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 금밤
김동민2025-06-13조회 70추천 12
2025년 6월 13일 금밤
찬송: 19장, 47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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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부했던 말씀을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는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이어지게 하는 것이고 형제들아 내가 주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정하면서 형제들아 내가 하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바울이 하는 말인데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말씀을 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내가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주권도 믿었고 경험했고 많이 체험했고 그 다음에 나오는 자비하심도 바울이 많이 겪었고 산 제사로 드렸고.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그 말씀을 자기가 깨닫고 하는 것이었고 그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까지 된 상태에서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복음을 전할 때는 개인적으로 전하던지 설교하던지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칠 때 반사 선생님들이 심방가서 가르칠 때 예배당에서 공부를 하고 설교를 할 때. 우리 남학생들이 마치고 돌아가면서 복습을 하는데 그것도 해당이 됩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가지는 게 먼저입니다. 금이란 말은 찌른다는 말이고 도려낸다는 겁니다. 찔러서 쪼개고 나쁜 것을 도려내는, 수술하는 칼입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게 전하면 들어가고 그 역사에서 악성 악습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정하면 일반적으로 우리 공회 안에서도 총공회 때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정통으로 졸업한 박사 목사님들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백 목사님은 그런 말씀 하실 때도 있지만 거의 우리라고 합니다. 우리라 그럴 때는 말씀을 전하는 자신과 전부 합해서 우리입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세는 우리가 되는 게 좋은겁니다. 말씀 자체를 두고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듣는 모두도 그런데 먼저 이 말씀을 갖다 댈 것은 다른 사람보다 설교자보다 설교할 때 자기를 이 말씀으로 갖다대야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꾸 살지못한 걸 회개하고 좋기는 살아서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가는 게 성공적입니다. 먼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합니다. 먼저 돌아보고, 그리고 난 다음에 전합니다. 복음으로 전할 때. 그러므로 형제들아 바울이 정합니다. 경험을 했습니다. 행해봤습니다. 주권의 하나님을 받고 산 제사로 받습니다. 바울은 세대를 초월했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뜻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시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심으로 말입니다. 자 가 사랑할 자자일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한다. 말씀을 권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서 정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다, 사람을 어떻게 담을까. 사랑의 정의를 무엇을 사랑으로 배우고 있습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입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입니까. 구원입니다. 그 가운데 들어가면 구원인데 무엇이 구원이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소이 구원입니다. 대속 없는 구원은 없는 거지요. 사랑은 다른 말로 하면 대속이고 대속은 곧 구원입니다.
자비하심으로 권한다는 말은 사랑의 목적으로 이 말씀을 정함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동기 그런 심정으로 말씀을 정해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 말씀 구원이고 사랑의 심정으로 정해야하는 겁니다. 그럴 때 꾸중으로 할 수도 있고 책망할 수도 있고 아주 분한 것처럼 그렇게 할 수도 있는데 좋게 말하든 책망으로 말하든 하나님 말씀 정할 때는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구원의 목적으로 해야하지 다른 것이 들어있으면 말씀을 악용하는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서 뽑아내면 예수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뽑아서 연결시키면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이렇게 말이 됩니다.
한 권 성경으로 천주교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신천지가 나오고 안식교가 나오고 갈라지겠습니까. 정통 교회 안에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정확한 게 있고 덜 바른 게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난 것일까. 신학교. 말하자면 스승들 사람들의 성경 깨달음에서 나온 건데 어디서 나눠지게 되는가 하나님께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주님 대속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랑인데 그럴 수 있는데 사랑의 심정이라는 게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것을 말씀을 행정적으로 적용시킬 때 해당된다 볼 수 있겠습니다. 교훈과 행정이 그렇게 걸어가는 게 교회입니다. 교훈과 행정, 행정은 일반적으로 정치라 그러는데 정치는 신앙세계에 불편한 말입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게 정치인데 교회에서 목사가 정치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교회 행정 정치는 교훈이 앞서가고 뒷받침이 되고 그럴 때 바른 교회가 되어집니다. 교훈을 따라가야하는데 어느 교회든 교파든 개인이든 교훈을 뒤로하고 행정을 앞세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왕정시대 때는 선지자입니다. 행정맡은 사람은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존중히 여기면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를 우습게 알면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말씀을 전할 때는 자기를 먼저 돌아오고 살피고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전하는데 이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 같이 우리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노력합시다.
