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1일 금밤
김동민2025-10-31조회 13추천 2
2025년 10월 31일 금밤
찬송: 121장, 130장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절제라는 말씀 제목으로 본문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24절부터 있고 26절 살펴봅니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달음질을 해야함으로, 신앙생활은 달음질을 하는 겁니다. 다섯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리고 끝까지 달리고 다릴 때 다 이겨야하고 그러려면 필요없는 건 버리고 가는거다. 이게 달음질입니다. 달음질을 왜 하드냐, 이기기 위해서 달음질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달려가는데 있는 힘을 다해서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갑니다. 다 이기고자 달려가는데 어디로 달려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느냐. 당연히 운동장에 달음질 하는 것은 출발선이 있고 결승선이 있습니다. 보일겁니다. 마라톤 같은 것은 안 보일 겁니다. 신앙생활은 달음질 같은 생활이지 달음질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달리기를 평생에 얼마나 하겠습니까. 달음질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달음질 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왜 비유 했느냐, 신앙 생활과 많이 비슷하다, 닮았다. 달음질 하는 걸 특성만 가져와서 보니까 쉬지 않고 달려가는거다. 쉬지 않는 거다.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말씀드렸고 우리들의 모든 믿는 사람의 생활 전부다가 신앙생활입니다. 예배 생활도 있고 말씀으로 하는 생활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준행하는 생활도 있고 그 전부가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준행하고 예배 생활하는 그 생활 전부를 쉬지 않고하는거다. 있는 힘 다해서 가는거다. 전부 다 이겨야 하는거다. 그러려면 필요없는 것은 전부 다 버리고 가는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로 달려가느냐. 달음질은 결승선보고 가면 됩니다. 어떻게 달려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떻게는 잠시 두고 왜 달려가는 두고 어디로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어디로 가느냐와 어떻게 가느냐는 신앙 생활에서 많이 비슷합니다. 다른 건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가느냐와 어디로 가느냐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 교리 말씀. 이 교리대로 신앙에 방향이지요. 신앙의 방향 어디로 가느냐 중요합니다.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달려가기를 신앙 생활에 힘을 쓰기를 향방, 달리는 방향을 향방이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 원앙소리 듣고 그러면 다 그렇게 힘을 쓰는데 원앙이 아니고 워낭입니다. 워낭소리 듣고 같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자기 주관도 없고 줏대도 없이 가는 겁니다. 눈먼 망아지, 말 새끼가 망아지겠지요. 송아지는요. 소 새끼, 강아지는요. 작은 개, 눈이 멀었으니까 안 보입니다. 소리 듣고 가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할 때 내가 어디로 가느냐.
많은 교인들이 목사들이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고 다 순종을 안하는데, 그렇게 일반적으로도 믿는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목사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인데 그 종은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종을 두 글자로 말하면 노예라고 합니다. 종은 곧 노예입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성경에 누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을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 종은 높은 게 아니고 낮춘겁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꼼짝도 못하는 노예입니다. 내 생각 내 주관 다 부인하고 하나님이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종입니다. 이 종이라는 의미는 빼먹고 하나님만 부각시켜서 높으신 분의 심부름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종 그렇게 악용하고 변질시킵니다. 원래는 그렇습니다. 우리 공회 특징이 목사도 사람이다. 목사도 잘못 많다. 목사가 잘못하면 더 큰 문제가 있으니까 시무투표해서 25프로 반대하면 조건없이 물러나라. 이거 아니라고 하는 공회 목사들이 속이 터져 죽습니다. 자기가 어디 속했는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말들. 선악과가 그렇게 좋아보입니다. 먹으면 죽는 건데 좋아보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이겼습니다. 믿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다 이겨야하는데 한 분한테는, 하나님께는 져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도 잘못한 거 많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 말이면 그냥 따라가버립니다. 목사님이 거짓말하겠어. 가장 무슨 직분 가진 그 직책 직업군 중에서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직책이 목사입니다. 얼마나 목사들이 거짓말하고 사기를 많이 쳐놨던지. 저도 목사지만은 제가 저를 알 거 아닙니까. 자신없는 거지요. 주일날 축도를 못합니다. 자신이 없어서, 축도는 참된 종이 축복 받으라고 손 들고 하는데 한 번 할까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향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그래서 신앙 우러러 보는 겁니다. 그렇게 가는 게 신앙 하늘나라 천국이 우리의 신앙의 향방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향방은 뭐냐 내가 다른 일 하기를 향방 없는 거 같지를 아니하고. 달려야하는데 목적지를 향해 바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면은 달려간게 모두 헛 일이 되는거지요. 성경이 가르치기를 신앙 생활은 있는 힘을 다해라 쉬지 말아라, 죽는 날까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다해서 달려갔는데 하나님이 아니고 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인간이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목사 책임이 굉장히 큰 겁니다.
