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0일 금밤
김동민2025-06-20조회 62추천 11
2025년 6월 20일 금밤
찬송: 146장, 148장
본문: 민수기 1장 47절 ~ 5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후 세계를 몇 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말씀들은 우리 사람의 평생에 기억하고 살아가야할 인생의 방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큰 틀입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큰 틀에 해당되는 말씀이겠고 그런 말씀을 기억하는 방향입니다. 그렇게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전체 큰 방향을 찾고 가는 가정에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말씀이 요즘 공부하는 이런 레위인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세상에 살지만은 세상을 보지않고 하늘을 보고 마지막에 이 세상 떠날 그날을 생각하고 계산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갈 날을 생각하면서 세상은 살고 신앙생활은 하되 어떻게 하늘을 준비할 것인가 평소 배우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공과가 됩니다. 공과 공부인데 공과를 참고하시고 살려놓자 신앙양심입니다.
누가복음 16장 말씀을 하면서 상식으로 공부해봅시다. 사람의 요소가 몇 가지 입니까. 사람의 요소는 몇 가지로 요소되어있습니까. 제일 바깥에 몸, 안에 마음, 그 안에 영입니다. 그 중에서 진짜 사람, 사람이라고 부를 때 사람은 영이 사람입니다. 영이 없고 마음이 없고 몸만 있으면 짐승이라고 합니다. 영은 없고 마음과 몸만 가졌을 때 그 육체를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런 각도에서 보는 거면 영은 있는데 죽은 사람들의 생활은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을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몽둥이 들고 오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이 죽은 자를 가르켜서 죽은 자라고 합니다. 죽은 자가 있는 것이고 짐승이니까 영 죽은 상태로 사는 생활은 영이 있어도 없는 생활이 짐승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고, 이 교리를 바탕에 깔고 비교해놓고 차이는 무슨 차이가 있느냐, 사람은 고급이고 짐승은 저급이고.
사람은 고차원의 정도고 짐승은 저급이고, 머리쓰는 것도 사람은 고급이고 짐승은 저급이고. 또 하나 이건 평소하는 상식이고 이번 장례 때 드린 말이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지요. 몸은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영과 혼은 낙원이나 음부로 있는데 낙원과 음부에 가는 것이 어떤 상태로 가느냐, 낙원에 가는 영과 혼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살았으니까 가는 거지요. 죽음이란 몸과 마음, 혼이 나뉘는 게 죽음입니다. 성경에 죽음을 혼이 떠나니라. 그러면 죽는 겁니다. 몸이라는 것은 주격되는 영과 영의 집이 되는 마음이 되는 것이 실제 사람이고, 몸이란 기계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이 떠나버리면 사람은 멈춰버립니다. 자세한 건 주일 날에 공부할지.
제목은 뭐라고요. 살려놓자 신앙양심. 양심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 속에 있는 한 요소입니다. 물질로 된 마음 중에서 가장 밝고 예민하고 깨끗하고 치우침이 없는 그런 사람이 양심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내 속에 있는 한 부분의 요소인데 내 어디있다고요. 양심이 사람 어디에 있다고요. 사람 속에 있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그릇 안에 양심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양심과 사람은 뗄 수 없는 관계지요. 그 사람이 그 양심이고 그 양심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 양심과 사람을 떼어서 구분할 수 없는 거지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고 양심은 참 좋은데 사람이 나쁘다. 그 양심이 내 속에 들어있는거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데 레위인은 공부하고 그러면서 레위인이 무엇이 레위인이라고 합니까. 양심과 내가 레위인이고 내 속의 양심이 레위인이니까 이 둘을 떼서 할 수 없는 것이 설명을 드립니다. 그래서 성경읽을 때 그럴 때는 설교 시간에는 집회 때나 예배 때나 말씀 그 시간에 한 시간 한정된 그 시간에 하나를 깊이파고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곽적으로 지나가는 게 많은데 그러면 명상의 속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들었는데 무슨 뜻인가. 그래서 백목사님의 설교 하나를 들으면 설교 하나가지고 설교 30개는 할 수 있다는 게 일반 교계의 평입니다. 그 속에 많은 것이 들어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설교 안에 있는 표현들 문장들이 하나하나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위인이 양심이다 들어가서 연구해보는 겁니다. 자존자를 배웠다면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자존자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스스로자 있을 존입니다. 단순히 그치면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자존자라는 말씀 들을 때 설교하려다보니까 자존자가 무슨 뜻이냐, 스스로 계신 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교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할려고 연구하다보니까 스스로 계신 분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존한 존재는 없는 겁니다.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말하는 건 짐작이고 추측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자존자는 없고 말미암아서 생겨지는데 그러면 궁극에 뭐가 생겨지는가 다시 말하면 뭐가 됩니까.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 근본이지요 복의 근원만이 아니고 만 존재의 근원 모든 존재 전부 다가 나왔다. 하나님이 계시면 전부 다 있는 것이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게 되는 겁니다. 자존자는 모든 근본이 되는 존재다. 성경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살려놓자 신앙양심. 전체적으로 첫째는 보면 레위인의 그 신분 하나, 두 번째는 레위인의 위치 하나, 맡은 직무 하나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 세 가지를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레위인의 신분, 그 말은 우리의 신분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누구냐, 우리는 어떤 사람이냐 더 깊이 들어가면 내 속의 양심은 어떤 것이냐. 진을 쳐서 머무를 곳입니다. 그 위치는 우리들의 위치 어디 있어야하느냐, 그러면 어디에 자리잡아야하느냐. 레위인의 역할은 우리의 하는 일이 뭐여야하느냐. 그런 뜻이 되는 것이지요.