사랑의 심정으로 구원의 심정으로 신앙 살리고 믿음을 살려서 건져서 힘을 줘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그 심정은 전해야하지 이 사랑의 심정이 뜨거운만큼 과거 저는 몇 번 말씀 드렸는데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하던 사람이 일반 교단의 말도 듣습니다. 듣기를 서부교회는 사랑이 없다 그런 말을 듣습니다. 서부교회는 일 년에 한 번 인사 정도할 거고 성탄절되면 떡국 끓여서 대접하는 게 전부입니다. 노숙자들 서부교회에 얻으러오면 백원짜리 하나 중입니다. 그러면 들고가는 사람도 있고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세상적으로 돕는 게 없다 보니까 그렇게 사랑이 없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혼을 냅니다. 매 주일마다 선생들이 다 사비 털어서 가르치는 그게 사랑이 아니고 뭐야. 말씀을 듣고 구원을 이루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세상 주는 것은 하늘의 구원을 위해서 사탕발림으로 주는 거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정해주고 예수님의 대속을 정해주고 사탕도 줄 수 있고 빵도 밥도 사줄수 있고 그렇지만은 세상 자체가 문제가 되면 교회가 할 일은 아닌 겁니다. 세상이 훨씬 더 잘 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사랑을 좀 만들어봐야겠는데 그렇게 자기가 먼저 되어야한다는 거지요. 너희를 권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정할 때 권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자유성을 생각하는겁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하나님이 감동시켜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내가 같은 말씀을 전해도 자기를 얼마나 말씀으로 살폈느냐 뜨거운 사람으로 가졌느냐 이걸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들을 때 좀 백 목사님 같은 분처럼 능력있는 그런 분들은 강단에서 마구 외쳐대도 백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따라 읽으면서 잡놈, 그렇게까지 하십니다. 능력있으니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말을 하실 때는 속은 조심스럽게 사람이 감동받을 수 있도록 그게 좋겠지요. 그게 전부 다는 아닙니다. 상대방의 자유성 의지를 생각하면서 자유 의지라는 말은 자체적으로 그런 말이고 실제로 적용되는 것은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야합니다. 이러면 말씀이 말씀이니까 전하지만은 어려서 못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일을 못 지키는 어린 신앙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린 것은 나쁜겁니까. 나쁜 게 아닙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 어려야하지만은 어릴 때는 순전합니다. 깨끗합니다. 때가 덜 묻었습니다. 미혹을 잘 받습니다. 잘 꼬이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있는 그런 거 각자 다 생각하면서 그렇습니다. 내가 말씀을 정하는데 이 말씀은 상대방은 입장이 어떨까 그거를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가서 인사한다고 심방되는 게 아닌 거지요. 그 과정에 필요한 게 뭔지를 생각을 하고 기도하고 조심스럽게 전하는 겁니다. 그게 권면입니다. 앞의 두 가지가 따라가고 가야합니다.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구원의 동기 구원의 심정으로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며 권하노니 너희 몸을 영적예배라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제목에 받쳐사는 게 드리는 겁니다. 산 제사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산 제사로 드려라. 구약의 제사는 제사입니다. 제사의 내용을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지요. 양을 잡아 짐승을 잡아 드리는 게 제사입니다. 겉모습은 바쳐 드리는 겁니다. 내게 있는 소와 양과 염소를 잡아다가 제사로 드립니다. 내가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내가 드림으로 내가 얻는 건 뭐가 있습니까. 제사를 드리므로 그들은 속죄를 받는 겁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짐승 제사를 드리므로 속죄를 받습니다. 속하는 거고 죄가 없어지고 가면 깨끗하게 됩니다. 가까워서 연결이 됩니다. 죄가 없어지고 그리되면 복을 주십니다. 이게 제사의 내용이고 목적입니다. 이게 구약시대 성도들의 건설구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를 같이 드려도 레위 지파를 불러다가 아론 앞에 서서 시중하게 하고 회중의 직무를 하게하라. 제사를 드릴 때 동참하는 것이고 그것은 각자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겁니다. 자기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잡아도 그 속에 주님 대속으로 한 것이 아니면 그런 것이지요. 짐승만 잡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제사를 잘 드렸으면 짐승을 잡으면서 짐승이 사람의 것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사람 죄를 대신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표시라는 것은 알맹이가 중요한거지요.
