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4일 금밤
김동민2025-03-14조회 112추천 7
2025년 3월 14일 금밤
찬송: 18장, 19장
본문: 열왕기상 21장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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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섬겼다고 안하고 복종했다고 합니다.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게 복종입니다. 좋아서 하는 건 순종이고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주님도 복종했다 그런 기록이 있는데 구약의 이런 복종과 주님의 복종은 달리 해석해야합니다. 주님의 복종과 아합의 우상의 복종은 다릅니다.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복종을 안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팔아먹었습니다. 어디에 나를 팔아먹었는가 생각해봐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적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원인은 자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자존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고 불변한 사랑입니다.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려고 자존 사랑 완전 사랑 불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을 주실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정해놓고 성화, 이룰 성자 보다도 올라가는 성자 그런 성자가 있죠. 그렇게 올려서 우리를 성화시켜 가시려고 그런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부 다를 투자했습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자존 사랑이 근본입니다. 자존 사랑 완전사랑 근본 사랑 이게 구원이고 존재로 말하면 하나님인 것이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 목적이고 완전 목적이고 불변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정해놓고 전부를 다 바쳐하시기 때문에 그에 맞게 우리 맞도록 맞추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존재가 틀리지만은 다르지만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창조물이 그렇게 끌어올리시는 겁니다. 완전자가 될 수는 없는데, 그래서 하늘나라 천국은 그 나라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면 구할 수 없는 겁니다. 불변한 것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무안한 것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도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신령한 존재를 들어가야하고 완전해야하기 때문에 그런 존재로 변화시키는 겁니다. 기능까지도 우리의 심신도 변화시키고 심신 속의 기능도 완전 영원 불변이 아니면 안되므로 그리된 것만 천국에 들어가고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지막 결과입니다. 그게 우리 구원의 차이가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 영원불변 맞는 우리로 만들어 금으로 예를 들었지요. 말하자면 집채만한 금이 있고 손가락만한 금이 있으면 어떤 차이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크고 작은 차이만 있습니다. 다른 건 차이가 없는 거지요. 집채만한 것도 금이고 손가락만한 것도 금입니다.
집채만한 것이 둘 개가 있는데 하나는 금이고 하나는 철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고 우리는 불완전한데 진흙같은 우리를 금같은 하나님이 금처럼 그렇게 만들어가신다는 뜻입니다. 물질로 말하면. 그게 우리 구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다 주실 때 받아 가질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기에 형상을 닮은 영을 만드셨고 속성을 주신겁니다. 사람에게 있는 그 속성 가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면 구원이 되는 것이고 그 속성 가지고 엉뚱한 거 해버리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크신 그 뜻을 목적을 생각을 하고 지식적으로 실행적으로 실제 성화적으로 만드는 게 우리 구원입니다. 중요한 거지요. 모르니 어릴 때는 조심해야하고 예수믿는 생활이 처음에는 어립니다. 나이가 많아도 어리고 공부를 많이해도 어리고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믿는 사람은 어느 정도를 떠나서 권력을 떠나서 지휘를 떠나서 그것을 따지만 어린 신앙인겁니다. 믿는 법을 모르니까 성경 읽고 말씀을 듣고 배워나가야겠고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세월이 오래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믿어도 그냥 잘못된 길에 서서 바로 믿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그 속의 신앙은 자라가지 않는 겁니다. 바로 믿어야 바른 신앙으로 자라게 되는 겁니다. 어릴 때는 모르니까 예배시간 통해서 앞선 신앙의 선배들 지도자들 통해서 자라가야하는데 신앙이 자라가는 유일하고도 가장 좋은 방법 동시에 성경을 깨달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대로 말씀대로 실행해서 사는 겁니다. 그러면 말씀을 깨닫게 되고 깊어지고 넓어지고 정확해지면 신앙이 자라는 겁니다. 점점 자라게 되면 나이가 가면 자라게 되지요. 자라면 모습이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젖먹이 때와 세 살 때는 다르고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고 커지고 뚜렷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 있어서 자라가야하는데 자라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과나무 씨앗을 심으면 사과나무가 점점 되고 사과 꽃이 피고 사과 열매가 맺습니다. 감나무가 자라면 감꽃이 피고 감을 맺습니다. 원래 그 존재의 모습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지요. 자라갈수록 배 나무가 된다. 사람이 점점 자라면 어릴 때는 잘 모르는데 자라가면 아버지 닮는 사람으로 눈도 코도 귀도 외모도 성격도 목소리까지도 점점 부모를 닮아가는 게 그게 보이는 거지요. 우리 신앙이 점점 자라가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하느냐, 성경을 많이 지식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전도 많이하고 연보 많이해서가 아니고 설교 잘하는 게 신앙 자라는 게 아니고 신앙이 자라는 것은 믿어갈수록 하나님을 닮아가야하는 겁니다.
