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9-28조회 29추천 3
2025년 9월 28일 주일 오후
찬송: 29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인양성일위니까 사람의 모습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예수라는 사람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이 동행하신 걸음입니다. 그 걸음을 따라가는 우리의 걸음을 동행이라고 합니다. 동행, 신인양성일행. 제사장이 바로 주님의 신인양성일행에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구약 4000년의 상징과 예표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이 드렸든 그 실상이 바로 주님이고 그 주님의 죽으심으로 예표로 생긴 소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구약 4000년을 마무리하셨고 주님의 죽으심이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에게로 오게 되신 겁니다. 기본구원은 단번에 이뤄주신 것이고 건설은 세월에 건설해 나가는 것이고 성화시켜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성화가 되어지고 주님을 쉽게 닮아가는 모습이 되는 겁니다. 일평생을 산제사로 쓴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주님의 오신 모습, 오셨을 때 주님을 대하는 세상과 주님의 걸음을 예언하신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신 곳으로부터 3000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구약의 모든 걸 기록하셨고 기록해주신겁니다. 기독교란 예수교를 말하는 한문 글자입니다. 예수가 교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겁니다. 예수와 사활의 공로는 뗄 수가 없는 겁니다. 한문글자로 하면 신인양성일위가 되는 것이고, 그걸 해석을 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 그걸 붙여서 신인양성일위 역사입니다. 하나되었다는 겁니다.
이때는 예수님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실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고 이사야가 기록할 때는 이사야가 기록할 때 하나님을 53장에 기록을 했고 2000년 왔다가신 주님을 생각했는데 그 주님은 오늘 우리와 상관없는 것인가. 오늘도 우리에게 나타나시니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십니까. 어떤 부자가 밥을 먹고 있는데 거지가 밥 달라고 하니까 냉큼 가버려라. 그런데 잘 믿는 사람입니다. 밤에 잠을 자니까 나타나셔서 주님 오셨습니까 하니까 너희 집에 가니까 막대하더구나. 제가 언제 막 대했습니까. 내가 오늘 너희 집에 가려고 하니까 밥맛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가난한 사람 도와준다 그런 것이 없지 않지요. 그런데 25장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몸이 나올 때 헐벗었을 때 도와줬다. 언제주님 오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하나, 믿는 어린 신앙은 힘만 들어가고 그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들어가고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고 깊이 들어가면 우리 세상에 들어가는 주님은 어떤 모습에 나타나신다고 말씀을 많이 했습니까. 참된 교회 참된 신자. 인간의 도덕 철학 스승의 가르침 세상의 가르침의 지식들 그런 것들은 부인하고 성경 말씀만 가는대로 하는 것이 따라가는 이것이 나타나시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나라 나타날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오늘 나타나신 모습은 무엇이 참된 교회입니까. 하나님만 전부 삼고 이건 누가 그렇게 합니까. 사람이 그렇게 하는게 그게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의 걸음이 바로 오늘 주님의 생애고 걸음이 되는데 그렇게 될까, 그래서 드물겠지요. 없진 않을건데 드물겁니다. 이걸 생각하면서 연결시키면서 우리 말씀을 다시 살펴봐야합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신인양성일위로 오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했는가. 불신했습니다. 함부로 대하고 막대하고 멸시하고 무엇을 박아서 죽어버렸습니까. 십자가에, 주님이 동방박사들처럼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으니라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의 천문학자 박사들이 어디로 찾아갔던가요. 박사들이 그래서 양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이고 안 좋게 보면 바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진해야하는데 바보라는 것입니다. 양떼라는 말은 바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린 아이고 양떼고 동방박사들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난 것이 누구시뇨, 유대나라 왕이 헤롯인데 너 말고 다른 왕, 반역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왕이니까 당연히 왕궁에 나타나겠지 그런 지식을 어려운 말로 선입적 관념이라고 합니다. 머리 속에 먼저 들어온 지식이라고 합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자리 잡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절도며 강도다. 먼저 속에 들어있던 구주 메시아 이사야를 읽었다면 바로 알았다면 그럴 수 없는데 선입적 관념으로 하는 것인데 그래서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인 겁니다. 세 번째 어떻게 누가 믿었느뇨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전한 것도 안 믿었고 사람들도 안 믿었습니다. 정말 믿은 사람은 소수였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주님을 버리는 것이 오늘까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나느뇨
