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1일 금밤
김동민2025-04-11조회 87추천 10
2025년 4월 11일 금밤
찬송: 94장, 125장
본문: 로마서 8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소망의 구원입니다. 소망의 구원이다. 어제 새벽입니까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망으로 구원 얻었다 그 말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일이 있다. 현재가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그 절망에 피동돼서 낙망이 되면 선악과 따먹는 죄와 같이 가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원인이 현실에 피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인 노릇 하지 못하고 도적처럼 절도처럼 몰래 들어온 마귀에게 혹해서 따먹게 되었습니다. 낙망이 되든 절망이 되든 피동 되어서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낙망하면 그게 바로 현실에 피동되는 것이고 선악과 따먹은 죄로 가게 되는 겁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앞날을 소망하며 더 나은 앞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놓습니다. 결과를 소망하고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나 되어진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하지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면 자기가 하나님 되게 되는 선악과 따 먹는 죄가 되는 겁니다.
좋게 되길 원하나 안 좋게 이어지든지 죽는 날까지 괴로워서 죽을련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욥은 고난을 받다가 두 배를 받았습니다. 고진감래가 일반적인데 그리되지 않고 고생해서 고생으로 세상 끝나는 날까지 고생으로 이어지는 주의 뜻대로만 살았는데도 고난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바로 살았다면 영원토록 해와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잘못 살았으면 회개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정하는 게 아닌 겁니다. 맡겨 두는 것이지 신불신자간에 소망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닥쳤는데 미래가 현실과 닥쳤을 때 그런 모습으로 하지 않고 절망하게 되는데 그게 자기가 잘못된 겁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에게 거하면 무엇이든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루리라. 백 목사님의 요절입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입니까. 무엇이든지 이루라 그것만 보고 앞에 조건부를 한 번 봅니다.
조건이 붙어있는데 이건 빼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고하라 이것만 하니까 안되는 거지요. 소망을 가지되 그 소망이 우리 앞에 불확실한 미래가 그런 겁니다. 어떤 모습으로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 구원은 미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 사람에 따라 현실에 따라 말씀이 느껴지는 게 다 다른데 같은 말씀일지라도 진리인데 현재 각자 자기 형편에 따라서 들려지기를 달리 들려지게 원하길 되는 겁니다. 여름에 빛이 내리쬐면 진흙은 단단해집니다. 양초는 녹아내리면서 불이 붙습니다. 여름 철에 녹아서 느글느글해져버립니다. 같은 빛이 내리쬐는데 진흙은 단단해집니다. 녹아서 물이 됩니다. 왜 같은 햇빛이 째는데 그렇지요. 하나는 양초고 하나는 진흙이니까. 내 형편이 들려지기를 전혀 다르게 들려집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전부는 아닙니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지나간 세월을 과거라 그럽니다. 그래서 현재는 지나감으로 현재가 아무리 아무리 괴로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 사람들. 그런데 얼른 지나가라고 대충 살면 안되는 겁니다. 속는 겁니다. 지나가는 과정을 소망에 실제가 되냐 안 되냐에 따라 그렇게 지나갑니다. 현재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훌륭해도 자랑스러워도 자랑스러운게 계속 될련지 천하의 둘도 없는 의인이었는데 될려는지. 그 전날까지 다윗이 죄 짓기 전 그전날까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대통령했습니다. 물러가버립니다. 그게 현재 알 수 없는 미래다 라는 거지요. 낭만스러울지라도 기쁘고 즐겁고 꿈만 같고 그게 계속 될련지 그게 나락을 떨어질련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낙망 낙심하지 말고 교만할 수 없는 겁니다. 늘 겸손하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날까지 순교 사형 선고 받아놓고 그게 디모데 후서라고 하던가요.
그래서 현재는 지나가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바로 가야합니다. 미래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미래입니까. 불확실한 미래, 맞지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 그러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미래입니다. 반드시 내게 온다. 일반적입니다. 절대 아니고 반드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은혜는 주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살아생전 오지만은 불확실합니다. 오는 그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불확실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어떤 미래지요. 절대적이며 불가피한 미래가 있습니다. 반드시 오고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있듯이 죽음과 부활과 심판과 무궁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오게 되어있고 피하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여기 소망 둘 rt이 아닌 겁니다.