지식도 지혜도 중심도 사랑도 속성들이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는 게 신앙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의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요한도 사도들 전부 다도 앞선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간 그런 종이 되는 겁니다. 각자 여러 모양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보면 주님 닮은 사람 주님 닮은 소망 주님 닮은 것이 점점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라가면서 주님 닮은 사람으로 자라가면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모르니까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마지못해서 그렇게 많고 자라고 나면 깨닫고 나서 사명감에서 이렇게 믿어야하는구나 이렇게 실행을 해야하는구나 사명감 의무감이 되어지고 거기서 더 자라게 되면 평가적인 신앙이 되게 되는 거지요. 진실한 신앙 진충의 신앙 평가적인 신앙 이렇게 나가는 건데 평가적인 시간까지 가면 자원하는 신앙이 되게 되는 겁니다. 더 올라가면 평가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적인 차원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격에서 감동 되어서 사랑을 깨닫고 나니까 그 사랑이 너무 크고 귀하고 감사해서 나를 다 바쳐야겠다. 그래서 이건 원하고 원하는 그게 참 뜨거운 사랑의 관계로 자라가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의 종들처럼 다윗처럼 모세처럼 유재현 목사님 같은 분들처럼 우리 찬송가에 나와있지만 그런 분들 참 특징은 깊은 주님과의 교제 교감이라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설교를 들어보면 그렇게 깊었다고 합니다.
그게 깨닫고 나서 주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그런 관계로 가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깊은 교제 속에서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그를 통해서 나타내시고 교감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게 되는 거지요. 주신만큼 구원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밤 세워서 기도하고 산에 가서도 기도하고 기도하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렇게 자라가는 모습이 되는 거지요. 그러면 통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자라가야하고 성화되어져 가야하는 건데 주님을 향해서 점점 자라가고 변화되어 가고 과정 과정에 이걸 방해하는 벌어뜨리는 그 원수가 있으니 그 원수를 가르켜서 두 가지로 꼭 집으면 그게 바로 한 놈은 간부고 한 여자는 음녀고 그런 거지요. 간부라는 것은 우리가 신부가 되었을 때 눈을 빼앗가는 것이 간부고, 세상입니다. 온갖 좋은 것들 하나님 아들 아들로써 자라가야하는 우리들을 아름다운 이세벨을 가지고 눈을 빼앗아 가서 음녀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밖에 있고 빼앗겨서 내 속에 나 아닌 나, 나인데 나 아닌 나 그게 마음의 요소는 악성이고 몸에 입어진 건 악습이다. 이걸 미혹을 받아서 아합은 팔려버렸고 팔리고 있다 그 말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팔렸다 팔아먹었는데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에게 자기가 자기를 팔아먹어 팔렸습니다.
