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6일 금밤
김동민2025-06-06조회 61추천 11
2025년 6월 6일 금밤
찬송: 18장, 47장
본문: 요한계시록 2장 4절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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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말씀을 계속해서 복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요일 밤까지 재독을 했고 네 단계까지 나갔지요. 사람의 생애도 그렇고 인생 자체도 그러하고 일도 그렇고 뭐든지 처음과 중간 과정과 결과가 있는데 처음은 뭐든지 다 새롭고 또 세상 말로 희망이 부풀어있고 힘이 있게 출발하는 게 출발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막 태어나면 약하지만 자라면 힘이 넘쳐서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피곤하지 많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나부대는 거지요. 통통통 튀어다니는 게 아이들입니다.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 호기심도 있고 열심도 있고 소망도 있고 배운 것도 있고 다 있습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면 가게를 깨끗하게 쓸고 닦고 애를 씁니다. 처음 회사를 출발하면은 같은 원리로 그렇게 희망 가운데 그렇게 힘 입게 됩니다. 모든 시작은 다 힘이 넘치고 기대가 있고 잘하려고 하고 그러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신앙의 첫 출발은 믿는 사람이 중생이 되고 신앙생활의 출발은 힘있게 나갑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부모님따라 교회를 다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젖어드는 아이들은 첫 신앙되지를 못한 겁니다. 생활 속에 신앙이 되는 겁니다. 나이가 빠르면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말씀을 깨닫게 되고 신앙 생활이 자기 신앙생활이 되고 출발이 비로소 되는 겁니다. 굉장히 힘있고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집회 말씀을 계속해서 복습을 하다보니까 1년에 계속 반복이 되는 건데 가면은 은혜가 되고 은혜로 받고 집회 첫 시간과 둘째시간, 셋째시간까지는 아주 처음이고 다섯째 여섯째부터는 중간이 되고 여덟 번째 수요일 오후 즈음되면 마지막이 되고 갈 준비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배를 임하는 자세도 그렇습니다. 은혜 받다가 참석하는 자체가 계속 되다 보니까 11번에서 5번 하다 보니까 가라앉습니다.
은혜가 가라앉는 게 아니고 집회 참석하는 자세가 가라앉는거지요. 계속하다 보니까 그 중에 집회 때 말씀 재독을 하고 주일과 밤예배 계속하고 그러다보니까 말씀이 예사롭기 쉽고 일반적이기 쉽다 이거지요. 그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 자신이 사람이 만들어져가는 배운대로 가는 하나님 백성대로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데 또 다른 말씀으로 발전되어서 지켜내자 이 복음을 그리 하고 있는데 같은 방향으로 나가다 보니가 차를 운전해갈 때 긴장이 되고 조심이 되어서 잠이 안 옵니다. 위험한 구간을 가면 졸음이 가버리는데 일직선을 가다보면 잠이 오는 거지요.
오늘 밤에는 근본이고 원동이 되어야하는 것을 연습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휴게소에서는 쉬어가는데 이 말씀이 집회와도 연결되어지고 신앙 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되게 되어지는 겁니다. 에베소서에 일곱 교회에 신약시대에 교회를 표시하는 겁니다. 일곱교회의 모습들이 신약시대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이 한 교회에도 다 있을 수 있고 하나만 있을 수도 있고 섞여 있을 수도 있고. 단체도 교회지만 가정도 교회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에베소 교회의 장점 단점이 섞여있을 수도 있고 개인교회에도 그런 겁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도 교회고 가정도 교회고 나 개인도 교회다. 그걸 연결시켜봐야하고 사람이라던지 집 하나 말할 때는 한 사람 두 사람인데 심신의 수 많은 요소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옛날에는 그런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전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뭔가를 반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 같은데 사람은 전인입니다. 온전한 하나지요. 여러 요소가 있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인데 온전한 하나인데 한 인격인데 한 인격이므로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 변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 속에는 두 사람이 있어서 많이 말씀해 놨습니다.