교인들을 잘못 인도해서 인간에게로, 자기한테로, 사람에게로 이 세상으로 이걸 가르켜 인본주의 그러면 문제가 됩니다. 영생을 도둑맞게 하는 겁니다. 감기가 걸렸으면 무슨 약을 먹어야합니까. 감기약을 먹어야하지요. 위장약을 먹으면 잘못된거지요. 그래서 잘못되어가면 진찰합니다. 살펴보고 진단을 내립니다. 진찰이 잘못된 것이면 처방이 잘못될 것이고 역효과 나겠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절단을 해야하는 환자가 왔습니다. 의사가 술을 먹었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하는데 왼쪽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때 아마 돈 엄청나게 물어줬을 겁니다. 다리 잘린 사람은 양쪽 다 절단났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달음질인데 가장 중요한게 향방입니다. 어디로 달려가느냐.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신본주의로, 말씀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본문으로 말하면 썩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게 믿는 사람의 달음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달음질은 얻어봐야 썩을 겁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와서 두 가지를 받아겠지요. 엄청 좋아하더만은, 금만해도 1억원치를 넘기는 훈장, 그리고 신라시대 때 관, 트럼프 대통령이 허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정상들여 선물 주면 따로 포장해서 보내는데 이번 선물은 비행기 이름이 뭐지요. 전용 비행기에 실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왕관보다 더 좋은게 면류관이지요 뭐. 그건 안 썩습니까. 금이니까 오래가지만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썩을 것. 아마 저 사람은 묘지에 넣어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시황처럼. 그러지 않을까. 그래봐야 다 썩을건데. 썩을건데 그거 위해서 평생 죽도록 달려갑니다. 썩지 않을 섭리가 있습니까. 우리의 향방은 썩지 않는 면류관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신앙 양심으로 내 신앙 생활에서 무엇이 썩지 않을 것인가. 그래 가야 헛되이 가지를 않습니다. 모르고 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우리가 바로 가고 있는가. 천국 향해서 썩지 아니할 것을 향해서 가고 있는가. 그걸 돌아보십시다.
싸우는데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해봐야 헛일입니다. 미사일 북한에서 실험할 때 어디로 쏩니까. 공해상을 향하여. 주인 없는 바다입니다. 그리로 자꾸 쏩니다. 핵실험은 땅 깊은데에서, 진짜 싸우는 게 아니니까. 정말 싸울 때는 어디에 싸우겠습니까.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말은 전쟁할 때 가장 먼저 때리는 것은 군사요청지 무기 공장들 창고들 연료 저장 이렇게 되는 거지요. 사람을 안 다치게하는 게 그런건데 신사적인 게 어딨습니까. 그래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덜 다치려 애를 쓰고 공산주의 저 사람들은 사람 죽는 거 눈도 깜짝 안합니다. 그래도 공산주의가 좋답니다. 바울은 보고 달렸고 알고 달렸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보고 가는 것이고 알고 가는 겁니다. 신앙은 모험이 아닙니다. 신앙은 모험이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반석 만세 반석 위에서 대로를 걸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이고 마귀가 왕된 세상이므로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은 좁은 길이고 십자가의 좁은 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로 걸어가는 것임으로 절대 불변이고 반드시 그리 되기 때문에 알고 그러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 천국을 향해 그렇게 가는데 천주교는 누구 보고 간다고 합니까. 천주교도 하나님 믿습니다. 천국 보고 갑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통합측은요. 모든 교파들이 하나님 보고 간다는데 그게 진짜냐. 알고가느냐. 그게 문제지요.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과 천국 향해서 바로 잡고 가는지 안 가는지 어떻게 압니까. 답이 어딨습니까. 성경에 답이 있지요. 우리 공회 안에서 한 파가 저것들만 총공회라는 못된 소리를 하는 게 성경적이냐. 아무리 따져봐도 교회론, 구원론 틀려먹었는데 옳다고 천 명 넘는 교인들이 따라갑니다. 눈 먼 망아지들, 눈 먼 목사들, 다른 교단이 아닙니다. 총공회 이야기입니다. 그게 과연 그게 바른 길이냐 옳은 길이냐. 성경에 답이 나와있는데 교리적으로 나와있는데 아무리 홈페이지에 외치고 그러는데 선지자가 외치지 않으면 짖지 않는 개라고 했습니다. 개는 도둑놈이 들어오면 짖어야합니다. 그래야 쓸모가 있는 거지요. 벙어리 개. 옳은 줄 알면서도 안 짖으면 벙어리 되는 것이고 양심이 다 죽는 것이고. 밥통 있고 위에 있는 사람들 찍히면 큰 교회 못 갈까 싶어서, 밥통 목사라는 말이.