누가 간섭하지 않았고 강제하지 않았고 제가 좋아서 있으니까 아합의 그 눈에 이세벨이 아름답게 보였던 아합 속에 있던 욕심이 미를 찾았던 아름다움을 찾았던 뭐를 찾았던 그 마음 속에 있는 요소가 욕심인 거지요. 그런 감정 성향들이 됩니다. 별별 그런 욕심들이 많으나 하루 이틀 살아가는 몸에 찌들어가는 학습이고 내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나님께 주신 조상들의 기업을 옮기지 말아라. 그러면 아니야 꺾어 버리는 게 자체 주관인데 나봇의 포도원이 아름답게 보이면 아무리 밭이 필요하면 구할 수 있는데 하필 남의 포도원을 아합이 정상이면 이건 아니야, 바른 마음이 꺾어야하는데 자아, 영, 말하자면 정상적인 양심이 없어져버리고 욕심이 나와 팔려버린 것이지요. 그게 팔아먹었고 팔린 게 되는 거지요. 그게 팔려버려서 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합이 자아가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자기라는 존재 의미의 목적 이걸 팔았고 팔면 사람의 뇌를 바꿔버리면 지금까지 그런 기술 없을 건데 제 머리 속에 있는 뇌를 빼고 다른 사람 뇌를 집어넣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아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스라엘의 왕이고 계통있잖습니까. 이게 저를 팔아먹었으니까 아합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왕이라는 자기 자신과 그의 딸은 책임과 의무와 사명감이 없어지고 아합의 머리 속에는 누가 들어앉았습니까. 자기는 껍데기는 있는데 속은 딴 것이란 말이지요. 팔았으니까. 아합은 자기의 마음도 욕심도 감정도 양심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겁니다. 그게 주인이 되어서 이세벨이 주인이 되었고 그대로 움직이는 거지요. 판 원인은 뭐냐 뭡니까.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은 원인은 어제 새벽기도 때 그게 뭐지요. 아합은 마음이 약했다 그랬습니다. 마음 약한 그게 원인입니다. 그래서 약한 것과 악한 것은 한 끝 차이다. 이런 표현 하나 하나가 신앙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혁명이라, 개혁이라 그런 겁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약한 것과 악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런 건 평생을 가지고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약한 그 놈이 악역에게 붙들리니까 악한 놈이 되는 겁니다. 선에게 붙들리면 선응이 되는데 약한 것이 약하기 때문에 그 약한 것은 어린 아이들은 순진합니다. 순진한 아이들은 순진하고 깨끗하고 착하고 순진하고 깨끗합니다. 쉽게 잘 넘어지고 위험합니다. 이게 약한겁니다. 하나님 앞에 약하고 진리에 약하고 이러면 좋은데 아합은 약한 것이 이세벨에게 약합니다. 이세벨에게는 꼭잡힌 인간이 엘리야에게는 소리 팡팡 칩니다. 찍소리도 못하고 하나님 종에게는 소리 팡팡 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참 기가 찬 것은 좀 마음이 안들면 교회 안 갈래요. 큰 소리 펑 치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고 약하니까 그렇게 되는 건데 약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고 미혹받는 겁니다. 마음이 약해서 그래서 좋은데 쓰이지 못하고 악용이 되어버렸습니다. 악의 앞잡이가 되어서 나라를 절단내버렸습니다. 팔고 나니까 결과는 어찌 되었느냐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고 누구를 샀습니까. 이세벨을 샀지요. 거래를 잘했으면 장사를 잘했으면 물건 100만원 가지고 1000만원 되고 올라가야하는데 마지막 가서 보니까 자기 자신은 비참하게 죽고 자기를 판 이세벨은 개가 뜯어먹고 낳은 자식 70명은 한 자리에 다 죽어버리고 이게 망한 장사입니다. 이 세상이 망한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망해버렸다 그렇게 말합니다. 판 거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농사짓는 사람으로 비유를 많이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한달은 주고 어떤 사람은 300만원을 받습니다. 자기를 주고 돈을 사는 거지요. 그렇게 살고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면서 지식도 만들고 지능도 만들고 배경도 만들고 가정도 만들고 여러 가지 만드는 게 바로 자기를 주고 사는 거지요. 나를 주고 그런 것인데 살아가면서 나를 팔고 살 것이 무엇이냐 너를 주고 요한계시록을 말합니다. 네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네 시간과 네 노력과 네 심신을 들여서 우리가 사야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사고 그 다음 나를 들여서 사는 것은 안약을 삽니다. 안약은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말씀의 깨달음 지식 관계의 깨달음이겠지요. 흰 옷을 사라 대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 것은 전부 다 나를 주고 나의 심신과 내 심신의 모든 노력과 세월을 주고 말씀 속에 성령이 있으니까 많이 샀으니까 그만큼 영감이 밝을 거니까 밝게 될겁니다. 참된 종은 55년 동안 성경만 연구했다고 합니다. 눈이 참 밝았습니다. 자기를 들인 세월 속에 말씀을 사고 영감을 샀으면 영안이 밝아야합니다.
