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6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11-16조회 34추천 1
2026년 11월 16일 주일 오전
찬송: 160장, 106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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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시편 128편을 생각해봤습니다. 경외하는 자의 복이라는 제목의 말씀이었습니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는 것을 경외라고 합니다. 시편 앞에 제모을 붙이기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집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그런 모든 생활 전부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이 성전에 올라가는 생활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아니면 예배가 아닌 겁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배 생활은 신앙생활이고 하나님을 찾아서 나아가는 생활이 신앙 생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직장에서나 사업체에서나 시장에서나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신앙 생활이고 신앙 생활은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생활입니다. 믿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하나님을 위한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직장 생활은 하나님을 위한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신앙 생활 하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러 살다보면은 여러 가지 부딪히는 일들이 많이 있게 되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 감성의 동물이 있습니다. 이성이 있습니다. 같이 가는데 이성이 앞서고 따라가야합니다. 살아가는 것에 보면은 그 부딪히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힘이 든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 괴로우면 괴롭다, 슬프면 슬프다, 희로애락의 작용들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생겨지는 여러 가지 희로애락의 작용들을 그대로 솔직하게 글로 간단하게 적어놓으면 시라고 합니다. 기도도 있고 찬송도 있고 감사도 있고 고백도 있고 여러 가지 마음의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 걸 시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을 격려하는 그 사람이 받는 복은 네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준행하면 어떤 복을 받느냐, 손으로 수고한 것을 먹는다.
자기 자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말을 한 대로 행동한대로 살아온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오늘 말씀도 또 되어지겠는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듭니다. 이건 불신자도 아는 상식입니다. 현재 내 모습은 실력은 인격은 신앙은 오늘까지 살아온 나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은 거짓말,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공부를 안하고 성적이 좋을 수는 없는 겁니다. 방탕하게 살면 노년이 비참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열매를 피할 수 없습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다.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 속에서 자기 내실이 튼튼해지고 참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갑니다. 참 귀하고 귀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서 속이 꽉 찬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면 변화가 되는. 내가 오물을 가지고 있으면 냄새가 납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내 주변 사람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있으니까 나를 접하는 모든 사람도 되어있습니다. 참 큰 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같은 세상, 더 심하면 지옥같은 세상, 맞습니까. 헬조선이라면서요.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고, 이 세상은 세상인데 어떤 곳을 보면 천국같고 지옥 같은 세상도 있습니다. 지금 말세 세상은 단정할 수 없고 그렇게 정죄할 수는 없으나 많은 부분이 지옥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유황불이 타는 지옥인가. 불에타면 죽어버립니다. 고통도 못 느낍니다. 지옥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 그러면 무엇이 있는가, 죄가 임금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 곳, 하와 아담이 하나님 되려하다가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다. 자기 마음대로 해야하는데 욕심이 꽉 찼는데 정작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데 하고 싶어서 죽겠는데 못하면 그게 지옥입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을 고치려면 정신병원에 넣어야합니다. 그러면 금단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약에 중독된 사람은 울부짖는데 안되는거지요. 지옥이 되는 것이죠. 그런 차원의 곳입니다. 평생을 저만알고 그러는데 그게 찌들었는데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도 식당에 가도 전부 다 아이가 왕이고 내가 왕이고 내 자식이 왕이고 내 편이 왕이고 전부 자기 중심입니다. 저를 건드리면 견디지 못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관정입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고 꺾고 말씀으로 이성으로 비교해서 따져복 계산해보고 분석해봅니다. 존재의 순위를 따져보고 존재의 높낮이를 따져봅니다. 어느 것이 크고 작은가, 쟈꾸 계산해보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비교적으로 계산해보고 비교 우위차원이 아니고 이분 같은 분이 없다. 그래서 알고 믿고 두려워하는 이게 경외인데 이걸 하는 사람이 되니까, 천국을 만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그게 천국이 되게 됩니다.
