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5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0-05조회 10추천 1
2025년 10월 5일 주일 오후
찬송: 29장
본문: 이사야 5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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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라고 해서 자체가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작용 역사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지옥을 만드신 것도 사랑고 마귀를 만드신 것도 사랑입니다. 노아 홍수 때 수 억 명이 죽은 것도 사랑의 역사입니다. 6000년의 역사가 주권 섭리라면 수 많은 전쟁 역병 살해의 끔찍한 일들이 많았는데 사랑이다, 성경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이걸 다 믿으면 성경을 믿는 것이고 이런 걸 안 믿으면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릅니다. 존재가 다르므로 보시는 각도가 다르고 범위가 다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서울대 즈음, 하버드대 즈음 되면 나는 너희들가 다르다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보니까 오만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교만해서 내려가버렸습니다.
사람도 조금 잘나면 나는 다르다, 하나님과 사람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 믿는 목사들은 성경을 같은 책으로 종교 서적으로 불교의 불경처럼 상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큰 착각입니다. 성경은 성서가 아닙니다. 성서라는 말은 성경을 깎아내리는 못된 말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담임목사님은 성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합니다. 성서는 성경을 깎아내리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서가 아닙니다. 성경이지. 불교에서 불서라고 하지 않죠 불경이라고 하지. 하나님은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을 해석할 때 사람의 계산으로 하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노아 홍수의 수억이 죽은 것도 1차 대전 2차 대전도 625도 사랑이다. 역병으로 죽은 것도 사랑이다. 우리는 다 모르는데 하나님은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랑이 아닌 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습니다. 가난해지셨습니다 사람으로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사람으로 그런 역사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대속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셨고 영광 사랑의 길이므로 영광의 길입니다. 영광 중에 영광이 주님 가신 그 길입니다. 그래서 가장 복된 가장 영광스러운 그게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다릅니다. 가는 시기와 장소와 모습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에서 우리 길을 찾아야 우리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 언제 왔다가셨다고요 2000년 전에 왔다가셨습니다. 언제 나사렛에 왔다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다가 가셨습니다. 오신 시기가 다릅니다. 주님은 어떤 분으로 오셨다고요,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요 각자 주신 분량이 다릅니다. 사람이 얼굴이 다르듯이 성경 성향이 다르듯이 주님과 다릅니다. 온 시기가 다릅니다. 주님은 구주로 오셔서 담당하셨고 각자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충성하면 되는 겁니다. 집에가는 자녀로 주일되면 무엇으로요. 주일 오전에는 찬양대로 지금은 예배로 그때 그때 주신 것으로 주님은 어떻게 그 길을 가셨는가. 성경으로 기록해주셨으니 성경이 없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차이가 있으나 주님 가신 걸음이 대속의 걸음으로 가는 것은 같은 겁니다.
두 번째는 무엇으로 가는 길이었습니까.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믿음으로 가는 길. 세상 말은 자기가 주관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관입니다. 인간 자기 주관을 빼버려야합니다. 자기 주관. 주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없애버린다기 보다는 하나님과 말씀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게 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걸어가셨습니다. 1절입니다.
세 번째 주님 가신 길은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고운 모양은 말하자면은 고요한 것, 안정된 것, 평안한 거 행복한 것이고 풍채라는 것은 사람들이 믿을만한 것이지요. 돈 아무것도 없어도 그렇게 됩니다. 인물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없는 것인데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 우리 학생들한테 언중유골 무슨 뜻인가요. 말 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말을 듣고 속에 들었는데 말을 흘려들으니 그럴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고 그런 분들은 한 마디는 쉽게 흘려버리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은 진리가 있습니다. 거의 대다수가 흘려버렸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세상에서 세상을 살면서 천국을 합니다. 이 세상 안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가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활동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봐야합니다.
주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그렇습니다. 가장 곱고 가장 아름답고 귄위를 가진 분이 그분인데 일반적으로 주님 가는 길은 고운 풍채가 없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고운 풍채를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하면 고요하고 안정되고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모두 안정되기 다 사십니까. 그러면 잘 지내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믿음으로 한 종들은 그럴 때도 있지만 많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그런 길이었고 주일 때마다 기도할 때 늘 기도하는데 그런 신앙 가운데에 그 속에 역경을 주시면 가운데에 있어야합니다.