말씀을 사서 실행을 사서 해야하고 깨달음 깊어야하고 대속 샀으니 되어있어야하고 죄 없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의인이 되어야하고 그런 걸 사지 않고 세월을 보냈으면 게으름을 사고 내준겁니다. 자야할 잠은 자는 겁니다. 그런데 안 자도 될 잠을 자면 잠을 사고 파는 거지요.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거지요. 자기 노력과 심신으로 게임을 샀습니다. 게임하는 기능은 천국 못 가는 겁니다. 그 엉뚱한 걸 하면 아합이라는 그 인간은 자기를 팔아서 세월과 노력과 심신을 팔아먹고 이세벨을 샀는데 어떤 사람이 중국에 30만원짜리 크리스탈 유리입니까. 그걸 샀답니까. 받고 보니까 600원짜리 돌멩이가 왔더라. 아합은 아름답게 보여서 이세벨을 샀는데 그게 폭탄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평생을 나가면 이런 사람이 됩니다. 잘 해야합니다. 나를 팔아서 뭘 살 것인가. 진주를 사라 새벽들 같은 보배를 사라. 주님 말씀 준행하는 걸 나를 들여서 시간과 노력 들여서 주님 말씀 준행하는 것을 사는 겁니다. 이리하지 않고 엉뚱하게 하면 주님 앞에 내줄 것이 없고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목적을 생각해봅시다. 이걸 위해서 하나님은 전부를 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를 벌어뜨리는 간부가 있고 음녀가 있으니 이것들이 나를 이것들에게 미혹받아 나를 팔아먹는겁니다. 아합처럼. 그러면 종이 되게 되는 겁니다. 오늘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는가. 내가 서른 살인데 30년 세월을 팔았는데 가져갈 게 뭐지 생각해봐야하는 겁니다. 나를 팔고 그런 것이 뭐지 70년 살았는데 뭐지 30세까지는 세상 쓸데없이 돌아다녔고 아마 후회되는 게 굉장히 많은 겁니다. 하나님께 사람의 인생 세월을 주신 것은 그런 줄 알고 주신겁니다. 60에 철이 든다. 요즘에는 60에도 철이 안 드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주님에게 가는 게 가깝기 전에 잘못 산 거 다 빼버리고 잘 팔아서 주님 앞에 가져갈 귀한 안약을 사고 금을 사서 밝은 사람으로 그리고 믿음 가진 사람으로 설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8장, 19장
본문: 열왕기상 21장 2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우상을 섬겼다고 안하고 복종했다고 합니다.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게 복종입니다. 좋아서 하는 건 순종이고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주님도 복종했다 그런 기록이 있는데 구약의 이런 복종과 주님의 복종은 달리 해석해야합니다. 주님의 복종과 아합의 우상의 복종은 다릅니다.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복종을 안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팔아먹었습니다. 어디에 나를 팔아먹었는가 생각해봐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적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원인은 자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자존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고 불변한 사랑입니다.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려고 자존 사랑 완전 사랑 불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을 주실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정해놓고 성화, 이룰 성자 보다도 올라가는 성자 그런 성자가 있죠. 그렇게 올려서 우리를 성화시켜 가시려고 그런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부 다를 투자했습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자존 사랑이 근본입니다. 자존 사랑 완전사랑 근본 사랑 이게 구원이고 존재로 말하면 하나님인 것이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 목적이고 완전 목적이고 불변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정해놓고 전부를 다 바쳐하시기 때문에 그에 맞게 우리 맞도록 맞추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존재가 틀리지만은 다르지만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창조물이 그렇게 끌어올리시는 겁니다. 완전자가 될 수는 없는데, 그래서 하늘나라 천국은 그 나라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면 구할 수 없는 겁니다. 불변한 것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무안한 것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도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신령한 존재를 들어가야하고 완전해야하기 때문에 그런 존재로 변화시키는 겁니다. 기능까지도 우리의 심신도 변화시키고 심신 속의 기능도 완전 영원 불변이 아니면 안되므로 그리된 것만 천국에 들어가고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지막 결과입니다. 그게 우리 구원의 차이가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 영원불변 맞는 우리로 만들어 금으로 예를 들었지요. 말하자면 집채만한 금이 있고 손가락만한 금이 있으면 어떤 차이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크고 작은 차이만 있습니다. 다른 건 차이가 없는 거지요. 집채만한 것도 금이고 손가락만한 것도 금입니다.
