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3-02조회 84추천 17
2025년 3월 2일 주일 오후
찬송: 50장, 18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끓으면 끓고 넘치게 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은 성경을 믿고 천국을 믿고 있기 때문에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죄를 지어야하느냐, 근본이 뭔가요. 마귀 때문에. 무조건 귀신에게 붙들린 겁니다. 귀신에게 붙들리지 않았는데 죄를 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들의 현실을 살아갈 때 순간 순간마다 죄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활동과 연관되는 것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에 가도 양치를 해도 하나라도 믿음으로 말씀 순종으로 하지 않으면 뭐가 된다고요. 죕니다. 죄는 지옥 가야합니다. 우리들의 일평생까지 한 순간도 욥이 그렇게 깨달은겁니다. 한 순간 한 순간도 죄를 안 지어야하는 거 아는데 그걸 알면 우리 모두 사도 바울 즈음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귀신에게 붙들린 게 많아서. 귀신에게 져서 그런 겁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 애굽나라의 왕이 될 뻔 했습니다. 그걸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애굽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취한 겁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은 잠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난 받는 것은 영원한 상금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취하는 겁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 전부를 뭘로 여겼습니까. 배설물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한 것만 유익이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이다. 평가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는 그렇게 합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뭐가 더 나을까. 평가적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 상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학은 쌍방대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인 선포였습니다. 동의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쌍방입니까. 자유성을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노로 쌓아가지고 망해버렸습니다. 망하고 난 다음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를 기르는 곳을 외양간이라고 합니다. 말은 마굿간이라고 하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안됩니까. 소 잃어버리면 외양간 고쳐놓고 하면 된다는거지요. 모질고 독하고 그래야 이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질고 독하면 매를 많이 맞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이루어갈 자본을 얻게 됩니다. 겸손하게. 그때에 하나님 앞에 매를 맞을 때입니까. 매 맞고 깨달은 때입니까. 너희가 그것을 깨달으리라. 우리가 죄를 지었구나. 우리 조상들이 죄를 지었구나. 그때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가족이 되는 거고 가족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책임지시겠다. 그리고 하나님이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다. 나 여호와가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 된 이유가 뭡니까. 애굽에서 벗어났는데 왜. 애굽이 이긴겁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이라는 말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 두 지파입니다. 열 두 지파 열 두 아들은 무엇입니까.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에 나타나셨고, 왜 아브라함을 택했느냐 그 말이지요.
왜 이 사람이 하나님이 꼭 집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찍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아브라함이 본 고향이 어딥니까. 아브라함은 어느 족속이지요. 원래 어디 사람입니까. 어디요. 아브라함은 아람 사람입니다. 꼭 집었습니다. 그냥 집은겁니다. 하나님은 이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집으셨는데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완전입니다. 자존의 선택이었고 완전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랑의 작용이었습니다. 무궁한 사람으로 너를 사랑하였는고로 하나님의 눈에 아브라함에 콩깍지가 씌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 자손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선택의 원인이고 근거입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나옵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 역사 우리 구원의 근거가 바로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우리를 택하신 게 근거가 되어지는 겁니다. 영원을 두고 모든 주제 전부를 두고 택하면은 흠과 점이 없고 숫자가 굉장히 많을건데 이해가 안될 수 있으나 고라는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모든 백성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아합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이세벨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다. 이세벨은 곤란하지요. 그런데 아합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왕입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 하나님 구원의 시발은 자존 사랑의 시작입니다. 근본이기 때문에 우리의 출발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니까 흔들림이 없는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무궁한 사람으로 사랑하는고로 사랑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사랑의 속성을 주셨느냐, 사랑으로 교제하시려고 교감하시려고 사귀실려고 가장 밀접한 관계가 몇 개입니까 둘인데 하나입니다. 부부입니다. 부부 사이는 부모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자녀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부부 사이는 둘이 딱 붙어야합니다. 그런데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붙습니다. 그 누구도 들어오면 안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사랑이라는 속성을 만드신 것은 그런 관계를 맺으라고.
