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 금밤
김동민2025-02-28조회 76추천 9
2025년 2월 28일 금밤
친송: 16장, 18장
본문: 시편 84편 1절 ~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앞에 고라 자손의 시,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어떤 사물, 어떤 물질과 사건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있는 모든 사물과 사람까지 포함되게 해서 그 전부를 하나하나 내면을 파악을 하고 그 본질 본성을 파악을 하고 그 어떠한 걸 알아서 남 다르게 느낀 바가 있으면 그걸 자기가 느낀 바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발표한 그게 시가 됩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사물 중에서 어떤 것 하나도 시로 쓰지 못할 제목은 없습니다. 전부 다 어떤 것이든 시로 쓸 수 있습니다. 좋은 거 좋은 대로 나쁜 거 나쁜 대로 큰 건 큰 대로 낮은 건 낮은대로 밝은 건 밝은 대로 어두운건 어두운대로. 모든 하늘부터 땅아래까지 전부 다 하나 하나 시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개미도 개미를 제목으로 시를 지을 수 있고 개미의 다리로도, 모래알 하나로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추운 날씨로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눈을 가지고, 비를 가지고 지을 수 있고 아침 이슬로도 지을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상황 가지고 지을 수 있습니다. 시로 쓰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치도 그러하고 지으면 한도 끝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남 다른 감성적인 면이 밝을 때 시인은 그래서 아는 게 굉장히 많아야합니다. 속에 있는 그런 것을 줄여서 표현해서 해야하기 때문에 시인들은 상당히 유식합니다. 그 사람의 지식 정도에 따라서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 시들은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시편은 다 그런 의미이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고라 자손이 자기를 깨달은바를 고백을 한 겁니다. 시로 지은 겁니다. 등산 가는 사람이 산에 가서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에 갈 수 있습니다. 바다에 간 사람이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은혜를 아주 극진히 느껴서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애기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의 과정도 시를 쓸 수 있고 아이도 시를 지을 수 있고 아이의 손을 가지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고라 자손도 시를 썼는데 하나님에 대한 시를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시인이 상대해서 믿었고 영적인 교제하는 가운데 보게 됐고 깨닫게 되었고 느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뭐라고 깨달았느냐. 만군의 여호와다 그렇게 깨달은겁니다. 그렇게 체험을 한 겁니다. 전쟁 중에서 큰 전쟁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그런 걸 만이라고 합니다. 천군보다 더 많은 게 만군입니다. 군 자를 쓸 때 천군천사라고 그럴 때 일반적으로 군사 군 자 일건데. 군자를 임금 군 자를 쓸 때를 있습니다. 그때는 군사가 아닙니다. 군사 군자입니다. 무한한 군사입니다. 이 시편 기자가 고라자손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자기를 지켜주시는 전쟁하시는 하나님이더라 그런 겁니다. 대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냥 얼마 안되면 간단하게 하면 되는데 신앙 생활하다 보니까 대적이 굉장히 많았는데 원수가 많았는데 자기 능력으로 못 이기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군대가 되어가지고 자기 대적을 다 막아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다 그럴 때는 자기의 대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기 원수가 무수히 많다는 걸 깨달은 거지요. 그리고 그걸 자기 힘으로 못 이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군사가 되어서 나를 지켜주시더라.
무슨 대적이 그렇게 많을까. 믿는 사람의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믿는 사람이 하는 전쟁을, 지금 정권을 두고 교회를 듣고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믿는 사람들의 전쟁은 죄를 안 짓는 전쟁입니다. 진실하게 이중 삼중 말고 원수 대적이 굉장히 많은 겁니다. 정말 죄와 싸워서 이기기로 해서 군대가 되셔서 만군이 되셔가지고 모든 세력을 막아주신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섬기니까 바로 살려고 노력해보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성전으로 살려고 해보니까 무수하더라. 자기 힘으로 못 이기는데 진실되게 이기는 건 만군의 여호와 되셔서 대신 싸워주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군대로 삼고 하나님이 나를 막아주시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자기 문제입니다. 진실하게 죄를 멸하려고 내 주장을 다 버리고 뜻대로 살려고. 하늘의 소망으로 대속을 입은 자로 살려고 그렇게 발버둥치고 하나님 앞에 피난처로 사는 게 되는 것이고 만군의 여호와가 되셔서 싸워주시게 되고 이길 수 있을 게 되는데 자기의 소원이 다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과 성품이 들이지 못하고 싸우는 시늉만 있어서 죄를 못 이기는 거지 정말 성경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내 군대가 되시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겁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장막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일반 사람들이 사는 장막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 전부 장막에 살았습니다. 장막 집에 살았는데 아무것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장막절인데 일반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주의 장막이니까 하나님의 집이고 성전이 되는데 이 성전이 장막일 때는 출발이고 임시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보기도 좋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고 썩 좋을 수가 없는 게 장막입니다. 상대적인 그런 면은 있습니다. 우산도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 허름한 텐트 하나 있으면 좋습니다. 다 찢어진 텐트에 있다가 새 좋은 텐트를 치면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텐트라도 아파트보다는 못한 겁니다. 장막은 텐트, 천막입니다. 모세의 성막이 바로 장막입니다. 이 시편 기자의 눈에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사랑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람과 사람에서 최고의 관계입니다. 모든 인간 관계 중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좋은 표현잉 사랑입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아름다운지요 깨끗한지요 복된지요.