그 신앙이 이어지는 사람이 오고 그 복을 받는 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도 행하는 사람이 받는 복이다. 그걸 네 가지로 해봤습니다. 이 내용 중에서 연결된 것도 있는데, 원래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아라고 해서 하나님의 추수감사 여러 가지 구원의 은혜 인도의 은혜 안보의 은혜를 지나갔는데 계속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좀 필요한 말씀 이 말씀을 얼마 전에도 했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필요해서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현재를 살다보면, 지금입니다. 지금, 현재 모습 현재 자기 학교 생활 경제 생활 그런 모습 그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사람인지라 언제를 살다보면요, 현재, 지금입니다. 지금 모습으로 살다보면 과거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과거란 지나온 옛날을 과거라고 합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불만하는 원망 속에서 살다보면 힘든 현재를 살다보면 현재가 낙심이 되어서 낙망되는 것을 살다보면 기쁘든 슬프든 괴롭든 즐겁든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기 쉬운 게 사람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그 생활이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현재인데, 그거 말씀대로 구원에 유익이 되어지도록 바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자, 잊지말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과거가 지나서 현재가 되었습니다. 현재를 통해서 미래가 이루어집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소망했고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하는 게 사람입니다. 이게 동력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르켜서 투구라고 합니다.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미래에 있는 겁니다. 그 미래는 언제 만듭니까. 미래는 현재에 만듭니다. 현재는 어디서 만들어졌습니까. 과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본문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며 바로 알 수 있는가. 복된 미래, 더 나은 미래 구원에 유익한 그런 미래를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합니다. 앞이 안 보인다 캄캄하다. 힘이 들어도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런 과거가 없었다 싶어도 지금이 가장 힘든 나이, 오늘이 가장 힘들다 그러면 앞날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든 미래가 있을 수 있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은 너보다 힘들었다 연관 시켜서.
자기 생활이 복되게 유익되도록 그렇게 인식을 가지고 방향을 맞추고 그렇게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복인데 그것 자기가 만들지 남이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언행 심사를 하면서 복을 받기를 소망하면 그걸 가르켜서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행동은 화받을 행동하면서 복을 기다린다, 안되는 겁니다. 그런 언행 심사는 복이 찾아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수고한 것을 먹는 자라는 것이 그 뜻입니다. 예레미야 성경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 전 성경이 이름이 뭐지요. 바로 전 성경이 순서적으로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이사야 선지가 기록한 겁니다. 이사야 다음에 예레미야가 나옵니다. 시대적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의 중심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죠. 그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이사야 선지가 살아가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순서적으로 이사야가 먼저니까, 예레미야 선지보다 먼저가 됩니다. 그 전은 히스기야 전후입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지나갑니다. 히스기야가 되는데 이사야 시대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데 이스라엘이 완전히 타락해가지만은 버려질 정도로 그렇게 타락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노함으로 윗대 왕들이 진노함으로 쌓았는데 버림을 받을 정도는 아니어서 회개하고 소망이 생긴다, 회복해가는 시대였습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을 이사야 성경의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가장 성경은 구주 메시아가 오실 것. 그래서 메시아 오실 것을 소망한 성경이 많습니다. 소망을 회개하고 외친 것이고 다 끝나고 히스기야의 아들 아몬, 므낫세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되는데 그 빌미를 히스기야가 제공합니다. 히스기야가 29년인가 참 잘 통치했는데 죽을 병이 들어서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을 다 물리쳐버리고 성을 지키고 부흥해가는 그때인데 바벨론에서 큰 나라에서 유다 나라에 사자를 보냈는데 이때 히스기야가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가 보여준 네 전부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거다. 그때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가 울면서 기도해서, 15년을 생존하게 한 그때입니다. 15년 연장 수명이 없었고 죽었다면 성공으로 끝날건데, 15년 사는 바람에 나라가 망하는 빌미를 제공해서 그때 죽었어야하는데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역사하시지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인간의 뭐가 들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세워집니다. 믿음의 참된 종들은 굉장히 두려워하고 애를 씁니다. 살피면서 따라가려고, 인간의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들어오면 교회 안에서 정치란 사람 관계입니다. 그거 들어가면 신앙은 절단나버립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의 뭐가 들어가면 울면서 간구해서 15년에 살려주셨는데 그렇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므낫세 아몬 버려버렸습니다. 아몬의 아들 중에서 요시아라는 성군이 나옵니다. 31년 통치했지만 늦었고 그때 활동하던 선지자가 예레미야 선지입니다. 요시아가 죽고 그 아들이 넷이 돌아가면서 형제들이 왕이 되는데 그때까지 살아있습니다. 바벨론이 항복을 하십시오. 항복하고 섬기면 이 섬도 훼파되지 않고 살겁니다. 그게 징계입니다. 당신도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매를 맞아야합니다. 벌을 받아야지요. 다음을 기다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속 전합니다.