큰 수술하러 병원에 가니까 치료비가 많이 드니까 보험 많이 드셨겠지요 하니까 보험이 없다고 하니까 간호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동차 보험과 건강 보험은 어찌저찌 하는 것인데 다른 보험, 무슨 보험 이런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에 따라 다니지만, 그게 보이는 소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거지요. 우리의 소망은 그런 불확실한 소망이 아닙니다. 이제 막 갓난 아이를 위해서 교육 보험을 들어놓습니다. 몇 살이 되면 학교가고 그리 했는데 그리됩니다. 어찌 될지 알수가 있습니까. 우리 소망 우리 미래는 보이는 미래 우리 미래는 절대적이며 불가피한 그 미래가 우리가 소망둘 미래입니다. 전도서 7장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유심하리로다. 유심이 무슨 뜻이지요. 휴대폰 꽂는 칩이 유심입니까. 마음이 거기 머물러라 그런 말입니다. 너 죽는다 그런 말을 두라,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이게 유심입니다.
부활하는 그 말에 심판의 말에 내 마음을 두라. 믿는 사람의 소망은 죽음의 날 부활의 날 심판의 날 무궁세계의 날 우리의 날입니다. 그 날의 소망 두는 것입니다. 실체를 따져보니 다섯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나 자신의 인격을 말합니다. 나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리 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하나님 닮은 사람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호랑이가 됩니다. 고양이 새끼는 자라면 고양이가 됩니다. 종자가 그리 되는 거지요. 고양이 새끼가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종자대로 되는 거지요. 사람인데 모글리, 늑대와 함께 자라니까 늑대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늑대를 사람 속에 하면 사람이 되진 않으나 사람 사회에서 기르면 사람 흉내를 기를 수는 있습니다. 종자가 성장과정이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늑대가 제대로 자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을 영이다. 내 나 자신은 심신입니다. 마음과 몸입니다. 영은 부모님에게 받은 게 아닙니다. 영의 창조설이라고 합니다. 영은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닮아가게 됩니다. 종자가 신이라는 것이 아니고 형상이 그런 종자이기 때문에 그리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될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닮아갈까. 누군가를 닮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부모가 자녀가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이 있는데 전쟁이 나서 어릴 때 미아가 되어가지고 떨어져 살았습니다. 떨어져 살았으면 종자라서 외모는 닮았고 기본적으로 그런 게 있겠지만 따로 살 수 있는 겁니다. 누군가와 누군가를 닮아가려면 간절히 사모하면 됩니다. 그리워하고 사모하면 됩니다. 사모하면 필연적으로 찾게 되고 연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동행을 하면 됩니다. 닮아가면 됩니다. 동행하면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서당개가 3년을 지나면 풍월을 읊는다. 대학교 교수집에 식모살이 하다보면 제법 말투라던지 그런 걸 알고 나타내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재판하냐가 중요한 겁니다. 일류 고등학교가 그런 겁니다. 사람이 됩니다. 사람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전부 그래서 대치동에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이 동맹하면 안하거나 그리 됩니다. 전부 다 머리 싸매 그렇게 되는 거지요. 양면이 다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방법 사모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모시고 살면서 따라하면 됩니다. 그러면 형상이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지능을 삼는 겁니다. 내 것 삼는 방법이 뭐냐. 심신의 지능이라는 것은 지능이라는 것은 그 심신이 움직이는만큼 발달이 되고 기능이 익혀지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이 많이 기울어지게 되어있고 익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손이 없어서 팔이 없어서 양팔이 없어서 발로 그림을 그리는데 손으로 그리는 사람보다 훨씬 잘 그립니다.