달음질, 우리는 바로 갑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는 성경에 옳은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이 되면은 성경대로 산다는 겁니다. 보고 가는 겁니다. 옳고 우리 공회 교인들도 알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고 자기 복음을 만들어야합니다. 이게 바로 그러하냐, 옳은 걸 찾아가야하지요. 내가 약해서 못갑니다. 안 좋지만은 그래도 거기를 가는 거지요. 그게 우리 가는 길입니다. 향방 없는 거 같지 아니하고 허공에 하듯이 하지 아니한다. 핵심을 딱딱 집어야지요. 아이들끼리 싸워도 권투 태권도 상대를 치는 것은 급소를 때릴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더만. 허공에 있는 거 같지 아니한다. 대적을 바로 보고 싸워야하는데 나의 발목을 잡고 나로하여금 어디 있느냐, 27절 내 몸을 친답니다. 몸을 왜 칩니까. 어떤 선교사 목사님이 눈을 하도 쥐어박아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 그것도 몸을 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에 보면 느헤미야가 백성들이 직는 죄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여자와 결혼했는데 아이가 이방 나라 어머니 사람이니까 그 나라말은 해도 히브리말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사람들을 불러다가 머리털을 쥐어뜯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습니다. 몸이 원수이니까 대적이니까 누구 말이 대적입니까. 내 마음이 대적입니다.
믿는 사람이 넓게 보면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내가 지은 앗수르여. 이사야 성경에 나옵니다. 애굽 사람을 두고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내가 지은 앗수르여. 그러면 원수입니다. 내가 지은 앗수르여, 내 백성 애굽이여. 넓게 말하면 불택자 전부 다 하나님 백성입니다. 택자면 하물며 예수 믿는 사람이면, 장로교면, 총공회면 형제 중에 형제 아닌가요. 사직동 교회가 좀 되었습니다. 미국 갔다와서 사상이 바꾸니까 가르치시기 위해서 대구인가 부산인가 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악화되니까 탈퇴를 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취소할게 탈퇴하지 마라. 기어코 나갔습니다. 탈퇴해서. 백목사님은 탈퇴 한다는 사람 전화하고 챙기고 붙들었습니다. 형제를 왜 그렇게 잘라냅니까. 팔 자르고 다리 자르고. 원수는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넓게 말하면 원수가 어디있댔습니까. 자기 집안 식구고 자기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다 해결되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목회라는 것은 목사 하나만 하면 다 잘못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200만명의 비중은 같았다고 했습니다. 바로된 사람 그런겁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나 하나가 전부입니다. 내가 바로 되면 다 되는 것이고 내가 잘못되면 그리 되는 것이고.
사도 바울은 대적을 내 몸을 친다. 바울은 자기 대적을 바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른 주관, 하나님의 원하심과 내 소원, 내 생각, 하나님과 연결된 영에 붙들렸는데 내 나쁜 습성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 그렇게 되어야 자기가 되지 않고 설교만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남에게만 전파되고 소금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도 설교도 다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신앙이 우선입니다. 내가 내 몸을 복종하게 함은 나에게 둔 후에 이게 사도 바울의 전투였습니다. 썩지 않도록 향방이 다른 사람을 향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도 그렇고 자기 하나 고치면 그렇고 믿는 사람은 원망하지 말아라 심판은 면한다.