이 짐승이 나 대신에 죽는 거다. 성경으로 말하면 오실 주님을 대신하는 것이고 이걸 깨닫고 자기를 잡는 그 심정으로 잡는 사람들은 건설구원이 되었을 것이고 안 그러면 짐승만 잡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거지요. 너희 몸을 영적 예배로 드려라. 그게 영적 예배다. 구약에는 짐승 잡은 제사. 산 제사. 나를 잡아서 뭘 잡는 거라고 했습니까. 너희 몸을 산 제사라 그랬으니까 나를 잡는 건 현실은 잡아가면서 많이 말씀을 드렸지요. 이런 것 중에서 죄되는 거 불의되는 거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 이런 말 이런 행동 이런 시청각 이런 모든 언행심사 살펴서 잡는 게 산 제사가 되는 것이고 영적 예배다. 잡을 자기로 잡는 영적 예배 생활은 구약으로 말하면 짐승으로 말해서 바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가 되는 산 생활을 하면 나를 잡아서 바쳐드리면 되는 겁니다. 산 제사 생활이 되면 두 번째 어찌됩니까. 속죄가 되는 겁니다. 재속 입은 생활이 되는 겁니다.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내 심신의 활동을 통해서 말씀에 맞게 생활하면 영적예배인데 이 생활을 하면 제사 생활임으로 대속입은 생활이 되는 겁니다. 죄 없는 것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죄는 잡았으니까. 죽였으니까. 된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변수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거의 뭐 필연성으로 죄가 없으면 깨끗하면 복은 오면 기도 안하면 됩니다. 백 목사님 초기에 이걸 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그분이 창조주인데 주권자인데 그분이 다 보고 계시는데 뭐 어떻게 기도를 왜합니다. 얼굴이 기도를 못하겠답니다. 자신과 가정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다 알고 계십니다.
집에서 아이가 아프면 엄마아빠가 모릅니까. 아이가 나 아파요 말 안해도 말 못한 아이는 증상이 뭐지요 애기 엄마들. 애기 아프면 뭐가 표나나요. 일단 조용합니다 아이들이. 조용합니다. 까불던 아이들이 까불지 않습니다. 비실비실합니다. 말도 잘 안하고 아픈 겁니다. 그렇게 잘 먹던 아이가 안 먹습니다. 엄마가 보니까 비실비실합니다. 알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형편 다 아십니다. 그런데 내게 죄가 있으면 죄를 회개해야기 때문에 여러 어려운 고난을 던져놓습니다. 그런데 죄가 없습니다. 복은 알아서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상 것 위한 기도들은 안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지. 현실을 살아가면서 나의 심신의 활동에서 어긋나는 죄되는 거 뻔히 아는 이걸 고쳐서 살아가면 이렇게 산 생활이 되고 대속 입은 사람의 생활이 되고 사죄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복은 저절로 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바로 살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게 물질복 위에 그 다음에 지능의 복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지능이 나옵니다. 그 지능이 나오면 권위가 나옵니다. 권위가 나오면 영광 대우라는 것은 따라오는 것이지요. 산제사 순서가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부모자녀사이에 사람 관계에서 각자 자기 처소에서 심신으로 수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밖에서 미혹받아서 말씀에 어긋나게 되었으면 영적 예배생활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적으로 된 겁니다. 제사 생활은 하나님 목적이고 알맹입니다. 그래서 이 생활 위해서 이렇게 살아라고 한 것처럼 인생을 주셨고 세월을 주셨고 가정을 주셨고 환경을 주셨고 이 세상 살아갈 때 이렇게 산 제사 생활하지 아니하고 살아봐야 헛일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이것이 뭐냐.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게 바로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인데 이 뜻을 찾아 이 뜻대로 살려면 세 가지를 또 해야합니다.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환경을 따라가지 말아라. 환경에 영향받지 말고 피동되지 말고 참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쥐어박습니다. 환경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말이 돌기를 이런 짓을 했다거라, 억울한 소리가 돕니다. 특히 여반들 입을 조심해야합니다. 남의 말은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남의 개인사 가정사, 씹어먹는다고 말하지요. 하나님 앞에 복을 다 빼앗기는 것이고 화가 쏟아지는 그런 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개인사 그런 것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는데 교인들이 목사에게 은밀한 걸 말하는데 목사가 퍼뜨리면 그 교회는 끝나는 겁니다. 알아야 정상이고 입을 닫고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참 깊은 비밀을 말하는 관계가 될려면 깊은 비밀을 말 못하면 그 관계는 잘못된 거지요. 아내가 남편할테 못할 말도 될 수 있습니다. 그거 잘못처리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환경,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안했는데 애매한 누명쓴 말이 빙빙 돌아갑니다. 영향을 받습니다. 별별 환경에 세대라는 것은 다 포함되는 겁니다. 흐름 시대의 분위기 관들 전부 다 강아지 끌고 가는 거라서 그리 되는데 그런데 따라가면 안내는 겁니다.
