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4일 수밤
김동민2025-09-24조회 28추천 2
2025년 9월 24일 수밤
찬송: 153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받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의 목적이 되겠고 오늘로 말하면 구약의 제사가 오늘로 말하면 예배인데 산 제사가 예배 알맹이다라는 겁니다. 오늘 날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산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앞의 말씀과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자존자 창조주가 살아계심으로 만물을 다 지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주권하심으로 마지막에 그분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분이 나중이고 하나님 전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사실을 지금을 몰라도 나중에 가면 다 깨닫고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나온 존재가 마지막에 그분으로 다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그런 말이 아니라 그분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고 마지막에 무궁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 가면 몰랐던 걸 다 알게됩니다. 희미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얼굴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환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빛의 나라라고 합니다. 찬송가 181장은 해보다 더 밝은 천국 그렇게 바꿔놨거든요. 그런데 부르기도 좀 불편하고 해보다 더 밝은 천국이 더 나은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다가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는데 날빛보다 더 빛나다고 하지 않았거든요.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했지요. 천국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빛이라는 것은 모든 게 다 환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이란 것은 빛입니다. 하늘나라는 빛의 나라고 그 나라에 가면 빛이 비추이니까 하나님도 알게되고 천국도 알게되고 진리도 알게되고 다른 사람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지은 죄도 알게 되고 부족하지만 생각도 알게되고 그렇게 됩니다. 환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거짓이 없습니다. 그 자체가 바로 심판이 되는 것이고 무궁 세계의 수치와 영광이 되는 것이고 빈부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습이고 그 모습이 교회에 바로 잡히면 그런 모습이 이 세상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가 바로 연결되는 건데 성경을 달리 할 수 없으나 내려가면 어디로 갑니까. 그러므로 중간에도 일단 요약한다면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로 드려라. 그러므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산제사라는 말이 맞지 않는 말이지요. 산제사가 가능합니다. 늘 말씀드리면 제사란 무엇이 알맹이 중심이 되는가요. 제물이 중심입니다. 제물을 잡아야 소든 양이든 염소든 잡고 난 다음에 구약의 모든 제사를 잡고 여러 과정 중에서 짐승을 잡은 반드시 피가 쏟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라는 것은 죽음이 전제되어있는 겁니다. 죽음이 들어가지 않는 제사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신들 섬기는 제사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제사는 다 포함이 된 전제된 제사입니다. 그런데 산 제사로 드려라, 그렇다면 산거랑 제사는 반대인데 성경이니 진리가 들어있는거지요.
산제사인데 무엇이 산제사가 되는 겁니까. 제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팔을 잘라서 제사로. 말이 안 되겠죠. 눈을 뽑아서 제사로, 그러면 교리적으로 성경에 몸이란 무엇이 같이 들어있습니다. 시체를 성경에 주검이라고 해놓았습니다. 죽은 시체, 마음 없는 몸은 살아있는 몸은 마음이 항상 같이 있습니다. 영원히 따나면 죽는 겁니다.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요, 종소리입니다. 종없는 종소리는 날 수가 없는거지요. 몸 없는 심장은,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몸, 같은 말로 육, 육신 육체. 제가 몇 가지 말씀드렸지요. 몸, 육, 육신, 육체 그것은 심신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깃덩어리라고 합니다. 육체 고기 육자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 안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너희 심신을 요소요소를 다시 말하면 심신 요소 요소에 활동을 작용하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작용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신은 모두 있는 겁니다. 백 녀 사는 사람의 심장은 백 년 동안에 엄청나게 뛸 겁니다. 세 보면 얼마나 될련지, 100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하는 것은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해서 30년, 60년. 사람의 심장은 100년 동안 쉬지 않고 뜁니다. 심장만 뜁니까 다른 곳 다 운동하고 눈도 쉬지 않고 보고 치아는 안 먹을 때는 쉬는데 뇌는 계속 돌고 쉬지 않고 작용을 하는 겁니다. 그 움직임이 어떻게 움직여야하느냐, 산제사와 연결되는 거지요. 살아서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산제사라고 그랬으니까 살아서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을 제사를 드려라, 너는 죽어라고 한 것이지요. 원동 주체 주인이 뭐냐 왜 주인이 뭐냐 무엇 때문에 무엇이 원인되어서 산제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내 그런 요소가 위신이 슬퍼서 기뻐서 좋아서 그냥 하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 이유가 되고 근거가 되어서 움직이면 산제사가 아니고 제멋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고 산 것이 어떻다하고 싶은 것 가고 싶다 듣고 싶다 자기 이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별별 사정 이유 이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는 별별 이유 동기 목적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면 다 잡아서 오로지 전체로 말하면 주님 때문에, 주님이 원인 되어서 시켜서 뜻 때문에 구원 때문에 그래서 움직이면 산제사가 된 겁니다.
