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1-02조회 33추천 1
2025년 11월 2일 주일 오후
찬송: 18장, 170장
본문: 시편 18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입니다. 근본을 찾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뿌리를 찾는다 그 말입니다. 출발이 어디냐 무엇이냐 파고파고 또 파고 자꾸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근본과 동시에 한편으로 최고로 근본으로 가는 위치고 올라가면 꼭대기입니다. 그게 궁국을 찾는 겁니다. 밑으로 어디까지 뻗어서 인생은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인생은 나그네길, 인생 철학에 있어서 요즘 띵가띵가하는 잘못된 찬송가보다 유행가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무엇이냐 어디에 되어지느냐 사람의 생명의 시작은 무엇이냐. 마지막 최고 절정은 어디로 가야하느냐, 그걸 찾는 게 종교고 기독교입니다. 궁극을 가지고 올라가고 나아가는 게 신앙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찾아가다 보면 궁극을 찾으니까 밑으로 없고 위로 없는 것이고 최고가 되는 것이고 최종이 되는 것이고 최귀가 되는 것이고 유일무이가 되는 것입니다.
궁극의 궁극과 최종을 살펴보면 이 세상은 오만게 다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의 근본을 파고 파고 들어가면 뭐가 나온답니까. 무엇이 나온다고 합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무가 나오는 거지요. 바로 찾았습니까 잘못찾았습니까. 바로 찾은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찾고 찾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신자들의 존재,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이 아니고 유에서 유가 나온겁니다. 성경 찾아보니까 누가 있나요, 자존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스스로 말씀하신 겁니다. 찾아 들어가신 것이고 근본을 찾으니까 어디로 가야하느냐 어디로 뻗어가야하느냐를 찾아보니까 존재로써 인간 이상은 없다. 그래서 인간지상주의 인본주의 불신자들 최고인데 기독교와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종교 말고 그 외의 종교들은 인본주의입니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들은 알라를 믿든지 뭘 믿는지간에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라든지 힌두교라든지 이런 것은 인간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범위적으로 궁극을 찾아가는 영계와 우주, 이 통일된 세계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영계 물질계 통일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역할을 보면은 만물 위에서 하나님 아래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 되겠고 소망인데 그 소망의 성격을 보면 영광의 찬미가 도어진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현재를 자신과 너무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그 신앙의 차이인 만큼 많습니다. 다윗처럼 되기는 어렵습니다만은 교만주의가 되는 것이고 다윗도 있고 솔로몬도 있고 사울도 있고. 사울은 나쁜 인간입니까. 실패입니까. 실패한 것도 있고 장점도 성공도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울만큼 됩니까.
넓게 보면서 현재 우리 모습은 거리가 멀지만은 이 말씀이 지난 주 말씀은 절제라는 걸 중심으로 삼아서 생각해봤습니다. 잠자는 것도 취미생활도 다 실제 생활에 적용되니까 실감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너무 멀어서 감흥이 별로 없지요. 그런데 믿음으로 하고 할 때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하는데 소망 중에 되고 싶어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궁극이 하나님이고 다른 존재가 없고 왕입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하나님이고 공간적으로 영계와 우주고 궁극인 이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나아가는 건데 이걸 어떻게 보냐 하나님의 은혜라 그럽니다. 이 사활의 대속을 근거하여 길이 되는 진리와 성령의 도우심을 믿어서 하나님의 진리와 도우심. 거기에 필요한 요소 거룩과 충성입니다. 이 큰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다윗이 하나님을 전부 삼았던 것처럼 우리도 전부삼는 것입니다. 나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 그 말씀이 제목입니다. 생명이고 기쁨이고 소망이고 전부 다 되는 건데 하나님이 되신다. 자기 전부 삼은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기록한 배경, 이 시가 나오게 된 그 배경 근거가 뭐냐, 여호와의 종 참 좋은 겁니다. 누구의 종이 되느냐, 누구의 신하가 되느냐 영광스럽게 되는데 사울이 변질되고 나니까 그렇게 되고 말았고 다윗은 목동인데 왕이 되고 나니까 그 밑에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윗 밑에 있으니까 왕으로 모시고 신하들이 그렇게 원했던 것이지요.
