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밤
김동민2025-11-21조회 32추천 1
2025년 11월 21일 금밤
찬송: 79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오류 발생 시 참조 바랍니다.
이번주 계속해서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광고 하나 부탁드립니다. 내일 오후 두 시에 지하실 공사가 거의 끝나서 대청소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먼지도 많고 그런 건데 시간되시는 분들은 도움이 되니까 청소에 수고를 좀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일 오후 두 시입니다.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성찬식 두고 새로 옥상부터 밑에까지 새로 확인해야할겁니다. 내일은 지하실 청소 중심이고 예배당도 간단하게 청소하면 좋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씀으로 하는데,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고 선지자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1장에 베냐민 땅 예레미야라, 아나돗 사람이라고 했는데 베냐민 지파일 거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문자를 보냈습니다. 성경공부를 했는데 여호수아에 보면 기업을 나누는 일이 있습니다. 열 두 지파에 각 지파마다 가나안을 점령하면서 기업을 나누는데, 레위 지파는 기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업을 안 주셨죠, 레위지파는 어디서 삼아야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되는 거니까 집도 필요없고 땅도 필요없고 그런가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 한 분이 기업인데 모든 것의 중심이고 각 지파마다 레위지파에게 받은 성읍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열 세 성읍씩을 떼주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을 만들어주고 레위 지파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가 열 셋씩 떼서 해보는데 그때 열 세 성읍인가 베냐민 지파에게 떼서 주는데 그 아나돗이라는 성읍이 있고, 아론 자손이 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파가 아니고 제사장 지파니까 레위 지파지요. 집사님이 그렇게 설명을 자세하게 하는데 제가 참 제사장 중 힐기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레위 지파인데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참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겁니다. 오늘 선생님 한 분이 같은 내용으로 제사장이니까 레위지파겠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두 분이 이렇게 제 실수를 알고 그렇게 연락을 해주신거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설명을 붙이고 하면 저도 좋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목사님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하고 저도 하면 손해가 되는 겁니다. 가지고 있다가 터뜨리면 이것도 참 나쁜 것이 되는 거지요. 그럴 분 안 계실거니까. 특히 공적인 예배 시간의 실수를 알려주셔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참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그런 거 기억하면 지적을 받고나면 저도 잘 안 잊어버리겠죠.
이건 선생님이 우의라는 단어는 안 잊어버릴 거 같아요. 우의를 비옷이라고 그랬으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그런데 성경에 있는 여기는 아니니까. 비옷도 있고 그런 겁니다. 사람이 실수하는 거 나면은 사람은 자라가고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장점이 그런 실수를 누가 말씀해주실 때 권위로 누르거나 그렇게 안하고 달게 받으시고 고쳐나가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더 존경스러운,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체면 위신 때문에 어려운데 자연스럽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래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실수하면 실수했다고 하지 그런 게 거의 없답니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우리도 좋은 거 따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는 선지자로 그렇게 지정을 해놓으셨고 선지자는 그렇지 않는 겁니다. 선지자로 세움을 받아야 기름부움을 받아야 그렇게 되는 거고 기름을 부워서 지은 새 직분이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기름 붓는 걸 안수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데 이 세 가지 직분은 기름부워서 세웠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기름부었다는 뜻이므로, 기름부음 받았다, 제사장 왕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펴보면은 제사장 직이고 선지자 직이고 왕직입니다. 신약은 주님 대속으로 해서 많은 제사장이고 동시에 믿는 제사장이 선지자고 모든 사람이 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그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서 그렇게 조화시키는 것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서 전해주는 것이고 왕직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전해주는 게 왕직입니다. 신약은 모두 우리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원론적으로 그런 것이고 각자 개인마다 사건마다 현실마다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은 자기가 찾아야하는데 사람이 자기를 찾아서 하면 좋겠는데 그 뜻을 못 찾을 때가 있습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맞는데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구역 식구들은 구역장 집사님을 찾아가는 겁니다. 