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말씀을 통하여 부하려고 하는 자의 비참한 결말을 배우고 있습니다.부하려고 하는 자, 부 자체를 목적 삼는 자, 재물을 목적 삼고 급하게 부하려고 하는 자의 결말은 시험에 들고 올무에 걸리고 침륜에 빠지며 멸망하게 됩니다.그런데 믿는 자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부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보통은 필요에 의해서 부를 축적하고 부의 정도가 많지 않을 때는 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어서 하루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고, 하나님으로 인해 누리는 심령에 만족감이 있는데, 부가 점점 축적이 되게 되면은 그 부로 말미암는 나름대로의 혜택과 마음에 육신적인 안정감과 만족감이 생기게 되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급기야 부를 급하게 축적하여야 되겠다는 방향으로 가면서 점점 믿는 자의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이렇게 점점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그러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살 수가 있습니다.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믿는 사람은 태생적으로 존재의 방식이,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이 눈앞의 일과 재물에 급급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되면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먹고 사는 문제 제리의 염려가 당장 눈앞에 크게 보이고 세상의 문제에 급급하게 됩니다.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보다 오늘 당장 일을 해서 내일을 1년 후를 10년 후, 노후를 처자식 먹여 살림 걱정에 재물 준비에 주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드리지도 아니하되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고 계시는데 너희들이 이것보다 귀하지 아니하나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먹이시는데 너희들일까 보냐?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데 믿음에서 떠나면 하나님 말고 다른 것으로 안정을 삼고 만족을 삼게 되고 그러면은 점점 고민과 시험과 범민이 커지고 올무에 걸리고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올무는 낚여 메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세상에서의 육적인 안정과 만족을 기준을 삼아서 스스로에게 메어버리게 되고 더 움직이려 할수록 쪼아들게 되는 그러한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그러면 점점 빠져나오지 못하는 깊은 침륜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식류는 물체나 사물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믿는 자들이 침체기가 되어지면은 아주 특별한 계기나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스스로는 빠져나오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그러나 반드시 이 영적인 침체에서는 빠져나와야 됩니다.먼저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됩니다.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천국 중심으로 바꾸어야 됩니다.그러면 구체적으로 먼저 어떻게 무엇을 해야 되는가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세상 일도 돈도 접하다 보니 보다 보니 세상에 하루 24시간 중에 자는 시간 빼고 예배드리는 시간 빼면 대부분의 활동이 이 세상에서 세상의 소리, 세상의 환경, 접하는 인물들, 사건들 그러한 것들에 자꾸 우리가 노출이 되면은 저절로 마음이 생겨나고 그 생겨난 마음이 주가 되고 그것이 중심이 되며 기준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예를 들어 부활하는 것도 가라라는 것도 이러한 세상의 기준에 의해서 접하다 보면은 그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부한 자들을 보고 부한 자들의 소리를 들으니까 상대 평가적인 가난을 느끼게 됩니다.그러면은 가난성을 가지게 되고 사람이 절박하고 불안하게 되고 그것을 충족해야지만 불안이 해소가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그런 것처럼 신앙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여기서 이 말씀은 심령을 가난하게 해야 천국을 준다는 말이 아니고, 천국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천국을 자꾸 묵상하다 보니까 천국에 대한 가난성이 생기는 것입니다.거룩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거룩에 대한 가난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영광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영광에 대한 가난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갈 요소가 하나는 너무나 적은데 주위의 신앙 선배들을 보니까 저렇게 평생을 전도하고 저렇게 평생을 자타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데 저렇게 모아놓은 부로 평생을 바쳐 연보하고 헌신하고 그렇게 자기 신화관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나는 어떠한가 이러면 안 되겠는데 이러한 가난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자가 복 있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령을 가난한 심령이라고 합니다.심령이란 영에 붙들린 마음을 심령이라고 합니다.우리의 가장 겉에 있는 몸 육체, 그 안에 우리의 마음 더 파고들면 인간의 마음이 주격이 되는 그 양심, 그리고 영에 붙들린 그 심령이 되어서 이 심령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국을 생각하고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니까 사도 요한 같은 분도 바울 같은 분도 그 의인들이 저는 죄인 중에 죄수라고 고백을 하게 되고 실제로는 의인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심령이 하루에 24시간 가운데서 내 생각이 어디에 제일 많이 머물고 있느냐 우리가 많이 머물고 있는 거기에 욕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러니까 내 마음이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심판이든지 천국이든지 죽음이든지 하나님 앞에 인간의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 내 마음을 거기에 두고 거기에 갈증이 되고 거기에 가난성이 생겨나야 될 것입니다.그리고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는 급하게 해도 됩니다.급하게 구하려고 하는 자는 망하지만 예수 믿는 것은 급하게 빠르게 신속하게 회개하는 것도 믿는 것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유익이 됩니다.백 목사님 같은 분들도 믿자마자 술 담배 끊고 전 재산 연보하고 교역자로 나서고 평생을 하나님 앞에 갈급을 느끼며 순교할 그때까지 평생을 하나님 앞에 전진하였습니다.그래서 우리도 오늘 하루 살아갈 때 동안에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꾸만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하나님을 향한 가난성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모든 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