산제사는 일차적으로 모든 심신 마음의 활동 작용의 모든 것을 첫째 말씀으로 사는 거, 나는 죽고 마음이 사는 겁니다. 내 생각은 죽고 내 욕심은 죽고 내 체면은 죽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일차적인 산제사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니라. 말씀으로 순종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다. 밥 한 공기 먹을 때 몇 숟가락 되겠습니다. 씹으니까 맛있네 맛이 이러네 저러네 그러면 그것도 산제사 아닙니다. 이거 먹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겠다. 죄짓지 말아야겠다. 이래 살아나가면 밥을 씹어먹는 하나하나가 산제사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설교가 가면 좀 지나치지 않은가. 그것도 진짜로 하는 말입니다. 신앙 전투를 해보면 눈동자 움직이는 것 군대 군인들 옛날에 군대는 군대 갈 나이 때 군대 들리는 소리가 훈련병 세워놓고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눈동자 굴리는 방향까지도 주님 눈초리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순간 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숨들이쉬고 내쉬는 게 함께하고 일보 일보 주님과 동행케합소서.
한 걸음 죽었고 숨 한 번 죽었고, 쉴틈없이 자기라는 거 다 잡아버리고 말씀에 들려 사는 걸 1차적으로 산 제사라고 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은 말씀을 초월해서 성령에 감동 역사가 있게 됩니다. 참 고차원적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대로 전신전력 말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내 마음과 몸, 이것들의 활동작용 밤에 잠 잘 때 죄짓는 꿈꾸면 그것도 죄입니다. 예배드리는 꿈 꾸면 좋은 거지요. 양떼 꿈꾸고 이런 꿈꾸면 좋은거지요. 주사야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낮에 신앙으로 살면 꿈도 그렇게 꿉니다. 잠에 꿈까지 꾸니까 그런 것입니다. 산제사 그렇게 살아라 그 말입니다. 제사입니다. 최종적인 제사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겁니다.
아담부터 제사가 최종 종착점이 되냐 그게 산 제사가 종착점입니다. 제사의 출발은 에덴 동산 아담의 가죽옷입니다. 아담의 가죽옷은 제사를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제사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모르니까 가르쳐주셨지요. 그래서 가르쳐주신 겁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가르친겁니다. 모르는 아담에게, 네가 죄를 지었지 죽는 거지 사망이지 그 사망에서 건짐받을 수 없는데 너 대신에 죽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회개하고 살았겠지요. 가인과 아벨 이 둘은 아담의 두 요소라고 했습니다. 한 아버지 밑에 열 두 아들이 나왔습니다. 모두 야곱의 요소입니다. 열 두 아들의 요소가 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도 셈 함 야벳입니다. 없는 요소가 나올 수 없습니다.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하나님 역사고 그런 함이 나왔으니까.
아담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가르친 겁니다. 그리게 전해져서 아벨의 제사는 자기를 드림으로 무엇을 얻었느냐 제사라는 것은 주방향이 하나님께 받아들임으로 주는자로 자라가는 게 이번 제사 말씀입니다. 주는 자로 자라가야하는 게 제사다 이 말입니다. 아담은 몰랐으니까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벨은 무엇을 받았을까. 아담은 자기를 받아들였는데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하고 나란히 비교해놨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주님과 같을 수가 없는데 주님 곁에 앉았다. 그게 아벨입니다. 에녹은 제사드림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지요. 제사를 통해서 동행했습니다. 산제사 없는 하나님과의 동행은 없습니다. 산제사 생활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내가 없어야 1 더하기 무엇을 해야 1이 나온다고요. 영. 100 더하기 뭘 해야지 영이 나온다고요. 영. 하나님 더하기 뭐가 있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산 제사로 남지 않으면 없는 겁니다. 산제사로 살았고 죽음을 초월하는 걸 받았습니다.
