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일 금밤
김동민2025-05-02조회 74추천 10
2025년 5월 2일 금밤
찬송: 90장, 91장
본문: 민수기 24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근본적으로 비슷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출발선상에 달리기를 하면 일직선으로 나란히 섭니다. 땅 하면 달려가는데 평소의 연습과 그 사람의 잠재력과 훈련 이런 것들이 따라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많은 차이가 있지요. 마라톤 즈음 되면 차이가 많이납니다. 출발은 꼭 같이 합니다. 두 시간 정도 달려가는 거기서 차이가 많이나게 되는 거지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누구나 다 꼭 같이 태어납니다. 잉태될 때 모든 사람들은 보일락 말락한 세포 하나가 사람입니다. 이게 왕이든 장군이든 네피림이든 또 아주 작은 사람이든 머리 좋은 사람이든 고만 고만한 사람이든 세포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로 자라가지고 갖추고 태어날 때 욥이 시험받을 때 그랬지요. 날 때 어떻게 낳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까. 적신. 무슨 뜻인가요. 적신, 무슨 뜻일까요. 붉을 적 몸 신. 붉고 싱싱한데 아무것도 안 입고 있습니다. 돌아갈 때도 적신으로 가올지라.
잉태될 때 세포 점 하나 10달 돼서 태어날 때도 적신으로 빈손으로 아무것도 교양없이 태어납니다. 곡식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짐승도 그렇고 종자라는 게 있습니다. 안 좋은 종자가 있습니다만은 사람 일은 하나님께서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장단점이 있어서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몰아주지 않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은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은 6000년이 흘렀고 유명한 사람들이 더러더러 있지만 상위 1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거지요. 100명의 1프로면 1명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80억이라고 하는데 80억의 1프로는 8000만명인가요. 역사에 80억만 되겠습니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따지고 볼 때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은 0.001퍼센트도 안되는거지요. 지역마다 시대마다 그런 인물들을 주시지만 예외적입니다. 그들도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잉태될 때 비슷합니다. 태어날 때 거의 같습니다. 살아가다 보면은 사람과 사람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게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느냐, 어머니 뱃속에서는 꼭 같습니다. 태어날 때도 같습니다. 종자가 아주 크게 한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그 세월을 살아갈 현상 세계, 그 상황을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천차만별로 갈라지게 되는 겁니다. 1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6년을 어떻게 어떤 마음 가짐으로 어떤 자세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함으로 집중을 하고 과제를 하고 6년 지나면 완전히 다릅니다. 중학교 3년까지는 서울대 갈 수도 있고 지방대 갈수 있고. 공부해본 사람들 말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열심히 노력하더니 어디 뭐 그냥 덜 실력이 덜한 한의대를 갔다가 더 노력하더니 무슨 의대를 갔다가 더 열심히 하다가 고시 합격을 해서 판사가 됐다던가. 하면 되더라. 그러니까 되는거지요.
하면 된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해봤어, 해보긴 해봤다 이거지요. 하면 된다하고 안된다는 거는 마음 자세부터 완전히 틀립니다. 하면 되고 안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하면 된다하고 자기로 최선 대해서 하는 만큼 사람은 머리는 쓰인만큼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만큼 잘그려집니다. 피아노를 치는 만큼 잘 치게 됩니다. 글을 쓰는 만큼 잘 쓰게 됩니다. 요즘 학교에 학생들이 없으니까 노인들을 모셔다가 학교를 나옵니다. 하니까 되더라고 합니다. 나이가 70인데 80인데 하면 되더라. 안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뭐든지 하면 되는 것이고 하면 된다, 하면 되겠지. 나로써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안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노라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냐. 더욱 따뜻하게 하라, 옷을 입혀줘야 따뜻하지. 배고프면 먹어라 그러면 배가 불러지냐. 먹을 걸 줘야지 배가 부르지 입어야 따뜻해지고