자기가 모르니까 그러면 집사님은 그런 구역 식구의 형편과 기도 하니까 아 이런 이런 이렇게 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러면 그게 선지직이 되는 겁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 공회 연구소 문답 방에 많은 질문이 들어옵니다. 성경 질문 교리 질문도 있는데 현실 생활에 질문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 그게 자기에게 해당되는 뜻을 그렇게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할 수 없으나, 얼굴도 모르지만은 글로써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면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사람의 뜻이고, 개인 개인과 그 개인 개인의 현실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정해주는 게 선지자입니다. 우리 모두 다 선지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뜻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자기에 대한 것을 쉽게 알기 쉽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내게 대한 뜻은 그게 맞습니다. 어둡고 어두웠지만은 자라가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는 동기는 과거를 기억하자입니다.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의 사랑, 씨뿌리지 못하는 사람을 언제나 좇았음을 그렇게 시간적으로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과거입니까. 했다고 했습니다. 할 것이다, 할 거다 시간적으로 미래입니다. 하고 있다, 시간적을 현재, 하고 있다. 했다 과거입니다. 나를 쫓고 있다, 쫓았다. 지난 과거입니다. 나를 쫓았음을 따랐음을, 과거입니다. 이 당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 당시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극도록 타락해서 버림을 받아버렸을 겁니다. 눈 뜨고 보지 못해서 멸망을 시켜버립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멸망을 받았을 때도 매를 곱게 맞으라고 할 때, 잘못을 했을 때, 손바닥 종아리 맞아야지 그러는데 안 맞겠다고 울고 잘못했다고 도망다니면 더 맞는 겁니다. 안 맞겠다고 핑계 다 대면서 유다지파 예루살렘이 망해먹은 사람인데, 아합 시대 즈음, 완전히 망할 때도 아닌데, 그때 아랍 나라에게 침략을 당해서, 말 다섯 필입니까. 멸망한 이스라엘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이거 남았습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회생시켜주신 게 있지요.
완전히 망했는데 기어코 그런 그때가 예레미야 때입니다. 하나님 이때를 보면서 옛날을 기억하시는 겁니다.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떤 정도로 친밀했느냐, 이런 걸 응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는데, 학생들 생각해봅니다. 엉망진창이 된 그 면을 두고 기가 차서 내가 옛날을 기억한다, 광야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 순종했던 그때는 기억한다. 어느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웠다고 되어있지요. 어느정도, 뭐라고 기록되어있습니까.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의 사랑처럼, 그렇게 가까웠다 그 말입니다. 지금 이렇게 멀어져서 망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과거를 기억하자, 기억이라는 것은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게 살아나는 겁니다. 없는 과거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쁜 과거는 기억하면 나쁜 게 생각이 납니다. 좋은 과거 있으면 좋은 과거로 기억이 되는 겁니다.
현재 과거가 되는 것은 지나온 세월 동안 자기가 만들어놓은, 지나온 세월에 살아온 그런 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 잘못 살았으면 그 기억 속에서 잘못된 게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좋게만 사는 사람 별로 없고, 나쁘게만 하는 사람 별로 없고, 어렵기만 한 사람 별로 없고, 다 섞여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사람이라도 좋은 일 나쁜 일 다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형편 현실을 만나 왔고 현재에 지나온겁니다. 지나간 그 과거 중에서 오늘에 내 현실을 살아갈 때 현실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유익되고 좋게 살아갈 수 있는 과거로 기억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의 과거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이, 오늘의 현재가 나의 과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과거도 만들고 미래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평생은 현재에서만 사는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면 과거가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라는 것은 현재 만드는 것이고 우리는 오늘을 바로 살아서 오늘이 지나서 어제가 되었을 때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아름다운 기억으로 복된 기억으로 남도록,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자,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어떻게 사냐에 따라서 자기 과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끄러운 과거가 만들어집니다. 과거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으면 부끄럽게 산 과거가 있고 다시는 부끄럽게 살지 말자, 당당하게 살자 깨끗하게 살자, 오늘 바로 산 그 형제가 깨끗한 과거로 쌓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1서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요. 죄는 죄인데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고 성경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이 둘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사망하지 않는 죄가 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전체를 보면 없는 겁니다. 그러면 뜻을 해석해야하는 겁니다.
