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0일 금밤
김동민2025-05-30조회 83추천 11
2025년 5월 30일 금밤
찬송: 77장
본문: 디모데후서 4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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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 최고의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한 편지입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하면 바울이 되어봐야겠고. 디모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디모데가 되어봐야겠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모든 인물은 우리가 그 자리를 거기에 넣을 수있고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아담, 하와의 자리에도 넣어보고 아브라함, 롯의 자리에도 넣어보고.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서 우리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게 그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인데 성령이 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명령과 부탁은 다른 거지요. 반드시 해야하는 겁니다. 어기면 벌이 따라가는 게 명령입니다. 명령 중에서도 엄한 명령이고 하나님을 모시고 심판 주 주님을 모셔놓고 오실 주님 재림과 앞으로 도래할 세계를 해서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전파하는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말씀 전파는 복음 전파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게 복음 전파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도둑놈이 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옛날에 녹음이 없을 때 필기를 많이 했는데, 필기장이 옛날 거라서 옛날 설교는 굉장히 논리가 정연합니다. 80년대 중반은 노선 확립 때문에 여러 가지 감안하셔서 논리정연한 것도 있지만 행적을 넣어서 하셨기 때문에 받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근거해서 외쳐대서 듣는 사람이 50년 대에 목사님 설교가 녹음으로 나와있는데 전율이 소름이 돋습니다. 말씀을 같은 말씀을 들어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은 저는 80년대 은혜 받고 편집실에 있으면서 그 설교를 접할 수 있었고 처음 그때 설교를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고 사람에 따라 말씀을 무덤덤하게 들을 수도 있고 같은 말씀을 들리는 것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때 그 당시에 논리 정연하게 신학까지도 넣어서 하니까 60년대 70년대 신학은 빼고 성경적으로 설교하니까 받아서 설교하기 참 좋은 원고로 되어있습니다. 필기를 했는데 필기한 필기장이 제법 될 겁니다. 그 필기장을 어느 권사님이 했는데 그 권사님이 믿음의 아들에게 줬는데 같은 구역의 목사에게 들어갔습니다. 설교러기 참 좋은 거거든요.
다른 사람 없다 싶은 거거든요. 손에 딱 쥐고 자기만 설교하는 겁니다. 권사님은 이걸 전파하라고 내놨는데 받은 목사는 내용이 좋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자기만 안다 싶으니까 잠가놓고 안 내놓는 거지요. 연구소에서 그거 내놔라고 복음전파하라고 그러니까 굉장히 많이 말했는데 안 내놨습니다. 그 노트 가지고 설교한 그 목사님이 쫓겨다닙니다. 그 좋은 설교 가지고 설교하는데 왜 쫓겨다닐까요. 도둑놈 심보로 합니까.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 안에서 서울대 영문학과 나온 분도 있습니다. 지금 서부교회 담임목사님 말고. 그러면 부표가 많이 나고 교회를 내려앉힙니다. 그런데 무식하고 공부 많이 못한 나는 부족합니다. 주님 뿐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는 겁니다. 잘난 사람들은 교회를 가면 교회 숫자가 내려갑니다. 일종의 증거가 되어지겠지요.
내가 받아보니까 내가 살아보니까 참 귀하다 좋다. 그런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세계에 전파해라, 성경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가 가족들만의 것이라고 소송을 걸어서 70년 동안 임의로 재독도 못하고 전파도 못하게 묶어놨습니다. 그래서 대법원까지 가서 패전해서 재독도 못합니다. 귀신이 하는 짓이 아니면 정상적이면 그럴 수가 없겠지요. 그분들은 뭐 얻었느냐. 돈은커녕 변호사 비용이 반도 못 얻었을겁니다. 전해집니까 그런 걸로 하면, 이미 다 전파되어 있으니까. 믿는 사람들도 그렇고 신앙이 뭔지, 예수 믿는 게 뭔지 목회가 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합니다. 바울을 통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엄하게 전파해라. 전파할려면 좋은 줄 알아야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고 또 목회가 가장 어려운 게 뭐냐. 제가 뭐가 가장 어렵다던가요. 목회가 어려운 것은 교인들,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두 군데만 다녀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교인들 반대하는 거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니면 설명하면 되는 것이고 교회 부흥되는 거 신경 안 쓴 다음에 그런 것이고.