눈이 움직여야하고 뇌가 움직여야하고 내 심신의 활동이 이게 하는 것이고 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는 것을 게임을 많이하면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됩니다. 춤을 추면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됩니다. 영어 공부하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중국어 계속하다보면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도 그런 게 있습니다. 신앙도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이 있지 않냐 노력하고 되느냐 그게 바로 뭐지요 한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네가 그런 사람인줄 아느냐, 은행에라도 맡겨놔야지, 다른 사람에게 줘야지. 한 달란트 있는 자는 있는 것까지 다 뺏겨버렸습니다. 예정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알고 그러는 것이지 예정 핑계로 그러는 것은 게으른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점점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바다 거치고 광야 거치고 그래서 출애굽에서부터 기간이 얼마 즈음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2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서 1년 정도를 하고 다닌 겁니다. 그리고 가나안까지 와서 12명이 갔습니다. 12명이 가면서 각각 딴 길로 가지 않고 조를 짜서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열 두 명이 같이 다녔습니다. 조를 다녀서 따로 다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같은 곳을 같은 기간에 같은 사람들이 같이 봤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이 봤는데 마지막에 보고할 때는 그 보고 내용이 정반대로 둘로 나눠졌습니다. 보는 게 달랐다는 것이고 보고난 다음에 판단이 달랐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인식 생각 사고방식 그 사람의 가치관, 이 사람들로 말하면 믿음이 갈라진겁니다. 열 명과 두 명으로 갈라졌습니다. 같은 것을 같은 기간에 같이 봤는데 판단이 둘로 나눠졌습니다. 둘로 나눠졌으니까 표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항상 두 길, 둘로 나뉘어졌는데 단순히 둘이 아니고 길을 갈 때 갈랫길을 만나면 둘 중 하나인데 하나는 실패고 하나는 성공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돌아오면 되지만 허비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면 사망길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두 길인데 그래서 길을 모를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멈추는 겁니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찾았는데 잘못된 길을 찾았다. 저로써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과거를 회개하는 겁니다. 두 길로 나눠졌습니다. 열 두 사람이 같은 곳을 같은 기간에 같이 봤는데 정 반대로 나뉘어졌습니다. 이게 참 중요한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의 기록된 내용에 보면 12명의 보고를 둘로 덮고 두 가지 종류로 하는 겁니다. 정탐은 12명이었고 둘로 나뉘어졌고 200만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00만명이 또 어떻게 나눠집니까. 둘로 나뉘어집니다. 12명이 둘로 나뉘어졌고 200만명이 두 명이 나뉘어졌습니다. 어제 뭐 재판했는데 12명에서 10명이 유죄, 2명은 무죄 그랬다지요.
12명이 갔는데 10명이 반대쪽 2명이 오른쪽 그걸 듣고 200만명이 들었는데 두 명의 옳은 보고를 듣고 그 길을 선택한 사람은 모세, 여호수아, 갈렙, 아론까지 치면은 네 사람입니다. 200만명 중에서 4명. 절대 절대 다수는 다수를 따라갔습니다. 이게 갈라지는 겁니다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옳은 거 진리는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결코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결코 소수에 있다. 모릅니다. 옳은 게 다수일 수도 소수일 수도 있습니다. 살펴봐야합니다. 따져봐야하고 광야에 죽고 말았는데 네 사람은 옳은 길 선택을 했는데 왜 그렇게 나는 절대 다수가 그 많은 사람이 200만명 중에서 천재가 없었겠습니까. 박사가 없었겠습니까 목사가 없었겠습니까 제사장이 없었겠습니까. 고라는 레위 지파입니다. 머리되는 족장들 많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전부 다가 다수 말 듣고 나갔는데 왜 그렇게 되어졌느냐. 그 원인을 전체를 7가지로 말씀드렸지요. 그 중에 첫째를 한다면 하나님 경외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신앙하게 되는 겁니다. 높이고 두려워하니까 바라보게 되고 그러니까 그 분 말씀을 삼가들고 심청하고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들 12명 중에서 여후수아, 갈렙 두 사람이 찍고 보고한 거 듣고 난리치는 걸 보고 불순종의 형태를 보고 기가 막혀서 옷을 찢고,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왜 나머지 10명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까.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리고 그런데 왜 10명은 우리 가면 죽는다 그랬습니까. 10명은 그들은 우리보다 강해서 죽는다고 하고 여호수아는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가면 이긴다 이럽니다. 왜 악평한 사람은 악평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서워하고 그렇게 됐는가. 여호수아 갈렙은 경외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옛날에는 미개했으니까 이때는 몰랐으니까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뚫린다고 하니까 난리를 쳤습니다. 몇 년 전이죠. 그게 이 나라 국민 수준입니다. 그래놓고 지나서 까마귀 고기를 먹어 다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무죄. 이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나머지 전부 다 어찌 그리될 수 있는가. 우리도 그리 될 수 있는 겁니다.
