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 수밤
김동민2025-10-08조회 14추천 1
2025년 10월 8일 수밤
찬송: 105장, 108장
본문: 이사야 53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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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집회말씀에 이어갑니다. 아홉 번째, 주님,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요절로 했습니다. 앞서 먼저 우리 앞에 가셨고 따라가는게 우리 가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원형이면서 선생님입니다. 그 길을 제자를 따라서 스승처럼 되는 게 제자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형과 모형 관계는 물질로 말하면 모형 원형은 생명도 없는 것들이지만 주님과 우리를 가르치는 걸로 따라가는 겁니다. 앞서가신 주님의 길은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길이라는 것은 생애, 사람이 살아갈 길, 생애는 그게 길입니다. 인생길 나그네길, 주님 가신 길은 우리의 길이다. 일곱가지로 가신 길을 1절부터 12절 말씀까지 해봤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요약한 것이 많은데 백 목사님의 말씀은 다는 아닐지라도 교리처럼 외울 것이 많고 제가 하는 것은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지난 주일에 1절부터 6절까지 공부했고 1절부터 11절까지 공부했는데 줄여서 했고 7절부터 12절까지는 한 절씩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앞서가신 주님의 길, 그 길인데 우리들이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가셨는지 알아봐야합니다.
예정은 원래 되어있었고 선지자는 4000년 전부터 되어있었고 오신 것은 2000년 전 즈음 2025년 전 즈음에 오셨습니다. 33년 4개월을 살다 가셨는데 사람으로 한 분으로 오셨구나 택자 전부의 대속주로 되어있습니다. 언제 오셨는가. 2000년 전에 오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오셨느냐 택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가셨습니다. 잉태된 그때부터 1초도 끊어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 그 말이 세상이 모르는 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고 그런데 지난달 양성원도 말씀하신 것이 아마 물어보십시다. 지난달 양성원 이번 양성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리적으로 중요한 것. 아시는 분, 양성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창세기 본문 말고, 신학강의에서 하신 것이 어떤 것이었나요. 사람은 완전을 말씀했죠. 충성을 말했죠. 사람은 완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로써 자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자기로써 다 하면 자기의 할 수 있는대로 다 하면 정도에 따라서 완전한 것으로 인정하시고 변화시켜주십니다.
그 충성의 정도는 신앙의 성장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다만 죄가 있으면 안되는 것이고 일학년의 충성과 중학생의 충성과 고등학생의 충성과 대학생의 충성은 다른 겁니다. 대학생이 전부 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자기 정도로써 양심의 가책을 따집니다.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아무리 각 사람의 분양에도 알고 싶어도 알아지는 게 아닙니다. 살고 싶어도 살아지는 게 아닙니다. 되고 싶어도 그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돌아볼 때 알아야할 만큼 알고 있는가. 자기 스스로 양심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내면에 가서 하면 알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알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깔아뭉개놓고 죽으면 안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안됩니다. 아십니까. 스스로, 나는 하나님 앞에 그래서 천국 갔을 때 나는 천국 가면 어느정도 되겠다. 나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신앙 생활은 어느정도 들여서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이걸 모르면 어두운 사람입니다. 그게 충성인데 자기 전도를 다하는 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건데 자신이 있으신지요 모두, 이런 말씀 듣고 생각할 때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기도 하고 여러 작용이 많아집니다. 아는데 몰라서 못 사는 것도 있고 아는데 못하니까 탄식이 되는 것이고, 주님은 2000년 전에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따라갑니다. 자기 현실에서, 현실은 항상 오늘입니다. 주님 따라가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주신 분량이 있고 그걸 다 하면 되는 겁니다. 주신 분량은 양도 위치도 다 정해져 있는거지요. 하나님께서 귀로 쓰셨는데 눈이 되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발로 쓰시려고 하는데 머리가 되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몸은 건강한데 머리는 안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겁니다. 저는 서부교회에서 저를 특수반 부장으로 하신 적 있습니다.
