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7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4-27조회 80추천 7
2025년 4월 27일 주일 오후
찬송: 17장, 81장
본문: 민수기 14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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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7장의 가사는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써놨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을 따라서 자연이나 사물은 지식의 정도 깊이의 정도 감성의 정도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모든 짐승 새 나무를 솔로몬이 정의를 내려서 다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기록되어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연의 세계를 보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보면 참 신비롭다고 합니다. 평소에 자주 주셨는데 백 목사님이 가시기 한 달 전 즈음인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었고 그 말은 뭘로 지었다는 건가요. 이치로 지었다는 것이고 부활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연성,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치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과정이 다 말씀으로 지었음으로 이치로 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논리적입니다. 아주 세밀하고 체계적이고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질서적입니다. 뒤죽박죽으로 아무렇게나 되어있는 게 아닙니다. 과학이 21세기 최첨단으로 발달해서 밝혀내는데 그래서 무신론이 많아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까 다른 답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들 스스로도 진화론은 말이 안 되는 말인줄 그들이 압니다. 그저 추측이고 추론일 뿐이지 말이 안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는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화론도 체계적이고 질서적으로 되어있거든요. 그 어느 하나도 되어진 게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알 하나도 배경을 찾아보면 전부다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 바탕이랄까 그런 거 하나 하나가 바닷가의 전체적으로 같지만 많이 다른 게 많을 건데 이건 이리 생겼고 저건 저리 생겼고 하나하나 전부다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지 모래알 하나도 대충 생긴 것이 없습니다. 못 느껴서 줄 뿐이지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연의 세계를 천체 물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을 연구하지 못하나 달도 무수한 별들도 구름까지도 무지개 까지도 비오는 것까지도 신비하기 짝이 없고 날마다 딛고 사는 땅도 그 땅이 그렇게 신비한 것이고 땅에 딛고 사는 것도 신비한 것이지요. 지구가 둥근데 옛날에는 평평해서 그 위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위에 살고 있고 붙어있는거지요. 공 위에다가 물건 얹으면 얹어지나요. 평평하게 얹어야 얹어지는데, 그런데 지구 전부가 원형인데 다 하고 있잖습니까. 그게 안 굴러떨어지고 있는건데 중력의 원리로 그러고 있으니 신기하기 짝이 없는 줄 아는 겁니다.
존재들의 출생을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땅에 씨앗을 심는데 심었는데 밀 하나 심었는데 이게 자랄 때는 말하자면 둥치가 되고 둥치에서 가지가 나오고 잎사귀 나오고 열매를 맺고 신비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되풀이 되는 것이고 예사로 생각하나 돌려돌려 생각하면 참 신비롭다. 그런 거지요. 사람이 잉태될 때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포 하나가 잉태되어서 자라서 세포 하나에서 팔다리 나오고 몸통 나오고 뇌가 생겨지고 심장이 생겨지고 발이 생겨지고 발톱이 생겨지고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할 겁니까. 그 전부 다가 하나님의 솜씨고 이치라는 거지요. 그 하나하나를 해서 물질계 우주 안에 있는 형성 과정과 활동으로 인해 생긴 또 다른 결과물과 숫자가 무수한데 그게 신비롭기 짝이 없다는 것인데 그걸 신비롭게 그렇게 하셨을까. 신비롭게 주시고 알려주신 목적이 뭘까. 왜 그렇게 신비롭게 주셨겠습니까. 제가 자꾸 질문을 드리니까 설교 끊어진다고 하니까 안 해도 한번씩 드려야 잠도 안 들고 하기 때문에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할 수 있도록 합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그건 자연 세계 전부 다입니다. 여기 있는 존재 전부 다가 아름답다. 아름답다, 신비롭다. 특정한 하나만 그런 게 아니고 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곤충도 바이러스 하나 까지도 모래 하나 까지도 형성이 되기 까지에 신기롭기 짝이 없는데 세계를 신비롭게 하는 것인데 신비한 세계를 물질 세계를 보여주고 계실까. 무엇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까. 무한한 영생을 가르치는 겁니다. 물질세계를 통해서 하늘나라 영계의 무한한 신비로움을 짐작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보고 또 보고 깨닫고 그래서 성도가 이 땅의 신앙생활이 천국갔는데 억만년 후에 세월이 흘렀습니다. 억만년 후에 갔는데 오만 곳을 다 돌아다녔는데 억만년 후에 갔는데 처음보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존재들이 어서 오십시오하고 그러는데 어린 양의 대속이 당신이 맺혔고 우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렇게 찬양을 하더라도, 억만년 후에도 끝이 없는 것인겁니다. 그게 무궁세계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겁니다.