첫째 잘 믿어서 복을 받았으면 능력입니다. 징계 받았으면 여호와의 팔입니다. 바쳤는데 아깝네 어떤 목사님은 올려놓고 그분이 부자인데 은혜가 있으면 연보하고 아니면 안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이상하게 빠져서 면제 시켰습니다. 두 명이 총공회에서 면제되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내 소유와 몸과 평생을 바쳤는데 참 감사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쁨이 넘칩니다. 길가다가 70대 할아버지가 신고해서 다섯시간을 했는데 초코파이 먹었다고 고소해서 전과자가 있는 곳입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로마에 가야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로마가 되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북한처럼 되면 북한처럼 사는 겁니다. 독립운동하는 거 아닙니다. 교회가 독립운동하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인데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고 세대가 그런 세대기 때문에 극히 몸을 사려서 조심하는 게 지혜롭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서 아주 조심해야하고 70대 어른이 흑심을 품었는지 모르겠으나 분위기 편성되어서 신고했을건데 경찰이 CCTV를 살펴서 다섯 시간을 조사했답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뉘게 나타났느뇨 이런 시대에 악한 시대 자기 중심 시대에 심방을 간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 참 조심해야합니다. 주일학생들 옛날에 그런 것은 10개든 20개든 그런 것일텐데 그럴 때에 모든 사람을 데려다가 가셔서 피곤한데 말이나 잘 듣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만족하는 사람. 그거하고 차원이 다른 겁니다. 주님이 있는데 오늘로 말하면 참된 교회고 참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연한 순 같고 연한 순을 다시 말하면 동물로 말하면 뭐가 같습니까. 양과 같습니다. 그런데 약해서 탁치면 부서져버립니다. 안 좋으면 그런 겁니다. 양면을 가는 겁니다. 고운 모양입니다. 아주 부드러워서 참 부드럽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교단의 목사님은 인물이 굉장히 곱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드럽습니다. 이해심 있고 배려심도 있고 사랑하고 말이나 얼굴 표정이나 말의 내용이나, 불교하고 다르지만 대자대비처럼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외쳐버리니까. 말씀을 가지고 틀렸다고 하고 그러니까 그런 것이지요. 백 목사님의 신앙 노선 지키는 것 존중합니다. 그런데 비판하면 징그럽습니다. 그렇게하고 감싸주기도하고 이해심도 있고 배려도 하고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고 물러설줄도 알고 이래야 인간미가 있는 건데 하나님이 전부고 진리가 전부고 대속이 전부고 하나님과 천국과 진리는 그냥 쳐다보고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어느 모습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살기가 참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주님 모습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실제 가까이는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입니다. 멀리서 그랬는데 그렇게 겸손하고 참 좋은데 그렇더라도 바쳤습니다. 틀린 것인가.
남학생들은 요즘 뭐 되고 싶습니까. 축구선수 되면 그렇게 됩니까. 야구선수, 여학생들은 노래 부르는 탈렌트되면 좋겠지요. 우리는 그런거 흠모하지 않지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은 스튜어디스라고 합니까. 그 사람을 술집여자하고 같이 봅니다. 저는 국제선에 타본 적이 없는데 승무원들이 술 달라고 하면 술 준답니다. 술 배달하면 술집여자지요. 그렇게 되고 싶어서 애를 씁니다. 그런 사람들을 여학생 마음에 흠모합니다. 인기있고 돈 잘 벌고. 현재만 보니까 그런 겁니다. 옛날에 이순신, 세종대왕처럼 되고 싶습니다. 과학자가 되어서 인류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그게 좋은 건데 사람이 돈이 없으면 망하는 거고 아무리 잘 되어도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른들 사람을 나올 때 집구석 많은 거지요. 그런 세상에 흠모할만한 부러워할만한 참된 교회가 없습니다. 많은 수록 전부 다 지옥에 다 떨어질건데. 흠모할만한 곳이 없도다. 운동선수 가수니 거기까지 안 가도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석가모니 존경받습니까. 그런데 신앙 세계 안에서도 그게 목사님처럼 애국가를 불러주고 아리랑을 불러주고 찬송가 부르면 되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그런 드럼도 가져다 놓고 남학생 여학생들 자리도 만들어주고 이런 게 전부 그런 겁니다. 그리하면 좋겠지요. 바로 나가는 교회들은 그런 겁니다. 진리니 노선이니 말씀이니 교리니 하나님이니 천국이니 대속이니 따져서 하니까 칼날이 되는 거지요.