네 번째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그 분이 주님입니다. 가신 길은 누구의 길입니까. 우리도 누군가를 대속해야합니다. 대신해야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옥갈 사람으로는 안되나 건설구원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자기 아내를 위해서 자기 남편을 위해서 자기 자식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는 이 생활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생활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녀 등골을 빼먹는 부모, 나쁜 부모입니다. 부모란 자식 위해서 다 바치는 건데 자식을 이용해서 등골 빼먹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부부와 부모가 서로를 위하면 좋은 겁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남편이 아내 사랑하고 아내가 자녀 위하는 거 좋은데 그게 전부 내 아내니까 내 남편이니까 내 혈육이니까 그래서 그들 위해서 땀흘려 바치고 그런 것이 사람의 방언의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 다음이 뭐지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대속의 사랑 없는 것도 그것도 전부 사랑을 가르켜서 악이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힌 소리지요.
남편이 아내를 생각해서 몸을 불살랐는데 악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거기 가셨으니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혈육의 관계가 있으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사랑입니다. 같은 희생이라도 한 끝 차이라도 백두산 꼭대기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칼 끝에서 삐끗하면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주님 따라서 기도로 짐을 지고 수고함으로 짐을 지고 한 사람이라도 죄를 없애주면 하나님과 가까이 인도하는 이런 마음 하나가 이런 기도하는 것을 가르켜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박시현은 누구 위해서 기도합니까. 누구 위해서 기도를 해봐야지. 나 아닌 다른 자기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도록 해야하지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내가 깨끗해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십니다. 마음에 꽉찬 살아야할건데 그런 마음 그런 생각 저절로 해야하는게 대속의 생애고 그만큼 주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겁니다. 토요일 심방가고 기도하고 주일 심방가고 그게 복덩어리입니다. 그게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 다음 7절 다섯 번째입니다. 무언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이 자존심을 짓밟는 말로 손가락질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쥐어박는 그것을 당하는데 그걸 함부로 했다가는 감옥갑니다. 믿는 사람이 곤욕을 당하는 것은 자기 실수로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없으십니까. 그거는 여기 해당되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주변사람이 잘못했으니까 뭐하지요. 변명합니다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 대속 역사에 해당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고 대속에 필요한 말은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말을 해야하는데 핑계를 대는 말은 해봐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는 내 현실에서 할 일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무언의 길입니다.
8절, 그가 끌려갔으니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이 예수님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하고 그러는데 빌라도가 보니까 나는 죽일 죄를 찾지 못하겠다.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가이사의 반역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책임이 큽니다. 반역이라고 하니까 못 넘기는 것이지요. 주님은 그렇게 죄없이 끌려갔는데 거기 사는 그 시대에는 죽음은 마땅한 형벌을 받을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구주다 알았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해를 못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길입니다. 오늘도 그 길입니다. 오늘의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신다고요. 어떤 모습으로 참된 신자 참된 교회 내면이 어떻다 했습니까. 하나님만 전부 삼고 천국만 소망하고 이게 오늘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가신 길을 걸어갑니다.
일곱 번째,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헛된 게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는 귀가 없으니까 그리 됩니다. 그래서 일곱교회 말씀하실 때 성령이 하게 된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래서 일곱 번째는 세상이 알아야했는데 무덤이 알게 되었다. 무엇이 죽은 후를 말합니까. 주님이 죽으실 때 죄인으로 죽으셨고 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나 도망치고 있고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 유익되면 악용하고 믿는 사람 중에서도 거의 없습니다 제대로 하는 사람은. 귀합니다. 함께 되었도다. 일곱가지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걸어가셨는데 그 결과가 뭐냐 여호와께서 승리의 기쁨을 닿게 원하사 거기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 목적 위해서 구원해야하는데 이걸 구원하는 걸 원하시는데 그걸 아시고 재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오셔서 예정대로 되신 분입니다.
원하고 원함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속건제로 해서 마음까지 제물로 바쳤습니다. 제물로 바치게 되면 실상을 이루시게되면 뜻이 있고 원하심으로 해서 대속하시고 하게 되면 대속 역사를 해서 완성하시게 되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씨가 뭐지요. 다른 말로 하면 종자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걸 씨앗이라고 합니다. 씨라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아들 딸 자녀를 말합니다. 목적을 위해서 원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오셔서 그렇게 되면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을 따라 이어진 것이 열 두 사도가 그 씨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 씨입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내려온 역사의 참된 교회들이 그 씨입니다. 주님의 가심으로 씨가 되는 겁니다. 형체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열 두 사도는 주님을 가신 길을 가는 겁니다. 초대 교회에는 따라갑니다. 참된 교회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오늘도 그 씨는 자라고 있습니다. 주님은 잠깐살다 가셨는데 영원토록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 날은 깁니다. 대속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날 영원히 이어지는 주의 날, 별과 같이 영원토록 맺히리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주님의 사활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성취하리로다. 11절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하시기를 가라사대 그가, 그가 누굴까요. 그가 자기 심신을 다 바쳐서 공로된 것을 보고 만족해 기쁘시다. 자기 만족이실까요. 주님이 하나님의 사람 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되길 까지를 기도했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를 그렇게 말합니다.