노아는 뭘 받았습니까. 제사라는 것은 산제사라는 것은 순생의 생활입니다. 설교록에 순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습니다. 순생의 마지막 열매가 순교다 주를 위해서 죽는 게 순교라고 하고 사는 것을 순생이라고 합니다. 산제사의 마지막은 순교, 아벨이 그런 것이고 노아도 그런데 홍수의 경고를 순생으로 받았고 방주를 준비했고 그리고 홍수 이후에 정결한 짐승 잡아 제사 드리므로 무지개 언약을 받았고 회개의 기회를 받았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많이 받은 중에서 이삭 자기 자신의 앞날 내일의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무엇을 받았느냐 주님을 받았습니다. 수양을 대신하는 겁니다. 그리고 모세는 율법 시대에 제사 드리므로 속죄와 구원받는 것을 많이 말씀하셨고 신약에는 예표, 상징 이런 것으로 구약의 모든 것이 폐해지고 율법이 온전케 되면서 구약의 모든 형식은 다 피해지고 바뀌어지는데 안식일은 주일로 바뀌고 제사는 예배로 바꾸어지고. 그런데 신약의 예배가 구약의 제사인데 형식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껍데기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해서 하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산제사가 알맹이 예배입니다. 이렇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려왔고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일단 드리는 겁니다. 제사의 제물은 태워서 버리는 것도 있고 먹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식물이다. 만족시켜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제사다 이것을 순종이 알맹입니다. 이게 성경이고 제사의 목적이 뭐냐 제사의 목적이란 교리가 뒷받침 되어야하니까 드림으로 받고 주는 자로 자리잡는 게 제사인데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더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들어갈 수 없고 보내질 수 없습니다. 숫자 중에서 뭐가 완전 숫자라고 합니까. 0을 발견한게 그렇게 기가 막히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 완전은 없는데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받으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잘 사는 나라의 왕은 왕입니다. 왕이 법이고 나라가 왕의 나라고 백성이 왕의 백성입니다. 왕은 전부 다 말하자면 전체의 주인이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왕과 주인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나라의 왕은 백성들에게 신하들에게 받을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왕에게 선물을 가져오면 그걸 받고 신하가 왕에게 말하자면 만 원짜리 선물을 가져오면 왕은 신하에게 2만원짜리를 줍니다. 그러면 드렸는데 받는 거지요. 왕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 나라가 왕의 땅인데 왕의 자식들인데 왕이 원하는 것은 전부 다 내 것인데 뭘로 하겠습니까. 충성을 원하고 충심을 원하겠지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노는 것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실력있는 부모라면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선물하면 좋아합니다. 기뻐하고. 몇 백 몇 천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것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아빠가 용돈을 줍니다.
지금 미국나라는 강대국인데 우리나라 가져와 이것은 물질이니 그런 것이고 자칫하면 더 큰 걸 잊게 되는 것이지요. 물질인 것을 받지 않습니다. 깊은 걸 원하지. 하나님은 받으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 제사라는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주시려고 피조물은 어떤 것이 있댔습니까. 피동할 때 그 피 자일겁니다. 조물주에게 만들어졌다. 그게 피조물이고 속에 들어가면 피조물 뜻은 무엇이라고 설명드렸던가요. 조물주로부터 쉬지 않고 뭔가 공급을 받아야 유지되고 사는 것입니다. 창조주로부터 끊임없이 받아야 그분의 은혜와 연결이 끊어진 것을 가르켜서 지옥이라고 합니다. 제사라는 것은 다시 복구 시키는 것이 제사입니다. 연결했으니까 하나님 은혜를 오게 되는거지요. 제사 드리고 하다보면 닮아서 하나님께 받아서 주는 자가 되는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도 받지 않습니다. 받는 걸 구걸이라고 그러고 동냥이라고 그러죠. 구걸하는 사람을 거지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받고 주기만 합니다.
