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2일금밤
김동민2025-09-12조회 32추천 5
2025년 9월 12일 금밤
찬송: 63장, 58장
본문: 요한복음 8장 5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이란 인정하는 거지요. 인정하려면 전제가 있습니다. 무엇이 전제입니까. 인정하려면 먼저 전제 되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알아야하지요. 모르고 인정하는 것은 인정이 아니고 맹종은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이며 기초가 되며 바탕이 되며 인도가 되며 지도가 되며 거울이 되고 잣대가 되는 게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믿음이란 성경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책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지요. 무슨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내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라는 사람 내 주관이 받아들여져서 찾는 게 믿음입니다. 내 생각, 나의 인식 나의 지식 나의 사고방식 나 자신 나라는 자, 내가 하나님 말씀을 내가 있고 이 세상의 많은 서적들이 있는데 그 책 중에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책들이기 때문에 그런 걸 읽고 인정하면 받아들이는게 되고 그런 걸 하나 둘 셋, 일 더하기 일은 뭐지요. 이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지요. 선생님이 부모님이.
그러면 내 속에 1+1이라는 지식이 없었는데 배웠으니까 내 주관 안에는 지식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 통해서 받았기 때문에 내 주관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1+1은 3 1+1은 5 그건 틀린거다. 수학으로 말하자면 은밀하게 말하면 전부 객관에 의해서 형성이 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모든 것에서 자기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말하는 사람이 세월 속에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있는 선배 스승님을 만나면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되고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나쁘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믿음이란 성경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내가 몰랐지만은 읽으면서 들어보니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걸 믿으면 하나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인게 된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을 받아들여서 객관화되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 중에서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이해가 됩니까. 믿음이란, 외워둡시다. 나라는 주관 내 주관이 하나님의 말씀에 객관을 받아들여서 믿음이란 내 무엇이요 하나님의 말씀 내가 말씀처럼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말씀화되는 이게 믿음이다. 건설 구원의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겁니다. 안 믿으면 신앙생활은 못하는 겁니다. 오늘날에 이 세계에 성경 그대로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행동으로 보면 우리도 다 어기고 사는데 내가 이렇게 다 못 살지라도 성경은 틀린 게 없다. 이렇게 믿어야 정확무오한 사람입니다. 아니면 불신자입니다. 성경에도 틀린 게 있다 진리가 아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신학 박사가, 제가 많이 했죠. 원어 성경이 히브리어기 때문에 무식한 원어를 모르는 목사가 그 목사보다는 원어를 아는 안 믿는 히브리어 학자가 구약 성경은 더 잘 안다. 원어가 히브리어기 때문에. 믿는 히브리어 목사보다 안 믿는 히브리어 목사가 누가 말했느냐 어느 교단의 총회장이 그런 소리를 했지요. 몰라서 했겠죠. 정말 그랬다면 불순종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슨 도라고요. 믿음의 도라고요, 무엇을 믿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그대로 믿는 게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모르나요 압니다. 그런데 아는 rt이 어떻게 아느냐 저것들 대로 아는 겁니다. 나도 아는데 거짓말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니까 거짓말이지요. 그게 유대인들에게 인정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신학 박사가, 율법학자가, 서기관들이 그러면 인정하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잘 아는데 주님 오실 때 보는 것이죠 하나님을 안다 그런데 너희들은 모르면서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데 그게 거짓말쟁이 되는 거다. 핀트가 안 맞는 거다. 주님은 주님대로 말씀하시고 유대인들은 자기들대로 맞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주님이 보실 때 틀린 말인데 요즘 글을 올리면 이런 식입니다. 자기는 안다고 씁니다. 자기 말이 진리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아닌거지요.
주님은 하나님을 알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것을 보고 즐거워하다가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봤습니가. 나의 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유대인들이 노래 부르는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너희 아브라함은 내가 이 세상 올 것을 보고 소망을 하면서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제사라는 것은 무엇이 제사입니까.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게 제사입니다.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는 것, 이걸 예비하고 예표로 드린 것 그러는 것이 구약의 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을 살았는데 장차오실 구주 메시아 그분을 보면서 평생 산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본것처럼 했습니다. 살아생전에 할 수 있었는데 믿음 가지고 본 것처럼 받았기 때문에 영원한 성을 주셨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몇 천 년 전의 사람인데 구약 시대 소망하던 실상이 오셔서 구약의 모든 것을 마무리할 그 때를 소망하며 제사드리는 걸 하다가 믿고 알고 죽었다 기뻐했다 그 말이지요. 네가 아직까지 50도 못 되었는데 이 때 주님이 30살에서 33살 사이겠지요. 그러니까 네가 아직까지 50살도 안됐는데 아브라함을 봤냐, 유대인들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러니 유대인들이 뚜껑이 열린겁니다. 그래서 돌로 쳐죽일려고 한 겁니다. 그들대로는 참다가 참다가 예수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짓말인겁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계십니다. 말이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나와 내 아버지는 동등이다. 아브라함 것을 나 볼 것을 기뻐했다. 내가 아브라함 있기 전부터 있었다.
