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4일 수밤
김동민2025-06-04조회 80추천 8
2025년 6월 4일 수밤
찬송: 7장, 16장
본문: 민수기 3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발전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향상한다 올라가는 겁니다. 나무토막은 자라지 않습니다. 돌멩이도 자라지 않습니다. 죽은 것은 성장이 없습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생명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사업이 커지는 것도 자라는 겁니다. 생명이 있지만은 생명가진 사람이 가다가 활동을 하니까 범위가 넓어지니까 점점 사업이 커지고 발전되고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생명이 있고 생명가진 존재와 생명 가진 존재 활동이 있으면 자라게 되는겁니다. 생명 활동의 성장은 필연이고 자연스러운겁니다. 인위적이 되는 건데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 뜻이고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곳은 말하자면은 강제가 되는 겁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공적인 것은 뭔가 억지로 강제로 집어넣어서 해야하고 인공적입니다. 생명의 자람이라는 것은 자연인데 필연인데 자연의 반대는 인위적인 것이고 인공적인 것인데 이것은 억지다. 자연의 반대는 억지가 됩니다. 자라지 못하는 곳은 정상이지 않다. 자라는 곳은 정상이고 정상의 반대는 이상한겁니다. 생명이 태어나면 세월 속에 생명이 자라가야하는 조건에 자라가면 정상이고 필연적인 것입니다. 태어났는데 생명이 자라지 않으면 뭔가 생긴것이고 잘못된 겁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활동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공부 자체는 생명있는 게 아닙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생명가진 학생이면 생명가진 존재니까 학습이 자라가야합니다. 언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지식이 자꾸 많아지고 커지고 깊어지고 커지고 높아지면서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학교 1학년가도 어머니 아버지도 못 읽고 중학생 되어도 못읽고 그러면 안됩니다. 존재 활동의 결과도 필연적이고 그 말은 자연적이다 그 말입니다. 자라가지 않는 생명은 도태가 되게 됩니다. 점점 없어져간다는 뜻입니다. 나무는 흙이 있어야 자랍니다. 나무가 자랄 만큼 풍성해야합니다. 흙이 모자랍니다. 나무가 흙을 먹고 자라다가 뿌리가 뻗어나가다가 느티나무처럼 땅속에 단단해서 돌처럼 단단하니까 뻗어나가지 못하니까 비실비실한 겁니다. 화분에다가 큰 나무를 심어놓으면 자랄만큼 자라면 뻗어나갈 곳이 없으면 마지막에 말라 죽어버립니다. 생명은 도태되는 겁니다. 자라가야 할 생명이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이 생명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요.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생명이니까 넓게 말하면 죄 아래 있는 세상은 살아있으되 사망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삽니다. 사는 게 살아있는 것인가요. 그래서 마지막에 사는 것은 다 죽는 겁니다. 세상을 떠나면 죽는 겁니다. 그게 이 세상에 있는 저주입니다. 저주 아래에 있어도 사는 것도 사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한시적인 생명가지고 학습도 자라고 인격도 자라고 그래봐야 전부 안에 있는 겁니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는 살아있습니다. 말하자면 어장 안에 있는 바다의 어장을 쳐놓고 넓은 바다인데 어부들이 거기에 고기 수십만마리 키웁니다. 그 안에 있는 언제든지 마음만 하면 삶아먹고 볶아먹고 그럽니다. 살았는데 죽은 겁니다. 어장 안에 있는 고기는 언제든지 죽은 목숨입니다. 인간의 죄 아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은 신앙의 생명이라는 말은 어떤 겁니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아래 있는 겁니다.
때가 오래이므로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할 터인데 저희가 이 말씀을 20년 전에 되었을 거 같은데 15년 넘을 때 이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안 자라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자라도록 뭔가 아무리 땅이 옥토고 비옥하고 거름주고 다해도 나무가 안 자라면 애가 타는겁니다. 먹어야 살고 먹어야 자라기 때무넹 그런겁니다. 먹어야할 생명이 안 자라면 애가 타는 겁니다. 신앙은 생명이라 자라는 게 정상인데 노력을 해야지 자라지 그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제목이 자라가자 제사장으로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믿은지 6개월이면 학습받고 세례 받고 이게 원칙이었습니다. 물론 어른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결혼한 분들.