계속 잡혀가는데 그 사람들에게 예레미야가 편지를 보내서 거기서 결혼하고 집을 짓고 자녀낳고 번성해서 그 나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바벨론 나라가 기도하고 그래야 평안할 거 아니냐. 그리고 때를 기다리라. 하나님 백성들이 원수나라 잡혀갔다고 다 소멸되면 되겠습니까. 잡혀갔지만 거기서 결혼해라, 농사 지어라, 번성해라 거기서 그 나라에서 기도해라 그리고 때를 기다려라. 이게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준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국자들이 볼 때 매국노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 예레미야 선지입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바벨론에 왕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둘러싸고 내부에서 이런 저런 일 생겨지고 항복하라고 하고 안에서는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하고, 요시아 왕과 이스라엘에 대한 말이 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2장 1절입니다. 내가 누구지요. 예레미야 성경 기록한 사람,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선지자를 통해서 알리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종 선지자에게 알리고 그 다음에 이 땅에 세상에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펼쳐질 이 세상을 운영해가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뜻을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에게 정하는 게 선지자입니다.
그 뜻을 이 세상을 운영해 가시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정치가들이 종교에 속한 선지자를 대우할 때는 항상 흥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선지자를 홀대하면 망해버렸습니다.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세상 고대 근대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나라가 바로 될 때는 그 나라에 교회 그런 종들이 있었고 그걸 외치면 정치가들이 듣고 정책에 반영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 때 서부 교회 강단에서 하시며 그게 정책에 반영된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려면 정권 가졌고 힘있지 않습니다. 그 종교를 탄압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좋지 않습니다. 왕들이 예레미야를 우습게 알고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알리시는데, 선지자는 귀가 되고 입이 되고 눈이 되는 겁니다. 눈과 귀와 코를 막아버리면 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시온과 같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도시입니다. 신앙의 중심지. 믿는 사람들의 가장 잘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좋아야하는데 이때 예루살렘이 어느 정도냐, 그 선지가 예레미야인가요, 지금 나가서 예루살렘 거리를 다녀봐라, 한 명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명이 없어서 망해버립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충신이 되는 그 곳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없는 그게 예루살렘입니다.
참된 종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중심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못박아죽였습니다. 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서 전해라, 예루살렘 그 위에 외쳐 말할지니라, 듣기 싫든 싫어하든 말해라,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소년 때 우의가 무슨 뜻이가요. 우의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여학생들은 모르겠고 남학생들은 알란가요. 우정. 네 소년 때 우정. 소년들의 우정, 또래가 같이 지내니까 친구, 같이 지내니까 같은 거 지내니까 좋은 겁니다 그냥. 이유도 없고 그냥 좋은 겁니다. 비슷하니까 같이 밥 먹어도 좋고 같이 종차도 좋고 도망을 차도 좋고 소년들의 우의 우정입니다. 철 없는 아이들 이걸 인용을 합니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리ㄹ때 있었을 거 않겠습니까. 소꿉놀이하고 지내고 여기도 끼리끼리 있죠. 누가 가장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 왕따 시키면 안됩니다.