친구의 동류라는지 그런데 부부 사랑이 가장 밀접합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속성으로 상대하시고 하나님이 우리가 수평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받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과 방법은 다른 게 주시는 것이고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되는 겁니다. 남편이 가르치고 아내가 배우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닮아서 하나님을 동질 동성이 같아지게 되고 동거동락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사랑으로 되어서 생기는 것인데 쌍방 사랑이라야 합니다. 양쪽이 다 같은 사람. 어떤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느날 보니까 이상합니다. 그래서 있었는데 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어떤 사람하고 바람이 났는가 보니까 이상한 남자하고 바람이 났습니다. 왜 그럴까 이 좋은 남자랑 사니까 심심한 겁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일탈이 되어가지고 엄청 애를 썼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고 그 남자를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고 남편은 아주 좋은 사람을 새로 만나서 잘 가게 됐고 그 여자는 뭐 같은 남자를 따라갔으니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거 실화입니다. 백 목사님이 실제로 보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탈선을 꿈꾸면 위험한 겁니다. 자꾸 쳐다보면 위험한 겁니다. 그래서 주일이 중요하고 새벽기도 중요하고 가장 중요하고 반사 생활 되풀이됨에 따라서 자라는 겁니다.
영원토록 사랑하시는거죠. 왜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그냥 사랑하셔서. 완전입니다. 자존 사랑입니다. 그 자존에 원인자가 하나라도 되겠다면 당연한 겁니다. 자존이 되어서 우리 택하면 어떤 존재를 두고도 그게 우리의 근원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정했고 사랑하심으로 예정했습니다. 범위의 넓음 깊음 전지의 예정임으로 초월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해를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겁니다. 당연한 겁니다. 돌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가정을 위한 계획을 알 수는 없는 겁니다. 김선인,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 아나요. 양성원 갔다와서 누구 만나는지 아나요. 모르는 겁니다. 하루의 계획이 한 달의 계획을 모르는 겁니다. 왜 모르는 겁니까. 어리니까 어려서 모르는 겁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찌라도 주실찌라도 주권섭리입니다.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말씀가지고 현실을 살펴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궁한 사람이고 이걸 찾아서 양심으로 현실에 맞게 순종하는 겁니다. 가장 지혜로운 겁니다. 거기서 인간이 이래야하고 저래야겠는데 양심을 벗어나서 다 되겠는데 어디까지 가야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목적을 정해야하고 예정하고 창조하시고 승리하셨는데 그 승리가 우리 인간의 범죄고 사랑이고 건지라니까 도성인신하셔야하고 베푸셔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가르쳐야하고 책임지고 길러가야하고 이게 전부 다 사랑의 승리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이 가르치면 어릴 때 아이들은 왜 그런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몰라서 끌려서 억지로 하는 수도 그렇습니다. 공부 일 신앙도 그렇고 순종하는 거 좋은데 그게 참 안되지요. 자라게 되면 부모님 때문에 선생님 때문에 다니니까 자라고 나면 주일인데 가야지 아버지 어머니 가야하지 이게 의무감이고 책임감입니다.
그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완전사랑 자존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 받아야겠고 받는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 요한복음 14장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사랑하는자다. 나의 계명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하는 자다. 네 가지로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역사는 사랑입니다. 자존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을 할 때 이성으로 따져서 원하고 원함으로 주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송: 50장, 18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끓으면 끓고 넘치게 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은 성경을 믿고 천국을 믿고 있기 때문에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죄를 지어야하느냐, 근본이 뭔가요. 마귀 때문에. 무조건 귀신에게 붙들린 겁니다. 귀신에게 붙들리지 않았는데 죄를 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들의 현실을 살아갈 때 순간 순간마다 죄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활동과 연관되는 것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에 가도 양치를 해도 하나라도 믿음으로 말씀 순종으로 하지 않으면 뭐가 된다고요. 죕니다. 죄는 지옥 가야합니다. 우리들의 일평생까지 한 순간도 욥이 그렇게 깨달은겁니다. 한 순간 한 순간도 죄를 안 지어야하는 거 아는데 그걸 알면 우리 모두 사도 바울 즈음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귀신에게 붙들린 게 많아서. 귀신에게 져서 그런 겁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 애굽나라의 왕이 될 뻔 했습니다. 그걸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애굽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취한 겁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은 잠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난 받는 것은 영원한 상금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취하는 겁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 전부를 뭘로 여겼습니까. 배설물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한 것만 유익이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이다. 평가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는 그렇게 합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뭐가 더 나을까. 평가적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 상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학은 쌍방대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인 선포였습니다. 동의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쌍방입니까. 자유성을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노로 쌓아가지고 망해버렸습니다. 망하고 난 다음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를 기르는 곳을 외양간이라고 합니다. 말은 마굿간이라고 하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안됩니까. 소 잃어버리면 외양간 고쳐놓고 하면 된다는거지요. 모질고 독하고 그래야 이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질고 독하면 매를 많이 맞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이루어갈 자본을 얻게 됩니다. 겸손하게. 그때에 하나님 앞에 매를 맞을 때입니까. 매 맞고 깨달은 때입니까. 너희가 그것을 깨달으리라. 우리가 죄를 지었구나. 우리 조상들이 죄를 지었구나. 그때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가족이 되는 거고 가족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책임지시겠다. 그리고 하나님이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다. 나 여호와가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 된 이유가 뭡니까. 애굽에서 벗어났는데 왜. 애굽이 이긴겁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이라는 말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 두 지파입니다. 열 두 지파 열 두 아들은 무엇입니까.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에 나타나셨고, 왜 아브라함을 택했느냐 그 말이지요.
