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일 금밤
김동민2025-10-03조회 26추천 1
2025년 10월 3일 금밤
찬송: 94장, 101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월요일이 추석명절이지요. 명절은 세상 명절이지만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현실 속에 값진 그런 날은 신앙의 구원에 유익되도록 해야합니다. 믿는 사람은 은밀하게 따지면 주일만 지키고 성탄절까지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어릴 때 여름 성경 학교라고 해마다 하는 행사처럼 안하는 안되는 교회의 중요한 행사였는데 우리는 안하고 있습니다. 유익이 없어서 안하는 겁니다. 백목사님 생전까지 했지만 형식만 하고 계속 계셨으면 없애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치로 세상 명절은 믿는 사람에게 해당이 없습니다. 주일만 거룩하게 지킵니다. 중생된 날짜는 기억하면 좋습니다. 세례받은 날도 좋고 믿는 사람은 생일잔치도 하면 안된다고 없다고는 안하지만 할 시간이 없습니다. 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하지만 그럴 때 믿는 사람은 잘 이용해서 유익이 많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광고를 했어야했는데 안했지요. 다음주 추석인데 주일 어기지 않도록 하십시다 해야하는데 내일 모레 주일날 어린 신앙들이 주일 어기지 않도록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부터 집회 말씀 여덟 번째 시간이 되는데 주님 가신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고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주님의 이름이 뭐지요. 예수지요.
왜 배워야하느냐, 예수님이 가신 길은 앞서 걸어가신 길이고 선생님이 가신 길이고 선생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은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우리의 생애고 신앙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인데 사람 되어오셨고 33년 4개월 짧은 생애로 가셨습니다. 박기천 조사님은 14살에 세례받았고 27살에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3살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죠. 박기천 조사님은 27에 순교로 돌아가셨습니다. 짧은 생애를 살고 가셨는데 공생활은 3년 4개월입니다. 그 짧은 기간을 여러 의미로 생각해봐야하고 교리로 담아서 해야합니다. 택자 전부의 죄를 과거 현재 미래 죄까지 수많은 책자의 영원히 지옥 간 지옥 갈 대속하신 게 주님의 대속입니다. 천만명이 될지 일억이 될지 백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6000년 역사의 택자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신 분이 주님입니다. 30년은 사생활입니다. 목수였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서민, 복음을 전한 기간은 3년 4개월입니다.
다윗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40년입니다. 솔로몬도 40년입니다. 사울이 다스린 기간도 40년입니다. 40년 세월은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그런데 40년 동안 통치하니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거지요. 요셉이 17살에 애굽에 팔려갔고 30살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13년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를 몇 년 했다고요 3년 4개월입니다. 길지 않은 기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 기준으로 보면 많이 할 수 있었으나 짧은 세월은 아닙니다. 백 목사님 설교록 보면은 3년만 바로 믿으면 다 부자된다. 경제도 부자가 된다 그렇습니다. 안 그럴 사람이 없다. 굉장히 긴 세월이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택자의 모든 것을 대속하셨고 3년 4개월이었습니다. 대속의 생애를 오신 그때부터 가실 때까지 함축해가시면 본문에 기록을 해놨는데 1절부터 3절까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사람들 눈에 비친 눈에 보인 예수님의 모습을 1절부터 3절까지 기록해놨고 그래서 주님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기록했습니다.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이란 보이는 것에 따라서 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지요.
