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0일 수밤
김동민2025-04-30조회 62추천 7
2025년 4월 30일 주일 오전
찬송: 120장, 121장
본문: 민수기 14장 1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200만명 되는 회중입니다. 거의 전부 다지요. 모세 여호수아 갈렙 몇 사람 빼놓고 소리를 높여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이 소리 높힌 충격 받아서 겁이나서 두려움에 떠는 소리입니다. 부르짖는 소리. 왜 이런 소리가 났느냐 가나안 땅에 땅을 탐지해라고 했습니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데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니까 그들 말을 듣고 보내봐라고 한 겁니다. 보내서 한 거니까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두 장정이 메고 올 정도였습니다. 석류와 무화과도 있었고 참 좋은 땅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너무 강하고 견고해서 아낙 자손들은 네피림이라고 영웅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땅은 삼키는 땅입니다. 그 말을 듣고 온 회중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 새도록 백성이 뭐했다고요 백성이 곡이 뭡니까 울었더라. 통곡을 하는 거지요. 왜 이제 죽었다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 아론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애굽 땅에서 죽으나 광야에서 죽으나 싸우다가 죽거나, 비겁하게 말만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참 가관입니다. 죽었거나 광야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호와가, 여호화께서도 아니고 아버지가, 아버지께서 뒤에 붙은 말이 틀린 거지요.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면 사정이 있겠구나 평소에 못되게 굴면 버릇없이 되는 겁니다. 전에 말씀 드렸던가요. 두 사람이 꼭 같은 말씀을 보고를 드렸는데 한 사람은 혼을 내시고 한 사람은 그냥 그대로 다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꼭 같은 내용을 보고를 드렸는데 한 사람에게는 혼을 내시고 한 사람은 받아들이시고 참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혼을 내신 그 사람은 나한테 네놈이 고자질하는구나. 평소에 그런 짓을 하니까. 그 두 사람은 친구입니다. 나이도 같습니다. 목사님 아들입니다, 정치꾼입니다. 정치로 봅니다. 말도 그리하고 참 묘하지요. 너는 정치꾼이고 진실이 없고 그러니까 혼을 내시는 겁니다. 한 사람은 순수합니다. 순전합니다. 요셉이 아버지한테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한 것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형들의 탈선이 걱정되어서 한 겁니다.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이것은 아이들도 그렇고 신앙 생활에 계산을 깔고 복선을 깔아놓고 계산해놓고 대화하는 거지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그리 되는 거지요.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속습니다. 사울은 정치꾼입니다. 다윗은 순수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야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한테 메여서 다윗을 따라가지 못한게 그것입니다. 참 그런 경우가 불행이 되는 것이지요. 다윗은 순수하고 순진하고 깨끗합니다. 그런 사람은 보배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히멜렉입니까.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을 주고 그 제사장이 누구였습니까. 사울이 불러가지고 왜 다윗에게 이렇게 도와주라고 하니까 대사장이 임금님 신하 중에서 다윗만큼 충성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그 사람을 위해 한 두 번이 아니고 그런 것인데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서 달리 듣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고 그런 겁니다. 평소 사람 됨됨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참 중요한 겁니다. 한꺼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모세 아론 원망하며 말합니다.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
모세가 가서 보내라 하니까 바로가 백성들한테 갚아주지요. 어떻게 갚지요. 첫 번째 모세가 바로 제사 드릴 거니까 보내주십시오 하나님이 가랍니다. 너희 일이나 하라고 하고 어떻게 고통을 주지요.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그럴 때 짚을 옛날에 섞어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거든요. 그때는 짚을 주면서 벽돌을 만들게 했는데 앞으로 짚 주지 말아라. 그 시간에 짚을 구해서 벽돌 만들라. 그리고 벽돌 만드는 숫자는 감하지 말고. 그냥 받아서 구워도 되는데 재료까지 찾아와야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같고 죽을 맛이 되는 거지요. 고통이 모세 아론 만나서 원망을 합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기도 들으시고 구원하시러 하셨다 감사해놓고 바로 원망합니다. 같은 편이면 어려움 만나면 칼질 하고 총질하고 그래야겠습니까 서로 의논해서 그리 되어야겠습니까. 의논하고 그래야하는데 원망부터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 종자들이 계속입니다. 이런 줄 아시기 때문에 열 번이나 강팍하게 해서 완전히 망하게 초토화된 것은 바로의 강팍도 강팍이지만은 백성들의 강팍도 그렇습니다. 기어코 애굽에 못 붙어있도록 쳐서 세상에 붙어있으면 믿는 사람이 세상이 박살나버립니다. 그 땅으로 망하게 하려 하는고. 하나님께서 그저께 새벽 기도 때 아브라함부터 이때까지 대략 700년 세월이 흘렀는데 수많은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있었고 이삭으로 번죄 있었고 갈등도 있었고 이스마엘과 하갈 사건도 있었고 이스마엘이 가고 이삭이 또 그 다음 세대로 오고 리브가가 두 아들 쌍둥이 낳고 에서와 쌍둥이 낳고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감옥 갔고 풍년 흉년 있었고 종 노릇 했고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대해서 기억할 것을 우리 사람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이 완전자고 전지전능자고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은 슬픔이 없다 하나님은 고통이 없다 감정이 없다. 