원래 믿은지 6개월이면 학습받을 수 있고 학습받은지 6개월이면 세례 받을 수 있고. 그런데 학습도 못 받고 세례도 못받고. 하늘나라 가보면 모를 비밀들이 많을 것이고 기절초풍할 것이 많을겁니다. 각자 그러지 않겠습니까. 생명은 자라가는 게 필연입니다. 자라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여름에 씨앗뿌리는 건 잘 없습니다. 가을에는 겨울에는 뿌려봐야 안 됩니다. 봄에는 자랍니다. 잎사귀 나고 자라서 가을 햇빛에 추수하고 그런건데 20살까지는 자라는 데입니다. 평생을 두고 잘못 영양이 부족하면 평생에 힘듦을 겪습니다. 어릴 때는 잘 챙겨야하고 잘 먹여야합니다. 20살에는 중단이 그러고 생명 육의 생명도 다른 면도 자라는 게 있습니다. 고차원적인 것 공부에는 끝이 없다. 60이 되어도 배울 수 있습니다. 70에도 80에도 90에도 하면 되지요. 그런데 70되어서 하는 거하고 30되어서 하는 것은 다릅니다. 20대와 60대는 다릅니다. 10대와 40대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라는 시기가 있는 건데. 자랄 때 자라지 못하면 많은 지장이 생기고 못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라던지 자라면 늦게라도 자라면 자라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지장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시작이라는 것은 자라가는 게 좋습니다. 회개만 기회가 있는게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가 자랄 기회고 그걸 좀 더 댕기면 젊을 때가 신앙이 자랄 때고 조금이라도 더 해야합니다. 나이들기 전에 성경 많이 읽어두는 게 참 좋은 겁니다. 성경은 신앙의 법칙입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우리 신앙은 성경이 법입니다. 성경이 가라는데까지 가고 하라는 데까지 하고 칼빈이 그리 가르쳤다고 하지요. 신앙의 법이고 교과서고, 신학 서적 다 읽어봐야 저는 신학을 안하는 사람인데 한번씩 참고하려고 보면 제가 봐도 소고기 한 줌을 놓고 물을 얼마나 넣어야겠습니까. 2리터, 3~4리터 될련가요. 그러면 국이 맛있게 될련가요. 그런데 거기다 물을 몇 드럼통 넣습니다. 쓸데없는 거 다 집어넣어서 그거 다 한다고 신학생들이 골머리를 앓아버리는 거지요. 체제가 과정 자체가 신앙을 몽땅 빼앗아가는 과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 그러냐. 성경을 안 읽히니까. 원어 공부한다고 성경 안 읽으니까. 그래서 신학 지식만 자랑하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되어봐야 교회는 나오지 않는 것이고. 제가 지금 뭘 강조하고 있지요. 성경을 알아야한다는 거지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 참 아들의 디모데, 그 다음 디모데후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그래서 디모데가 되었습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 벗어난 신앙은 다른 종교입니다. 그래서 자라가는 시기에 자라가야합니다. 깨달음도 자라가야하고 그래서, 시기가 있다는 겁니다. 살아생전이고 지금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아집니다. 깊어집니다. 체계적으로 바로 되어집니다. 하나님 말씀 지식이 깨달음의 교리 지식이 점점 많아집니다. 높아집니다. 시낭의 자라는 표지판입니다. 믿어갈수록 성경 지식이 자라가야합니다. 자라가는 게 정상인데 나는 자라고 있는가. 우리는 자라고 있는가. 한편으로 토끼꼬리만큼 자라는 게 되는가. 자라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점점 커지고 점점 많아지고 첫째 지식이 두 번째는 깨달음이. 실감이 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분이 점점 되어지고 천국이 점점 믿어지고 심판이 점점 두려워지고 점점 더해지는 거지요. 목표와 지점이 지나갈수록 해는 집니다. 갈길은 많이 남았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 나라가 사모되면서도 부럽고. 이게 깨달음입니다. 이거 되려면 실행에 따라가야합니다. 점점 제대로 되어지고 성화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믿어갈수록 사람은 점점 바꾸어지는 겁니다.