옳은 길 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나머지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나머지는 같이 따라갔고 모세 아론 여호수아 갈렙은 안 본 게 아닙니다. 홍해 바다를 같이 건넜고 메추라기 같이 먹었고 꼭 같은 기간을 지나며 같이 갔는데 왜 네 사람은 있고 없는가. 이게 우리 모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는데 우리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비를 멈추고 왜 안되는가. 우리도 기도하니까 됩니까. 집회 장소에 비를 달라고 해서 비가 옵니다. 기도 들어주신 거 아닌가요.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지를 못했으니까. 왜 이들은 하나님 경외가 없고 있었을까. 그 원인을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역사는 하후하박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는 후하고 누구에게는 박하게 이게 하후하박입니다. 우리들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햇빛은 같이 내려쬡니다. 내가 진흙이 되면 단단해집니다. 내가 초면 녹아내립니다. 내가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지요.
사과의 맛을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사과는 사과맛이 새콤 달콤하다. 먹어보면 합니다. 음식 맛을 알려면 먹어보면 압니다. 서울의 남대문의 문턱이 뭐로 되어있다고요. 없는지 알려면 가보면 됩니다. 이런 걸 겪어본다 체험한다라고 합니다. 뼈를 한 번 깎아보셨습니까. 뼈와 뼈 사이에 구멍을 뚫어봐서 얼마나 아픈지 압니다. 그때 마취주사를 놨는지 모르겠는데 별 효력이 없습니다. 뼈와 뼈 사이를 박았는대도 기절해버립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에서 그분과의 관계를 실제 해보면 압니다. 그분 말씀을 순종해보면 압니다. 물질에 대해서 경제에 대해서 말라기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걸로 하나님 시험하면 죄가 되는데 십일조로 하면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는지 지켜보면 압니다. 주일을 지켜보고 깨끗하게 살아보고 살아보고 나서 그 다음 살아볼 때 그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압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보는 것입니다. 순종해보는 겁니다. 죄를 안 지어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 준행해보고 순종해보는 겁니다. 순종해보지 않으면 안해봤는데 어찌 압니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안 가본 사람은 제가 말하는 건 남의 말 듣고 하는 겁니다. 가 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은 말의 깊이나 강도나 그게 틀립니다. 먹어본 사람 안 먹어본 사람.
그 사람이 괜찮아 보이던데 하면 아는 사람은 고개를 흔듭니다. 올라올 때 하면 곤란할겁니다. 그분 말이 맞아서 골치가 아픕니다. 먹어본 거 행해본 거 겪어본 거는 많이 틀립니다. 말씀은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대응이 어떻게 나가는지를 살펴봐야합니다. 세밀하게. 내가 연보 생활 제대로 할 때하고 안 할 때하고 살펴보자. 계명을 지킬 때와 안 지킬 때. 살펴보자.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보니까 바로 살 때는 주변에 공기가 달라지더라. 주변의 벌레들이 달라지더라.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더라. 신호등까지 바뀌더라. 하나님 앞에 바로 살 때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퉁명스럽게하는지. 살펴봐야합니다.
세 번째는 이걸 지켜야합니다. 기억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두려움이 생깁니다. 기회가 생기고 실제 자기 생활이 없으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을 해야 살펴봐야 하나님 경외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만큼은 아니더라도 자기만큼 경과가 생겨지게 됩니다. 이게 인내로 되는 만큼 성화가 되게 되는 겁니다. 200만명이라는 사람들은 볼 때는 봤고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원망 또 나버립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끌려서 했지 자기들이 살펴보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자기로써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결국에 생기지 않는 거지요.
오늘 밤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같이 봤는데 판단이 정반대로 나뉘어졌습니다. 사람에 따라 달라진거죠. 왜 그리 되어졌느냐. 순종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라마. 살펴본 사람과 살펴보지 않은 사람이. 강직한 사람과 잊어버린 사람. 이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로 가는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행해보지 않으면 200만명 속에 들어가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겪어보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 세상은 우리 밥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겪어봤으니까 홍해바다 건넜고 반석에 물 마셨고. 그런데도 기억안하니까 잊어버립니다.