레위인의 신분을 들어가 보는 겁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열 두 지파. 레위인은 들어갑니까 빠집니까. 오직 레위인은 그 조상의 지파대로 개수에 들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레위지파는 개수치 말아라고 했습니다. 총 계가 몇 명. 열 두 지파의 두목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60만 3천 550명. 그런데 어느 지파가 빠졌다고요. 레위 지파 빠졌고, 여자와 아이가 빠졌고, 잡족이 빠졌고. 열 두 지파가 더러 있고 레위 지파가 빠졌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인데 남은 지파는 몇 지파입니까. 몇 지파요. 열 한 지파인데 왜 열 두 지파라고 하지요. 요셉의 지파가 둘이 되면서 열 둘이 되는 겁니다. 원래 레위는 열 두 지파 안에 들었는데 레위 지파는 돌린 것이다. 그래서 레위인의 신분은 열 두 지파 속에 하나님의 백성 속에 있는데 들어있지 않은 것. 열 두 지파에 속하지 않으면서 제외시켜놓은 것. 하나님께 바쳐져서 하나님만 상대하는 것입
찬송: 146장, 148장
본문: 민수기 1장 47절 ~ 5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후 세계를 몇 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말씀들은 우리 사람의 평생에 기억하고 살아가야할 인생의 방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큰 틀입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큰 틀에 해당되는 말씀이겠고 그런 말씀을 기억하는 방향입니다. 그렇게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전체 큰 방향을 찾고 가는 가정에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말씀이 요즘 공부하는 이런 레위인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세상에 살지만은 세상을 보지않고 하늘을 보고 마지막에 이 세상 떠날 그날을 생각하고 계산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갈 날을 생각하면서 세상은 살고 신앙생활은 하되 어떻게 하늘을 준비할 것인가 평소 배우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공과가 됩니다. 공과 공부인데 공과를 참고하시고 살려놓자 신앙양심입니다.
누가복음 16장 말씀을 하면서 상식으로 공부해봅시다. 사람의 요소가 몇 가지 입니까. 사람의 요소는 몇 가지로 요소되어있습니까. 제일 바깥에 몸, 안에 마음, 그 안에 영입니다. 그 중에서 진짜 사람, 사람이라고 부를 때 사람은 영이 사람입니다. 영이 없고 마음이 없고 몸만 있으면 짐승이라고 합니다. 영은 없고 마음과 몸만 가졌을 때 그 육체를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런 각도에서 보는 거면 영은 있는데 죽은 사람들의 생활은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을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몽둥이 들고 오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이 죽은 자를 가르켜서 죽은 자라고 합니다. 죽은 자가 있는 것이고 짐승이니까 영 죽은 상태로 사는 생활은 영이 있어도 없는 생활이 짐승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고, 이 교리를 바탕에 깔고 비교해놓고 차이는 무슨 차이가 있느냐, 사람은 고급이고 짐승은 저급이고.
