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6일 금밤
김동민2025-09-26조회 28추천 3
2025년 9월 26일 금밤
찬송: 90장, 91장
본문: 사무엘상 28장 1절
평소 잘 공부하지 않는 말씀인데 성경을 읽어보면 의문이 듭니다. 외통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좀 그랬는데 장기를 두는 게 있습니다. 초나라 한나라 전쟁을 본떠만든 장기가 있는데 그 한쪽이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을 외통이라고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길을 외통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외통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가. 배경을 살펴보면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지요. 왕 중에서 가장 겸손했습니다. 왕의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겸손하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왕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더 올라갈 자리가 있을까. 같은 왕이라도 권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멸시받는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 더더욱 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는데 늙어서 죽을 때까지 부하고 존귀하다가 떠납니다.
사울은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겸손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씨도 말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아까운 걸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사람도 아말렉은 왕은 남겨놓고 이름이 나오나요. 아각은 남겨놓고. 양과 소도 좋은 것은 남겨두고 가치없고 남은 것은 죽이고 교만해서 그렇게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제사까지 사울이 지냅니다. 제사는 누가 지내는 거지요. 레위지파 고핫자손만 지내는데 왕이라고 지내다가. 그리 되니까 하나님께 버림 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자기 아들같은 사위인데 시기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쫓아다니고 죄에 죄를 더하는 그런 짓을 사울이 하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되고 사울 때 다윗이 나라의 전부라고 할 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눈초리는 다윗을 항하는데 그 다윗을 쫓아내니까 알맹이를 빼버린겁니다. 전쟁이 나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하는데 답을 안하시니까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런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시대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전에 사울에게 쫓기다가 쫓기다가 생각하기를 결국 사울에게 죽임 당하겠다 싶어서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의 가장 중심되는 왕, 주변 나라는 과거 유럽 쪽에는 봉건제라고 영주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각 지방에서 영토를 많이 가진 영주들이 다스리다가 나라 전체에 문제 생기면 중앙에서 영주를 불러서 군사 데리고 와서 전쟁하는 형태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세력이 큰 사람에게 망명을 해서 갔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좋게보고 소문들어서 아니까 이스라엘의 보배인데 피해서 나한테 왔구나. 그래서 데리고 있는데
왕도, 왕이 사는 곳을 왕도라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권층들만 평양에 삽니다. 그렇게 되어있지 않으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되어져서 돈 없는 사람들은 서울에 가고 싶어도 못 가지 않습니까. 빈민처럼 살면 살긴 되는데 부산보다 몇 배나 비싸니까 지방보다는 옛날에는 더 심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양에 사는 게 참 그랬는데 다른 나라에서 내가 도망 온 사람인데 왕도에 살기는 미안하니까 지방을 주면 살겠습니다 하니까 하나 줍니다. 일 년 넉 달 동안에 지내면서 얼마나 마음을 얻었던지, 다윗을 자기의 머리지키는 자라는 것은 경호실장입니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게 경호실장입니다. 그 정도로 다윗이 블레셋에게 신임을 하였습니다. 요셉도 애굽왕 바로에게 을 얻었고 다니엘도 포로로 잡혔지만 동족들 보다도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더 믿었습니다.
