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3-16조회 85추천 11
2025년 3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126장, 122장
본문: 이사야 40장 2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아합이 자기가 스스로 팔려서 그리 되었기 때문에 비참해졌고 이세벨도 비참해졌습니다. 제가 그리 되었으면 다른 길 가야할건데 자식들 다 죽었고 영과 육이 다 절단난, 심리상담사들 아주 안 좋은 일을 상담하는 사람들 소방관들은 주기적으로 치료 받는다고 하지요.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겁니다. 단속을 하고 치료를 해서 그리 안하면 본인들의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거지요. 아합의 비참한 말씀을 하니까 반대되는 말씀으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연결시켜보면 우리는 자유자입니다. 주권자입니다. 진정한 주권, 하나님 형상을 받은 사람 그 속성이 우리에게 있으니 하나님의 형상이고 작은 하나님이 되는 거지요.
자기 주인이고 현실이 주인이고 환경이 주인이고 왕입니다. 이런 것을 스스로 팔아먹어버리면 내가 팔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치토스가 어느나라가 과자입니까. 그게 모양이 이상하게 나왔는데 이걸 경매했답니다. 얼마에 팔렸는지 상상해보시겠습니까. 그런 과자 그런 거 몇 초만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1억 2천. 조선일보 신문에 나왔으니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모양이 묘하게 생겼다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이 많아서 어찌되든 사거나 말거나입니다. 아무도 말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세상도 그렇고 믿는 사람은 개인도 가정도 목회도 교회도 구역도 결국 다 머리에게 달렸습니다
주신 분량대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아합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팔려버렸습니다. 왜 팔렸습니까. 마음이 약해서, 그래서 이걸 가지고 기억할 것 악함의 밥이 된다. 약함은 악함의 밥이고 앞잡이 되기 쉽고 이용물이 되기 좋습니다. 깨끗할수록 때가 묻기 쉽습니다. 때가 많이 물건은 깨끗한 것을 되면은 그리 되어버립니다. 장단점이 다 그렇습니다. 곱게 바르게 되어오면 뱀같은 지혜가 없으면 흔들려서 깨끗할수록 순진할수록 순수할수록 쉬운겁니다. 순진하기만하면 뱀의 밥이 되는 겁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나님 앞에서는 약한게 좋고 이 세상과 마귀 이런 것에서는 견고하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한게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약함을 고치는 방법이 있으니 그게 뭐냐 자기의 심약한 방법을 고치는 방법 그 약함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은 뭐냐. 자기 몸 건강에 맞는 정도에서 약간 힘든 운동을 계속해나가면 그만큼 튼튼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치고 과학입니다.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몸이 약하면 잘 먹어야합니다. 잘 먹으면 일찍 죽습니다. 요즘은 너무 잘 먹어서 일찍 죽습니다. 몸이 튼튼해질려면 운동을 해야합니다. 진리입니다. 어떤 면이로든지 자기 몸을 움직이지 않고 몸이 튼튼해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그렇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몸이 튼튼할려면 몸이 움직여서 다리가 움직이고 움직여서 부위가 튼튼하게 됩니다. 안 그러고 먹기만 하면은 살만 띵띵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약함을 전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할 수 없는 말씀 하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것, 한 번하고 말고 두 번하고 말고 이건 아닙니다. 운동을 일주일하다가 안하면 돌아가버립니다. 꾸준하게 계속하는거지요. 그러면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나중에 익어지게 되는 거지요. 찬양대 권찰회 때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가르쳐주신 게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화음도 조화도 그렇고 제가 서툰 들어도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연습을 하고 또 하고 그것이 자기의 본능이 되기까지. 자기의 본능이 되기까지. 글을 몇 년 썼습니까. 10년 글쓰고 나면 고등학교 때 나중에 자유롭게 씁니다. 10년을 그리 써야 자유롭습니다. 10년 그게 본능이 되어됩니다. 손이 움직이면 되는거죠.
발 끝에다, 팔이 없는 분들이 발가락에 끼워서 그림그리는 분들이 있으시지요. 약함을 고치는 방법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건 필연적인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타락한 것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들인데 유일한 방법이 뭐냐, 좀 다르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박대통령 시해되고 난 다음에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다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앞에 큰 소리 못치는 겁니다. 그렇게 정권을 잡아버렸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피조물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 공무원 말단의 것이 상관 위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설 수 있는 겁니다. 이걸 좀 기억을 하면서 찾아봅니다.
이사야 선지는 다음에 예레미야가 나오지요. 이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희망이 있을 때입니다.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회개와 함께 구주 메시아에 대한 것이 전부 다 이사야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선지자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기회가 있으니까 그런 것이고 믿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 때는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매를 달게 받을 때입니다. 예레미야 때는. 이사야 때도 있고 예레미야같은 그런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럴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렉 받고 원망 불평 낙망 낙심하지 말고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 놔두는 것입니다.
