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금밤
김동민2025-10-10조회 17추천 1
2025년 10월 10일 금밤
찬송: 167장, 196장
본문: 이사야 5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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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은 성탄절 암송으로 종종했는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 세상에 오셔서 걸어가신 그 길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주님가신 길은 우리가 걸어갈 우리의 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길이기 때문에 주님 가신 길을 바로 알아야 갈 수 있겠습니다. 일곱 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여러 번 공부했으니까 간단하게 제목만, 약간 설명하면 2000년 전에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고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어 구주하셨습니다. 자기 분량에 따라서 양심에 통한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주님 가신 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으로 가는 길입니다. 순종으로 가는 것이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도라고 기독교를 하는 겁니다. 고운 모양과 풍채가 없는 일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고난을 각오하는 길이고 주와 복음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하는 길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해 주시면 고요한 행복도 있고 안정도 있고 평안도 있고 등 따시고 배부른 것도 있으나 스스로 끊없는 자기와의 전투가 있어야합니다. 배가 고요하게 가는데 풍랑이 있는데 가는 것은 엔진이 쉬지 않고 가는 것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심장이 수천번씩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배당이 깨끗하면 누군가가 청소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속에는 끊임없는 전투 긴장 그래서 군대가 강해야 나라가 평안합니다. 열심히 훈련 받아야합니다. 군인들이 기본적인 훈련도 못 받아서 제식 훈련도 못 받는다던가요. 전쟁나면 난리나는 거지요. 군대가 허물어지면 나라가 전쟁이 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피땀 흘려서 받고 나라 전체가 그렇게 하는 게 되는 거지요. 겉으로 고요하면 속에서는 늘 긴장하고 깨어서 세상과 죄 마귀와 끊임없는 전투가 있어야합니다. 풍채도 없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입니다. 대신할 대 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길이 아니라고 했지요.
자기 위해서 삽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을 가르쳐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 말로 악이라고 합니다. 악이라는 것은 포악하고 잔인하고 모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주로 사는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법을 어겨사는 걸 죄라고 합니다. 주님 가신 길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옆으로 아래로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 자신을 재물로 바치는 생활이 대속의 생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나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직분이 제사장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생애고 대속의 길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위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게 바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를 재물로 잡는 겁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싶은데 다 가보고 나 원하는대로 다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를 원하는 걸 잡아야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대속은 전부 희생의 길입니다. 고난의 길이고, 주님 가신 길이고 우리가 간 길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말 없이 가신 길입니다. 그냥 입 딱 닫고 아무말도 안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앞날 어떻게 될까. 이걸 따지면 참 오만 말이 다 나와야하는데 갈 수 없는 겁니다. 맡겨놓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뭡니까, 대속에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 있으니까 하는 겁니까. 나에 대한 정도는 아버지께 맡겨 놓고 그 사명은 충성하는 게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세상이 이해 못하는 길이다. 세상이 이해를 못합니다.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던가요. 여기 여학생들, 설마 그렇지 않겠지만 20대 처녀가 여자가 말이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서있습니다. 옛날같으면 매장을 당할 건데, 말세가 되니까 이해를 한답니다. 그거 이해를 하면은 비슷한 사람이 됩니다. 한편으로 왜 그러는지 알기도 알죠. 그런데 괜찮다고 할 수 있으면 문제입니다. 이해가 안 되어야합니다.