찬송가 17장 작사자가 여기까지 알고 하신건지 모르겠지만은 그런 겁니다. 이 세상 아름다운 하나님 자연의 세계라 그리 볼 수 있는 겁니다. 준비하다가 느껴져서 찬송을 했고 그러는 겁니다. 본문에 보면은 이 말씀을 느끼는 게 자주 느끼는 걸 불구하고 얼마 전 기드온을 공부했습니다. 기드온을 뽑았고 기드온 통해 구원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게 뭐였습니까. 우상을 없애버려라. 그러니까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대표격이었는데 거기 바알신 아세라 우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드온이 어떻게 했습니까. 우상을 때려부수는데 언제라고요, 밤에. 맞아죽을까 싶어서. 그리고 한 것이 이 우상을 누가 다 부셨느냐. 잡아 죽여라. 제정신입니까. 어찌 그리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그런데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미친 사람을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라사 광인을 잠깐 생각해본겁니다.
모세는 온유하였더라. 믿음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온유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겸손했고 참을성있고 얼마나 화났던지 그걸 집어던져 깨버리고 금송아지로 갈아 먹였지요. 제정신이 아닌겁니다. 여기도 귀신이 들어가니까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약속을 하는 것이지요.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자손이 조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을 너의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남긴건데 유업으로 주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했던지 끝까지 믿었고 부활의 이치를 깨닫고 그렇게 믿음 철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이복입니다. 이삭은 아들이 둘 있는데 에서는 탈선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동생이 열 둘을 낳았고 그 중에서 열 한 번째 요셉이 신앙이 특별하고 탈선의 길을 두고보지 못해서 다 바치니까 애굽에 팔아먹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 세상 역사입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 낳았고 불평했고 그 중에서 특별히 잘난 요셉이 있으니까 시기가 심했고 마지막에 종으로 팔아먹은 겁니다.
홍해 바다를 무슨 수로 건넙니까. 625 때 흥남에서 10만명이 있는데 다 오를라 그러는데 미군 장군인가 함장이 무기 다 버리고 함장이 사람 다 버리고 태워라. 200만명을 데렸는데 무슨 홍해바다를 건넙니까. 죽었다가 부르짖는데 홍해바다 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 갈라질 때 어떻게 아신 겁니까. 편지를 알았습니까 저거 눈으로 봤습니다. 저거 눈으로 봤고 저거 발로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사람 다 죽였고 광야에 들어갔는데 광야 사막 모래 사막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들어가면 다 죽는 겁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애굽에서 가져온 거 밖에 없는데 먹을 것을 하늘에서 내려서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애굽에서 출애굽을 해서 2년 정도입니다. 매일 먹었습니다. 만나 먹었지 메추라기 먹었지. 반석에서 물 마셨지. 미국 사람이 한국에 오면은 시차 적응 때문에 하룻밤 정도는 힘들다고 하지요.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하면 죽는겁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 이상없이 다 견디게 하셨지요. 그래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습니다.