십자가를 이루었다 하기 전에 주님 하신 말씀이지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환희의 뜻이다. 감사의 찬송, 만족히 여길 것이라 그게 십자가의 찬송입니다. 그렇게 가지만은 환희의 찬송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사회에 뭐라고 합니까. 기부하는 사람 말 들어보면 그렇게 기부가 좋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기부하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그럴 거 같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많아져서 좋으면 도둑놈이고, 기부하면 그렇게 좋답니다. 그런데 이것도 넓게 보면 자기 중심인데 주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건설입니다. 우주적인 고난이 되었을 때 감사 찬송하는 것입니다. 만족이 될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하신 겁니다. 나의 외로운 종이 의로운 종이 하나님의 뜻을 시키시는 대로 한 그 종입니다. 다기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 그래서 결과는 첫 번째 뜻을 성취하는 것이며 뜻을 이루는 것이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고 의롭게 하는 방법이 뭐냐. 자기 지식으로 의롭게 한다.
주님의 지식은 무엇이 주님의 지식입니까. 주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주님의 지식입니다. 자기 지식인데 그 지식이라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몇 가지 말씀드렸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로 살아가는 생이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변화된 자체입니다. 이 세가지가 지식입니다. 산 지식입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은 세 가지를 갖췄기 때문에 변화가 됩니다. 사람이 된 의로운 종이 그렇게 아는 사람을 의롭게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자가 이걸 깨닫고 하면 하는 만큼 되는데 그렇게 어렵습니다. 자기를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친히 감당하십니다. 이러므로 1절부터 11절까지 그렇게 되었음으로 존귀한 자로. 하나님이 가장 존귀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그게 바로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겁니다. 주님의 생애는 전투였고 표현하자면 죄 마귀 사망 악에 싸움 그 중에서 대속으로 얻은 탈취한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 택자들이고 구원들이고 무궁 세계고 우주를 다 통일시킨 것입니다. 탈취한 것을 하리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는 마지막 결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생각해봤습니다. 더 나눌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지난 주 말씀이고 일곱가지를 만들었고 10절부터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송: 29장
본문: 이사야 53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라고 해서 자체가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작용 역사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지옥을 만드신 것도 사랑고 마귀를 만드신 것도 사랑입니다. 노아 홍수 때 수 억 명이 죽은 것도 사랑의 역사입니다. 6000년의 역사가 주권 섭리라면 수 많은 전쟁 역병 살해의 끔찍한 일들이 많았는데 사랑이다, 성경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이걸 다 믿으면 성경을 믿는 것이고 이런 걸 안 믿으면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릅니다. 존재가 다르므로 보시는 각도가 다르고 범위가 다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서울대 즈음, 하버드대 즈음 되면 나는 너희들가 다르다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보니까 오만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교만해서 내려가버렸습니다.
사람도 조금 잘나면 나는 다르다, 하나님과 사람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 믿는 목사들은 성경을 같은 책으로 종교 서적으로 불교의 불경처럼 상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큰 착각입니다. 성경은 성서가 아닙니다. 성서라는 말은 성경을 깎아내리는 못된 말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담임목사님은 성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합니다. 성서는 성경을 깎아내리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서가 아닙니다. 성경이지. 불교에서 불서라고 하지 않죠 불경이라고 하지. 하나님은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을 해석할 때 사람의 계산으로 하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노아 홍수의 수억이 죽은 것도 1차 대전 2차 대전도 625도 사랑이다. 역병으로 죽은 것도 사랑이다. 우리는 다 모르는데 하나님은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랑이 아닌 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습니다. 가난해지셨습니다 사람으로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사람으로 그런 역사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대속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셨고 영광 사랑의 길이므로 영광의 길입니다. 영광 중에 영광이 주님 가신 그 길입니다. 그래서 가장 복된 가장 영광스러운 그게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다릅니다. 가는 시기와 장소와 모습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에서 우리 길을 찾아야 우리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 언제 왔다가셨다고요 2000년 전에 왔다가셨습니다. 언제 나사렛에 왔다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다가 가셨습니다. 오신 시기가 다릅니다. 주님은 어떤 분으로 오셨다고요, 택자 전부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요 각자 주신 분량이 다릅니다. 사람이 얼굴이 다르듯이 성경 성향이 다르듯이 주님과 다릅니다. 온 시기가 다릅니다. 주님은 구주로 오셔서 담당하셨고 각자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충성하면 되는 겁니다. 집에가는 자녀로 주일되면 무엇으로요. 주일 오전에는 찬양대로 지금은 예배로 그때 그때 주신 것으로 주님은 어떻게 그 길을 가셨는가. 성경으로 기록해주셨으니 성경이 없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차이가 있으나 주님 가신 걸음이 대속의 걸음으로 가는 것은 같은 겁니다.