내 속에 나 아닌 내가 있다. 이걸 부인하면 성경을 부인하면 잘못하면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내 아닌 내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잘은 몰라도 신학의 맹점이라는 것이 성경을 중점하지 않고 원본 가지고 하나, 계속 만들든지 그러면 되는데 사본을 원본을 삼고 세 번째 사본 원본 삼고 이리 나가면 몇 번 나가면 엉뚱한게 되는 겁니다. 신학의 맹정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교회고 나라는 그 말은 교회, 무슨 뜻이지요. 모인다는 뜻입니다. 단수입니까 복수입니까. 개인 교회는 개인이지만 회라는 말 안에 하나가 아닙니다. 건설구원 교리를 깨닫지못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기능구원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한 겁니다.
내 속에도 가정 속에도 그 안에도 장단점이 다 있다고 봐야합니다. 첫 번째 교회입니다. 순서적으로 주요성의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면을 순서적으로 기록했다고 그렇다면 일곱 교회는 신약시대를 전부 다 나타나는 표시하는 건데 그 중 첫 번째가 에배소 교회니까 교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겁니다. 교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게 뭔가, 일곱 교회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교회와 관련된 모습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 주님이 가실 때 나타나신 모습이 달랐습니다. 그 주님과 서머나 교회 나타나신 주님과 버가모 교회 나타나신 주님과 다 다르게 나타나셨는데 에베소 교회는 뭘로 나타나셨는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의 사자를 말합니다. 내가 본 적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촛대라. 일곱 교회의 사자. 종들입니다. 촛대가 교회입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교회는 하나님의 직접 종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 교회라고 하지요.
참된 종은 우리 교회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잘 구별해야하는데 참된 교회라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그 종을 직접 붙드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걸 반대하면 하나님을 반대하게 되고 그 성경해석가지고 가짜 목사들이 악용을 많이 하니까 원리는 그런 겁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그 사이에 가라사대 2장 1절의 해석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교회를 관리하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가라사대 지금 에베소 교회입니다. 행위와 수고와 세 번째 인내를 알고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하는 것과 자칭 사도를 시험하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참은 거, 주님위해 견딘 거, 게으르지 아니한 거. 장점 역사가 에베소 교회에 있습니다. 여기 일들은 교회가 마땅히 할 일들입니다.
에베소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행위니까 안다 그러셨으니까 책망하지 않으셨으니까 어떤 행위인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으나 주를 위한 수고입니다. 거기에는 인간 수고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수고와 인내 참고 견디는 겁니다.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하는 것. 주님 이름위해서 견딘 것도 중요합니다. 게으르지 않은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신앙 생활과 과정과 이거 하나하나가 필요하고 중요한 일들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 주를 위해서 직접으로 간접으로 수고하는 것. 자기 신앙 생활을 잘 지키는 것은 어디 위치입니까. 하나님의 백서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자기 신앙 생활을 지키는 겁니다. 자라서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돕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레위인입니다. 거기서 더 자라가지고 책임지면은 이건 뭡니까. 제사장입니다. 더 자라서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직접 대면하는 것을 보면 아론처럼 대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행위가 있고 믿는 사람의 행위가 잘못되면 그리 되는 겁니다. 수고, 누군가 주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운영이 됩니다. 인내, 참고 견디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인내 없는 성공은 당연한 겁니다. 악한 자들은 안되는 거고 그건 자들 다 뽑아내야하고 주를 위해서 견딘 것 부지런한 것 다 중요하고 해야하는 일들입니다. 개인도 과정도 교회도 이게 다 중요한데 책망할 것이 있다. 여덟가지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여덟가지 칭찬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라고 했으니까 책망으로 이어지니까 앞에 여덟가지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나니라. 에베소 교회를 말할 때는 늘 처음 사랑을 말합니다. 처음 사람이 무엇이 처음사람일까.