백 목사님의 가장 귀한 것이 뭐냐. 그분이 이루는 공로는 총공회가 있고 주일 학교가 있습니다. 설교록이 있습니다. 시대를 돌파한 칼빈의 깨달음이 있습니다. 삼분론에서 나온 구원론과 현실 모든 생활은 이어지는 겁니다. 이 전부가 가치적으로 뭐가 가치냐. 외부입니다. 총공회 교단 그 안에 들어와있습니다. 시대를 감당한 180권의 설교록과 알맹이입니다. 그 말씀 대로의 성화된 백목사님의 모습, 그게 가장 알맹이고 어려운 겁니다. 목회자의 가장 어려운 게 그겁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일반 교인들도 그렇지요. 우리 교회 설교 하시는 분들 염두해두셔야합니다. 꼭 기억하셔야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되는 것, 이게 되면 충성하면 저절로 됩니다. 이거 안되면 백날되고 안됩니다.
3년을 같이 했는데 그분은 거의 매일은 아니고 의자에 턱을 괴고 생각을 했습니다. 늘 반사 선생님들 노트 펼처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연구하고 고민하는 거지요. 실력도 있는 분입니다. 목사님 가시고 나서 목회의 방향을 어떻게 잡았느냐, 부흥으로 잡았습니다. 교회 부흥으로 되면 다른 건 저절로 되더라. 말에 힘도 있어지고 어디가도 다 되니까 마지막에는 교파를 구별하지 않고 이거든 저거든 교회 부흥이 되면 다 따라가겠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팔고 필리핀 갔지요. 그리고 세상 일찍 떠나셨지요.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안되는 거지요. 기억하십시다. 복음이라는 것은 내가 먼저 잡고 내가 살아서 내가 된 만큼 복음은 진짜로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복음은 전파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한 만큼 하나님과 가까운 만큼 복음은 전해집니다.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실상에,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는 분입니다.
다윗도 그래서 다윗은 마지막 세상 떠날 때 교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항상 힘쓰라. 2절에 따라한 것은 기회라는 건데 이 기회는 범사다 그 말이고, 너가 그 때를 찾지 말라는 말입니다. 신앙 생활의 때를 임의로 정하지 말아라. 자기 구원에 주셨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가시다 시장하셨습니다. 무슨 나무가 보였던가요. 무화과 나무가 보였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8월달 되어야 익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3월이든 4월이든 그랬나보지요. 잎사귀가 무성하니까. 잎사귀는 있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 없는 이유를 기록하기를 무화과의 때가 아니리라. 그래서 열매 맺을 때가 아니어서 해갈입니까 해글입니까. 열매가 안 날 때도 있습니다. 열매가 아예 하나도 안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때가 아니라서 예수님께서 가서 보고 무화과 나무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따먹지 못하리라. 그리고 다음 아침에 뿌리부터 말라버렸습니다.