받아가지고 주는 그것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그게 드리는 형식입니다. 받는 겁니다. 주는 자로 변화되고 자라가는 것이 제사고 제사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가죽옷부터 이어진 그 마지막 종착점이 어디라고요, 무엇이라고요. 그것이 바로 산제사라는 이 말입니다. 그 산제사는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가죽옷 출발의 오늘의 현실의 산제사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산제사로 살 때 모든 제사로 되는 것이고 이어지는 제사가 되는 것이고 잡아들이는 그것을 연결되면 받게되고 하나님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자라가는 그것입니다. 제사는 중요한 방법이다 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찬송: 153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받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의 목적이 되겠고 오늘로 말하면 구약의 제사가 오늘로 말하면 예배인데 산 제사가 예배 알맹이다라는 겁니다. 오늘 날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산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앞의 말씀과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자존자 창조주가 살아계심으로 만물을 다 지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주권하심으로 마지막에 그분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분이 나중이고 하나님 전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사실을 지금을 몰라도 나중에 가면 다 깨닫고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나온 존재가 마지막에 그분으로 다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그런 말이 아니라 그분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고 마지막에 무궁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 가면 몰랐던 걸 다 알게됩니다. 희미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얼굴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환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빛의 나라라고 합니다. 찬송가 181장은 해보다 더 밝은 천국 그렇게 바꿔놨거든요. 그런데 부르기도 좀 불편하고 해보다 더 밝은 천국이 더 나은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다가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는데 날빛보다 더 빛나다고 하지 않았거든요.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했지요. 천국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빛이라는 것은 모든 게 다 환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이란 것은 빛입니다. 하늘나라는 빛의 나라고 그 나라에 가면 빛이 비추이니까 하나님도 알게되고 천국도 알게되고 진리도 알게되고 다른 사람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지은 죄도 알게 되고 부족하지만 생각도 알게되고 그렇게 됩니다. 환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거짓이 없습니다. 그 자체가 바로 심판이 되는 것이고 무궁 세계의 수치와 영광이 되는 것이고 빈부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습이고 그 모습이 교회에 바로 잡히면 그런 모습이 이 세상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가 바로 연결되는 건데 성경을 달리 할 수 없으나 내려가면 어디로 갑니까. 그러므로 중간에도 일단 요약한다면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로 드려라. 그러므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산제사라는 말이 맞지 않는 말이지요. 산제사가 가능합니다. 늘 말씀드리면 제사란 무엇이 알맹이 중심이 되는가요. 제물이 중심입니다. 제물을 잡아야 소든 양이든 염소든 잡고 난 다음에 구약의 모든 제사를 잡고 여러 과정 중에서 짐승을 잡은 반드시 피가 쏟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라는 것은 죽음이 전제되어있는 겁니다. 죽음이 들어가지 않는 제사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신들 섬기는 제사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제사는 다 포함이 된 전제된 제사입니다. 그런데 산 제사로 드려라, 그렇다면 산거랑 제사는 반대인데 성경이니 진리가 들어있는거지요.
산제사인데 무엇이 산제사가 되는 겁니까. 제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팔을 잘라서 제사로. 말이 안 되겠죠. 눈을 뽑아서 제사로, 그러면 교리적으로 성경에 몸이란 무엇이 같이 들어있습니다. 시체를 성경에 주검이라고 해놓았습니다. 죽은 시체, 마음 없는 몸은 살아있는 몸은 마음이 항상 같이 있습니다. 영원히 따나면 죽는 겁니다.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요, 종소리입니다. 종없는 종소리는 날 수가 없는거지요. 몸 없는 심장은,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몸, 같은 말로 육, 육신 육체. 제가 몇 가지 말씀드렸지요. 몸, 육, 육신, 육체 그것은 심신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깃덩어리라고 합니다. 육체 고기 육자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 안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너희 심신을 요소요소를 다시 말하면 심신 요소 요소에 활동을 작용하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작용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신은 모두 있는 겁니다. 백 녀 사는 사람의 심장은 백 년 동안에 엄청나게 뛸 겁니다. 세 보면 얼마나 될련지, 100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하는 것은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해서 30년, 60년. 사람의 심장은 100년 동안 쉬지 않고 뜁니다. 심장만 뜁니까 다른 곳 다 운동하고 눈도 쉬지 않고 보고 치아는 안 먹을 때는 쉬는데 뇌는 계속 돌고 쉬지 않고 작용을 하는 겁니다. 그 움직임이 어떻게 움직여야하느냐, 산제사와 연결되는 거지요. 살아서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산제사라고 그랬으니까 살아서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을 제사를 드려라, 너는 죽어라고 한 것이지요. 원동 주체 주인이 뭐냐 왜 주인이 뭐냐 무엇 때문에 무엇이 원인되어서 산제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내 그런 요소가 위신이 슬퍼서 기뻐서 좋아서 그냥 하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 이유가 되고 근거가 되어서 움직이면 산제사가 아니고 제멋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고 산 것이 어떻다하고 싶은 것 가고 싶다 듣고 싶다 자기 이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별별 사정 이유 이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는 별별 이유 동기 목적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면 다 잡아서 오로지 전체로 말하면 주님 때문에, 주님이 원인 되어서 시켜서 뜻 때문에 구원 때문에 그래서 움직이면 산제사가 된 겁니다.