그 장막은 임시막입니다. 잘 지었습니다만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는 겁니다. 임시막이니까 그런데 그 장막이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 관계가 되니까 좋게 그렇게 이 성도에게 보여지게 된 겁니다. 사람이 내가 좋으면 어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과 관계된 것은 다 좋은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검은 양복을 입고 모든 목회자를 다 따라갔고 목회자들의 설교처럼 그렇게 되어진 건데 최고급 영국제 양복을 입고 설교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이 노년에 뒤로 가셔서 의미를 붙일 수 있는데 까만 넥타이 하신 이유는 선택하기가 쉬워서 그렇게 평생 그러셨다고 합니다. 신발은 털신을 신고 다니셨습니다. 많은 존경하는 사람들이 털신을 신었습니다. 따라가는 거지요. 그 사람이 머문 곳은 좋아보이고 사람의 관계고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랑스러운지요 그런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장막같은 집인데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였고 좋게 보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되어있으면 좋습니다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예배당과 발걸음이 멀어집니다. 기도와 내가 멀어집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기도가 식어진다 그리 되는 겁니다. 사연이 있어서 그럴 때는 몰라도 같이 사는데 대화가 줄어든다 안한다 교감이 없다. 그러면 그 마음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보이는 걸 가지고 보이지 않는 걸 찾아보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하늘나라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도 안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이 마음이 가야할 곳이 있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이걸 증상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이 예배가 기다려지는지 설교자도 그렇습니다. 가까이 지내고 있고 깨어살고 전할 말씀이 많으면 예배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안 이러면 겁이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렇게 사랑스러운지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드렸습니다. 왜 전쟁하는 하나님이 나오느냐. 원수가 그렇게 많은 겁니다. 그래서 내 군대가 되어서 막아주시는 겁니다.
영에게 속한 영에게 붙들린 그 마음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영혼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사람은 영혼이 장막인데 궁전이 됐습니다. 제가 깨닫고 전하는 겁니다. 이상하면 연구해보셔야합니다. 앞에 1절은 장막이고 2절은 궁전입니다. 모세의 성막이 점점 세월이 지나가고 온전해 진 것이 솔로몬 성전이 된 것이고 완성이 될 때 신앙의 이상향이 될 때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궁전이라는 것은 궁궐이고 궁전은 그 뜰인데 왕궁에 뜰입니다. 마당인데 왕이 있는 곳입니다.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장막에서 궁전이 있으니까 발전했고 전진했고 온전하게 되어진 겁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렇게 되어진 것이고. 더 장성하면은 솔로몬 성전같은 신앙으로 자라가야하는 것이고 그게 정상적인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모세 성막같은 어리고 부족하고 다 불편한 그런 모습에서 점점 하나님을 모신 게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구비하고 온전해져가는 그런 성전으로 가는 게 여기 말씀하신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애를 쓰는데 노력하니까 그렇게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거지요. 사모하는 거지요. 좋아함으로 사모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도 있지만 성막이 장막이 궁전이 될 거 보니까 하나님을 보신 장막이 궁전이 되기까지 자기 생활이 점점 전진되고 향상되고 온전해져가는 그런 것이 자기 모든 것을 기울이다보니까 쇠약해지는 겁니다.