27절은 하나님은 인간 세계를 다 관찰하신다. 인간 세계를 관찰하시는 망각이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러기를 야곱 때도 이스라엘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이랬든 저랬든 그리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아 숨겨졌으며 내 사정을 몰라주신다 이 말이지요. 마음을 가지는 분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도해도 안 풀리면 사람 관계가 틀어졌는데 진로 막혔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내 사정은 건강 사정 인간관계 사정 자기 진로 사정 별별 사정들이 있습니다. 노력하다가 1년 기다리다가 몇 년 기도하다가 다 지나가서 앞이 캄캄하게 안 보이면 숨겨졌으며 건강 문제 경제문제 진로문제 누가 다 손아귀에 쥐고 있습니까.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누가 그걸 주셨습니까. 성경이 틀리면 반론할 때 목사가 설교 시간에 남의 사정도 모르고 설교 잘한다 그러면 안됩니다. 성경에 틀립니다 교리가 안 맞습니다. 그러면 말하면 됩니다. 오만 사정 별별 사정이 다 있습니다. 남의 떡은 커보이고 다 좋아보이는데 우리 공회도 우리 공회만 그렇겠습니까.
전염병에 들었는데 우리만 들으면 원망이 나오는데 모두 다 나오면 원망이 덜합니다. 나는 내가 병이 들고 다른 집은 안 타야겠는데 우리 집에 불났으니까 다 중심이고 악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런 걸 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사정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만 사정이 다 있습니다. 다 괴롭습니다. 집집마다 다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안 괜찮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야곱도 이스라엘 백성이고 이스라엘은 더 장성한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다. 다른 사람 다 보는데 나는 안 보신다. 전에 말씀드렸던가요 백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도 해도 안 주셔서 그런 마음이 드니까 그러면 둘이 바꿔라. 그 생각드니까 정신이 들더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의 끝까지, 우주 전부 다입니다. 끝에서 끝까지 전부 그렇게 할 때 예배 시작과 끝을 하지요. 한문 글자로 시종이라고 하지요. 땅 끝까지 그 말은 지극히 작은 거 하나까지 땅 끝까지 차는 게 하루 살이에 하나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관섭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거는 말할 거 없고 넓은 거 말할 거 없고 전부 관섭하시는 그 분이 시작과 끝을 다 보시는 그분이 내꺼는 내 사정은 내 원통함은 왜 떼어놓겠습니까. 나는 밉상이라서 내 눈에 안 보이겠다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없는 겁니다. 빠뜨리는 게 없고. 사람이 있는대로 했는데 하나님 이런 분이고 이런 사람이고 그런 것인데 사람이 자기가 좁으니까 좁게 보고 자기가 부족하니까 그런 줄 알고 스스로 팔려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그런 것이니까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하는데 3일이 되었는데 나중에 돌보다가 졸더랍니다. 저절로 쓰러지는 겁니다. 그들은 그리 될 수 있다. 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분이 기억력이 모자라겠느냐,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돈벌다가 피곤하고 밤새도록 피곤하고 죄짓다 피곤하고 다 하지요. 그런데 자기 딴에는 자기 대로는 악성과 악습을 해서 지금까지 이어붙은 죄를 이어볼려서 금식도 해보고 싸워봅니다. 그러니까 피곤하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하고 싶은데 힘이 없으면 힘을 주시고 그런 겁니다. 하나님 이런 분입니다.
27절은 하나님은 인간 세계를 빠짐없이 다 관찰하고 계신다. 28 29절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셨고 관찰하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소년이라도 피곤합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뛰어놀고 나면 좁니다. 눈에 굴려도 감기 안 걸리고 쇠를 물어도 뜯어먹는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되는 게 본문의 소년입니다. 노인들은 다 되어가면 축 쳐져버립니다. 피곤합니다 왜요, 사람이라서. 소년에 비해서 자랐습니다. 방법도 알고 그래도 아무리 지혜있고 잘해도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는 겁니다. 사람은 잊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자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중에서 31절 30절하고 반대로 말하는 겁니다. 오직, 오직은 뭘 말하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이사람은 다른 겁니다.