몇 가지 했습니까. 신앙은 자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라는 것은 시기가 있다. 시기에 자라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네 번째 표준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 우리의 표준은 주님 시장의 표준입니다. 자라갈 시장의 표준은 자기 앞에 자기로써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백 목사님은 늘 주남선 목사님은 어쩌셨을까. 백목사님께 배우다보니까 이것도 병인데 백목사님께 배우다 보니까 역사의 위대한 성자 성령은 어떤 이름이 나와도 거기에 대해서 위대하다는 이름만 있지 실감이 안납니다. 그리 생각했는데 세월 속에서 주남선 목사님의 생각을 했고 주남선 목사님 어땠을까. 그러면 답이 나오신다고. 백 목사님은 하나님을 표준으로 하지만은 주목사님을 표준으로 한 그런 것도 많습니다. 각자 자기로써 현상세계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 스승이 있으면 그분은 어떻게 했을까. 일차적으로 그 분을 표준하고 최종적으로는 주님을 표준하는 겁니다.
자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목표가 방향. 주님을 목표로 방향 바로 잡고 깨끗하게 자라가야합니다. 순수하게, 빨리 자라가야한다고 그러면 안됩니다. 두 번째는 깨끗하게 순결하게. 그리고 충성만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 자라가는데 일차적으로 자라야할 대제사장으로써 자라가야하는데 출발의 단계가 뭐냐. 그게 뭐냐. 하나님을 향하여 1대1대면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준비자세가 뭐냐. 내 자의사로. 내 의식적으로 하나님 백성이다. 자라서 이제는 내 신앙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신앙으로 생각하고 도와주는 겁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서 돕는 역할 보조적인 역할이 레위인입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밥을 먹습니다. 하루 몇 끼 먹지요. 보통 하루 몇 끼 먹습니까. 일반적인 하루 세 끼인데 말하자면은 사람은 먹어야삽니다. 안 먹으면 죽습니다. 굶은 김에 또 굶고 하루 더 굶고 3일 굶고 그렇게 일주일 지나면 죽어버립니다. 평생의 수만끼를 먹을건데 수만끼 죽에서 연달아서 20끼 정도 안 먹으면 죽어버립니다. 한 끼 식사는 생명을 이어가는 연결입니다. 작은 것인데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냉수 한 그릇을 주고도 상을 없지 않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는 자기 신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간접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에는 얼마나 능력이 큰지, 모르기 몰라도 연세 많은 분들은 온 교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얼마나 되는지. 목회자가 아닐지라도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자기 자손들에게 복으로 내려가게 될 겁니다. 내 아들과 손자를 기도하고 우리 교인을 위해서 시간해서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이 할수록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부탁하는 건데. 기도하는 것도 레위인입니다. 거기서 더 자라올라가서 단계별로 3학년이 6학년 거 보고 6학년이 3학년 거 보고 이게 레위인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의 죄를 책임을 지는 겁니다. 말하자면 목회자고 직접 내게 속하면서 나를 바쳐서 죄를 내가 사해주는 것이 아니고 제사를 근거하여 제사를 힘입어서 사는 것. 제사장이란 대속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일 바쳐서. 신약의 대속입니다. 주님의 당신 바쳐서 대속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겁니다. 죄를 위해서 기도도하고 가르치기도하고 회개하도록 의롭게 살도록 하늘의 소망으로 살도록 이런 사람을 직접 만들어가는 그 일을 한 사람을 맡았던 열 사람을 맡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반사도 직분인데 실제 내가 책임지고 간절하게 기도한 그게 제사장으로 자라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범위가 넓은 것이고 다른 것은 조금씩 좁은데 같은 성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목회나 구역자하는 한 말로 말하면 권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교회에 권찰회가 되는 게 교회 다음 교회입니다. 우리 공회 말고는 대구고 다른 곳에 권찰회에서 재직회가 다 되어간답니다. 목사, 장로, 집사만 들어가고 전도사, 권사도 빠진다던가요. 그건 바람직한게 아닙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곳이 반사입니다. 그들이 발언권이 가장 세야합니다. 제사장 역할입니다. 대제사장은 주님 피를 가지고 만나는 겁니다. 제사장 역할을 하되 주님을 닮은 되어지는 여기까지 되는 제사장 중에서 뽑습니다. 그래서 자라가고 대제사장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구약에는 한 사람이었지만은 대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대제사장이 많았습니다. 임기가 있었나보지요. 대제사장들. 오늘 밤에 두 가지로 말슴드렸습니다.
