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7일 금밤
김동민2025-06-27조회 56추천 7
2025년 6월 27일 금밤
찬송: 37장
본문: 누가복음 16장 2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내용에서 여러 가지 알아야할 것은 교리도 있지만은 그보다 더 신앙생활의 믿는 생활이니까 전체를 잡고 세상에 살지만은 죽음 너머를 보는 것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어린 아이들도 이 사실을 압니다. 인식을 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산다는 거지요. 안 죽으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은 안되는 줄을 압니다. 그런데 머리가 좋고 인류를 위해서 뭔가를 해보고자하는 그런 잘난 사람들은 의학을 연구했던지 불로장생을 연구합니다만은 사람이 안 죽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그 바벨탑을 쌓은 그 목적이 이유가 뭐냐면 목적이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다 밀었으니까 꼭대기로 쌓으면 하늘까지야 비가 오겠나 그런 아주 돼지 뒷발굽처럼 그런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런 걸로 바벨탑을 쌓았기 때문에 교만하고 그렇기 때문에 쌓기 전에 다 흩어버렸습니다. 하늘까지야 못 쌓겠지만 요즘 과학 보면 그때도 지금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건축물들이 고대에 많이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노력하면 어디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겠지만 높이 허락하지 않은 것처럼 과학이 발달되고 의술이 발달이 되어서 인간의 수명을 늘려나가고 죽음의 원인을 찾아서 이걸 방지하는 그래서 사람이 죽지 않는 거기까지 들어가겠다 싶으면 하나님께서 재림하시던지 없애버리시던지 수를 쓰겠지요. 생명만큼은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다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런 줄 알고 자포자기 하는 것이고 우리는 인식하고 준비하면서 하는 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죽으니까,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넘어를 바라보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죽음 넘어 세계에 준비하는 동안에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 차이는 끝이 나고 영원한 차이가 생각납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노력의 방향이 뭐냐. 신불신자간에 사람들이 열심히 머리써서 공부하고 땀흘려 일하고 목적 중에 하나가 대다수가 차이를 줄이거나 차이를 늘리기는 이게 대다수라고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차이가 벌어졌으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나도 다른 사람처럼, 남들 못지 않게 잘 살아봐야겠다. 공부하면 성적이 낮은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따라잡아야겠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자기 점수 유지해야겠다 그런 것이고 직장에서 월급이 적은 사람은 노력하는 것이고 많이 받는 사람은 더 하는 것이고. 잘난 사람은 더 잘나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낮은 사람은 애를 쓰려고 해 보는 것이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전부 차이 때문에 이 세상이다 그리 볼 수 있는데 이 세상 차이라는 것은 묘하게 장소와 입장과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되는 거지요. 이 세상에서 사회에서 말하자면 잘나가던 그런 사장이었는데 말단 사원이 있었습니다. 젊어서 십대 때 돈을 벌어서 사장이 되었고 말단 사원이 되었는데 그렇게 사장과 사원차이는 차이 많이 나는데 군대를 가버렸단 말이죠. 그런데 말단 사원이 먼저들어갔습니다. 군대는 하루 선배를 조상같이 여겨라고 합니다. 사장과 사원인데 군대가니까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거지요. 세상 차이인겁니다.