세상이 다르니까 사람이 짐승 세계를 이해를 할려면 안되는 겁니다.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니까 개와 사람이 같으면 안되는거지요. 사람은 사람이니까. 산자와 죽은자는 다른겁니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이해못합니다. 이 세상 지옥이고 그 사람들은 천국과 하늘과 이해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땅이니까 땅에 있는 사람이 하늘을 볼 수가 없는거지요. 주님 따라가는 신앙길을 걸어가면서 큰 착각입니다.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해 못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러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는 것이 우리 길입니다. 이렇게 일곱가지로 생각했고 갔는데 그 결과가 어찌되어졌는가, 뭐든지 행동을 하면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입니다. 움직이면 움직인만큼 결과가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움직임을 행동하면 만들어집니다. 주님 가신 길을 다른 걸로 말하면 뭐라고 할까요. 길이라는 것은 생애라는 뜻입니다. 삶이라는 뜻입니다. 말도 있고 행동도 있고 관계도 있고 마음도 있고 그런 길이 있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작용 그런 결과가 있는데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주님은 걸어가셨습니다. 결과가 나와있었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결과가 따라가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영원토록 그것이 나쁘면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고난 받아도 주님 가신 길을 가는 겁니다. 영원토록 고난이고 영원토록 수치고 그러면 그 길을 왜 가야하는 겁니까. 이 세상에서는 주님 가신 길이 조롱 받는 길이고 고난의 길이고 십자가 지는 길이지만은 끝이 있습니다. 저주 받은 세상이므로, 죄 없는 세상, 저주 없는 세상 빛의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고 영광의 길이 되는 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그걸 하나씩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교리 연결시키면 곤란합니다. 여호와라는 뜻이 뭐지요.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입니다.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성령입니까. 어렵지요.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성자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그렇게 해석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 예수님입니다. 상함을 받게 하심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천국 건설이고 구원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중심이 사람의 구원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신 목적을 죄가 들어가야하고 그게 영원한 사망이 들어가야하고 건지려면 대속 역사가 들어가야합니다. 도성인신이 들어가야하고, 그래야 이걸 성자 하나님이 도성인신과 신인양성일위를 받기 원하시는데 이걸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뜻을 아심으로 원하고 원함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주님이 자원하심이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에게 병으로 인한 고난인데 단순하게 병으로 인한 고난이 아니고 죄값입니다. 받게 하셨다 하셨으니까 시킨 것이고 능동이었는데 하나님 아버지 뜻이고 하신 그 속에 성자 하나님의 원하고 원함으로 하신 겁니다.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성부 하나님의 목적과 뜻 성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고,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주님이 십자가 고난으로 받으신 것은 영에게 붙들린 속한 마음을 일반적으로 영혼이라고 합니다.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렸다. 그러면 영혼은 마음이니까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을 속건제물로 드린 것은 몸이 따라가는데 영을 말씀하신 것은 영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전적 붙들려서 온화하고 같이 따라감. 옳은 대속의 생애인데 속건제물로 드렸다. 속건제물, 구약에 들어보면 무엇이 속건제입니까. 속건죄는 허물입니다. 허물은 큰 죄입니까 작은 죄입니까. 작은 죄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 속건제물이라고 했습니까. 속죄제물이 아니라, 이것도 제가 생각하는 해석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단점을 못합니다. 속건제물로 말씀하신 것은 작은 것까지, 많은 죄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속건제물로 드리게 하면 대속의 제물로 당신을 바쳐서 이러면 그가 여기까지는 그렇게 그록되어 있으나 씨를 보게 되며 사람으로 말하면 무엇을 씨라고 합니까. 곡식종자의 씨앗은 새끼입니다. 송아지는 소의 씨입니다. 소새끼, 사람의 씨는 누군가요. 아들이 씨입니다. 아버지의 씨가 아들입니다. 아들은 대를 이어가는겁다. 아들이 없으면 대가 이어지는 겁니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제물에게 되었을 때 대속의 공로입은 사람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가 씨라고 했습니다. 열 두 사도가 주님 이어가는 씨가 되었고 칠십문도가 씨가 되었고 초대 교회가 씨가 되었고 이어지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져서 이 시대 참된 믿는 신자가 씨가 되는 겁니다. 이 씨는 주님 대속의 씨므로 시대가 자르고 지역이 달라도 본질은 같은 겁니다. 한국에서 사과나무면 부산에서는 안되겠죠. 대구 사과, 거창사과, 경북사과 100년전의 사과와 지금이 크게 다르겠지만 같습니다. 주님 대속은 다 같은 하나로 씨가 됩니다. 그 씨를 보게 되면 그 날은 길 것이고 주님의 날은 깁니다. 길다는 것은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든 날은 주의 날입니다. 그 날은 길 것이고 그의 손으로 그의 역사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절, 가라사대 하나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마음이 몸보다 훨씬 더 많고 깊고 크고 강한거죠. 그래서 몸의 수고보다 마음의 수고, 공산주의 국가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석학들 강제 은퇴를 시켜버리니까. 65세는 한창입니다. 그 머리 좋고 많은 지식 가진 그런 인재들이고 자산들인데 나라 국가에서 찬밥신세되니까 중국에서 연락이 온답니다. 연봉의 두 배 세 배 드릴테니까 오시겠습니까. 대우를 그렇게 잘해주는데 안 가는 법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는 세계를 다 뒤져서 인재를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인재를 다 쫓아내버립니다. 원래 공산주의자들은 의사하고 노동자하고 월급이 같습니다. 누가 의사 할려고 하겠습니까. 고급 인력들은 두뇌지요. 그래서 막노동 이건 아무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값이 싸고 그래서 막노동 중에서 기술을 익히면 아무도 못하는 거지요. 그래야 먹고사는데 좀 낫겠지요. 말씀하시는 것은 만족히 여길 것이라, 이 만족이 십자가에서 나오는 겁니다. 환희의 찬송. 외친 게 만족히 여긴겁니다.