그 성경을 일반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찾아보지 못했지만 해석하기 어려울 겁니다. 무화과의 때는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무화가 나무로써의 일을 충실했습니다. 아니라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누가 틀려야합니까. 주일이 틀려야합니까 무화과가 틀려야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틀렸겠지요. 주님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주님이 무화과 저주를 잘못했다면 대속은 실패입니다. 말한 마디도 실수는 없고 잘못이 없습니다. 그 말은 잘못했는데 뭘 잘못했습니까. 무화과 나무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걸 가져다대면 20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한 번도 안했습니다. 이번에 자네가 주일에 일을 안하면 문을 닫게 되네. 그거 어떻게 합니까. 거절하고 지켜야합니까 안되는 겁니까. 무리한 부탁인가요. 20년 만에 잠시 와서 하면 되네. 80억 인구를 다 물어보십시오. 무리한 부탁인지. 그 회사는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 안 믿는 사람 치고 임원 입장에서도 이건 참 주일 어기는 게 되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가 되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내놔라 이 말이지요. 이런 길을 가르켜서 좁은 길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믿어나갈려면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참 한번씩 교회 업무 때문에 은행에 가는데 어떤 곳은 쉽게 되고 까다롭게 합니다. 그래서 느끼는 게 창고 직원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럴 때 합법적으로 법을 만들어서 종교 단체는 이렇게 서류 만들려고 교회 명부 내놔라. 그러면 표나지 않게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거지요. 자기들 딴에는 야물게 한다고 하지만은 다른 곳에는 요구하면은 거기만 하필 그럽니다. 합법적인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주의. 민주주의를 가장한 공산주의.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20년 만에 부탁받은 것처럼 이걸 나가는데 그걸 못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렇게 연결이 되게 되는 겁니다. 때가 이르리니, 다른 때라고 그랬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온다는 그 말인데 오는 때도 있고 사람마다 오지만은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아브라함은 이때 오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없었습니다. 다윗도 이때 없었습니다. 백 목사님도 때가 이르리니 이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이때가 이르러서 실패했습니다. 유다 왕 중에서 사울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입니까. 아사가 악한 왕입니까 선한 왕입니까. 상당히 선한 왕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선지자가 말할 때 그쳐라고 했지요. 자기 어머니가 우상섬겨서 폐해버렸음에도 마지막에 가서 때가 이른 겁니다. 그런 겁니다. 사람이 세월 속에 늙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가는 것도 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이들 자란 것은 정상입니다. 젖먹이가 걸어다니고 점점 자라가지요. 듣고 보고 접하고 심신 속에 경험과 자기 주관이 같이 자라게 되는 겁니다. 때가 이르러 가는데 몸이 자라면서 지식이 자라면서 주관이 자라면서 늘 자신을 조심하고 늘 순종의 자세 겸손의 자세를 깨닫고 이 때가 안 오면 좋겠는데 아이든 청년이든 어른이든 거의 이때가 다 옵니다. 반드시 이런 때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거 때문에 사람들이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그릇을 찬 것이고 나이로 말하면 늙은 것이고 오래된 것이지요. 겉사람은 그리 될지라도 속은 그리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속은 늘 새롭도다. 겉 사람에 따라서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서 듣고 보고 배우는 지식이 많아지고 뚜렷한 게 많아지면서 이르러서 일곱 살이 되면 미워서 쥐어박을 만큼 될 만한게 일곱 살이 된 겁니다. 사춘기 되면 때가 이른 거지요. 그런 때가 나이는 그리되어도 때에 영향받지 않은데 그렇게 된 겁니다. 어쨌든 이 때는 참 때고 마지막 때고 끝 때고 사람으로 말하면 늙은 때고 재림의 때고 그런 때가 되는 겁니다. 곧 넘어질 때 망할 때가 되었다. 그겁니다. 그릇이 차면 교만하면 그 뜻입니다. 이걸 어떻게 나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아느냐. 사람이 그름이 차고 곧 교만해지고 넘어질 때가 되면 어떤 증상이 되느냐 증상이 나타나도 어떤 증상이 나타나느냐. 사람이 꼭 찍어놨습니다. 온 세상에 다 두어도 간추리고 간추려도 없어서는 안되는 말씀으로 한 것인데 사람이라고 찍어놨습니다. 성경을 사람이보지 짐승이 보겠습니까. 성경의 사람이라고 할 때는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이 말씀을 들어야하고 해당되어야하는 넓게 말하면 이 세상 넓게 나가야합니다. 안 믿는 불신자는 성경을 모르고 안 읽습니다. 그러나 전체로 해당이 되지만 믿는 사람들 특별히 사람이 때가 이르려면 사람에게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바른 교훈이 뭘까. 바른 교훈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구원에 된 말이겠지요. 구원에 유익된 말. 신앙 생활에 도움되는 말. 행동을 바로 하는 게 도움되는 말. 이런 바른 교훈은 대게 보면 귀에는 어떻다고 합니까. 귀에는 거슬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떠하다고요. 여기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아합이 어쩌다 죽습니까. 미가 성지가 길르앗 나무에 올라가면 죽습니다. 그게 듣기 싫어서 가고 싶은데 나의 귀에 거슬리는 말 한다고 그렇게 핍박을 하다가 마지막에 제 목숨 걸려서 가십시오. 그러니까 그런 말을 뭐라고 합니까. 감언이설입니다. 미가 선지의 충언은 귀에 거슬려서 가둬놓고 겨우 연명할 정도로 먹여라. 왕이 살아 돌아오면 죽습니다. 이게 듣기 싫은 겁니다.
