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03-02조회 70추천 12
2025년 3월 2일 주일 오전
찬송: 99장, 20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과 세상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세상 생활은 자기가 목표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 기왕이면 좋은 곳에 보내려고 합니다. 유치원도 좀 더 아이에게 도움되는 곳, 교사들도 챙겨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명문 고등학교 일류 대학이 왜 다 있습니까. 왜 자동차가 크기가 다르고 값이 왜 다르지요. 평가적입니다. 이 세상은 다 평가적으로 되어있고 그렇게 사는 생활입니다. 기독교 생활이란 평가적인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점점 향상이 되고 온전해져가게 되는 겁니다. 가장 온전하게 좋게 책임져줄 대상이 누구냐. 그런 대상이 바로 누구냐, 이걸 찾아보는거지요. 나를 가장 책임져줄 보살펴줄 그런 존재가 나보다 강한 존재가 있느냐. 이 세상 살면서 지나가는 세상에서 한 번만 주시는 생애와 이걸 어디에 투자해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보험도 넣고 연금도 넣고 자기 미래를 대비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보다 더 좋은 신이 있으면 거기로 가는 게 낫습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공회 안에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마음은 다른 곳에 가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여긴 너무 힘들고 고리타분하고 하니까 거기 가면 나을련가. 일탈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있으니까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으면 그리로 가라. 여기보다 더 옳은 곳이 있다면 거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 따져보니까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 강한 존재 근본 존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기독교고 평가적인 신앙입니다. 우리의 자세는 평가적인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모든 사람 전부 평가적으로 사고 있습니다. 왜 은메달주고 금메달 줍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1등할 수 있으면 다 1등합니다. 아름다움과 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게 평가적입니다. 진실화되고 자기부터 속이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진실한가 최고를 찾고 있는가 그게 신앙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지성이 있고 이치를 따지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든 모르든 지성, 이성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하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회담을 했다고하지요. 싸움할 뻔 했다가 말았다고 하지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곳입니다. 상대방 대통령이 양복을 안 입고 와서 싸웠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게 이 세상의 수준입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에서 무례하다고 그럽니다. 그게 이 세상 수준입니다.
세계 정상회담보다 주일학생한테 5분 동안 말씀을 가르치는 게 더 귀할 겁니다. 대통령직을 하면서도 반사를 했다고 합니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면 가치가 없어도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세계대제국도 망해버렸습니다. 미국이 천년 만년 가지 않습니다. 어떤 인류가 알아줘도 가치가 있습니다. 서부교회에 주일학생이 8시부터 그 사이까지 학생들로 바글바글해서 온 세계에서 다 알았습니다. 세계적인 주일학교라고.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고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치를 말하자면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전설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전설이고 교훈이 전설이고 깨달음이 전설입니다. 흔적이라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재벌도 명예도 세상 사람들이 다 흠모하지만은 결혼의 재미가 얼마나 좋은데 좋은게 꽉 찼습니다. 그런데 다 바람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종교를 찾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목회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존재를 두고 천국과 세상을 두고 천국에 다 있었습니다. 본문 간단하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할 때 자존하신 하나님인데 자존자 완전자 전지전능자 이 분이 사람을 생각하시고 여호와라고 말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말씀대로 하시는 것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망해버렸습니다. 북쪽 열 지파는 망했고 남쪽 두 지파는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회개합니다. 그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회개한 그 때에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버렸는데 진노를 깨닫고 내가 너희들의 너희들 가족, 가족이란 혈육 혈통으로 된 게 가족이지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게 혈육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말입니다 자녀들이고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녀들이 되고 그렇게 됩니다. 언제 그렇게 됩니까.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전쟁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승패가 있습니다. 그러면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칼에서 광야의 하나님께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에 건져내셔서 그래서 가나안에 가는 거기에 인도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기를 옛날이 뭐냐, 모세 이전으로 올라가면 야곱입니다. 야곱의 옛날은 이삭,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이삭을 택하셨고 야곱을 택하셨는데 이건 이스라엘이 종자가 좋아서 인물이 특출나서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찍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무궁한 사랑으로 택했다. 아무런 이유와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자존자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서 영양받지 않고 피동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자동차인데 그 자동차에 기름이 들어가야하고 전기가 들어가야합니다. 