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3일 수밤
김동민2025-04-23조회 106추천 9
2025년 4월 23일 수밤
찬송: 32장, 33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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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지 창조가 6000년을 잡으면 에덴 동산에서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겠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그대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원하시려고 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으로 죄가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죄 없는 분으로 사시면 죽지 않으나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야함으로 당신은 죄가 없는 분인데 짓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게 된 겁니다. 근본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사람으로 오셨고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다 담당하셔서 주님에게 다 했기 때문에 주님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죽으시게 된겁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죄의 형벌만 받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영원한 죄 형벌만 받으셨고 영원한 죽음으로, 끝이 없는 건데 예수님 자체는 죄가 없음으로 다시 죄값을 치른 다음에 3일만에 부활을 시키신 겁니다. 그때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 죄 형벌 다 담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기둥 삼아 하셨기 때문에, 원하고 원하시므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을 동참하셨기 때문에 3일만에 감당하신 겁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의 인성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으니까 이제는 사람과 다른 그런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해하기 쉬운데 예수님의 인성의 부활은 꼭 같은 것입니다. 다만 부활의 몸이었으니까 다시는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시공을 초월한 몸으로 했다면 다르고 우리와 꼭 같은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도성인신과 무한한 희생이 되는 겁니다. 다시는 인성을 벗어버릴 수 없도록 된 겁니다. 우리와 꼭 같은 인성으로 부활하는 겁니다. 그렇게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을 보는 사도들과 제자들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죽으셨다 부활하셨다고 하는 건데 그 당시 상황을 마태복음을 보면 천사가 내려와서 모든 걸 굴러버리고 그 상황이 되니까 반쯤 죽어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고 그러니까 기절초풍을 하는 거지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난다 하더니 살아났습니다 하니까 난리가 난거지요. 대제사장들이 돈을 잔뜩 주면서 조는 동안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그래라. 그래서 입막음을 해서 그 와중에 부활하신 게 말하자면 반신반의해서 뭍혀진 것도 있을 것이고 전파된겁니다.
막는 마귀역사도 있고 전파되는 역사도 있는 겁니다. 부활을 하셨는데 그 광경을 본 제자들 사도들 통해서 전파가 되었는데 그런데 못 본 사람들이 많으니까 못 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야합니까. 그 사실을 아는 방법은 방법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요. 그 말이 믿을만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났다. 믿을 수 있는 말입니까. 믿기 어려운 말이지요. 그래서 믿을 사람만 믿게 된 겁니다. 안 그런 사람은 안 믿게 된 것이고. 죽음 가운데 살아나기 어려울까 하나님이라는 분이 실존하시는 그 분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다는 건 어느 게 더 어렵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계는 두고 물질계는 아니까 이 모든 것을 그 엿새동안에 하루에 몇억만년 낸다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 그게 엿새고 우주를 말씀으로 지었다 이게 믿기가 쉽습니까 부활 믿는 게 쉽습니까. 부활 믿는 게 더 쉽지 않은가요.
예정과 목적부터 주권 섭리까지 말하자면 믿을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가득찬게 성경입니다. 그분의 창조가 믿어지고 예정이 믿어지고 주권이 믿어지고 구원 역사가 믿어지는 그게 큰 은혜고 복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나셨다 전파되었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날 리가 없는데, 그러나 죽었다가 사후 세계를 보고 와서 상황을 보고 설명했다든지 그런 사람들은 없으니까 부활한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엘리사 엘리야가 살렸고 살려냈지만은 스스로 죽은 자가 살아난 경우는 없으니까. 그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못 믿은 사람이 많은 거지요. 전파됐는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느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부활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는 걸 기본으로 깔려있어야합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자라갈수록 기본이 중요합니다. 이걸 다른 각도로 처음 사람, 초기의 초심의 그것이 기본이고 기본 원리고 기본 자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이게 익어지고 숙달되어 능숙하게 되어지고 차근 차근 사람의 직급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초심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더 자라지 못하고 거기서 오만한 자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걸 에베소 교회에는 처음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부활 소망의 도다. 이게 안되면 안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지 않는 소망이 소망이다. 우리의 미래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고, 필연적이고 절대적이며 모두에게 다가오는 그 미래가 부활의 그 미래입니다. 그 미래를 바라보고 부활의 그날 모두가 다 죽어야하고 살아야하는 그 날에 마음을 두고 그날을 준비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생활의 기본인 겁니다.