200만명처럼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말고 여호수아 갈렙같은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90장, 91장
본문: 민수기 24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근본적으로 비슷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출발선상에 달리기를 하면 일직선으로 나란히 섭니다. 땅 하면 달려가는데 평소의 연습과 그 사람의 잠재력과 훈련 이런 것들이 따라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많은 차이가 있지요. 마라톤 즈음 되면 차이가 많이납니다. 출발은 꼭 같이 합니다. 두 시간 정도 달려가는 거기서 차이가 많이나게 되는 거지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누구나 다 꼭 같이 태어납니다. 잉태될 때 모든 사람들은 보일락 말락한 세포 하나가 사람입니다. 이게 왕이든 장군이든 네피림이든 또 아주 작은 사람이든 머리 좋은 사람이든 고만 고만한 사람이든 세포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로 자라가지고 갖추고 태어날 때 욥이 시험받을 때 그랬지요. 날 때 어떻게 낳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까. 적신. 무슨 뜻인가요. 적신, 무슨 뜻일까요. 붉을 적 몸 신. 붉고 싱싱한데 아무것도 안 입고 있습니다. 돌아갈 때도 적신으로 가올지라.
잉태될 때 세포 점 하나 10달 돼서 태어날 때도 적신으로 빈손으로 아무것도 교양없이 태어납니다. 곡식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짐승도 그렇고 종자라는 게 있습니다. 안 좋은 종자가 있습니다만은 사람 일은 하나님께서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장단점이 있어서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몰아주지 않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은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은 6000년이 흘렀고 유명한 사람들이 더러더러 있지만 상위 1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거지요. 100명의 1프로면 1명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80억이라고 하는데 80억의 1프로는 8000만명인가요. 역사에 80억만 되겠습니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따지고 볼 때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은 0.001퍼센트도 안되는거지요. 지역마다 시대마다 그런 인물들을 주시지만 예외적입니다. 그들도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잉태될 때 비슷합니다. 태어날 때 거의 같습니다. 살아가다 보면은 사람과 사람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게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느냐, 어머니 뱃속에서는 꼭 같습니다. 태어날 때도 같습니다. 종자가 아주 크게 한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그 세월을 살아갈 현상 세계, 그 상황을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천차만별로 갈라지게 되는 겁니다. 1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6년을 어떻게 어떤 마음 가짐으로 어떤 자세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함으로 집중을 하고 과제를 하고 6년 지나면 완전히 다릅니다. 중학교 3년까지는 서울대 갈 수도 있고 지방대 갈수 있고. 공부해본 사람들 말 들어보면 고등학교 때 열심히 노력하더니 어디 뭐 그냥 덜 실력이 덜한 한의대를 갔다가 더 노력하더니 무슨 의대를 갔다가 더 열심히 하다가 고시 합격을 해서 판사가 됐다던가. 하면 되더라. 그러니까 되는거지요.
하면 된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해봤어, 해보긴 해봤다 이거지요. 하면 된다하고 안된다는 거는 마음 자세부터 완전히 틀립니다. 하면 되고 안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하면 된다하고 자기로 최선 대해서 하는 만큼 사람은 머리는 쓰인만큼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만큼 잘그려집니다. 피아노를 치는 만큼 잘 치게 됩니다. 글을 쓰는 만큼 잘 쓰게 됩니다. 요즘 학교에 학생들이 없으니까 노인들을 모셔다가 학교를 나옵니다. 하니까 되더라고 합니다. 나이가 70인데 80인데 하면 되더라. 안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뭐든지 하면 되는 것이고 하면 된다, 하면 되겠지. 나로써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안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노라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냐. 더욱 따뜻하게 하라, 옷을 입혀줘야 따뜻하지. 배고프면 먹어라 그러면 배가 불러지냐. 먹을 걸 줘야지 배가 부르지 입어야 따뜻해지고
