마귀의 미혹입니다. 그게 죄가 되는 것이고 미혹이 되는 겁니다. 그런 과거는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잘한 것은 잊어버립니다. 남에게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도 안 잊어버리고 기억을 합니다. 복입니까 불행입니까. 반대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에게 잘해주는 거 다 잊어버리고 그 반대는 기억합니다. 자기는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은 만들어도 헛일입니다. 향방없는 거 같지 아니고 허공을 치는 거 같지 아니하여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그렇게 될까 두렵다. 신앙생활의 가장 근본이고 여기서 출발하면 전부 다 헛일이 됩니다. 부부사이도 남편과 아내가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고치려고 하면 부부사이 해결이 되고 남편이 아내를 원망하고 그러면 해결은 없는 겁니다. 모든 사람 관계 다 같은 겁니다. 그 목사 교회는 그냥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 목사 그런 교인 교회는 어디가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28년 넘는 동안 이 설교만 하는 겁니다. 나 자신 고치는 게 중요합니다. 과거 기업 현재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신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할 것이라 하셨고 200만명 한 민족을 만드시고 인도해내신 겁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서 인도해내셨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갔으나 애굽 사람들이 아닙니다.
애굽 사람이 아닌데 애굽에 살다보니까 그들의 정체성을 잊었습니다. 힘이 드니까 애굽에서 그래서 가마 옆에 있던 생각이 난다고 그런 기억을 합니다. 그런 기억은 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없는 종, 미래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도 미래 없는 세상은 절망, 가장 고통 중에 큰 고통이 절망의 고통입니다. 내 자식은 바로 되겠지. 그 손자는 바로 되겠지. 소망을 바로 가지면 안되는 것이고 살 맛이 나지 않는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 사는 이상, 애굽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종입니다. 대대로 종입니다. 그 사실은 망각하고 따뜻했던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종이었던 사실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0일 만에 시내산에서 돌판에다가 10계명 기록해주시고 첫 머리 글자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낸. 잊지 말라는 겁니다. 잊지 말아라, 안 변합니다. 기억하라고
십계명 전체의 머리말입니다.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열 가지 의미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걸 박아놨습니다. 종 되었던 집을 기억해라. 따라가는데 종되었던 사실은 잊어버리고 따라갈 때는 순수했다고 말씀하시지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기업을 받았습니다. 달세방을 전전하다가 드디어 자가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좁아도 내 집이다. 달세 올릴라 전세 올릴라 그러다가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으니까 감사하다. 그러면서 좁아도 달세방을 생각해봐라, 감지덕지다. 그런데 뭐 같아서 그 욕심이 들어서 더 큰집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것 좋겠지만 계속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겠지요. 기업을 마련했습니다. 그걸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과거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현재가 불행한 겁니다.
헬조선이다, 요즘은 안 들리지요. 부부가 명문대에서 만나 결혼하고, 남편이 똑똑해서 사업해서 돈 많이 벌었고 자식들 잘 살고 있고 참 복인데, 외로워서 적적해서 바쁜 남편이 자기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배가 불러서 옛날 잊어버리니까 그런 것도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과거 배고팠던 시절 이걸 이저어리는 거니까. 그래서 과거를 잊어버리면 미래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예레미야를 보면 이사야 선지자들이 여러 면에서 성경 기록상 비교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다음입니다. 성경에 선지서가 12개인데, 가장 큰 대선지서가 이사야 선지서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네 왕 때 이스라엘이 고비를 남아서 내리막기로 가던 그 중간입니다. 그래서 멸망하기 까지는 안간 상태가 이사야 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때는 히스기야왕 6년, 이스라엘 호세아 9년인가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해버립니다. 흩어져버립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 때인데 호세아라는 마지막 왕이 망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열 두 지파를 전부 보면 열 지파가 망했지만 어디로 가겠습니까. 쫓아내면은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백 목사님 가시고 간 다음에 다른 교회 간 교인들이 많습니다. 4천명 중에서 3분지 1이 남았고 지금 오백명 정도 남았다는데 2000명 이상이 갔는데 대부분이 고신으로 갔을 겁니다. 가까운데니까. 그러면 열 두 지파가 나누어졌고 열 지파가 망했습니다. 백성들 쫓아내버렸습니다. 남쪽을 많이 오겠지요. 그래서 유다 쪽에 많이 왔을 것이고 망할 때까지는 안갔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킵니다 중심을 뒤에 보면 중심을 시험하시니라, 그 깊은 속 중심을 튀어나온 겁니다. 그렇게 잘했는데 18만 5000명을 다 물리치고 바벨론에서 환대하니까 히스기야가 교맨해서 잊어버린 겁니다. 아들들이 마지막에 돌아가면서 왕이 되지요. 아들인지 손자인지 히스기야가 아들이 손자인데 예레미야가 그때까지 삽니다. 살았고 바벨론이 유다나라 정복할 때 자기 밑에 정복한 장군에게 예레미야 보여주면서 잘 대우를 해라, 그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게 다 이스라엘이다 망해버렸기 때문에 나라 자체를 망하지 않게하는 기도를 하지말고 벌을 받아라. 그 대신에 다음을 기다려라, 기약해라 그 말이지요. 그런 말씀으로 항복해라, 내가 너희를 바벨론에 붙였으니까 맞아라. 바벨론에 항복한 사람은 산다.