사람이 자기 행동에 처신에 구원에 유익한 말이 듣기 싫으면 때가 이른 사람입니다. 설교 시간에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잘 듣다가 20분 30분 40분 집회 때 한 시간 그러면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지요. 그릇이 차서. 백 목사님은 저녁 7시에 예배하면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설교했다는데. 나는 어떤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귀가 가렵습니다. 왜 가려운가. 벌레가 들어갔던지 건드려서 가렵겠지요. 귀가 가렵다 그 말은 귀가 가려운 것도 있고 눈이 가려운 것도 있고 같은 겁니다. 들리니까 듣고 우리 사람의 머리가 쓰레기 통이 되어버립니다. 요즘 시대 다 보면 정화조통이 되어버립니다.
사욕은 대게 보면 천국보다는 세상, 무궁세계보다는 지금 당장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 점점 좁아지는 게 사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인간 인간 전체보단 나자신 이 세상 미래보다 지금 당장. 가족 전부보다 나 하나. 식욕도 지나치게 되면 사욕이 될 수 있습니다. 먹으면 맛은 있는데 몸 전체로 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행동도 보고 듣는 것도. 전체의 한 부분. 그래서 지금 당장 좋게 우선 좋게 이게 사욕이고 마지막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그런 것들만 모인 것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둡니다. 사욕을 충족시킬 그걸 가르쳐주시는 것이 방법을 찾는 거지요. 오만 방법 이 세상에 사욕의 종류도 수도 없이 많아서 때가 이르니까 그릇이 차고 믿는 사람이 늘 부족해서 늘 무익한 종이라서 고칠 게 많아서 죄인이라서 회개거리 찾아가보면 이것 쫓을 방법을 먹을 걸 찾고 오만게 다 찾아다니면서 무저갱으로 그러지요. 다섯 번째는 그 귀는 진리를 통해서 돌이킵니다. 임의고 주관적입니다. 듣기 싫고 그래서 목사들의 책임이 크지만 교인들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 공회도 시무투표 하잖습니까. 그 시무투표 때문에 교인들 눈치보면 목회 못합니다. 국민들이 어리석으면 깨우쳐줘야합니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거 때문에 문제 생길 줄 알았습니다. 무조건 옳습니까 국민이. 쫓겨났잖습니까. 지도자라면 어리석은 국민을 가르치고 깨우쳐줘야합니다. 그런데 눈치보다 보면 옳은 말씀 전하지 않고, 한때는 예배 시간에 코미디를 하고 있더만요. 구수한 사투리 내면서 그런게 유행하더만요. 듣기 좋은 소리한다고. 실제와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구원에 도움되지 않는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 때가 이르리니. 다섯 가지 표시를 해놨습니다. 다섯가지가 하나씩 있으면 넘어질 때가 되었구나. 그런 줄 알고 단속을 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찬송: 77장
본문: 디모데후서 4장 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약시대 최고의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한 편지입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하면 바울이 되어봐야겠고. 디모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디모데가 되어봐야겠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모든 인물은 우리가 그 자리를 거기에 넣을 수있고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아담, 하와의 자리에도 넣어보고 아브라함, 롯의 자리에도 넣어보고.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서 우리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게 그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인데 성령이 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명령과 부탁은 다른 거지요. 