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5일 금밤
김동민2025-04-25조회 82추천 8
2025년 4월 25일 금밤
찬송: 146장, 197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42절 ~ 44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형체의 이름은 같습니다. 형체가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는데 영광이 다 달라서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강,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 해의 가치가 있고 달의 가치가 있고 별의 가치가 있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이 지구 상에 아무도 못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물질로 된 태양 해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겁니다. 해만큼은 못해도 달만큼 영향을 미칩니다. 달이 중요하다 해보다 중요하진 않고 해만큼 중요하진 않습니다. 값어치를 따진다면 태양의 가격을 메길 수 있겠습니까. 해는 해대로 우리에게 중요하고 아주 가치가 높고 크고 달은 달대로 가치가 높고 큰데 둘을 비교하면 달은 해에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둘 중에 하나에 고르라곤 할 순 없으나 달은 없어도 해는 없으면 안되는 거지요. 달도 달의 가치가 있고 해도 해의 가치가 있는데 이건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됩니다.
별들도 다 가치가 있습니다. 별은 전부 다 알 수 없으나 지구도 하나의 별이지 않습니까. 별 전체가 다 다이아몬드로 된 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구만한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값이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어마어마하겠습니까 얼마 안 나겠지요. 금이 모래처럼 많으면 금 값은 모래값이 될겁니다. 금이 모래만큼 많으면 모래보다 쓸모가 없지 않을까 싶네요. 하늘에 우주에 수 많은 별들이 떠 있습니다. 다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 영향은 많은 별들이 있는데 가치가 있고 쓸모가 있으나 달만큼 가치는 없는 겁니다. 달만큼 화성은 쓸모가 없습니다. 달이 중요한데 해만큼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해도 형체가 있고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달도 형체가 있고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별이 다 그런데 그것들마다 다 영광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겁니다.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
다 부활하면 부활할 건데 부활한 사람들의 모두 다 부활한다 이 말이지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니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데.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는 몸으로 부활한다는데 부활한 사람과 부활한 사람의 형체의 가치를 보니까 전부 다 다 가졌는데 가치 차지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이 말이지요.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한 단계 내려가면 말씀하시기를 형체를 말씀했습니다. 부활의 원리를 생각해봤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이 전제되어서 죽어야 살지 죽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겁니다. 여기 51절에 보니까 교독을 51절까지 했지요. 50절 보니까.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피와 고깃덩어리지요. 부활하기 전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은 안에 있고 사망 안에 있음으로 유업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령한 나라입니다. 신령한 나라를 신령하지 못한 육의 몸을 가지고는 받을 수 없는 겁니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지금은 썩어질 겁니다.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인생은 짧고 뭐는 길다고 합니까. 예술은 길다 그리 말하지요. 예술하는 사람들. 그래서 예술만 길겠습니까. 대통령은 5년인데 나라는 계속 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특별히 대통령이 나쁘지 않으면 북한의 김정은도 잘 다스리고 싶고 잘 먹이고 싶지 굶어 죽이는 그런 정권자는 없습니다. 정치 방향이 달라서 문제가 되고 생산 문제가 이게 있으니까 문제가 되지만은 다 먹여살려서 이름내고 싶고 그럽니다. 그래서 세계 역사에 정치를 굉장히 잘한, 잘 먹여 살린 왕들은 거의 독재자들입니다. 철권통치자들. 민주주의를 말한 사람들은 다 굶게 만들었습니다. 역사에 나라 부강 시키고 배불리한 왕들이 거의 다 독재자입니다. 다는 아니라도. 비율로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에 유혹받지 못한다. 죽은 것은 죽지 아니할 것으로 유혹 받지 못하는 거지요. 우리 육 고깃덩어리는 이걸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어서 부활시키는 겁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직접적으로는 형체의 영광의 차이와 같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과 다 다른 것이 이것처럼 부활한 사람들도 부활한 사람들끼리 영광이 다르다. 그 다음에 사람이 죽어야하는데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시 살며, 에덴 동산 아담 하와는 죽지도 않고 병들지 않습니다. 그대로 영상한다 그리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 에덴 동산이 무궁 세계는 아닙니다. 하늘나라 천국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언젠가는 범죄할 가능성을 할 상태였고 항상 상종하고 있는 상황이 에덴 동산입니다. 죄가 없으니까 늙지 않고 죽지도 않으나 어느 한 순간 죄가 들어오면 세상은 다 부패되게 되어있습니다. 죽음 넘어 되어있는 사람은 없게 되어있는 겁니다. 다시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없는 몸입니다. 하늘나라도 그런 나라고 죽어야 삽니다.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산다, 두 번째는 죽어야사는데 부활의 두 번째는 심을 때 그 심는 씨앗이 심을 때는 씨앗을 심습니다. 밀을 말씀하신 것은 왜 많은 곡식 중에 밀을 말씀하셨을까요. 왜 밀을 말씀하셨을까요. 밀이 가장 흔한 겁니다. 일반적인 것.