모르드개도 그랬고 느헤미야도 그랬고 이방 다른 나라 가는데 그렇게 을 얻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회사 가면 을 얻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얻었습니다. 이거는 상황에서 역사하실 일이 있어서 사울의 범죄로 나라가 그리 되니까 블레셋에게 붙이시려고 전쟁을 준비하게 합니다. 블레셋으로 하여금 전쟁을 준비하게 합니다. 군대를 모집하고 침략을 하고 이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군대를 보고 겁이 나가지고 기도하고 물어보는데 응답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서 말하지요. 28장 1절입니다. 이때 다윗의 군사가 400명이 넘어서 600명 즈음 되었을겁니다. 그러면 무시 못하거든요. 수 천 명 수 만 명있어도 별동대를 만든다고 하면 무서운 겁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러가는데 너와 내 군사들이 함께가서 전쟁에 참전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 대해서 당신의 종에게 행할 바를 아시리이까. 당연히 참석하지요. 당연히 가야지요. 싸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영영히 내 머리지키는 자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제 생각을 해 봅니다. 다윗이 지금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말하자면 했고 1년 4개월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그 당시로 말하면 사울의 신하고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전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때 보면 이스라엘 나라에도 다른 민족이 섞여있습니다. 출애굽에 나올 때 잡족이 따라 나온 것처럼 그 뒤에 보면 애굽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 겁니다. 섞여 있는데 대다수는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뒤도 다 히브리 사람입니다.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키는데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윗의 조국입니다. 동족입니다. 그를 향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끌어들이는거지요. 나와 함께 참전하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싸울 때 러시아에 팔아먹을 게 많으니까 다 달라졌지만은 침략 당한 우크라이나 편을 못 드는 거지요. 유럽 쪽에서도 유럽 연합 아니지만 직접 참전은 못하는 겁니다. 월남전 때 월남이 갈라져서 싸울 때 미국이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엄청나게 파견했습니다. 한국에도 요청을 해서 파병해달라. 지금도 박대통령 두고 월남파병 두고 욕하는 것은 못 들어봤습니다. 그때 얻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이 망했다가 625전쟁 때문에 일본이 살아났다고 하거든요. 일본에서 모든 물자로 다 떼돈을 벌었지요. 요즘 젊은 말로 너희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하던가요. 박 대통령이 그걸 봤거든요.
저희 어릴 때 월남 노래 많이 불렀고 월남 갔다온 사람들 계속 나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을 많이 받았습니다. 월남전으로 우리나라 살아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블레셋이 다윗을 전쟁 잘 하는 줄 알거든요. 그래서 전쟁하는 그 상대가 누구냐. 다윗의 조국입니다. 그 신하들의 조국입니다. 가서 칼창으로 싸워야하는 대상이 자기 동족입니다. 갈 수 있습니까. 블레셋은 원래부터 앙숙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가지고 블레셋은 붙어있습니다. 늘 싸웁니다. 그런데 다윗이 망명을 갔거든요. 괜찮은 건가요. 일반 교단에서 다는 아니겠지만. 다윗이 잘못한거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블레셋은 원수 나라인데 그렇게 간 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다. 다윗 잘못이겠습니까. 그랬으면 다윗과 함께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겠지요.
내가 하나님 앞에나 왕 앞에 죽을 죄를 지었으면 목숨 내 놓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부추겼으면 개죽음 당할 수 없잖습니까.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실제는 다윗이 왕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게 됩니다. 껍데기가 되는 겁니다. 다윗이 블레셋 망명한 것은 이유가 하나 있는 것은 사울이 다윗이 이스라엘 안에 있으면 끝까지 따라다닙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죄거든요. 죽이려고 하면 죄고 죽이면 더 큰 죄가 되는 겁니다. 내가 피해서 갔으나 속에 보면 다윗은 사울의 죄를 중단시키는 겁니다. 그래야 사울이 더 나를 죽이려는 살인죄를 짓지않겠다. 그래서 블레셋으로 망명을 간 겁니다. 그리고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추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한참 복잡할 때 일본에서 삼일천하할 때 반란 일으켰다가 일본갔다가 일본까지 보내서 죽였는데 미국도 보내 죽이는데요. 그런데 사울이 중단을 해버립니다. 맞은거지요. 그리고 블레셋에 있는 동안에 다 이겼고 동행을 했습니다. 다윗의 블레셋 망명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블레셋 나라 아기스에 있으면서 을 얻었는데 전쟁이 났습니다. 그걸 바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아기스가 너와 함께할 때 참전해야한다. 동족이고 조국인데 흔쾌히 수락을 합니다. 당연히 가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런 유사한 일들이 현실 생활에서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직장 관계도, 외통으로 몰리게 됩니다. 다윗은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바로 가야겠지요.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갔다면 동족으로 싸워야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마 일반적으로 말하면 외통을 다 만났지요. 어렵지 않게 판단하고 결정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은 일반적으로 말을 하면 애국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윗이 전쟁에 나가면 조국을 상대로 칼을 겨눠야합니다.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안 나가면 이놈 우리 편 아니구나 하고 죽을 수 있는거지요.