알아야 보이는 겁니다. 모르면 안 보이는 거지요. 강아지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면 기가 막히게 뭘 찾아낸다고 합니까. 똥개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면 똥을 그렇게 잘 찾아먹는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습니다.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개 눈에는 똥 밖에 안 보인다는 겁니다. 잘하는 사람들은 전부 돈 80년대 서부교회에 반사선생님 눈에는 주일학생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 동네 밖에 안 보였습니다. 아파트를 사야하는 사람 눈에는 아파트 밖에 안 보입니다. 예배당을 건축을 앞둔 목회자는 예배당 밖에 안 보입니다. 우리 집회 장소 마련하기 전에 신풍 목사님은 3만 보이면 집회 장소 다 보이는 거지요. 자기 된대로 시각에 따라 달리보입니다 오신 주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인데 사람이니까 사람의 모습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없는거지요. 극소수였고 그 주님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신 주님이 보이기를 연한 솜 같고 마른 땅에서 말라빠진 줄기같고 그래서 고운 모양 풍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이니까 그 주님을 가까이 할 리가 없었던거지요. 믿고 의자하지요. 가난한 목수 아들인데 목수의 아들한테 붙어서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보인 것이 오신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문제는 주님이 가신 그 걸음이 우리들이 걸어갈 걸음입니다. 주님의 가신 그 길은 우리들이 걸어갈 우리의 길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뭐지요. 주님이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겁니다. 그 길을 가는데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기독자라고 합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총공회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백파입니다 백파. 피키스트라고 되어있습니다. 그게 백파라고 합니다. 백파는 백목사님의 노선을 가는 사람이 백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을 기독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 오신 그 모습은 우리들이 걸어갈 우리들의 모습이 되는 겁니다. 그랫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좋게 아름답게 곱게 풍채있게 그렇게 보인다는 개념 자체를 버려야합니다. 왜 그렇게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셨으며 사셨겠습니까. 그 이유가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의사들은 좋은 직업이지요. 연봉이 보통 3-4000입니다. 연봉 4억을 줘도 올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 의사들 중에서 옛날에는 의사가 선서도 하고 사자 달린 직업, 의사 판사 그런 직분 맡은 사람들은 선서를 합니다. 다 하는데 의사들이 돈 잘버는 직업이라서 우리나라에 다섯 살에 네 살 다섯 살에 뭘 뗀다고 한더단가요. 영어를 어디까지 뗀다던가요. 수능 영어를 다섯 살에 다 떼버리고, 수능 영어 아나요. 상당히 어렵죠. 그리고 그때부터 선행학습을 하는데 수학을 하고 과학을 하는거지요. 그래서 뭐할려고 의대 보내려고. 의사 만들면 떼돈 버니까. 옛날에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요즘은 개나줘라, 돈만 벌면 좋지. 그래서 어디를 가장 기피한답니까. 가장 힘들고 돈은 비슷한 의사들, 외과 피튀겨야하고 수술해아하고 그 응급실 병원에 가면 아름답습니까 끔찍합니까.
외과사들은 뼈를 갈고 바느질해야하고 핏속에 살아야합니다. 끔찍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살립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고 불구될 사람 고치는 겁니다. 주님 가신 길이 그런 길입니다. 아름다울 리가 있습니까.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인데, 그걸 건져낼려고 하면 건져내는 사람들이 건져낼 수 있습니까. 주님 모습이 고을 리가 없고 풍채가 좋을 리 없는거지요. 그래서 면도칼처럼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아닙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왜 그렇게 알아야하느냐. 우리들이 가는데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고 지옥같은 세상에 오셔서 구원했습니다. 그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견딜려니까 그런 모습이 되는거지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사람을 살려야하고 그 사람 붙들고 놔주지 않는 그러면 우리 모습이 고울 수가 없고 멸시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멸시천대 조롱받는 성도여 깨어라. 4절부터 6절까지는 주님 걸어가신 걸음의 알맹이 내면을 기록해놨습니다. 왜 그 모습이 되어졌는가. 4절부터 6절까지를 차분히 하시겠습니까. 무슨 내용이지요. 4절부터 천천히 읽습니다.
한 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대속입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 걸음이 우리의 질고를 치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이사야가 이 성경 기록할 때를 말하면 주님을 박대하고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바로 그 제사장 서기관인들 그 사람들의 것을 한답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질고라는 말은 병내 고통이라는 건데 병을 앓지 않았습니다. 질고란 그 속의 죄악을 말합니다. 병이라는 것은 세균관련 병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죄로 인해서 받을 슬픔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들이 걸어갈 걸음입니다. 우리는 여기계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누구의 질고를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슬픔을 대신 당하고 있는가. 각자 자신은 누구의 죄지음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슬픔을 대신 당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시고 당했습니다. 가신 걸음이고 우리도 주님따라 갈려면 다른 사람의 죄짐을 져야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짐은 대신 지지요.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부모님은 수고하고 애쓰고 희생을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그 자녀의 이 세상 성공 출세를 위해 애쓰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 주일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좋아지도록 할려고 마음을 아프게 기도하고 자기 생활을 조심하고 그렇게 하는 수고를 하면은 주님 가신 걸음이 되는 겁니다. 주님 가신 걸음 생각해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 질고를 어떻게 주셨습니까. 우리가 질 짐입니다. 우리의 질고를 죄의 고통을 어떻게 지셨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죄를 지신 마지막 절정입니다. 박기천 조사님은 따라갔습니다. 그분은 누구의 죄짐을 졌던가 그분의 생애를 읽어보면 백목사님과 비교가 안되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순교하신 일 중에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다가 그래서 순교당했습니다. 주일 안 지키는 거
찬송: 94장, 101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월요일이 추석명절이지요. 명절은 세상 명절이지만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현실 속에 값진 그런 날은 신앙의 구원에 유익되도록 해야합니다. 믿는 사람은 은밀하게 따지면 주일만 지키고 성탄절까지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어릴 때 여름 성경 학교라고 해마다 하는 행사처럼 안하는 안되는 교회의 중요한 행사였는데 우리는 안하고 있습니다. 유익이 없어서 안하는 겁니다. 백목사님 생전까지 했지만 형식만 하고 계속 계셨으면 없애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치로 세상 명절은 믿는 사람에게 해당이 없습니다. 주일만 거룩하게 지킵니다. 중생된 날짜는 기억하면 좋습니다. 세례받은 날도 좋고 믿는 사람은 생일잔치도 하면 안된다고 없다고는 안하지만 할 시간이 없습니다. 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하지만 그럴 때 믿는 사람은 잘 이용해서 유익이 많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광고를 했어야했는데 안했지요. 다음주 추석인데 주일 어기지 않도록 하십시다 해야하는데 내일 모레 주일날 어린 신앙들이 주일 어기지 않도록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부터 집회 말씀 여덟 번째 시간이 되는데 주님 가신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고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주님의 이름이 뭐지요. 예수지요.