집채만한 것이 둘 개가 있는데 하나는 금이고 하나는 철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고 우리는 불완전한데 진흙같은 우리를 금같은 하나님이 금처럼 그렇게 만들어가신다는 뜻입니다. 물질로 말하면. 그게 우리 구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다 주실 때 받아 가질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기에 형상을 닮은 영을 만드셨고 속성을 주신겁니다. 사람에게 있는 그 속성 가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면 구원이 되는 것이고 그 속성 가지고 엉뚱한 거 해버리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크신 그 뜻을 목적을 생각을 하고 지식적으로 실행적으로 실제 성화적으로 만드는 게 우리 구원입니다. 중요한 거지요. 모르니 어릴 때는 조심해야하고 예수믿는 생활이 처음에는 어립니다. 나이가 많아도 어리고 공부를 많이해도 어리고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믿는 사람은 어느 정도를 떠나서 권력을 떠나서 지휘를 떠나서 그것을 따지만 어린 신앙인겁니다. 믿는 법을 모르니까 성경 읽고 말씀을 듣고 배워나가야겠고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세월이 오래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믿어도 그냥 잘못된 길에 서서 바로 믿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그 속의 신앙은 자라가지 않는 겁니다. 바로 믿어야 바른 신앙으로 자라게 되는 겁니다. 어릴 때는 모르니까 예배시간 통해서 앞선 신앙의 선배들 지도자들 통해서 자라가야하는데 신앙이 자라가는 유일하고도 가장 좋은 방법 동시에 성경을 깨달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대로 말씀대로 실행해서 사는 겁니다. 그러면 말씀을 깨닫게 되고 깊어지고 넓어지고 정확해지면 신앙이 자라는 겁니다. 점점 자라게 되면 나이가 가면 자라게 되지요. 자라면 모습이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젖먹이 때와 세 살 때는 다르고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고 커지고 뚜렷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 있어서 자라가야하는데 자라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과나무 씨앗을 심으면 사과나무가 점점 되고 사과 꽃이 피고 사과 열매가 맺습니다. 감나무가 자라면 감꽃이 피고 감을 맺습니다. 원래 그 존재의 모습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지요. 자라갈수록 배 나무가 된다. 사람이 점점 자라면 어릴 때는 잘 모르는데 자라가면 아버지 닮는 사람으로 눈도 코도 귀도 외모도 성격도 목소리까지도 점점 부모를 닮아가는 게 그게 보이는 거지요. 우리 신앙이 점점 자라가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하느냐, 성경을 많이 지식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전도 많이하고 연보 많이해서가 아니고 설교 잘하는 게 신앙 자라는 게 아니고 신앙이 자라는 것은 믿어갈수록 하나님을 닮아가야하는 겁니다.
지식도 지혜도 중심도 사랑도 속성들이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는 게 신앙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의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요한도 사도들 전부 다도 앞선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간 그런 종이 되는 겁니다. 각자 여러 모양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보면 주님 닮은 사람 주님 닮은 소망 주님 닮은 것이 점점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라가면서 주님 닮은 사람으로 자라가면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모르니까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마지못해서 그렇게 많고 자라고 나면 깨닫고 나서 사명감에서 이렇게 믿어야하는구나 이렇게 실행을 해야하는구나 사명감 의무감이 되어지고 거기서 더 자라게 되면 평가적인 신앙이 되게 되는 거지요. 진실한 신앙 진충의 신앙 평가적인 신앙 이렇게 나가는 건데 평가적인 시간까지 가면 자원하는 신앙이 되게 되는 겁니다. 더 올라가면 평가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적인 차원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격에서 감동 되어서 사랑을 깨닫고 나니까 그 사랑이 너무 크고 귀하고 감사해서 나를 다 바쳐야겠다. 그래서 이건 원하고 원하는 그게 참 뜨거운 사랑의 관계로 자라가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의 종들처럼 다윗처럼 모세처럼 유재현 목사님 같은 분들처럼 우리 찬송가에 나와있지만 그런 분들 참 특징은 깊은 주님과의 교제 교감이라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설교를 들어보면 그렇게 깊었다고 합니다.