같이 밥도 먹고 과자도 사먹고 구경도 하고 마냥 좋은 겁니다. 그냥 좋은 겁니다. 그게 소년의 우의입니다. 네 소년 때 우의와 네 결혼 때 사랑이란, 결혼의 첫사랑, 남녀가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요즘은 해당이 안됩니다. 연애를 다 막아버리죠. 뒤로하는 건 할 수 없는 거고. 사람이 본능 있는데 남자 눈에 여자 보이고 이성이 보이면 그때가 이성이 이성으로 보이고 그때가 결혼할 때입니다. 열 몇 살 되면 그렇게 되지 못할걸요. 그때는 못해도 늦춰서 스무살로 하라, 그게 모든 면에 성경적으로 모든 면으로 다 좋은 겁니다. 그런데 결혼하면 몰랐는데 부부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 그냥 좋은 겁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겁니다. 결혼 할 수 있는데 안하시는 분들 자기 중심입니다. 조혼, 좋은 겁니다. 떨어지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헤어지기 싫고 이걸 어떻게 하라고,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어디가서 정합니까. 예루살렘 가면 하나님 백성들에게 외쳐라 뭘 외칩니까. 너의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 사랑을, 그때가 언제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관계 친구끼리 또래끼리 관계, 하나님과 예루살렘의 관계가 있었느냐, 그게 어떻냐 결혼 때 어떤 사람과 우의처럼 좋았던 그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있었던 겁니다.
그게 언제 곧, 씨뿌리지 못하는 단,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이거 모르면 문제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년들의 우의처럼 결혼의 첫사랑처럼, 함께 있으니 좋고 그 시절이 언제냐, 광야 시절이라고 기록해놨습니다. 어떤 인물이 생깁니까. 출애굽에서 억지로 나왔습니다.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돌아가자고 그랬고 그게 무슨 신앙입니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라 만들고 더 절정에 이르고 그리고 기울어지고 나서 탈선의 탈선 거듭하고 나니까 망해져가는데, 이때 예레미야 선지 때 보니까 옛날이 기억이 난다. 광야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원망 불평 돌아가자했고 그랬지만 그런 죄를 저질렀지만 그때는 너희가 순수했다. 순진했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 말고는 바라볼 이가 없습니다. 의지할 이 없다. 회개하고, 죄 짓고 나면 회개하고 그렇게 해서 40년 살았는데 그때는 차라리 순진하고 깨끗했다. 그때를 기억한다. 너희들도 죄가 많았으나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그때 광야에 나를 어떻게 좇았음을 너를 통해서 기억하노라, 그렇게 하시면서 그때를 너를 위해서 기억한다고 했으니까 그때가 좋았다. 그립다 그거지요. 너희들 꼬라지를 보니까 그때가 그립다. 그때는 매 맞으면 회개하고 뉘우치고 만나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 꼬박꼬박 갔습니다. 그렇게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처럼 타락하고 악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때는 매를 맞고 맞고 맞아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끝도 없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때를 기억을 한다. 그때 이스라엘은 광야의 이스라엘은 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께 바쳐드린 것이 제물입니다. 그게 예물,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선물이었다. 내 것이었다.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곧 나의 첫 열매였다. 첫 열매인데 이론적으로 첫 열매인데 다음 열매 있겠지요. 진행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한문 글자로, 유일무이한. 이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를 삼키는자는 벌을 받아서 재앙을 만났을 것이다. 그때 대항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버릴 정도로 그렇게 되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보면서 옛날을 기억하자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과거는 지났고 현재는 지나가고 있고 미래는 지날겁니다. 내일은 만드는 오늘을 바로 살아가려면 이걸 기억해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제는 배가 불렀는데 오늘은 배가 고프니까 이유를 찾자.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가, 어떻게 돌아갈까. 과거를 생각함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옛날을 팔아먹고 회상하고 오늘을 나태해지고 방종해지고 교만해지고 오만해지고 오만이 나오면 옛날을 기억함으로 오늘을 좋아하는 것이 그럽니다. 에베소 교회라는 것은 일곱 교회 중에서 첫 번째 교회입니다. 그 에베소 교회가 여덟가지가 다 좋은데 하나를 잊어버렸다. 그거