대통령이 대통령되고 나면 물러나고 나면 배신하고 돌아서는 게 이 세상이지요. 어느 정권이든지 그걸 잡았다는 말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인데 절제도 있고 실력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 배신해버리고 배신 안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박 대통령 때 사람들이 가장, 물론 못된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 때문에 죽었지만 존경 다 합니다. 전 대통령 되고 그런 사람 더러 있었습니다.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목숨을 바꿀 만큼 그랬습니다. 참 의리가 있고 충성이 있고 그런 것이지요. 그 뒤에 대통령들은 하나도 제대로된 부하가 없다는 말은 대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몸통이 되지 않을거지요. 누구의 종이냐, 다윗은 여호와의 종이였습니다. 결코 좋은 게 아닌데 노예인데 그 노예인데 그 노예가 억압이 아니고 눌리는 게 아니고 평가적으로 가치적으로 따지고 따져서 자원해서 가장 좋으니까. 가장 좋은 분 그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찾아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평생 한 번 종이 되었으면 안 변해야겠지요. 평생을 통해서 종으로 살았다.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종으로 살았다. 뭐가 없습니까. 자아가 없는 겁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판단하고 그런 건데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겁니다. 다윗은 자아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또 다른 각도로 뭐라고 합니까. 자기가 살아있는데 없습니다. 주인만 살아있습니다. 산제사가 그렇습니다. 그런 종이 있으면 주인이 예뻐하면 되겠습니까. 사장님 몇 분 계시지요. 자기 직원이 오로지 주인만 봅니다. 주인을 결정 주인이 고집한 것만 살펴서 전부 다 합니다. 두고두고 아끼겠죠. 보물처럼. 그런데 위에서 누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요셉, 다니엘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자기 동족도 아닌데 그런거겠습니까. 하나님 다윗 볼 때 예뻐서 죽는 거죠. 그래서 다윗은 가는 데 마다 다 이겼고 뭐가 되시냐고요 뿌리가 되어서, 다윗의 여호와의 종.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느낀 것 이런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고백이고 깨달음이고 찬송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은 사울은 원수로 삼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원수로 삼았습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 장인어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종입니다. 건드릴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랬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해서 자기 아들을 못할까 싶어서 기가차서 다윗이 죽어야 왕이된다. 그런데 다윗 편을 두고 있으니까 기가 찬 거지요.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삼지 않았습니다.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힘이라는 것은 지식 없는 지혜 없고 지혜 없는 능력은 없는 것이지요. 힘이라는 것은 실력도 따라가야 힘이 되는 겁니다. 힘이 된다는 그 말은 여호와여. 밤낮이 없고 해결해버리니까. 만사에 다 되어버리니까. 그게 힘입니다. 뒷배고 배경이고 백입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러면 알게 됩니다. 아쉬웠던 게 뭐라고 했습니까. 백 목사님은 주남선 목사님을 스승처럼 그랬는데 계셨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게 바로 힘입니다. 사람이 그런데 하나님이 힘이 되신다. 느낀 거지요.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찾고 그럴 때마다 그렇습니까. 우리는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 간절함도 없고 그런 거지요. 하나님 앞에는 힘으로 삼는 이게 될려면 먼저 뭐가 전제해야합니까. 말씀을 다 준행하면 말씀을 죄가 없어야하고 그런 전제되고 조건입니다. 죄를 가진 것은 거품이고 허틉니다. 허품이고 거품입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틈이 없어야합니다. 그게 죄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고 삼손이 그렇게 힘이 장사였던 것은 머리를 길러서 그렇습니다. 계약을 져버리고 구멍이 생겨버렸습니다. 눈도 빼지고 그렇게 비참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회개하니까 머리가 자랐고 한꺼번에 다 죽였는데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죽을 때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더라. 사활의 대속입니다. 교리적으로 사랑이란 가장 밀접한 가장 가까운 밀접한 것입니다. 빈틈없이 빠짐없이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것도. 이것도 사실 믿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진짜 사랑은 부부 사랑,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빠짐없이 빈틈없이 하는, 밀접하고 깊고 모든 것이 하나되는 관계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자기 전부를 해서 전신전력 다해서 그래서 지켜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만세반석입니다. 그것은 딛고 올라가는 겁니다. 반석 기초가 약하면 모든 게 부실합니다. 크고 늙을수록 안심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가 반석이었고 하나님이 반석이시고 그 위에 얼마든지 천국을 얼마든지 할려고 건설해 갈 수가 있는 겁니다.