3살 짜리 아이가 우리 아버지는 힘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야. 그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립니까 그 말이. 세 살짜리 아이가 종우가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셀 거야.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틀렸다고 하면 곤란하지요. 맞는 겁니다. 세 살 짜리가 볼 때는 아빠가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겁니다. 세 살 자리 딸이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 말은 그 말이 있다면 말이 안되는 거지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는 겁니다. 몇 살 짜리가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그 아이에겐 그 말이 맞는 겁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하늘을 쳐다보니까 하늘은 말하자면은 하늘은 크기가 어느정도냐, 우물에서 보니까 이 정도일까요.
유대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모르는 걸 말씀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저것들은 아는데 주님 오시니까 모르면서 안다니까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곳에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화하거나 토론하거나 주장할 때는 미련한 사람은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보고 옳으니까 무조건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어떻게 합니까.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가 된다. 저 사람도 생각이 있을건데 모인 숫자만큼 사람마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쉽게 발표하지 않습니다. 계산해보고 마지막에 내놓는 거지요.
우리는 멀리보고 깊이 봐야합니다. 주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만큼 예수님은 틀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못보고 모르니까 저거들 아는 수준에서 쏟아내는데 그게 전부 거짓말인거지요. 말이 안되는 말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장할 때는 내 생각 내가 보는 것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삼각형을 위에서 보면 뭐가 보이지요. 뾰족한 뿔만 보이죠 앞에서 보면 칼 같은 게 보이겠지요, 면이 보이겠지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하면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런 말을 다 하지요. 반대로 말하면 기록된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니까 패자 입장에서는 반대라는 겁니다. 승자가 보니까 맞는데 반대가 보니까 아닌데. 역사는 엉터리가 많다는 겁니다.
역사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게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할 때 하나님과 진리는 옳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연결시켜보면 설교시간에 자주 말씀드렸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은 세상에서 나왔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사람까지도 세상 모든 것에서는 이 세상에서 나왔고 이 세상이 만들었다. 세상과 기독교를 같은 차원으로 두고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주님은 하늘을 말하는데 제자들 일행들은 땅을 보고 말하니까 그런 것이지,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겁니다. 이 세상과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엄마보다 클 수는 없는거지요. 이 세상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생겨진 것이 세상입니다. 기독교가 만든 게 세상이고 기독교 때문에 만든 게 세상입니다. 목적이 뭡니까. 우리가 교리로 말하면 그게 교리 기독교 아닌가요. 그거 때문에 믿고 세상이 그 다음에 다 나왔는데.
이 세상을 초월하는 말이 그겁니다. 세상을 초월하라는 말은 그런 것이고 인간을 초월하라는 말은 연결되라 그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람은 많고 지식도 많고 있는데 이 세상 무엇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쉽게 하지 않는데 신앙세계로 들어오면 누구와 연결이 됩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진리와 무궁과 연결이 됩니다. 무궁무진하게 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써대고 주장해대면 아는 사람이 보면 기가 찬 겁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고 철 없는 아이가 되는 거지요. 우리는 좀 넓히도록 하십시다. 세상 지식도 많이 알아야하고 넓게 알아야하고 깊게 알아야하고 높게 알아야하고 그래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넓은 만큼 아는 만큼 지식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면은 무한한 것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전부인 줄 알고 내놓으면 그럴 때는 대화를 안 하는 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대화하고 그러면 좀 더 커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되는 거지요. 배우면 자라는데 자기주장을 세우면 희망이 없는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뭘 안다고 안 받아들이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어릴 때 배워야하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주님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나기 전부터 있었죠. 자기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 세계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완전자 그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진리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리 정도를 알고 주장을 해야하지 모르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완성되면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게 교회고 이걸 인식을 이렇게 가져야 건설구원이 바로 되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되든지 문제가 되는 거지요.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63장, 58장
본문: 요한복음 8장 5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이란 인정하는 거지요. 인정하려면 전제가 있습니다. 무엇이 전제입니까. 인정하려면 먼저 전제 되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알아야하지요. 모르고 인정하는 것은 인정이 아니고 맹종은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이며 기초가 되며 바탕이 되며 인도가 되며 지도가 되며 거울이 되고 잣대가 되는 게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믿음이란 성경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책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지요. 무슨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내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라는 사람 내 주관이 받아들여져서 찾는 게 믿음입니다. 내 생각, 나의 인식 나의 지식 나의 사고방식 나 자신 나라는 자, 내가 하나님 말씀을 내가 있고 이 세상의 많은 서적들이 있는데 그 책 중에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책들이기 때문에 그런 걸 읽고 인정하면 받아들이는게 되고 그런 걸 하나 둘 셋, 일 더하기 일은 뭐지요. 이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지요. 선생님이 부모님이.