중간반 위치인데 김진태 목사님이 중간반 부장으로 계셨고 옮겨가실거고 해체하는 단계에서 저를 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김진태 목사님이 저는 해체 작업을 하는거고 그분은 맡고 있으니까 많이 부딪히는 거지요. 부딪힐 때 하시는 말이 제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아냐, 백 목사님을 이어가는 자리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중요한 줄도 몰랐고 어떻게 했는지 모릅니다. 공장장하라고 했더니 기계를 붙들고 있다고, 전체를 살피라고 세워놨는데 한 부분만 붙들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조직신학같은 거 성경신학을 다 연결시킬 줄 알아야하는데 안됩니다. 그걸 신풍 목사님이 타고 나셨습니다. 살아온 여정을 보면 백 목사님의 다음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조직하라고 그렇게 세워놓으셨다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그 면으로 따라가려고 해도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저한테 주신 위치가 있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주신 분량이 있고 위치가 있는 겁니다. 이런 면 때문에 스스로 해서 그런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스스로 낮춘 죄도 많았습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오셨고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입니다 현재에 살고 있고 자기에게 주신 분량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분량대로 하면 주님 따라가는 길이 되는 것이고 주님 가신 길에 세 가지를 말씀드렸지요. 2000년 전에 택자의 구주로 하나님과 직접 되었습니다. 주님 말씀 따라서, 말씀 있으니 말씀 따라서, 양심 통해 역사하시는 우리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갈 길이 이러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은 주님도 그랬고 우리도 갈 길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해야 생겨지는 게 믿음입니다. 자기를 위험하고 주관을 위험하고 그 말씀을 내 것 삼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관이 또렷하고 소신이 또렷한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삶을 대할 때는 소신이 뚜렷하고 주관이 뚜렷해야합니다. 그리고 꺾지 않아야합니다. 그럴수록 성공 출세하고 그게 강할수록 매를 많이 맞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 부인하고 세상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공과에 있는데 주님 따라가는 길은 고운 모양이고 고운 모양이란 가는 길에 고운 모양입니다. 입는 옷 얼굴 피부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생애에 무엇이 없단 말인가 안정된 것이 없다. 안정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다 그 말이 되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에는 고요함이 있을 수 있는데 고요하고 안정되고 그런 걸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안정된 행복을 바라지 말아야합니다.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합니다. 안정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고요하게 지내고 있으시지요. 내가 주님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셔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면 평안하지만은 자기 성찰, 자기를 돌아보는 주님 가시는 그 길과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이 되어있어야하고 평안하기가 어렵습니다. 평안한 거 같으나 쉬지 않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번 양성원 때 대학 시절에 일화를 말씀하셨지요. 153장 설명하면서 시내 버스비가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토큰이 있었고 학생들은 회수권이라고 있었습니다. 가로 1센치 세로 3센치 그만한 거 들고 버스타는데 버스 탈 때 회수권을 내고 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걸 하나를 물어가면서 그렇게 사신 적이 있다고. 회수권 버스 내면서 말씀이 그러니까 순간 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일보 일보로 동행하는 것이 그 생활입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마귀와의 싸움이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게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풍채라는 것은 말하자면 반할 수 있는 그런겁니다. 서울 대학 법대 출신입니다. 서울대 의대입니다 하면 쳐다봅니다. 저 아이비리그 대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더합니다. 삼성 엘지 현대하면 더 쳐다봅니다. 연봉 2억됩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 거기서 내리면 하차감이 생긴답니다.
키가 180 넘어가고 인물이 번듯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풍채라고 합니다. 주님 가신 길은 풍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린 그림이 키고 크도 인물도 번듯하고 그게 전부 그림일지라도 가짜입니다. 성경 안 봤습니다. 주님은 내 금식하셨는데 살이 찔 리가 있습니까. 빼빼 말라겠지요. 사진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은 경제 안정, 번창하는 사업, 행복한 가정, 좋은 배경, 학벌, 외모, 이런 게 전부 말하자면 없는 길입니다. 이걸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찾는 길입니다. 그 길이 옮은 길이므로 그것은 받아서 십자가에 다시 투자하는 것이지 그거 받으려고 하다가 망한 사람이 누굽니까. 롯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 받아서 망한 사람, 안 받은만 못한 거지요.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에서 경제복을 받으면 표시판으로 주신 겁니다. 그거 받아서 자꾸 모아서 목표가 되면은 큰일나는 겁니다. 하나님께 주시면 언젠가 쓰실 일 있나보다. 그럴 것이지 기본 정신 자세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운 모양과 풍채가 없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입니다. 대속의 길이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생활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바로 믿으려고 하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은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배가 고프지요 입어야하지요 잠도 자야하지요. 그런거 마련할 전부다가 자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속 역사,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하신 분이 주님입니다. 우리는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남편 내 아내 말고 아들 딸 말고, 혈육 말고 그런 관계라면 껍데기 세상 말고 정말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살리는 것이고 천국에 옮겨가는 그게 뜻이지 낡아지고 늙어지고 썩어질 고깃덩어리 이건희 회장이 죽을 때 얼마나 가져갔습니까. 천하의 재벌이라도 맨손으로 가는 겁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나를 하나님이 주셨고 내 전부를 주신 것.