눈이 움직여야하고 뇌가 움직여야하고 내 심신의 활동이 이게 하는 것이고 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는 것을 게임을 많이하면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됩니다. 춤을 추면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됩니다. 영어 공부하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중국어 계속하다보면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도 그런 게 있습니다. 신앙도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이 있지 않냐 노력하고 되느냐 그게 바로 뭐지요 한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네가 그런 사람인줄 아느냐, 은행에라도 맡겨놔야지, 다른 사람에게 줘야지. 한 달란트 있는 자는 있는 것까지 다 뺏겨버렸습니다. 예정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알고 그러는 것이지 예정 핑계로 그러는 것은 게으른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점점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바다 거치고 광야 거치고 그래서 출애굽에서부터 기간이 얼마 즈음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2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서 1년 정도를 하고 다닌 겁니다. 그리고 가나안까지 와서 12명이 갔습니다. 12명이 가면서 각각 딴 길로 가지 않고 조를 짜서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열 두 명이 같이 다녔습니다. 조를 다녀서 따로 다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같은 곳을 같은 기간에 같은 사람들이 같이 봤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이 봤는데 마지막에 보고할 때는 그 보고 내용이 정반대로 둘로 나눠졌습니다. 보는 게 달랐다는 것이고 보고난 다음에 판단이 달랐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인식 생각 사고방식 그 사람의 가치관, 이 사람들로 말하면 믿음이 갈라진겁니다. 열 명과 두 명으로 갈라졌습니다. 같은 것을 같은 기간에 같이 봤는데 판단이 둘로 나눠졌습니다. 둘로 나눠졌으니까 표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항상 두 길, 둘로 나뉘어졌는데 단순히 둘이 아니고 길을 갈 때 갈랫길을 만나면 둘 중 하나인데 하나는 실패고 하나는 성공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돌아오면 되지만 허비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면 사망길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두 길인데 그래서 길을 모를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멈추는 겁니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찾았는데 잘못된 길을 찾았다. 저로써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과거를 회개하는 겁니다. 두 길로 나눠졌습니다. 열 두 사람이 같은 곳을 같은 기간에 같이 봤는데 정 반대로 나뉘어졌습니다. 이게 참 중요한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의 기록된 내용에 보면 12명의 보고를 둘로 덮고 두 가지 종류로 하는 겁니다. 정탐은 12명이었고 둘로 나뉘어졌고 200만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00만명이 또 어떻게 나눠집니까. 둘로 나뉘어집니다. 12명이 둘로 나뉘어졌고 200만명이 두 명이 나뉘어졌습니다. 어제 뭐 재판했는데 12명에서 10명이 유죄, 2명은 무죄 그랬다지요.
12명이 갔는데 10명이 반대쪽 2명이 오른쪽 그걸 듣고 200만명이 들었는데 두 명의 옳은 보고를 듣고 그 길을 선택한 사람은 모세, 여호수아, 갈렙, 아론까지 치면은 네 사람입니다. 200만명 중에서 4명. 절대 절대 다수는 다수를 따라갔습니다. 이게 갈라지는 겁니다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옳은 거 진리는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결코 다수에 있지 않다. 옳은 것은 결코 소수에 있다. 모릅니다. 옳은 게 다수일 수도 소수일 수도 있습니다. 살펴봐야합니다. 따져봐야하고 광야에 죽고 말았는데 네 사람은 옳은 길 선택을 했는데 왜 그렇게 나는 절대 다수가 그 많은 사람이 200만명 중에서 천재가 없었겠습니까. 박사가 없었겠습니까 목사가 없었겠습니까 제사장이 없었겠습니까. 고라는 레위 지파입니다. 머리되는 족장들 많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전부 다가 다수 말 듣고 나갔는데 왜 그렇게 되어졌느냐. 그 원인을 전체를 7가지로 말씀드렸지요. 그 중에 첫째를 한다면 하나님 경외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신앙하게 되는 겁니다. 높이고 두려워하니까 바라보게 되고 그러니까 그 분 말씀을 삼가들고 심청하고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들 12명 중에서 여후수아, 갈렙 두 사람이 찍고 보고한 거 듣고 난리치는 걸 보고 불순종의 형태를 보고 기가 막혀서 옷을 찢고,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왜 나머지 10명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까.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리고 그런데 왜 10명은 우리 가면 죽는다 그랬습니까. 10명은 그들은 우리보다 강해서 죽는다고 하고 여호수아는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가면 이긴다 이럽니다. 왜 악평한 사람은 악평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서워하고 그렇게 됐는가. 여호수아 갈렙은 경외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옛날에는 미개했으니까 이때는 몰랐으니까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뚫린다고 하니까 난리를 쳤습니다. 몇 년 전이죠. 그게 이 나라 국민 수준입니다. 그래놓고 지나서 까마귀 고기를 먹어 다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무죄. 이게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나머지 전부 다 어찌 그리될 수 있는가. 우리도 그리 될 수 있는 겁니다.