그게 깨닫고 나서 주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그런 관계로 가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깊은 교제 속에서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그를 통해서 나타내시고 교감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게 되는 거지요. 주신만큼 구원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밤 세워서 기도하고 산에 가서도 기도하고 기도하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렇게 자라가는 모습이 되는 거지요. 그러면 통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자라가야하고 성화되어져 가야하는 건데 주님을 향해서 점점 자라가고 변화되어 가고 과정 과정에 이걸 방해하는 벌어뜨리는 그 원수가 있으니 그 원수를 가르켜서 두 가지로 꼭 집으면 그게 바로 한 놈은 간부고 한 여자는 음녀고 그런 거지요. 간부라는 것은 우리가 신부가 되었을 때 눈을 빼앗가는 것이 간부고, 세상입니다. 온갖 좋은 것들 하나님 아들 아들로써 자라가야하는 우리들을 아름다운 이세벨을 가지고 눈을 빼앗아 가서 음녀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밖에 있고 빼앗겨서 내 속에 나 아닌 나, 나인데 나 아닌 나 그게 마음의 요소는 악성이고 몸에 입어진 건 악습이다. 이걸 미혹을 받아서 아합은 팔려버렸고 팔리고 있다 그 말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팔렸다 팔아먹었는데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에게 자기가 자기를 팔아먹어 팔렸습니다.
누가 간섭하지 않았고 강제하지 않았고 제가 좋아서 있으니까 아합의 그 눈에 이세벨이 아름답게 보였던 아합 속에 있던 욕심이 미를 찾았던 아름다움을 찾았던 뭐를 찾았던 그 마음 속에 있는 요소가 욕심인 거지요. 그런 감정 성향들이 됩니다. 별별 그런 욕심들이 많으나 하루 이틀 살아가는 몸에 찌들어가는 학습이고 내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나님께 주신 조상들의 기업을 옮기지 말아라. 그러면 아니야 꺾어 버리는 게 자체 주관인데 나봇의 포도원이 아름답게 보이면 아무리 밭이 필요하면 구할 수 있는데 하필 남의 포도원을 아합이 정상이면 이건 아니야, 바른 마음이 꺾어야하는데 자아, 영, 말하자면 정상적인 양심이 없어져버리고 욕심이 나와 팔려버린 것이지요. 그게 팔아먹었고 팔린 게 되는 거지요. 그게 팔려버려서 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합이 자아가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자기라는 존재 의미의 목적 이걸 팔았고 팔면 사람의 뇌를 바꿔버리면 지금까지 그런 기술 없을 건데 제 머리 속에 있는 뇌를 빼고 다른 사람 뇌를 집어넣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아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스라엘의 왕이고 계통있잖습니까. 이게 저를 팔아먹었으니까 아합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왕이라는 자기 자신과 그의 딸은 책임과 의무와 사명감이 없어지고 아합의 머리 속에는 누가 들어앉았습니까. 자기는 껍데기는 있는데 속은 딴 것이란 말이지요. 팔았으니까. 아합은 자기의 마음도 욕심도 감정도 양심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겁니다. 그게 주인이 되어서 이세벨이 주인이 되었고 그대로 움직이는 거지요. 판 원인은 뭐냐 뭡니까.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은 원인은 어제 새벽기도 때 그게 뭐지요. 아합은 마음이 약했다 그랬습니다. 마음 약한 그게 원인입니다. 그래서 약한 것과 악한 것은 한 끝 차이다. 이런 표현 하나 하나가 신앙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혁명이라, 개혁이라 그런 겁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약한 것과 악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런 건 평생을 가지고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약한 그 놈이 악역에게 붙들리니까 악한 놈이 되는 겁니다. 선에게 붙들리면 선응이 되는데 약한 것이 약하기 때문에 그 약한 것은 어린 아이들은 순진합니다. 순진한 아이들은 순진하고 깨끗하고 착하고 순진하고 깨끗합니다. 쉽게 잘 넘어지고 위험합니다. 이게 약한겁니다. 하나님 앞에 약하고 진리에 약하고 이러면 좋은데 아합은 약한 것이 이세벨에게 약합니다. 이세벨에게는 꼭잡힌 인간이 엘리야에게는 소리 팡팡 칩니다. 