전쟁 가서 매국노 되던지 아니면 거기서 다시 애국자가 되어서 기회를 봐서 블레셋하고 싸워서 애국자가 되든지, 기회를 봐서 도망을 쳐버리던지. 이렇게 밖에 길이 없겠지요. 다윗은 정면 돌파라기 보다는 당연히 싸우러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판단이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어떻게 했어야하는 겁니까. 이것은 그렇게 결정한 것은 바로된 것입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앞에 말씀드린대로 지금 껍데기는 이스라엘인데 전부가 다윗을 잡아 죽이려는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합니다. 다윗의 대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겁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해서 이렇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을 보면 단순합니다.
실제 가게 되면 동족과 싸워야하는데, 피흘리는 것을 원했을까. 정말 하려고 했을까. 거짓으로 하진 않았을겁니다. 그러면 다윗의 입장에서는 블레셋에 와있는 상황이고 전쟁하러 가는데 참전하고 있고 안 가면 다 죽을 수도 있는 겁니다. 가면은 동족과 싸워야합니다. 그래서 간다고 했는데 아기스에게 죽음이 두려워서 간다고 그랬을까. 다윗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옳은 결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옳다고 판단을 한 겁니다. 옳다고 판단했지만 그 깊은 속에 동족들에 대한 사랑 이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다윗이 뜨거웠을 겁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게 다윗에게는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하나님 백성들인데 자기 민족인데 어떻게 할까. 다윗이 고민과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다윗은 그걸 옳기는 했는데 한다면 인간적으로 못할 짓인데 그랬을 때 다윗의 마음 양면을 다 가진거지요.
다윗이 자기로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외통에 몰렸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때 개입을 하셔서 29장에 3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로되 무엇을 하려느냐, 다윗의 참전을 블레셋이 막아버립니다. 방백들이 막아버렸습니다. 100퍼센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말하자면은 블레셋 방백들의 생각은 달랐던거죠. 만약에 마음 바뀌어서 우리 뒤통수 치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 다 죽는다. 그럴 수는 없는거다. 그래서 말하자면 영주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왕이 무시를 못하는 거지요. 말도 하다가 강하게 반대로 말하니까 돌려보냅니다. 다윗은 따집니다. 나오지요. 8절에.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다윗과 대적된 이스라엘은 원수가 되는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게 많습니다. 사람들이 인정을 못합니다. 백 목사님께서 고신에 계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던 곳입니다. 쫓아내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 사람들은 눈을 빼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심장을 도려냈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다윗을 쫓아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되는 겁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하다 이렇게 절대적 신임 받았습니다.
바울이 잡혀서 재판 받을 때 바울이 그 말을 합니다. 그 누구지요. 가이사, 내 동족에게나 도무지 죄를 지은 게 없다.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겁니다. 양성원에 어떤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 전쟁이 났습니다. 다른 부서보다도 무조건 가서 싸워야하는데 잘 믿는 장관인데 전쟁하러 가야합니까 주일 지키러 가야합니까. 그 장관은 주일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잘 믿었다면 전쟁날 리가 없다. 그럴 때 하나님에게 원수 나라로 갔을 때 이스라엘에 대해서 사울에 대해서는 죄 지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외통에 몰렸습니다. 신의를 져버리던지 동족에게 칼을 겨누든지 그래야합니다. 그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알아서 해결해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치우치면 안되는 것이고 옆으로 하나님께 심지어 원수에게 까지도.