이런 오해를 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기 때문에 피곤함이 있을까. 피곤함이 있습니다. 피곤하십니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대답하기 곤란하시겠지요. 외식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느니라. 공비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고 그걸 보고 있는 하나님께서 공비하였느니라. 사람같은 그런 피곤함은 아닐지라도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원형이십니다. 짐승도 마음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습니다. 느낌이 있습니다. 이성 비판이 있습니다. 유다서를 가지고 반론을 했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한다. 그러기는 사람같은 이성이 없다는 말이지 이성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피곤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고 전지 전능자고 엿새 동안에 말씀으로 우주 영계 다 지으시는 분이니까 피곤할까 그러는데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는 부리고 써먹고 써먹어도 고장이 나도 피곤함을 모릅니다. 그 분은 피곤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700년 동안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니까 팔짱끼고 구경만하시고 아무 노력만 안하시고 수고없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는 겁니다. 이것도 우리가 새로 느껴봐야하는 면입니다. 우리 사람 차원이 아닐 뿐이지. 그래서 이들이 본문에 기록된 불순종 강팍함 고린도전서 15장에 이걸 기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원망하다가, 우상 섬기다가 많이 죽었으니까 그런 일을 거울로 기록해주셨으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
원망하다가 죽었고 시험하다가 죽었고 밤새도록 부르짖고 그러다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놓고 모세 갈렙을 머리 칠려는 거까지 해놓고 오늘 교독 읽은 그런 내용과 너희들이 이렇게 했으니까 듣고나니까 막 끝나고 나서 14장 39절입니다. 모세가 이 말로 모든 자손이 슬퍼하여 아침이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 가로되 여기있나이다. 이게 뭡니까. 그리고 모세가 가지마라 가면 죽는다 했는데 또 올라갑니다. 가다가 많이 죽었지요. 이것이 이들이었고 사람이었고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사람이 좋을 때는 한 없이 좋고 간도 쓸개도 붙었다가 온갖 말 다 하고 이게 인간이고 이게 우리들이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정리하면은 본문에 기록된 불순종의 사람들의 형태, 전체로 봐야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형태가 되어놓고 징계로 저주로 변덕이 됐닥 죽고 또 원망을 수도없이 많이합니다.
광야 40년에 죽은 대다수가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 장정이 60만명 이상이었지요. 그 죽은 이유가 자연사가 아니라 원망하다가 징계로 죽었습니다. 그 형태를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겠다. 이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부터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다가 천국 건설까지 원인을 일곱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여겼다는 말은 뭐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하나님 높은 줄 모르고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실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르고 안 믿은 거지요. 세 번째는 경시했습니다. 심층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듣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는 원망 불평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섯 번째는 늘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가나안 소망은 천국 소망입니다. 일편단심 해골이라도 메고 가라 틈만나면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도 이적도 다 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순서가 이리 되니까 껍데기만 따라갔지 진정으로 믿고 그리 되고 싶은 욕망도 없었고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소망하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천국을 소망하고 되겠다는 그런 겁니다. 이런 형태가 나오게 되어진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겠고 믿고 해야겠고 신청해야겠고 늘 현실마다 감사 기쁨으로 충만하고 가득 차야겠고 살아가는 세월 속에 성화가 되어져 가야겠습니다. 이런 불순종 형태가 되고 마는 겁니다. 불순종 형태와 원인을 기억함과 동시 하나님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과 다른 차원이나 같은 그런 상황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느끼는 느낌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은 살이 박혔다든지 찔러도 덜아플 수 있습니다. 무감각한 사람은 감성이 무감각한 사람은 그런 느낌이 덜할 수 있습니다. 희로애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딘 사람들은 잠을 잠 자고 예민한 사람들은 바스락거려도 잠이 깨고 하나님은 우리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예민하신 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같다.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도망쳐버린다고 합니다. 예민하시다 그런 말입니다. 기뻐 잘하면 기뻐 어쩔 줄 모르시고 진노가 쌓이면 얼마나 쌓이는지 모릅니다. 성품 날카롭고 예밀하고 세밀함을 생각하면서 그런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20장, 121장