옳은 길 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나머지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나머지는 같이 따라갔고 모세 아론 여호수아 갈렙은 안 본 게 아닙니다. 홍해 바다를 같이 건넜고 메추라기 같이 먹었고 꼭 같은 기간을 지나며 같이 갔는데 왜 네 사람은 있고 없는가. 이게 우리 모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는데 우리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비를 멈추고 왜 안되는가. 우리도 기도하니까 됩니까. 집회 장소에 비를 달라고 해서 비가 옵니다. 기도 들어주신 거 아닌가요.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지를 못했으니까. 왜 이들은 하나님 경외가 없고 있었을까. 그 원인을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역사는 하후하박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는 후하고 누구에게는 박하게 이게 하후하박입니다. 우리들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햇빛은 같이 내려쬡니다. 내가 진흙이 되면 단단해집니다. 내가 초면 녹아내립니다. 내가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지요.
사과의 맛을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사과는 사과맛이 새콤 달콤하다. 먹어보면 합니다. 음식 맛을 알려면 먹어보면 압니다. 서울의 남대문의 문턱이 뭐로 되어있다고요. 없는지 알려면 가보면 됩니다. 이런 걸 겪어본다 체험한다라고 합니다. 뼈를 한 번 깎아보셨습니까. 뼈와 뼈 사이에 구멍을 뚫어봐서 얼마나 아픈지 압니다. 그때 마취주사를 놨는지 모르겠는데 별 효력이 없습니다. 뼈와 뼈 사이를 박았는대도 기절해버립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에서 그분과의 관계를 실제 해보면 압니다. 그분 말씀을 순종해보면 압니다. 물질에 대해서 경제에 대해서 말라기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걸로 하나님 시험하면 죄가 되는데 십일조로 하면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는지 지켜보면 압니다. 주일을 지켜보고 깨끗하게 살아보고 살아보고 나서 그 다음 살아볼 때 그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압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보는 것입니다. 순종해보는 겁니다. 죄를 안 지어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 준행해보고 순종해보는 겁니다. 순종해보지 않으면 안해봤는데 어찌 압니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안 가본 사람은 제가 말하는 건 남의 말 듣고 하는 겁니다. 가 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은 말의 깊이나 강도나 그게 틀립니다. 먹어본 사람 안 먹어본 사람.
그 사람이 괜찮아 보이던데 하면 아는 사람은 고개를 흔듭니다. 올라올 때 하면 곤란할겁니다. 그분 말이 맞아서 골치가 아픕니다. 먹어본 거 행해본 거 겪어본 거는 많이 틀립니다. 말씀은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대응이 어떻게 나가는지를 살펴봐야합니다. 세밀하게. 내가 연보 생활 제대로 할 때하고 안 할 때하고 살펴보자. 계명을 지킬 때와 안 지킬 때. 살펴보자.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보니까 바로 살 때는 주변에 공기가 달라지더라. 주변의 벌레들이 달라지더라.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더라. 신호등까지 바뀌더라. 하나님 앞에 바로 살 때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퉁명스럽게하는지. 살펴봐야합니다.
세 번째는 이걸 지켜야합니다. 기억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두려움이 생깁니다. 기회가 생기고 실제 자기 생활이 없으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을 해야 살펴봐야 하나님 경외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만큼은 아니더라도 자기만큼 경과가 생겨지게 됩니다. 이게 인내로 되는 만큼 성화가 되게 되는 겁니다. 200만명이라는 사람들은 볼 때는 봤고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원망 또 나버립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끌려서 했지 자기들이 살펴보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자기로써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결국에 생기지 않는 거지요.
오늘 밤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같이 봤는데 판단이 정반대로 나뉘어졌습니다. 사람에 따라 달라진거죠. 왜 그리 되어졌느냐. 순종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라마. 살펴본 사람과 살펴보지 않은 사람이. 강직한 사람과 잊어버린 사람. 이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로 가는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행해보지 않으면 200만명 속에 들어가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겪어보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 세상은 우리 밥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겪어봤으니까 홍해바다 건넜고 반석에 물 마셨고. 그런데도 기억안하니까 잊어버립니다.
200만명처럼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말고 여호수아 갈렙같은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