전기 빼면 안 굴러갑니다. 완전 자동기계에 전기 빼버리면 안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자존 역사입니다.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건 자존사랑입니다. 자존자가 완전자입니다. 완전하신 자존자가 그분 뜻이 영원입니다. 하나님 자체입니다. 이삭과 야곱가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내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 왜 사랑했습니까.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있지요. 좋아서 사랑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인간 사랑이 다른데 마냥 좋은 겁니다. 그 사이에 뭐가 들어가서 둘 사이에 갈라놓으면 저주가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잘 지내는데 벌려 놓으면 신불신자 간에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좋아서 그런데 그 하나님 좋아하시는게 인간처럼 그런 게 아니라 완전하신 그 분입니다. 내가 좋아서 사랑했습니다. 무궁한 사랑입니다. 무궁의 뜻은 없을 무 자에 끝이 없다. 하나님의 전부를 다 바친 사람이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도다. 웬일인가 웬 은혠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들입니다. 본문에 말씀하신 건 우리들입니다. 당신 스스로 완전자기 때문에 흠과 점이 없습니다. 자존하시고 그런데 영원불변입니다. 전지전능입니다. 자존으로 불변으로 영원으로 전지 전능으로 그렇게 택하셔서 사랑하신게 우리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성도들은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렇게 되신 것이 이스라엘이었고 우리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무궁한 사람으로 사랑하는고로, 우리 위해서 전부 다 바치는 이유입니다. 잠깐 생각해보면 사랑을 위해서 나온 겁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도 사랑이라는 속성을 넣어주셨습니다. 그걸 받아서 서로 관계로 우리를 길러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속성을 주셔서 하나님 사랑과 속성을 서로 사랑하면서 교제하고 교감하면서 사랑으로 교감하면서 자라가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이기 원하는 심정이신데 전부를 다 쏟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없고 우리는 그분에게 한 것이 없어서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에서 택함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생한 가운데에서 배워가고 닮아가는 점진적으로 점차적으로 닮아가는 그런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닮아서 영원무궁토록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사랑의 목적입니다. 이런 사랑인데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데 쌍방이어야합니다. 쪽사랑이 되면 마지막에 비극으로 끝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실 때 쌍방 사랑이 되는데 우리들의 비극으로 끝이나는 겁니다.
왜 믿는 사람에게 은혜가 없느냐, 안 받으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좀 말씀드렸고 기독교는 평가적인 신앙입니다. 그래야합니다. 그러다보니까 한 순간의 수고가 가치가 크다고 하니까 되는 겁니다. 본문에서 다 해서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우를 사랑하시는 것은 무궁한 사랑으로 하셨다는 걸 기억하셔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9장, 20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과 세상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세상 생활은 자기가 목표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 기왕이면 좋은 곳에 보내려고 합니다. 유치원도 좀 더 아이에게 도움되는 곳, 교사들도 챙겨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명문 고등학교 일류 대학이 왜 다 있습니까. 왜 자동차가 크기가 다르고 값이 왜 다르지요. 평가적입니다. 이 세상은 다 평가적으로 되어있고 그렇게 사는 생활입니다. 기독교 생활이란 평가적인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점점 향상이 되고 온전해져가게 되는 겁니다. 가장 온전하게 좋게 책임져줄 대상이 누구냐. 그런 대상이 바로 누구냐, 이걸 찾아보는거지요. 나를 가장 책임져줄 보살펴줄 그런 존재가 나보다 강한 존재가 있느냐. 이 세상 살면서 지나가는 세상에서 한 번만 주시는 생애와 이걸 어디에 투자해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보험도 넣고 연금도 넣고 자기 미래를 대비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보다 더 좋은 신이 있으면 거기로 가는 게 낫습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공회 안에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마음은 다른 곳에 가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여긴 너무 힘들고 고리타분하고 하니까 거기 가면 나을련가. 일탈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있으니까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으면 그리로 가라. 여기보다 더 옳은 곳이 있다면 거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 따져보니까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 강한 존재 근본 존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기독교고 평가적인 신앙입니다. 우리의 자세는 평가적인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모든 사람 전부 평가적으로 사고 있습니다. 왜 은메달주고 금메달 줍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1등할 수 있으면 다 1등합니다. 아름다움과 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게 평가적입니다. 진실화되고 자기부터 속이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진실한가 최고를 찾고 있는가 그게 신앙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지성이 있고 이치를 따지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든 모르든 지성, 이성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하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회담을 했다고하지요. 싸움할 뻔 했다가 말았다고 하지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곳입니다. 상대방 대통령이 양복을 안 입고 와서 싸웠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게 이 세상의 수준입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에서 무례하다고 그럽니다. 그게 이 세상 수준입니다.