찬송: 160장, 106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 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일은 시편 128편을 생각해봤습니다. 경외하는 자의 복이라는 제목의 말씀이었습니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는 것을 경외라고 합니다. 시편 앞에 제모을 붙이기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집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그런 모든 생활 전부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이 성전에 올라가는 생활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아니면 예배가 아닌 겁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배 생활은 신앙생활이고 하나님을 찾아서 나아가는 생활이 신앙 생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직장에서나 사업체에서나 시장에서나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신앙 생활이고 신앙 생활은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생활입니다. 믿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하나님을 위한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직장 생활은 하나님을 위한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신앙 생활 하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러 살다보면은 여러 가지 부딪히는 일들이 많이 있게 되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 감성의 동물이 있습니다. 이성이 있습니다. 같이 가는데 이성이 앞서고 따라가야합니다. 살아가는 것에 보면은 그 부딪히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힘이 든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 괴로우면 괴롭다, 슬프면 슬프다, 희로애락의 작용들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생겨지는 여러 가지 희로애락의 작용들을 그대로 솔직하게 글로 간단하게 적어놓으면 시라고 합니다. 기도도 있고 찬송도 있고 감사도 있고 고백도 있고 여러 가지 마음의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 걸 시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을 격려하는 그 사람이 받는 복은 네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준행하면 어떤 복을 받느냐, 손으로 수고한 것을 먹는다.
자기 자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말을 한 대로 행동한대로 살아온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오늘 말씀도 또 되어지겠는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듭니다. 이건 불신자도 아는 상식입니다. 현재 내 모습은 실력은 인격은 신앙은 오늘까지 살아온 나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은 거짓말,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공부를 안하고 성적이 좋을 수는 없는 겁니다. 방탕하게 살면 노년이 비참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열매를 피할 수 없습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다.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 속에서 자기 내실이 튼튼해지고 참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갑니다. 참 귀하고 귀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서 속이 꽉 찬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면 변화가 되는. 내가 오물을 가지고 있으면 냄새가 납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내 주변 사람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있으니까 나를 접하는 모든 사람도 되어있습니다. 참 큰 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같은 세상, 더 심하면 지옥같은 세상, 맞습니까. 헬조선이라면서요.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고, 이 세상은 세상인데 어떤 곳을 보면 천국같고 지옥 같은 세상도 있습니다. 지금 말세 세상은 단정할 수 없고 그렇게 정죄할 수는 없으나 많은 부분이 지옥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유황불이 타는 지옥인가. 불에타면 죽어버립니다. 고통도 못 느낍니다. 지옥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 그러면 무엇이 있는가, 죄가 임금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 곳, 하와 아담이 하나님 되려하다가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다. 자기 마음대로 해야하는데 욕심이 꽉 찼는데 정작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데 하고 싶어서 죽겠는데 못하면 그게 지옥입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을 고치려면 정신병원에 넣어야합니다. 그러면 금단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약에 중독된 사람은 울부짖는데 안되는거지요. 지옥이 되는 것이죠. 그런 차원의 곳입니다. 평생을 저만알고 그러는데 그게 찌들었는데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도 식당에 가도 전부 다 아이가 왕이고 내가 왕이고 내 자식이 왕이고 내 편이 왕이고 전부 자기 중심입니다. 저를 건드리면 견디지 못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관정입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고 꺾고 말씀으로 이성으로 비교해서 따져복 계산해보고 분석해봅니다. 존재의 순위를 따져보고 존재의 높낮이를 따져봅니다. 어느 것이 크고 작은가, 쟈꾸 계산해보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비교적으로 계산해보고 비교 우위차원이 아니고 이분 같은 분이 없다. 그래서 알고 믿고 두려워하는 이게 경외인데 이걸 하는 사람이 되니까, 천국을 만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그게 천국이 되게 됩니다.