사회에서 졸병이라고 갈궜는데 제대해서 나와서 길에서 만났습니다. 너 군대에서 나 갈궜지. 한 번 붙어볼까 이렇게 되는 거지요. 이런 면이 있는 겁니다. 학교 우등생, 그 다음 사회 일등생 말 들어보셨습니까. 학교에서 그리 공부만 잘했는데 나오면, 정주영 세상 떠나고 그 사람 학벌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는 대학 박사들이 수천명입니다. 버글버글합니다. 학교 공부 잘한다고 이 세상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못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 차이라는 것은 입장의 차이는 변하는 것이고 달라지는 건데 이랬든 저랬든 사람들은 남보다 좀 더 올라가고 애를 쓰는 게 사람들의 모든 생활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잘 살아보자, 우리집 아파트는 20평으로, 30평으로 넓혀보자. 좀 잘 살아보자. 모두 그런겁니다. 차이를 줄여서 올라가는 그런 것인데 이 세상은 어느 곳을 가든지 곳곳에 사람 사는 세상에 여러 면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겁니다. 아이들이 시끄러울 때 엄머 아빠는 마음을 졸여야하고 우리는 아이들이 시끄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아이가 안 생기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시끄러우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가서 아이를 안 주시나 그런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는 사람들은 이 차이를 줄어볼려고 하는데 이 차이가 없을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이 차이 때문에 곡절이 생겨지니까 이 차이를 줄여보자고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이 경제 사상을 가르켜서 뭐라고 하지요. 공산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사회주의. 그래서 공산주의란 기본적으로 공동 생산해서 갈라먹자 그건데 많은 놈걸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니까 하향평준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밑으로 내려가는 사회고 자본주의 실력껏 먹어라, 실력있는 사람 잡아가는 거지요. 차이가 벌어지는 거지요. 세상은 기본적으로 이런 자본주의처럼 실력껏 벌어먹어야 발전이 되지 평등으로 하면 망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중국, 베트남 전부 그렇게 망한 겁니다. 무늬만 공산주의지 자본주의로 바뀐 거지요. 그런 차이가 없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차이가 많이나지요. 키 좀 커 볼려고 다른 이유가 있지만 애를 많이 썼지만 어찌 되겠습니까. 불편하거든요. 안되니까 현관문을 잠구는 게 위에 있고 아래에 있거든요. 못 열거든요. 키가 작아서. 그래서 많이 나온 김에 잠구시는 분 잠구지 마십시오. 위에 잠구면 제가 못 엽니다. 그게 키 작은 사람의 서러움이지요. 키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물도 차이가 있고 모든 면의 차이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볼려고 애를 쓰는데 불철주야 다 애를 쓸려고 노력하는데 사람이 세상을 딱 떠나는 순간 다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겁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차이가 죽음으로 없어지는데 이것도 생각하고 사는 게 지혜롭습니다. 이걸 생각하고 하면 이 세상 차이가 없어지는 동시에 내세로 가면 세상의 모든 차이는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그래서 특별 계시고 성경은 그 외에는 전부 자연 계시입니다. 자연 계시 아닌 역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전부 다는 이 셋은 내세를 보여주는 표시판이고 자연 계시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스라엘하고 이란이 싸웠습니다. 이란의 땅 덩어리가 수십배가 안되겠습니까. 큰소리 펑펑 쳤는데 페르시아 쪽으로 대국입니다. 이스라엘은 경상북도 만하던가요. 그런데 가지고 놀아버렸죠. 거기다 미국이 그래서 항복이 됐는데 세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뭐라 그래도 힘있는 사람이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국제 연합 기구를 유엔이지요. 그 유엔이라는 것은 이름이 좋아서 유엔이고 그런 거고 전쟁이 나면 힘있는 나라 있으면 의미없습니다. 중국, 러시아가 의미가 있습니까. 미국은요. 그런데 약소국들은 연합해야하니까 그리되는 것이고 그게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이 세상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어느 세대나 차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겁니다. 이게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 수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가 죽음으로 없어지는데 동시에 더 큰 차이가 변동할 수 없는 차이가 내세입니다. 이 세상에 차이는 뒤바뀔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감옥 갈 수도 있고 절세미인이 추녀가 될 수도 있고 그게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그 차이가 바뀔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전해지면 이어지는 게 내세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이 세상 기회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별별 차이가 있는데 내세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지옥은 수도 없이 많은 것이고 그 차이, 죄를 얼마나 이겨낼 거냐, 얼마나 죄를 안 지었냐 살아가면서 별별 곳을 다 다니고 별별 것을 다 보고 형형색색의 상황 현실을 접하며 믿는 사람이 얼마만큼 죄를 이겨냈냐 죄와 싸워서 승리했냐 이게 하늘나라 차이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서 보통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죄를 짓지 않았던 세 청년, 다니엘 이런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데에 있겠지요. 주신 생애 생각하면 가정에서 출근해서 경제생활해서 혼자 생활에서 눈으로 입으로 귀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별별 언행심사 살아가면서 살아가는데 이게 전부 다 언행심사인데 얼마나 죄를 더불어 싸워 이겨냈느냐 이게 첫 번째 차이입니다.