열쇠를 받아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무시보다 더한게 멸시입니다. 말로 가지고 눈빛을 가지고 멸시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으매 그래서 제 주변에도 그렇고 우리 공회하고는 엮이기가 싫답니다. 한 번 만나보시지요. 그러니까 발을 안 담구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오늘 나타나신 주님 모습이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하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사람 다 되었고 가리고 모르는 사람 그래도 알아야하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알아야하고 우리는 바로 되어야합니다.
주님 가신 그 걸음에 가야합니다. 나는 이게 옳다 그런 것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시대가 있는 겁니다. 십자가에 하니까 십자가 옆에서 누가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수천명 수만명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누가 있었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던 예수님에게 나를 기억하소서. 기능구원적으로도 봐야하지만 보통 신앙이 아닌 거지요. 죄입니다. 믿은 전부 한 말로 말하면 죄 때문입니다. 고난을 하고 우리가 죄를 지어서 우리가 받아야하는데 우리의 고난을 주님이 대신 받으십니다. 죄로 인해서 온갖 원인의 슬픔을 주님이 대신 당하였거늘
양떼를 위해서 식구를 위해서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기도를 했나 얼마나 살피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가셨는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뭐라하느냐, 죄값입니다. 맞을 만하니까 맞았겠지 고난 받을 만하니까 받았겠지. 인간관계에서 지면 거의 대개 보면 비슷하다고 합니다. 노곡동 기도원을 두고 소송을 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보면 답이 나오는 건데 밀어붙이는 거지요. 그게 현실이고 현상세계입니다. 가장 잘 믿는다는 총공회 속이고 가장 잘 믿는다는 곳, 3살짜리도 전부 알겠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와서.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 자녀가 부모님의 눈물로 기도해서 알면 그런 사람이 됩니다. 양떼들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은 것으로 그래서 가정에 하면 자녀든 뭐든 대속으로 가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필요한겁니다. 이 세대를 믿지 않았습니다. 6000년 세상에 아벨 때도 구약 때도 구약 말에도 다 그랬습니다. 주님 모습은 2절 3절에 말씀하신대로 인간으로 죄악 신앙에서 오니까 보잘것없는겁니다. 참된 교회, 그런데 내면에 나오면 하나님이 서운해하시는 그런 것이 있고 이게 주님 가신 길입니다. 바로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29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인양성일위니까 사람의 모습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예수라는 사람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이 동행하신 걸음입니다. 그 걸음을 따라가는 우리의 걸음을 동행이라고 합니다. 동행, 신인양성일행. 제사장이 바로 주님의 신인양성일행에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구약 4000년의 상징과 예표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이 드렸든 그 실상이 바로 주님이고 그 주님의 죽으심으로 예표로 생긴 소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구약 4000년을 마무리하셨고 주님의 죽으심이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에게로 오게 되신 겁니다. 기본구원은 단번에 이뤄주신 것이고 건설은 세월에 건설해 나가는 것이고 성화시켜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성화가 되어지고 주님을 쉽게 닮아가는 모습이 되는 겁니다. 일평생을 산제사로 쓴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주님의 오신 모습, 오셨을 때 주님을 대하는 세상과 주님의 걸음을 예언하신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신 곳으로부터 3000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구약의 모든 걸 기록하셨고 기록해주신겁니다. 기독교란 예수교를 말하는 한문 글자입니다. 예수가 교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겁니다. 예수와 사활의 공로는 뗄 수가 없는 겁니다. 한문글자로 하면 신인양성일위가 되는 것이고, 그걸 해석을 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 그걸 붙여서 신인양성일위 역사입니다. 하나되었다는 겁니다.