결혼의 첫사랑, 요즘은 공회의 첫사랑은 있는데 바깥에는 그런 게 흔하지 않는 겁니다. 처음 결혼해야 첫사랑인데 이런 말씀 해석도 참 쉽지 않지요. 결혼의 첫사랑이라. 마냥 좋은 겁니다. 여기는 특별하게 이유가 없고 근거도 없고 배경도 없고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나니까 마냥 좋은 겁니다. 논리라던지 근거라던지 그런 거 없이 그냥 좋은 건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기 장점은 순수한겁니다. 섞임 없는 사랑입니다. 이 때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남편 눈에 아내의 단점이 안 보이고 아내 눈에 남편의 단점이 안 보이는 때, 콩깍지가 끼이는 때, 행복한 때고 순수한 때고 좋은 때입니다. 이 어릴 때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고 행복한 겁니다.
사람이 지식을 가지고 자라가면 자라가자, 이번주 공과입니까. 자라가야하는데 자라가야하는 것이 첫 자세, 첫사랑 같은 그 자세를 변치않고 자라가면 그 자람이 굉장히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그럴까요. 100에 999는 순수한 장점이 변질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세상도 그렇고 성경의 위대한 실패가 여기서 다 되는 겁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가다가 자라고 난 다음에 변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일반 백성이었다가 왕이 되면 달라집니다. 보는 게 다르고 다 다른 겁니다. 자라면서 왕 되기 전에 순수하고 겸손했던 걸 잊어버렸습니다. 변질이 되어버렸고 왕이 되었으니까 커졌고 많아졌고 대단해졌는데 장점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자랐는데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울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순수해서 안 버렸습니다. 이어지는 요셉도 그랬고 백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걸 가진겁니다.
어느 정도 되면은 우리 교회 청년들 중에서도 제가 아는대로 어느정도 되니까 자기 신앙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있을겁니다. 주님 대속은 도성인신이란 희생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들어도 몰랐는데 듣고 신앙생활 하다보니까 어느날 말씀이 들려지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셨다. 도성인신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 그 높으신 분이 왜 그리 되셨느냐 내 죄를 담당하시려고, 내가 죽을 영혼을 대신 지으셨다. 내가 받을 고난 받으시고 깨달아졌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는 영원한 소망 주시려고 부활하셨다. 이 교리를 들을 때 들려지고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생겨지고 감사한 마음이 생겨지고 깊이 연구에 따라서 생겨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처음 사랑입니다. 결혼의 첫사랑처럼.
시대가 변해서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은 다르니까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은혜 받고 나면 사활의 대속을 깨닫고 밤새 기도하고 폭우가 쏟아지면 다 맞고 기도합니다. 찬송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감사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거지요. 그게 바로 그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도성인신 사활의 공로 감동 되어서 이런 큰 은혜를 주셨고 영원한 소망에 붙들려서 힘이 되고 전도도 하고 죄를 이기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다보니까 그래서 목회자들도 교회를 키워야하니까 눈치봐야하고 하니까 안 오니까 오게 만들어야하고 이래하다 보니까 정작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잊어버리는 쉽다 그런 말이지요.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은 믿는 사람의 평생을 두고 원동을 되어야합니다. 이걸 빼버리고 나면 가짜가 되고 맙니다. 변질되고 맙니다. 자라되, 가지고 자라야합니다. 주님이 날 위해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구원하셨는지 기억하고 붙들고 이러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해야겠다. 그래서 주님과 관계가 밀접해지게 되는 거지요. 이게 사명감을 넘어서서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뭘하다 빼버렸는지 반사생활 열심히하다보면 빼버릴 수 있습니다. 구역식구 챙기다보면 빼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학을 공부해야하니까 자랄 수가 없는 거지요. 촛대가 바로 생명입니다. 촛대가 교회입니다. 심방을 빼버리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를 두고 가르치시기 위해서 만드시겠다 그 말인데 실제 현실적으로 교회를 보면은 촛대를 옮겨서 옮긴 것이 아니고 그게 촛대가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인데 촛대를 가진 교회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촛대가 없으니까 교회가 아닌 거지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세상의 빛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게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러기 쉬우나 그게 바로 빛입니다. 기독교는 공맹의 도가 아닙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공자 맹자으 가르침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주격되고 원동이 되고 나서 그게 계명이지 1계명과 4계명을 빼 놓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그런 겁니다. 그게 촛대입니다. 이거 빼버리면 촛대가 아닌 거겠지요.