음식에 식용에 가장 일반적인 게 밀가루입니다. 밀 알갱이 심었는데 심을 때에는 곡식 종자 알멩이 심었는데 심고 형체를 가지면 심어서 죽으면 형체로 나오게 되어있는 겁니다. 밀 알갱이와 형체는 비교 못할 만큼 차이가 많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밀 하나 심었는데 밀이 죽음으로 싹이 나서 자라면 그 크기도 모양도 결실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은 것이 형체 영광이 같은 게 같다. 심을 때는 밀 같은 알갱이 종자 하나 심는데 나중에는 확대 되어서 자라게 되는 게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두 가지가 가지고 오늘의 우리들이 살아갈 우리 심신의 언행심사 내 마음과 몸 움직이는 우리의 심신의 활동 언행심사 하나가 뭐와 같은 겁니까.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심정입니다. 내 마음을 빼앗았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 말 한마디 하나 하는 것. 그걸 빼앗는다 이 말이지요. 죽은 자의 부활도 같다 말씀하신 건데 눈으로 한 번 보고 말 한 마디 하고 생각 하나 하고 행동 하나 하는 거 이거 하나 하나가 뭐와 같은 겁니까.
이게 밀 알갱이 하나를 심는 겁니다. 밀을 한 1000평 밭에 농사를 짓습니다. 벼를 심는 장수는 논이라고 그럽니다. 밭이라고 하면 콩밭 보리밭 밀밭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1000평 디는 밭이 있습니다. 1000평에 밀 몇 개를 심어야 1000평이 다 차겠습니까. 밀을 심을 때 손에 잡고 뿌리거든요.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 시에 바구니 같은 대바구니에 종자를 안고 뿌립니다. 대개는 좋은 땅에 떨어지겠지요. 1000평 되는 밭에 밀 알갱이를 몇 개를 뿌려야 다 차겠습니까. 하나하나마다 다 생명이라서 하나하나 마다 싹이 나고 수백 개 넘습니다. 그러면 밀 한 개 심었는데 이게 싹이나고 자라서 거기서 밀이 익으면 수백개가 난다 이 말이지요. 수백개를 가지고 다시 심으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거지요. 마치 인류가 퍼질 때 인종이 퍼져나가듯이 밀 하나 가지고 논리로 퍼져나가면 온 세상을 다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 심었는데 하나에서 나오는 밀 알이 수백 개 나옵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한 알 심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커지고 많아진다는 그런 말이 되는 것이지요.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가장 그 실상에 가까운 걸 가져다가 가르치는 게 비유입니다. 가장 가까운 자연 계시를 끌어다가 한 것입니다. 하나의 비유와 같은 건데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밀도 실상인데 밀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식물에 한 알 심은 게 한 개인데 싹이 자라면 미래의 숫자가 비교 못할만큼 되듯이 이와 같은 것이지요. 우리들이 가진 내 몸과 마음은 그래서 하시기를 죽은 자의 것도 이와 같으니 썩을 내 몸, 썩을 물질 썩어질 그런 심신의 기능들 썩고 없어질 것들. 부활의 날에는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요. 글자 차이는 별로 다른 바가 없는 거 같습니다. 죽을 것과 죽지 않을 것의 차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비교가 됩니까.