자라가는 것에 대해서 다섯 가지, 원론이랄까 생각해봤습니다. 자라가야 정상입니다. 시기가 있습니다. 모습이 있습니다, 표시가 있습니다. 앞에 있는 신앙에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반사 보조도 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말씀드렸고 제사장으로 자라가야합니다. 백성에서 레위인으로 자라가게 된다 이게 신앙생활에 정상적인 모습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자라고 있는가.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7장, 16장
본문: 민수기 3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발전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향상한다 올라가는 겁니다. 나무토막은 자라지 않습니다. 돌멩이도 자라지 않습니다. 죽은 것은 성장이 없습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생명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사업이 커지는 것도 자라는 겁니다. 생명이 있지만은 생명가진 사람이 가다가 활동을 하니까 범위가 넓어지니까 점점 사업이 커지고 발전되고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생명이 있고 생명가진 존재와 생명 가진 존재 활동이 있으면 자라게 되는겁니다. 생명 활동의 성장은 필연이고 자연스러운겁니다. 인위적이 되는 건데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 뜻이고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곳은 말하자면은 강제가 되는 겁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공적인 것은 뭔가 억지로 강제로 집어넣어서 해야하고 인공적입니다. 생명의 자람이라는 것은 자연인데 필연인데 자연의 반대는 인위적인 것이고 인공적인 것인데 이것은 억지다. 자연의 반대는 억지가 됩니다. 자라지 못하는 곳은 정상이지 않다. 자라는 곳은 정상이고 정상의 반대는 이상한겁니다. 생명이 태어나면 세월 속에 생명이 자라가야하는 조건에 자라가면 정상이고 필연적인 것입니다. 태어났는데 생명이 자라지 않으면 뭔가 생긴것이고 잘못된 겁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활동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공부 자체는 생명있는 게 아닙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생명가진 학생이면 생명가진 존재니까 학습이 자라가야합니다. 언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지식이 자꾸 많아지고 커지고 깊어지고 커지고 높아지면서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학교 1학년가도 어머니 아버지도 못 읽고 중학생 되어도 못읽고 그러면 안됩니다. 존재 활동의 결과도 필연적이고 그 말은 자연적이다 그 말입니다. 자라가지 않는 생명은 도태가 되게 됩니다. 점점 없어져간다는 뜻입니다. 나무는 흙이 있어야 자랍니다. 나무가 자랄 만큼 풍성해야합니다. 흙이 모자랍니다. 나무가 흙을 먹고 자라다가 뿌리가 뻗어나가다가 느티나무처럼 땅속에 단단해서 돌처럼 단단하니까 뻗어나가지 못하니까 비실비실한 겁니다. 화분에다가 큰 나무를 심어놓으면 자랄만큼 자라면 뻗어나갈 곳이 없으면 마지막에 말라 죽어버립니다. 생명은 도태되는 겁니다. 자라가야 할 생명이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이 생명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요.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생명이니까 넓게 말하면 죄 아래 있는 세상은 살아있으되 사망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삽니다. 사는 게 살아있는 것인가요. 그래서 마지막에 사는 것은 다 죽는 겁니다. 세상을 떠나면 죽는 겁니다. 그게 이 세상에 있는 저주입니다. 저주 아래에 있어도 사는 것도 사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한시적인 생명가지고 학습도 자라고 인격도 자라고 그래봐야 전부 안에 있는 겁니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는 살아있습니다. 말하자면 어장 안에 있는 바다의 어장을 쳐놓고 넓은 바다인데 어부들이 거기에 고기 수십만마리 키웁니다. 그 안에 있는 언제든지 마음만 하면 삶아먹고 볶아먹고 그럽니다. 살았는데 죽은 겁니다. 어장 안에 있는 고기는 언제든지 죽은 목숨입니다. 인간의 죄 아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은 신앙의 생명이라는 말은 어떤 겁니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아래 있는 겁니다.
때가 오래이므로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할 터인데 저희가 이 말씀을 20년 전에 되었을 거 같은데 15년 넘을 때 이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안 자라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자라도록 뭔가 아무리 땅이 옥토고 비옥하고 거름주고 다해도 나무가 안 자라면 애가 타는겁니다. 먹어야 살고 먹어야 자라기 때무넹 그런겁니다. 먹어야할 생명이 안 자라면 애가 타는 겁니다. 신앙은 생명이라 자라는 게 정상인데 노력을 해야지 자라지 그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제목이 자라가자 제사장으로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믿은지 6개월이면 학습받고 세례 받고 이게 원칙이었습니다. 물론 어른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결혼한 분들.