마음을 세롭게 오늘보다 내일이 새롭게 깨끗하게 수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하고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크게 말하면 첫 번째 세 가지 두 번째 세 가지 세 번째 세 가지 아홉가지가 되야겠죠. 구약의 세 가지 신약의 세 가지니 같은 것이고 자기를 돌아보고 사랑의 심정 구원의 심정 목적으로 자유성을 생각하는 걸 하고 산 제사로 바치는 생활 나를 바쳐 드리는 겁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그게 속제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복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이 생활 할려면 하나님 뜻인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하고 새롭게 되어야하고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아홉 가지 기억하십시다.
찬송: 19장, 47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말씀을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는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이어지게 하는 것이고 형제들아 내가 주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정하면서 형제들아 내가 하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바울이 하는 말인데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말씀을 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내가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주권도 믿었고 경험했고 많이 체험했고 그 다음에 나오는 자비하심도 바울이 많이 겪었고 산 제사로 드렸고.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그 말씀을 자기가 깨닫고 하는 것이었고 그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까지 된 상태에서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복음을 전할 때는 개인적으로 전하던지 설교하던지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칠 때 반사 선생님들이 심방가서 가르칠 때 예배당에서 공부를 하고 설교를 할 때. 우리 남학생들이 마치고 돌아가면서 복습을 하는데 그것도 해당이 됩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가지는 게 먼저입니다. 금이란 말은 찌른다는 말이고 도려낸다는 겁니다. 찔러서 쪼개고 나쁜 것을 도려내는, 수술하는 칼입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게 전하면 들어가고 그 역사에서 악성 악습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정하면 일반적으로 우리 공회 안에서도 총공회 때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정통으로 졸업한 박사 목사님들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백 목사님은 그런 말씀 하실 때도 있지만 거의 우리라고 합니다. 우리라 그럴 때는 말씀을 전하는 자신과 전부 합해서 우리입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세는 우리가 되는 게 좋은겁니다. 말씀 자체를 두고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듣는 모두도 그런데 먼저 이 말씀을 갖다 댈 것은 다른 사람보다 설교자보다 설교할 때 자기를 이 말씀으로 갖다대야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꾸 살지못한 걸 회개하고 좋기는 살아서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가는 게 성공적입니다. 먼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합니다. 먼저 돌아보고, 그리고 난 다음에 전합니다. 복음으로 전할 때. 그러므로 형제들아 바울이 정합니다. 경험을 했습니다. 행해봤습니다. 주권의 하나님을 받고 산 제사로 받습니다. 바울은 세대를 초월했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뜻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시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심으로 말입니다. 자 가 사랑할 자자일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한다. 말씀을 권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서 정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다, 사람을 어떻게 담을까. 사랑의 정의를 무엇을 사랑으로 배우고 있습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입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입니까. 구원입니다. 그 가운데 들어가면 구원인데 무엇이 구원이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소이 구원입니다. 대속 없는 구원은 없는 거지요. 사랑은 다른 말로 하면 대속이고 대속은 곧 구원입니다.