천국 가니까 먼저 가기 전에 입신해 들어갔는데 지옥에 먼저 갔다고 하죠. 잔치판이 벌여져 있습니다. 상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명절에 맛있는 거 모두 잘 드셨나요. 숟가락 길이가 일 미터인데 이걸로 푹 떠서 지옥가니까 길이가 기니까 들어갑니까. 맛있는 음식을 놓고 있는데 한 사람도 못 먹더라고, 천국 가보니까 똑같더랍니다. 그런데 천국은 어떻게 먹더라고요, 내가 떠서 상대방 먹여주고 상대방 떠서 나 먹여주고 그게 천국이다. 지옥은 저만 위하는 사람들이 가는 게 지옥이고 천국은 다른 사람 위하는 그것이 천국입니다. 천국 안되겠습니까. 이 세상도 그러면 천국 되지요. 부부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면 천국이 됩니다. 물 한 방울도 자신 위한 것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물 한 방울도 다른 사람위해 살지 않은 인간은 누구지요. 홍포입은 부자입니다. 물 한 방울도 그렇게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면서 물 한 방울도 하나님과 관계 때문에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이 대속입니다. 주일학교 오후에 끝나면 청소하지요. 그게 대속 역사입니다. 섞임없는 대속 역사고 하늘의 것이 큰겁니다. 그래서 눈치보고 여럿이 있지만 모르면서 순수하게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눈치도 보고 잡것이 섞여서 그렇습니다.
오로지 말씀 붙들고 있습니다. 반사생활할 때도 그랬지만 그대로 살아보려는 이걸 계산하는 게 순수한겁니다. 그게 진짜베기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 순진한 것은 그게 좋은 것입니다. 털끝 만큼도 잘못이 없느데 그들 때문에 주님이 죽으시는데 주님이 가신 길 모르니까 조롱도 하고 별별 말 다 하지만 주님은 일절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게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것으로 되는 양처럼 대속에만 전부 다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하시는 말씀을 필요한 말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입니다. 살아가다가 사람 관계에서 무슨 일 만날 때 핑계 참 비겁하고 추한 말입니다. 할 말이면 하고 그 외에 이런 저런 필요없는 말은 안 하는게 지혜롭습니다. 자기를 챙기고 비유하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맡은 사명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이게 말없이 가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가신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까지 해야하느냐, 따져야하느냐, 10년에 한 번 주일 한 시간만 해서 일보고 가라 그건 안되냐, 평생 다닐 직장 먹고 살았는데 20년 만에 걸려서 한 시간 왔다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되냐. 20년 단이 회사에서 주일 자유 다 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 오면 안된다해서 오라고 합니다. 안 가야한다는 말이 나오면 곤란합니다. 그게 다윗의 외통입니다. 일종의 외통, 그럴 때 누가 해결했습니까. 하나님이 해결해버립니다. 그 회사에 잘못한 거 없으면 하나님께서 해결해버립니다. 지장 없도록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증거입니다. 그 정도 안되면 출근해야할지 모르죠. 백목사님은 출근하라고 합니다.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에 전쟁났습니까. 백 목사님께서 가야지. 네가 이 나라 장관인데 네가 이 나라를 위해서 바로 살았으면 전쟁 날 리가 있냐. 성경에 나와 있는 거지요. 세상은 이해 못하는 길입니다. 이런 줄 알고 가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길입니다. 영원토록 이어지고 하나님의 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고 주님 따라가는 것 다음이 있게됩니다.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말씀인데 그것의 행위, 그 말씀으로 산 자기 자체. 이게 주님 따라가는 길이고 이 길이었고 덕분에 주님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존귀한자가 불미스럽게 한다.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한다. 얻었습니다. 탈취한 것을 나눈 겁니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에 주님 가신 길 일곱가지, 맺은 결과 세 가지. 우리도 따라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05장, 108장
본문: 이사야 53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집회말씀에 이어갑니다. 아홉 번째, 주님,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요절로 했습니다. 앞서 먼저 우리 앞에 가셨고 따라가는게 우리 가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원형이면서 선생님입니다. 그 길을 제자를 따라서 스승처럼 되는 게 제자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형과 모형 관계는 물질로 말하면 모형 원형은 생명도 없는 것들이지만 주님과 우리를 가르치는 걸로 따라가는 겁니다. 앞서가신 주님의 길은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길이라는 것은 생애, 사람이 살아갈 길, 생애는 그게 길입니다. 인생길 나그네길, 주님 가신 길은 우리의 길이다. 일곱가지로 가신 길을 1절부터 12절 말씀까지 해봤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요약한 것이 많은데 백 목사님의 말씀은 다는 아닐지라도 교리처럼 외울 것이 많고 제가 하는 것은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지난 주일에 1절부터 6절까지 공부했고 1절부터 11절까지 공부했는데 줄여서 했고 7절부터 12절까지는 한 절씩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앞서가신 주님의 길, 그 길인데 우리들이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가셨는지 알아봐야합니다.