우리 신앙생활 이거 가지고 우리 한 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8장, 47장
본문: 요한계시록 2장 4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집회 말씀을 계속해서 복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요일 밤까지 재독을 했고 네 단계까지 나갔지요. 사람의 생애도 그렇고 인생 자체도 그러하고 일도 그렇고 뭐든지 처음과 중간 과정과 결과가 있는데 처음은 뭐든지 다 새롭고 또 세상 말로 희망이 부풀어있고 힘이 있게 출발하는 게 출발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막 태어나면 약하지만 자라면 힘이 넘쳐서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피곤하지 많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나부대는 거지요. 통통통 튀어다니는 게 아이들입니다.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 호기심도 있고 열심도 있고 소망도 있고 배운 것도 있고 다 있습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면 가게를 깨끗하게 쓸고 닦고 애를 씁니다. 처음 회사를 출발하면은 같은 원리로 그렇게 희망 가운데 그렇게 힘 입게 됩니다. 모든 시작은 다 힘이 넘치고 기대가 있고 잘하려고 하고 그러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신앙의 첫 출발은 믿는 사람이 중생이 되고 신앙생활의 출발은 힘있게 나갑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부모님따라 교회를 다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젖어드는 아이들은 첫 신앙되지를 못한 겁니다. 생활 속에 신앙이 되는 겁니다. 나이가 빠르면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말씀을 깨닫게 되고 신앙 생활이 자기 신앙생활이 되고 출발이 비로소 되는 겁니다. 굉장히 힘있고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집회 말씀을 계속해서 복습을 하다보니까 1년에 계속 반복이 되는 건데 가면은 은혜가 되고 은혜로 받고 집회 첫 시간과 둘째시간, 셋째시간까지는 아주 처음이고 다섯째 여섯째부터는 중간이 되고 여덟 번째 수요일 오후 즈음되면 마지막이 되고 갈 준비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배를 임하는 자세도 그렇습니다. 은혜 받다가 참석하는 자체가 계속 되다 보니까 11번에서 5번 하다 보니까 가라앉습니다.
은혜가 가라앉는 게 아니고 집회 참석하는 자세가 가라앉는거지요. 계속하다 보니까 그 중에 집회 때 말씀 재독을 하고 주일과 밤예배 계속하고 그러다보니까 말씀이 예사롭기 쉽고 일반적이기 쉽다 이거지요. 그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 자신이 사람이 만들어져가는 배운대로 가는 하나님 백성대로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데 또 다른 말씀으로 발전되어서 지켜내자 이 복음을 그리 하고 있는데 같은 방향으로 나가다 보니가 차를 운전해갈 때 긴장이 되고 조심이 되어서 잠이 안 옵니다. 위험한 구간을 가면 졸음이 가버리는데 일직선을 가다보면 잠이 오는 거지요.
오늘 밤에는 근본이고 원동이 되어야하는 것을 연습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휴게소에서는 쉬어가는데 이 말씀이 집회와도 연결되어지고 신앙 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되게 되어지는 겁니다. 에베소서에 일곱 교회에 신약시대에 교회를 표시하는 겁니다. 일곱교회의 모습들이 신약시대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이 한 교회에도 다 있을 수 있고 하나만 있을 수도 있고 섞여 있을 수도 있고. 단체도 교회지만 가정도 교회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에베소 교회의 장점 단점이 섞여있을 수도 있고 개인교회에도 그런 겁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도 교회고 가정도 교회고 나 개인도 교회다. 그걸 연결시켜봐야하고 사람이라던지 집 하나 말할 때는 한 사람 두 사람인데 심신의 수 많은 요소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옛날에는 그런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전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뭔가를 반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 같은데 사람은 전인입니다. 온전한 하나지요. 여러 요소가 있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인데 온전한 하나인데 한 인격인데 한 인격이므로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 변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 속에는 두 사람이 있어서 많이 말씀해 놨습니다.