공회 다른 쪽하고 그런 게 있는데 우리 공회는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상대방의 구원까지도 계산을 다 합니다. 그래서 선을 지키고 마구잡이로 못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믿는 사람 목사들인데 안하는 짓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생각하고 구원생각하고 우리를 해치는 사람까지고 계산을 합니다. 공회 인도하는 목사님은 거기까지 계산을 다 합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거지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고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말씀을 안 어기려고 그렇게 가는 겁니다. 이런 길을 가르켜서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은 해결해 버리면 외통의 길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윗의 신앙과 우리의 신앙만 보면 흉내도 못 내지요. 그래도 이렇게 가는 게 우리의 길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90장, 91장
본문: 사무엘상 28장 1절
평소 잘 공부하지 않는 말씀인데 성경을 읽어보면 의문이 듭니다. 외통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좀 그랬는데 장기를 두는 게 있습니다. 초나라 한나라 전쟁을 본떠만든 장기가 있는데 그 한쪽이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을 외통이라고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길을 외통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외통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가. 배경을 살펴보면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지요. 왕 중에서 가장 겸손했습니다. 왕의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겸손하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왕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더 올라갈 자리가 있을까. 같은 왕이라도 권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멸시받는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 더더욱 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는데 늙어서 죽을 때까지 부하고 존귀하다가 떠납니다.
사울은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겸손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씨도 말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아까운 걸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사람도 아말렉은 왕은 남겨놓고 이름이 나오나요. 아각은 남겨놓고. 양과 소도 좋은 것은 남겨두고 가치없고 남은 것은 죽이고 교만해서 그렇게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제사까지 사울이 지냅니다. 제사는 누가 지내는 거지요. 레위지파 고핫자손만 지내는데 왕이라고 지내다가. 그리 되니까 하나님께 버림 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자기 아들같은 사위인데 시기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쫓아다니고 죄에 죄를 더하는 그런 짓을 사울이 하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되고 사울 때 다윗이 나라의 전부라고 할 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눈초리는 다윗을 항하는데 그 다윗을 쫓아내니까 알맹이를 빼버린겁니다. 전쟁이 나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하는데 답을 안하시니까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런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시대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전에 사울에게 쫓기다가 쫓기다가 생각하기를 결국 사울에게 죽임 당하겠다 싶어서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의 가장 중심되는 왕, 주변 나라는 과거 유럽 쪽에는 봉건제라고 영주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각 지방에서 영토를 많이 가진 영주들이 다스리다가 나라 전체에 문제 생기면 중앙에서 영주를 불러서 군사 데리고 와서 전쟁하는 형태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세력이 큰 사람에게 망명을 해서 갔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좋게보고 소문들어서 아니까 이스라엘의 보배인데 피해서 나한테 왔구나. 그래서 데리고 있는데
왕도, 왕이 사는 곳을 왕도라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권층들만 평양에 삽니다. 그렇게 되어있지 않으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되어져서 돈 없는 사람들은 서울에 가고 싶어도 못 가지 않습니까. 빈민처럼 살면 살긴 되는데 부산보다 몇 배나 비싸니까 지방보다는 옛날에는 더 심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양에 사는 게 참 그랬는데 다른 나라에서 내가 도망 온 사람인데 왕도에 살기는 미안하니까 지방을 주면 살겠습니다 하니까 하나 줍니다. 일 년 넉 달 동안에 지내면서 얼마나 마음을 얻었던지, 다윗을 자기의 머리지키는 자라는 것은 경호실장입니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게 경호실장입니다. 그 정도로 다윗이 블레셋에게 신임을 하였습니다. 요셉도 애굽왕 바로에게 을 얻었고 다니엘도 포로로 잡혔지만 동족들 보다도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더 믿었습니다.