말하자면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생활, 점점 온전하게 바르게 해 나가려하다 보니까 영혼이 쇠약해지는 겁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 마음와 육체가 생존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성전으로 어린 장막 성막에서 자라나는 구비한 그런 성전 생활은 자라갈려고 하면 자기 심신이 고달프게 되는 겁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노력하니까 공부를 열심히해도 심신이 쇠약해집니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어도 쇠약해집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장막으로 하나님 오신 생활인데 좀 더 전진해서 구비하게 완벽한 그런 생활을 더 깊게 더 높게 더 바르게 그렇게 할려고 애를 쓰다보니까 심신이 쇠약해지는 겁니다.
건강 관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밤낮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마음을 졸이고 그렇게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하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세 분으로 불렀지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기자의 관계입니다. 나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나는 하나님께 전적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나의 왕입니다. 전적 복종합니다. 유일입니다. 내게는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입니다. 나의 왕 하나님 나를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 나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성막에 성전의 핵심은 가장 깊은 곳 지성소입니다. 법궤있고 그룹있고 그런 곳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을 모신 곳입니다. 알멩이인데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을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과정이 뭡니까. 이건 답이 안 나오면 곤란합니다. 그게 바로 제단입니다. 재단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대속이 전부 다입니다. 그 대속이 바로 말씀하신 제단입니다. 에스겔 성전 때 배웠지요 많은 자손 밖에서 하니까 마지막에 보니까 아무것도 없고 뭐만 있다고요. 뭐만있었습니까. 다 잊었습니까. 나무 제단만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대속만 있습니다. 주의 제단에서 성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주님 바치는 제단이고 나를 바치는 제단입니다. 그 제단에서 생활할 때 참새, 참새라는 건 성경에서 가치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사람입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면 그곳이 집이 됩니다.
성경에 철새는 형평따라 사정따라 그런 사람을 철새같은 사람이라, 정처없는 인생을 말하는 건데 그런 사람도 주님 제단에 자기를 바치면 거기가 바로 안식처가 되고 번식이 되고 그런 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온전한 성전이 되고 교회가 교회다운 그런 곳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새끼를 낳고 알을 깠는데 집이 없으면 안되는거지요. 교회가 교회답게 됩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늘나라 천국 무궁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주를 찬송하리다. 그러면 천국 찬송이 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생각해봤습니다. 깨닫고 느껴서 시로 기록한겁니다. 표현 하나 하나 생각해보면서 이런 신앙생활로 자라가야하고 온전해져가야하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친송: 16장, 18장
본문: 시편 84편 1절 ~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앞에 고라 자손의 시,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어떤 사물, 어떤 물질과 사건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있는 모든 사물과 사람까지 포함되게 해서 그 전부를 하나하나 내면을 파악을 하고 그 본질 본성을 파악을 하고 그 어떠한 걸 알아서 남 다르게 느낀 바가 있으면 그걸 자기가 느낀 바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발표한 그게 시가 됩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사물 중에서 어떤 것 하나도 시로 쓰지 못할 제목은 없습니다. 전부 다 어떤 것이든 시로 쓸 수 있습니다. 좋은 거 좋은 대로 나쁜 거 나쁜 대로 큰 건 큰 대로 낮은 건 낮은대로 밝은 건 밝은 대로 어두운건 어두운대로. 모든 하늘부터 땅아래까지 전부 다 하나 하나 시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개미도 개미를 제목으로 시를 지을 수 있고 개미의 다리로도, 모래알 하나로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추운 날씨로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눈을 가지고, 비를 가지고 지을 수 있고 아침 이슬로도 지을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상황 가지고 지을 수 있습니다. 시로 쓰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치도 그러하고 지으면 한도 끝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남 다른 감성적인 면이 밝을 때 시인은 그래서 아는 게 굉장히 많아야합니다. 속에 있는 그런 것을 줄여서 표현해서 해야하기 때문에 시인들은 상당히 유식합니다. 그 사람의 지식 정도에 따라서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 시들은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시편은 다 그런 의미이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고라 자손이 자기를 깨달은바를 고백을 한 겁니다. 시로 지은 겁니다. 등산 가는 사람이 산에 가서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에 갈 수 있습니다. 바다에 간 사람이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은혜를 아주 극진히 느껴서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애기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의 과정도 시를 쓸 수 있고 아이도 시를 지을 수 있고 아이의 손을 가지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고라 자손도 시를 썼는데 하나님에 대한 시를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시인이 상대해서 믿었고 영적인 교제하는 가운데 보게 됐고 깨닫게 되었고 느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뭐라고 깨달았느냐. 만군의 여호와다 그렇게 깨달은겁니다. 그렇게 체험을 한 겁니다. 전쟁 중에서 큰 전쟁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그런 걸 만이라고 합니다. 천군보다 더 많은 게 만군입니다. 군 자를 쓸 때 천군천사라고 그럴 때 일반적으로 군사 군 자 일건데. 군자를 임금 군 자를 쓸 때를 있습니다. 그때는 군사가 아닙니다. 군사 군자입니다. 무한한 군사입니다. 이 시편 기자가 고라자손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자기를 지켜주시는 전쟁하시는 하나님이더라 그런 겁니다. 대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냥 얼마 안되면 간단하게 하면 되는데 신앙 생활하다 보니까 대적이 굉장히 많았는데 원수가 많았는데 자기 능력으로 못 이기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군대가 되어가지고 자기 대적을 다 막아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다 그럴 때는 자기의 대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기 원수가 무수히 많다는 걸 깨달은 거지요. 그리고 그걸 자기 힘으로 못 이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군사가 되어서 나를 지켜주시더라.