저는 어릴 때 왼손을 쓰면 혼냅니다. 오른손만 씁니다. 왼손은 젓가락질도 못합니다. 양손을 잘 쓰면 굉장히 편리합니다. 양손 다 쓰게 만들어주면 굉장히 편리한게 많습니다. 우리 교회 왼손잡이 많지요. 뭘 연습하느냐, 한문글자 잘 안 하는 사람이 됩니다. 백 목사님은 성경을 55년을 연구하니까 그만큼 잘 아는 분이 없습니다 성경에 몰두하니까 하나님의 지능을 내 것 삼는 방법이 뭐냐 순종하는 겁니다. 연구하란 거 연구하고 외우라는 거 외우고 보라는 거 보고 하라는 거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내 현실의 심신 움직이면 내 것 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하늘나라 유업을 받는 겁니다. 상속 받는 건데 이것도 무궁 세계 천국이 무한한 세계지만은 예를 들면 땅이 남고 남아도 너 원하는 거 달려서 깃발 꽂으면 다 네 땅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땅을 가지면 한 에이크가 얼마나 될려지 모르겠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자동차 타고 몇 시간 개인이 소유한 땅, 그런데 땅이 남고 남아도 천국은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대로 상속시켜 줍니다. 각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신 분량에 따라 자기가 충성한 만큼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상속에 전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기 전부를 다 들여서 그 분량이 하늘나라의 상속의 범위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속 받으니까 부모님의 유산을 상속 받은 사람은 형제가 간에 상속 유산 싸움을 합니다. 내 거 내 소유 남의 거 잘라버리는데 하늘나라는 그 자체가 시공을 초월한 곳이고 개인이 소유한 것의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이 있습니다. 이 몸이 누구의 것인가요. 눈은 누구의 것입니까. 눈의 것입니까 몸의 것인가요. 눈의 것인데 몸의 것입니다. 눈은 몸의 것이고 몸 전부는 눈의 것입니다. 입이 입에 붙었으면 전부 그렇습니다. 눈이 떨어져나가면 상관없고 저도 상관없고 아무것도 아닌게 됩니다. 천국의 모습니다. 이 세상 소유권처럼 내 것, 그래서 하늘나라는 전체가 다 한 몸이고 그 몸을 키우니까 몸인데 그 몸을 키우니까 뭐라고 합니까. 몸이 커지면 뭐가 되는가요. 사람의 그리스도의 몸이 커지면 뭐라고 해놨습니까 성경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몸이 커지면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커지면 뭐가 됩니까. 천국이 됩니다. 천국이라는 나라가 교회처럼 몸처럼 그런 것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충성하는 만큼 충성하게 되는 겁니다. 초대 교회 개념으로. 전부다 팔아 연보하니까 체면 때문에 나도 해야겠다. 다 바칠려니까 아까워서 좀 빼놨습니다. 그러다가 둘 다 죽었습니다.
네 번째는 대리 통치입니다. 자기 받은 분량만큼 통치하는 겁니다. 그 통치의 실력은 어떻게 마련하느냐 이게 바로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 통치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오늘 우리의 통치는 언제합니까. 자기 현실 통치입니다. 심신과 연관된 전부를 지배하면 내 현실에는 수 많은 만물이 있습니다. 지배하고 통치하면 그 속의 만물, 마귀도 통치합니다. 그 통치력을 오늘 기른만큼 통치의 실력이 자라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는 하나님께 받아가지고 피조물 시은의 역사가 되게 되는 것이고 근원이시고 마르지 않는 거기서 나와가지고 전해주는 이건 어떻게 하느냐 주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베푸는 연습. 뭐가 있으면 사탕이 한 개 있으면 입에 넣지 말고 침을 탁 뱉어버린답니다. 막내가 그런 짓하니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지요.
하나가 있으면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는 연습을 하는 게 맞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맞다. 이 세상에서 뭔가 다른 사람에게 줄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연습을 안했으니까. 복음이라는 것은 돈받고 팔려고 했습니까. 거저 받았으니까 거저 주어라. 주는 연습 베푸는 연습은 하늘나라 가서 시은의 위치가 됩니다. 베푸니까 받는 사람들은 영광으로 돌려서 찬미가 되는 겁니다.