그 신앙이 이어지는 사람이 오고 그 복을 받는 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도 행하는 사람이 받는 복이다. 그걸 네 가지로 해봤습니다. 이 내용 중에서 연결된 것도 있는데, 원래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아라고 해서 하나님의 추수감사 여러 가지 구원의 은혜 인도의 은혜 안보의 은혜를 지나갔는데 계속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좀 필요한 말씀 이 말씀을 얼마 전에도 했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필요해서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현재를 살다보면, 지금입니다. 지금, 현재 모습 현재 자기 학교 생활 경제 생활 그런 모습 그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사람인지라 언제를 살다보면요, 현재, 지금입니다. 지금 모습으로 살다보면 과거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과거란 지나온 옛날을 과거라고 합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불만하는 원망 속에서 살다보면 힘든 현재를 살다보면 현재가 낙심이 되어서 낙망되는 것을 살다보면 기쁘든 슬프든 괴롭든 즐겁든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기 쉬운 게 사람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그 생활이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현재인데, 그거 말씀대로 구원에 유익이 되어지도록 바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자, 잊지말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 과거가 지나서 현재가 되었습니다. 현재를 통해서 미래가 이루어집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소망했고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하는 게 사람입니다. 이게 동력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르켜서 투구라고 합니다.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미래에 있는 겁니다. 그 미래는 언제 만듭니까. 미래는 현재에 만듭니다. 현재는 어디서 만들어졌습니까. 과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본문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며 바로 알 수 있는가. 복된 미래, 더 나은 미래 구원에 유익한 그런 미래를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합니다. 앞이 안 보인다 캄캄하다. 힘이 들어도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런 과거가 없었다 싶어도 지금이 가장 힘든 나이, 오늘이 가장 힘들다 그러면 앞날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든 미래가 있을 수 있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은 너보다 힘들었다 연관 시켜서.
자기 생활이 복되게 유익되도록 그렇게 인식을 가지고 방향을 맞추고 그렇게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복인데 그것 자기가 만들지 남이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언행 심사를 하면서 복을 받기를 소망하면 그걸 가르켜서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행동은 화받을 행동하면서 복을 기다린다, 안되는 겁니다. 그런 언행 심사는 복이 찾아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수고한 것을 먹는 자라는 것이 그 뜻입니다. 예레미야 성경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 전 성경이 이름이 뭐지요. 바로 전 성경이 순서적으로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이사야 선지가 기록한 겁니다. 이사야 다음에 예레미야가 나옵니다. 시대적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의 중심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죠. 그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이사야 선지가 살아가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순서적으로 이사야가 먼저니까, 예레미야 선지보다 먼저가 됩니다. 그 전은 히스기야 전후입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지나갑니다. 히스기야가 되는데 이사야 시대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데 이스라엘이 완전히 타락해가지만은 버려질 정도로 그렇게 타락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노함으로 윗대 왕들이 진노함으로 쌓았는데 버림을 받을 정도는 아니어서 회개하고 소망이 생긴다, 회복해가는 시대였습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을 이사야 성경의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가장 성경은 구주 메시아가 오실 것. 그래서 메시아 오실 것을 소망한 성경이 많습니다. 소망을 회개하고 외친 것이고 다 끝나고 히스기야의 아들 아몬, 므낫세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되는데 그 빌미를 히스기야가 제공합니다. 히스기야가 29년인가 참 잘 통치했는데 죽을 병이 들어서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을 다 물리쳐버리고 성을 지키고 부흥해가는 그때인데 바벨론에서 큰 나라에서 유다 나라에 사자를 보냈는데 이때 히스기야가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가 보여준 네 전부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거다. 그때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가 울면서 기도해서, 15년을 생존하게 한 그때입니다. 15년 연장 수명이 없었고 죽었다면 성공으로 끝날건데, 15년 사는 바람에 나라가 망하는 빌미를 제공해서 그때 죽었어야하는데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역사하시지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인간의 뭐가 들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세워집니다. 믿음의 참된 종들은 굉장히 두려워하고 애를 씁니다. 살피면서 따라가려고, 인간의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들어오면 교회 안에서 정치란 사람 관계입니다. 그거 들어가면 신앙은 절단나버립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의 뭐가 들어가면 울면서 간구해서 15년에 살려주셨는데 그렇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므낫세 아몬 버려버렸습니다. 아몬의 아들 중에서 요시아라는 성군이 나옵니다. 31년 통치했지만 늦었고 그때 활동하던 선지자가 예레미야 선지입니다. 요시아가 죽고 그 아들이 넷이 돌아가면서 형제들이 왕이 되는데 그때까지 살아있습니다. 바벨론이 항복을 하십시오. 항복하고 섬기면 이 섬도 훼파되지 않고 살겁니다. 그게 징계입니다. 당신도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매를 맞아야합니다. 벌을 받아야지요. 다음을 기다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속 전합니다.