썩을 것과 썩지 않은 것의 차이는 차원과 같습니다. 차원이 다른 거지요. 그런데 부활의 날도 썩지 아니하는 겁니다. 백 원을 투자했는데 1억원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투자 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공기업을 만들 때 제일 처음 주식을 매매한 겁니까. 사는 사람이 달라지는 건데 앞으로 폭등할 것이기 때문에 한 주에 100원에 다 팝니다 그러면 다 팔려버립니다. 이게 나중에 만원 될지 10만원 될지 모르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형체를 주시고 확대될 거 가지고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나고 육의 몸으로 다 산다. 그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사는 몸과 마음에 움직임 하나하나 전부다가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심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한 올 한 올 심는 것처럼 그런 겁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비교 못 할 만큼 영광스러운 그 날에 드러나게 된다는 거지요. 이걸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고 성령이 부족하니까 이걸 느끼지 못하고 예사로 지나갈 뿐입니다.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죽어야 삽니다. 그런데 안 죽을 수가 있느냐. 죽어야 살고 죽음은 사는데 안 죽을 수가 있느냐. 부활의 원리를 계속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부활의 종류는 택자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불택자들도 부활입니다. 생명 부활입니다. 고깃덩어리 부활이고 생명 부활이고 첫째 부활입니다. 무슨 구원에 속한 것입니까. 기본 구원에 속한 겁니다. 기본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상관 없이 공으로 주시는 겁니다. 우리들 하기 싫어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부활을 말씀하신 것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다고 전파하였거늘 부활에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 어떤 몸으로 오냐,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는 것은 공으로 주는 그것이 아닙니다. 죽어야 산다 그 말은 안 죽는 사람 있습니까. 저절로 되는 건데,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이 만들어 간 형체가 무한히 차이를 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이것을 만들어가는 그런 형체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건설 구원적으로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어야 산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모르는 겁니까. 그런데 건설 구원적으로 들어가면 죽을 자가 죽어야 죽을 때는 죽어야 그게 영광의 형체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썩어질 이 심신이 현실을 살아가며 주거야 할 죽지 말아야할 살아나지 못합니다. 너의 씨가 살아나지 못하겠고 네 현실을 살아갈 때 그 욕심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어야하는 자존심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어야 할 네 삐뚤어진 생각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 그 말은 바울은 완전히 죽은자로 살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 심신이 죽어야 될 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살면 부활은 없는 겁니다. 영광의 형체 부활은 없는겁니다. 오늘의 죽을 자가 죽으면 사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죽는 겁니다. 죽으면 살고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게 우리 앞에 펼쳐진 건설구원 기능구원이 되는 것이고 부활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리 그런 분들의 생애는 수 없이 죽은 자로 살게 되는 거지요. 산 제사로 자기를 드리는 겁니다.
살아있는데 제물이 된 거죠. 활동의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겁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주의 뜻이 살고 세상은 죽고 그리될 때 되는 것이고 나는 살아있고 주님은 없고 내 뜻은 살고 주의 뜻은 죽고 그리 살아나가면 영광으로 살아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의 원리에서 죽어야 사는 말은 지식적으로 알면 됩니다. 실제 현실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내게 있는 썩을 거 약한 것 육의 것이 죽음으로 살아야 비로소 부활의 영광이 된 채로 부활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자가 난가 생각보면 압니다. 부활의 것으로 살아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46장, 197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42절 ~ 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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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형체의 이름은 같습니다. 형체가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는데 영광이 다 달라서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강,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 해의 가치가 있고 달의 가치가 있고 별의 가치가 있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이 지구 상에 아무도 못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물질로 된 태양 해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겁니다. 해만큼은 못해도 달만큼 영향을 미칩니다. 달이 중요하다 해보다 중요하진 않고 해만큼 중요하진 않습니다. 값어치를 따진다면 태양의 가격을 메길 수 있겠습니까. 해는 해대로 우리에게 중요하고 아주 가치가 높고 크고 달은 달대로 가치가 높고 큰데 둘을 비교하면 달은 해에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둘 중에 하나에 고르라곤 할 순 없으나 달은 없어도 해는 없으면 안되는 거지요. 달도 달의 가치가 있고 해도 해의 가치가 있는데 이건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됩니다.
