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8일 수밤
김동민2025-05-28조회 59추천 10
2025년 5월 28일 수밤
찬송: 34장, 157장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집회 세 번째 말씀, 애착 끊자 세상을. 공과 제목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본문 중에서 3절이었고 요절은 3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의 사역을 쫓을 스승을 두고, 요절은 외우는 게 좋겠습니다. 권찰회 때 말씀드렸던가요. 설교는 성경 본문이 중심이기 때문에 장년반 설교하는 분들도 그렇고 성경 본문을 염두해두고 외우는 게 좋다는 게 좋습니다. 물론 긴 것은 다 외울 수 없으나 그 시간의 본문은 외워두면 참 좋겠습니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할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집회는 3절이 중심이었고 공과도 3절이 중심이 되어있지만 다 살펴봅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게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하면서 그 명령하는 그 명령의 배경과 담보를 무겁게 그렇게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두고 배경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가 성령의 감동임으로 성경 기자가 또는 바울이 하는 말이지만은 교리적으로 성령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이 말씀 자체를 하면서 이 말이 내 말이 아니다. 내 개인의 말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모든게 하나님 말씀인데 엄히 명하노니, 그의 나타나실 것과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모셔다 놓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거다. 성령의 감동의 말씀으로 실제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 아무리 많이 말해도 우리 인간의 상상을 무한히 넘어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섭게 꾸미기 위해서 형용사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그분을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각자 자기가 아는 성경 지식의 범위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가 그 말씀을 믿고 어느정도 성경을 읽으며 직접 알 수 없는 자연계시를 어느정도 명상을 생각해봤는가에 따라서 지식이 다르고 지식이 있는 만큼 지식적으로 적어도 나타낼 수 있고
연구해서 안 만큼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산만큼 실제로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생활이고 설명이고 그런 것입니다. 그냥 상식적인 상식으로 유일신입니다. 한 분 밖에 없다. 그 말은 한 분 밖에 없다는 그 자체도 있지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할 때 이 땅 위에 다시 뭐가 없다고요, 유가 없도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런 분이 없는 겁니다. 그분 같은 사랑, 그분같은 희생이 없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다. 80억 인구 중에서 저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저도 하나입니다. 한 분 한 분 하나입니다. 그 분은 유가 없는 겁니다. 저가 없는 하나인데 80억명 중에서 대부분 뛰어나지 않겠습니까. 완전자는 하나님 뿐입니다. 그 분은 전지전능자입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은 주권자입니다.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셔다 놓고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로,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이 포함이 됩니다. 택자와 불택자, 중생자와 미중생자. 신자와 불신자 다 들어갑니다.
모든 사람 전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계시는 겁니다. 죽은 사람은 한 평생 살고간 생애를 통해서 했고 세상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대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심판하시는 것과 살아 있을 때 심판하시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낫습니까. 죽은 다음은 기회가 없습니다. 살아생전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심판하는게 가장 좋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도 예사로 쓰나, 저희들 젊을 때 어릴 때 그때는 자아 비판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서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 북한에서는 그 말 자주 썼다고 합니다. 자아 비판은 나쁜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살펴보는 겁니다. 학생들 공부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 시험쳐서 다른 사람에게 성적이 나타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이라고 합니까. 그게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러면 공부가 되고 부모님에게 몰려서 어쩔 수 없어서.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 예수가 있습니다. 소망을 주신 근거, 근거가 앞에 있고 소망이 뒤에 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 그럽니다. 하늘나라는 제사장 나라.
지금 말씀을 전파하라는 이 말씀을 하면서 심판주의신 그리스도를 모셔놓고 그에 나타나신 재림입니다. 재림을 담보로 하고 그의 나라로 담보라고 합니다. 이 말이 잘못되면 그의 나라가 책임진다. 주님 재림이 틀림없는 것처럼 그의 나라가 틀림없는 것처럼 그의 나타나실 것과 엄히 명하노니 말씀을 전파하라. 이 말씀이 얼마나 엄하나를 생각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이 말씀이 엄한가, 몇 가지 각도로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이 엄한 명령의 각도가 말씀을 통해서 왜 엄하게 말씀하시는 각도를 몇 가지로 각도를 드렸던가요. 이걸 알면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는 사람 편에서. 하나님의 목적 그것이기 때문에 말씀 전파 속에 목적 성취가 있습니다. 무겁고 중요한 겁니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영생과 영멸이 되어집니다. 개인 개인의 영멸과 하나님의 목적이 같습니까.