왜 배워야하느냐, 예수님이 가신 길은 앞서 걸어가신 길이고 선생님이 가신 길이고 선생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은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우리의 생애고 신앙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인데 사람 되어오셨고 33년 4개월 짧은 생애로 가셨습니다. 박기천 조사님은 14살에 세례받았고 27살에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3살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죠. 박기천 조사님은 27에 순교로 돌아가셨습니다. 짧은 생애를 살고 가셨는데 공생활은 3년 4개월입니다. 그 짧은 기간을 여러 의미로 생각해봐야하고 교리로 담아서 해야합니다. 택자 전부의 죄를 과거 현재 미래 죄까지 수많은 책자의 영원히 지옥 간 지옥 갈 대속하신 게 주님의 대속입니다. 천만명이 될지 일억이 될지 백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6000년 역사의 택자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신 분이 주님입니다. 30년은 사생활입니다. 목수였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서민, 복음을 전한 기간은 3년 4개월입니다.
다윗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40년입니다. 솔로몬도 40년입니다. 사울이 다스린 기간도 40년입니다. 40년 세월은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그런데 40년 동안 통치하니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거지요. 요셉이 17살에 애굽에 팔려갔고 30살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13년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를 몇 년 했다고요 3년 4개월입니다. 길지 않은 기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 기준으로 보면 많이 할 수 있었으나 짧은 세월은 아닙니다. 백 목사님 설교록 보면은 3년만 바로 믿으면 다 부자된다. 경제도 부자가 된다 그렇습니다. 안 그럴 사람이 없다. 굉장히 긴 세월이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택자의 모든 것을 대속하셨고 3년 4개월이었습니다. 대속의 생애를 오신 그때부터 가실 때까지 함축해가시면 본문에 기록을 해놨는데 1절부터 3절까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사람들 눈에 비친 눈에 보인 예수님의 모습을 1절부터 3절까지 기록해놨고 그래서 주님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기록했습니다.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이란 보이는 것에 따라서 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지요.