오늘 밤에 26절 27절해서 자기 향해서 싸우는 대적, 다른 사람 보지 말고 이해하고 표현하고 참고 인내하고 자기 자신은 날카롭게 고쳐나가고. 십자가는 내가 지는거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잡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나 보고 알아서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구역장도 목사도 이렇게 나가는 게 신앙입니다. 이게 전투의 대상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21장, 130장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절제라는 말씀 제목으로 본문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24절부터 있고 26절 살펴봅니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달음질을 해야함으로, 신앙생활은 달음질을 하는 겁니다. 다섯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리고 끝까지 달리고 다릴 때 다 이겨야하고 그러려면 필요없는 건 버리고 가는거다. 이게 달음질입니다. 달음질을 왜 하드냐, 이기기 위해서 달음질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달려가는데 있는 힘을 다해서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갑니다. 다 이기고자 달려가는데 어디로 달려가는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느냐. 당연히 운동장에 달음질 하는 것은 출발선이 있고 결승선이 있습니다. 보일겁니다. 마라톤 같은 것은 안 보일 겁니다. 신앙생활은 달음질 같은 생활이지 달음질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달리기를 평생에 얼마나 하겠습니까. 달음질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달음질 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왜 비유 했느냐, 신앙 생활과 많이 비슷하다, 닮았다. 달음질 하는 걸 특성만 가져와서 보니까 쉬지 않고 달려가는거다. 쉬지 않는 거다.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말씀드렸고 우리들의 모든 믿는 사람의 생활 전부다가 신앙생활입니다. 예배 생활도 있고 말씀으로 하는 생활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준행하는 생활도 있고 그 전부가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준행하고 예배 생활하는 그 생활 전부를 쉬지 않고하는거다. 있는 힘 다해서 가는거다. 전부 다 이겨야 하는거다. 그러려면 필요없는 것은 전부 다 버리고 가는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로 달려가느냐. 달음질은 결승선보고 가면 됩니다. 어떻게 달려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떻게는 잠시 두고 왜 달려가는 두고 어디로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어디로 가느냐와 어떻게 가느냐는 신앙 생활에서 많이 비슷합니다. 다른 건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가느냐와 어디로 가느냐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 교리 말씀. 이 교리대로 신앙에 방향이지요. 신앙의 방향 어디로 가느냐 중요합니다.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달려가기를 신앙 생활에 힘을 쓰기를 향방, 달리는 방향을 향방이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 원앙소리 듣고 그러면 다 그렇게 힘을 쓰는데 원앙이 아니고 워낭입니다. 워낭소리 듣고 같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자기 주관도 없고 줏대도 없이 가는 겁니다. 눈먼 망아지, 말 새끼가 망아지겠지요. 송아지는요. 소 새끼, 강아지는요. 작은 개, 눈이 멀었으니까 안 보입니다. 소리 듣고 가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할 때 내가 어디로 가느냐.
많은 교인들이 목사들이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고 다 순종을 안하는데, 그렇게 일반적으로도 믿는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목사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인데 그 종은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종을 두 글자로 말하면 노예라고 합니다. 종은 곧 노예입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성경에 누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을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 종은 높은 게 아니고 낮춘겁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꼼짝도 못하는 노예입니다. 내 생각 내 주관 다 부인하고 하나님이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종입니다. 이 종이라는 의미는 빼먹고 하나님만 부각시켜서 높으신 분의 심부름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종 그렇게 악용하고 변질시킵니다. 원래는 그렇습니다. 우리 공회 특징이 목사도 사람이다. 목사도 잘못 많다. 목사가 잘못하면 더 큰 문제가 있으니까 시무투표해서 25프로 반대하면 조건없이 물러나라. 이거 아니라고 하는 공회 목사들이 속이 터져 죽습니다. 자기가 어디 속했는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말들. 선악과가 그렇게 좋아보입니다. 먹으면 죽는 건데 좋아보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이겼습니다. 믿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다 이겨야하는데 한 분한테는, 하나님께는 져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도 잘못한 거 많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 말이면 그냥 따라가버립니다. 목사님이 거짓말하겠어. 가장 무슨 직분 가진 그 직책 직업군 중에서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직책이 목사입니다. 얼마나 목사들이 거짓말하고 사기를 많이 쳐놨던지. 저도 목사지만은 제가 저를 알 거 아닙니까. 자신없는 거지요. 주일날 축도를 못합니다. 자신이 없어서, 축도는 참된 종이 축복 받으라고 손 들고 하는데 한 번 할까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향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그래서 신앙 우러러 보는 겁니다. 그렇게 가는 게 신앙 하늘나라 천국이 우리의 신앙의 향방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향방은 뭐냐 내가 다른 일 하기를 향방 없는 거 같지를 아니하고. 달려야하는데 목적지를 향해 바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면은 달려간게 모두 헛 일이 되는거지요. 성경이 가르치기를 신앙 생활은 있는 힘을 다해라 쉬지 말아라, 죽는 날까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다해서 달려갔는데 하나님이 아니고 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인간이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목사 책임이 굉장히 큰 겁니다.