우리의 영생입니다. 하나지요 다. 하나님 편에서 목적이고 우리 편에서는 구원입니다. 영생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말을 해서 귀로 듣게하는 외부적인 것이고 말씀 전파의 진짜베기는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보면 목사님께서 말씀하실 때 논리가 정연한고 쓰는 언어 표현이 참 수준이 있고 청산유수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을 잘해도 그 속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람이 들리지도 않고 없는 겁니다. 말을 더듬더듬 그리해도 그 사람이 자기가 전하는 그 말씀을 살아가고 그 말씀을 변화되고 전해지게 되고 아무리 청산유수로 말을 해도, 전하는 말씀과 상관없고 말만 전하면 녹음기 트는 것처럼 그런 소리가 되는 겁니다.
실제 복음 전파는 생활 전파입니다. 언행심사 관계 복음 전파의 진짜베기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은 그 말입니다. 이런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라는 그 말씀인데 이렇게 살아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가르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 교회란 것은 등대다. 촛대다. 하나님 오신 교회다. 제가 많이 말씀 드렸지요. 오후에, 그게 믿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그 속에 책임으로 말하면 에스겔 서에서 이스라엘 종교에 에스겔이고 오늘 에스겔인데 에스겔에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파수꾼으로 세웠는데 나팔을 불었는데 방비하지 않아서 죽으면 파수꾼은 책임이 없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러면 자기 죄 때문에 죽는데, 파수꾼 나팔 불지 않는 파수꾼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말씀을 전파하는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기회라고 했습니다. 3절에 말씀하신 이때는 3절에 때가 이르니니 이 때는 좋은 때입니까 나쁜 때입니까. 이때는 없는 게 좋습니까.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이건 기회라고 했습니다. 이걸 기회가 있던지 없던지 믿는 사람이 복음 전파하는 것은 등대노릇하는 것 촛대노릇하는 것 교회로 사는 것 성전으로 사는 것은 언제 사는 겁니까. 어느 때에 이렇게 사는 것인가요.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기회가 있던지 없던지 한 말로 말하면 우리들의 신앙 생활입니다. 등대 생활이고 촛대 생활입니다. 기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회가 따로 있습니까 없습니까.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 겁니다. 이게 믿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 공회 목사는 은퇴가 없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회 교역자님들은 임기가 언제입니까. 2년입니다. 2년짜리 임시직입니다. 부공3에서 투표가 잘 안되고 그러는데 백 목사님 시무투표 그러면 백 목사님부터 긴장을 합니다. 목사님 가시자마자 시무투표 없애자고 난리를 쳤습니다.
임기 2년입니다. 투표해서 부표가 나면 해임입니다. 해직되는 것이고 보따리 싸는 건데 권한은 하나도 없어집니다. 말하자면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믿는 사람이란 항상 언제입니다. 기회가 따로 없는 겁니다. 항상 힘써라. 그래서 은퇴 제도를 없애놓은 것은 신임을 확인하고 80이 되어도 부표가 안나서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교회 큰 교회 목사님은 30년 동안 시무투표를 안하고 있습니다. 불법입니다. 아직도 목회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교회들이 좋아서 은혜받고 있으면 되는데 절반 절반으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그래도 눌러 앉아있는거지요. 이걸 또 다른 각도로 말하면 말하자면은 신앙생활이 주업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 되었는데 될 일이면 인식이 사고방식이 관이 바뀌어야합니다. 소속과 능동이 인간과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바꾸어져야 들리지 그렇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주업입니다. 거기 맞춰서 가정도 공부도 결혼도 맞춰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조혼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20살 결혼하고 싶은데 안됩니다. 25 안됩니다. 그래서 결혼 안되니까 안 믿는 사람 데려옵니다만은 데려와도 됩니다만은 안 믿는 사람이 조건이 교회는 못 나옵니다. 당신도 가지 마십시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신앙을 포기한다. 안되는 겁니다. 학교 주일날 와라, 주일날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직장, 주일날 출근해라. 천만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주일이면 손해보는 겁니다.