자비하심으로 권한다는 말은 사랑의 목적으로 이 말씀을 정함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동기 그런 심정으로 말씀을 정해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 말씀 구원이고 사랑의 심정으로 정해야하는 겁니다. 그럴 때 꾸중으로 할 수도 있고 책망할 수도 있고 아주 분한 것처럼 그렇게 할 수도 있는데 좋게 말하든 책망으로 말하든 하나님 말씀 정할 때는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구원의 목적으로 해야하지 다른 것이 들어있으면 말씀을 악용하는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서 뽑아내면 예수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뽑아서 연결시키면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이렇게 말이 됩니다.
한 권 성경으로 천주교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신천지가 나오고 안식교가 나오고 갈라지겠습니까. 정통 교회 안에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정확한 게 있고 덜 바른 게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난 것일까. 신학교. 말하자면 스승들 사람들의 성경 깨달음에서 나온 건데 어디서 나눠지게 되는가 하나님께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주님 대속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랑인데 그럴 수 있는데 사랑의 심정이라는 게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것을 말씀을 행정적으로 적용시킬 때 해당된다 볼 수 있겠습니다. 교훈과 행정이 그렇게 걸어가는 게 교회입니다. 교훈과 행정, 행정은 일반적으로 정치라 그러는데 정치는 신앙세계에 불편한 말입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게 정치인데 교회에서 목사가 정치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교회 행정 정치는 교훈이 앞서가고 뒷받침이 되고 그럴 때 바른 교회가 되어집니다. 교훈을 따라가야하는데 어느 교회든 교파든 개인이든 교훈을 뒤로하고 행정을 앞세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왕정시대 때는 선지자입니다. 행정맡은 사람은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존중히 여기면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를 우습게 알면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말씀을 전할 때는 자기를 먼저 돌아오고 살피고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전하는데 이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 같이 우리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노력합시다.
사랑의 심정으로 구원의 심정으로 신앙 살리고 믿음을 살려서 건져서 힘을 줘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그 심정은 전해야하지 이 사랑의 심정이 뜨거운만큼 과거 저는 몇 번 말씀 드렸는데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하던 사람이 일반 교단의 말도 듣습니다. 듣기를 서부교회는 사랑이 없다 그런 말을 듣습니다. 서부교회는 일 년에 한 번 인사 정도할 거고 성탄절되면 떡국 끓여서 대접하는 게 전부입니다. 노숙자들 서부교회에 얻으러오면 백원짜리 하나 중입니다. 그러면 들고가는 사람도 있고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세상적으로 돕는 게 없다 보니까 그렇게 사랑이 없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혼을 냅니다. 매 주일마다 선생들이 다 사비 털어서 가르치는 그게 사랑이 아니고 뭐야. 말씀을 듣고 구원을 이루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세상 주는 것은 하늘의 구원을 위해서 사탕발림으로 주는 거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정해주고 예수님의 대속을 정해주고 사탕도 줄 수 있고 빵도 밥도 사줄수 있고 그렇지만은 세상 자체가 문제가 되면 교회가 할 일은 아닌 겁니다. 세상이 훨씬 더 잘 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사랑을 좀 만들어봐야겠는데 그렇게 자기가 먼저 되어야한다는 거지요. 너희를 권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정할 때 권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자유성을 생각하는겁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하나님이 감동시켜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내가 같은 말씀을 전해도 자기를 얼마나 말씀으로 살폈느냐 뜨거운 사람으로 가졌느냐 이걸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들을 때 좀 백 목사님 같은 분처럼 능력있는 그런 분들은 강단에서 마구 외쳐대도 백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따라 읽으면서 잡놈, 그렇게까지 하십니다. 