알아야 보이는 겁니다. 모르면 안 보이는 거지요. 강아지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면 기가 막히게 뭘 찾아낸다고 합니까. 똥개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면 똥을 그렇게 잘 찾아먹는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습니다.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개 눈에는 똥 밖에 안 보인다는 겁니다. 잘하는 사람들은 전부 돈 80년대 서부교회에 반사선생님 눈에는 주일학생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 동네 밖에 안 보였습니다. 아파트를 사야하는 사람 눈에는 아파트 밖에 안 보입니다. 예배당을 건축을 앞둔 목회자는 예배당 밖에 안 보입니다. 우리 집회 장소 마련하기 전에 신풍 목사님은 3만 보이면 집회 장소 다 보이는 거지요. 자기 된대로 시각에 따라 달리보입니다 오신 주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인데 사람이니까 사람의 모습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없는거지요. 극소수였고 그 주님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신 주님이 보이기를 연한 솜 같고 마른 땅에서 말라빠진 줄기같고 그래서 고운 모양 풍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이니까 그 주님을 가까이 할 리가 없었던거지요. 믿고 의자하지요. 가난한 목수 아들인데 목수의 아들한테 붙어서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보인 것이 오신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문제는 주님이 가신 그 걸음이 우리들이 걸어갈 걸음입니다. 주님의 가신 그 길은 우리들이 걸어갈 우리의 길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뭐지요. 주님이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겁니다. 그 길을 가는데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기독자라고 합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총공회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백파입니다 백파. 피키스트라고 되어있습니다. 그게 백파라고 합니다. 백파는 백목사님의 노선을 가는 사람이 백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을 기독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 오신 그 모습은 우리들이 걸어갈 우리들의 모습이 되는 겁니다. 그랫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좋게 아름답게 곱게 풍채있게 그렇게 보인다는 개념 자체를 버려야합니다. 왜 그렇게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셨으며 사셨겠습니까. 그 이유가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의사들은 좋은 직업이지요. 연봉이 보통 3-4000입니다. 연봉 4억을 줘도 올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 의사들 중에서 옛날에는 의사가 선서도 하고 사자 달린 직업, 의사 판사 그런 직분 맡은 사람들은 선서를 합니다. 다 하는데 의사들이 돈 잘버는 직업이라서 우리나라에 다섯 살에 네 살 다섯 살에 뭘 뗀다고 한더단가요. 영어를 어디까지 뗀다던가요. 수능 영어를 다섯 살에 다 떼버리고, 수능 영어 아나요. 상당히 어렵죠. 그리고 그때부터 선행학습을 하는데 수학을 하고 과학을 하는거지요. 그래서 뭐할려고 의대 보내려고. 의사 만들면 떼돈 버니까. 옛날에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요즘은 개나줘라, 돈만 벌면 좋지. 그래서 어디를 가장 기피한답니까. 가장 힘들고 돈은 비슷한 의사들, 외과 피튀겨야하고 수술해아하고 그 응급실 병원에 가면 아름답습니까 끔찍합니까.
외과사들은 뼈를 갈고 바느질해야하고 핏속에 살아야합니다. 끔찍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살립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고 불구될 사람 고치는 겁니다. 주님 가신 길이 그런 길입니다. 아름다울 리가 있습니까.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인데, 그걸 건져낼려고 하면 건져내는 사람들이 건져낼 수 있습니까. 주님 모습이 고을 리가 없고 풍채가 좋을 리 없는거지요. 그래서 면도칼처럼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아닙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왜 그렇게 알아야하느냐. 우리들이 가는데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고 지옥같은 세상에 오셔서 구원했습니다. 그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견딜려니까 그런 모습이 되는거지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사람을 살려야하고 그 사람 붙들고 놔주지 않는 그러면 우리 모습이 고울 수가 없고 멸시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멸시천대 조롱받는 성도여 깨어라. 4절부터 6절까지는 주님 걸어가신 걸음의 알맹이 내면을 기록해놨습니다. 왜 그 모습이 되어졌는가. 4절부터 6절까지를 차분히 하시겠습니까. 무슨 내용이지요. 4절부터 천천히 읽습니다.
한 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대속입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 걸음이 우리의 질고를 치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이사야가 이 성경 기록할 때를 말하면 주님을 박대하고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바로 그 제사장 서기관인들 그 사람들의 것을 한답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질고라는 말은 병내 고통이라는 건데 병을 앓지 않았습니다. 질고란 그 속의 죄악을 말합니다. 병이라는 것은 세균관련 병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죄로 인해서 받을 슬픔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들이 걸어갈 걸음입니다. 우리는 여기계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누구의 질고를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슬픔을 대신 당하고 있는가. 각자 자신은 누구의 죄지음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누구의 슬픔을 대신 당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시고 당했습니다. 가신 걸음이고 우리도 주님따라 갈려면 다른 사람의 죄짐을 져야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짐은 대신 지지요.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부모님은 수고하고 애쓰고 희생을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그 자녀의 이 세상 성공 출세를 위해 애쓰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 주일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좋아지도록 할려고 마음을 아프게 기도하고 자기 생활을 조심하고 그렇게 하는 수고를 하면은 주님 가신 걸음이 되는 겁니다. 주님 가신 걸음 생각해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 질고를 어떻게 주셨습니까. 우리가 질 짐입니다. 우리의 질고를 죄의 고통을 어떻게 지셨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죄를 지신 마지막 절정입니다. 박기천 조사님은 따라갔습니다. 그분은 누구의 죄짐을 졌던가 그분의 생애를 읽어보면 백목사님과 비교가 안되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순교하신 일 중에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다가 그래서 순교당했습니다. 주일 안 지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