그래서 복을 받아서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사람이 바로되고 경제가 넉넉해지고, 경제는 1학년 짜입니다. 3년만 바로 노력하면은 남부럽지 않은 경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산 분들은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믿어도 경제가 안 풀리는 것은 그만큼 본인 문제입니다. 생각문제, 경제는 수입이 있고 지출이 있지요. 그래서 많은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한 달에 100만원 벌어도 적게 쓰면 모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안 모이는 겁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경제가 안 풀리면 본인을 돌아봐야합니다. 수입은 열심히하면 됩니다. 계명 지키고 기본적인 신앙생활하면 풀려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1학년입니다. 예수믿는 신앙 생활에서 경제 복을 받고 직장과 사업을 하는 것이지요. 공부도 잘하고 다복하게 잘 태어나서 주일학생들은 미인들이고 미남들입니다. 어찌 모두 잘생겼든지.
얼마나 복스럽습니까, 그리 살고 그리 잘 살면 이게 바로 복이 아니냐. 여기서 그치면 1, 2학년에서 그치는 거지요. 그게 다 아브라함의 복이고 따라갔던 롯의 복입니다. 그 복이 들어서 아브라함은 크게 성공했고 그 복이 들어서 롯은 망해버렸습니다. 1학년 복이고 표시판이기 때문에 우리 소망이 아닌 겁니다.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계명을 지키니 복을 주시는구나. 세상 복을 통해서 부활을 그날을 그거 준비하라는거지. 금광을 파고 들어가다가 예를 들어서 수천 미터를 파고 들어가면 터질 건데 100미터 파고 들어가니까 쪼가리가 몇 개 나오거든요. 그거 이만하면 됐다 하고 가버리면 더 없는거지요. 마지막에 노다지를 캐면은 비교도 못할만큼 되는데. 억만금을 가져도 세상 계실 때 많은 사람 병을 고쳤고 그런데 대표적으로 나사로,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셨고 그 나사로 지금 어디있지요. 죽었습니다.
살아났지만 또 죽었습니다. 고쳐주신 환자들 다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 먹은 그 만나는 농사지어 먹은 게 아닙니다. 물은 우물에서 마신 것 아닙니다. 신령한 음식,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 원망하고 죄지은게 오늘날 우리들이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육의 복을 두고도 썩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 것이다. 이게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다 첫 번째인겁니다. 전부 속화되고 타락된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화 되었다는 말이고 교회가 이런 부활의 소망을 잊어버렸다 이거지요. 이 세상에 실력이 있으면 권력에 명예에 거기에 소망을 두고 거기로 빠지니까 속화되고 타락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리 되는 건 신앙도 아닌 겁니다.
첫째 기억합시다. 우리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두 번째 근거가 있는 건데 예수님 부활이 우리 부활의 근거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뭐가 전제가 됩니까. 죽음이 전제되고 부활하셨고 근거 되어서 우리 부활이 있게 된 겁니다. 만에 하나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없는 것이고 미완성이고 곧 실패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셔서 부활이 되었고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고 근거가 마련되게 된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부활할 때 형체는 교리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나 더욱 더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예수님 믿고 하나님 공경합시다. 13살 때 백영희 학생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겁니다. 버릇이 없다는 겁니다. 어른을 모른다는 겁니다.