다섯 가지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므로 다섯 가지를 하되 보이지 않으니까 잡히지 않으니까 멀리 있으니까 참음으로 계속할지니라. 다섯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94장, 125장
본문: 로마서 8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소망의 구원입니다. 소망의 구원이다. 어제 새벽입니까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망으로 구원 얻었다 그 말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일이 있다. 현재가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그 절망에 피동돼서 낙망이 되면 선악과 따먹는 죄와 같이 가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원인이 현실에 피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인 노릇 하지 못하고 도적처럼 절도처럼 몰래 들어온 마귀에게 혹해서 따먹게 되었습니다. 낙망이 되든 절망이 되든 피동 되어서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낙망하면 그게 바로 현실에 피동되는 것이고 선악과 따먹은 죄로 가게 되는 겁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앞날을 소망하며 더 나은 앞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놓습니다. 결과를 소망하고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나 되어진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하지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면 자기가 하나님 되게 되는 선악과 따 먹는 죄가 되는 겁니다.
좋게 되길 원하나 안 좋게 이어지든지 죽는 날까지 괴로워서 죽을련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욥은 고난을 받다가 두 배를 받았습니다. 고진감래가 일반적인데 그리되지 않고 고생해서 고생으로 세상 끝나는 날까지 고생으로 이어지는 주의 뜻대로만 살았는데도 고난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바로 살았다면 영원토록 해와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잘못 살았으면 회개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정하는 게 아닌 겁니다. 맡겨 두는 것이지 신불신자간에 소망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닥쳤는데 미래가 현실과 닥쳤을 때 그런 모습으로 하지 않고 절망하게 되는데 그게 자기가 잘못된 겁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에게 거하면 무엇이든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루리라. 백 목사님의 요절입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입니까. 무엇이든지 이루라 그것만 보고 앞에 조건부를 한 번 봅니다.
조건이 붙어있는데 이건 빼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고하라 이것만 하니까 안되는 거지요. 소망을 가지되 그 소망이 우리 앞에 불확실한 미래가 그런 겁니다. 어떤 모습으로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 구원은 미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 사람에 따라 현실에 따라 말씀이 느껴지는 게 다 다른데 같은 말씀일지라도 진리인데 현재 각자 자기 형편에 따라서 들려지기를 달리 들려지게 원하길 되는 겁니다. 여름에 빛이 내리쬐면 진흙은 단단해집니다. 양초는 녹아내리면서 불이 붙습니다. 여름 철에 녹아서 느글느글해져버립니다. 같은 빛이 내리쬐는데 진흙은 단단해집니다. 녹아서 물이 됩니다. 왜 같은 햇빛이 째는데 그렇지요. 하나는 양초고 하나는 진흙이니까. 내 형편이 들려지기를 전혀 다르게 들려집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전부는 아닙니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지나간 세월을 과거라 그럽니다. 그래서 현재는 지나감으로 현재가 아무리 아무리 괴로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 사람들. 그런데 얼른 지나가라고 대충 살면 안되는 겁니다. 속는 겁니다. 지나가는 과정을 소망에 실제가 되냐 안 되냐에 따라 그렇게 지나갑니다. 현재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훌륭해도 자랑스러워도 자랑스러운게 계속 될련지 천하의 둘도 없는 의인이었는데 될려는지. 그 전날까지 다윗이 죄 짓기 전 그전날까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대통령했습니다. 물러가버립니다. 그게 현재 알 수 없는 미래다 라는 거지요. 낭만스러울지라도 기쁘고 즐겁고 꿈만 같고 그게 계속 될련지 그게 나락을 떨어질련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낙망 낙심하지 말고 교만할 수 없는 겁니다. 늘 겸손하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날까지 순교 사형 선고 받아놓고 그게 디모데 후서라고 하던가요.
그래서 현재는 지나가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바로 가야합니다. 미래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미래입니까. 불확실한 미래, 맞지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 그러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미래입니다. 반드시 내게 온다. 일반적입니다. 절대 아니고 반드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은혜는 주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살아생전 오지만은 불확실합니다. 오는 그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불확실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어떤 미래지요. 절대적이며 불가피한 미래가 있습니다. 반드시 오고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있듯이 죽음과 부활과 심판과 무궁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오게 되어있고 피하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여기 소망 둘 rt이 아닌 겁니다.