찍소리도 못하고 하나님 종에게는 소리 팡팡 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참 기가 찬 것은 좀 마음이 안들면 교회 안 갈래요. 큰 소리 펑 치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고 약하니까 그렇게 되는 건데 약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고 미혹받는 겁니다. 마음이 약해서 그래서 좋은데 쓰이지 못하고 악용이 되어버렸습니다. 악의 앞잡이가 되어서 나라를 절단내버렸습니다. 팔고 나니까 결과는 어찌 되었느냐 아합이 자기를 팔아먹고 누구를 샀습니까. 이세벨을 샀지요. 거래를 잘했으면 장사를 잘했으면 물건 100만원 가지고 1000만원 되고 올라가야하는데 마지막 가서 보니까 자기 자신은 비참하게 죽고 자기를 판 이세벨은 개가 뜯어먹고 낳은 자식 70명은 한 자리에 다 죽어버리고 이게 망한 장사입니다. 이 세상이 망한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망해버렸다 그렇게 말합니다. 판 거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농사짓는 사람으로 비유를 많이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한달은 주고 어떤 사람은 300만원을 받습니다. 자기를 주고 돈을 사는 거지요. 그렇게 살고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면서 지식도 만들고 지능도 만들고 배경도 만들고 가정도 만들고 여러 가지 만드는 게 바로 자기를 주고 사는 거지요. 나를 주고 그런 것인데 살아가면서 나를 팔고 살 것이 무엇이냐 너를 주고 요한계시록을 말합니다. 네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네 시간과 네 노력과 네 심신을 들여서 우리가 사야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사고 그 다음 나를 들여서 사는 것은 안약을 삽니다. 안약은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말씀의 깨달음 지식 관계의 깨달음이겠지요. 흰 옷을 사라 대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 것은 전부 다 나를 주고 나의 심신과 내 심신의 모든 노력과 세월을 주고 말씀 속에 성령이 있으니까 많이 샀으니까 그만큼 영감이 밝을 거니까 밝게 될겁니다. 참된 종은 55년 동안 성경만 연구했다고 합니다. 눈이 참 밝았습니다. 자기를 들인 세월 속에 말씀을 사고 영감을 샀으면 영안이 밝아야합니다.
말씀을 사서 실행을 사서 해야하고 깨달음 깊어야하고 대속 샀으니 되어있어야하고 죄 없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의인이 되어야하고 그런 걸 사지 않고 세월을 보냈으면 게으름을 사고 내준겁니다. 자야할 잠은 자는 겁니다. 그런데 안 자도 될 잠을 자면 잠을 사고 파는 거지요.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거지요. 자기 노력과 심신으로 게임을 샀습니다. 게임하는 기능은 천국 못 가는 겁니다. 그 엉뚱한 걸 하면 아합이라는 그 인간은 자기를 팔아서 세월과 노력과 심신을 팔아먹고 이세벨을 샀는데 어떤 사람이 중국에 30만원짜리 크리스탈 유리입니까. 그걸 샀답니까. 받고 보니까 600원짜리 돌멩이가 왔더라. 아합은 아름답게 보여서 이세벨을 샀는데 그게 폭탄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평생을 나가면 이런 사람이 됩니다. 잘 해야합니다. 나를 팔아서 뭘 살 것인가. 진주를 사라 새벽들 같은 보배를 사라. 주님 말씀 준행하는 걸 나를 들여서 시간과 노력 들여서 주님 말씀 준행하는 것을 사는 겁니다. 이리하지 않고 엉뚱하게 하면 주님 앞에 내줄 것이 없고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목적을 생각해봅시다. 이걸 위해서 하나님은 전부를 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를 벌어뜨리는 간부가 있고 음녀가 있으니 이것들이 나를 이것들에게 미혹받아 나를 팔아먹는겁니다. 아합처럼. 그러면 종이 되게 되는 겁니다. 오늘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는가. 내가 서른 살인데 30년 세월을 팔았는데 가져갈 게 뭐지 생각해봐야하는 겁니다. 나를 팔고 그런 것이 뭐지 70년 살았는데 뭐지 30세까지는 세상 쓸데없이 돌아다녔고 아마 후회되는 게 굉장히 많은 겁니다. 하나님께 사람의 인생 세월을 주신 것은 그런 줄 알고 주신겁니다. 60에 철이 든다. 요즘에는 60에도 철이 안 드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주님에게 가는 게 가깝기 전에 잘못 산 거 다 빼버리고 잘 팔아서 주님 앞에 가져갈 귀한 안약을 사고 금을 사서 밝은 사람으로 그리고 믿음 가진 사람으로 설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