옛날에 말에 뭐도 순서가 있다, 그러니까 어른을 모르는 겁니다. 어른을 모르면 그거 사람도 아닙니다. 옛날 유교 공자는 구원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집안의 큰 형님 아버지 아버님 어른입니다. 하늘처럼 모시는 겁니다. 군사부일체라고 그러지요. 선생님의 뭐도 안 밟아요. 선생님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고 하지요. 학교 선생님 그림자는 안 밟아야하고 교회 선생님 그림자야 뭐. 저는 눈으로 보니까 학교 선생님 중에서도 대단한 분들 있습니다. 우리 공회 다니는 분들은 대단한 분입니다. 안 다닌 분 중에서도 그렇지만요. 선생님의 그림자를 안 밟으면 군사부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성경은 거꾸로입니다. 부모님이 첫째 선생님이 두 번째 세상이 세 번째
그래서 부활의 형체를 공부할 때는 예수님 믿고 공경합니다. 그러면 참 좋겠다 한 것처럼 복되게 봅니다. 어긋나게 한 번 보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해도 복이 없는 생각만 합니다. 복 없는 말 합니다. 참 불행하거든요. 사람이 진실하게 좋게 복되게 생각을 하고 그러면 참 좋은데 그래서 복된 길로 대화하는 게 엉뚱한 거 끄잡아내서 그런 겁니다. 참 그럴 때마다 불행하다. 직접 말을 안해도 같은 생각해도 그렇게 할까. 그런 거지요. 전도 들을 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된 생각입니다. 좋지 않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죄의 몸도 아니고 입고 있던 낡아진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거거든요. 껍데기도 영의 옷은 마음입니다. 마음의 옷이 몸입니다. 몸의 옷이 의복입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으면 그 사람이 잘 꾸미면 티가 나는 겁니다. 몸을 바꿔 입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죽어봐야 죽음 너머 세계를 비로소 의식한다고 탄식합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시던지요, 그런데 부활의 몸은 늙지도 않습니다. 병도 안 듭니다. 병 들어보셨지요. 감기도 콜록콜록 무슨 병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죽지도 않습니다. 죄 없는 상황에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합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날을 기다리고 지금이야 살기 좋으니까, 이 세상이 험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너무너무 험한 50년대 그러니까 사는 게 괴롭습니다. 그래서 사는 거나 죽는 거나 아등바등하지도 안하고. 그래서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 경제가 발전되어서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입을 거 가득 찼고 이 세상이 좋으면 굉장히 불리합니다. 이 시대에 신앙있는 사람들이 드문 것이고 내가 다시 올 때 말세지말에서 믿는 자를 보겠냐.
부활의 형체를 기억하십시다. 예수님 부활할 때 그 몸과 같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몸이니까 살과 뼈가 있는데 이게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세상 부활할 때 보일 수도 있는데 부활의 형체일 수도 있는 겁니다. 부활의 원리인데, 부활의 원리가 뭐냐면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치가 되겠느냐. 라면 끓여먹으려면 가스레인지를 켜고 물이 끓으면 넣어서 하면 라면이 됩니다. 그게 라면 끓이는 방법이고 원리입니다. 밥하는 원리가 있고 비행기 날아가는 원리가 있고 다 그런거지요. 그것처럼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나냐, 그 원리가 뭐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냐. 성령이 기록하시길을 어리석은 자야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하게 알아야할 것을 모르면 어리석다고 하는 겁니다. 당연하게 알아야하는데 모르고 또 모르면 어리석은 겁니다. 부활을 어떻게 당연히 압니까. 당연하지요. 아브라함은 알았는데. 믿음으로 깨달았는데 알고보니 천지 만드실 때 자연으로 다 넣어야하는데. 모두 씨뿌려봤습니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합니다. 씨의 종자, 하나씩 구해가지고 모두 알겠지만은 심어본 사람은 압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앗을 심으면 심은 그대로 있으면 싹이 안 납니다. 몇 년 가도 안 됩니다. 안되면 다 흙이 되어버리는 거고, 그 씨앗은 나면 죽습니다. 새 생명이 나는 겁니다. 그게 부활의 원리다. 너희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하고 죽으면 부활한다 그 말입니다. 같은 말이 되지요. 누구든 때되면 다 부활한다는 겁니다. 역사에 살다간 사람 치고는 부활 안할 사람은 없으므로 필연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부활하느니라, 그게 부활의 원리이다. 형체를 심는 게 아니고 종자를 심는다. 물질도 그렇게 커지는데 그래서 오늘의 우리들은 육의 몸 아무것도 아닌건데 이게 하나하면 부활의 이것이 기능을 하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되면 영광으로 부활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부활의 영광의 차이입니다.