교인들을 잘못 인도해서 인간에게로, 자기한테로, 사람에게로 이 세상으로 이걸 가르켜 인본주의 그러면 문제가 됩니다. 영생을 도둑맞게 하는 겁니다. 감기가 걸렸으면 무슨 약을 먹어야합니까. 감기약을 먹어야하지요. 위장약을 먹으면 잘못된거지요. 그래서 잘못되어가면 진찰합니다. 살펴보고 진단을 내립니다. 진찰이 잘못된 것이면 처방이 잘못될 것이고 역효과 나겠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절단을 해야하는 환자가 왔습니다. 의사가 술을 먹었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하는데 왼쪽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때 아마 돈 엄청나게 물어줬을 겁니다. 다리 잘린 사람은 양쪽 다 절단났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달음질인데 가장 중요한게 향방입니다. 어디로 달려가느냐.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신본주의로, 말씀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본문으로 말하면 썩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게 믿는 사람의 달음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달음질은 얻어봐야 썩을 겁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와서 두 가지를 받아겠지요. 엄청 좋아하더만은, 금만해도 1억원치를 넘기는 훈장, 그리고 신라시대 때 관, 트럼프 대통령이 허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정상들여 선물 주면 따로 포장해서 보내는데 이번 선물은 비행기 이름이 뭐지요. 전용 비행기에 실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왕관보다 더 좋은게 면류관이지요 뭐. 그건 안 썩습니까. 금이니까 오래가지만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썩을 것. 아마 저 사람은 묘지에 넣어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시황처럼. 그러지 않을까. 그래봐야 다 썩을건데. 썩을건데 그거 위해서 평생 죽도록 달려갑니다. 썩지 않을 섭리가 있습니까. 우리의 향방은 썩지 않는 면류관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신앙 양심으로 내 신앙 생활에서 무엇이 썩지 않을 것인가. 그래 가야 헛되이 가지를 않습니다. 모르고 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우리가 바로 가고 있는가. 천국 향해서 썩지 아니할 것을 향해서 가고 있는가. 그걸 돌아보십시다.
싸우는데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해봐야 헛일입니다. 미사일 북한에서 실험할 때 어디로 쏩니까. 공해상을 향하여. 주인 없는 바다입니다. 그리로 자꾸 쏩니다. 핵실험은 땅 깊은데에서, 진짜 싸우는 게 아니니까. 정말 싸울 때는 어디에 싸우겠습니까.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말은 전쟁할 때 가장 먼저 때리는 것은 군사요청지 무기 공장들 창고들 연료 저장 이렇게 되는 거지요. 사람을 안 다치게하는 게 그런건데 신사적인 게 어딨습니까. 그래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덜 다치려 애를 쓰고 공산주의 저 사람들은 사람 죽는 거 눈도 깜짝 안합니다. 그래도 공산주의가 좋답니다. 바울은 보고 달렸고 알고 달렸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보고 가는 것이고 알고 가는 겁니다. 신앙은 모험이 아닙니다. 신앙은 모험이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반석 만세 반석 위에서 대로를 걸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이고 마귀가 왕된 세상이므로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은 좁은 길이고 십자가의 좁은 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로 걸어가는 것임으로 절대 불변이고 반드시 그리 되기 때문에 알고 그러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 천국을 향해 그렇게 가는데 천주교는 누구 보고 간다고 합니까. 천주교도 하나님 믿습니다. 천국 보고 갑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통합측은요. 모든 교파들이 하나님 보고 간다는데 그게 진짜냐. 알고가느냐. 그게 문제지요.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과 천국 향해서 바로 잡고 가는지 안 가는지 어떻게 압니까. 답이 어딨습니까. 성경에 답이 있지요. 우리 공회 안에서 한 파가 저것들만 총공회라는 못된 소리를 하는 게 성경적이냐. 아무리 따져봐도 교회론, 구원론 틀려먹었는데 옳다고 천 명 넘는 교인들이 따라갑니다. 눈 먼 망아지들, 눈 먼 목사들, 다른 교단이 아닙니다. 총공회 이야기입니다. 그게 과연 그게 바른 길이냐 옳은 길이냐. 성경에 답이 나와있는데 교리적으로 나와있는데 아무리 홈페이지에 외치고 그러는데 선지자가 외치지 않으면 짖지 않는 개라고 했습니다. 개는 도둑놈이 들어오면 짖어야합니다. 그래야 쓸모가 있는 거지요. 벙어리 개. 옳은 줄 알면서도 안 짖으면 벙어리 되는 것이고 양심이 다 죽는 것이고. 밥통 있고 위에 있는 사람들 찍히면 큰 교회 못 갈까 싶어서, 밥통 목사라는 말이.