공통되고 연관된 단어가 뭡니까. 그래서 여호와와 우리는 개인들린 겁니다. 우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개인입니다 나의 하나님, 이스라엘 전부 아닙니다. 개인입니다. 아버지가 몹쓸 죄인이라도 악당이라고 가롯 유다 같은 이라도 고라라도. 아들이 계약 지키면 아들은 고라 자손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게 의미입니다. 그 일 때문에 좋은 것은 붙들며 따라가게 좋은 것이고 내 대에서 끊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도 뭐든지 복되게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그렇게 복된 마음을 가지면 좋은 겁니다. 아기를 가지고 순산하고 결혼을 하면 얼른 가서 축하를 하는 게 복입니다. 그걸 안 받고 싶어서 그런지 그러면 안됩니다. 아는 사람이면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글만 써주면 되는데 복을 주는 것은 복된 마음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돼지 눈에는 돼지처럼 보이는 것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처럼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복을 잃었습니까. 저주를 퍼부었습니까. 복을 주신 겁니다. 회개해라 그러면 산다.
그 아이한테는 단 거 먹지마라 이가 썩었니 상했니 뽑아내라 그런 거지요. 사랑이지. 서기관 바리새인들 제사장이 그러면 죽는다. 중심을 바로 가지고 성경을 바로 보면 답이 다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나의 반석이 요새시여. 시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다 나를 지키시는 방공막이고 그렇습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시여. 하나님과의 구원입니다. 죄에서 건지고 낙심해서 건지고 실패해서 건지고 그런 것이지요. 별별 일을 다 만납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넘어지고 오만 일 다 생기는 겁니다. 거기서 건져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하나님의 절대예정에 주권섭리를 믿고 이 세상에서 낭만 낙심할 일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오. 반석이나 요새며 구원자이신데 붙여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데 나의 자손들인데 나의 절대자입니다. 나의 창조주입니다. 나의 주권자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강하고 확신이 강하면 이런 고백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거지 처녀와 재벌 신랑이 결혼했으면 그러면 거지 처녀 참사랑하면 아내의 것입니다. 재벌 신랑이 거지 처녀를 사랑스럽게 데려다가 삼았는데 자기 처지 생각을 하니까 남편의 사랑을 믿지 못하니까 늘 거지처럼 조심하는 것 좋지만 못믿고 살면 남편 신랑의 마음이 답답한 것이고 그게 자기하고 상관없는게 됩니다. 조심하고 그 사람 있으면 전부 다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 팔자는 버드나무 팔자다. 어지 홍수나면 다 둥둥 흘러가다가 제대로된 곳 가면 어마어마하게 자랍니다. 좋은 땅은 빼빼 말라서 줄기 같아서 그 사람이 시비걸면 끝나버립니다. 지금 시대가 달라져서 다른 것이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전부가 다윗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다 드리니까.
다윗이 블레셋의 가장 그때인데 너도 함께하자. 같이 가겠지요. 그런데 장군들이 막아서 돌아갑니다. 전쟁 갔다가 돌아오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불태우고 사람 다 잡아가버렸습니다. 다윗과 그 신하들이 화가 나서 다윗을 죽이자. 거기까지 갔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자기 처자식 사로잡히니까 죽이자. 그럴 때 그렇게 되었으나 여호와를 의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아가면 됩니다. 다윗이 탈취한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다윗이오, 나의 방패시오, 구원의 뿔이시오. 뿔이라는 것은 특징이 뭐라고요. 내 몸 밖에 있는데 뿔은 그 몸에 있는 겁니다. 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나되어서 몸이 되어서 싸운 것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을 건드리면 하나님을 친구처럼. 이 다윗이고 나의 하나님이다. 모든 걸 다 그렇게 고합니다. 내 원수들을 위해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 원수라는 표현을 잘 해야합니다. 어느 날 그 누구도 송사하고 잘라내도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깨달음 그것들을 말하는 것이지 언제든 회개하고 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분이 전부입니다. 나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 하나님을 각자 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전부를 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8장, 170장
본문: 시편 18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입니다. 근본을 찾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뿌리를 찾는다 그 말입니다. 출발이 어디냐 무엇이냐 파고파고 또 파고 자꾸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근본과 동시에 한편으로 최고로 근본으로 가는 위치고 올라가면 꼭대기입니다. 그게 궁국을 찾는 겁니다. 밑으로 어디까지 뻗어서 인생은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인생은 나그네길, 인생 철학에 있어서 요즘 띵가띵가하는 잘못된 찬송가보다 유행가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무엇이냐 어디에 되어지느냐 사람의 생명의 시작은 무엇이냐. 마지막 최고 절정은 어디로 가야하느냐, 그걸 찾는 게 종교고 기독교입니다. 궁극을 가지고 올라가고 나아가는 게 신앙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찾아가다 보면 궁극을 찾으니까 밑으로 없고 위로 없는 것이고 최고가 되는 것이고 최종이 되는 것이고 최귀가 되는 것이고 유일무이가 되는 것입니다.