범사에 같은 뜻인데 오래 참음과 양면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 살아갈 때 부딪히니까 참아야하고 하나는 이렇게 하는 생활 자체가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가르침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걸 말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가 전한 걸 확신하고 가르치는 것이지 내 가르치는게 옳지 않다 싶으면 안 가르치는 거지요. 자기 속에 확신을 가지고 가르침으로 경계하며 권하라. 경책과 경계와 권하는 것은 둬로가는 겁니다. 경책을 가장 앞에 둔 것은 사람이 미리 준비하면은 수월한데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당해보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학생들 공부는 미리하는 학생이 많습니까 아닌 학생이 많습니까. 이게 가장 힘든 겁니다.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맞아야 정신 차린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책을 해라. 그리고 경계가 낫습니다. 미리미리 경계하고 경책은 시간도 많이 들고 가장 좋은 것은 권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평소에 미리미리. 3살 전에 교육을 시키면 굉장히 수월하다고 합니다.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가 기도하고 아이가 가르치면 평생이 수월합니다. 세 살 넘어도 어릴 때도 덜한데 초등학교 때는 쉽지 않을 겁니다. 바로 오래 참음이 필요하고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때가 이르리니 이 때는 어떤 때입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나이로 말하면 늙은 때입니다. 교만해진 때이니다. 그릇이 찬 때입니다. 이만하면 됐다 오만한 때입니다. 자라가는 면에서는 아이가 좋은데 모든 면에서 원숙하고 노인이 좋은데 성경에 보면은 존경 받는 많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합니다. 신앙 없는 사람은 늙은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안 늙을 수가 없는데 때가 차는 겁니다. 인격적으로 지식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는 것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 옵니다. 그래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때가 됩니다. 아이도 자라면 자란만큼 때가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교만해졌구나 늙은이가 되었구나 그릇이 찼구나. 망할 때가 되었다 넘어질 때가 되었다. 그게 사람이 교만하고 넘어질 때가 되고 망할 때가 된 그 증거가 뭐냐. 역사 세계도 끝날 때 주님 재림할 때가 되니까 온갖 징조가 나타나듯이 개인적으로 이르면 사람이, 사람이라고 찍은 것은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이 옳은 말이 듣기 싫으면 때가 잃은겁니다. 우리 공회 안에 함께 목회하던 분 중에 몇 분이 길을 달리하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같이 갈 때는 잘 들었고 순종 잘했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많이 알겠거든요. 그러니까 비슷한 줄 압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말하면 자존심 상하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 때가 이르러서 이렇게 복잡하게 된 겁니다.
첫째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바른 말 듣기 싫어하는데 왜 싫어하지요. 자존심 때문에 위신 때문에 듣기 싫어하는 겁니다. 귀가 가렵다는 것은 들린다는 말입니다. 보여도 생기고 들려도 생깁니다. 들리는 귀를 취미들을 여과장치를 달아서 들어야하는데 귀가 정수기 여과장치가 없어서 그러면 귀가 가려워서 가렵습니다. 들린다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어찌됩니까. 보이면 마음이 생깁니다. 들려도 생깁니다. 같은 겁니다. 귀가 가려워서 그 말은 들립니다. 직장가면 들립니다. 보는 것도 들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사욕이 생기는 겁니다. 귀에 여과장치 하지 않고 하면 되는 겁니다. 사욕을 충족시킬 인간의 사욕, 성령의 사욕은 좋은거지만 인간의 사욕은 무저갱이라고 합니다. 인간 욕심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은데 사람마다 욕심이 다 다릅니다. 그 성향에 따라서 성장 과정에 따라서 사람의 욕심은 다 다른데 욕심이 많아서 무저갱이 아니고 돈이 없으면 무저갱이 되고 명예욕에 빠지면 무저갱이 되고 몇 가지 있는 사람도 있고 한 두 가지 사람도 끝을 봐야하는 겁니다.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둔다는 말은 배우는 겁니다. 방법을 찾는 겁니다. 사욕을 쫓을 것을 찾는 겁니다.