본문: 민수기 14장 1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200만명 되는 회중입니다. 거의 전부 다지요. 모세 여호수아 갈렙 몇 사람 빼놓고 소리를 높여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이 소리 높힌 충격 받아서 겁이나서 두려움에 떠는 소리입니다. 부르짖는 소리. 왜 이런 소리가 났느냐 가나안 땅에 땅을 탐지해라고 했습니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데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니까 그들 말을 듣고 보내봐라고 한 겁니다. 보내서 한 거니까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두 장정이 메고 올 정도였습니다. 석류와 무화과도 있었고 참 좋은 땅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너무 강하고 견고해서 아낙 자손들은 네피림이라고 영웅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땅은 삼키는 땅입니다. 그 말을 듣고 온 회중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 새도록 백성이 뭐했다고요 백성이 곡이 뭡니까 울었더라. 통곡을 하는 거지요. 왜 이제 죽었다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 아론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애굽 땅에서 죽으나 광야에서 죽으나 싸우다가 죽거나, 비겁하게 말만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참 가관입니다. 죽었거나 광야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호와가, 여호화께서도 아니고 아버지가, 아버지께서 뒤에 붙은 말이 틀린 거지요.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면 사정이 있겠구나 평소에 못되게 굴면 버릇없이 되는 겁니다. 전에 말씀 드렸던가요. 두 사람이 꼭 같은 말씀을 보고를 드렸는데 한 사람은 혼을 내시고 한 사람은 그냥 그대로 다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꼭 같은 내용을 보고를 드렸는데 한 사람에게는 혼을 내시고 한 사람은 받아들이시고 참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혼을 내신 그 사람은 나한테 네놈이 고자질하는구나. 평소에 그런 짓을 하니까. 그 두 사람은 친구입니다. 나이도 같습니다. 목사님 아들입니다, 정치꾼입니다. 정치로 봅니다. 말도 그리하고 참 묘하지요. 너는 정치꾼이고 진실이 없고 그러니까 혼을 내시는 겁니다. 한 사람은 순수합니다. 순전합니다. 요셉이 아버지한테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한 것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형들의 탈선이 걱정되어서 한 겁니다.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이것은 아이들도 그렇고 신앙 생활에 계산을 깔고 복선을 깔아놓고 계산해놓고 대화하는 거지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그리 되는 거지요.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속습니다. 사울은 정치꾼입니다. 다윗은 순수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야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한테 메여서 다윗을 따라가지 못한게 그것입니다. 참 그런 경우가 불행이 되는 것이지요. 다윗은 순수하고 순진하고 깨끗합니다. 그런 사람은 보배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히멜렉입니까.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을 주고 그 제사장이 누구였습니까. 사울이 불러가지고 왜 다윗에게 이렇게 도와주라고 하니까 대사장이 임금님 신하 중에서 다윗만큼 충성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그 사람을 위해 한 두 번이 아니고 그런 것인데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서 달리 듣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고 그런 겁니다. 평소 사람 됨됨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참 중요한 겁니다. 한꺼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모세 아론 원망하며 말합니다.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
모세가 가서 보내라 하니까 바로가 백성들한테 갚아주지요. 어떻게 갚지요. 첫 번째 모세가 바로 제사 드릴 거니까 보내주십시오 하나님이 가랍니다. 너희 일이나 하라고 하고 어떻게 고통을 주지요.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그럴 때 짚을 옛날에 섞어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거든요. 그때는 짚을 주면서 벽돌을 만들게 했는데 앞으로 짚 주지 말아라. 그 시간에 짚을 구해서 벽돌 만들라. 그리고 벽돌 만드는 숫자는 감하지 말고. 그냥 받아서 구워도 되는데 재료까지 찾아와야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같고 죽을 맛이 되는 거지요. 고통이 모세 아론 만나서 원망을 합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기도 들으시고 구원하시러 하셨다 감사해놓고 바로 원망합니다. 같은 편이면 어려움 만나면 칼질 하고 총질하고 그래야겠습니까 서로 의논해서 그리 되어야겠습니까. 의논하고 그래야하는데 원망부터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 종자들이 계속입니다. 이런 줄 아시기 때문에 열 번이나 강팍하게 해서 완전히 망하게 초토화된 것은 바로의 강팍도 강팍이지만은 백성들의 강팍도 그렇습니다. 기어코 애굽에 못 붙어있도록 쳐서 세상에 붙어있으면 믿는 사람이 세상이 박살나버립니다. 그 땅으로 망하게 하려 하는고. 하나님께서 그저께 새벽 기도 때 아브라함부터 이때까지 대략 700년 세월이 흘렀는데 수많은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있었고 이삭으로 번죄 있었고 갈등도 있었고 이스마엘과 하갈 사건도 있었고 이스마엘이 가고 이삭이 또 그 다음 세대로 오고 리브가가 두 아들 쌍둥이 낳고 에서와 쌍둥이 낳고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감옥 갔고 풍년 흉년 있었고 종 노릇 했고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대해서 기억할 것을 우리 사람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이 완전자고 전지전능자고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은 슬픔이 없다 하나님은 고통이 없다 감정이 없다. 