땅을 샀는데 한 평에 만원을 샀습니다. 10년 지나니 100만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10평만 샀고 100평을 샀고 10000평을 샀습니다. 그게 100만원 가면 100원짜리 산 사람하고 몇 배가 나는 겁니까. 부활의 그날의 영광이 나는 겁니다. 해와 달과 별과 별들이 다르듯이 부활의 형체고 기능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겁니다. 크게 4가지로 놨습니다. 기억해야하고 부활의 근거 그게 우리 부활의 근거입니다. 신령한 형체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원리를 두 가지로 죽어야 살고 살아날 때 형태의 모습은 크게 영광스럽게 되는 네 가지로 기억하면서 부활의 원리를 생각해보고 이 날을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찬송: 32장, 33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지 창조가 6000년을 잡으면 에덴 동산에서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겠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그대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원하시려고 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으로 죄가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죄 없는 분으로 사시면 죽지 않으나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야함으로 당신은 죄가 없는 분인데 짓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게 된 겁니다. 근본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사람으로 오셨고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다 담당하셔서 주님에게 다 했기 때문에 주님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죽으시게 된겁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죄의 형벌만 받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영원한 죄 형벌만 받으셨고 영원한 죽음으로, 끝이 없는 건데 예수님 자체는 죄가 없음으로 다시 죄값을 치른 다음에 3일만에 부활을 시키신 겁니다. 그때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 죄 형벌 다 담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기둥 삼아 하셨기 때문에, 원하고 원하시므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을 동참하셨기 때문에 3일만에 감당하신 겁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의 인성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으니까 이제는 사람과 다른 그런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해하기 쉬운데 예수님의 인성의 부활은 꼭 같은 것입니다. 다만 부활의 몸이었으니까 다시는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시공을 초월한 몸으로 했다면 다르고 우리와 꼭 같은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도성인신과 무한한 희생이 되는 겁니다. 다시는 인성을 벗어버릴 수 없도록 된 겁니다. 우리와 꼭 같은 인성으로 부활하는 겁니다. 그렇게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을 보는 사도들과 제자들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죽으셨다 부활하셨다고 하는 건데 그 당시 상황을 마태복음을 보면 천사가 내려와서 모든 걸 굴러버리고 그 상황이 되니까 반쯤 죽어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고 그러니까 기절초풍을 하는 거지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난다 하더니 살아났습니다 하니까 난리가 난거지요. 대제사장들이 돈을 잔뜩 주면서 조는 동안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그래라. 그래서 입막음을 해서 그 와중에 부활하신 게 말하자면 반신반의해서 뭍혀진 것도 있을 것이고 전파된겁니다.
막는 마귀역사도 있고 전파되는 역사도 있는 겁니다. 부활을 하셨는데 그 광경을 본 제자들 사도들 통해서 전파가 되었는데 그런데 못 본 사람들이 많으니까 못 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야합니까. 그 사실을 아는 방법은 방법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요. 그 말이 믿을만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났다. 믿을 수 있는 말입니까. 믿기 어려운 말이지요. 그래서 믿을 사람만 믿게 된 겁니다. 안 그런 사람은 안 믿게 된 것이고. 죽음 가운데 살아나기 어려울까 하나님이라는 분이 실존하시는 그 분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다는 건 어느 게 더 어렵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계는 두고 물질계는 아니까 이 모든 것을 그 엿새동안에 하루에 몇억만년 낸다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 그게 엿새고 우주를 말씀으로 지었다 이게 믿기가 쉽습니까 부활 믿는 게 쉽습니까. 부활 믿는 게 더 쉽지 않은가요.
예정과 목적부터 주권 섭리까지 말하자면 믿을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가득찬게 성경입니다. 그분의 창조가 믿어지고 예정이 믿어지고 주권이 믿어지고 구원 역사가 믿어지는 그게 큰 은혜고 복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나셨다 전파되었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날 리가 없는데, 그러나 죽었다가 사후 세계를 보고 와서 상황을 보고 설명했다든지 그런 사람들은 없으니까 부활한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엘리사 엘리야가 살렸고 살려냈지만은 스스로 죽은 자가 살아난 경우는 없으니까. 그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못 믿은 사람이 많은 거지요. 전파됐는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느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부활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는 걸 기본으로 깔려있어야합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자라갈수록 기본이 중요합니다. 이걸 다른 각도로 처음 사람, 초기의 초심의 그것이 기본이고 기본 원리고 기본 자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이게 익어지고 숙달되어 능숙하게 되어지고 차근 차근 사람의 직급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초심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더 자라지 못하고 거기서 오만한 자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걸 에베소 교회에는 처음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부활 소망의 도다. 이게 안되면 안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지 않는 소망이 소망이다. 우리의 미래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고, 필연적이고 절대적이며 모두에게 다가오는 그 미래가 부활의 그 미래입니다. 그 미래를 바라보고 부활의 그날 모두가 다 죽어야하고 살아야하는 그 날에 마음을 두고 그날을 준비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생활의 기본인 겁니다.