살다 보니까 듣고 보고 그래서 자꾸 어찌된다고요, 자꾸 생기는 겁니다. 사욕이 생기고 그 욕심을 채울 방법을 아는 거지요. 그래서 온갖 것들이 다 되게 되는 것이고 별별게 다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돌이켜 옳은 것은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영원을 두고 유익없는 그런 걸 찾아다닙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찬송: 34장, 157장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집회 세 번째 말씀, 애착 끊자 세상을. 공과 제목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본문 중에서 3절이었고 요절은 3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의 사역을 쫓을 스승을 두고, 요절은 외우는 게 좋겠습니다. 권찰회 때 말씀드렸던가요. 설교는 성경 본문이 중심이기 때문에 장년반 설교하는 분들도 그렇고 성경 본문을 염두해두고 외우는 게 좋다는 게 좋습니다. 물론 긴 것은 다 외울 수 없으나 그 시간의 본문은 외워두면 참 좋겠습니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할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집회는 3절이 중심이었고 공과도 3절이 중심이 되어있지만 다 살펴봅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게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하면서 그 명령하는 그 명령의 배경과 담보를 무겁게 그렇게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두고 배경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가 성령의 감동임으로 성경 기자가 또는 바울이 하는 말이지만은 교리적으로 성령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이 말씀 자체를 하면서 이 말이 내 말이 아니다. 내 개인의 말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모든게 하나님 말씀인데 엄히 명하노니, 그의 나타나실 것과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모셔다 놓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거다. 성령의 감동의 말씀으로 실제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 아무리 많이 말해도 우리 인간의 상상을 무한히 넘어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섭게 꾸미기 위해서 형용사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그분을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각자 자기가 아는 성경 지식의 범위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가 그 말씀을 믿고 어느정도 성경을 읽으며 직접 알 수 없는 자연계시를 어느정도 명상을 생각해봤는가에 따라서 지식이 다르고 지식이 있는 만큼 지식적으로 적어도 나타낼 수 있고
연구해서 안 만큼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산만큼 실제로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생활이고 설명이고 그런 것입니다. 그냥 상식적인 상식으로 유일신입니다. 한 분 밖에 없다. 그 말은 한 분 밖에 없다는 그 자체도 있지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할 때 이 땅 위에 다시 뭐가 없다고요, 유가 없도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런 분이 없는 겁니다. 그분 같은 사랑, 그분같은 희생이 없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다. 80억 인구 중에서 저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저도 하나입니다. 한 분 한 분 하나입니다. 그 분은 유가 없는 겁니다. 저가 없는 하나인데 80억명 중에서 대부분 뛰어나지 않겠습니까. 완전자는 하나님 뿐입니다. 그 분은 전지전능자입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은 주권자입니다.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셔다 놓고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로,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이 포함이 됩니다. 택자와 불택자, 중생자와 미중생자. 신자와 불신자 다 들어갑니다.
모든 사람 전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계시는 겁니다. 죽은 사람은 한 평생 살고간 생애를 통해서 했고 세상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대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심판하시는 것과 살아 있을 때 심판하시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낫습니까. 죽은 다음은 기회가 없습니다. 살아생전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심판하는게 가장 좋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도 예사로 쓰나, 저희들 젊을 때 어릴 때 그때는 자아 비판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서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 북한에서는 그 말 자주 썼다고 합니다. 자아 비판은 나쁜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살펴보는 겁니다. 학생들 공부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 시험쳐서 다른 사람에게 성적이 나타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이라고 합니까. 그게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러면 공부가 되고 부모님에게 몰려서 어쩔 수 없어서.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 예수가 있습니다. 소망을 주신 근거, 근거가 앞에 있고 소망이 뒤에 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 그럽니다. 하늘나라는 제사장 나라.
지금 말씀을 전파하라는 이 말씀을 하면서 심판주의신 그리스도를 모셔놓고 그에 나타나신 재림입니다. 재림을 담보로 하고 그의 나라로 담보라고 합니다. 이 말이 잘못되면 그의 나라가 책임진다. 주님 재림이 틀림없는 것처럼 그의 나라가 틀림없는 것처럼 그의 나타나실 것과 엄히 명하노니 말씀을 전파하라. 이 말씀이 얼마나 엄하나를 생각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이 말씀이 엄한가, 몇 가지 각도로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이 엄한 명령의 각도가 말씀을 통해서 왜 엄하게 말씀하시는 각도를 몇 가지로 각도를 드렸던가요. 이걸 알면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는 사람 편에서. 하나님의 목적 그것이기 때문에 말씀 전파 속에 목적 성취가 있습니다. 무겁고 중요한 겁니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영생과 영멸이 되어집니다. 개인 개인의 영멸과 하나님의 목적이 같습니까.