능력있으니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말을 하실 때는 속은 조심스럽게 사람이 감동받을 수 있도록 그게 좋겠지요. 그게 전부 다는 아닙니다. 상대방의 자유성 의지를 생각하면서 자유 의지라는 말은 자체적으로 그런 말이고 실제로 적용되는 것은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야합니다. 이러면 말씀이 말씀이니까 전하지만은 어려서 못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일을 못 지키는 어린 신앙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린 것은 나쁜겁니까. 나쁜 게 아닙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 어려야하지만은 어릴 때는 순전합니다. 깨끗합니다. 때가 덜 묻었습니다. 미혹을 잘 받습니다. 잘 꼬이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있는 그런 거 각자 다 생각하면서 그렇습니다. 내가 말씀을 정하는데 이 말씀은 상대방은 입장이 어떨까 그거를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가서 인사한다고 심방되는 게 아닌 거지요. 그 과정에 필요한 게 뭔지를 생각을 하고 기도하고 조심스럽게 전하는 겁니다. 그게 권면입니다. 앞의 두 가지가 따라가고 가야합니다.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구원의 동기 구원의 심정으로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며 권하노니 너희 몸을 영적예배라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제목에 받쳐사는 게 드리는 겁니다. 산 제사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산 제사로 드려라. 구약의 제사는 제사입니다. 제사의 내용을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지요. 양을 잡아 짐승을 잡아 드리는 게 제사입니다. 겉모습은 바쳐 드리는 겁니다. 내게 있는 소와 양과 염소를 잡아다가 제사로 드립니다. 내가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내가 드림으로 내가 얻는 건 뭐가 있습니까. 제사를 드리므로 그들은 속죄를 받는 겁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짐승 제사를 드리므로 속죄를 받습니다. 속하는 거고 죄가 없어지고 가면 깨끗하게 됩니다. 가까워서 연결이 됩니다. 죄가 없어지고 그리되면 복을 주십니다. 이게 제사의 내용이고 목적입니다. 이게 구약시대 성도들의 건설구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를 같이 드려도 레위 지파를 불러다가 아론 앞에 서서 시중하게 하고 회중의 직무를 하게하라. 제사를 드릴 때 동참하는 것이고 그것은 각자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겁니다. 자기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잡아도 그 속에 주님 대속으로 한 것이 아니면 그런 것이지요. 짐승만 잡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제사를 잘 드렸으면 짐승을 잡으면서 짐승이 사람의 것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사람 죄를 대신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표시라는 것은 알맹이가 중요한거지요.
이 짐승이 나 대신에 죽는 거다. 성경으로 말하면 오실 주님을 대신하는 것이고 이걸 깨닫고 자기를 잡는 그 심정으로 잡는 사람들은 건설구원이 되었을 것이고 안 그러면 짐승만 잡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거지요. 너희 몸을 영적 예배로 드려라. 그게 영적 예배다. 구약에는 짐승 잡은 제사. 산 제사. 나를 잡아서 뭘 잡는 거라고 했습니까. 너희 몸을 산 제사라 그랬으니까 나를 잡는 건 현실은 잡아가면서 많이 말씀을 드렸지요. 이런 것 중에서 죄되는 거 불의되는 거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 이런 말 이런 행동 이런 시청각 이런 모든 언행심사 살펴서 잡는 게 산 제사가 되는 것이고 영적 예배다. 잡을 자기로 잡는 영적 예배 생활은 구약으로 말하면 짐승으로 말해서 바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가 되는 산 생활을 하면 나를 잡아서 바쳐드리면 되는 겁니다. 산 제사 생활이 되면 두 번째 어찌됩니까. 속죄가 되는 겁니다. 재속 입은 생활이 되는 겁니다.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내 심신의 활동을 통해서 말씀에 맞게 생활하면 영적예배인데 이 생활을 하면 제사 생활임으로 대속입은 생활이 되는 겁니다. 죄 없는 것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죄는 잡았으니까. 죽였으니까. 된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변수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거의 뭐 필연성으로 죄가 없으면 깨끗하면 복은 오면 기도 안하면 됩니다. 백 목사님 초기에 이걸 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그분이 창조주인데 주권자인데 그분이 다 보고 계시는데 뭐 어떻게 기도를 왜합니다. 얼굴이 기도를 못하겠답니다. 자신과 가정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다 알고 계십니다.