반드시 해야하는 겁니다. 어기면 벌이 따라가는 게 명령입니다. 명령 중에서도 엄한 명령이고 하나님을 모시고 심판 주 주님을 모셔놓고 오실 주님 재림과 앞으로 도래할 세계를 해서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전파하는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말씀 전파는 복음 전파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게 복음 전파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도둑놈이 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옛날에 녹음이 없을 때 필기를 많이 했는데, 필기장이 옛날 거라서 옛날 설교는 굉장히 논리가 정연합니다. 80년대 중반은 노선 확립 때문에 여러 가지 감안하셔서 논리정연한 것도 있지만 행적을 넣어서 하셨기 때문에 받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근거해서 외쳐대서 듣는 사람이 50년 대에 목사님 설교가 녹음으로 나와있는데 전율이 소름이 돋습니다. 말씀을 같은 말씀을 들어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은 저는 80년대 은혜 받고 편집실에 있으면서 그 설교를 접할 수 있었고 처음 그때 설교를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고 사람에 따라 말씀을 무덤덤하게 들을 수도 있고 같은 말씀을 들리는 것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때 그 당시에 논리 정연하게 신학까지도 넣어서 하니까 60년대 70년대 신학은 빼고 성경적으로 설교하니까 받아서 설교하기 참 좋은 원고로 되어있습니다. 필기를 했는데 필기한 필기장이 제법 될 겁니다. 그 필기장을 어느 권사님이 했는데 그 권사님이 믿음의 아들에게 줬는데 같은 구역의 목사에게 들어갔습니다. 설교러기 참 좋은 거거든요.
다른 사람 없다 싶은 거거든요. 손에 딱 쥐고 자기만 설교하는 겁니다. 권사님은 이걸 전파하라고 내놨는데 받은 목사는 내용이 좋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자기만 안다 싶으니까 잠가놓고 안 내놓는 거지요. 연구소에서 그거 내놔라고 복음전파하라고 그러니까 굉장히 많이 말했는데 안 내놨습니다. 그 노트 가지고 설교한 그 목사님이 쫓겨다닙니다. 그 좋은 설교 가지고 설교하는데 왜 쫓겨다닐까요. 도둑놈 심보로 합니까.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 안에서 서울대 영문학과 나온 분도 있습니다. 지금 서부교회 담임목사님 말고. 그러면 부표가 많이 나고 교회를 내려앉힙니다. 그런데 무식하고 공부 많이 못한 나는 부족합니다. 주님 뿐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는 겁니다. 잘난 사람들은 교회를 가면 교회 숫자가 내려갑니다. 일종의 증거가 되어지겠지요.
내가 받아보니까 내가 살아보니까 참 귀하다 좋다. 그런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세계에 전파해라, 성경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가 가족들만의 것이라고 소송을 걸어서 70년 동안 임의로 재독도 못하고 전파도 못하게 묶어놨습니다. 그래서 대법원까지 가서 패전해서 재독도 못합니다. 귀신이 하는 짓이 아니면 정상적이면 그럴 수가 없겠지요. 그분들은 뭐 얻었느냐. 돈은커녕 변호사 비용이 반도 못 얻었을겁니다. 전해집니까 그런 걸로 하면, 이미 다 전파되어 있으니까. 믿는 사람들도 그렇고 신앙이 뭔지, 예수 믿는 게 뭔지 목회가 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합니다. 바울을 통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엄하게 전파해라. 전파할려면 좋은 줄 알아야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고 또 목회가 가장 어려운 게 뭐냐. 제가 뭐가 가장 어렵다던가요. 목회가 어려운 것은 교인들,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두 군데만 다녀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교인들 반대하는 거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니면 설명하면 되는 것이고 교회 부흥되는 거 신경 안 쓴 다음에 그런 것이고.