별들도 다 가치가 있습니다. 별은 전부 다 알 수 없으나 지구도 하나의 별이지 않습니까. 별 전체가 다 다이아몬드로 된 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구만한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값이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어마어마하겠습니까 얼마 안 나겠지요. 금이 모래처럼 많으면 금 값은 모래값이 될겁니다. 금이 모래만큼 많으면 모래보다 쓸모가 없지 않을까 싶네요. 하늘에 우주에 수 많은 별들이 떠 있습니다. 다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 영향은 많은 별들이 있는데 가치가 있고 쓸모가 있으나 달만큼 가치는 없는 겁니다. 달만큼 화성은 쓸모가 없습니다. 달이 중요한데 해만큼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해도 형체가 있고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달도 형체가 있고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별이 다 그런데 그것들마다 다 영광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겁니다.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
다 부활하면 부활할 건데 부활한 사람들의 모두 다 부활한다 이 말이지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니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데.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는 몸으로 부활한다는데 부활한 사람과 부활한 사람의 형체의 가치를 보니까 전부 다 다 가졌는데 가치 차지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이 말이지요.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한 단계 내려가면 말씀하시기를 형체를 말씀했습니다. 부활의 원리를 생각해봤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이 전제되어서 죽어야 살지 죽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겁니다. 여기 51절에 보니까 교독을 51절까지 했지요. 50절 보니까.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피와 고깃덩어리지요. 부활하기 전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은 안에 있고 사망 안에 있음으로 유업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령한 나라입니다. 신령한 나라를 신령하지 못한 육의 몸을 가지고는 받을 수 없는 겁니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지금은 썩어질 겁니다.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인생은 짧고 뭐는 길다고 합니까. 예술은 길다 그리 말하지요. 예술하는 사람들. 그래서 예술만 길겠습니까. 대통령은 5년인데 나라는 계속 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특별히 대통령이 나쁘지 않으면 북한의 김정은도 잘 다스리고 싶고 잘 먹이고 싶지 굶어 죽이는 그런 정권자는 없습니다. 정치 방향이 달라서 문제가 되고 생산 문제가 이게 있으니까 문제가 되지만은 다 먹여살려서 이름내고 싶고 그럽니다. 그래서 세계 역사에 정치를 굉장히 잘한, 잘 먹여 살린 왕들은 거의 독재자들입니다. 철권통치자들. 민주주의를 말한 사람들은 다 굶게 만들었습니다. 역사에 나라 부강 시키고 배불리한 왕들이 거의 다 독재자입니다. 다는 아니라도. 비율로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에 유혹받지 못한다. 죽은 것은 죽지 아니할 것으로 유혹 받지 못하는 거지요. 우리 육 고깃덩어리는 이걸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어서 부활시키는 겁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직접적으로는 형체의 영광의 차이와 같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과 다 다른 것이 이것처럼 부활한 사람들도 부활한 사람들끼리 영광이 다르다. 그 다음에 사람이 죽어야하는데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시 살며, 에덴 동산 아담 하와는 죽지도 않고 병들지 않습니다. 그대로 영상한다 그리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 에덴 동산이 무궁 세계는 아닙니다. 하늘나라 천국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언젠가는 범죄할 가능성을 할 상태였고 항상 상종하고 있는 상황이 에덴 동산입니다. 죄가 없으니까 늙지 않고 죽지도 않으나 어느 한 순간 죄가 들어오면 세상은 다 부패되게 되어있습니다. 죽음 넘어 되어있는 사람은 없게 되어있는 겁니다. 다시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없는 몸입니다. 하늘나라도 그런 나라고 죽어야 삽니다.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산다, 두 번째는 죽어야사는데 부활의 두 번째는 심을 때 그 심는 씨앗이 심을 때는 씨앗을 심습니다. 밀을 말씀하신 것은 왜 많은 곡식 중에 밀을 말씀하셨을까요. 왜 밀을 말씀하셨을까요. 밀이 가장 흔한 겁니다. 일반적인 것.
음식에 식용에 가장 일반적인 게 밀가루입니다. 밀 알갱이 심었는데 심을 때에는 곡식 종자 알멩이 심었는데 심고 형체를 가지면 심어서 죽으면 형체로 나오게 되어있는 겁니다. 밀 알갱이와 형체는 비교 못할 만큼 차이가 많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밀 하나 심었는데 밀이 죽음으로 싹이 나서 자라면 그 크기도 모양도 결실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은 것이 형체 영광이 같은 게 같다. 심을 때는 밀 같은 알갱이 종자 하나 심는데 나중에는 확대 되어서 자라게 되는 게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두 가지가 가지고 오늘의 우리들이 살아갈 우리 심신의 언행심사 내 마음과 몸 움직이는 우리의 심신의 활동 언행심사 하나가 뭐와 같은 겁니까.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심정입니다. 내 마음을 빼앗았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 말 한마디 하나 하는 것. 그걸 빼앗는다 이 말이지요. 죽은 자의 부활도 같다 말씀하신 건데 눈으로 한 번 보고 말 한 마디 하고 생각 하나 하고 행동 하나 하는 거 이거 하나 하나가 뭐와 같은 겁니까.