궁극의 궁극과 최종을 살펴보면 이 세상은 오만게 다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의 근본을 파고 파고 들어가면 뭐가 나온답니까. 무엇이 나온다고 합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무가 나오는 거지요. 바로 찾았습니까 잘못찾았습니까. 바로 찾은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찾고 찾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신자들의 존재,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이 아니고 유에서 유가 나온겁니다. 성경 찾아보니까 누가 있나요, 자존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스스로 말씀하신 겁니다. 찾아 들어가신 것이고 근본을 찾으니까 어디로 가야하느냐 어디로 뻗어가야하느냐를 찾아보니까 존재로써 인간 이상은 없다. 그래서 인간지상주의 인본주의 불신자들 최고인데 기독교와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종교 말고 그 외의 종교들은 인본주의입니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들은 알라를 믿든지 뭘 믿는지간에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라든지 힌두교라든지 이런 것은 인간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범위적으로 궁극을 찾아가는 영계와 우주, 이 통일된 세계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영계 물질계 통일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역할을 보면은 만물 위에서 하나님 아래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 되겠고 소망인데 그 소망의 성격을 보면 영광의 찬미가 도어진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현재를 자신과 너무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그 신앙의 차이인 만큼 많습니다. 다윗처럼 되기는 어렵습니다만은 교만주의가 되는 것이고 다윗도 있고 솔로몬도 있고 사울도 있고. 사울은 나쁜 인간입니까. 실패입니까. 실패한 것도 있고 장점도 성공도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울만큼 됩니까.
넓게 보면서 현재 우리 모습은 거리가 멀지만은 이 말씀이 지난 주 말씀은 절제라는 걸 중심으로 삼아서 생각해봤습니다. 잠자는 것도 취미생활도 다 실제 생활에 적용되니까 실감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너무 멀어서 감흥이 별로 없지요. 그런데 믿음으로 하고 할 때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하는데 소망 중에 되고 싶어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궁극이 하나님이고 다른 존재가 없고 왕입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하나님이고 공간적으로 영계와 우주고 궁극인 이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나아가는 건데 이걸 어떻게 보냐 하나님의 은혜라 그럽니다. 이 사활의 대속을 근거하여 길이 되는 진리와 성령의 도우심을 믿어서 하나님의 진리와 도우심. 거기에 필요한 요소 거룩과 충성입니다. 이 큰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다윗이 하나님을 전부 삼았던 것처럼 우리도 전부삼는 것입니다. 나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 그 말씀이 제목입니다. 생명이고 기쁨이고 소망이고 전부 다 되는 건데 하나님이 되신다. 자기 전부 삼은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기록한 배경, 이 시가 나오게 된 그 배경 근거가 뭐냐, 여호와의 종 참 좋은 겁니다. 누구의 종이 되느냐, 누구의 신하가 되느냐 영광스럽게 되는데 사울이 변질되고 나니까 그렇게 되고 말았고 다윗은 목동인데 왕이 되고 나니까 그 밑에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윗 밑에 있으니까 왕으로 모시고 신하들이 그렇게 원했던 것이지요.