두 번째는 얼마만큼 자기를 꺾었냐. 자기 고집 자기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준행했느냐. 그래서 기독자들의 생명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엇입니까. 죄를 얼마나 안 지었느냐, 죄의 종류가 몇 가지 되느냐 그런데 이걸 응용하는 것이 문제지요. 쇠털이 몇 개나 되겠습니까. 그 큰 놈의 소. 털이 쇠털 얼마나 되겠습니까. 초단위로 움직이는 거지요. 백 조개가 넘습니다. 움직임에 들어가는 것인데 전부 다가 계산되어서 차이가 생기는 거지요. 그래서 기독자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요. 구별입니다. 따지는 것. 하나 하나 따지는 것. 침 삼킬 동안도 하나님께서 나를 놓지 않았다. 그것도 따지고 삼켰습니다. 과장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살 때는 삽니다. 눈동자 돌리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진, 다윗.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차이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까웠냐 이 차이 얼마만큼 하늘을 소망하고 실제 준비하고 살았냐. 그게 하늘의 차이입니다. 음부에는 또 다른 차이가 되는 것이고. 사후 세계는 낙원과 음부로 나눠집니다. 천국의 대기소라고 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곳입니다. 음부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떠나면 낙원에 갑니다. 음부가 갑니다. 그래서 음부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고통스러운 어떻게 험악한 환경도 음부보다는 낫다. 그래서 무슨 밭에 굴러도. 개똥 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낫다. 그 사람들은 죽으면 음부에 가기 때문에 개똥과 비교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가장 나쁘고 고통 스러운 것보다 비교 못할 만한 곳이 음부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안 죽고 오래 사는 게 좋은데, 물 한 방울도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이 음부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교리를 바로 잡아야하는데 그래서 기준의 정의를 바로 잡아야하는데 하나님의 자비 긍휼이고 지옥에 있는 그런 인간들 심신의 기능들은 영원토록 불가운데 살아야하는 건데 우리가 달 알것이고 그러는데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모질지 않는가. 신문에 난 사진 봤습니까. 트럼프, 중동의 그 사람. 이 사람들이 나토에서 하는데 정상들 모여서 사진 찍는데 전부 다 환하게 웃고있거든요. 그런데 거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웃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정상과 미국 정상이 신문에 웃는 모습이 나왔는데 문제는 그들은 웃는데 폭탄맞아 죽은 그 사람들은요. 전쟁으로 폭탄을 때려서 이란에 요소요소 핵심 다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 많이 죽었지요. 죽은 사람들은요 아파트 대고 쏘아버립니다.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나가는데 대통령들은 웃고 있거든요. 참 잔인하지요. 그런데 그게 이 세상이고 힘의 논리라는 것이고 힘있는 놈들은 그냥 힘 약하면 죽는 거지요.
이 사실을 깨달은 뜨거운 사랑의 성도들은 목숨걸고 복음을 전하는 거지요. 우리가 이렇게 전도 안하는 것은 강팍하던지 없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안 믿으면 지옥가는데 영원히 가는데 그걸 두고보고 있다. 믿음이 없거나 잔인하거나 강팍하거나. 그래서 목숨걸고 전도하는 겁니다. 네 번째 사람은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밝습니다. 살아생전 그 심정이 밝아져서 내세라는 것이 사람이 알 수 없는 곳인데 안 보이는 것인데 그렇게 기록되어있지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지어진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지은 줄 안다. 성경의 기록과 사실은 믿을 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도 경험없는 겁니다. 믿음의 길을 안내하고 가르쳐도 이 세상에 감염되고 전염되고 안 받아들이면 안되는 거지요. 백 목사님 같은 분은 가족을 다 뒤로하고 가족들 살리려고 신앙으로 그래도 그 잘난 사람들 안 들어오니까 우리 공회 길로는 안 가는 겁니다. 사실을 말해도 듣는 사람 없으면 해당이 없는 거지요. 세상이 안 믿으면 안되는 겁니다. 사후 세계를 말씀드려놨지만 이걸 안 믿으면 사후 세계는 남의 말이지요. 믿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영안이 밝을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영안이 밝을 수밖에 없고 믿는 사람인데 안 믿는 사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 밝아서 내세를 알게 되는 거지요. 죽으면 밝은데 때가 늦은 겁니다. 살아생전에 보고 살아야 준비가 바로 되게 되는 겁니다.