그래서 복을 받아서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사람이 바로되고 경제가 넉넉해지고, 경제는 1학년 짜입니다. 3년만 바로 노력하면은 남부럽지 않은 경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산 분들은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믿어도 경제가 안 풀리는 것은 그만큼 본인 문제입니다. 생각문제, 경제는 수입이 있고 지출이 있지요. 그래서 많은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한 달에 100만원 벌어도 적게 쓰면 모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안 모이는 겁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경제가 안 풀리면 본인을 돌아봐야합니다. 수입은 열심히하면 됩니다. 계명 지키고 기본적인 신앙생활하면 풀려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1학년입니다. 예수믿는 신앙 생활에서 경제 복을 받고 직장과 사업을 하는 것이지요. 공부도 잘하고 다복하게 잘 태어나서 주일학생들은 미인들이고 미남들입니다. 어찌 모두 잘생겼든지.
얼마나 복스럽습니까, 그리 살고 그리 잘 살면 이게 바로 복이 아니냐. 여기서 그치면 1, 2학년에서 그치는 거지요. 그게 다 아브라함의 복이고 따라갔던 롯의 복입니다. 그 복이 들어서 아브라함은 크게 성공했고 그 복이 들어서 롯은 망해버렸습니다. 1학년 복이고 표시판이기 때문에 우리 소망이 아닌 겁니다.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계명을 지키니 복을 주시는구나. 세상 복을 통해서 부활을 그날을 그거 준비하라는거지. 금광을 파고 들어가다가 예를 들어서 수천 미터를 파고 들어가면 터질 건데 100미터 파고 들어가니까 쪼가리가 몇 개 나오거든요. 그거 이만하면 됐다 하고 가버리면 더 없는거지요. 마지막에 노다지를 캐면은 비교도 못할만큼 되는데. 억만금을 가져도 세상 계실 때 많은 사람 병을 고쳤고 그런데 대표적으로 나사로,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셨고 그 나사로 지금 어디있지요. 죽었습니다.
살아났지만 또 죽었습니다. 고쳐주신 환자들 다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 먹은 그 만나는 농사지어 먹은 게 아닙니다. 물은 우물에서 마신 것 아닙니다. 신령한 음식,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 원망하고 죄지은게 오늘날 우리들이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육의 복을 두고도 썩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 것이다. 이게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다 첫 번째인겁니다. 전부 속화되고 타락된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화 되었다는 말이고 교회가 이런 부활의 소망을 잊어버렸다 이거지요. 이 세상에 실력이 있으면 권력에 명예에 거기에 소망을 두고 거기로 빠지니까 속화되고 타락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리 되는 건 신앙도 아닌 겁니다.
첫째 기억합시다. 우리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두 번째 근거가 있는 건데 예수님 부활이 우리 부활의 근거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뭐가 전제가 됩니까. 죽음이 전제되고 부활하셨고 근거 되어서 우리 부활이 있게 된 겁니다. 만에 하나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없는 것이고 미완성이고 곧 실패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셔서 부활이 되었고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고 근거가 마련되게 된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부활할 때 형체는 교리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나 더욱 더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예수님 믿고 하나님 공경합시다. 13살 때 백영희 학생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겁니다. 버릇이 없다는 겁니다. 어른을 모른다는 겁니다.
