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09-28조회 27추천 1
2025년 9월 28일 주일 오전
찬송: 12장, 63장
본문: 이사야 53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오늘에 나타난 주님은 참교회 참신자. 거짓이 없는 가짜가 없는 100퍼센트 순수한. 오리지널인 그런 거지요. 참된 교회, 성경 말씀대로의 참교회 차 믿는 신자 이 사람의 모습이 오늘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천국만 소망하고 말씀과 성령에 근거한 것입니다. 말씀과 따라가는 그 가정 그 교회가 오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1절부터 전체, 보면은 6절까지 말씀으로 할건데 오늘 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주님 오셨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두 번째 그 주님은 왜 오셨으며 하신 일이 무엇인가.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분들은 부활하신 것에서 어떻게 상대했는가. 어떻게 오셨던가. 무슨 일을 하셨던가. 이것이 그 모습이 오늘로 말하면 참된 교회, 참된 신자의 모습이 되는 것이고 구약 4000년으로 말하면 참된 종들의 모습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 세상에 안 믿는 이방인들은 그럴 수 있으나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선지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를 구원했고 오셨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구약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주님 모습과 같다는 겁니다. 그 선지자들의 말은 그들의 말은 직접적으로는 이사야가 많으나 다른 선지자들도 하나님과 같은 말씀을 전했으니까 같은 모습인데 누가 믿었느뇨, 믿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은 사람이 믿지를 않는 겁니다.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보면 이 세상은 지으신 분이 주님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하나님 계셨고 하늘과 땅과 우주 전부를 물질계 전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분이 말씀이고 주님인데 이 세상이 있는데 세상 자기 땅인데 몰라봅니다.
주님이 오병이어 할 때는 5천명 4천명 때로는 수만명이 따라다녔는데 마지막에는 전부 도망갔습니다. 베드로가 몇 번을 부인합니까. 세 번을 부인합니다. 마지막에 주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과 꼭 같습니다. 역사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믿어야 나타납니다. 63장인데 참 좋은 찬송입니다. 참 가사가 좋은 찬송입니다. 어린 아이를 데려놓은 아버지가 못 고쳐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치료해주옵소서. 그런데 여호와의 팔이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왜 그렇지요 믿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걸 누가 믿었느뇨, 살아가면 함께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님 오셨을 때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슈퍼마켓보다 많은데 청교도로 시작한 미국 나라가 무신론자가 많다고 합니다. 기독교보다는 불교라도 믿는 게 낫습니다. 무신론주의자들인데 우리의 정한 것을 누가 나타났느뇨 이런 믿음이 없는 시대라서 어떤 모습이 있던가요. 참된 교회, 참된 시작 하나님만 전부 삼고 천국만 소망하고 말씀만 굉장히 따라가는 지금 시대에 눈을 씻고봐도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님 다시 올 때 즈음 믿음이 없는 시기입니다. 성경이 그대로 믿어지십니까. 저도 믿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는 겁니다.
네가 나를 돈보다 못하게 상대하리라. 어떤 사람은 만원짜리보다 더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이고 야곱이고 요셉이고 참된 종들입니다. 이런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십니까. 예배당에서 아리랑 차별 왜 합니까. 예배당 태극기 가져다 놓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주님 모습입니다. 신인양성일위는 주님의 주는 무엇이 주님의 주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런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사시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세상에 살아가시기를 기록되오니 속속들이 보이지 않고 이 세상에 나타셨고 사람들의 시각이 볼 때 그렇습니다. 연한 순 같았습니다. 양면이 있습니다. 뻣뻣함이 없습니다. 거역이 없습니다. 시키는대로 다 합니다. 그게 연한 순인데 가냘퍼서 힘이 없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겁니다. 아버지 앞에 하는데 너무도 힘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마른 땅이니까 새가 주워먹거나 죽거나 그런데 마른 땅에서는 그거 참 보기 흉하게 자랍니다. 겨우겨우 목숨 유지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 신인양성일위니까 하나님의 모습이 구주로 오셔서 다 하셔서 죄인이 되니까 보잘 것 없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 보기에 마음에 할만한 닮고 싶다 나도 저리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뭐라고 그렇다고요 참된 모습이 이렇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없던 직장이 생겨지고 예수를 믿으니까 어렵던 직장이 좋아지고 아이들 성적이 올라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또 권세 쪽에는 점점 예수 믿어서 건강하고 가정 행복하고 하면은 얼마나 보기가 좋겠습니까. 그리 되지 않는가요.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되었답니다. 예수로 믿어서 복받고 싶으신 분 다 들더랍니다. 예수 믿으셔서 가난해지고 싶으신 분 아무도 손 안들더랍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자기 전부를 다해서 믿는 사람이 되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믿고 죽게 되는 것이 믿는 겁니다 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설교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떡 주니까 병 고쳐주니까 살려주니까 좋아하지요. 마지막 절정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죽으시는 게 목적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살기위해 오셨습니까 죽기 위해 오셨습니까. 죽기 위해 오신 겁니다. 그러면 이 따라갈 신앙이 예수를 잘 믿어서 아파트에서 40평으로 돌라가고 작은차 타다가 대형차타고 다 들어놓고 자녀들 앞날 다 해놓고 그리고 해외 여행도 다니고 참 행복하게 사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가지는 거 다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인데 이게 주님의 모습이었고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다 싫어합니다. 가질 수 있는데 그 마지막에는 주님을 위해서 다 바치는 거지요.