다섯 번째, 사람이 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없다는 것이죠. 마귀가 귀신이고. 세상 사는 사람들은 세상 떠난 사람들을 두고 슬퍼합니다. 그런데 연세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합니다. 연세 많아서 90에서 고생하시다 가면 호상이라고 하는데 젊은 사람 가서 떠나면 슬퍼하는데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나를 위해서 슬퍼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슬퍼하라고 했습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끝났는데, 가신 분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에 추수만 남은 겁니다. 문제는 살아있는 우리가 문제지요. 그래서 내세에 가신 분들 그 나라에서 내세도 세상에 남아있는 분 슬퍼하는데 세상에서는 죽었는데 사후 세계에서 살아서 그리 된 것이지요. 내세도 사람의 무엇이 주님 재림 전까지는 낙원 갑니까. 영과 혼이 낙원과 음부로 가고, 그러기 때문에 영과 혼이라는 것은 인격체입니다. 인격체에는 지정리가 있습니다. 무슨 작용을 합니까. 희로애락을 합니다. 기쁨 슬픔 노여움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세에 가서 보니까 이 세상에서 산 것이 잘못 되어서 그렇게 애절하게 아브라함에게 형제를 위해서 간청을 한 겁니다.
그들은 그리 살지 않도록 간청하는 겁니다.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후회하고 고통스럽고 간청하고 가는데 그러면 안되는 것이지요. 여섯 번째 이 세상에는 내세에 있는 먼저 간 분들의 것을 가지고 사후세계를 알려주는 종,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안 들으니까 애가 타서 뭐라고 그러신다고요. 죽으면 알겠지. 죽어보면 알겠지. 사람이 지혜로운 게 죽음 넘어를 보고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겁니다. 우리는 그리 살고 있는지 부러운 말 중 하나가 부럽습니다. 나로서는 최선 다했다. 저는 그렇게 못해서 그래서 참 좋겠다. 할 만큼 했다. 할 만큼만 하면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자기로써 다 하는 겁니다. 없는 것 못하고 있는대로 가는 것이다. 주지 않으신 것은 찾지 않습니다. 자기대로 할 수 있으면 하는데 안 하니까 한 달란트가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일곱 번째 음부와 낙운 사이에는 무형의 차이의 구렁이 있습니다. 영원한 차이, 이 차이가 영원하기 때문에 왕래가 안되는 거지요. 이런 일곱가지가 사후 세계에 펼쳐질 실상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37장
본문: 누가복음 16장 2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내용에서 여러 가지 알아야할 것은 교리도 있지만은 그보다 더 신앙생활의 믿는 생활이니까 전체를 잡고 세상에 살지만은 죽음 너머를 보는 것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어린 아이들도 이 사실을 압니다. 인식을 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산다는 거지요. 안 죽으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은 안되는 줄을 압니다. 그런데 머리가 좋고 인류를 위해서 뭔가를 해보고자하는 그런 잘난 사람들은 의학을 연구했던지 불로장생을 연구합니다만은 사람이 안 죽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그 바벨탑을 쌓은 그 목적이 이유가 뭐냐면 목적이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다 밀었으니까 꼭대기로 쌓으면 하늘까지야 비가 오겠나 그런 아주 돼지 뒷발굽처럼 그런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런 걸로 바벨탑을 쌓았기 때문에 교만하고 그렇기 때문에 쌓기 전에 다 흩어버렸습니다. 하늘까지야 못 쌓겠지만 요즘 과학 보면 그때도 지금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건축물들이 고대에 많이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노력하면 어디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겠지만 높이 허락하지 않은 것처럼 과학이 발달되고 의술이 발달이 되어서 인간의 수명을 늘려나가고 죽음의 원인을 찾아서 이걸 방지하는 그래서 사람이 죽지 않는 거기까지 들어가겠다 싶으면 하나님께서 재림하시던지 없애버리시던지 수를 쓰겠지요. 생명만큼은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다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런 줄 알고 자포자기 하는 것이고 우리는 인식하고 준비하면서 하는 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죽으니까,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넘어를 바라보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죽음 넘어 세계에 준비하는 동안에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 차이는 끝이 나고 영원한 차이가 생각납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노력의 방향이 뭐냐. 신불신자간에 사람들이 열심히 머리써서 공부하고 땀흘려 일하고 목적 중에 하나가 대다수가 차이를 줄이거나 차이를 늘리기는 이게 대다수라고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차이가 벌어졌으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나도 다른 사람처럼, 남들 못지 않게 잘 살아봐야겠다. 공부하면 성적이 낮은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따라잡아야겠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자기 점수 유지해야겠다 그런 것이고 직장에서 월급이 적은 사람은 노력하는 것이고 많이 받는 사람은 더 하는 것이고. 잘난 사람은 더 잘나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낮은 사람은 애를 쓰려고 해 보는 것이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전부 차이 때문에 이 세상이다 그리 볼 수 있는데 이 세상 차이라는 것은 묘하게 장소와 입장과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되는 거지요. 이 세상에서 사회에서 말하자면 잘나가던 그런 사장이었는데 말단 사원이 있었습니다. 젊어서 십대 때 돈을 벌어서 사장이 되었고 말단 사원이 되었는데 그렇게 사장과 사원차이는 차이 많이 나는데 군대를 가버렸단 말이죠. 그런데 말단 사원이 먼저들어갔습니다. 군대는 하루 선배를 조상같이 여겨라고 합니다. 사장과 사원인데 군대가니까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거지요. 세상 차이인겁니다.