사람은 고차원의 정도고 짐승은 저급이고, 머리쓰는 것도 사람은 고급이고 짐승은 저급이고. 또 하나 이건 평소하는 상식이고 이번 장례 때 드린 말이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지요. 몸은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영과 혼은 낙원이나 음부로 있는데 낙원과 음부에 가는 것이 어떤 상태로 가느냐, 낙원에 가는 영과 혼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살았으니까 가는 거지요. 죽음이란 몸과 마음, 혼이 나뉘는 게 죽음입니다. 성경에 죽음을 혼이 떠나니라. 그러면 죽는 겁니다. 몸이라는 것은 주격되는 영과 영의 집이 되는 마음이 되는 것이 실제 사람이고, 몸이란 기계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이 떠나버리면 사람은 멈춰버립니다. 자세한 건 주일 날에 공부할지.
제목은 뭐라고요. 살려놓자 신앙양심. 양심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 속에 있는 한 요소입니다. 물질로 된 마음 중에서 가장 밝고 예민하고 깨끗하고 치우침이 없는 그런 사람이 양심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내 속에 있는 한 부분의 요소인데 내 어디있다고요. 양심이 사람 어디에 있다고요. 사람 속에 있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그릇 안에 양심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양심과 사람은 뗄 수 없는 관계지요. 그 사람이 그 양심이고 그 양심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 양심과 사람을 떼어서 구분할 수 없는 거지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고 양심은 참 좋은데 사람이 나쁘다. 그 양심이 내 속에 들어있는거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데 레위인은 공부하고 그러면서 레위인이 무엇이 레위인이라고 합니까. 양심과 내가 레위인이고 내 속의 양심이 레위인이니까 이 둘을 떼서 할 수 없는 것이 설명을 드립니다. 그래서 성경읽을 때 그럴 때는 설교 시간에는 집회 때나 예배 때나 말씀 그 시간에 한 시간 한정된 그 시간에 하나를 깊이파고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곽적으로 지나가는 게 많은데 그러면 명상의 속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들었는데 무슨 뜻인가. 그래서 백목사님의 설교 하나를 들으면 설교 하나가지고 설교 30개는 할 수 있다는 게 일반 교계의 평입니다. 그 속에 많은 것이 들어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설교 안에 있는 표현들 문장들이 하나하나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위인이 양심이다 들어가서 연구해보는 겁니다. 자존자를 배웠다면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자존자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스스로자 있을 존입니다. 단순히 그치면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자존자라는 말씀 들을 때 설교하려다보니까 자존자가 무슨 뜻이냐, 스스로 계신 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교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할려고 연구하다보니까 스스로 계신 분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존한 존재는 없는 겁니다.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말하는 건 짐작이고 추측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자존자는 없고 말미암아서 생겨지는데 그러면 궁극에 뭐가 생겨지는가 다시 말하면 뭐가 됩니까.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 근본이지요 복의 근원만이 아니고 만 존재의 근원 모든 존재 전부 다가 나왔다. 하나님이 계시면 전부 다 있는 것이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게 되는 겁니다. 자존자는 모든 근본이 되는 존재다. 성경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살려놓자 신앙양심. 전체적으로 첫째는 보면 레위인의 그 신분 하나, 두 번째는 레위인의 위치 하나, 맡은 직무 하나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 세 가지를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레위인의 신분, 그 말은 우리의 신분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누구냐, 우리는 어떤 사람이냐 더 깊이 들어가면 내 속의 양심은 어떤 것이냐. 진을 쳐서 머무를 곳입니다. 그 위치는 우리들의 위치 어디 있어야하느냐, 그러면 어디에 자리잡아야하느냐. 레위인의 역할은 우리의 하는 일이 뭐여야하느냐. 그런 뜻이 되는 것이지요.
레위인의 신분을 들어가 보는 겁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열 두 지파. 레위인은 들어갑니까 빠집니까. 오직 레위인은 그 조상의 지파대로 개수에 들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레위지파는 개수치 말아라고 했습니다. 총 계가 몇 명. 열 두 지파의 두목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60만 3천 550명. 그런데 어느 지파가 빠졌다고요. 레위 지파 빠졌고, 여자와 아이가 빠졌고, 잡족이 빠졌고. 열 두 지파가 더러 있고 레위 지파가 빠졌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인데 남은 지파는 몇 지파입니까. 몇 지파요. 열 한 지파인데 왜 열 두 지파라고 하지요. 요셉의 지파가 둘이 되면서 열 둘이 되는 겁니다. 원래 레위는 열 두 지파 안에 들었는데 레위 지파는 돌린 것이다. 그래서 레위인의 신분은 열 두 지파 속에 하나님의 백성 속에 있는데 들어있지 않은 것. 열 두 지파에 속하지 않으면서 제외시켜놓은 것. 하나님께 바쳐져서 하나님만 상대하는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