원래 믿은지 6개월이면 학습받을 수 있고 학습받은지 6개월이면 세례 받을 수 있고. 그런데 학습도 못 받고 세례도 못받고. 하늘나라 가보면 모를 비밀들이 많을 것이고 기절초풍할 것이 많을겁니다. 각자 그러지 않겠습니까. 생명은 자라가는 게 필연입니다. 자라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여름에 씨앗뿌리는 건 잘 없습니다. 가을에는 겨울에는 뿌려봐야 안 됩니다. 봄에는 자랍니다. 잎사귀 나고 자라서 가을 햇빛에 추수하고 그런건데 20살까지는 자라는 데입니다. 평생을 두고 잘못 영양이 부족하면 평생에 힘듦을 겪습니다. 어릴 때는 잘 챙겨야하고 잘 먹여야합니다. 20살에는 중단이 그러고 생명 육의 생명도 다른 면도 자라는 게 있습니다. 고차원적인 것 공부에는 끝이 없다. 60이 되어도 배울 수 있습니다. 70에도 80에도 90에도 하면 되지요. 그런데 70되어서 하는 거하고 30되어서 하는 것은 다릅니다. 20대와 60대는 다릅니다. 10대와 40대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라는 시기가 있는 건데. 자랄 때 자라지 못하면 많은 지장이 생기고 못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라던지 자라면 늦게라도 자라면 자라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지장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시작이라는 것은 자라가는 게 좋습니다. 회개만 기회가 있는게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가 자랄 기회고 그걸 좀 더 댕기면 젊을 때가 신앙이 자랄 때고 조금이라도 더 해야합니다. 나이들기 전에 성경 많이 읽어두는 게 참 좋은 겁니다. 성경은 신앙의 법칙입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우리 신앙은 성경이 법입니다. 성경이 가라는데까지 가고 하라는 데까지 하고 칼빈이 그리 가르쳤다고 하지요. 신앙의 법이고 교과서고, 신학 서적 다 읽어봐야 저는 신학을 안하는 사람인데 한번씩 참고하려고 보면 제가 봐도 소고기 한 줌을 놓고 물을 얼마나 넣어야겠습니까. 2리터, 3~4리터 될련가요. 그러면 국이 맛있게 될련가요. 그런데 거기다 물을 몇 드럼통 넣습니다. 쓸데없는 거 다 집어넣어서 그거 다 한다고 신학생들이 골머리를 앓아버리는 거지요. 체제가 과정 자체가 신앙을 몽땅 빼앗아가는 과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 그러냐. 성경을 안 읽히니까. 원어 공부한다고 성경 안 읽으니까. 그래서 신학 지식만 자랑하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되어봐야 교회는 나오지 않는 것이고. 제가 지금 뭘 강조하고 있지요. 성경을 알아야한다는 거지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 참 아들의 디모데, 그 다음 디모데후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그래서 디모데가 되었습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 벗어난 신앙은 다른 종교입니다. 그래서 자라가는 시기에 자라가야합니다. 깨달음도 자라가야하고 그래서, 시기가 있다는 겁니다. 살아생전이고 지금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아집니다. 깊어집니다. 체계적으로 바로 되어집니다. 하나님 말씀 지식이 깨달음의 교리 지식이 점점 많아집니다. 높아집니다. 시낭의 자라는 표지판입니다. 믿어갈수록 성경 지식이 자라가야합니다. 자라가는 게 정상인데 나는 자라고 있는가. 우리는 자라고 있는가. 한편으로 토끼꼬리만큼 자라는 게 되는가. 자라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점점 커지고 점점 많아지고 첫째 지식이 두 번째는 깨달음이. 실감이 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분이 점점 되어지고 천국이 점점 믿어지고 심판이 점점 두려워지고 점점 더해지는 거지요. 목표와 지점이 지나갈수록 해는 집니다. 갈길은 많이 남았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 나라가 사모되면서도 부럽고. 이게 깨달음입니다. 이거 되려면 실행에 따라가야합니다. 점점 제대로 되어지고 성화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믿어갈수록 사람은 점점 바꾸어지는 겁니다.
몇 가지 했습니까. 신앙은 자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라는 것은 시기가 있다. 시기에 자라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네 번째 표준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 우리의 표준은 주님 시장의 표준입니다. 자라갈 시장의 표준은 자기 앞에 자기로써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백 목사님은 늘 주남선 목사님은 어쩌셨을까. 백목사님께 배우다보니까 이것도 병인데 백목사님께 배우다 보니까 역사의 위대한 성자 성령은 어떤 이름이 나와도 거기에 대해서 위대하다는 이름만 있지 실감이 안납니다. 그리 생각했는데 세월 속에서 주남선 목사님의 생각을 했고 주남선 목사님 어땠을까. 그러면 답이 나오신다고. 백 목사님은 하나님을 표준으로 하지만은 주목사님을 표준으로 한 그런 것도 많습니다. 각자 자기로써 현상세계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 스승이 있으면 그분은 어떻게 했을까. 일차적으로 그 분을 표준하고 최종적으로는 주님을 표준하는 겁니다.