무슨 대적이 그렇게 많을까. 믿는 사람의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믿는 사람이 하는 전쟁을, 지금 정권을 두고 교회를 듣고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믿는 사람들의 전쟁은 죄를 안 짓는 전쟁입니다. 진실하게 이중 삼중 말고 원수 대적이 굉장히 많은 겁니다. 정말 죄와 싸워서 이기기로 해서 군대가 되셔서 만군이 되셔가지고 모든 세력을 막아주신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섬기니까 바로 살려고 노력해보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성전으로 살려고 해보니까 무수하더라. 자기 힘으로 못 이기는데 진실되게 이기는 건 만군의 여호와 되셔서 대신 싸워주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군대로 삼고 하나님이 나를 막아주시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자기 문제입니다. 진실하게 죄를 멸하려고 내 주장을 다 버리고 뜻대로 살려고. 하늘의 소망으로 대속을 입은 자로 살려고 그렇게 발버둥치고 하나님 앞에 피난처로 사는 게 되는 것이고 만군의 여호와가 되셔서 싸워주시게 되고 이길 수 있을 게 되는데 자기의 소원이 다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과 성품이 들이지 못하고 싸우는 시늉만 있어서 죄를 못 이기는 거지 정말 성경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내 군대가 되시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겁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장막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일반 사람들이 사는 장막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 전부 장막에 살았습니다. 장막 집에 살았는데 아무것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장막절인데 일반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주의 장막이니까 하나님의 집이고 성전이 되는데 이 성전이 장막일 때는 출발이고 임시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보기도 좋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고 썩 좋을 수가 없는 게 장막입니다. 상대적인 그런 면은 있습니다. 우산도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 허름한 텐트 하나 있으면 좋습니다. 다 찢어진 텐트에 있다가 새 좋은 텐트를 치면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텐트라도 아파트보다는 못한 겁니다. 장막은 텐트, 천막입니다. 모세의 성막이 바로 장막입니다. 이 시편 기자의 눈에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사랑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람과 사람에서 최고의 관계입니다. 모든 인간 관계 중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좋은 표현잉 사랑입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아름다운지요 깨끗한지요 복된지요.
그 장막은 임시막입니다. 잘 지었습니다만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는 겁니다. 임시막이니까 그런데 그 장막이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 관계가 되니까 좋게 그렇게 이 성도에게 보여지게 된 겁니다. 사람이 내가 좋으면 어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과 관계된 것은 다 좋은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검은 양복을 입고 모든 목회자를 다 따라갔고 목회자들의 설교처럼 그렇게 되어진 건데 최고급 영국제 양복을 입고 설교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이 노년에 뒤로 가셔서 의미를 붙일 수 있는데 까만 넥타이 하신 이유는 선택하기가 쉬워서 그렇게 평생 그러셨다고 합니다. 신발은 털신을 신고 다니셨습니다. 많은 존경하는 사람들이 털신을 신었습니다. 따라가는 거지요. 그 사람이 머문 곳은 좋아보이고 사람의 관계고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랑스러운지요 그런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장막같은 집인데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였고 좋게 보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되어있으면 좋습니다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예배당과 발걸음이 멀어집니다. 기도와 내가 멀어집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기도가 식어진다 그리 되는 겁니다. 사연이 있어서 그럴 때는 몰라도 같이 사는데 대화가 줄어든다 안한다 교감이 없다. 그러면 그 마음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보이는 걸 가지고 보이지 않는 걸 찾아보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하늘나라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도 안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이 마음이 가야할 곳이 있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이걸 증상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이 예배가 기다려지는지 설교자도 그렇습니다. 가까이 지내고 있고 깨어살고 전할 말씀이 많으면 예배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안 이러면 겁이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렇게 사랑스러운지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드렸습니다. 왜 전쟁하는 하나님이 나오느냐. 원수가 그렇게 많은 겁니다. 그래서 내 군대가 되어서 막아주시는 겁니다.