중생된 사람 이름을 뭐라고 한다고요.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늘나라를 그렇게 부릅니다.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독수리를 못 봤습니다만은 어마어마하게 크답니다. 엄청 크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 닭이나 그런 건 독수리, 독수리를 하면 피곤하지 않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그리 된다고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우리는 주권자로 살아야겠습니다. 약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약한 것은 악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진충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부족하다 약하다 그 핑계가 바로 우리는 나태하고 게으른 것 이걸 버리고 강건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후회하지 않을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가장 느릴 때인데 한편으로 지금 빠를 때입니다. 믿음을 미룰수록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6장, 122장
본문: 이사야 40장 2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아합이 자기가 스스로 팔려서 그리 되었기 때문에 비참해졌고 이세벨도 비참해졌습니다. 제가 그리 되었으면 다른 길 가야할건데 자식들 다 죽었고 영과 육이 다 절단난, 심리상담사들 아주 안 좋은 일을 상담하는 사람들 소방관들은 주기적으로 치료 받는다고 하지요.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겁니다. 단속을 하고 치료를 해서 그리 안하면 본인들의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거지요. 아합의 비참한 말씀을 하니까 반대되는 말씀으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연결시켜보면 우리는 자유자입니다. 주권자입니다. 진정한 주권, 하나님 형상을 받은 사람 그 속성이 우리에게 있으니 하나님의 형상이고 작은 하나님이 되는 거지요.
자기 주인이고 현실이 주인이고 환경이 주인이고 왕입니다. 이런 것을 스스로 팔아먹어버리면 내가 팔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치토스가 어느나라가 과자입니까. 그게 모양이 이상하게 나왔는데 이걸 경매했답니다. 얼마에 팔렸는지 상상해보시겠습니까. 그런 과자 그런 거 몇 초만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1억 2천. 조선일보 신문에 나왔으니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모양이 묘하게 생겼다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이 많아서 어찌되든 사거나 말거나입니다. 아무도 말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세상도 그렇고 믿는 사람은 개인도 가정도 목회도 교회도 구역도 결국 다 머리에게 달렸습니다
주신 분량대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아합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팔려버렸습니다. 왜 팔렸습니까. 마음이 약해서, 그래서 이걸 가지고 기억할 것 악함의 밥이 된다. 약함은 악함의 밥이고 앞잡이 되기 쉽고 이용물이 되기 좋습니다. 깨끗할수록 때가 묻기 쉽습니다. 때가 많이 물건은 깨끗한 것을 되면은 그리 되어버립니다. 장단점이 다 그렇습니다. 곱게 바르게 되어오면 뱀같은 지혜가 없으면 흔들려서 깨끗할수록 순진할수록 순수할수록 쉬운겁니다. 순진하기만하면 뱀의 밥이 되는 겁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나님 앞에서는 약한게 좋고 이 세상과 마귀 이런 것에서는 견고하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한게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약함을 고치는 방법이 있으니 그게 뭐냐 자기의 심약한 방법을 고치는 방법 그 약함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은 뭐냐. 자기 몸 건강에 맞는 정도에서 약간 힘든 운동을 계속해나가면 그만큼 튼튼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치고 과학입니다.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몸이 약하면 잘 먹어야합니다. 잘 먹으면 일찍 죽습니다. 요즘은 너무 잘 먹어서 일찍 죽습니다. 몸이 튼튼해질려면 운동을 해야합니다. 진리입니다. 어떤 면이로든지 자기 몸을 움직이지 않고 몸이 튼튼해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그렇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몸이 튼튼할려면 몸이 움직여서 다리가 움직이고 움직여서 부위가 튼튼하게 됩니다. 안 그러고 먹기만 하면은 살만 띵띵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약함을 전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할 수 없는 말씀 하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것, 한 번하고 말고 두 번하고 말고 이건 아닙니다. 운동을 일주일하다가 안하면 돌아가버립니다. 꾸준하게 계속하는거지요. 그러면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나중에 익어지게 되는 거지요. 찬양대 권찰회 때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가르쳐주신 게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화음도 조화도 그렇고 제가 서툰 들어도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연습을 하고 또 하고 그것이 자기의 본능이 되기까지. 자기의 본능이 되기까지. 글을 몇 년 썼습니까. 10년 글쓰고 나면 고등학교 때 나중에 자유롭게 씁니다. 10년을 그리 써야 자유롭습니다. 10년 그게 본능이 되어됩니다. 손이 움직이면 되는거죠.
발 끝에다, 팔이 없는 분들이 발가락에 끼워서 그림그리는 분들이 있으시지요. 약함을 고치는 방법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건 필연적인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타락한 것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들인데 유일한 방법이 뭐냐, 좀 다르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박대통령 시해되고 난 다음에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다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앞에 큰 소리 못치는 겁니다. 그렇게 정권을 잡아버렸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피조물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 공무원 말단의 것이 상관 위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설 수 있는 겁니다. 이걸 좀 기억을 하면서 찾아봅니다.
이사야 선지는 다음에 예레미야가 나오지요. 이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희망이 있을 때입니다.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회개와 함께 구주 메시아에 대한 것이 전부 다 이사야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선지자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기회가 있으니까 그런 것이고 믿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 때는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매를 달게 받을 때입니다. 예레미야 때는. 이사야 때도 있고 예레미야같은 그런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럴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렉 받고 원망 불평 낙망 낙심하지 말고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 놔두는 것입니다.