그렇게해서 십계명 주시고. 법이 없으면 법 없는 나라가 되고 무법천지가 됩니다. 시내산에서 법을 주셔서 십계명. 주시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십계명 받고 나서 성막을 짓습니다. 그리고 어찌할 건지 전부 말씀하고 그리고 간 곳이 가나안 입구이고 건너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이 없으니까 12명을 보내자.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하신 것도 있고 그들이 보내달라고 한 것도 잇는데 일단 그들이 보내달라고 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순종이라는 것은 계산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믿고 그대로 가는 것이지 그러면 늘어서 가는 겁니다. 유지가 된 거지요. 믿음이 어리니까 그리 된 것이고요. 가서 보니까 저거 눈으로 보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강합니다. 귀신이 들어가니까 악평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망각하고 다른 것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잘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다른 걸 내세웠다가 망한 것이 히스기야입니다. 다 잘했습니다. 하나님 자랑하지 않고 자기 나라 것 자랑했다가 망했지요. 그래서 악평합니다. 우리는 못 이깁니다. 이게 지금까지 그 말 들으니까 500년 되는 교회에 어느 장로님들이 예배 두 번만 드립시다. 그래서 말 없는 걸 뭐라고 합니까. 이건 동의입니다. 동의가 되는 겁니다. 10명이 악평을 하는데 나머지 200만명 대다수가 그 말듣고 대략 200만명입니다. 200만명이 소리를 높여서 그러면 되는 겁니다.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그래서 읽을 때 그냥 읽는 게 아닙니다.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모세 아론 원망하는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거나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해서 구원하려고 목숨을 걸 만큼 다 망쳐서 왜 나를 살렸나 그렇게 하면 그놈들이 인간입니까.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니 애굽땅으로 나온 것이 아니하냐. 모세 아론을 벌벌 떨어서 반 죽었습니다. 이들의 죄 때문에 겁이 나서 반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아론을 여호수아 갈렙은 할 수 있는 말 하는데 그러니까 온 대중이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냐. 한 두 번이 아닌 겁니다. 내가 그들 중에 어느 때까지 하기 않겠더냐. 그래서 모세가 참 간절히 메달려서 살려주시게 된 거지요. 그래서 본문의 배경입니다. 여기서 응용하면 이렇게 되기 까지 약속한 하나님은 충실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후부터 400년이 지나고 전부 전부 다가 그 내면에 들어다보면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입니다.
이걸 오늘 우리한테 가져오면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충실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손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약속이 철저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의 약속이 오늘의 성경의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나라를 소망에 주겠다. 그리고 주시기 위해서 세상을 다하셨고 참 아름다우셨고 그 세상 속에서 에덴 동산 만드셨고 대속 공로 인해서 우리를 중생시키셨고 불러서 믿게 하셔서 이게 전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낸 과정처럼 약속들의 과정들이다 이거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 받았고 그렇게 보여주셨고 하는 겁니다.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 찬송과 주권 섭리로 중생 시키시고 그러셔서 하나님은 건져놓는 게 아니고 볼 수 있도록 목견할 수 있도록 역사를 해주신다 그 말이지요. 참 믿는 사람이면 이 사람 주변에 직접 못봤을지라도 그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믿지 않겠냐. 우리도 사람마다 다 다를찌라도 그분의 은혜와 살아계신 역사는 어느정도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런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니까 몇 가지 였던가요. 일곱가지를 한 겁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있는데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두 번째는 경외가 있으니까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 믿은 거겠지요. 신앙과 불신으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는 말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집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 말씀이다. 한 말씀 한 말씀을 경청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심청하고 다른 사람들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있다 보니까 당연히 하니까 순종하는 것이고 경시하니까 가볍게 여기는 거니까 순종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니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원망 불평으로 되는 거지요. 반대쪽에는 애굽이 좋았는데 먼나라 세상을 동경하고 그리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참 중요한건데 하나님의 은혜를 본 것을 체험한 것을 잊지 않고 간직했습니다. 강하게 지켰습니다. 예사로 여겨서 다 까먹어버렸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이런 속에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사람 자체가 변화가 되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모세는 그렇게 탁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다수 이스라엘이 순종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말다가 뱅뱅뱅 돌았지 발전에 성화가 없었습니다. 금으로 도금하는데 벗겨내니까 철덩어리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람 자체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성화의 문제. 세월 속에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언젠가 죄악의 요소가 나와는 겁니다.