두 번째는 무엇으로 가는 길이었습니까.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믿음으로 가는 길. 세상 말은 자기가 주관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관입니다. 인간 자기 주관을 빼버려야합니다. 자기 주관. 주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없애버린다기 보다는 하나님과 말씀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게 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걸어가셨습니다. 1절입니다.
세 번째 주님 가신 길은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고운 모양은 말하자면은 고요한 것, 안정된 것, 평안한 거 행복한 것이고 풍채라는 것은 사람들이 믿을만한 것이지요. 돈 아무것도 없어도 그렇게 됩니다. 인물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없는 것인데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 우리 학생들한테 언중유골 무슨 뜻인가요. 말 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말을 듣고 속에 들었는데 말을 흘려들으니 그럴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고 그런 분들은 한 마디는 쉽게 흘려버리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은 진리가 있습니다. 거의 대다수가 흘려버렸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세상에서 세상을 살면서 천국을 합니다. 이 세상 안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가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활동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봐야합니다.
주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그렇습니다. 가장 곱고 가장 아름답고 귄위를 가진 분이 그분인데 일반적으로 주님 가는 길은 고운 풍채가 없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고운 풍채를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하면 고요하고 안정되고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모두 안정되기 다 사십니까. 그러면 잘 지내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믿음으로 한 종들은 그럴 때도 있지만 많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그런 길이었고 주일 때마다 기도할 때 늘 기도하는데 그런 신앙 가운데에 그 속에 역경을 주시면 가운데에 있어야합니다.
네 번째 주님 가신 길은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그 분이 주님입니다. 가신 길은 누구의 길입니까. 우리도 누군가를 대속해야합니다. 대신해야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옥갈 사람으로는 안되나 건설구원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자기 아내를 위해서 자기 남편을 위해서 자기 자식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는 이 생활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생활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녀 등골을 빼먹는 부모, 나쁜 부모입니다. 부모란 자식 위해서 다 바치는 건데 자식을 이용해서 등골 빼먹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부부와 부모가 서로를 위하면 좋은 겁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남편이 아내 사랑하고 아내가 자녀 위하는 거 좋은데 그게 전부 내 아내니까 내 남편이니까 내 혈육이니까 그래서 그들 위해서 땀흘려 바치고 그런 것이 사람의 방언의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 다음이 뭐지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대속의 사랑 없는 것도 그것도 전부 사랑을 가르켜서 악이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힌 소리지요.
남편이 아내를 생각해서 몸을 불살랐는데 악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거기 가셨으니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혈육의 관계가 있으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사랑입니다. 같은 희생이라도 한 끝 차이라도 백두산 꼭대기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칼 끝에서 삐끗하면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주님 따라서 기도로 짐을 지고 수고함으로 짐을 지고 한 사람이라도 죄를 없애주면 하나님과 가까이 인도하는 이런 마음 하나가 이런 기도하는 것을 가르켜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박시현은 누구 위해서 기도합니까. 누구 위해서 기도를 해봐야지. 나 아닌 다른 자기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도록 해야하지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내가 깨끗해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십니다. 마음에 꽉찬 살아야할건데 그런 마음 그런 생각 저절로 해야하는게 대속의 생애고 그만큼 주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겁니다. 토요일 심방가고 기도하고 주일 심방가고 그게 복덩어리입니다. 그게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 다음 7절 다섯 번째입니다. 무언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이 자존심을 짓밟는 말로 손가락질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쥐어박는 그것을 당하는데 그걸 함부로 했다가는 감옥갑니다. 믿는 사람이 곤욕을 당하는 것은 자기 실수로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없으십니까. 그거는 여기 해당되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주변사람이 잘못했으니까 뭐하지요. 변명합니다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 대속 역사에 해당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고 대속에 필요한 말은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말을 해야하는데 핑계를 대는 말은 해봐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는 내 현실에서 할 일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무언의 길입니다.