이런 오해를 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기 때문에 피곤함이 있을까. 피곤함이 있습니다. 피곤하십니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대답하기 곤란하시겠지요. 외식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느니라. 공비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고 그걸 보고 있는 하나님께서 공비하였느니라. 사람같은 그런 피곤함은 아닐지라도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원형이십니다. 짐승도 마음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습니다. 느낌이 있습니다. 이성 비판이 있습니다. 유다서를 가지고 반론을 했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한다. 그러기는 사람같은 이성이 없다는 말이지 이성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피곤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고 전지 전능자고 엿새 동안에 말씀으로 우주 영계 다 지으시는 분이니까 피곤할까 그러는데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는 부리고 써먹고 써먹어도 고장이 나도 피곤함을 모릅니다. 그 분은 피곤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700년 동안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니까 팔짱끼고 구경만하시고 아무 노력만 안하시고 수고없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는 겁니다. 이것도 우리가 새로 느껴봐야하는 면입니다. 우리 사람 차원이 아닐 뿐이지. 그래서 이들이 본문에 기록된 불순종 강팍함 고린도전서 15장에 이걸 기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원망하다가, 우상 섬기다가 많이 죽었으니까 그런 일을 거울로 기록해주셨으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
원망하다가 죽었고 시험하다가 죽었고 밤새도록 부르짖고 그러다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놓고 모세 갈렙을 머리 칠려는 거까지 해놓고 오늘 교독 읽은 그런 내용과 너희들이 이렇게 했으니까 듣고나니까 막 끝나고 나서 14장 39절입니다. 모세가 이 말로 모든 자손이 슬퍼하여 아침이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 가로되 여기있나이다. 이게 뭡니까. 그리고 모세가 가지마라 가면 죽는다 했는데 또 올라갑니다. 가다가 많이 죽었지요. 이것이 이들이었고 사람이었고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사람이 좋을 때는 한 없이 좋고 간도 쓸개도 붙었다가 온갖 말 다 하고 이게 인간이고 이게 우리들이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정리하면은 본문에 기록된 불순종의 사람들의 형태, 전체로 봐야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형태가 되어놓고 징계로 저주로 변덕이 됐닥 죽고 또 원망을 수도없이 많이합니다.
광야 40년에 죽은 대다수가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 장정이 60만명 이상이었지요. 그 죽은 이유가 자연사가 아니라 원망하다가 징계로 죽었습니다. 그 형태를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겠다. 이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부터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다가 천국 건설까지 원인을 일곱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여겼다는 말은 뭐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하나님 높은 줄 모르고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실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르고 안 믿은 거지요. 세 번째는 경시했습니다. 심층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듣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는 원망 불평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섯 번째는 늘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가나안 소망은 천국 소망입니다. 일편단심 해골이라도 메고 가라 틈만나면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도 이적도 다 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순서가 이리 되니까 껍데기만 따라갔지 진정으로 믿고 그리 되고 싶은 욕망도 없었고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소망하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천국을 소망하고 되겠다는 그런 겁니다. 이런 형태가 나오게 되어진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겠고 믿고 해야겠고 신청해야겠고 늘 현실마다 감사 기쁨으로 충만하고 가득 차야겠고 살아가는 세월 속에 성화가 되어져 가야겠습니다. 이런 불순종 형태가 되고 마는 겁니다. 불순종 형태와 원인을 기억함과 동시 하나님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과 다른 차원이나 같은 그런 상황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느끼는 느낌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은 살이 박혔다든지 찔러도 덜아플 수 있습니다. 무감각한 사람은 감성이 무감각한 사람은 그런 느낌이 덜할 수 있습니다. 희로애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딘 사람들은 잠을 잠 자고 예민한 사람들은 바스락거려도 잠이 깨고 하나님은 우리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예민하신 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같다.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도망쳐버린다고 합니다. 예민하시다 그런 말입니다. 기뻐 잘하면 기뻐 어쩔 줄 모르시고 진노가 쌓이면 얼마나 쌓이는지 모릅니다. 성품 날카롭고 예밀하고 세밀함을 생각하면서 그런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