예수 믿으면 경제가 풀립니다. 직장도 가지게 됩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사람이 바로 됩니다. 바로 믿은 사람이 정직해지고 진실해집니다. 부지런해집니다. 끈기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그리 됩니다. 시간 속에 직장이 생기고 그리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받으니까 주신 그것을 하나님 하시는대로 무궁세계를 위해서 투자하는 게 참된 신앙입니다. 멸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다 버려버렸습니다. 우리도 상황따라 주님 버릴 때가 많습니다. 가난의 고통을 받는 겁니다. 없어서 재물이 없고 힘있고 필요한 게 있을 때 되는 겁니다. 주님은 가진 게 없었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의 모습을 참된 교회를 삼고 따라가는 그 교회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가까이하기 싫어합니다. 그분과 엮이기 싫다고 합니다.
옳은 말 하면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람 옳은 말 듣기 싫다고 목사들이 옳은 말 듣기 싫다고 반대합니다. 마치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우고 말로 얼굴 표정으로 다 합니다. 주님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참된 모습이 앞서가신 주님으로 누가 따라갑니까. 우리가 따라갑니다. 그래서 가르켜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좁은 생명길입니다. 그래도 가야하는 겁니다. 오늘 오전에 신인양성일위의 걸음 동행의 걸음 같이 생각해봤는데 오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장, 63장
본문: 이사야 53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오늘에 나타난 주님은 참교회 참신자. 거짓이 없는 가짜가 없는 100퍼센트 순수한. 오리지널인 그런 거지요. 참된 교회, 성경 말씀대로의 참교회 차 믿는 신자 이 사람의 모습이 오늘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천국만 소망하고 말씀과 성령에 근거한 것입니다. 말씀과 따라가는 그 가정 그 교회가 오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1절부터 전체, 보면은 6절까지 말씀으로 할건데 오늘 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주님 오셨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두 번째 그 주님은 왜 오셨으며 하신 일이 무엇인가.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분들은 부활하신 것에서 어떻게 상대했는가. 어떻게 오셨던가. 무슨 일을 하셨던가. 이것이 그 모습이 오늘로 말하면 참된 교회, 참된 신자의 모습이 되는 것이고 구약 4000년으로 말하면 참된 종들의 모습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 세상에 안 믿는 이방인들은 그럴 수 있으나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선지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를 구원했고 오셨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구약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주님 모습과 같다는 겁니다. 그 선지자들의 말은 그들의 말은 직접적으로는 이사야가 많으나 다른 선지자들도 하나님과 같은 말씀을 전했으니까 같은 모습인데 누가 믿었느뇨, 믿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은 사람이 믿지를 않는 겁니다.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보면 이 세상은 지으신 분이 주님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하나님 계셨고 하늘과 땅과 우주 전부를 물질계 전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분이 말씀이고 주님인데 이 세상이 있는데 세상 자기 땅인데 몰라봅니다.