참 자기 성자의 하나님으로 그렇게 하셔서 남김없이 제물로 바쳐 그걸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보고 성취했습니다. 자존자 하나님 완전자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뜻을 성취했습니다. 그 중심 성취에 주님이 대속역사가 있으니까 사람의 것은 표현하기 힘든데 어떠하겠습니까. 좀 낮은 수준으로 몇날 며칠 밤을 세워서 머리쓰고 몸써서 성취했습니다. 드디어 완성됐다. 그러면 끝나는 그 순간 얼마나 뿌듯하고 성취감있겠습니까. 그거하고 이거는 다른 거지요. 도성인신, 사생활 공생활 십자가에 죽으심까지 그겁니다. 이걸 만족히 여긴겁니다. 감사한 것이죠. 나의 의로움이 나는 하나님이다. 의롭다는 그 말은 뜻대로 된 하나님이 완전히 붙들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자기 지식을 몇 가지로 말씀드렸습니까. 지식입니다. 모든 것은 다 지식에서 출발합니다. 알아야합니다. 뭘 알아야하지요. 뭐든지 알아야합니다. 밥, 운전, 갈려면 갈 줄 알아야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못합니다. 아는 만큼 하는 겁니다. 그게 지식입니다. 써먹지 않은 지식이 많으면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그걸 안 좋은 말로 쓰레기장이라고 합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간게 그래서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는 정식으로 출판된 건 들어갑니다.
그 많은게 들어가니까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그게 다 쓸모있는 책이냐, 노벨문학상책은 쓰레기 중에 쓰레기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이 쓰레기니까 노벨 상금이 9억인가 그렇죠. 자기 지식 하나님께 받은 지식에 그걸 그대로 살아가셨습니다. 행동하면 행동대로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주 말씀드렸지요. 웃는 얼굴을 3년을 그리면 얼굴상이 웃는 상이 됩니다. 무식한 사람이라도 신중하고 말 조심하면 신중한 사람이 됩니다. 지식을 만들고 사랑을 만듭니다. 주의 지식입니다. 설교자가 이 세 가지 지식으로 말하면 말을 변화시킵니다. 학생들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주님이 살아가신 생애가 대속의 생애였고 수 많은 사람을 입었습니다. 믿으면 의인입니다. 많은 사람 의롭겠다 실제로 주님따라 건너가면 실제가 됩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겁니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감당하리라. 12절입니다. 이러므로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일곱가지 길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주님으로 하여금 존귀한 자와 함께 한다.
존귀한 자는 하나님보다 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들로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무릎꿇겠다. 하나님 아버지보다 우편에 앉으신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하면 분깃이 되는 겁니다. 강한자와 함께 하나님보다 강한 자는 없습니다. 탈취한 것을 다른 것으로 말하면 조심스러우면 전리품이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싸워서 승리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전쟁이 많이나옵니다. 적진에 쳐들어가면 사람까지 다 뺏어옵니다. 탈취물, 하나님 전쟁이 되고 주님도 전쟁이 되는데 죄로 더불어 마귀로 더불어 사망으로 더불어 우리 대신에 해서 물리치고 이겼습니다. 우리들입니다. 택자 전부를 전리품으로 얻었고 천국은 얻었다기 보다는 그렇고 물질계는 주님을 얻었습니다.
주님 가신 길이고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가신 길이고 이 세상에서는 그 모양도 그렇고 풍채도 그렇고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가 뭐냐,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증거를 대봐라. 나는 많이 댈 수 있다 없다는 증거를 대봐라. 못 댑니다. 뭐가 있습니까. 하늘을 봐라 태양을 봐라 너를 봐라 너희 부모를 봐라 전부 하나님이 계신 증거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그럴 수 없는 거지요. 끝나고 나면 해와같이 빛날 것은 주님이 가실 그 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 길입니다. 이게 새벽별처럼 빛나는 그 길이고 내가 누릴 영광일세, 그렇게 살아오셨습니까. 살아가고 계십니까.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시겠습니다.