히스기야 네가 항복하면 산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매를 안 맞겠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말했는데 마지막에 히스기야왕 11년이지요. 뱅 둘러쌓였습니다. 지금같은 나라 북한 같은 러시아 같은 미국과 적대국은 미국이 중심되어서 제재되니까 문제가 되어버리거든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양식을 가져서 보고품을 어디서 말하느냐, 빼앗아써라, 그때 명나라가 들어오고 그래가지고 전세가 뒤집어지면서 한쪽에 갖혔을 때 뱅 둘러쌓여있으니까 나중에는 짐승의 피를 마시기도 하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죽은 사람 추워죽은 사람, 전쟁 나면은 현장에서 그렇게 주는 사람보다는 굶어죽고 추워죽고 전염병으로 죽고 그렇게 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군사들이 벽 보고 도망을 치는데 히스기야는 눈을 빼버리고 아들들 다 죽어버리고 하나님 예언대로 되었지요.
밥통 목사들 먹사라고 하던가요, 그런 사람들은 선지자가 못됩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밝은 사람이 있으면 선지자입니다. 어떤 일을 두고 나올 때 목사는 전지자가 아닙니다.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 찾아보는 거지요. 그 의견이 바로 선지자의 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사람으로 고정되나 신약의 선지자는 달라지는 겁니다. 오늘은 선지자였다가 내일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옳은 말은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은 선지자를 핍박하는 겁니다. 옳은 말은 홀대하는 것은 믿는 것은 옳은 말을 기울여야합니다. 우리 공회에 노소원에 말하는 것이 심방할 때 심자가 하나님의 뜻을 참는, 심의기간이다. 뜻을 찾는 겁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 옳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선지자와 하나님을 동시에 멸시하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 지표가 될 건데, 이런 게 지표가 되는데, 그래서 선지자 여호와의 말씀. 그렇게 말할 때 가라, 사지로 가는 거지요. 정상으로 가면 예루살렘 그면이니까 가면 좋은 곳입니다. 잘 믿는 사람이니까 가장 좋은 곳이 되어야하는데 모두들 다 서울로 몰리지 않습니까. 서울 사람들이 다 편해가지고 반대쪽이 되어버리면 사지가 되는 겁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사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곳으로 가는 겁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 뒤에까지 이어보면 얼마나 거민들이 타락했는지 나오지요. 말씀하시기를 네 우의가, 우정, 친구 사이에 함께 지내는 게 우의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두고 소년때 우의를 기억한다. 소년들의 우의, 함께 지내는 어른들도 그런 게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잘 통하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잘 통하지요. 어른들은 여러 가지로 좀 생각도 많고 손익계산이 있어서 안되는데 친구들은 순수합니다. 손익계산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 중에서도 영악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참 조심을 해야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눈치보고 계산을 하면 조심을 시켜야합니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똑똑한데 사람 관계에 손익따지면 큰 문제 생기고 나중에 사람 다 잃어버립니다. 속을 보이면 근처에 안 모입니다. 그런 끼리끼리 모이는 사람만 모입니다. 순수한 사람들만 모입니다.
영악한 사람 옆에는 영악한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렇게 모이면 다 하니까 서로 다 눈치 계산하다가 그렇게 되겠지요. 소년들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주기도하고 받기도하고 마냥 좋고 좋은 겁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컸고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이없습니다. 그래서 같이하다보면 친구 그렇게 다 좋다봅니다. 남자든 여자든, 마냥 좋은 겁니다. 함께 있으니까 좋고 그러면 좋은 거지요. 결혼 때 사람도 그런 겁니다. 결혼 때 첫사랑 신혼부부도 마냥 좋은 겁니다. 어린 부부일수록 이게 해당됩니다. 나이많은 부부는 덜해당됩니다. 15살 때 결혼하면 어떨까요. 빠르네, 18, 19에 결혼하면 진짜 부부가 되는 겁니다. 성경적인 부부로, 18, 19살, 철이 없다고 합니다. 신랑 신부가 뭘 알겠습니까. 자기들 딴에는 알지요.
모르는데 그렇게 좋은 겁니다. 일찍 결혼할수록, 연애를 안해봤을수록, 마냥 좋은겁니다. 그런데 이런 걸 하나님께서 인용하셔서 그렇게 되는거지요.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씨를 뿌려야 먹을 게 나오지요. 하늘 양식을 만나먹었습니다. 하나님께 끊어져버리면 원망불평하면서도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도 울고 회개하고 그랬습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순수햇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였고 떠나면 죽습니다. 이걸 가지고 있었던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 이것도 찾아봐야하는데,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 10가지인가 있습니다. 부모가 어머니가 정상적이면 자기 자식을 버려두고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힘들고 괴로워도 자식을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걸 똘망똘망뜨고 그러면 버려두지 못하는 겁니다. 광야 40년을 그렇게 살았다는 거지요.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너를 향하여 기억한다. 마냥 좋았다. 순수했다. 구름기둥 불기둥도 따랐고 좋았습니다. 했는데, 그때는 이스라엘은 나의 여호와의 성물이었다. 거룩하게 구별된 제물입니다. 나의 소산 중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소산이니까 농사지은 거, 생산물 공산물 중에서 초실이다 초태생이다 그런 뜻인데 그걸 전체로 두고 보면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이어져야하고 아담도 모든 사람 인물도 이어져야 성경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도 유일무이고 아벨도 그렇고 전부다 그런데 전부 다 묶어서 하나님의 첫 열매인데, 하나님의 전부가 되는 이게 이스라엘이고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보면 진리의 말씀을 낳았다, 기록되어있습니다.