계속 잡혀가는데 그 사람들에게 예레미야가 편지를 보내서 거기서 결혼하고 집을 짓고 자녀낳고 번성해서 그 나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바벨론 나라가 기도하고 그래야 평안할 거 아니냐. 그리고 때를 기다리라. 하나님 백성들이 원수나라 잡혀갔다고 다 소멸되면 되겠습니까. 잡혀갔지만 거기서 결혼해라, 농사 지어라, 번성해라 거기서 그 나라에서 기도해라 그리고 때를 기다려라. 이게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준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국자들이 볼 때 매국노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 예레미야 선지입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바벨론에 왕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둘러싸고 내부에서 이런 저런 일 생겨지고 항복하라고 하고 안에서는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하고, 요시아 왕과 이스라엘에 대한 말이 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2장 1절입니다. 내가 누구지요. 예레미야 성경 기록한 사람,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선지자를 통해서 알리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종 선지자에게 알리고 그 다음에 이 땅에 세상에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펼쳐질 이 세상을 운영해가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뜻을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에게 정하는 게 선지자입니다.
그 뜻을 이 세상을 운영해 가시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정치가들이 종교에 속한 선지자를 대우할 때는 항상 흥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선지자를 홀대하면 망해버렸습니다.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세상 고대 근대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나라가 바로 될 때는 그 나라에 교회 그런 종들이 있었고 그걸 외치면 정치가들이 듣고 정책에 반영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 때 서부 교회 강단에서 하시며 그게 정책에 반영된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려면 정권 가졌고 힘있지 않습니다. 그 종교를 탄압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좋지 않습니다. 왕들이 예레미야를 우습게 알고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알리시는데, 선지자는 귀가 되고 입이 되고 눈이 되는 겁니다. 눈과 귀와 코를 막아버리면 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시온과 같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도시입니다. 신앙의 중심지. 믿는 사람들의 가장 잘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좋아야하는데 이때 예루살렘이 어느 정도냐, 그 선지가 예레미야인가요, 지금 나가서 예루살렘 거리를 다녀봐라, 한 명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명이 없어서 망해버립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충신이 되는 그 곳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없는 그게 예루살렘입니다.
참된 종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중심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못박아죽였습니다. 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서 전해라, 예루살렘 그 위에 외쳐 말할지니라, 듣기 싫든 싫어하든 말해라,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소년 때 우의가 무슨 뜻이가요. 우의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여학생들은 모르겠고 남학생들은 알란가요. 우정. 네 소년 때 우정. 소년들의 우정, 또래가 같이 지내니까 친구, 같이 지내니까 같은 거 지내니까 좋은 겁니다 그냥. 이유도 없고 그냥 좋은 겁니다. 비슷하니까 같이 밥 먹어도 좋고 같이 종차도 좋고 도망을 차도 좋고 소년들의 우의 우정입니다. 철 없는 아이들 이걸 인용을 합니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리ㄹ때 있었을 거 않겠습니까. 소꿉놀이하고 지내고 여기도 끼리끼리 있죠. 누가 가장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 왕따 시키면 안됩니다.