8절, 그가 끌려갔으니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이 예수님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하고 그러는데 빌라도가 보니까 나는 죽일 죄를 찾지 못하겠다.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가이사의 반역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책임이 큽니다. 반역이라고 하니까 못 넘기는 것이지요. 주님은 그렇게 죄없이 끌려갔는데 거기 사는 그 시대에는 죽음은 마땅한 형벌을 받을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구주다 알았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해를 못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길입니다. 오늘도 그 길입니다. 오늘의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신다고요. 어떤 모습으로 참된 신자 참된 교회 내면이 어떻다 했습니까. 하나님만 전부 삼고 천국만 소망하고 이게 오늘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가신 길을 걸어갑니다.
일곱 번째,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헛된 게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는 귀가 없으니까 그리 됩니다. 그래서 일곱교회 말씀하실 때 성령이 하게 된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래서 일곱 번째는 세상이 알아야했는데 무덤이 알게 되었다. 무엇이 죽은 후를 말합니까. 주님이 죽으실 때 죄인으로 죽으셨고 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나 도망치고 있고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 유익되면 악용하고 믿는 사람 중에서도 거의 없습니다 제대로 하는 사람은. 귀합니다. 함께 되었도다. 일곱가지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걸어가셨는데 그 결과가 뭐냐 여호와께서 승리의 기쁨을 닿게 원하사 거기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 목적 위해서 구원해야하는데 이걸 구원하는 걸 원하시는데 그걸 아시고 재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오셔서 예정대로 되신 분입니다.
원하고 원함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속건제로 해서 마음까지 제물로 바쳤습니다. 제물로 바치게 되면 실상을 이루시게되면 뜻이 있고 원하심으로 해서 대속하시고 하게 되면 대속 역사를 해서 완성하시게 되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씨가 뭐지요. 다른 말로 하면 종자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걸 씨앗이라고 합니다. 씨라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아들 딸 자녀를 말합니다. 목적을 위해서 원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오셔서 그렇게 되면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을 따라 이어진 것이 열 두 사도가 그 씨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 씨입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내려온 역사의 참된 교회들이 그 씨입니다. 주님의 가심으로 씨가 되는 겁니다. 형체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열 두 사도는 주님을 가신 길을 가는 겁니다. 초대 교회에는 따라갑니다. 참된 교회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오늘도 그 씨는 자라고 있습니다. 주님은 잠깐살다 가셨는데 영원토록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 날은 깁니다. 대속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날 영원히 이어지는 주의 날, 별과 같이 영원토록 맺히리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주님의 사활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성취하리로다. 11절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하시기를 가라사대 그가, 그가 누굴까요. 그가 자기 심신을 다 바쳐서 공로된 것을 보고 만족해 기쁘시다. 자기 만족이실까요. 주님이 하나님의 사람 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되길 까지를 기도했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를 그렇게 말합니다.
십자가를 이루었다 하기 전에 주님 하신 말씀이지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환희의 뜻이다. 감사의 찬송, 만족히 여길 것이라 그게 십자가의 찬송입니다. 그렇게 가지만은 환희의 찬송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사회에 뭐라고 합니까. 기부하는 사람 말 들어보면 그렇게 기부가 좋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기부하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그럴 거 같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많아져서 좋으면 도둑놈이고, 기부하면 그렇게 좋답니다. 그런데 이것도 넓게 보면 자기 중심인데 주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건설입니다. 우주적인 고난이 되었을 때 감사 찬송하는 것입니다. 만족이 될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하신 겁니다. 나의 외로운 종이 의로운 종이 하나님의 뜻을 시키시는 대로 한 그 종입니다. 다기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 그래서 결과는 첫 번째 뜻을 성취하는 것이며 뜻을 이루는 것이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고 의롭게 하는 방법이 뭐냐. 자기 지식으로 의롭게 한다.
주님의 지식은 무엇이 주님의 지식입니까. 주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주님의 지식입니다. 자기 지식인데 그 지식이라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몇 가지 말씀드렸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로 살아가는 생이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변화된 자체입니다. 이 세가지가 지식입니다. 산 지식입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은 세 가지를 갖췄기 때문에 변화가 됩니다. 사람이 된 의로운 종이 그렇게 아는 사람을 의롭게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자가 이걸 깨닫고 하면 하는 만큼 되는데 그렇게 어렵습니다. 자기를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친히 감당하십니다. 이러므로 1절부터 11절까지 그렇게 되었음으로 존귀한 자로. 하나님이 가장 존귀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그게 바로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겁니다. 주님의 생애는 전투였고 표현하자면 죄 마귀 사망 악에 싸움 그 중에서 대속으로 얻은 탈취한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 택자들이고 구원들이고 무궁 세계고 우주를 다 통일시킨 것입니다. 탈취한 것을 하리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 오후에는 마지막 결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생각해봤습니다. 더 나눌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지난 주 말씀이고 일곱가지를 만들었고 10절부터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