그러면 내 속에 1+1이라는 지식이 없었는데 배웠으니까 내 주관 안에는 지식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 통해서 받았기 때문에 내 주관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1+1은 3 1+1은 5 그건 틀린거다. 수학으로 말하자면 은밀하게 말하면 전부 객관에 의해서 형성이 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모든 것에서 자기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말하는 사람이 세월 속에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있는 선배 스승님을 만나면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되고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나쁘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믿음이란 성경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내가 몰랐지만은 읽으면서 들어보니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걸 믿으면 하나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인게 된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을 받아들여서 객관화되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 중에서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이해가 됩니까. 믿음이란, 외워둡시다. 나라는 주관 내 주관이 하나님의 말씀에 객관을 받아들여서 믿음이란 내 무엇이요 하나님의 말씀 내가 말씀처럼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말씀화되는 이게 믿음이다. 건설 구원의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겁니다. 안 믿으면 신앙생활은 못하는 겁니다. 오늘날에 이 세계에 성경 그대로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행동으로 보면 우리도 다 어기고 사는데 내가 이렇게 다 못 살지라도 성경은 틀린 게 없다. 이렇게 믿어야 정확무오한 사람입니다. 아니면 불신자입니다. 성경에도 틀린 게 있다 진리가 아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신학 박사가, 제가 많이 했죠. 원어 성경이 히브리어기 때문에 무식한 원어를 모르는 목사가 그 목사보다는 원어를 아는 안 믿는 히브리어 학자가 구약 성경은 더 잘 안다. 원어가 히브리어기 때문에. 믿는 히브리어 목사보다 안 믿는 히브리어 목사가 누가 말했느냐 어느 교단의 총회장이 그런 소리를 했지요. 몰라서 했겠죠. 정말 그랬다면 불순종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슨 도라고요. 믿음의 도라고요, 무엇을 믿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그대로 믿는 게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모르나요 압니다. 그런데 아는 rt이 어떻게 아느냐 저것들 대로 아는 겁니다. 나도 아는데 거짓말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니까 거짓말이지요. 그게 유대인들에게 인정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신학 박사가, 율법학자가, 서기관들이 그러면 인정하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잘 아는데 주님 오실 때 보는 것이죠 하나님을 안다 그런데 너희들은 모르면서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데 그게 거짓말쟁이 되는 거다. 핀트가 안 맞는 거다. 주님은 주님대로 말씀하시고 유대인들은 자기들대로 맞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주님이 보실 때 틀린 말인데 요즘 글을 올리면 이런 식입니다. 자기는 안다고 씁니다. 자기 말이 진리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아닌거지요.
주님은 하나님을 알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것을 보고 즐거워하다가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봤습니가. 나의 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유대인들이 노래 부르는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너희 아브라함은 내가 이 세상 올 것을 보고 소망을 하면서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제사라는 것은 무엇이 제사입니까.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게 제사입니다.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는 것, 이걸 예비하고 예표로 드린 것 그러는 것이 구약의 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을 살았는데 장차오실 구주 메시아 그분을 보면서 평생 산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본것처럼 했습니다. 살아생전에 할 수 있었는데 믿음 가지고 본 것처럼 받았기 때문에 영원한 성을 주셨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몇 천 년 전의 사람인데 구약 시대 소망하던 실상이 오셔서 구약의 모든 것을 마무리할 그 때를 소망하며 제사드리는 걸 하다가 믿고 알고 죽었다 기뻐했다 그 말이지요. 네가 아직까지 50도 못 되었는데 이 때 주님이 30살에서 33살 사이겠지요. 그러니까 네가 아직까지 50살도 안됐는데 아브라함을 봤냐, 유대인들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러니 유대인들이 뚜껑이 열린겁니다. 그래서 돌로 쳐죽일려고 한 겁니다. 그들대로는 참다가 참다가 예수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짓말인겁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계십니다. 말이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나와 내 아버지는 동등이다. 아브라함 것을 나 볼 것을 기뻐했다. 내가 아브라함 있기 전부터 있었다.