모르드개도 그랬고 느헤미야도 그랬고 이방 다른 나라 가는데 그렇게 을 얻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회사 가면 을 얻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얻었습니다. 이거는 상황에서 역사하실 일이 있어서 사울의 범죄로 나라가 그리 되니까 블레셋에게 붙이시려고 전쟁을 준비하게 합니다. 블레셋으로 하여금 전쟁을 준비하게 합니다. 군대를 모집하고 침략을 하고 이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군대를 보고 겁이 나가지고 기도하고 물어보는데 응답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서 말하지요. 28장 1절입니다. 이때 다윗의 군사가 400명이 넘어서 600명 즈음 되었을겁니다. 그러면 무시 못하거든요. 수 천 명 수 만 명있어도 별동대를 만든다고 하면 무서운 겁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러가는데 너와 내 군사들이 함께가서 전쟁에 참전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 대해서 당신의 종에게 행할 바를 아시리이까. 당연히 참석하지요. 당연히 가야지요. 싸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영영히 내 머리지키는 자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제 생각을 해 봅니다. 다윗이 지금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말하자면 했고 1년 4개월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그 당시로 말하면 사울의 신하고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전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때 보면 이스라엘 나라에도 다른 민족이 섞여있습니다. 출애굽에 나올 때 잡족이 따라 나온 것처럼 그 뒤에 보면 애굽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 겁니다. 섞여 있는데 대다수는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뒤도 다 히브리 사람입니다.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키는데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윗의 조국입니다. 동족입니다. 그를 향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끌어들이는거지요. 나와 함께 참전하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싸울 때 러시아에 팔아먹을 게 많으니까 다 달라졌지만은 침략 당한 우크라이나 편을 못 드는 거지요. 유럽 쪽에서도 유럽 연합 아니지만 직접 참전은 못하는 겁니다. 월남전 때 월남이 갈라져서 싸울 때 미국이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엄청나게 파견했습니다. 한국에도 요청을 해서 파병해달라. 지금도 박대통령 두고 월남파병 두고 욕하는 것은 못 들어봤습니다. 그때 얻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이 망했다가 625전쟁 때문에 일본이 살아났다고 하거든요. 일본에서 모든 물자로 다 떼돈을 벌었지요. 요즘 젊은 말로 너희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하던가요. 박 대통령이 그걸 봤거든요.
저희 어릴 때 월남 노래 많이 불렀고 월남 갔다온 사람들 계속 나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을 많이 받았습니다. 월남전으로 우리나라 살아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블레셋이 다윗을 전쟁 잘 하는 줄 알거든요. 그래서 전쟁하는 그 상대가 누구냐. 다윗의 조국입니다. 그 신하들의 조국입니다. 가서 칼창으로 싸워야하는 대상이 자기 동족입니다. 갈 수 있습니까. 블레셋은 원래부터 앙숙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가지고 블레셋은 붙어있습니다. 늘 싸웁니다. 그런데 다윗이 망명을 갔거든요. 괜찮은 건가요. 일반 교단에서 다는 아니겠지만. 다윗이 잘못한거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블레셋은 원수 나라인데 그렇게 간 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다. 다윗 잘못이겠습니까. 그랬으면 다윗과 함께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겠지요.
내가 하나님 앞에나 왕 앞에 죽을 죄를 지었으면 목숨 내 놓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부추겼으면 개죽음 당할 수 없잖습니까.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실제는 다윗이 왕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게 됩니다. 껍데기가 되는 겁니다. 다윗이 블레셋 망명한 것은 이유가 하나 있는 것은 사울이 다윗이 이스라엘 안에 있으면 끝까지 따라다닙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죄거든요. 죽이려고 하면 죄고 죽이면 더 큰 죄가 되는 겁니다. 내가 피해서 갔으나 속에 보면 다윗은 사울의 죄를 중단시키는 겁니다. 그래야 사울이 더 나를 죽이려는 살인죄를 짓지않겠다. 그래서 블레셋으로 망명을 간 겁니다. 그리고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추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한참 복잡할 때 일본에서 삼일천하할 때 반란 일으켰다가 일본갔다가 일본까지 보내서 죽였는데 미국도 보내 죽이는데요. 그런데 사울이 중단을 해버립니다. 맞은거지요. 그리고 블레셋에 있는 동안에 다 이겼고 동행을 했습니다. 다윗의 블레셋 망명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블레셋 나라 아기스에 있으면서 을 얻었는데 전쟁이 났습니다. 그걸 바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아기스가 너와 함께할 때 참전해야한다. 동족이고 조국인데 흔쾌히 수락을 합니다. 당연히 가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런 유사한 일들이 현실 생활에서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직장 관계도, 외통으로 몰리게 됩니다. 다윗은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바로 가야겠지요.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갔다면 동족으로 싸워야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마 일반적으로 말하면 외통을 다 만났지요. 어렵지 않게 판단하고 결정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은 일반적으로 말을 하면 애국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윗이 전쟁에 나가면 조국을 상대로 칼을 겨눠야합니다.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안 나가면 이놈 우리 편 아니구나 하고 죽을 수 있는거지요.