이게 밀 알갱이 하나를 심는 겁니다. 밀을 한 1000평 밭에 농사를 짓습니다. 벼를 심는 장수는 논이라고 그럽니다. 밭이라고 하면 콩밭 보리밭 밀밭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1000평 디는 밭이 있습니다. 1000평에 밀 몇 개를 심어야 1000평이 다 차겠습니까. 밀을 심을 때 손에 잡고 뿌리거든요.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 시에 바구니 같은 대바구니에 종자를 안고 뿌립니다. 대개는 좋은 땅에 떨어지겠지요. 1000평 되는 밭에 밀 알갱이를 몇 개를 뿌려야 다 차겠습니까. 하나하나마다 다 생명이라서 하나하나 마다 싹이 나고 수백 개 넘습니다. 그러면 밀 한 개 심었는데 이게 싹이나고 자라서 거기서 밀이 익으면 수백개가 난다 이 말이지요. 수백개를 가지고 다시 심으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거지요. 마치 인류가 퍼질 때 인종이 퍼져나가듯이 밀 하나 가지고 논리로 퍼져나가면 온 세상을 다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 심었는데 하나에서 나오는 밀 알이 수백 개 나옵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한 알 심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커지고 많아진다는 그런 말이 되는 것이지요.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가장 그 실상에 가까운 걸 가져다가 가르치는 게 비유입니다. 가장 가까운 자연 계시를 끌어다가 한 것입니다. 하나의 비유와 같은 건데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밀도 실상인데 밀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식물에 한 알 심은 게 한 개인데 싹이 자라면 미래의 숫자가 비교 못할만큼 되듯이 이와 같은 것이지요. 우리들이 가진 내 몸과 마음은 그래서 하시기를 죽은 자의 것도 이와 같으니 썩을 내 몸, 썩을 물질 썩어질 그런 심신의 기능들 썩고 없어질 것들. 부활의 날에는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요. 글자 차이는 별로 다른 바가 없는 거 같습니다. 죽을 것과 죽지 않을 것의 차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비교가 됩니까.
썩을 것과 썩지 않은 것의 차이는 차원과 같습니다. 차원이 다른 거지요. 그런데 부활의 날도 썩지 아니하는 겁니다. 백 원을 투자했는데 1억원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투자 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공기업을 만들 때 제일 처음 주식을 매매한 겁니까. 사는 사람이 달라지는 건데 앞으로 폭등할 것이기 때문에 한 주에 100원에 다 팝니다 그러면 다 팔려버립니다. 이게 나중에 만원 될지 10만원 될지 모르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형체를 주시고 확대될 거 가지고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나고 육의 몸으로 다 산다. 그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사는 몸과 마음에 움직임 하나하나 전부다가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심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한 올 한 올 심는 것처럼 그런 겁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비교 못 할 만큼 영광스러운 그 날에 드러나게 된다는 거지요. 이걸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고 성령이 부족하니까 이걸 느끼지 못하고 예사로 지나갈 뿐입니다.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죽어야 삽니다. 그런데 안 죽을 수가 있느냐. 죽어야 살고 죽음은 사는데 안 죽을 수가 있느냐. 부활의 원리를 계속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부활의 종류는 택자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불택자들도 부활입니다. 생명 부활입니다. 고깃덩어리 부활이고 생명 부활이고 첫째 부활입니다. 무슨 구원에 속한 것입니까. 기본 구원에 속한 겁니다. 기본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상관 없이 공으로 주시는 겁니다. 우리들 하기 싫어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부활을 말씀하신 것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다고 전파하였거늘 부활에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 어떤 몸으로 오냐, 죽은 자의 말도 이와 같다는 것은 공으로 주는 그것이 아닙니다. 죽어야 산다 그 말은 안 죽는 사람 있습니까. 저절로 되는 건데,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이 만들어 간 형체가 무한히 차이를 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이것을 만들어가는 그런 형체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건설 구원적으로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어야 산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모르는 겁니까. 그런데 건설 구원적으로 들어가면 죽을 자가 죽어야 죽을 때는 죽어야 그게 영광의 형체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썩어질 이 심신이 현실을 살아가며 주거야 할 죽지 말아야할 살아나지 못합니다. 너의 씨가 살아나지 못하겠고 네 현실을 살아갈 때 그 욕심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어야하는 자존심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어야 할 네 삐뚤어진 생각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 그 말은 바울은 완전히 죽은자로 살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 심신이 죽어야 될 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살면 부활은 없는 겁니다. 영광의 형체 부활은 없는겁니다. 오늘의 죽을 자가 죽으면 사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죽는 겁니다. 죽으면 살고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게 우리 앞에 펼쳐진 건설구원 기능구원이 되는 것이고 부활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리 그런 분들의 생애는 수 없이 죽은 자로 살게 되는 거지요. 산 제사로 자기를 드리는 겁니다.
살아있는데 제물이 된 거죠. 활동의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겁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주의 뜻이 살고 세상은 죽고 그리될 때 되는 것이고 나는 살아있고 주님은 없고 내 뜻은 살고 주의 뜻은 죽고 그리 살아나가면 영광으로 살아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의 원리에서 죽어야 사는 말은 지식적으로 알면 됩니다. 실제 현실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내게 있는 썩을 거 약한 것 육의 것이 죽음으로 살아야 비로소 부활의 영광이 된 채로 부활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자가 난가 생각보면 압니다. 부활의 것으로 살아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