이들을 보고 그라사의 광인처럼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결론은 일곱가지입니다. 이게 원인이다. 우리처럼 되지 말아야겠고 우리는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7장, 81장
본문: 민수기 14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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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7장의 가사는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써놨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을 따라서 자연이나 사물은 지식의 정도 깊이의 정도 감성의 정도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모든 짐승 새 나무를 솔로몬이 정의를 내려서 다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기록되어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연의 세계를 보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보면 참 신비롭다고 합니다. 평소에 자주 주셨는데 백 목사님이 가시기 한 달 전 즈음인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었고 그 말은 뭘로 지었다는 건가요. 이치로 지었다는 것이고 부활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연성,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치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과정이 다 말씀으로 지었음으로 이치로 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논리적입니다. 아주 세밀하고 체계적이고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질서적입니다. 뒤죽박죽으로 아무렇게나 되어있는 게 아닙니다. 과학이 21세기 최첨단으로 발달해서 밝혀내는데 그래서 무신론이 많아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까 다른 답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들 스스로도 진화론은 말이 안 되는 말인줄 그들이 압니다. 그저 추측이고 추론일 뿐이지 말이 안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는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화론도 체계적이고 질서적으로 되어있거든요. 그 어느 하나도 되어진 게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알 하나도 배경을 찾아보면 전부다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 바탕이랄까 그런 거 하나 하나가 바닷가의 전체적으로 같지만 많이 다른 게 많을 건데 이건 이리 생겼고 저건 저리 생겼고 하나하나 전부다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지 모래알 하나도 대충 생긴 것이 없습니다. 못 느껴서 줄 뿐이지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연의 세계를 천체 물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을 연구하지 못하나 달도 무수한 별들도 구름까지도 무지개 까지도 비오는 것까지도 신비하기 짝이 없고 날마다 딛고 사는 땅도 그 땅이 그렇게 신비한 것이고 땅에 딛고 사는 것도 신비한 것이지요. 지구가 둥근데 옛날에는 평평해서 그 위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위에 살고 있고 붙어있는거지요. 공 위에다가 물건 얹으면 얹어지나요. 평평하게 얹어야 얹어지는데, 그런데 지구 전부가 원형인데 다 하고 있잖습니까. 그게 안 굴러떨어지고 있는건데 중력의 원리로 그러고 있으니 신기하기 짝이 없는 줄 아는 겁니다.
존재들의 출생을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땅에 씨앗을 심는데 심었는데 밀 하나 심었는데 이게 자랄 때는 말하자면 둥치가 되고 둥치에서 가지가 나오고 잎사귀 나오고 열매를 맺고 신비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되풀이 되는 것이고 예사로 생각하나 돌려돌려 생각하면 참 신비롭다. 그런 거지요. 사람이 잉태될 때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포 하나가 잉태되어서 자라서 세포 하나에서 팔다리 나오고 몸통 나오고 뇌가 생겨지고 심장이 생겨지고 발이 생겨지고 발톱이 생겨지고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할 겁니까. 그 전부 다가 하나님의 솜씨고 이치라는 거지요. 그 하나하나를 해서 물질계 우주 안에 있는 형성 과정과 활동으로 인해 생긴 또 다른 결과물과 숫자가 무수한데 그게 신비롭기 짝이 없다는 것인데 그걸 신비롭게 그렇게 하셨을까. 신비롭게 주시고 알려주신 목적이 뭘까. 왜 그렇게 신비롭게 주셨겠습니까. 제가 자꾸 질문을 드리니까 설교 끊어진다고 하니까 안 해도 한번씩 드려야 잠도 안 들고 하기 때문에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할 수 있도록 합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그건 자연 세계 전부 다입니다. 여기 있는 존재 전부 다가 아름답다. 아름답다, 신비롭다. 특정한 하나만 그런 게 아니고 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곤충도 바이러스 하나 까지도 모래 하나 까지도 형성이 되기 까지에 신기롭기 짝이 없는데 세계를 신비롭게 하는 것인데 신비한 세계를 물질 세계를 보여주고 계실까. 무엇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까. 무한한 영생을 가르치는 겁니다. 물질세계를 통해서 하늘나라 영계의 무한한 신비로움을 짐작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보고 또 보고 깨닫고 그래서 성도가 이 땅의 신앙생활이 천국갔는데 억만년 후에 세월이 흘렀습니다. 억만년 후에 갔는데 오만 곳을 다 돌아다녔는데 억만년 후에 갔는데 처음보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존재들이 어서 오십시오하고 그러는데 어린 양의 대속이 당신이 맺혔고 우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렇게 찬양을 하더라도, 억만년 후에도 끝이 없는 것인겁니다. 그게 무궁세계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겁니다.