예정은 원래 되어있었고 선지자는 4000년 전부터 되어있었고 오신 것은 2000년 전 즈음 2025년 전 즈음에 오셨습니다. 33년 4개월을 살다 가셨는데 사람으로 한 분으로 오셨구나 택자 전부의 대속주로 되어있습니다. 언제 오셨는가. 2000년 전에 오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오셨느냐 택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가셨습니다. 잉태된 그때부터 1초도 끊어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 그 말이 세상이 모르는 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고 그런데 지난달 양성원도 말씀하신 것이 아마 물어보십시다. 지난달 양성원 이번 양성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리적으로 중요한 것. 아시는 분, 양성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창세기 본문 말고, 신학강의에서 하신 것이 어떤 것이었나요. 사람은 완전을 말씀했죠. 충성을 말했죠. 사람은 완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로써 자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자기로써 다 하면 자기의 할 수 있는대로 다 하면 정도에 따라서 완전한 것으로 인정하시고 변화시켜주십니다.
그 충성의 정도는 신앙의 성장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다만 죄가 있으면 안되는 것이고 일학년의 충성과 중학생의 충성과 고등학생의 충성과 대학생의 충성은 다른 겁니다. 대학생이 전부 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자기 정도로써 양심의 가책을 따집니다.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아무리 각 사람의 분양에도 알고 싶어도 알아지는 게 아닙니다. 살고 싶어도 살아지는 게 아닙니다. 되고 싶어도 그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돌아볼 때 알아야할 만큼 알고 있는가. 자기 스스로 양심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내면에 가서 하면 알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알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깔아뭉개놓고 죽으면 안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안됩니다. 아십니까. 스스로, 나는 하나님 앞에 그래서 천국 갔을 때 나는 천국 가면 어느정도 되겠다. 나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신앙 생활은 어느정도 들여서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이걸 모르면 어두운 사람입니다. 그게 충성인데 자기 전도를 다하는 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건데 자신이 있으신지요 모두, 이런 말씀 듣고 생각할 때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기도 하고 여러 작용이 많아집니다. 아는데 몰라서 못 사는 것도 있고 아는데 못하니까 탄식이 되는 것이고, 주님은 2000년 전에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따라갑니다. 자기 현실에서, 현실은 항상 오늘입니다. 주님 따라가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주신 분량이 있고 그걸 다 하면 되는 겁니다. 주신 분량은 양도 위치도 다 정해져 있는거지요. 하나님께서 귀로 쓰셨는데 눈이 되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발로 쓰시려고 하는데 머리가 되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몸은 건강한데 머리는 안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겁니다. 저는 서부교회에서 저를 특수반 부장으로 하신 적 있습니다.