찬송: 167장, 196장
본문: 이사야 53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사야 53장은 성탄절 암송으로 종종했는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 세상에 오셔서 걸어가신 그 길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주님가신 길은 우리가 걸어갈 우리의 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길이기 때문에 주님 가신 길을 바로 알아야 갈 수 있겠습니다. 일곱 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여러 번 공부했으니까 간단하게 제목만, 약간 설명하면 2000년 전에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고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어 구주하셨습니다. 자기 분량에 따라서 양심에 통한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주님 가신 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으로 가는 길입니다. 순종으로 가는 것이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도라고 기독교를 하는 겁니다. 고운 모양과 풍채가 없는 일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고난을 각오하는 길이고 주와 복음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하는 길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해 주시면 고요한 행복도 있고 안정도 있고 평안도 있고 등 따시고 배부른 것도 있으나 스스로 끊없는 자기와의 전투가 있어야합니다. 배가 고요하게 가는데 풍랑이 있는데 가는 것은 엔진이 쉬지 않고 가는 것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심장이 수천번씩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배당이 깨끗하면 누군가가 청소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속에는 끊임없는 전투 긴장 그래서 군대가 강해야 나라가 평안합니다. 열심히 훈련 받아야합니다. 군인들이 기본적인 훈련도 못 받아서 제식 훈련도 못 받는다던가요. 전쟁나면 난리나는 거지요. 군대가 허물어지면 나라가 전쟁이 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피땀 흘려서 받고 나라 전체가 그렇게 하는 게 되는 거지요. 겉으로 고요하면 속에서는 늘 긴장하고 깨어서 세상과 죄 마귀와 끊임없는 전투가 있어야합니다. 풍채도 없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입니다. 대신할 대 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길이 아니라고 했지요.
자기 위해서 삽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을 가르쳐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 말로 악이라고 합니다. 악이라는 것은 포악하고 잔인하고 모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주로 사는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법을 어겨사는 걸 죄라고 합니다. 주님 가신 길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옆으로 아래로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 자신을 재물로 바치는 생활이 대속의 생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나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직분이 제사장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생애고 대속의 길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위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게 바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를 재물로 잡는 겁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싶은데 다 가보고 나 원하는대로 다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를 원하는 걸 잡아야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대속은 전부 희생의 길입니다. 고난의 길이고, 주님 가신 길이고 우리가 간 길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말 없이 가신 길입니다. 그냥 입 딱 닫고 아무말도 안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앞날 어떻게 될까. 이걸 따지면 참 오만 말이 다 나와야하는데 갈 수 없는 겁니다. 맡겨놓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뭡니까, 대속에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 있으니까 하는 겁니까. 나에 대한 정도는 아버지께 맡겨 놓고 그 사명은 충성하는 게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세상이 이해 못하는 길이다. 세상이 이해를 못합니다.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던가요. 여기 여학생들, 설마 그렇지 않겠지만 20대 처녀가 여자가 말이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서있습니다. 옛날같으면 매장을 당할 건데, 말세가 되니까 이해를 한답니다. 그거 이해를 하면은 비슷한 사람이 됩니다. 한편으로 왜 그러는지 알기도 알죠. 그런데 괜찮다고 할 수 있으면 문제입니다. 이해가 안 되어야합니다.