전쟁 가서 매국노 되던지 아니면 거기서 다시 애국자가 되어서 기회를 봐서 블레셋하고 싸워서 애국자가 되든지, 기회를 봐서 도망을 쳐버리던지. 이렇게 밖에 길이 없겠지요. 다윗은 정면 돌파라기 보다는 당연히 싸우러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판단이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어떻게 했어야하는 겁니까. 이것은 그렇게 결정한 것은 바로된 것입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앞에 말씀드린대로 지금 껍데기는 이스라엘인데 전부가 다윗을 잡아 죽이려는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합니다. 다윗의 대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겁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해서 이렇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을 보면 단순합니다.
실제 가게 되면 동족과 싸워야하는데, 피흘리는 것을 원했을까. 정말 하려고 했을까. 거짓으로 하진 않았을겁니다. 그러면 다윗의 입장에서는 블레셋에 와있는 상황이고 전쟁하러 가는데 참전하고 있고 안 가면 다 죽을 수도 있는 겁니다. 가면은 동족과 싸워야합니다. 그래서 간다고 했는데 아기스에게 죽음이 두려워서 간다고 그랬을까. 다윗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옳은 결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옳다고 판단을 한 겁니다. 옳다고 판단했지만 그 깊은 속에 동족들에 대한 사랑 이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다윗이 뜨거웠을 겁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게 다윗에게는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하나님 백성들인데 자기 민족인데 어떻게 할까. 다윗이 고민과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다윗은 그걸 옳기는 했는데 한다면 인간적으로 못할 짓인데 그랬을 때 다윗의 마음 양면을 다 가진거지요.
다윗이 자기로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외통에 몰렸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때 개입을 하셔서 29장에 3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로되 무엇을 하려느냐, 다윗의 참전을 블레셋이 막아버립니다. 방백들이 막아버렸습니다. 100퍼센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말하자면은 블레셋 방백들의 생각은 달랐던거죠. 만약에 마음 바뀌어서 우리 뒤통수 치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 다 죽는다. 그럴 수는 없는거다. 그래서 말하자면 영주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왕이 무시를 못하는 거지요. 말도 하다가 강하게 반대로 말하니까 돌려보냅니다. 다윗은 따집니다. 나오지요. 8절에.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다윗과 대적된 이스라엘은 원수가 되는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게 많습니다. 사람들이 인정을 못합니다. 백 목사님께서 고신에 계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던 곳입니다. 쫓아내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 사람들은 눈을 빼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심장을 도려냈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다윗을 쫓아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되는 겁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하다 이렇게 절대적 신임 받았습니다.
바울이 잡혀서 재판 받을 때 바울이 그 말을 합니다. 그 누구지요. 가이사, 내 동족에게나 도무지 죄를 지은 게 없다.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겁니다. 양성원에 어떤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 전쟁이 났습니다. 다른 부서보다도 무조건 가서 싸워야하는데 잘 믿는 장관인데 전쟁하러 가야합니까 주일 지키러 가야합니까. 그 장관은 주일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잘 믿었다면 전쟁날 리가 없다. 그럴 때 하나님에게 원수 나라로 갔을 때 이스라엘에 대해서 사울에 대해서는 죄 지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외통에 몰렸습니다. 신의를 져버리던지 동족에게 칼을 겨누든지 그래야합니다. 그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알아서 해결해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치우치면 안되는 것이고 옆으로 하나님께 심지어 원수에게 까지도.
공회 다른 쪽하고 그런 게 있는데 우리 공회는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상대방의 구원까지도 계산을 다 합니다. 그래서 선을 지키고 마구잡이로 못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믿는 사람 목사들인데 안하는 짓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생각하고 구원생각하고 우리를 해치는 사람까지고 계산을 합니다. 공회 인도하는 목사님은 거기까지 계산을 다 합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거지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고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말씀을 안 어기려고 그렇게 가는 겁니다. 이런 길을 가르켜서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은 해결해 버리면 외통의 길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윗의 신앙과 우리의 신앙만 보면 흉내도 못 내지요. 그래도 이렇게 가는 게 우리의 길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