집에서 아이가 아프면 엄마아빠가 모릅니까. 아이가 나 아파요 말 안해도 말 못한 아이는 증상이 뭐지요 애기 엄마들. 애기 아프면 뭐가 표나나요. 일단 조용합니다 아이들이. 조용합니다. 까불던 아이들이 까불지 않습니다. 비실비실합니다. 말도 잘 안하고 아픈 겁니다. 그렇게 잘 먹던 아이가 안 먹습니다. 엄마가 보니까 비실비실합니다. 알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형편 다 아십니다. 그런데 내게 죄가 있으면 죄를 회개해야기 때문에 여러 어려운 고난을 던져놓습니다. 그런데 죄가 없습니다. 복은 알아서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상 것 위한 기도들은 안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지. 현실을 살아가면서 나의 심신의 활동에서 어긋나는 죄되는 거 뻔히 아는 이걸 고쳐서 살아가면 이렇게 산 생활이 되고 대속 입은 사람의 생활이 되고 사죄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복은 저절로 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바로 살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게 물질복 위에 그 다음에 지능의 복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지능이 나옵니다. 그 지능이 나오면 권위가 나옵니다. 권위가 나오면 영광 대우라는 것은 따라오는 것이지요. 산제사 순서가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부모자녀사이에 사람 관계에서 각자 자기 처소에서 심신으로 수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밖에서 미혹받아서 말씀에 어긋나게 되었으면 영적 예배생활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적으로 된 겁니다. 제사 생활은 하나님 목적이고 알맹입니다. 그래서 이 생활 위해서 이렇게 살아라고 한 것처럼 인생을 주셨고 세월을 주셨고 가정을 주셨고 환경을 주셨고 이 세상 살아갈 때 이렇게 산 제사 생활하지 아니하고 살아봐야 헛일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이것이 뭐냐.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게 바로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인데 이 뜻을 찾아 이 뜻대로 살려면 세 가지를 또 해야합니다.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환경을 따라가지 말아라. 환경에 영향받지 말고 피동되지 말고 참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쥐어박습니다. 환경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말이 돌기를 이런 짓을 했다거라, 억울한 소리가 돕니다. 특히 여반들 입을 조심해야합니다. 남의 말은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남의 개인사 가정사, 씹어먹는다고 말하지요. 하나님 앞에 복을 다 빼앗기는 것이고 화가 쏟아지는 그런 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개인사 그런 것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는데 교인들이 목사에게 은밀한 걸 말하는데 목사가 퍼뜨리면 그 교회는 끝나는 겁니다. 알아야 정상이고 입을 닫고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참 깊은 비밀을 말하는 관계가 될려면 깊은 비밀을 말 못하면 그 관계는 잘못된 거지요. 아내가 남편할테 못할 말도 될 수 있습니다. 그거 잘못처리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환경,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안했는데 애매한 누명쓴 말이 빙빙 돌아갑니다. 영향을 받습니다. 별별 환경에 세대라는 것은 다 포함되는 겁니다. 흐름 시대의 분위기 관들 전부 다 강아지 끌고 가는 거라서 그리 되는데 그런데 따라가면 안내는 겁니다.
마음을 세롭게 오늘보다 내일이 새롭게 깨끗하게 수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하고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크게 말하면 첫 번째 세 가지 두 번째 세 가지 세 번째 세 가지 아홉가지가 되야겠죠. 구약의 세 가지 신약의 세 가지니 같은 것이고 자기를 돌아보고 사랑의 심정 구원의 심정 목적으로 자유성을 생각하는 걸 하고 산 제사로 바치는 생활 나를 바쳐 드리는 겁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그게 속제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복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이 생활 할려면 하나님 뜻인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하고 새롭게 되어야하고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아홉 가지 기억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