내 속에 나 아닌 내가 있다. 이걸 부인하면 성경을 부인하면 잘못하면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내 아닌 내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잘은 몰라도 신학의 맹점이라는 것이 성경을 중점하지 않고 원본 가지고 하나, 계속 만들든지 그러면 되는데 사본을 원본을 삼고 세 번째 사본 원본 삼고 이리 나가면 몇 번 나가면 엉뚱한게 되는 겁니다. 신학의 맹정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교회고 나라는 그 말은 교회, 무슨 뜻이지요. 모인다는 뜻입니다. 단수입니까 복수입니까. 개인 교회는 개인이지만 회라는 말 안에 하나가 아닙니다. 건설구원 교리를 깨닫지못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기능구원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한 겁니다.
내 속에도 가정 속에도 그 안에도 장단점이 다 있다고 봐야합니다. 첫 번째 교회입니다. 순서적으로 주요성의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면을 순서적으로 기록했다고 그렇다면 일곱 교회는 신약시대를 전부 다 나타나는 표시하는 건데 그 중 첫 번째가 에배소 교회니까 교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겁니다. 교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게 뭔가, 일곱 교회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교회와 관련된 모습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 주님이 가실 때 나타나신 모습이 달랐습니다. 그 주님과 서머나 교회 나타나신 주님과 버가모 교회 나타나신 주님과 다 다르게 나타나셨는데 에베소 교회는 뭘로 나타나셨는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의 사자를 말합니다. 내가 본 적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촛대라. 일곱 교회의 사자. 종들입니다. 촛대가 교회입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교회는 하나님의 직접 종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 교회라고 하지요.
참된 종은 우리 교회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잘 구별해야하는데 참된 교회라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그 종을 직접 붙드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걸 반대하면 하나님을 반대하게 되고 그 성경해석가지고 가짜 목사들이 악용을 많이 하니까 원리는 그런 겁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그 사이에 가라사대 2장 1절의 해석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교회를 관리하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가라사대 지금 에베소 교회입니다. 행위와 수고와 세 번째 인내를 알고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하는 것과 자칭 사도를 시험하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참은 거, 주님위해 견딘 거, 게으르지 아니한 거. 장점 역사가 에베소 교회에 있습니다. 여기 일들은 교회가 마땅히 할 일들입니다.
에베소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행위니까 안다 그러셨으니까 책망하지 않으셨으니까 어떤 행위인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으나 주를 위한 수고입니다. 거기에는 인간 수고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수고와 인내 참고 견디는 겁니다.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하는 것. 주님 이름위해서 견딘 것도 중요합니다. 게으르지 않은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신앙 생활과 과정과 이거 하나하나가 필요하고 중요한 일들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 주를 위해서 직접으로 간접으로 수고하는 것. 자기 신앙 생활을 잘 지키는 것은 어디 위치입니까. 하나님의 백서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자기 신앙 생활을 지키는 겁니다. 자라서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돕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레위인입니다. 거기서 더 자라가지고 책임지면은 이건 뭡니까. 제사장입니다. 더 자라서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직접 대면하는 것을 보면 아론처럼 대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행위가 있고 믿는 사람의 행위가 잘못되면 그리 되는 겁니다. 수고, 누군가 주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운영이 됩니다. 인내, 참고 견디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인내 없는 성공은 당연한 겁니다. 악한 자들은 안되는 거고 그건 자들 다 뽑아내야하고 주를 위해서 견딘 것 부지런한 것 다 중요하고 해야하는 일들입니다. 개인도 과정도 교회도 이게 다 중요한데 책망할 것이 있다. 여덟가지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여덟가지 칭찬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라고 했으니까 책망으로 이어지니까 앞에 여덟가지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나니라. 에베소 교회를 말할 때는 늘 처음 사랑을 말합니다. 처음 사람이 무엇이 처음사람일까.
결혼의 첫사랑, 요즘은 공회의 첫사랑은 있는데 바깥에는 그런 게 흔하지 않는 겁니다. 처음 결혼해야 첫사랑인데 이런 말씀 해석도 참 쉽지 않지요. 결혼의 첫사랑이라. 마냥 좋은 겁니다. 여기는 특별하게 이유가 없고 근거도 없고 배경도 없고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나니까 마냥 좋은 겁니다. 논리라던지 근거라던지 그런 거 없이 그냥 좋은 건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기 장점은 순수한겁니다. 섞임 없는 사랑입니다. 이 때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남편 눈에 아내의 단점이 안 보이고 아내 눈에 남편의 단점이 안 보이는 때, 콩깍지가 끼이는 때, 행복한 때고 순수한 때고 좋은 때입니다. 이 어릴 때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고 행복한 겁니다.