27절은 하나님은 인간 세계를 다 관찰하신다. 인간 세계를 관찰하시는 망각이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러기를 야곱 때도 이스라엘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이랬든 저랬든 그리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아 숨겨졌으며 내 사정을 몰라주신다 이 말이지요. 마음을 가지는 분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도해도 안 풀리면 사람 관계가 틀어졌는데 진로 막혔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내 사정은 건강 사정 인간관계 사정 자기 진로 사정 별별 사정들이 있습니다. 노력하다가 1년 기다리다가 몇 년 기도하다가 다 지나가서 앞이 캄캄하게 안 보이면 숨겨졌으며 건강 문제 경제문제 진로문제 누가 다 손아귀에 쥐고 있습니까.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누가 그걸 주셨습니까. 성경이 틀리면 반론할 때 목사가 설교 시간에 남의 사정도 모르고 설교 잘한다 그러면 안됩니다. 성경에 틀립니다 교리가 안 맞습니다. 그러면 말하면 됩니다. 오만 사정 별별 사정이 다 있습니다. 남의 떡은 커보이고 다 좋아보이는데 우리 공회도 우리 공회만 그렇겠습니까.
전염병에 들었는데 우리만 들으면 원망이 나오는데 모두 다 나오면 원망이 덜합니다. 나는 내가 병이 들고 다른 집은 안 타야겠는데 우리 집에 불났으니까 다 중심이고 악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런 걸 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사정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만 사정이 다 있습니다. 다 괴롭습니다. 집집마다 다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안 괜찮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야곱도 이스라엘 백성이고 이스라엘은 더 장성한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다. 다른 사람 다 보는데 나는 안 보신다. 전에 말씀드렸던가요 백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도 해도 안 주셔서 그런 마음이 드니까 그러면 둘이 바꿔라. 그 생각드니까 정신이 들더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의 끝까지, 우주 전부 다입니다. 끝에서 끝까지 전부 그렇게 할 때 예배 시작과 끝을 하지요. 한문 글자로 시종이라고 하지요. 땅 끝까지 그 말은 지극히 작은 거 하나까지 땅 끝까지 차는 게 하루 살이에 하나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관섭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거는 말할 거 없고 넓은 거 말할 거 없고 전부 관섭하시는 그 분이 시작과 끝을 다 보시는 그분이 내꺼는 내 사정은 내 원통함은 왜 떼어놓겠습니까. 나는 밉상이라서 내 눈에 안 보이겠다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없는 겁니다. 빠뜨리는 게 없고. 사람이 있는대로 했는데 하나님 이런 분이고 이런 사람이고 그런 것인데 사람이 자기가 좁으니까 좁게 보고 자기가 부족하니까 그런 줄 알고 스스로 팔려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그런 것이니까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하는데 3일이 되었는데 나중에 돌보다가 졸더랍니다. 저절로 쓰러지는 겁니다. 그들은 그리 될 수 있다. 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분이 기억력이 모자라겠느냐,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돈벌다가 피곤하고 밤새도록 피곤하고 죄짓다 피곤하고 다 하지요. 그런데 자기 딴에는 자기 대로는 악성과 악습을 해서 지금까지 이어붙은 죄를 이어볼려서 금식도 해보고 싸워봅니다. 그러니까 피곤하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하고 싶은데 힘이 없으면 힘을 주시고 그런 겁니다. 하나님 이런 분입니다.
27절은 하나님은 인간 세계를 빠짐없이 다 관찰하고 계신다. 28 29절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셨고 관찰하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소년이라도 피곤합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뛰어놀고 나면 좁니다. 눈에 굴려도 감기 안 걸리고 쇠를 물어도 뜯어먹는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되는 게 본문의 소년입니다. 노인들은 다 되어가면 축 쳐져버립니다. 피곤합니다 왜요, 사람이라서. 소년에 비해서 자랐습니다. 방법도 알고 그래도 아무리 지혜있고 잘해도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는 겁니다. 사람은 잊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자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중에서 31절 30절하고 반대로 말하는 겁니다. 오직, 오직은 뭘 말하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이사람은 다른 겁니다.
중생된 사람 이름을 뭐라고 한다고요.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늘나라를 그렇게 부릅니다.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독수리를 못 봤습니다만은 어마어마하게 크답니다. 엄청 크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 닭이나 그런 건 독수리, 독수리를 하면 피곤하지 않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그리 된다고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우리는 주권자로 살아야겠습니다. 약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약한 것은 악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진충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부족하다 약하다 그 핑계가 바로 우리는 나태하고 게으른 것 이걸 버리고 강건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후회하지 않을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가장 느릴 때인데 한편으로 지금 빠를 때입니다. 믿음을 미룰수록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