산제사는 일차적으로 모든 심신 마음의 활동 작용의 모든 것을 첫째 말씀으로 사는 거, 나는 죽고 마음이 사는 겁니다. 내 생각은 죽고 내 욕심은 죽고 내 체면은 죽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일차적인 산제사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니라. 말씀으로 순종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다. 밥 한 공기 먹을 때 몇 숟가락 되겠습니다. 씹으니까 맛있네 맛이 이러네 저러네 그러면 그것도 산제사 아닙니다. 이거 먹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겠다. 죄짓지 말아야겠다. 이래 살아나가면 밥을 씹어먹는 하나하나가 산제사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설교가 가면 좀 지나치지 않은가. 그것도 진짜로 하는 말입니다. 신앙 전투를 해보면 눈동자 움직이는 것 군대 군인들 옛날에 군대는 군대 갈 나이 때 군대 들리는 소리가 훈련병 세워놓고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눈동자 굴리는 방향까지도 주님 눈초리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순간 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숨들이쉬고 내쉬는 게 함께하고 일보 일보 주님과 동행케합소서.
한 걸음 죽었고 숨 한 번 죽었고, 쉴틈없이 자기라는 거 다 잡아버리고 말씀에 들려 사는 걸 1차적으로 산 제사라고 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은 말씀을 초월해서 성령에 감동 역사가 있게 됩니다. 참 고차원적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대로 전신전력 말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내 마음과 몸, 이것들의 활동작용 밤에 잠 잘 때 죄짓는 꿈꾸면 그것도 죄입니다. 예배드리는 꿈 꾸면 좋은 거지요. 양떼 꿈꾸고 이런 꿈꾸면 좋은거지요. 주사야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낮에 신앙으로 살면 꿈도 그렇게 꿉니다. 잠에 꿈까지 꾸니까 그런 것입니다. 산제사 그렇게 살아라 그 말입니다. 제사입니다. 최종적인 제사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겁니다.
아담부터 제사가 최종 종착점이 되냐 그게 산 제사가 종착점입니다. 제사의 출발은 에덴 동산 아담의 가죽옷입니다. 아담의 가죽옷은 제사를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제사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모르니까 가르쳐주셨지요. 그래서 가르쳐주신 겁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가르친겁니다. 모르는 아담에게, 네가 죄를 지었지 죽는 거지 사망이지 그 사망에서 건짐받을 수 없는데 너 대신에 죽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회개하고 살았겠지요. 가인과 아벨 이 둘은 아담의 두 요소라고 했습니다. 한 아버지 밑에 열 두 아들이 나왔습니다. 모두 야곱의 요소입니다. 열 두 아들의 요소가 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도 셈 함 야벳입니다. 없는 요소가 나올 수 없습니다.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하나님 역사고 그런 함이 나왔으니까.
아담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가르친 겁니다. 그리게 전해져서 아벨의 제사는 자기를 드림으로 무엇을 얻었느냐 제사라는 것은 주방향이 하나님께 받아들임으로 주는자로 자라가는 게 이번 제사 말씀입니다. 주는 자로 자라가야하는 게 제사다 이 말입니다. 아담은 몰랐으니까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벨은 무엇을 받았을까. 아담은 자기를 받아들였는데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하고 나란히 비교해놨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주님과 같을 수가 없는데 주님 곁에 앉았다. 그게 아벨입니다. 에녹은 제사드림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지요. 제사를 통해서 동행했습니다. 산제사 없는 하나님과의 동행은 없습니다. 산제사 생활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내가 없어야 1 더하기 무엇을 해야 1이 나온다고요. 영. 100 더하기 뭘 해야지 영이 나온다고요. 영. 하나님 더하기 뭐가 있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산 제사로 남지 않으면 없는 겁니다. 산제사로 살았고 죽음을 초월하는 걸 받았습니다.