찬송가 17장 작사자가 여기까지 알고 하신건지 모르겠지만은 그런 겁니다. 이 세상 아름다운 하나님 자연의 세계라 그리 볼 수 있는 겁니다. 준비하다가 느껴져서 찬송을 했고 그러는 겁니다. 본문에 보면은 이 말씀을 느끼는 게 자주 느끼는 걸 불구하고 얼마 전 기드온을 공부했습니다. 기드온을 뽑았고 기드온 통해 구원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게 뭐였습니까. 우상을 없애버려라. 그러니까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대표격이었는데 거기 바알신 아세라 우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드온이 어떻게 했습니까. 우상을 때려부수는데 언제라고요, 밤에. 맞아죽을까 싶어서. 그리고 한 것이 이 우상을 누가 다 부셨느냐. 잡아 죽여라. 제정신입니까. 어찌 그리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그런데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미친 사람을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라사 광인을 잠깐 생각해본겁니다.
모세는 온유하였더라. 믿음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온유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겸손했고 참을성있고 얼마나 화났던지 그걸 집어던져 깨버리고 금송아지로 갈아 먹였지요. 제정신이 아닌겁니다. 여기도 귀신이 들어가니까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약속을 하는 것이지요.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자손이 조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을 너의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남긴건데 유업으로 주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했던지 끝까지 믿었고 부활의 이치를 깨닫고 그렇게 믿음 철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이복입니다. 이삭은 아들이 둘 있는데 에서는 탈선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동생이 열 둘을 낳았고 그 중에서 열 한 번째 요셉이 신앙이 특별하고 탈선의 길을 두고보지 못해서 다 바치니까 애굽에 팔아먹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 세상 역사입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 낳았고 불평했고 그 중에서 특별히 잘난 요셉이 있으니까 시기가 심했고 마지막에 종으로 팔아먹은 겁니다.
홍해 바다를 무슨 수로 건넙니까. 625 때 흥남에서 10만명이 있는데 다 오를라 그러는데 미군 장군인가 함장이 무기 다 버리고 함장이 사람 다 버리고 태워라. 200만명을 데렸는데 무슨 홍해바다를 건넙니까. 죽었다가 부르짖는데 홍해바다 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 갈라질 때 어떻게 아신 겁니까. 편지를 알았습니까 저거 눈으로 봤습니다. 저거 눈으로 봤고 저거 발로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사람 다 죽였고 광야에 들어갔는데 광야 사막 모래 사막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들어가면 다 죽는 겁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애굽에서 가져온 거 밖에 없는데 먹을 것을 하늘에서 내려서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애굽에서 출애굽을 해서 2년 정도입니다. 매일 먹었습니다. 만나 먹었지 메추라기 먹었지. 반석에서 물 마셨지. 미국 사람이 한국에 오면은 시차 적응 때문에 하룻밤 정도는 힘들다고 하지요.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하면 죽는겁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 이상없이 다 견디게 하셨지요. 그래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습니다.