사람이 지식을 가지고 자라가면 자라가자, 이번주 공과입니까. 자라가야하는데 자라가야하는 것이 첫 자세, 첫사랑 같은 그 자세를 변치않고 자라가면 그 자람이 굉장히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그럴까요. 100에 999는 순수한 장점이 변질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세상도 그렇고 성경의 위대한 실패가 여기서 다 되는 겁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가다가 자라고 난 다음에 변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일반 백성이었다가 왕이 되면 달라집니다. 보는 게 다르고 다 다른 겁니다. 자라면서 왕 되기 전에 순수하고 겸손했던 걸 잊어버렸습니다. 변질이 되어버렸고 왕이 되었으니까 커졌고 많아졌고 대단해졌는데 장점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자랐는데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울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순수해서 안 버렸습니다. 이어지는 요셉도 그랬고 백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걸 가진겁니다.
어느 정도 되면은 우리 교회 청년들 중에서도 제가 아는대로 어느정도 되니까 자기 신앙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있을겁니다. 주님 대속은 도성인신이란 희생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들어도 몰랐는데 듣고 신앙생활 하다보니까 어느날 말씀이 들려지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셨다. 도성인신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 그 높으신 분이 왜 그리 되셨느냐 내 죄를 담당하시려고, 내가 죽을 영혼을 대신 지으셨다. 내가 받을 고난 받으시고 깨달아졌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는 영원한 소망 주시려고 부활하셨다. 이 교리를 들을 때 들려지고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생겨지고 감사한 마음이 생겨지고 깊이 연구에 따라서 생겨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처음 사랑입니다. 결혼의 첫사랑처럼.
시대가 변해서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은 다르니까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은혜 받고 나면 사활의 대속을 깨닫고 밤새 기도하고 폭우가 쏟아지면 다 맞고 기도합니다. 찬송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감사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거지요. 그게 바로 그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도성인신 사활의 공로 감동 되어서 이런 큰 은혜를 주셨고 영원한 소망에 붙들려서 힘이 되고 전도도 하고 죄를 이기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다보니까 그래서 목회자들도 교회를 키워야하니까 눈치봐야하고 하니까 안 오니까 오게 만들어야하고 이래하다 보니까 정작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잊어버리는 쉽다 그런 말이지요.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은 믿는 사람의 평생을 두고 원동을 되어야합니다. 이걸 빼버리고 나면 가짜가 되고 맙니다. 변질되고 맙니다. 자라되, 가지고 자라야합니다. 주님이 날 위해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구원하셨는지 기억하고 붙들고 이러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해야겠다. 그래서 주님과 관계가 밀접해지게 되는 거지요. 이게 사명감을 넘어서서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뭘하다 빼버렸는지 반사생활 열심히하다보면 빼버릴 수 있습니다. 구역식구 챙기다보면 빼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학을 공부해야하니까 자랄 수가 없는 거지요. 촛대가 바로 생명입니다. 촛대가 교회입니다. 심방을 빼버리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를 두고 가르치시기 위해서 만드시겠다 그 말인데 실제 현실적으로 교회를 보면은 촛대를 옮겨서 옮긴 것이 아니고 그게 촛대가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인데 촛대를 가진 교회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촛대가 없으니까 교회가 아닌 거지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세상의 빛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게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러기 쉬우나 그게 바로 빛입니다. 기독교는 공맹의 도가 아닙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공자 맹자으 가르침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주격되고 원동이 되고 나서 그게 계명이지 1계명과 4계명을 빼 놓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그런 겁니다. 그게 촛대입니다. 이거 빼버리면 촛대가 아닌 거겠지요.
우리 신앙생활 이거 가지고 우리 한 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