노아는 뭘 받았습니까. 제사라는 것은 산제사라는 것은 순생의 생활입니다. 설교록에 순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습니다. 순생의 마지막 열매가 순교다 주를 위해서 죽는 게 순교라고 하고 사는 것을 순생이라고 합니다. 산제사의 마지막은 순교, 아벨이 그런 것이고 노아도 그런데 홍수의 경고를 순생으로 받았고 방주를 준비했고 그리고 홍수 이후에 정결한 짐승 잡아 제사 드리므로 무지개 언약을 받았고 회개의 기회를 받았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많이 받은 중에서 이삭 자기 자신의 앞날 내일의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무엇을 받았느냐 주님을 받았습니다. 수양을 대신하는 겁니다. 그리고 모세는 율법 시대에 제사 드리므로 속죄와 구원받는 것을 많이 말씀하셨고 신약에는 예표, 상징 이런 것으로 구약의 모든 것이 폐해지고 율법이 온전케 되면서 구약의 모든 형식은 다 피해지고 바뀌어지는데 안식일은 주일로 바뀌고 제사는 예배로 바꾸어지고. 그런데 신약의 예배가 구약의 제사인데 형식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껍데기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해서 하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산제사가 알맹이 예배입니다. 이렇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려왔고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일단 드리는 겁니다. 제사의 제물은 태워서 버리는 것도 있고 먹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식물이다. 만족시켜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제사다 이것을 순종이 알맹입니다. 이게 성경이고 제사의 목적이 뭐냐 제사의 목적이란 교리가 뒷받침 되어야하니까 드림으로 받고 주는 자로 자리잡는 게 제사인데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더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들어갈 수 없고 보내질 수 없습니다. 숫자 중에서 뭐가 완전 숫자라고 합니까. 0을 발견한게 그렇게 기가 막히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 완전은 없는데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받으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잘 사는 나라의 왕은 왕입니다. 왕이 법이고 나라가 왕의 나라고 백성이 왕의 백성입니다. 왕은 전부 다 말하자면 전체의 주인이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왕과 주인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나라의 왕은 백성들에게 신하들에게 받을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왕에게 선물을 가져오면 그걸 받고 신하가 왕에게 말하자면 만 원짜리 선물을 가져오면 왕은 신하에게 2만원짜리를 줍니다. 그러면 드렸는데 받는 거지요. 왕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 나라가 왕의 땅인데 왕의 자식들인데 왕이 원하는 것은 전부 다 내 것인데 뭘로 하겠습니까. 충성을 원하고 충심을 원하겠지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노는 것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실력있는 부모라면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선물하면 좋아합니다. 기뻐하고. 몇 백 몇 천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것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아빠가 용돈을 줍니다.
지금 미국나라는 강대국인데 우리나라 가져와 이것은 물질이니 그런 것이고 자칫하면 더 큰 걸 잊게 되는 것이지요. 물질인 것을 받지 않습니다. 깊은 걸 원하지. 하나님은 받으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 제사라는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주시려고 피조물은 어떤 것이 있댔습니까. 피동할 때 그 피 자일겁니다. 조물주에게 만들어졌다. 그게 피조물이고 속에 들어가면 피조물 뜻은 무엇이라고 설명드렸던가요. 조물주로부터 쉬지 않고 뭔가 공급을 받아야 유지되고 사는 것입니다. 창조주로부터 끊임없이 받아야 그분의 은혜와 연결이 끊어진 것을 가르켜서 지옥이라고 합니다. 제사라는 것은 다시 복구 시키는 것이 제사입니다. 연결했으니까 하나님 은혜를 오게 되는거지요. 제사 드리고 하다보면 닮아서 하나님께 받아서 주는 자가 되는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도 받지 않습니다. 받는 걸 구걸이라고 그러고 동냥이라고 그러죠. 구걸하는 사람을 거지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받고 주기만 합니다.
받아가지고 주는 그것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그게 드리는 형식입니다. 받는 겁니다. 주는 자로 변화되고 자라가는 것이 제사고 제사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가죽옷부터 이어진 그 마지막 종착점이 어디라고요, 무엇이라고요. 그것이 바로 산제사라는 이 말입니다. 그 산제사는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가죽옷 출발의 오늘의 현실의 산제사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산제사로 살 때 모든 제사로 되는 것이고 이어지는 제사가 되는 것이고 잡아들이는 그것을 연결되면 받게되고 하나님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자라가는 그것입니다. 제사는 중요한 방법이다 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