같이 밥도 먹고 과자도 사먹고 구경도 하고 마냥 좋은 겁니다. 그냥 좋은 겁니다. 그게 소년의 우의입니다. 네 소년 때 우의와 네 결혼 때 사랑이란, 결혼의 첫사랑, 남녀가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요즘은 해당이 안됩니다. 연애를 다 막아버리죠. 뒤로하는 건 할 수 없는 거고. 사람이 본능 있는데 남자 눈에 여자 보이고 이성이 보이면 그때가 이성이 이성으로 보이고 그때가 결혼할 때입니다. 열 몇 살 되면 그렇게 되지 못할걸요. 그때는 못해도 늦춰서 스무살로 하라, 그게 모든 면에 성경적으로 모든 면으로 다 좋은 겁니다. 그런데 결혼하면 몰랐는데 부부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 그냥 좋은 겁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겁니다. 결혼 할 수 있는데 안하시는 분들 자기 중심입니다. 조혼, 좋은 겁니다. 떨어지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헤어지기 싫고 이걸 어떻게 하라고,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어디가서 정합니까. 예루살렘 가면 하나님 백성들에게 외쳐라 뭘 외칩니까. 너의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 사랑을, 그때가 언제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관계 친구끼리 또래끼리 관계, 하나님과 예루살렘의 관계가 있었느냐, 그게 어떻냐 결혼 때 어떤 사람과 우의처럼 좋았던 그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있었던 겁니다.
그게 언제 곧, 씨뿌리지 못하는 단,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이거 모르면 문제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년들의 우의처럼 결혼의 첫사랑처럼, 함께 있으니 좋고 그 시절이 언제냐, 광야 시절이라고 기록해놨습니다. 어떤 인물이 생깁니까. 출애굽에서 억지로 나왔습니다.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돌아가자고 그랬고 그게 무슨 신앙입니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라 만들고 더 절정에 이르고 그리고 기울어지고 나서 탈선의 탈선 거듭하고 나니까 망해져가는데, 이때 예레미야 선지 때 보니까 옛날이 기억이 난다. 광야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원망 불평 돌아가자했고 그랬지만 그런 죄를 저질렀지만 그때는 너희가 순수했다. 순진했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 말고는 바라볼 이가 없습니다. 의지할 이 없다. 회개하고, 죄 짓고 나면 회개하고 그렇게 해서 40년 살았는데 그때는 차라리 순진하고 깨끗했다. 그때를 기억한다. 너희들도 죄가 많았으나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그때 광야에 나를 어떻게 좇았음을 너를 통해서 기억하노라, 그렇게 하시면서 그때를 너를 위해서 기억한다고 했으니까 그때가 좋았다. 그립다 그거지요. 너희들 꼬라지를 보니까 그때가 그립다. 그때는 매 맞으면 회개하고 뉘우치고 만나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 꼬박꼬박 갔습니다. 그렇게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처럼 타락하고 악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때는 매를 맞고 맞고 맞아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끝도 없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때를 기억을 한다. 그때 이스라엘은 광야의 이스라엘은 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께 바쳐드린 것이 제물입니다. 그게 예물,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선물이었다. 내 것이었다.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곧 나의 첫 열매였다. 첫 열매인데 이론적으로 첫 열매인데 다음 열매 있겠지요. 진행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한문 글자로, 유일무이한. 이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를 삼키는자는 벌을 받아서 재앙을 만났을 것이다. 그때 대항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버릴 정도로 그렇게 되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보면서 옛날을 기억하자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과거는 지났고 현재는 지나가고 있고 미래는 지날겁니다. 내일은 만드는 오늘을 바로 살아가려면 이걸 기억해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제는 배가 불렀는데 오늘은 배가 고프니까 이유를 찾자.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가, 어떻게 돌아갈까. 과거를 생각함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옛날을 팔아먹고 회상하고 오늘을 나태해지고 방종해지고 교만해지고 오만해지고 오만이 나오면 옛날을 기억함으로 오늘을 좋아하는 것이 그럽니다. 에베소 교회라는 것은 일곱 교회 중에서 첫 번째 교회입니다. 그 에베소 교회가 여덟가지가 다 좋은데 하나를 잊어버렸다.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