살아오면서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기억하고 사망된 게 안타까워서 신심의 기능이 안타깝고 애가 타서 그래서 원통해서 그 사망에 잃은 그 죄가 원통해가지고 오늘을 바로 살면 오늘부터는 사망이 아니게 된다 그런 뜻이지, 현재를 살아서 바로 잡는다는 거지 이미 죄를 지었는데 사망되지 않는 죄, 지난 세월에 잘못 산 거 부끄러운 거 죄송한 거, 그런 과거를 해결하는 그런 일은 없앨 수는 없습니다. 몸에 팔을 다쳤든 뭐가 되었습니다. 특히 화상 흉터는 거의 안 없어지지요. 묻혀서 나중에 잘 안나오게 되는 거지요. 오물이 있어서 악취가 나는 물건이 있습니다. 악취를 없애는 방법은 흙을 가지고 덮어버리면 됩니다. 흙 속에서 하면 악취가 안나버립니다. 송장 그게 가장 독한데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세상 떠나면 몸에 있는 모든 거 까지 다 막습니다. 온갖 내장이 들어있거든요. 산소가 공급 안되니까 썩어서 냄새가 나니까 다 보관해내지요. 불에 태우거나 땅속 깊이 묻어버립니다. 냄새가 안납니다. 어떤 독한 물질도 냄새 안나고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이 됩니다.
오늘에 좋은 현실을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오늘도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계속 만들어가야겠고, 우리 주일학생들도 만들어 나가야겠다. 그래서 우리 주일학생 때문에 금년에는 성탄절에 새벽 찬양을 좀 해볼까 고민을 합니다. 거창하게 말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번 성탄절이 목요일지요. 수요일 밤에 예배드리고 지하실에 잘 꾸며놨으니까. 지하실에서 자고 새벽에 2시나 3시에 일어나서 신청을 받아가지고 아파트나 빌라는 쉽지 않을 거 같고 대 여섯 집이라도, 두 팀만 맏들어서 안전하게 학생들 중심으로, 좋은 기억이 되지 않을까. 예수 믿고 청년이 되었을 때, 서진에 있을 때 해봤거든요. 새벽송 해본사람 안해본 사람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신풍은 지게도 져보고, 그런 것도 기억이 되는 겁니다. 자연에 속한 원시에 같은 그런 기본적인 겁니다. 그런 걸 모르면 무식한 어른이 되는 건데, 그런 말하자면 주일마다, 산기도 계속하는데 우리도 앞으로 굉장히 과거가 될 겁니다. 추억이 될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지난 과거를 표나게 노래부르고 춤추고 편하게 먹고 지난 그런 것은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즐기는 그런 생활은 부끄럽고 그런 거 밖에 없습니다. 고깃덩어리 좋게 말한 그건 부끄럽게 됩니다. 그런데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과거가 되는 겁니다. 잘 이겨냈다.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 꽃마을에 밤을 못 새웠지 저녁 먹고 여덟시 즈음 되어서 기도하고 내려오고 그것도 기억에 남지요. 안해보셨죠 모두들. 다들 조심해야합니다만은 시대가 지나서 말을 하자면 추위에 떨면서 기도했다. 추위에 떨면서 심방했다. 어릴 때 이런 저런 고생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편안하게 과거 지나갔을 때 그런 거 하나도 안 남습니다. 역경으로 이겨낸 위인전기 읽어보면 전부 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지 역경 없는 위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하는 건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과거를 좀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해봅시다. 결정적인 것은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소년 때 우의처럼 결혼 때 사랑처럼, 우리들이 옛날을 기억하고, 현재에 좋으면 좋지 않았을 때를 기억하고, 조심하고, 현재 부유하면 가난한 때를 기억하고 아껴써야하는 것이고 긴장해서 살았을 때 기억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 옛날의 기억을 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화장실 갈때마음과 나올때마음이 다르지요. 사람이 돈이 없어서 급해가지고 그 다음에 빌리고 나니까 편해서 그러면 잃어버리는 겁니다. 평생 잃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옛날에 기억하는 것은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그런 겁니다. 뭐든지 어렵다가 풀린다고 하면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경젝 좀 풀리고 나면 가난했던 시절을 잃어버립니다. 지금 어른들은 그런 거 없는데 저희들 부모님 때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때는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그러면 말도 못합니다. 저희 모친 때 모친께 들은 말이 내가 고생을 책을 쓰면 몇 권을 쓸거다. 그때를 기억을 하기 때문에 경제가 풀려도 함부로 하지 않는 겁니다.
옛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때를 잊어버리면 배은망덕한 그런 게 되는 겁니다. 옛날에 기억하고 현재를 바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소망해야합니다. 현재가 미래를 향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더 나을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를 소망하자, 그렇게 정해본겁니다. 그렇게 살도록 합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79장
본문: 예레미야 2장 1절
오류 발생 시 참조 바랍니다.