이때는 예수님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실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고 이사야가 기록할 때는 이사야가 기록할 때 하나님을 53장에 기록을 했고 2000년 왔다가신 주님을 생각했는데 그 주님은 오늘 우리와 상관없는 것인가. 오늘도 우리에게 나타나시니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십니까. 어떤 부자가 밥을 먹고 있는데 거지가 밥 달라고 하니까 냉큼 가버려라. 그런데 잘 믿는 사람입니다. 밤에 잠을 자니까 나타나셔서 주님 오셨습니까 하니까 너희 집에 가니까 막대하더구나. 제가 언제 막 대했습니까. 내가 오늘 너희 집에 가려고 하니까 밥맛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가난한 사람 도와준다 그런 것이 없지 않지요. 그런데 25장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몸이 나올 때 헐벗었을 때 도와줬다. 언제주님 오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하나, 믿는 어린 신앙은 힘만 들어가고 그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들어가고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고 깊이 들어가면 우리 세상에 들어가는 주님은 어떤 모습에 나타나신다고 말씀을 많이 했습니까. 참된 교회 참된 신자. 인간의 도덕 철학 스승의 가르침 세상의 가르침의 지식들 그런 것들은 부인하고 성경 말씀만 가는대로 하는 것이 따라가는 이것이 나타나시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나라 나타날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오늘 나타나신 모습은 무엇이 참된 교회입니까. 하나님만 전부 삼고 이건 누가 그렇게 합니까. 사람이 그렇게 하는게 그게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의 걸음이 바로 오늘 주님의 생애고 걸음이 되는데 그렇게 될까, 그래서 드물겠지요. 없진 않을건데 드물겁니다. 이걸 생각하면서 연결시키면서 우리 말씀을 다시 살펴봐야합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신인양성일위로 오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했는가. 불신했습니다. 함부로 대하고 막대하고 멸시하고 무엇을 박아서 죽어버렸습니까. 십자가에, 주님이 동방박사들처럼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으니라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의 천문학자 박사들이 어디로 찾아갔던가요. 박사들이 그래서 양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이고 안 좋게 보면 바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진해야하는데 바보라는 것입니다. 양떼라는 말은 바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린 아이고 양떼고 동방박사들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난 것이 누구시뇨, 유대나라 왕이 헤롯인데 너 말고 다른 왕, 반역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왕이니까 당연히 왕궁에 나타나겠지 그런 지식을 어려운 말로 선입적 관념이라고 합니다. 머리 속에 먼저 들어온 지식이라고 합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자리 잡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절도며 강도다. 먼저 속에 들어있던 구주 메시아 이사야를 읽었다면 바로 알았다면 그럴 수 없는데 선입적 관념으로 하는 것인데 그래서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인 겁니다. 세 번째 어떻게 누가 믿었느뇨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전한 것도 안 믿었고 사람들도 안 믿었습니다. 정말 믿은 사람은 소수였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주님을 버리는 것이 오늘까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나느뇨
첫째 잘 믿어서 복을 받았으면 능력입니다. 징계 받았으면 여호와의 팔입니다. 바쳤는데 아깝네 어떤 목사님은 올려놓고 그분이 부자인데 은혜가 있으면 연보하고 아니면 안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이상하게 빠져서 면제 시켰습니다. 두 명이 총공회에서 면제되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내 소유와 몸과 평생을 바쳤는데 참 감사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쁨이 넘칩니다. 길가다가 70대 할아버지가 신고해서 다섯시간을 했는데 초코파이 먹었다고 고소해서 전과자가 있는 곳입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로마에 가야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로마가 되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북한처럼 되면 북한처럼 사는 겁니다. 독립운동하는 거 아닙니다. 교회가 독립운동하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인데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고 세대가 그런 세대기 때문에 극히 몸을 사려서 조심하는 게 지혜롭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서 아주 조심해야하고 70대 어른이 흑심을 품었는지 모르겠으나 분위기 편성되어서 신고했을건데 경찰이 CCTV를 살펴서 다섯 시간을 조사했답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뉘게 나타났느뇨 이런 시대에 악한 시대 자기 중심 시대에 심방을 간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 참 조심해야합니다. 주일학생들 옛날에 그런 것은 10개든 20개든 그런 것일텐데 그럴 때에 모든 사람을 데려다가 가셔서 피곤한데 말이나 잘 듣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만족하는 사람. 그거하고 차원이 다른 겁니다. 주님이 있는데 오늘로 말하면 참된 교회고 참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연한 순 같고 연한 순을 다시 말하면 동물로 말하면 뭐가 같습니까. 양과 같습니다. 그런데 약해서 탁치면 부서져버립니다. 안 좋으면 그런 겁니다. 양면을 가는 겁니다. 고운 모양입니다. 아주 부드러워서 참 부드럽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교단의 목사님은 인물이 굉장히 곱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드럽습니다. 이해심 있고 배려심도 있고 사랑하고 말이나 얼굴 표정이나 말의 내용이나, 불교하고 다르지만 대자대비처럼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외쳐버리니까. 말씀을 가지고 틀렸다고 하고 그러니까 그런 것이지요. 백 목사님의 신앙 노선 지키는 것 존중합니다. 그런데 비판하면 징그럽습니다. 그렇게하고 감싸주기도하고 이해심도 있고 배려도 하고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고 물러설줄도 알고 이래야 인간미가 있는 건데 하나님이 전부고 진리가 전부고 대속이 전부고 하나님과 천국과 진리는 그냥 쳐다보고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어느 모습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살기가 참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주님 모습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실제 가까이는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입니다. 멀리서 그랬는데 그렇게 겸손하고 참 좋은데 그렇더라도 바쳤습니다. 틀린 것인가.