큰 수술하러 병원에 가니까 치료비가 많이 드니까 보험 많이 드셨겠지요 하니까 보험이 없다고 하니까 간호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동차 보험과 건강 보험은 어찌저찌 하는 것인데 다른 보험, 무슨 보험 이런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에 따라 다니지만, 그게 보이는 소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거지요. 우리의 소망은 그런 불확실한 소망이 아닙니다. 이제 막 갓난 아이를 위해서 교육 보험을 들어놓습니다. 몇 살이 되면 학교가고 그리 했는데 그리됩니다. 어찌 될지 알수가 있습니까. 우리 소망 우리 미래는 보이는 미래 우리 미래는 절대적이며 불가피한 그 미래가 우리가 소망둘 미래입니다. 전도서 7장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유심하리로다. 유심이 무슨 뜻이지요. 휴대폰 꽂는 칩이 유심입니까. 마음이 거기 머물러라 그런 말입니다. 너 죽는다 그런 말을 두라,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이게 유심입니다.
부활하는 그 말에 심판의 말에 내 마음을 두라. 믿는 사람의 소망은 죽음의 날 부활의 날 심판의 날 무궁세계의 날 우리의 날입니다. 그 날의 소망 두는 것입니다. 실체를 따져보니 다섯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나 자신의 인격을 말합니다. 나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리 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하나님 닮은 사람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호랑이가 됩니다. 고양이 새끼는 자라면 고양이가 됩니다. 종자가 그리 되는 거지요. 고양이 새끼가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종자대로 되는 거지요. 사람인데 모글리, 늑대와 함께 자라니까 늑대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늑대를 사람 속에 하면 사람이 되진 않으나 사람 사회에서 기르면 사람 흉내를 기를 수는 있습니다. 종자가 성장과정이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늑대가 제대로 자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을 영이다. 내 나 자신은 심신입니다. 마음과 몸입니다. 영은 부모님에게 받은 게 아닙니다. 영의 창조설이라고 합니다. 영은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닮아가게 됩니다. 종자가 신이라는 것이 아니고 형상이 그런 종자이기 때문에 그리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될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닮아갈까. 누군가를 닮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부모가 자녀가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이 있는데 전쟁이 나서 어릴 때 미아가 되어가지고 떨어져 살았습니다. 떨어져 살았으면 종자라서 외모는 닮았고 기본적으로 그런 게 있겠지만 따로 살 수 있는 겁니다. 누군가와 누군가를 닮아가려면 간절히 사모하면 됩니다. 그리워하고 사모하면 됩니다. 사모하면 필연적으로 찾게 되고 연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동행을 하면 됩니다. 닮아가면 됩니다. 동행하면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서당개가 3년을 지나면 풍월을 읊는다. 대학교 교수집에 식모살이 하다보면 제법 말투라던지 그런 걸 알고 나타내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재판하냐가 중요한 겁니다. 일류 고등학교가 그런 겁니다. 사람이 됩니다. 사람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전부 그래서 대치동에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이 동맹하면 안하거나 그리 됩니다. 전부 다 머리 싸매 그렇게 되는 거지요. 양면이 다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방법 사모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모시고 살면서 따라하면 됩니다. 그러면 형상이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지능을 삼는 겁니다. 내 것 삼는 방법이 뭐냐. 심신의 지능이라는 것은 지능이라는 것은 그 심신이 움직이는만큼 발달이 되고 기능이 익혀지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이 많이 기울어지게 되어있고 익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손이 없어서 팔이 없어서 양팔이 없어서 발로 그림을 그리는데 손으로 그리는 사람보다 훨씬 잘 그립니다.