세상이 다르니까 사람이 짐승 세계를 이해를 할려면 안되는 겁니다.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니까 개와 사람이 같으면 안되는거지요. 사람은 사람이니까. 산자와 죽은자는 다른겁니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이해못합니다. 이 세상 지옥이고 그 사람들은 천국과 하늘과 이해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땅이니까 땅에 있는 사람이 하늘을 볼 수가 없는거지요. 주님 따라가는 신앙길을 걸어가면서 큰 착각입니다.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해 못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러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는 것이 우리 길입니다. 이렇게 일곱가지로 생각했고 갔는데 그 결과가 어찌되어졌는가, 뭐든지 행동을 하면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입니다. 움직이면 움직인만큼 결과가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움직임을 행동하면 만들어집니다. 주님 가신 길을 다른 걸로 말하면 뭐라고 할까요. 길이라는 것은 생애라는 뜻입니다. 삶이라는 뜻입니다. 말도 있고 행동도 있고 관계도 있고 마음도 있고 그런 길이 있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작용 그런 결과가 있는데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주님은 걸어가셨습니다. 결과가 나와있었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결과가 따라가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영원토록 그것이 나쁘면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고난 받아도 주님 가신 길을 가는 겁니다. 영원토록 고난이고 영원토록 수치고 그러면 그 길을 왜 가야하는 겁니까. 이 세상에서는 주님 가신 길이 조롱 받는 길이고 고난의 길이고 십자가 지는 길이지만은 끝이 있습니다. 저주 받은 세상이므로, 죄 없는 세상, 저주 없는 세상 빛의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고 영광의 길이 되는 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결과를 맺었는가. 그걸 하나씩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교리 연결시키면 곤란합니다. 여호와라는 뜻이 뭐지요.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입니다.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성령입니까. 어렵지요.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성자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그렇게 해석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 예수님입니다. 상함을 받게 하심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천국 건설이고 구원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중심이 사람의 구원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신 목적을 죄가 들어가야하고 그게 영원한 사망이 들어가야하고 건지려면 대속 역사가 들어가야합니다. 도성인신이 들어가야하고, 그래야 이걸 성자 하나님이 도성인신과 신인양성일위를 받기 원하시는데 이걸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뜻을 아심으로 원하고 원함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주님이 자원하심이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에게 병으로 인한 고난인데 단순하게 병으로 인한 고난이 아니고 죄값입니다. 받게 하셨다 하셨으니까 시킨 것이고 능동이었는데 하나님 아버지 뜻이고 하신 그 속에 성자 하나님의 원하고 원함으로 하신 겁니다.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성부 하나님의 목적과 뜻 성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고,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주님이 십자가 고난으로 받으신 것은 영에게 붙들린 속한 마음을 일반적으로 영혼이라고 합니다.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렸다. 그러면 영혼은 마음이니까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을 속건제물로 드린 것은 몸이 따라가는데 영을 말씀하신 것은 영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전적 붙들려서 온화하고 같이 따라감. 옳은 대속의 생애인데 속건제물로 드렸다. 속건제물, 구약에 들어보면 무엇이 속건제입니까. 속건죄는 허물입니다. 허물은 큰 죄입니까 작은 죄입니까. 작은 죄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 속건제물이라고 했습니까. 속죄제물이 아니라, 이것도 제가 생각하는 해석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단점을 못합니다. 속건제물로 말씀하신 것은 작은 것까지, 많은 죄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속건제물로 드리게 하면 대속의 제물로 당신을 바쳐서 이러면 그가 여기까지는 그렇게 그록되어 있으나 씨를 보게 되며 사람으로 말하면 무엇을 씨라고 합니까. 곡식종자의 씨앗은 새끼입니다. 송아지는 소의 씨입니다. 소새끼, 사람의 씨는 누군가요. 아들이 씨입니다. 아버지의 씨가 아들입니다. 아들은 대를 이어가는겁다. 아들이 없으면 대가 이어지는 겁니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제물에게 되었을 때 대속의 공로입은 사람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가 씨라고 했습니다. 열 두 사도가 주님 이어가는 씨가 되었고 칠십문도가 씨가 되었고 초대 교회가 씨가 되었고 이어지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져서 이 시대 참된 믿는 신자가 씨가 되는 겁니다. 이 씨는 주님 대속의 씨므로 시대가 자르고 지역이 달라도 본질은 같은 겁니다. 한국에서 사과나무면 부산에서는 안되겠죠. 대구 사과, 거창사과, 경북사과 100년전의 사과와 지금이 크게 다르겠지만 같습니다. 주님 대속은 다 같은 하나로 씨가 됩니다. 그 씨를 보게 되면 그 날은 길 것이고 주님의 날은 깁니다. 길다는 것은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든 날은 주의 날입니다. 그 날은 길 것이고 그의 손으로 그의 역사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절, 가라사대 하나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마음이 몸보다 훨씬 더 많고 깊고 크고 강한거죠. 그래서 몸의 수고보다 마음의 수고, 공산주의 국가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석학들 강제 은퇴를 시켜버리니까. 65세는 한창입니다. 그 머리 좋고 많은 지식 가진 그런 인재들이고 자산들인데 나라 국가에서 찬밥신세되니까 중국에서 연락이 온답니다. 연봉의 두 배 세 배 드릴테니까 오시겠습니까. 대우를 그렇게 잘해주는데 안 가는 법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는 세계를 다 뒤져서 인재를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인재를 다 쫓아내버립니다. 원래 공산주의자들은 의사하고 노동자하고 월급이 같습니다. 누가 의사 할려고 하겠습니까. 고급 인력들은 두뇌지요. 그래서 막노동 이건 아무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값이 싸고 그래서 막노동 중에서 기술을 익히면 아무도 못하는 거지요. 그래야 먹고사는데 좀 낫겠지요. 말씀하시는 것은 만족히 여길 것이라, 이 만족이 십자가에서 나오는 겁니다. 환희의 찬송. 외친 게 만족히 여긴겁니다.