남학생들은 요즘 뭐 되고 싶습니까. 축구선수 되면 그렇게 됩니까. 야구선수, 여학생들은 노래 부르는 탈렌트되면 좋겠지요. 우리는 그런거 흠모하지 않지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은 스튜어디스라고 합니까. 그 사람을 술집여자하고 같이 봅니다. 저는 국제선에 타본 적이 없는데 승무원들이 술 달라고 하면 술 준답니다. 술 배달하면 술집여자지요. 그렇게 되고 싶어서 애를 씁니다. 그런 사람들을 여학생 마음에 흠모합니다. 인기있고 돈 잘 벌고. 현재만 보니까 그런 겁니다. 옛날에 이순신, 세종대왕처럼 되고 싶습니다. 과학자가 되어서 인류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그게 좋은 건데 사람이 돈이 없으면 망하는 거고 아무리 잘 되어도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른들 사람을 나올 때 집구석 많은 거지요. 그런 세상에 흠모할만한 부러워할만한 참된 교회가 없습니다. 많은 수록 전부 다 지옥에 다 떨어질건데. 흠모할만한 곳이 없도다. 운동선수 가수니 거기까지 안 가도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석가모니 존경받습니까. 그런데 신앙 세계 안에서도 그게 목사님처럼 애국가를 불러주고 아리랑을 불러주고 찬송가 부르면 되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그런 드럼도 가져다 놓고 남학생 여학생들 자리도 만들어주고 이런 게 전부 그런 겁니다. 그리하면 좋겠지요. 바로 나가는 교회들은 그런 겁니다. 진리니 노선이니 말씀이니 교리니 하나님이니 천국이니 대속이니 따져서 하니까 칼날이 되는 거지요.
열쇠를 받아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무시보다 더한게 멸시입니다. 말로 가지고 눈빛을 가지고 멸시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으매 그래서 제 주변에도 그렇고 우리 공회하고는 엮이기가 싫답니다. 한 번 만나보시지요. 그러니까 발을 안 담구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오늘 나타나신 주님 모습이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하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사람 다 되었고 가리고 모르는 사람 그래도 알아야하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알아야하고 우리는 바로 되어야합니다.
주님 가신 그 걸음에 가야합니다. 나는 이게 옳다 그런 것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시대가 있는 겁니다. 십자가에 하니까 십자가 옆에서 누가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수천명 수만명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누가 있었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던 예수님에게 나를 기억하소서. 기능구원적으로도 봐야하지만 보통 신앙이 아닌 거지요. 죄입니다. 믿은 전부 한 말로 말하면 죄 때문입니다. 고난을 하고 우리가 죄를 지어서 우리가 받아야하는데 우리의 고난을 주님이 대신 받으십니다. 죄로 인해서 온갖 원인의 슬픔을 주님이 대신 당하였거늘
양떼를 위해서 식구를 위해서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기도를 했나 얼마나 살피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가셨는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뭐라하느냐, 죄값입니다. 맞을 만하니까 맞았겠지 고난 받을 만하니까 받았겠지. 인간관계에서 지면 거의 대개 보면 비슷하다고 합니다. 노곡동 기도원을 두고 소송을 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보면 답이 나오는 건데 밀어붙이는 거지요. 그게 현실이고 현상세계입니다. 가장 잘 믿는다는 총공회 속이고 가장 잘 믿는다는 곳, 3살짜리도 전부 알겠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와서.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 자녀가 부모님의 눈물로 기도해서 알면 그런 사람이 됩니다. 양떼들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은 것으로 그래서 가정에 하면 자녀든 뭐든 대속으로 가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필요한겁니다. 이 세대를 믿지 않았습니다. 6000년 세상에 아벨 때도 구약 때도 구약 말에도 다 그랬습니다. 주님 모습은 2절 3절에 말씀하신대로 인간으로 죄악 신앙에서 오니까 보잘것없는겁니다. 참된 교회, 그런데 내면에 나오면 하나님이 서운해하시는 그런 것이 있고 이게 주님 가신 길입니다. 바로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