대통령이 대통령되고 나면 물러나고 나면 배신하고 돌아서는 게 이 세상이지요. 어느 정권이든지 그걸 잡았다는 말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인데 절제도 있고 실력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 배신해버리고 배신 안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박 대통령 때 사람들이 가장, 물론 못된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 때문에 죽었지만 존경 다 합니다. 전 대통령 되고 그런 사람 더러 있었습니다.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목숨을 바꿀 만큼 그랬습니다. 참 의리가 있고 충성이 있고 그런 것이지요. 그 뒤에 대통령들은 하나도 제대로된 부하가 없다는 말은 대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몸통이 되지 않을거지요. 누구의 종이냐, 다윗은 여호와의 종이였습니다. 결코 좋은 게 아닌데 노예인데 그 노예인데 그 노예가 억압이 아니고 눌리는 게 아니고 평가적으로 가치적으로 따지고 따져서 자원해서 가장 좋으니까. 가장 좋은 분 그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찾아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평생 한 번 종이 되었으면 안 변해야겠지요. 평생을 통해서 종으로 살았다.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종으로 살았다. 뭐가 없습니까. 자아가 없는 겁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판단하고 그런 건데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겁니다. 다윗은 자아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또 다른 각도로 뭐라고 합니까. 자기가 살아있는데 없습니다. 주인만 살아있습니다. 산제사가 그렇습니다. 그런 종이 있으면 주인이 예뻐하면 되겠습니까. 사장님 몇 분 계시지요. 자기 직원이 오로지 주인만 봅니다. 주인을 결정 주인이 고집한 것만 살펴서 전부 다 합니다. 두고두고 아끼겠죠. 보물처럼. 그런데 위에서 누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요셉, 다니엘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자기 동족도 아닌데 그런거겠습니까. 하나님 다윗 볼 때 예뻐서 죽는 거죠. 그래서 다윗은 가는 데 마다 다 이겼고 뭐가 되시냐고요 뿌리가 되어서, 다윗의 여호와의 종.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느낀 것 이런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고백이고 깨달음이고 찬송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은 사울은 원수로 삼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원수로 삼았습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 장인어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종입니다. 건드릴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랬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해서 자기 아들을 못할까 싶어서 기가차서 다윗이 죽어야 왕이된다. 그런데 다윗 편을 두고 있으니까 기가 찬 거지요.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삼지 않았습니다.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힘이라는 것은 지식 없는 지혜 없고 지혜 없는 능력은 없는 것이지요. 힘이라는 것은 실력도 따라가야 힘이 되는 겁니다. 힘이 된다는 그 말은 여호와여. 밤낮이 없고 해결해버리니까. 만사에 다 되어버리니까. 그게 힘입니다. 뒷배고 배경이고 백입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러면 알게 됩니다. 아쉬웠던 게 뭐라고 했습니까. 백 목사님은 주남선 목사님을 스승처럼 그랬는데 계셨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게 바로 힘입니다. 사람이 그런데 하나님이 힘이 되신다. 느낀 거지요.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찾고 그럴 때마다 그렇습니까. 우리는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 간절함도 없고 그런 거지요. 하나님 앞에는 힘으로 삼는 이게 될려면 먼저 뭐가 전제해야합니까. 말씀을 다 준행하면 말씀을 죄가 없어야하고 그런 전제되고 조건입니다. 죄를 가진 것은 거품이고 허틉니다. 허품이고 거품입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틈이 없어야합니다. 그게 죄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고 삼손이 그렇게 힘이 장사였던 것은 머리를 길러서 그렇습니다. 계약을 져버리고 구멍이 생겨버렸습니다. 눈도 빼지고 그렇게 비참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회개하니까 머리가 자랐고 한꺼번에 다 죽였는데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죽을 때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더라. 사활의 대속입니다. 교리적으로 사랑이란 가장 밀접한 가장 가까운 밀접한 것입니다. 빈틈없이 빠짐없이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것도. 이것도 사실 믿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진짜 사랑은 부부 사랑,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빠짐없이 빈틈없이 하는, 밀접하고 깊고 모든 것이 하나되는 관계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자기 전부를 해서 전신전력 다해서 그래서 지켜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만세반석입니다. 그것은 딛고 올라가는 겁니다. 반석 기초가 약하면 모든 게 부실합니다. 크고 늙을수록 안심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가 반석이었고 하나님이 반석이시고 그 위에 얼마든지 천국을 얼마든지 할려고 건설해 갈 수가 있는 겁니다.