저는 어릴 때 왼손을 쓰면 혼냅니다. 오른손만 씁니다. 왼손은 젓가락질도 못합니다. 양손을 잘 쓰면 굉장히 편리합니다. 양손 다 쓰게 만들어주면 굉장히 편리한게 많습니다. 우리 교회 왼손잡이 많지요. 뭘 연습하느냐, 한문글자 잘 안 하는 사람이 됩니다. 백 목사님은 성경을 55년을 연구하니까 그만큼 잘 아는 분이 없습니다 성경에 몰두하니까 하나님의 지능을 내 것 삼는 방법이 뭐냐 순종하는 겁니다. 연구하란 거 연구하고 외우라는 거 외우고 보라는 거 보고 하라는 거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내 현실의 심신 움직이면 내 것 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하늘나라 유업을 받는 겁니다. 상속 받는 건데 이것도 무궁 세계 천국이 무한한 세계지만은 예를 들면 땅이 남고 남아도 너 원하는 거 달려서 깃발 꽂으면 다 네 땅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땅을 가지면 한 에이크가 얼마나 될려지 모르겠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자동차 타고 몇 시간 개인이 소유한 땅, 그런데 땅이 남고 남아도 천국은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대로 상속시켜 줍니다. 각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신 분량에 따라 자기가 충성한 만큼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상속에 전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기 전부를 다 들여서 그 분량이 하늘나라의 상속의 범위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속 받으니까 부모님의 유산을 상속 받은 사람은 형제가 간에 상속 유산 싸움을 합니다. 내 거 내 소유 남의 거 잘라버리는데 하늘나라는 그 자체가 시공을 초월한 곳이고 개인이 소유한 것의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이 있습니다. 이 몸이 누구의 것인가요. 눈은 누구의 것입니까. 눈의 것입니까 몸의 것인가요. 눈의 것인데 몸의 것입니다. 눈은 몸의 것이고 몸 전부는 눈의 것입니다. 입이 입에 붙었으면 전부 그렇습니다. 눈이 떨어져나가면 상관없고 저도 상관없고 아무것도 아닌게 됩니다. 천국의 모습니다. 이 세상 소유권처럼 내 것, 그래서 하늘나라는 전체가 다 한 몸이고 그 몸을 키우니까 몸인데 그 몸을 키우니까 뭐라고 합니까. 몸이 커지면 뭐가 되는가요. 사람의 그리스도의 몸이 커지면 뭐라고 해놨습니까 성경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몸이 커지면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커지면 뭐가 됩니까. 천국이 됩니다. 천국이라는 나라가 교회처럼 몸처럼 그런 것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충성하는 만큼 충성하게 되는 겁니다. 초대 교회 개념으로. 전부다 팔아 연보하니까 체면 때문에 나도 해야겠다. 다 바칠려니까 아까워서 좀 빼놨습니다. 그러다가 둘 다 죽었습니다.
네 번째는 대리 통치입니다. 자기 받은 분량만큼 통치하는 겁니다. 그 통치의 실력은 어떻게 마련하느냐 이게 바로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 통치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오늘 우리의 통치는 언제합니까. 자기 현실 통치입니다. 심신과 연관된 전부를 지배하면 내 현실에는 수 많은 만물이 있습니다. 지배하고 통치하면 그 속의 만물, 마귀도 통치합니다. 그 통치력을 오늘 기른만큼 통치의 실력이 자라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는 하나님께 받아가지고 피조물 시은의 역사가 되게 되는 것이고 근원이시고 마르지 않는 거기서 나와가지고 전해주는 이건 어떻게 하느냐 주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베푸는 연습. 뭐가 있으면 사탕이 한 개 있으면 입에 넣지 말고 침을 탁 뱉어버린답니다. 막내가 그런 짓하니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지요.
하나가 있으면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는 연습을 하는 게 맞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맞다. 이 세상에서 뭔가 다른 사람에게 줄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연습을 안했으니까. 복음이라는 것은 돈받고 팔려고 했습니까. 거저 받았으니까 거저 주어라. 주는 연습 베푸는 연습은 하늘나라 가서 시은의 위치가 됩니다. 베푸니까 받는 사람들은 영광으로 돌려서 찬미가 되는 겁니다.
다섯 가지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므로 다섯 가지를 하되 보이지 않으니까 잡히지 않으니까 멀리 있으니까 참음으로 계속할지니라. 다섯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