사회에서 졸병이라고 갈궜는데 제대해서 나와서 길에서 만났습니다. 너 군대에서 나 갈궜지. 한 번 붙어볼까 이렇게 되는 거지요. 이런 면이 있는 겁니다. 학교 우등생, 그 다음 사회 일등생 말 들어보셨습니까. 학교에서 그리 공부만 잘했는데 나오면, 정주영 세상 떠나고 그 사람 학벌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는 대학 박사들이 수천명입니다. 버글버글합니다. 학교 공부 잘한다고 이 세상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못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 차이라는 것은 입장의 차이는 변하는 것이고 달라지는 건데 이랬든 저랬든 사람들은 남보다 좀 더 올라가고 애를 쓰는 게 사람들의 모든 생활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잘 살아보자, 우리집 아파트는 20평으로, 30평으로 넓혀보자. 좀 잘 살아보자. 모두 그런겁니다. 차이를 줄여서 올라가는 그런 것인데 이 세상은 어느 곳을 가든지 곳곳에 사람 사는 세상에 여러 면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겁니다. 아이들이 시끄러울 때 엄머 아빠는 마음을 졸여야하고 우리는 아이들이 시끄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아이가 안 생기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시끄러우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가서 아이를 안 주시나 그런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는 사람들은 이 차이를 줄어볼려고 하는데 이 차이가 없을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이 차이 때문에 곡절이 생겨지니까 이 차이를 줄여보자고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이 경제 사상을 가르켜서 뭐라고 하지요. 공산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사회주의. 그래서 공산주의란 기본적으로 공동 생산해서 갈라먹자 그건데 많은 놈걸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니까 하향평준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밑으로 내려가는 사회고 자본주의 실력껏 먹어라, 실력있는 사람 잡아가는 거지요. 차이가 벌어지는 거지요. 세상은 기본적으로 이런 자본주의처럼 실력껏 벌어먹어야 발전이 되지 평등으로 하면 망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중국, 베트남 전부 그렇게 망한 겁니다. 무늬만 공산주의지 자본주의로 바뀐 거지요. 그런 차이가 없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차이가 많이나지요. 키 좀 커 볼려고 다른 이유가 있지만 애를 많이 썼지만 어찌 되겠습니까. 불편하거든요. 안되니까 현관문을 잠구는 게 위에 있고 아래에 있거든요. 못 열거든요. 키가 작아서. 그래서 많이 나온 김에 잠구시는 분 잠구지 마십시오. 위에 잠구면 제가 못 엽니다. 그게 키 작은 사람의 서러움이지요. 키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물도 차이가 있고 모든 면의 차이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볼려고 애를 쓰는데 불철주야 다 애를 쓸려고 노력하는데 사람이 세상을 딱 떠나는 순간 다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겁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차이가 죽음으로 없어지는데 이것도 생각하고 사는 게 지혜롭습니다. 이걸 생각하고 하면 이 세상 차이가 없어지는 동시에 내세로 가면 세상의 모든 차이는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그래서 특별 계시고 성경은 그 외에는 전부 자연 계시입니다. 자연 계시 아닌 역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전부 다는 이 셋은 내세를 보여주는 표시판이고 자연 계시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스라엘하고 이란이 싸웠습니다. 이란의 땅 덩어리가 수십배가 안되겠습니까. 큰소리 펑펑 쳤는데 페르시아 쪽으로 대국입니다. 이스라엘은 경상북도 만하던가요. 그런데 가지고 놀아버렸죠. 거기다 미국이 그래서 항복이 됐는데 세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뭐라 그래도 힘있는 사람이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국제 연합 기구를 유엔이지요. 그 유엔이라는 것은 이름이 좋아서 유엔이고 그런 거고 전쟁이 나면 힘있는 나라 있으면 의미없습니다. 중국, 러시아가 의미가 있습니까. 미국은요. 그런데 약소국들은 연합해야하니까 그리되는 것이고 그게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이 세상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어느 세대나 차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겁니다. 이게 내세를 보여주는 자연 계시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 수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가 죽음으로 없어지는데 동시에 더 큰 차이가 변동할 수 없는 차이가 내세입니다. 