자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목표가 방향. 주님을 목표로 방향 바로 잡고 깨끗하게 자라가야합니다. 순수하게, 빨리 자라가야한다고 그러면 안됩니다. 두 번째는 깨끗하게 순결하게. 그리고 충성만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 자라가는데 일차적으로 자라야할 대제사장으로써 자라가야하는데 출발의 단계가 뭐냐. 그게 뭐냐. 하나님을 향하여 1대1대면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준비자세가 뭐냐. 내 자의사로. 내 의식적으로 하나님 백성이다. 자라서 이제는 내 신앙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신앙으로 생각하고 도와주는 겁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서 돕는 역할 보조적인 역할이 레위인입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밥을 먹습니다. 하루 몇 끼 먹지요. 보통 하루 몇 끼 먹습니까. 일반적인 하루 세 끼인데 말하자면은 사람은 먹어야삽니다. 안 먹으면 죽습니다. 굶은 김에 또 굶고 하루 더 굶고 3일 굶고 그렇게 일주일 지나면 죽어버립니다. 평생의 수만끼를 먹을건데 수만끼 죽에서 연달아서 20끼 정도 안 먹으면 죽어버립니다. 한 끼 식사는 생명을 이어가는 연결입니다. 작은 것인데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냉수 한 그릇을 주고도 상을 없지 않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는 자기 신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간접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에는 얼마나 능력이 큰지, 모르기 몰라도 연세 많은 분들은 온 교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얼마나 되는지. 목회자가 아닐지라도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자기 자손들에게 복으로 내려가게 될 겁니다. 내 아들과 손자를 기도하고 우리 교인을 위해서 시간해서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이 할수록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부탁하는 건데. 기도하는 것도 레위인입니다. 거기서 더 자라올라가서 단계별로 3학년이 6학년 거 보고 6학년이 3학년 거 보고 이게 레위인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의 죄를 책임을 지는 겁니다. 말하자면 목회자고 직접 내게 속하면서 나를 바쳐서 죄를 내가 사해주는 것이 아니고 제사를 근거하여 제사를 힘입어서 사는 것. 제사장이란 대속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일 바쳐서. 신약의 대속입니다. 주님의 당신 바쳐서 대속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겁니다. 죄를 위해서 기도도하고 가르치기도하고 회개하도록 의롭게 살도록 하늘의 소망으로 살도록 이런 사람을 직접 만들어가는 그 일을 한 사람을 맡았던 열 사람을 맡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반사도 직분인데 실제 내가 책임지고 간절하게 기도한 그게 제사장으로 자라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범위가 넓은 것이고 다른 것은 조금씩 좁은데 같은 성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목회나 구역자하는 한 말로 말하면 권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교회에 권찰회가 되는 게 교회 다음 교회입니다. 우리 공회 말고는 대구고 다른 곳에 권찰회에서 재직회가 다 되어간답니다. 목사, 장로, 집사만 들어가고 전도사, 권사도 빠진다던가요. 그건 바람직한게 아닙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곳이 반사입니다. 그들이 발언권이 가장 세야합니다. 제사장 역할입니다. 대제사장은 주님 피를 가지고 만나는 겁니다. 제사장 역할을 하되 주님을 닮은 되어지는 여기까지 되는 제사장 중에서 뽑습니다. 그래서 자라가고 대제사장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구약에는 한 사람이었지만은 대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대제사장이 많았습니다. 임기가 있었나보지요. 대제사장들. 오늘 밤에 두 가지로 말슴드렸습니다.
자라가는 것에 대해서 다섯 가지, 원론이랄까 생각해봤습니다. 자라가야 정상입니다. 시기가 있습니다. 모습이 있습니다, 표시가 있습니다. 앞에 있는 신앙에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반사 보조도 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말씀드렸고 제사장으로 자라가야합니다. 백성에서 레위인으로 자라가게 된다 이게 신앙생활에 정상적인 모습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자라고 있는가.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