이번주 계속해서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광고 하나 부탁드립니다. 내일 오후 두 시에 지하실 공사가 거의 끝나서 대청소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먼지도 많고 그런 건데 시간되시는 분들은 도움이 되니까 청소에 수고를 좀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일 오후 두 시입니다. 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성찬식 두고 새로 옥상부터 밑에까지 새로 확인해야할겁니다. 내일은 지하실 청소 중심이고 예배당도 간단하게 청소하면 좋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자는 말씀으로 하는데,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고 선지자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1장에 베냐민 땅 예레미야라, 아나돗 사람이라고 했는데 베냐민 지파일 거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문자를 보냈습니다. 성경공부를 했는데 여호수아에 보면 기업을 나누는 일이 있습니다. 열 두 지파에 각 지파마다 가나안을 점령하면서 기업을 나누는데, 레위 지파는 기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업을 안 주셨죠, 레위지파는 어디서 삼아야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되는 거니까 집도 필요없고 땅도 필요없고 그런가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 한 분이 기업인데 모든 것의 중심이고 각 지파마다 레위지파에게 받은 성읍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열 세 성읍씩을 떼주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을 만들어주고 레위 지파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가 열 셋씩 떼서 해보는데 그때 열 세 성읍인가 베냐민 지파에게 떼서 주는데 그 아나돗이라는 성읍이 있고, 아론 자손이 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파가 아니고 제사장 지파니까 레위 지파지요. 집사님이 그렇게 설명을 자세하게 하는데 제가 참 제사장 중 힐기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레위 지파인데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참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겁니다. 오늘 선생님 한 분이 같은 내용으로 제사장이니까 레위지파겠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두 분이 이렇게 제 실수를 알고 그렇게 연락을 해주신거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설명을 붙이고 하면 저도 좋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목사님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하고 저도 하면 손해가 되는 겁니다. 가지고 있다가 터뜨리면 이것도 참 나쁜 것이 되는 거지요. 그럴 분 안 계실거니까. 특히 공적인 예배 시간의 실수를 알려주셔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참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그런 거 기억하면 지적을 받고나면 저도 잘 안 잊어버리겠죠.
이건 선생님이 우의라는 단어는 안 잊어버릴 거 같아요. 우의를 비옷이라고 그랬으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그런데 성경에 있는 여기는 아니니까. 비옷도 있고 그런 겁니다. 사람이 실수하는 거 나면은 사람은 자라가고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장점이 그런 실수를 누가 말씀해주실 때 권위로 누르거나 그렇게 안하고 달게 받으시고 고쳐나가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더 존경스러운,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체면 위신 때문에 어려운데 자연스럽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래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실수하면 실수했다고 하지 그런 게 거의 없답니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우리도 좋은 거 따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는 선지자로 그렇게 지정을 해놓으셨고 선지자는 그렇지 않는 겁니다. 선지자로 세움을 받아야 기름부움을 받아야 그렇게 되는 거고 기름을 부워서 지은 새 직분이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기름 붓는 걸 안수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데 이 세 가지 직분은 기름부워서 세웠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기름부었다는 뜻이므로, 기름부음 받았다, 제사장 왕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펴보면은 제사장 직이고 선지자 직이고 왕직입니다. 신약은 주님 대속으로 해서 많은 제사장이고 동시에 믿는 제사장이 선지자고 모든 사람이 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그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서 그렇게 조화시키는 것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서 전해주는 것이고 왕직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전해주는 게 왕직입니다. 신약은 모두 우리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원론적으로 그런 것이고 각자 개인마다 사건마다 현실마다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은 자기가 찾아야하는데 사람이 자기를 찾아서 하면 좋겠는데 그 뜻을 못 찾을 때가 있습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맞는데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구역 식구들은 구역장 집사님을 찾아가는 겁니다. 자기가 모르니까 그러면 집사님은 그런 구역 식구의 형편과 기도 하니까 아 이런 이런 이렇게 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러면 그게 선지직이 되는 겁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 공회 연구소 문답 방에 많은 질문이 들어옵니다. 