우리의 영생입니다. 하나지요 다. 하나님 편에서 목적이고 우리 편에서는 구원입니다. 영생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말을 해서 귀로 듣게하는 외부적인 것이고 말씀 전파의 진짜베기는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보면 목사님께서 말씀하실 때 논리가 정연한고 쓰는 언어 표현이 참 수준이 있고 청산유수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을 잘해도 그 속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람이 들리지도 않고 없는 겁니다. 말을 더듬더듬 그리해도 그 사람이 자기가 전하는 그 말씀을 살아가고 그 말씀을 변화되고 전해지게 되고 아무리 청산유수로 말을 해도, 전하는 말씀과 상관없고 말만 전하면 녹음기 트는 것처럼 그런 소리가 되는 겁니다.
실제 복음 전파는 생활 전파입니다. 언행심사 관계 복음 전파의 진짜베기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은 그 말입니다. 이런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라는 그 말씀인데 이렇게 살아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가르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 교회란 것은 등대다. 촛대다. 하나님 오신 교회다. 제가 많이 말씀 드렸지요. 오후에, 그게 믿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그 속에 책임으로 말하면 에스겔 서에서 이스라엘 종교에 에스겔이고 오늘 에스겔인데 에스겔에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파수꾼으로 세웠는데 나팔을 불었는데 방비하지 않아서 죽으면 파수꾼은 책임이 없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러면 자기 죄 때문에 죽는데, 파수꾼 나팔 불지 않는 파수꾼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말씀을 전파하는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기회라고 했습니다. 3절에 말씀하신 이때는 3절에 때가 이르니니 이 때는 좋은 때입니까 나쁜 때입니까. 이때는 없는 게 좋습니까.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이건 기회라고 했습니다. 이걸 기회가 있던지 없던지 믿는 사람이 복음 전파하는 것은 등대노릇하는 것 촛대노릇하는 것 교회로 사는 것 성전으로 사는 것은 언제 사는 겁니까. 어느 때에 이렇게 사는 것인가요.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기회가 있던지 없던지 한 말로 말하면 우리들의 신앙 생활입니다. 등대 생활이고 촛대 생활입니다. 기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회가 따로 있습니까 없습니까.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 겁니다. 이게 믿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 공회 목사는 은퇴가 없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회 교역자님들은 임기가 언제입니까. 2년입니다. 2년짜리 임시직입니다. 부공3에서 투표가 잘 안되고 그러는데 백 목사님 시무투표 그러면 백 목사님부터 긴장을 합니다. 목사님 가시자마자 시무투표 없애자고 난리를 쳤습니다.
임기 2년입니다. 투표해서 부표가 나면 해임입니다. 해직되는 것이고 보따리 싸는 건데 권한은 하나도 없어집니다. 말하자면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믿는 사람이란 항상 언제입니다. 기회가 따로 없는 겁니다. 항상 힘써라. 그래서 은퇴 제도를 없애놓은 것은 신임을 확인하고 80이 되어도 부표가 안나서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교회 큰 교회 목사님은 30년 동안 시무투표를 안하고 있습니다. 불법입니다. 아직도 목회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교회들이 좋아서 은혜받고 있으면 되는데 절반 절반으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그래도 눌러 앉아있는거지요. 이걸 또 다른 각도로 말하면 말하자면은 신앙생활이 주업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 되었는데 될 일이면 인식이 사고방식이 관이 바뀌어야합니다. 소속과 능동이 인간과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바꾸어져야 들리지 그렇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주업입니다. 거기 맞춰서 가정도 공부도 결혼도 맞춰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조혼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20살 결혼하고 싶은데 안됩니다. 25 안됩니다. 그래서 결혼 안되니까 안 믿는 사람 데려옵니다만은 데려와도 됩니다만은 안 믿는 사람이 조건이 교회는 못 나옵니다. 당신도 가지 마십시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신앙을 포기한다. 안되는 겁니다. 학교 주일날 와라, 주일날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직장, 주일날 출근해라. 천만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주일이면 손해보는 겁니다.