주님이 오병이어 할 때는 5천명 4천명 때로는 수만명이 따라다녔는데 마지막에는 전부 도망갔습니다. 베드로가 몇 번을 부인합니까. 세 번을 부인합니다. 마지막에 주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과 꼭 같습니다. 역사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믿어야 나타납니다. 63장인데 참 좋은 찬송입니다. 참 가사가 좋은 찬송입니다. 어린 아이를 데려놓은 아버지가 못 고쳐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치료해주옵소서. 그런데 여호와의 팔이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왜 그렇지요 믿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걸 누가 믿었느뇨, 살아가면 함께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님 오셨을 때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슈퍼마켓보다 많은데 청교도로 시작한 미국 나라가 무신론자가 많다고 합니다. 기독교보다는 불교라도 믿는 게 낫습니다. 무신론주의자들인데 우리의 정한 것을 누가 나타났느뇨 이런 믿음이 없는 시대라서 어떤 모습이 있던가요. 참된 교회, 참된 시작 하나님만 전부 삼고 천국만 소망하고 말씀만 굉장히 따라가는 지금 시대에 눈을 씻고봐도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님 다시 올 때 즈음 믿음이 없는 시기입니다. 성경이 그대로 믿어지십니까. 저도 믿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는 겁니다.
네가 나를 돈보다 못하게 상대하리라. 어떤 사람은 만원짜리보다 더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이고 야곱이고 요셉이고 참된 종들입니다. 이런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십니까. 예배당에서 아리랑 차별 왜 합니까. 예배당 태극기 가져다 놓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주님 모습입니다. 신인양성일위는 주님의 주는 무엇이 주님의 주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런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사시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세상에 살아가시기를 기록되오니 속속들이 보이지 않고 이 세상에 나타셨고 사람들의 시각이 볼 때 그렇습니다. 연한 순 같았습니다. 양면이 있습니다. 뻣뻣함이 없습니다. 거역이 없습니다. 시키는대로 다 합니다. 그게 연한 순인데 가냘퍼서 힘이 없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겁니다. 아버지 앞에 하는데 너무도 힘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마른 땅이니까 새가 주워먹거나 죽거나 그런데 마른 땅에서는 그거 참 보기 흉하게 자랍니다. 겨우겨우 목숨 유지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 신인양성일위니까 하나님의 모습이 구주로 오셔서 다 하셔서 죄인이 되니까 보잘 것 없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 보기에 마음에 할만한 닮고 싶다 나도 저리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뭐라고 그렇다고요 참된 모습이 이렇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없던 직장이 생겨지고 예수를 믿으니까 어렵던 직장이 좋아지고 아이들 성적이 올라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또 권세 쪽에는 점점 예수 믿어서 건강하고 가정 행복하고 하면은 얼마나 보기가 좋겠습니까. 그리 되지 않는가요.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되었답니다. 예수로 믿어서 복받고 싶으신 분 다 들더랍니다. 예수 믿으셔서 가난해지고 싶으신 분 아무도 손 안들더랍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자기 전부를 다해서 믿는 사람이 되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믿고 죽게 되는 것이 믿는 겁니다 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설교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떡 주니까 병 고쳐주니까 살려주니까 좋아하지요. 마지막 절정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죽으시는 게 목적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살기위해 오셨습니까 죽기 위해 오셨습니까. 죽기 위해 오신 겁니다. 그러면 이 따라갈 신앙이 예수를 잘 믿어서 아파트에서 40평으로 돌라가고 작은차 타다가 대형차타고 다 들어놓고 자녀들 앞날 다 해놓고 그리고 해외 여행도 다니고 참 행복하게 사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가지는 거 다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인데 이게 주님의 모습이었고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다 싫어합니다. 가질 수 있는데 그 마지막에는 주님을 위해서 다 바치는 거지요.
예수 믿으면 경제가 풀립니다. 직장도 가지게 됩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사람이 바로 됩니다. 바로 믿은 사람이 정직해지고 진실해집니다. 부지런해집니다. 끈기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그리 됩니다. 시간 속에 직장이 생기고 그리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받으니까 주신 그것을 하나님 하시는대로 무궁세계를 위해서 투자하는 게 참된 신앙입니다. 멸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다 버려버렸습니다. 우리도 상황따라 주님 버릴 때가 많습니다. 가난의 고통을 받는 겁니다. 없어서 재물이 없고 힘있고 필요한 게 있을 때 되는 겁니다. 주님은 가진 게 없었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의 모습을 참된 교회를 삼고 따라가는 그 교회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가까이하기 싫어합니다. 그분과 엮이기 싫다고 합니다.
옳은 말 하면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람 옳은 말 듣기 싫다고 목사들이 옳은 말 듣기 싫다고 반대합니다. 마치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우고 말로 얼굴 표정으로 다 합니다. 주님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참된 모습이 앞서가신 주님으로 누가 따라갑니까. 우리가 따라갑니다. 그래서 가르켜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좁은 생명길입니다. 그래도 가야하는 겁니다. 오늘 오전에 신인양성일위의 걸음 동행의 걸음 같이 생각해봤는데 오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