성경 질문 교리 질문도 있는데 현실 생활에 질문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 그게 자기에게 해당되는 뜻을 그렇게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할 수 없으나, 얼굴도 모르지만은 글로써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면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사람의 뜻이고, 개인 개인과 그 개인 개인의 현실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정해주는 게 선지자입니다. 우리 모두 다 선지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뜻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자기에 대한 것을 쉽게 알기 쉽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내게 대한 뜻은 그게 맞습니다. 어둡고 어두웠지만은 자라가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는 동기는 과거를 기억하자입니다.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의 사랑, 씨뿌리지 못하는 사람을 언제나 좇았음을 그렇게 시간적으로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과거입니까. 했다고 했습니다. 할 것이다, 할 거다 시간적으로 미래입니다. 하고 있다, 시간적을 현재, 하고 있다. 했다 과거입니다. 나를 쫓고 있다, 쫓았다. 지난 과거입니다. 나를 쫓았음을 따랐음을, 과거입니다. 이 당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 당시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극도록 타락해서 버림을 받아버렸을 겁니다. 눈 뜨고 보지 못해서 멸망을 시켜버립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멸망을 받았을 때도 매를 곱게 맞으라고 할 때, 잘못을 했을 때, 손바닥 종아리 맞아야지 그러는데 안 맞겠다고 울고 잘못했다고 도망다니면 더 맞는 겁니다. 안 맞겠다고 핑계 다 대면서 유다지파 예루살렘이 망해먹은 사람인데, 아합 시대 즈음, 완전히 망할 때도 아닌데, 그때 아랍 나라에게 침략을 당해서, 말 다섯 필입니까. 멸망한 이스라엘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이거 남았습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회생시켜주신 게 있지요.
완전히 망했는데 기어코 그런 그때가 예레미야 때입니다. 하나님 이때를 보면서 옛날을 기억하시는 겁니다.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떤 정도로 친밀했느냐, 이런 걸 응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는데, 학생들 생각해봅니다. 엉망진창이 된 그 면을 두고 기가 차서 내가 옛날을 기억한다, 광야 씨뿌리지 못하는 광야에 순종했던 그때는 기억한다. 어느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웠다고 되어있지요. 어느정도, 뭐라고 기록되어있습니까. 소년 때 우의와 결혼 때의 사랑처럼, 그렇게 가까웠다 그 말입니다. 지금 이렇게 멀어져서 망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과거를 기억하자, 기억이라는 것은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게 살아나는 겁니다. 없는 과거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쁜 과거는 기억하면 나쁜 게 생각이 납니다. 좋은 과거 있으면 좋은 과거로 기억이 되는 겁니다.
현재 과거가 되는 것은 지나온 세월 동안 자기가 만들어놓은, 지나온 세월에 살아온 그런 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 잘못 살았으면 그 기억 속에서 잘못된 게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좋게만 사는 사람 별로 없고, 나쁘게만 하는 사람 별로 없고, 어렵기만 한 사람 별로 없고, 다 섞여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사람이라도 좋은 일 나쁜 일 다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형편 현실을 만나 왔고 현재에 지나온겁니다. 지나간 그 과거 중에서 오늘에 내 현실을 살아갈 때 현실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유익되고 좋게 살아갈 수 있는 과거로 기억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의 과거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이, 오늘의 현재가 나의 과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과거도 만들고 미래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평생은 현재에서만 사는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면 과거가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라는 것은 현재 만드는 것이고 우리는 오늘을 바로 살아서 오늘이 지나서 어제가 되었을 때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아름다운 기억으로 복된 기억으로 남도록,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자,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어떻게 사냐에 따라서 자기 과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끄러운 과거가 만들어집니다. 과거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으면 부끄럽게 산 과거가 있고 다시는 부끄럽게 살지 말자, 당당하게 살자 깨끗하게 살자, 오늘 바로 산 그 형제가 깨끗한 과거로 쌓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1서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요. 죄는 죄인데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고 성경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이 둘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사망하지 않는 죄가 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전체를 보면 없는 겁니다. 그러면 뜻을 해석해야하는 겁니다.