참 자기 성자의 하나님으로 그렇게 하셔서 남김없이 제물로 바쳐 그걸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보고 성취했습니다. 자존자 하나님 완전자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뜻을 성취했습니다. 그 중심 성취에 주님이 대속역사가 있으니까 사람의 것은 표현하기 힘든데 어떠하겠습니까. 좀 낮은 수준으로 몇날 며칠 밤을 세워서 머리쓰고 몸써서 성취했습니다. 드디어 완성됐다. 그러면 끝나는 그 순간 얼마나 뿌듯하고 성취감있겠습니까. 그거하고 이거는 다른 거지요. 도성인신, 사생활 공생활 십자가에 죽으심까지 그겁니다. 이걸 만족히 여긴겁니다. 감사한 것이죠. 나의 의로움이 나는 하나님이다. 의롭다는 그 말은 뜻대로 된 하나님이 완전히 붙들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자기 지식을 몇 가지로 말씀드렸습니까. 지식입니다. 모든 것은 다 지식에서 출발합니다. 알아야합니다. 뭘 알아야하지요. 뭐든지 알아야합니다. 밥, 운전, 갈려면 갈 줄 알아야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못합니다. 아는 만큼 하는 겁니다. 그게 지식입니다. 써먹지 않은 지식이 많으면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그걸 안 좋은 말로 쓰레기장이라고 합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간게 그래서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는 정식으로 출판된 건 들어갑니다.
그 많은게 들어가니까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그게 다 쓸모있는 책이냐, 노벨문학상책은 쓰레기 중에 쓰레기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이 쓰레기니까 노벨 상금이 9억인가 그렇죠. 자기 지식 하나님께 받은 지식에 그걸 그대로 살아가셨습니다. 행동하면 행동대로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주 말씀드렸지요. 웃는 얼굴을 3년을 그리면 얼굴상이 웃는 상이 됩니다. 무식한 사람이라도 신중하고 말 조심하면 신중한 사람이 됩니다. 지식을 만들고 사랑을 만듭니다. 주의 지식입니다. 설교자가 이 세 가지 지식으로 말하면 말을 변화시킵니다. 학생들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주님이 살아가신 생애가 대속의 생애였고 수 많은 사람을 입었습니다. 믿으면 의인입니다. 많은 사람 의롭겠다 실제로 주님따라 건너가면 실제가 됩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겁니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감당하리라. 12절입니다. 이러므로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일곱가지 길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주님으로 하여금 존귀한 자와 함께 한다.
존귀한 자는 하나님보다 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들로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무릎꿇겠다. 하나님 아버지보다 우편에 앉으신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하면 분깃이 되는 겁니다. 강한자와 함께 하나님보다 강한 자는 없습니다. 탈취한 것을 다른 것으로 말하면 조심스러우면 전리품이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싸워서 승리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전쟁이 많이나옵니다. 적진에 쳐들어가면 사람까지 다 뺏어옵니다. 탈취물, 하나님 전쟁이 되고 주님도 전쟁이 되는데 죄로 더불어 마귀로 더불어 사망으로 더불어 우리 대신에 해서 물리치고 이겼습니다. 우리들입니다. 택자 전부를 전리품으로 얻었고 천국은 얻었다기 보다는 그렇고 물질계는 주님을 얻었습니다.
주님 가신 길이고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가신 길이고 이 세상에서는 그 모양도 그렇고 풍채도 그렇고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가 뭐냐,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증거를 대봐라. 나는 많이 댈 수 있다 없다는 증거를 대봐라. 못 댑니다. 뭐가 있습니까. 하늘을 봐라 태양을 봐라 너를 봐라 너희 부모를 봐라 전부 하나님이 계신 증거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그럴 수 없는 거지요. 끝나고 나면 해와같이 빛날 것은 주님이 가실 그 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 길입니다. 이게 새벽별처럼 빛나는 그 길이고 내가 누릴 영광일세, 그렇게 살아오셨습니까. 살아가고 계십니까.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