영에게 속한 영에게 붙들린 그 마음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영혼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사람은 영혼이 장막인데 궁전이 됐습니다. 제가 깨닫고 전하는 겁니다. 이상하면 연구해보셔야합니다. 앞에 1절은 장막이고 2절은 궁전입니다. 모세의 성막이 점점 세월이 지나가고 온전해 진 것이 솔로몬 성전이 된 것이고 완성이 될 때 신앙의 이상향이 될 때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궁전이라는 것은 궁궐이고 궁전은 그 뜰인데 왕궁에 뜰입니다. 마당인데 왕이 있는 곳입니다.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장막에서 궁전이 있으니까 발전했고 전진했고 온전하게 되어진 겁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렇게 되어진 것이고. 더 장성하면은 솔로몬 성전같은 신앙으로 자라가야하는 것이고 그게 정상적인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모세 성막같은 어리고 부족하고 다 불편한 그런 모습에서 점점 하나님을 모신 게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구비하고 온전해져가는 그런 성전으로 가는 게 여기 말씀하신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애를 쓰는데 노력하니까 그렇게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거지요. 사모하는 거지요. 좋아함으로 사모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도 있지만 성막이 장막이 궁전이 될 거 보니까 하나님을 보신 장막이 궁전이 되기까지 자기 생활이 점점 전진되고 향상되고 온전해져가는 그런 것이 자기 모든 것을 기울이다보니까 쇠약해지는 겁니다.
말하자면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생활, 점점 온전하게 바르게 해 나가려하다 보니까 영혼이 쇠약해지는 겁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 마음와 육체가 생존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성전으로 어린 장막 성막에서 자라나는 구비한 그런 성전 생활은 자라갈려고 하면 자기 심신이 고달프게 되는 겁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노력하니까 공부를 열심히해도 심신이 쇠약해집니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어도 쇠약해집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장막으로 하나님 오신 생활인데 좀 더 전진해서 구비하게 완벽한 그런 생활을 더 깊게 더 높게 더 바르게 그렇게 할려고 애를 쓰다보니까 심신이 쇠약해지는 겁니다.
건강 관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밤낮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마음을 졸이고 그렇게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하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세 분으로 불렀지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기자의 관계입니다. 나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나는 하나님께 전적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나의 왕입니다. 전적 복종합니다. 유일입니다. 내게는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입니다. 나의 왕 하나님 나를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 나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성막에 성전의 핵심은 가장 깊은 곳 지성소입니다. 법궤있고 그룹있고 그런 곳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을 모신 곳입니다. 알멩이인데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을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과정이 뭡니까. 이건 답이 안 나오면 곤란합니다. 그게 바로 제단입니다. 재단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대속이 전부 다입니다. 그 대속이 바로 말씀하신 제단입니다. 에스겔 성전 때 배웠지요 많은 자손 밖에서 하니까 마지막에 보니까 아무것도 없고 뭐만 있다고요. 뭐만있었습니까. 다 잊었습니까. 나무 제단만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대속만 있습니다. 주의 제단에서 성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주님 바치는 제단이고 나를 바치는 제단입니다. 그 제단에서 생활할 때 참새, 참새라는 건 성경에서 가치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사람입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면 그곳이 집이 됩니다.
성경에 철새는 형평따라 사정따라 그런 사람을 철새같은 사람이라, 정처없는 인생을 말하는 건데 그런 사람도 주님 제단에 자기를 바치면 거기가 바로 안식처가 되고 번식이 되고 그런 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온전한 성전이 되고 교회가 교회다운 그런 곳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새끼를 낳고 알을 깠는데 집이 없으면 안되는거지요. 교회가 교회답게 됩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늘나라 천국 무궁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주를 찬송하리다. 그러면 천국 찬송이 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생각해봤습니다. 깨닫고 느껴서 시로 기록한겁니다. 표현 하나 하나 생각해보면서 이런 신앙생활로 자라가야하고 온전해져가야하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