이 세상에 차이는 뒤바뀔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감옥 갈 수도 있고 절세미인이 추녀가 될 수도 있고 그게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그 차이가 바뀔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전해지면 이어지는 게 내세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이 세상 기회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별별 차이가 있는데 내세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지옥은 수도 없이 많은 것이고 그 차이, 죄를 얼마나 이겨낼 거냐, 얼마나 죄를 안 지었냐 살아가면서 별별 곳을 다 다니고 별별 것을 다 보고 형형색색의 상황 현실을 접하며 믿는 사람이 얼마만큼 죄를 이겨냈냐 죄와 싸워서 승리했냐 이게 하늘나라 차이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서 보통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죄를 짓지 않았던 세 청년, 다니엘 이런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데에 있겠지요. 주신 생애 생각하면 가정에서 출근해서 경제생활해서 혼자 생활에서 눈으로 입으로 귀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별별 언행심사 살아가면서 살아가는데 이게 전부 다 언행심사인데 얼마나 죄를 더불어 싸워 이겨냈느냐 이게 첫 번째 차이입니다.
두 번째는 얼마만큼 자기를 꺾었냐. 자기 고집 자기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준행했느냐. 그래서 기독자들의 생명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엇입니까. 죄를 얼마나 안 지었느냐, 죄의 종류가 몇 가지 되느냐 그런데 이걸 응용하는 것이 문제지요. 쇠털이 몇 개나 되겠습니까. 그 큰 놈의 소. 털이 쇠털 얼마나 되겠습니까. 초단위로 움직이는 거지요. 백 조개가 넘습니다. 움직임에 들어가는 것인데 전부 다가 계산되어서 차이가 생기는 거지요. 그래서 기독자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요. 구별입니다. 따지는 것. 하나 하나 따지는 것. 침 삼킬 동안도 하나님께서 나를 놓지 않았다. 그것도 따지고 삼켰습니다. 과장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살 때는 삽니다. 눈동자 돌리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진, 다윗.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차이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까웠냐 이 차이 얼마만큼 하늘을 소망하고 실제 준비하고 살았냐. 그게 하늘의 차이입니다. 음부에는 또 다른 차이가 되는 것이고. 사후 세계는 낙원과 음부로 나눠집니다. 천국의 대기소라고 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곳입니다. 음부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떠나면 낙원에 갑니다. 음부가 갑니다. 그래서 음부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고통스러운 어떻게 험악한 환경도 음부보다는 낫다. 그래서 무슨 밭에 굴러도. 개똥 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낫다. 그 사람들은 죽으면 음부에 가기 때문에 개똥과 비교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가장 나쁘고 고통 스러운 것보다 비교 못할 만한 곳이 음부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안 죽고 오래 사는 게 좋은데, 물 한 방울도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이 음부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교리를 바로 잡아야하는데 그래서 기준의 정의를 바로 잡아야하는데 하나님의 자비 긍휼이고 지옥에 있는 그런 인간들 심신의 기능들은 영원토록 불가운데 살아야하는 건데 우리가 달 알것이고 그러는데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모질지 않는가. 신문에 난 사진 봤습니까. 트럼프, 중동의 그 사람. 이 사람들이 나토에서 하는데 정상들 모여서 사진 찍는데 전부 다 환하게 웃고있거든요. 그런데 거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웃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정상과 미국 정상이 신문에 웃는 모습이 나왔는데 문제는 그들은 웃는데 폭탄맞아 죽은 그 사람들은요. 전쟁으로 폭탄을 때려서 이란에 요소요소 핵심 다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 많이 죽었지요. 죽은 사람들은요 아파트 대고 쏘아버립니다.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나가는데 대통령들은 웃고 있거든요. 참 잔인하지요. 그런데 그게 이 세상이고 힘의 논리라는 것이고 힘있는 놈들은 그냥 힘 약하면 죽는 거지요.