중간반 위치인데 김진태 목사님이 중간반 부장으로 계셨고 옮겨가실거고 해체하는 단계에서 저를 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김진태 목사님이 저는 해체 작업을 하는거고 그분은 맡고 있으니까 많이 부딪히는 거지요. 부딪힐 때 하시는 말이 제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아냐, 백 목사님을 이어가는 자리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중요한 줄도 몰랐고 어떻게 했는지 모릅니다. 공장장하라고 했더니 기계를 붙들고 있다고, 전체를 살피라고 세워놨는데 한 부분만 붙들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조직신학같은 거 성경신학을 다 연결시킬 줄 알아야하는데 안됩니다. 그걸 신풍 목사님이 타고 나셨습니다. 살아온 여정을 보면 백 목사님의 다음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조직하라고 그렇게 세워놓으셨다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그 면으로 따라가려고 해도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저한테 주신 위치가 있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주신 분량이 있고 위치가 있는 겁니다. 이런 면 때문에 스스로 해서 그런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스스로 낮춘 죄도 많았습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오셨고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입니다 현재에 살고 있고 자기에게 주신 분량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분량대로 하면 주님 따라가는 길이 되는 것이고 주님 가신 길에 세 가지를 말씀드렸지요. 2000년 전에 택자의 구주로 하나님과 직접 되었습니다. 주님 말씀 따라서, 말씀 있으니 말씀 따라서, 양심 통해 역사하시는 우리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갈 길이 이러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은 주님도 그랬고 우리도 갈 길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해야 생겨지는 게 믿음입니다. 자기를 위험하고 주관을 위험하고 그 말씀을 내 것 삼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관이 또렷하고 소신이 또렷한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삶을 대할 때는 소신이 뚜렷하고 주관이 뚜렷해야합니다. 그리고 꺾지 않아야합니다. 그럴수록 성공 출세하고 그게 강할수록 매를 많이 맞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기 부인하고 세상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공과에 있는데 주님 따라가는 길은 고운 모양이고 고운 모양이란 가는 길에 고운 모양입니다. 입는 옷 얼굴 피부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생애에 무엇이 없단 말인가 안정된 것이 없다. 안정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다 그 말이 되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에는 고요함이 있을 수 있는데 고요하고 안정되고 그런 걸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안정된 행복을 바라지 말아야합니다.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합니다. 안정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고요하게 지내고 있으시지요. 내가 주님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셔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면 평안하지만은 자기 성찰, 자기를 돌아보는 주님 가시는 그 길과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이 되어있어야하고 평안하기가 어렵습니다. 평안한 거 같으나 쉬지 않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번 양성원 때 대학 시절에 일화를 말씀하셨지요. 153장 설명하면서 시내 버스비가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토큰이 있었고 학생들은 회수권이라고 있었습니다. 가로 1센치 세로 3센치 그만한 거 들고 버스타는데 버스 탈 때 회수권을 내고 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걸 하나를 물어가면서 그렇게 사신 적이 있다고. 회수권 버스 내면서 말씀이 그러니까 순간 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일보 일보로 동행하는 것이 그 생활입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마귀와의 싸움이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게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풍채라는 것은 말하자면 반할 수 있는 그런겁니다. 서울 대학 법대 출신입니다. 서울대 의대입니다 하면 쳐다봅니다. 저 아이비리그 대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더합니다. 삼성 엘지 현대하면 더 쳐다봅니다. 연봉 2억됩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 거기서 내리면 하차감이 생긴답니다.
키가 180 넘어가고 인물이 번듯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풍채라고 합니다. 주님 가신 길은 풍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린 그림이 키고 크도 인물도 번듯하고 그게 전부 그림일지라도 가짜입니다. 성경 안 봤습니다. 주님은 내 금식하셨는데 살이 찔 리가 있습니까. 빼빼 말라겠지요. 사진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은 경제 안정, 번창하는 사업, 행복한 가정, 좋은 배경, 학벌, 외모, 이런 게 전부 말하자면 없는 길입니다. 이걸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찾는 길입니다. 그 길이 옮은 길이므로 그것은 받아서 십자가에 다시 투자하는 것이지 그거 받으려고 하다가 망한 사람이 누굽니까. 롯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 받아서 망한 사람, 안 받은만 못한 거지요.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에서 경제복을 받으면 표시판으로 주신 겁니다. 그거 받아서 자꾸 모아서 목표가 되면은 큰일나는 겁니다. 하나님께 주시면 언젠가 쓰실 일 있나보다. 그럴 것이지 기본 정신 자세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운 모양과 풍채가 없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입니다. 대속의 길이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생활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바로 믿으려고 하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은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배가 고프지요 입어야하지요 잠도 자야하지요. 그런거 마련할 전부다가 자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속 역사,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하신 분이 주님입니다. 우리는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남편 내 아내 말고 아들 딸 말고, 혈육 말고 그런 관계라면 껍데기 세상 말고 정말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살리는 것이고 천국에 옮겨가는 그게 뜻이지 낡아지고 늙어지고 썩어질 고깃덩어리 이건희 회장이 죽을 때 얼마나 가져갔습니까. 천하의 재벌이라도 맨손으로 가는 겁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나를 하나님이 주셨고 내 전부를 주신 것.