백 목사님의 가장 귀한 것이 뭐냐. 그분이 이루는 공로는 총공회가 있고 주일 학교가 있습니다. 설교록이 있습니다. 시대를 돌파한 칼빈의 깨달음이 있습니다. 삼분론에서 나온 구원론과 현실 모든 생활은 이어지는 겁니다. 이 전부가 가치적으로 뭐가 가치냐. 외부입니다. 총공회 교단 그 안에 들어와있습니다. 시대를 감당한 180권의 설교록과 알맹이입니다. 그 말씀 대로의 성화된 백목사님의 모습, 그게 가장 알맹이고 어려운 겁니다. 목회자의 가장 어려운 게 그겁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일반 교인들도 그렇지요. 우리 교회 설교 하시는 분들 염두해두셔야합니다. 꼭 기억하셔야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되는 것, 이게 되면 충성하면 저절로 됩니다. 이거 안되면 백날되고 안됩니다.
3년을 같이 했는데 그분은 거의 매일은 아니고 의자에 턱을 괴고 생각을 했습니다. 늘 반사 선생님들 노트 펼처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연구하고 고민하는 거지요. 실력도 있는 분입니다. 목사님 가시고 나서 목회의 방향을 어떻게 잡았느냐, 부흥으로 잡았습니다. 교회 부흥으로 되면 다른 건 저절로 되더라. 말에 힘도 있어지고 어디가도 다 되니까 마지막에는 교파를 구별하지 않고 이거든 저거든 교회 부흥이 되면 다 따라가겠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팔고 필리핀 갔지요. 그리고 세상 일찍 떠나셨지요.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안되는 거지요. 기억하십시다. 복음이라는 것은 내가 먼저 잡고 내가 살아서 내가 된 만큼 복음은 진짜로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복음은 전파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한 만큼 하나님과 가까운 만큼 복음은 전해집니다.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실상에,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는 분입니다.
다윗도 그래서 다윗은 마지막 세상 떠날 때 교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항상 힘쓰라. 2절에 따라한 것은 기회라는 건데 이 기회는 범사다 그 말이고, 너가 그 때를 찾지 말라는 말입니다. 신앙 생활의 때를 임의로 정하지 말아라. 자기 구원에 주셨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가시다 시장하셨습니다. 무슨 나무가 보였던가요. 무화과 나무가 보였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8월달 되어야 익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3월이든 4월이든 그랬나보지요. 잎사귀가 무성하니까. 잎사귀는 있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 없는 이유를 기록하기를 무화과의 때가 아니리라. 그래서 열매 맺을 때가 아니어서 해갈입니까 해글입니까. 열매가 안 날 때도 있습니다. 열매가 아예 하나도 안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때가 아니라서 예수님께서 가서 보고 무화과 나무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따먹지 못하리라. 그리고 다음 아침에 뿌리부터 말라버렸습니다.