이 사실을 깨달은 뜨거운 사랑의 성도들은 목숨걸고 복음을 전하는 거지요. 우리가 이렇게 전도 안하는 것은 강팍하던지 없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안 믿으면 지옥가는데 영원히 가는데 그걸 두고보고 있다. 믿음이 없거나 잔인하거나 강팍하거나. 그래서 목숨걸고 전도하는 겁니다. 네 번째 사람은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밝습니다. 살아생전 그 심정이 밝아져서 내세라는 것이 사람이 알 수 없는 곳인데 안 보이는 것인데 그렇게 기록되어있지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지어진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지은 줄 안다. 성경의 기록과 사실은 믿을 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도 경험없는 겁니다. 믿음의 길을 안내하고 가르쳐도 이 세상에 감염되고 전염되고 안 받아들이면 안되는 거지요. 백 목사님 같은 분은 가족을 다 뒤로하고 가족들 살리려고 신앙으로 그래도 그 잘난 사람들 안 들어오니까 우리 공회 길로는 안 가는 겁니다. 사실을 말해도 듣는 사람 없으면 해당이 없는 거지요. 세상이 안 믿으면 안되는 겁니다. 사후 세계를 말씀드려놨지만 이걸 안 믿으면 사후 세계는 남의 말이지요. 믿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영안이 밝을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영안이 밝을 수밖에 없고 믿는 사람인데 안 믿는 사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 밝아서 내세를 알게 되는 거지요. 죽으면 밝은데 때가 늦은 겁니다. 살아생전에 보고 살아야 준비가 바로 되게 되는 겁니다.
다섯 번째, 사람이 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없다는 것이죠. 마귀가 귀신이고. 세상 사는 사람들은 세상 떠난 사람들을 두고 슬퍼합니다. 그런데 연세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합니다. 연세 많아서 90에서 고생하시다 가면 호상이라고 하는데 젊은 사람 가서 떠나면 슬퍼하는데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나를 위해서 슬퍼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슬퍼하라고 했습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끝났는데, 가신 분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에 추수만 남은 겁니다. 문제는 살아있는 우리가 문제지요. 그래서 내세에 가신 분들 그 나라에서 내세도 세상에 남아있는 분 슬퍼하는데 세상에서는 죽었는데 사후 세계에서 살아서 그리 된 것이지요. 내세도 사람의 무엇이 주님 재림 전까지는 낙원 갑니까. 영과 혼이 낙원과 음부로 가고, 그러기 때문에 영과 혼이라는 것은 인격체입니다. 인격체에는 지정리가 있습니다. 무슨 작용을 합니까. 희로애락을 합니다. 기쁨 슬픔 노여움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세에 가서 보니까 이 세상에서 산 것이 잘못 되어서 그렇게 애절하게 아브라함에게 형제를 위해서 간청을 한 겁니다.
그들은 그리 살지 않도록 간청하는 겁니다.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후회하고 고통스럽고 간청하고 가는데 그러면 안되는 것이지요. 여섯 번째 이 세상에는 내세에 있는 먼저 간 분들의 것을 가지고 사후세계를 알려주는 종,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안 들으니까 애가 타서 뭐라고 그러신다고요. 죽으면 알겠지. 죽어보면 알겠지. 사람이 지혜로운 게 죽음 넘어를 보고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겁니다. 우리는 그리 살고 있는지 부러운 말 중 하나가 부럽습니다. 나로서는 최선 다했다. 저는 그렇게 못해서 그래서 참 좋겠다. 할 만큼 했다. 할 만큼만 하면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자기로써 다 하는 겁니다. 없는 것 못하고 있는대로 가는 것이다. 주지 않으신 것은 찾지 않습니다. 자기대로 할 수 있으면 하는데 안 하니까 한 달란트가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일곱 번째 음부와 낙운 사이에는 무형의 차이의 구렁이 있습니다. 영원한 차이, 이 차이가 영원하기 때문에 왕래가 안되는 거지요. 이런 일곱가지가 사후 세계에 펼쳐질 실상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