3살 짜리 아이가 우리 아버지는 힘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야. 그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립니까 그 말이. 세 살짜리 아이가 종우가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셀 거야.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틀렸다고 하면 곤란하지요. 맞는 겁니다. 세 살 짜리가 볼 때는 아빠가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겁니다. 세 살 자리 딸이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 말은 그 말이 있다면 말이 안되는 거지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는 겁니다. 몇 살 짜리가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그 아이에겐 그 말이 맞는 겁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하늘을 쳐다보니까 하늘은 말하자면은 하늘은 크기가 어느정도냐, 우물에서 보니까 이 정도일까요.
유대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모르는 걸 말씀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저것들은 아는데 주님 오시니까 모르면서 안다니까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곳에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화하거나 토론하거나 주장할 때는 미련한 사람은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보고 옳으니까 무조건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어떻게 합니까.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가 된다. 저 사람도 생각이 있을건데 모인 숫자만큼 사람마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쉽게 발표하지 않습니다. 계산해보고 마지막에 내놓는 거지요.
우리는 멀리보고 깊이 봐야합니다. 주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만큼 예수님은 틀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못보고 모르니까 저거들 아는 수준에서 쏟아내는데 그게 전부 거짓말인거지요. 말이 안되는 말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장할 때는 내 생각 내가 보는 것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삼각형을 위에서 보면 뭐가 보이지요. 뾰족한 뿔만 보이죠 앞에서 보면 칼 같은 게 보이겠지요, 면이 보이겠지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하면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런 말을 다 하지요. 반대로 말하면 기록된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니까 패자 입장에서는 반대라는 겁니다. 승자가 보니까 맞는데 반대가 보니까 아닌데. 역사는 엉터리가 많다는 겁니다.
역사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게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할 때 하나님과 진리는 옳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연결시켜보면 설교시간에 자주 말씀드렸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은 세상에서 나왔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사람까지도 세상 모든 것에서는 이 세상에서 나왔고 이 세상이 만들었다. 세상과 기독교를 같은 차원으로 두고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주님은 하늘을 말하는데 제자들 일행들은 땅을 보고 말하니까 그런 것이지,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겁니다. 이 세상과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엄마보다 클 수는 없는거지요. 이 세상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생겨진 것이 세상입니다. 기독교가 만든 게 세상이고 기독교 때문에 만든 게 세상입니다. 목적이 뭡니까. 우리가 교리로 말하면 그게 교리 기독교 아닌가요. 그거 때문에 믿고 세상이 그 다음에 다 나왔는데.
이 세상을 초월하는 말이 그겁니다. 세상을 초월하라는 말은 그런 것이고 인간을 초월하라는 말은 연결되라 그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람은 많고 지식도 많고 있는데 이 세상 무엇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쉽게 하지 않는데 신앙세계로 들어오면 누구와 연결이 됩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진리와 무궁과 연결이 됩니다. 무궁무진하게 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써대고 주장해대면 아는 사람이 보면 기가 찬 겁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고 철 없는 아이가 되는 거지요. 우리는 좀 넓히도록 하십시다. 세상 지식도 많이 알아야하고 넓게 알아야하고 깊게 알아야하고 높게 알아야하고 그래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넓은 만큼 아는 만큼 지식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면은 무한한 것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전부인 줄 알고 내놓으면 그럴 때는 대화를 안 하는 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대화하고 그러면 좀 더 커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되는 거지요. 배우면 자라는데 자기주장을 세우면 희망이 없는겁니다. 세 살 짜리 아이가 뭘 안다고 안 받아들이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어릴 때 배워야하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주님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나기 전부터 있었죠. 자기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 세계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완전자 그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진리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리 정도를 알고 주장을 해야하지 모르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완성되면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게 교회고 이걸 인식을 이렇게 가져야 건설구원이 바로 되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되든지 문제가 되는 거지요.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