그 성경을 일반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찾아보지 못했지만 해석하기 어려울 겁니다. 무화과의 때는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무화가 나무로써의 일을 충실했습니다. 아니라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누가 틀려야합니까. 주일이 틀려야합니까 무화과가 틀려야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틀렸겠지요. 주님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주님이 무화과 저주를 잘못했다면 대속은 실패입니다. 말한 마디도 실수는 없고 잘못이 없습니다. 그 말은 잘못했는데 뭘 잘못했습니까. 무화과 나무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걸 가져다대면 20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한 번도 안했습니다. 이번에 자네가 주일에 일을 안하면 문을 닫게 되네. 그거 어떻게 합니까. 거절하고 지켜야합니까 안되는 겁니까. 무리한 부탁인가요. 20년 만에 잠시 와서 하면 되네. 80억 인구를 다 물어보십시오. 무리한 부탁인지. 그 회사는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 안 믿는 사람 치고 임원 입장에서도 이건 참 주일 어기는 게 되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가 되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내놔라 이 말이지요. 이런 길을 가르켜서 좁은 길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믿어나갈려면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참 한번씩 교회 업무 때문에 은행에 가는데 어떤 곳은 쉽게 되고 까다롭게 합니다. 그래서 느끼는 게 창고 직원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럴 때 합법적으로 법을 만들어서 종교 단체는 이렇게 서류 만들려고 교회 명부 내놔라. 그러면 표나지 않게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거지요. 자기들 딴에는 야물게 한다고 하지만은 다른 곳에는 요구하면은 거기만 하필 그럽니다. 합법적인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주의. 민주주의를 가장한 공산주의.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20년 만에 부탁받은 것처럼 이걸 나가는데 그걸 못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렇게 연결이 되게 되는 겁니다. 때가 이르리니, 다른 때라고 그랬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온다는 그 말인데 오는 때도 있고 사람마다 오지만은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아브라함은 이때 오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없었습니다. 다윗도 이때 없었습니다. 백 목사님도 때가 이르리니 이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이때가 이르러서 실패했습니다. 유다 왕 중에서 사울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입니까. 아사가 악한 왕입니까 선한 왕입니까. 상당히 선한 왕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선지자가 말할 때 그쳐라고 했지요. 자기 어머니가 우상섬겨서 폐해버렸음에도 마지막에 가서 때가 이른 겁니다. 그런 겁니다. 사람이 세월 속에 늙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가는 것도 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이들 자란 것은 정상입니다. 젖먹이가 걸어다니고 점점 자라가지요. 듣고 보고 접하고 심신 속에 경험과 자기 주관이 같이 자라게 되는 겁니다. 때가 이르러 가는데 몸이 자라면서 지식이 자라면서 주관이 자라면서 늘 자신을 조심하고 늘 순종의 자세 겸손의 자세를 깨닫고 이 때가 안 오면 좋겠는데 아이든 청년이든 어른이든 거의 이때가 다 옵니다. 반드시 이런 때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거 때문에 사람들이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그릇을 찬 것이고 나이로 말하면 늙은 것이고 오래된 것이지요. 겉사람은 그리 될지라도 속은 그리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속은 늘 새롭도다. 겉 사람에 따라서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서 듣고 보고 배우는 지식이 많아지고 뚜렷한 게 많아지면서 이르러서 일곱 살이 되면 미워서 쥐어박을 만큼 될 만한게 일곱 살이 된 겁니다. 사춘기 되면 때가 이른 거지요. 그런 때가 나이는 그리되어도 때에 영향받지 않은데 그렇게 된 겁니다. 어쨌든 이 때는 참 때고 마지막 때고 끝 때고 사람으로 말하면 늙은 때고 재림의 때고 그런 때가 되는 겁니다. 곧 넘어질 때 망할 때가 되었다. 그겁니다. 그릇이 차면 교만하면 그 뜻입니다. 이걸 어떻게 나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아느냐. 사람이 그름이 차고 곧 교만해지고 넘어질 때가 되면 어떤 증상이 되느냐 증상이 나타나도 어떤 증상이 나타나느냐. 사람이 꼭 찍어놨습니다. 온 세상에 다 두어도 간추리고 간추려도 없어서는 안되는 말씀으로 한 것인데 사람이라고 찍어놨습니다. 성경을 사람이보지 짐승이 보겠습니까. 성경의 사람이라고 할 때는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이 말씀을 들어야하고 해당되어야하는 넓게 말하면 이 세상 넓게 나가야합니다. 안 믿는 불신자는 성경을 모르고 안 읽습니다. 그러나 전체로 해당이 되지만 믿는 사람들 특별히 사람이 때가 이르려면 사람에게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바른 교훈이 뭘까. 바른 교훈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구원에 된 말이겠지요. 구원에 유익된 말. 신앙 생활에 도움되는 말. 행동을 바로 하는 게 도움되는 말. 이런 바른 교훈은 대게 보면 귀에는 어떻다고 합니까. 귀에는 거슬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떠하다고요. 여기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아합이 어쩌다 죽습니까. 미가 성지가 길르앗 나무에 올라가면 죽습니다. 그게 듣기 싫어서 가고 싶은데 나의 귀에 거슬리는 말 한다고 그렇게 핍박을 하다가 마지막에 제 목숨 걸려서 가십시오. 그러니까 그런 말을 뭐라고 합니까. 감언이설입니다. 미가 선지의 충언은 귀에 거슬려서 가둬놓고 겨우 연명할 정도로 먹여라. 왕이 살아 돌아오면 죽습니다. 이게 듣기 싫은 겁니다.