살아오면서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기억하고 사망된 게 안타까워서 신심의 기능이 안타깝고 애가 타서 그래서 원통해서 그 사망에 잃은 그 죄가 원통해가지고 오늘을 바로 살면 오늘부터는 사망이 아니게 된다 그런 뜻이지, 현재를 살아서 바로 잡는다는 거지 이미 죄를 지었는데 사망되지 않는 죄, 지난 세월에 잘못 산 거 부끄러운 거 죄송한 거, 그런 과거를 해결하는 그런 일은 없앨 수는 없습니다. 몸에 팔을 다쳤든 뭐가 되었습니다. 특히 화상 흉터는 거의 안 없어지지요. 묻혀서 나중에 잘 안나오게 되는 거지요. 오물이 있어서 악취가 나는 물건이 있습니다. 악취를 없애는 방법은 흙을 가지고 덮어버리면 됩니다. 흙 속에서 하면 악취가 안나버립니다. 송장 그게 가장 독한데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세상 떠나면 몸에 있는 모든 거 까지 다 막습니다. 온갖 내장이 들어있거든요. 산소가 공급 안되니까 썩어서 냄새가 나니까 다 보관해내지요. 불에 태우거나 땅속 깊이 묻어버립니다. 냄새가 안납니다. 어떤 독한 물질도 냄새 안나고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이 됩니다.
오늘에 좋은 현실을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오늘도 바로 살아서 아름다운 과거를 계속 만들어가야겠고, 우리 주일학생들도 만들어 나가야겠다. 그래서 우리 주일학생 때문에 금년에는 성탄절에 새벽 찬양을 좀 해볼까 고민을 합니다. 거창하게 말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번 성탄절이 목요일지요. 수요일 밤에 예배드리고 지하실에 잘 꾸며놨으니까. 지하실에서 자고 새벽에 2시나 3시에 일어나서 신청을 받아가지고 아파트나 빌라는 쉽지 않을 거 같고 대 여섯 집이라도, 두 팀만 맏들어서 안전하게 학생들 중심으로, 좋은 기억이 되지 않을까. 예수 믿고 청년이 되었을 때, 서진에 있을 때 해봤거든요. 새벽송 해본사람 안해본 사람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신풍은 지게도 져보고, 그런 것도 기억이 되는 겁니다. 자연에 속한 원시에 같은 그런 기본적인 겁니다. 그런 걸 모르면 무식한 어른이 되는 건데, 그런 말하자면 주일마다, 산기도 계속하는데 우리도 앞으로 굉장히 과거가 될 겁니다. 추억이 될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지난 과거를 표나게 노래부르고 춤추고 편하게 먹고 지난 그런 것은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즐기는 그런 생활은 부끄럽고 그런 거 밖에 없습니다. 고깃덩어리 좋게 말한 그건 부끄럽게 됩니다. 그런데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과거가 되는 겁니다. 잘 이겨냈다.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 꽃마을에 밤을 못 새웠지 저녁 먹고 여덟시 즈음 되어서 기도하고 내려오고 그것도 기억에 남지요. 안해보셨죠 모두들. 다들 조심해야합니다만은 시대가 지나서 말을 하자면 추위에 떨면서 기도했다. 추위에 떨면서 심방했다. 어릴 때 이런 저런 고생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편안하게 과거 지나갔을 때 그런 거 하나도 안 남습니다. 역경으로 이겨낸 위인전기 읽어보면 전부 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지 역경 없는 위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하는 건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과거를 좀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해봅시다. 결정적인 것은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소년 때 우의처럼 결혼 때 사랑처럼, 우리들이 옛날을 기억하고, 현재에 좋으면 좋지 않았을 때를 기억하고, 조심하고, 현재 부유하면 가난한 때를 기억하고 아껴써야하는 것이고 긴장해서 살았을 때 기억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 옛날의 기억을 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화장실 갈때마음과 나올때마음이 다르지요. 사람이 돈이 없어서 급해가지고 그 다음에 빌리고 나니까 편해서 그러면 잃어버리는 겁니다. 평생 잃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옛날에 기억하는 것은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그런 겁니다. 뭐든지 어렵다가 풀린다고 하면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경젝 좀 풀리고 나면 가난했던 시절을 잃어버립니다. 지금 어른들은 그런 거 없는데 저희들 부모님 때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때는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그러면 말도 못합니다. 저희 모친 때 모친께 들은 말이 내가 고생을 책을 쓰면 몇 권을 쓸거다. 그때를 기억을 하기 때문에 경제가 풀려도 함부로 하지 않는 겁니다.
옛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때를 잊어버리면 배은망덕한 그런 게 되는 겁니다. 옛날에 기억하고 현재를 바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소망해야합니다. 현재가 미래를 향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더 나을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를 소망하자, 그렇게 정해본겁니다. 그렇게 살도록 합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