옛날에 말에 뭐도 순서가 있다, 그러니까 어른을 모르는 겁니다. 어른을 모르면 그거 사람도 아닙니다. 옛날 유교 공자는 구원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집안의 큰 형님 아버지 아버님 어른입니다. 하늘처럼 모시는 겁니다. 군사부일체라고 그러지요. 선생님의 뭐도 안 밟아요. 선생님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고 하지요. 학교 선생님 그림자는 안 밟아야하고 교회 선생님 그림자야 뭐. 저는 눈으로 보니까 학교 선생님 중에서도 대단한 분들 있습니다. 우리 공회 다니는 분들은 대단한 분입니다. 안 다닌 분 중에서도 그렇지만요. 선생님의 그림자를 안 밟으면 군사부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성경은 거꾸로입니다. 부모님이 첫째 선생님이 두 번째 세상이 세 번째
그래서 부활의 형체를 공부할 때는 예수님 믿고 공경합니다. 그러면 참 좋겠다 한 것처럼 복되게 봅니다. 어긋나게 한 번 보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해도 복이 없는 생각만 합니다. 복 없는 말 합니다. 참 불행하거든요. 사람이 진실하게 좋게 복되게 생각을 하고 그러면 참 좋은데 그래서 복된 길로 대화하는 게 엉뚱한 거 끄잡아내서 그런 겁니다. 참 그럴 때마다 불행하다. 직접 말을 안해도 같은 생각해도 그렇게 할까. 그런 거지요. 전도 들을 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된 생각입니다. 좋지 않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죄의 몸도 아니고 입고 있던 낡아진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거거든요. 껍데기도 영의 옷은 마음입니다. 마음의 옷이 몸입니다. 몸의 옷이 의복입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으면 그 사람이 잘 꾸미면 티가 나는 겁니다. 몸을 바꿔 입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죽어봐야 죽음 너머 세계를 비로소 의식한다고 탄식합니다. 지금도 선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시던지요, 그런데 부활의 몸은 늙지도 않습니다. 병도 안 듭니다. 병 들어보셨지요. 감기도 콜록콜록 무슨 병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죽지도 않습니다. 죄 없는 상황에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합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날을 기다리고 지금이야 살기 좋으니까, 이 세상이 험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너무너무 험한 50년대 그러니까 사는 게 괴롭습니다. 그래서 사는 거나 죽는 거나 아등바등하지도 안하고. 그래서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 경제가 발전되어서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입을 거 가득 찼고 이 세상이 좋으면 굉장히 불리합니다. 이 시대에 신앙있는 사람들이 드문 것이고 내가 다시 올 때 말세지말에서 믿는 자를 보겠냐.
부활의 형체를 기억하십시다. 예수님 부활할 때 그 몸과 같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몸이니까 살과 뼈가 있는데 이게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세상 부활할 때 보일 수도 있는데 부활의 형체일 수도 있는 겁니다. 부활의 원리인데, 부활의 원리가 뭐냐면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치가 되겠느냐. 라면 끓여먹으려면 가스레인지를 켜고 물이 끓으면 넣어서 하면 라면이 됩니다. 그게 라면 끓이는 방법이고 원리입니다. 밥하는 원리가 있고 비행기 날아가는 원리가 있고 다 그런거지요. 그것처럼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나냐, 그 원리가 뭐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냐. 성령이 기록하시길을 어리석은 자야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하게 알아야할 것을 모르면 어리석다고 하는 겁니다. 당연하게 알아야하는데 모르고 또 모르면 어리석은 겁니다. 부활을 어떻게 당연히 압니까. 당연하지요. 아브라함은 알았는데. 믿음으로 깨달았는데 알고보니 천지 만드실 때 자연으로 다 넣어야하는데. 모두 씨뿌려봤습니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합니다. 씨의 종자, 하나씩 구해가지고 모두 알겠지만은 심어본 사람은 압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앗을 심으면 심은 그대로 있으면 싹이 안 납니다. 몇 년 가도 안 됩니다. 안되면 다 흙이 되어버리는 거고, 그 씨앗은 나면 죽습니다. 새 생명이 나는 겁니다. 그게 부활의 원리다. 너희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하고 죽으면 부활한다 그 말입니다. 같은 말이 되지요. 누구든 때되면 다 부활한다는 겁니다. 역사에 살다간 사람 치고는 부활 안할 사람은 없으므로 필연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부활하느니라, 그게 부활의 원리이다. 형체를 심는 게 아니고 종자를 심는다. 물질도 그렇게 커지는데 그래서 오늘의 우리들은 육의 몸 아무것도 아닌건데 이게 하나하면 부활의 이것이 기능을 하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되면 영광으로 부활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부활의 영광의 차이입니다.
땅을 샀는데 한 평에 만원을 샀습니다. 10년 지나니 100만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10평만 샀고 100평을 샀고 10000평을 샀습니다. 그게 100만원 가면 100원짜리 산 사람하고 몇 배가 나는 겁니까. 부활의 그날의 영광이 나는 겁니다. 해와 달과 별과 별들이 다르듯이 부활의 형체고 기능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겁니다. 크게 4가지로 놨습니다. 기억해야하고 부활의 근거 그게 우리 부활의 근거입니다. 신령한 형체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원리를 두 가지로 죽어야 살고 살아날 때 형태의 모습은 크게 영광스럽게 되는 네 가지로 기억하면서 부활의 원리를 생각해보고 이 날을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