사람이 자기 행동에 처신에 구원에 유익한 말이 듣기 싫으면 때가 이른 사람입니다. 설교 시간에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잘 듣다가 20분 30분 40분 집회 때 한 시간 그러면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지요. 그릇이 차서. 백 목사님은 저녁 7시에 예배하면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설교했다는데. 나는 어떤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귀가 가렵습니다. 왜 가려운가. 벌레가 들어갔던지 건드려서 가렵겠지요. 귀가 가렵다 그 말은 귀가 가려운 것도 있고 눈이 가려운 것도 있고 같은 겁니다. 들리니까 듣고 우리 사람의 머리가 쓰레기 통이 되어버립니다. 요즘 시대 다 보면 정화조통이 되어버립니다.
사욕은 대게 보면 천국보다는 세상, 무궁세계보다는 지금 당장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 점점 좁아지는 게 사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인간 인간 전체보단 나자신 이 세상 미래보다 지금 당장. 가족 전부보다 나 하나. 식욕도 지나치게 되면 사욕이 될 수 있습니다. 먹으면 맛은 있는데 몸 전체로 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행동도 보고 듣는 것도. 전체의 한 부분. 그래서 지금 당장 좋게 우선 좋게 이게 사욕이고 마지막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그런 것들만 모인 것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둡니다. 사욕을 충족시킬 그걸 가르쳐주시는 것이 방법을 찾는 거지요. 오만 방법 이 세상에 사욕의 종류도 수도 없이 많아서 때가 이르니까 그릇이 차고 믿는 사람이 늘 부족해서 늘 무익한 종이라서 고칠 게 많아서 죄인이라서 회개거리 찾아가보면 이것 쫓을 방법을 먹을 걸 찾고 오만게 다 찾아다니면서 무저갱으로 그러지요. 다섯 번째는 그 귀는 진리를 통해서 돌이킵니다. 임의고 주관적입니다. 듣기 싫고 그래서 목사들의 책임이 크지만 교인들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 공회도 시무투표 하잖습니까. 그 시무투표 때문에 교인들 눈치보면 목회 못합니다. 국민들이 어리석으면 깨우쳐줘야합니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거 때문에 문제 생길 줄 알았습니다. 무조건 옳습니까 국민이. 쫓겨났잖습니까. 지도자라면 어리석은 국민을 가르치고 깨우쳐줘야합니다. 그런데 눈치보다 보면 옳은 말씀 전하지 않고, 한때는 예배 시간에 코미디를 하고 있더만요. 구수한 사투리 내면서 그런게 유행하더만요. 듣기 좋은 소리한다고. 실제와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구원에 도움되지 않는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 때가 이르리니. 다섯 가지 표시를 해놨습니다. 다섯가지가 하나씩 있으면 넘어질 때가 되었구나. 그런 줄 알고 단속을 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