범사에 같은 뜻인데 오래 참음과 양면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 살아갈 때 부딪히니까 참아야하고 하나는 이렇게 하는 생활 자체가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가르침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걸 말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가 전한 걸 확신하고 가르치는 것이지 내 가르치는게 옳지 않다 싶으면 안 가르치는 거지요. 자기 속에 확신을 가지고 가르침으로 경계하며 권하라. 경책과 경계와 권하는 것은 둬로가는 겁니다. 경책을 가장 앞에 둔 것은 사람이 미리 준비하면은 수월한데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당해보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학생들 공부는 미리하는 학생이 많습니까 아닌 학생이 많습니까. 이게 가장 힘든 겁니다.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맞아야 정신 차린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책을 해라. 그리고 경계가 낫습니다. 미리미리 경계하고 경책은 시간도 많이 들고 가장 좋은 것은 권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평소에 미리미리. 3살 전에 교육을 시키면 굉장히 수월하다고 합니다.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가 기도하고 아이가 가르치면 평생이 수월합니다. 세 살 넘어도 어릴 때도 덜한데 초등학교 때는 쉽지 않을 겁니다. 바로 오래 참음이 필요하고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때가 이르리니 이 때는 어떤 때입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나이로 말하면 늙은 때입니다. 교만해진 때이니다. 그릇이 찬 때입니다. 이만하면 됐다 오만한 때입니다. 자라가는 면에서는 아이가 좋은데 모든 면에서 원숙하고 노인이 좋은데 성경에 보면은 존경 받는 많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합니다. 신앙 없는 사람은 늙은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안 늙을 수가 없는데 때가 차는 겁니다. 인격적으로 지식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는 것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 옵니다. 그래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때가 됩니다. 아이도 자라면 자란만큼 때가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교만해졌구나 늙은이가 되었구나 그릇이 찼구나. 망할 때가 되었다 넘어질 때가 되었다. 그게 사람이 교만하고 넘어질 때가 되고 망할 때가 된 그 증거가 뭐냐. 역사 세계도 끝날 때 주님 재림할 때가 되니까 온갖 징조가 나타나듯이 개인적으로 이르면 사람이, 사람이라고 찍은 것은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이 옳은 말이 듣기 싫으면 때가 잃은겁니다. 우리 공회 안에 함께 목회하던 분 중에 몇 분이 길을 달리하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같이 갈 때는 잘 들었고 순종 잘했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많이 알겠거든요. 그러니까 비슷한 줄 압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말하면 자존심 상하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 때가 이르러서 이렇게 복잡하게 된 겁니다.
첫째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바른 말 듣기 싫어하는데 왜 싫어하지요. 자존심 때문에 위신 때문에 듣기 싫어하는 겁니다. 귀가 가렵다는 것은 들린다는 말입니다. 보여도 생기고 들려도 생깁니다. 들리는 귀를 취미들을 여과장치를 달아서 들어야하는데 귀가 정수기 여과장치가 없어서 그러면 귀가 가려워서 가렵습니다. 들린다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어찌됩니까. 보이면 마음이 생깁니다. 들려도 생깁니다. 같은 겁니다. 귀가 가려워서 그 말은 들립니다. 직장가면 들립니다. 보는 것도 들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사욕이 생기는 겁니다. 귀에 여과장치 하지 않고 하면 되는 겁니다. 사욕을 충족시킬 인간의 사욕, 성령의 사욕은 좋은거지만 인간의 사욕은 무저갱이라고 합니다. 인간 욕심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은데 사람마다 욕심이 다 다릅니다. 그 성향에 따라서 성장 과정에 따라서 사람의 욕심은 다 다른데 욕심이 많아서 무저갱이 아니고 돈이 없으면 무저갱이 되고 명예욕에 빠지면 무저갱이 되고 몇 가지 있는 사람도 있고 한 두 가지 사람도 끝을 봐야하는 겁니다.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둔다는 말은 배우는 겁니다. 방법을 찾는 겁니다. 사욕을 쫓을 것을 찾는 겁니다.
살다 보니까 듣고 보고 그래서 자꾸 어찌된다고요, 자꾸 생기는 겁니다. 사욕이 생기고 그 욕심을 채울 방법을 아는 거지요. 그래서 온갖 것들이 다 되게 되는 것이고 별별게 다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돌이켜 옳은 것은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영원을 두고 유익없는 그런 걸 찾아다닙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