세계 정상회담보다 주일학생한테 5분 동안 말씀을 가르치는 게 더 귀할 겁니다. 대통령직을 하면서도 반사를 했다고 합니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면 가치가 없어도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세계대제국도 망해버렸습니다. 미국이 천년 만년 가지 않습니다. 어떤 인류가 알아줘도 가치가 있습니다. 서부교회에 주일학생이 8시부터 그 사이까지 학생들로 바글바글해서 온 세계에서 다 알았습니다. 세계적인 주일학교라고.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고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치를 말하자면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전설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전설이고 교훈이 전설이고 깨달음이 전설입니다. 흔적이라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재벌도 명예도 세상 사람들이 다 흠모하지만은 결혼의 재미가 얼마나 좋은데 좋은게 꽉 찼습니다. 그런데 다 바람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종교를 찾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목회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존재를 두고 천국과 세상을 두고 천국에 다 있었습니다. 본문 간단하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할 때 자존하신 하나님인데 자존자 완전자 전지전능자 이 분이 사람을 생각하시고 여호와라고 말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말씀대로 하시는 것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망해버렸습니다. 북쪽 열 지파는 망했고 남쪽 두 지파는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회개합니다. 그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회개한 그 때에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버렸는데 진노를 깨닫고 내가 너희들의 너희들 가족, 가족이란 혈육 혈통으로 된 게 가족이지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게 혈육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말입니다 자녀들이고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녀들이 되고 그렇게 됩니다. 언제 그렇게 됩니까.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전쟁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승패가 있습니다. 그러면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칼에서 광야의 하나님께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에 건져내셔서 그래서 가나안에 가는 거기에 인도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기를 옛날이 뭐냐, 모세 이전으로 올라가면 야곱입니다. 야곱의 옛날은 이삭,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이삭을 택하셨고 야곱을 택하셨는데 이건 이스라엘이 종자가 좋아서 인물이 특출나서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찍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무궁한 사랑으로 택했다. 아무런 이유와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자존자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서 영양받지 않고 피동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자동차인데 그 자동차에 기름이 들어가야하고 전기가 들어가야합니다. 전기 빼면 안 굴러갑니다. 완전 자동기계에 전기 빼버리면 안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자존 역사입니다.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건 자존사랑입니다. 자존자가 완전자입니다. 완전하신 자존자가 그분 뜻이 영원입니다. 하나님 자체입니다. 이삭과 야곱가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내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 왜 사랑했습니까.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있지요. 좋아서 사랑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인간 사랑이 다른데 마냥 좋은 겁니다. 그 사이에 뭐가 들어가서 둘 사이에 갈라놓으면 저주가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잘 지내는데 벌려 놓으면 신불신자 간에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좋아서 그런데 그 하나님 좋아하시는게 인간처럼 그런 게 아니라 완전하신 그 분입니다. 내가 좋아서 사랑했습니다. 무궁한 사랑입니다. 무궁의 뜻은 없을 무 자에 끝이 없다. 하나님의 전부를 다 바친 사람이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도다. 웬일인가 웬 은혠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들입니다. 본문에 말씀하신 건 우리들입니다. 당신 스스로 완전자기 때문에 흠과 점이 없습니다. 자존하시고 그런데 영원불변입니다. 전지전능입니다. 자존으로 불변으로 영원으로 전지 전능으로 그렇게 택하셔서 사랑하신게 우리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성도들은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렇게 되신 것이 이스라엘이었고 우리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무궁한 사람으로 사랑하는고로, 우리 위해서 전부 다 바치는 이유입니다. 잠깐 생각해보면 사랑을 위해서 나온 겁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도 사랑이라는 속성을 넣어주셨습니다. 그걸 받아서 서로 관계로 우리를 길러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속성을 주셔서 하나님 사랑과 속성을 서로 사랑하면서 교제하고 교감하면서 사랑으로 교감하면서 자라가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이기 원하는 심정이신데 전부를 다 쏟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없고 우리는 그분에게 한 것이 없어서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에서 택함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생한 가운데에서 배워가고 닮아가는 점진적으로 점차적으로 닮아가는 그런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닮아서 영원무궁토록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사랑의 목적입니다. 이런 사랑인데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데 쌍방이어야합니다. 쪽사랑이 되면 마지막에 비극으로 끝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실 때 쌍방 사랑이 되는데 우리들의 비극으로 끝이나는 겁니다.
왜 믿는 사람에게 은혜가 없느냐, 안 받으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좀 말씀드렸고 기독교는 평가적인 신앙입니다. 그래야합니다. 그러다보니까 한 순간의 수고가 가치가 크다고 하니까 되는 겁니다. 본문에서 다 해서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우를 사랑하시는 것은 무궁한 사랑으로 하셨다는 걸 기억하셔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