너를 기억하노라, 그때는 이스라엘은 나의 소산 중 첫 열매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전부를 다 쏟아붓는 기업인데, 사랑이 대상인데 목적이고 전부인데, 그것을 건드리면 그냥 두겠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한다. 그런 겁니다. 그런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러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소년 때, 그런 게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런 게 있었는가. 있었습니까. 과거 있어야겠지요. 하나님 보시는 과거는 하나님 사이가 너무 좋았던 하나님 백성된 그가 순수하게 충성했던 전부 삼았던 열심히 달렸던 그런 때, 우리 장로님은 젊으실 때 4km 정도 될련가요. 왕복 2차선이었습니다. 지금의 반이었습니다. 제법 긴데 그 범호동에서 서부교회를 새벽기도를 몇 년을 다녔는데 걸어다녔습니다. 좋아서 찬송을 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때가 이런 때입니다.
왜 좋은지 모르는데, 구원의 기쁨 감사,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박철희선생님 그런 때가 있었던가요. 결혼하고 나서 찬송인도 시작할 때가 그때가 아닐까. 그때랑 지금을 생각하면 어떨지. 자기 그러니까 잠을 안 자도 잠이 안오고 돈벌이도 모르겠고 마냥 좋아서 성경읽고 기도하고 그런 때가 있었어야합니다. 없으면 지금 만들어가야합니다. 있어야, 현재 과거를 기억을 하지요. 없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합니까. 우리 처녀들 총각들 새벽기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올 때를 기억해야합니다. 시대가 변했지만은 서부교회 때 열 몇 명 전도하고 심방할 때, 장수한 오래산 시절이더라도 지금이라도 주일되면 30명 정도 식사하고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그게 옛날을 기억하고 계속하는 겁니다. 한 분 한 분 더러더러 있는데 말은 안해도, 없으면요, 지금 그런 때를 자기로써 만들어가야합니다. 백 목사님은 빠지면 안되니까 이런 말씀가지고 자기 말씀 가져야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어야하고 참 간절하게 기도하고 자기 죄를 진정하게 뉘우치고 소망적으로 충만하고 신앙에 불이 붙으면 찬송가 하나하나에 회개 찬송가를 그렇게 하는게 됩니다. 회개 찬송이 하게 됩니다. 나 어느 곳에 있던지 늘 맘이 편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은 한도 없는거지요. 그래야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종교와 다른게, 이종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살아있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거라서 신비성이 있습니다. 신비한 역사가 없으면 죽음입니다.
속에 일일이 설명 못해도 객관 역사라는 그게 있어야합니다. 몇 년 신앙생활하면 그런 게 있어야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지금 가라앉아버린 다 죽다싶이 해버린 그때는 이렇지 않았느냐. 그때가 좋았는데. 다시 일어서라 그 말이지요. 새벽기도도 간절함도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직장 출근하면, 해 나가다 보면 예사가 됩니다. 살아가다 보면 예사가 되는데 옛날을 기억해야합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예사가 되버리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오전에 잠깐 말씀드렸지요, 한 달 일거리 없고 두 달 일거리 없으면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알차게 합니다 소문나서 점점 많아지게 하면은 그렇게 되는데 과부화가 되어버리는데 그 일이 알찬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작아집니다. 그게 내리막길로 가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초심을 잃지 않아야하는 거지요. 그래서 조강지처라는 말을 쓰는 것이고 개구리 올챙이 적을 기억을 못하는겁니다.
가난할 때 친구를 사귀었는데, 올라가버리니까 친구 버리면 내려갈 몸입니다. 초심불망이라는 말도 있더구만요. 신앙생활도 사업도 인간관계도 모든 면이 다 그렇습니다. 계속 되는 것이고 빨리 잊어버리면 망하는 것이고 안 잊어버리면 승승장구하는 것이고. 이런 거 다 설명하면 그러니까 본문 말씀해서 씨뿌리지 못한 땅에서 어떻게 좇았음을 기억한다. 그때는 나의 성물이 되어있었고, 지금은 버릴 정도 되어졌는데 다시 회개하고 매를 맞고 기다리자. 그래서 이사야서는 망하기 전에 주신 소망이었고, 소망의 말씀이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려앉아도 소망가지고, 과거를 기억함으로 현재를 바로 살고 미래를 소망함으로 바로 살아서 현재를 바로 살기위해서 미래를 소망해야겠다. 여러 면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