천국 가니까 먼저 가기 전에 입신해 들어갔는데 지옥에 먼저 갔다고 하죠. 잔치판이 벌여져 있습니다. 상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명절에 맛있는 거 모두 잘 드셨나요. 숟가락 길이가 일 미터인데 이걸로 푹 떠서 지옥가니까 길이가 기니까 들어갑니까. 맛있는 음식을 놓고 있는데 한 사람도 못 먹더라고, 천국 가보니까 똑같더랍니다. 그런데 천국은 어떻게 먹더라고요, 내가 떠서 상대방 먹여주고 상대방 떠서 나 먹여주고 그게 천국이다. 지옥은 저만 위하는 사람들이 가는 게 지옥이고 천국은 다른 사람 위하는 그것이 천국입니다. 천국 안되겠습니까. 이 세상도 그러면 천국 되지요. 부부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면 천국이 됩니다. 물 한 방울도 자신 위한 것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물 한 방울도 다른 사람위해 살지 않은 인간은 누구지요. 홍포입은 부자입니다. 물 한 방울도 그렇게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면서 물 한 방울도 하나님과 관계 때문에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이 대속입니다. 주일학교 오후에 끝나면 청소하지요. 그게 대속 역사입니다. 섞임없는 대속 역사고 하늘의 것이 큰겁니다. 그래서 눈치보고 여럿이 있지만 모르면서 순수하게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눈치도 보고 잡것이 섞여서 그렇습니다.
오로지 말씀 붙들고 있습니다. 반사생활할 때도 그랬지만 그대로 살아보려는 이걸 계산하는 게 순수한겁니다. 그게 진짜베기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 순진한 것은 그게 좋은 것입니다. 털끝 만큼도 잘못이 없느데 그들 때문에 주님이 죽으시는데 주님이 가신 길 모르니까 조롱도 하고 별별 말 다 하지만 주님은 일절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게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것으로 되는 양처럼 대속에만 전부 다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하시는 말씀을 필요한 말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입니다. 살아가다가 사람 관계에서 무슨 일 만날 때 핑계 참 비겁하고 추한 말입니다. 할 말이면 하고 그 외에 이런 저런 필요없는 말은 안 하는게 지혜롭습니다. 자기를 챙기고 비유하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맡은 사명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이게 말없이 가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가신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까지 해야하느냐, 따져야하느냐, 10년에 한 번 주일 한 시간만 해서 일보고 가라 그건 안되냐, 평생 다닐 직장 먹고 살았는데 20년 만에 걸려서 한 시간 왔다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되냐. 20년 단이 회사에서 주일 자유 다 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 오면 안된다해서 오라고 합니다. 안 가야한다는 말이 나오면 곤란합니다. 그게 다윗의 외통입니다. 일종의 외통, 그럴 때 누가 해결했습니까. 하나님이 해결해버립니다. 그 회사에 잘못한 거 없으면 하나님께서 해결해버립니다. 지장 없도록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증거입니다. 그 정도 안되면 출근해야할지 모르죠. 백목사님은 출근하라고 합니다.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에 전쟁났습니까. 백 목사님께서 가야지. 네가 이 나라 장관인데 네가 이 나라를 위해서 바로 살았으면 전쟁 날 리가 있냐. 성경에 나와 있는 거지요. 세상은 이해 못하는 길입니다. 이런 줄 알고 가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길입니다. 영원토록 이어지고 하나님의 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고 주님 따라가는 것 다음이 있게됩니다.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말씀인데 그것의 행위, 그 말씀으로 산 자기 자체. 이게 주님 따라가는 길이고 이 길이었고 덕분에 주님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존귀한자가 불미스럽게 한다.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한다. 얻었습니다. 탈취한 것을 나눈 겁니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에 주님 가신 길 일곱가지, 맺은 결과 세 가지. 우리도 따라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