달음질, 우리는 바로 갑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는 성경에 옳은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이 되면은 성경대로 산다는 겁니다. 보고 가는 겁니다. 옳고 우리 공회 교인들도 알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고 자기 복음을 만들어야합니다. 이게 바로 그러하냐, 옳은 걸 찾아가야하지요. 내가 약해서 못갑니다. 안 좋지만은 그래도 거기를 가는 거지요. 그게 우리 가는 길입니다. 향방 없는 거 같지 아니하고 허공에 하듯이 하지 아니한다. 핵심을 딱딱 집어야지요. 아이들끼리 싸워도 권투 태권도 상대를 치는 것은 급소를 때릴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더만. 허공에 있는 거 같지 아니한다. 대적을 바로 보고 싸워야하는데 나의 발목을 잡고 나로하여금 어디 있느냐, 27절 내 몸을 친답니다. 몸을 왜 칩니까. 어떤 선교사 목사님이 눈을 하도 쥐어박아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 그것도 몸을 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에 보면 느헤미야가 백성들이 직는 죄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여자와 결혼했는데 아이가 이방 나라 어머니 사람이니까 그 나라말은 해도 히브리말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사람들을 불러다가 머리털을 쥐어뜯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습니다. 몸이 원수이니까 대적이니까 누구 말이 대적입니까. 내 마음이 대적입니다.
믿는 사람이 넓게 보면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내가 지은 앗수르여. 이사야 성경에 나옵니다. 애굽 사람을 두고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내가 지은 앗수르여. 그러면 원수입니다. 내가 지은 앗수르여, 내 백성 애굽이여. 넓게 말하면 불택자 전부 다 하나님 백성입니다. 택자면 하물며 예수 믿는 사람이면, 장로교면, 총공회면 형제 중에 형제 아닌가요. 사직동 교회가 좀 되었습니다. 미국 갔다와서 사상이 바꾸니까 가르치시기 위해서 대구인가 부산인가 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악화되니까 탈퇴를 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취소할게 탈퇴하지 마라. 기어코 나갔습니다. 탈퇴해서. 백목사님은 탈퇴 한다는 사람 전화하고 챙기고 붙들었습니다. 형제를 왜 그렇게 잘라냅니까. 팔 자르고 다리 자르고. 원수는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넓게 말하면 원수가 어디있댔습니까. 자기 집안 식구고 자기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다 해결되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목회라는 것은 목사 하나만 하면 다 잘못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200만명의 비중은 같았다고 했습니다. 바로된 사람 그런겁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나 하나가 전부입니다. 내가 바로 되면 다 되는 것이고 내가 잘못되면 그리 되는 것이고.
사도 바울은 대적을 내 몸을 친다. 바울은 자기 대적을 바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른 주관, 하나님의 원하심과 내 소원, 내 생각, 하나님과 연결된 영에 붙들렸는데 내 나쁜 습성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 그렇게 되어야 자기가 되지 않고 설교만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남에게만 전파되고 소금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도 설교도 다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신앙이 우선입니다. 내가 내 몸을 복종하게 함은 나에게 둔 후에 이게 사도 바울의 전투였습니다. 썩지 않도록 향방이 다른 사람을 향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도 그렇고 자기 하나 고치면 그렇고 믿는 사람은 원망하지 말아라 심판은 면한다.
오늘 밤에 26절 27절해서 자기 향해서 싸우는 대적, 다른 사람 보지 말고 이해하고 표현하고 참고 인내하고 자기 자신은 날카롭게 고쳐나가고. 십자가는 내가 지는거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잡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나 보고 알아서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구역장도 목사도 이렇게 나가는 게 신앙입니다. 이게 전투의 대상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