그렇게해서 십계명 주시고. 법이 없으면 법 없는 나라가 되고 무법천지가 됩니다. 시내산에서 법을 주셔서 십계명. 주시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십계명 받고 나서 성막을 짓습니다. 그리고 어찌할 건지 전부 말씀하고 그리고 간 곳이 가나안 입구이고 건너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이 없으니까 12명을 보내자.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하신 것도 있고 그들이 보내달라고 한 것도 잇는데 일단 그들이 보내달라고 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순종이라는 것은 계산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믿고 그대로 가는 것이지 그러면 늘어서 가는 겁니다. 유지가 된 거지요. 믿음이 어리니까 그리 된 것이고요. 가서 보니까 저거 눈으로 보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강합니다. 귀신이 들어가니까 악평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망각하고 다른 것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잘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다른 걸 내세웠다가 망한 것이 히스기야입니다. 다 잘했습니다. 하나님 자랑하지 않고 자기 나라 것 자랑했다가 망했지요. 그래서 악평합니다. 우리는 못 이깁니다. 이게 지금까지 그 말 들으니까 500년 되는 교회에 어느 장로님들이 예배 두 번만 드립시다. 그래서 말 없는 걸 뭐라고 합니까. 이건 동의입니다. 동의가 되는 겁니다. 10명이 악평을 하는데 나머지 200만명 대다수가 그 말듣고 대략 200만명입니다. 200만명이 소리를 높여서 그러면 되는 겁니다.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그래서 읽을 때 그냥 읽는 게 아닙니다.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모세 아론 원망하는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거나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해서 구원하려고 목숨을 걸 만큼 다 망쳐서 왜 나를 살렸나 그렇게 하면 그놈들이 인간입니까.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니 애굽땅으로 나온 것이 아니하냐. 모세 아론을 벌벌 떨어서 반 죽었습니다. 이들의 죄 때문에 겁이 나서 반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아론을 여호수아 갈렙은 할 수 있는 말 하는데 그러니까 온 대중이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냐. 한 두 번이 아닌 겁니다. 내가 그들 중에 어느 때까지 하기 않겠더냐. 그래서 모세가 참 간절히 메달려서 살려주시게 된 거지요. 그래서 본문의 배경입니다. 여기서 응용하면 이렇게 되기 까지 약속한 하나님은 충실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후부터 400년이 지나고 전부 전부 다가 그 내면에 들어다보면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입니다.
이걸 오늘 우리한테 가져오면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충실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손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약속이 철저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의 약속이 오늘의 성경의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나라를 소망에 주겠다. 그리고 주시기 위해서 세상을 다하셨고 참 아름다우셨고 그 세상 속에서 에덴 동산 만드셨고 대속 공로 인해서 우리를 중생시키셨고 불러서 믿게 하셔서 이게 전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낸 과정처럼 약속들의 과정들이다 이거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 받았고 그렇게 보여주셨고 하는 겁니다.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 찬송과 주권 섭리로 중생 시키시고 그러셔서 하나님은 건져놓는 게 아니고 볼 수 있도록 목견할 수 있도록 역사를 해주신다 그 말이지요. 참 믿는 사람이면 이 사람 주변에 직접 못봤을지라도 그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믿지 않겠냐. 우리도 사람마다 다 다를찌라도 그분의 은혜와 살아계신 역사는 어느정도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런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니까 몇 가지 였던가요. 일곱가지를 한 겁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있는데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두 번째는 경외가 있으니까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 믿은 거겠지요. 신앙과 불신으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는 말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집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 말씀이다. 한 말씀 한 말씀을 경청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심청하고 다른 사람들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있다 보니까 당연히 하니까 순종하는 것이고 경시하니까 가볍게 여기는 거니까 순종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니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원망 불평으로 되는 거지요. 반대쪽에는 애굽이 좋았는데 먼나라 세상을 동경하고 그리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참 중요한건데 하나님의 은혜를 본 것을 체험한 것을 잊지 않고 간직했습니다. 강하게 지켰습니다. 예사로 여겨서 다 까먹어버렸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이런 속에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사람 자체가 변화가 되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모세는 그렇게 탁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다수 이스라엘이 순종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말다가 뱅뱅뱅 돌았지 발전에 성화가 없었습니다. 금으로 도금하는데 벗겨내니까 철덩어리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람 자체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성화의 문제. 세월 속에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언젠가 죄악의 요소가 나와는 겁니다.
이들을 보고 그라사의 광인처럼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결론은 일곱가지입니다. 이게 원인이다. 우리처럼 되지 말아야겠고 우리는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