공통되고 연관된 단어가 뭡니까. 그래서 여호와와 우리는 개인들린 겁니다. 우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개인입니다 나의 하나님, 이스라엘 전부 아닙니다. 개인입니다. 아버지가 몹쓸 죄인이라도 악당이라고 가롯 유다 같은 이라도 고라라도. 아들이 계약 지키면 아들은 고라 자손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게 의미입니다. 그 일 때문에 좋은 것은 붙들며 따라가게 좋은 것이고 내 대에서 끊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도 뭐든지 복되게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그렇게 복된 마음을 가지면 좋은 겁니다. 아기를 가지고 순산하고 결혼을 하면 얼른 가서 축하를 하는 게 복입니다. 그걸 안 받고 싶어서 그런지 그러면 안됩니다. 아는 사람이면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글만 써주면 되는데 복을 주는 것은 복된 마음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도 돼지 눈에는 돼지처럼 보이는 것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처럼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복을 잃었습니까. 저주를 퍼부었습니까. 복을 주신 겁니다. 회개해라 그러면 산다.
그 아이한테는 단 거 먹지마라 이가 썩었니 상했니 뽑아내라 그런 거지요. 사랑이지. 서기관 바리새인들 제사장이 그러면 죽는다. 중심을 바로 가지고 성경을 바로 보면 답이 다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나의 반석이 요새시여. 시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다 나를 지키시는 방공막이고 그렇습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시여. 하나님과의 구원입니다. 죄에서 건지고 낙심해서 건지고 실패해서 건지고 그런 것이지요. 별별 일을 다 만납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넘어지고 오만 일 다 생기는 겁니다. 거기서 건져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하나님의 절대예정에 주권섭리를 믿고 이 세상에서 낭만 낙심할 일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오. 반석이나 요새며 구원자이신데 붙여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데 나의 자손들인데 나의 절대자입니다. 나의 창조주입니다. 나의 주권자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강하고 확신이 강하면 이런 고백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거지 처녀와 재벌 신랑이 결혼했으면 그러면 거지 처녀 참사랑하면 아내의 것입니다. 재벌 신랑이 거지 처녀를 사랑스럽게 데려다가 삼았는데 자기 처지 생각을 하니까 남편의 사랑을 믿지 못하니까 늘 거지처럼 조심하는 것 좋지만 못믿고 살면 남편 신랑의 마음이 답답한 것이고 그게 자기하고 상관없는게 됩니다. 조심하고 그 사람 있으면 전부 다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 팔자는 버드나무 팔자다. 어지 홍수나면 다 둥둥 흘러가다가 제대로된 곳 가면 어마어마하게 자랍니다. 좋은 땅은 빼빼 말라서 줄기 같아서 그 사람이 시비걸면 끝나버립니다. 지금 시대가 달라져서 다른 것이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전부가 다윗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다 드리니까.
다윗이 블레셋의 가장 그때인데 너도 함께하자. 같이 가겠지요. 그런데 장군들이 막아서 돌아갑니다. 전쟁 갔다가 돌아오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불태우고 사람 다 잡아가버렸습니다. 다윗과 그 신하들이 화가 나서 다윗을 죽이자. 거기까지 갔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자기 처자식 사로잡히니까 죽이자. 그럴 때 그렇게 되었으나 여호와를 의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아가면 됩니다. 다윗이 탈취한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다윗이오, 나의 방패시오, 구원의 뿔이시오. 뿔이라는 것은 특징이 뭐라고요. 내 몸 밖에 있는데 뿔은 그 몸에 있는 겁니다. 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나되어서 몸이 되어서 싸운 것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을 건드리면 하나님을 친구처럼. 이 다윗이고 나의 하나님이다. 모든 걸 다 그렇게 고합니다. 내 원수들을 위해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 원수라는 표현을 잘 해야합니다. 어느 날 그 누구도 송사하고 잘라내도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깨달음 그것들을 말하는 것이지 언제든 회개하고 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분이 전부입니다. 나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 하나님을 각자 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전부를 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