왜 이 사람이 하나님이 꼭 집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찍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아브라함이 본 고향이 어딥니까. 아브라함은 어느 족속이지요. 원래 어디 사람입니까. 어디요. 아브라함은 아람 사람입니다. 꼭 집었습니다. 그냥 집은겁니다. 하나님은 이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집으셨는데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완전입니다. 자존의 선택이었고 완전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랑의 작용이었습니다. 무궁한 사람으로 너를 사랑하였는고로 하나님의 눈에 아브라함에 콩깍지가 씌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 자손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선택의 원인이고 근거입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나옵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 역사 우리 구원의 근거가 바로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우리를 택하신 게 근거가 되어지는 겁니다. 영원을 두고 모든 주제 전부를 두고 택하면은 흠과 점이 없고 숫자가 굉장히 많을건데 이해가 안될 수 있으나 고라는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모든 백성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아합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이세벨은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다. 이세벨은 곤란하지요. 그런데 아합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왕입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 하나님 구원의 시발은 자존 사랑의 시작입니다. 근본이기 때문에 우리의 출발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니까 흔들림이 없는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무궁한 사람으로 사랑하는고로 사랑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사랑의 속성을 주셨느냐, 사랑으로 교제하시려고 교감하시려고 사귀실려고 가장 밀접한 관계가 몇 개입니까 둘인데 하나입니다. 부부입니다. 부부 사이는 부모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자녀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부부 사이는 둘이 딱 붙어야합니다. 그런데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붙습니다. 그 누구도 들어오면 안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사랑이라는 속성을 만드신 것은 그런 관계를 맺으라고.
친구의 동류라는지 그런데 부부 사랑이 가장 밀접합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속성으로 상대하시고 하나님이 우리가 수평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받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과 방법은 다른 게 주시는 것이고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되는 겁니다. 남편이 가르치고 아내가 배우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닮아서 하나님을 동질 동성이 같아지게 되고 동거동락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사랑으로 되어서 생기는 것인데 쌍방 사랑이라야 합니다. 양쪽이 다 같은 사람. 어떤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느날 보니까 이상합니다. 그래서 있었는데 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어떤 사람하고 바람이 났는가 보니까 이상한 남자하고 바람이 났습니다. 왜 그럴까 이 좋은 남자랑 사니까 심심한 겁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일탈이 되어가지고 엄청 애를 썼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고 그 남자를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고 남편은 아주 좋은 사람을 새로 만나서 잘 가게 됐고 그 여자는 뭐 같은 남자를 따라갔으니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거 실화입니다. 백 목사님이 실제로 보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탈선을 꿈꾸면 위험한 겁니다. 자꾸 쳐다보면 위험한 겁니다. 그래서 주일이 중요하고 새벽기도 중요하고 가장 중요하고 반사 생활 되풀이됨에 따라서 자라는 겁니다.
영원토록 사랑하시는거죠. 왜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그냥 사랑하셔서. 완전입니다. 자존 사랑입니다. 그 자존에 원인자가 하나라도 되겠다면 당연한 겁니다. 자존이 되어서 우리 택하면 어떤 존재를 두고도 그게 우리의 근원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정했고 사랑하심으로 예정했습니다. 범위의 넓음 깊음 전지의 예정임으로 초월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해를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겁니다. 당연한 겁니다. 돌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가정을 위한 계획을 알 수는 없는 겁니다. 김선인,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 아나요. 양성원 갔다와서 누구 만나는지 아나요. 모르는 겁니다. 하루의 계획이 한 달의 계획을 모르는 겁니다. 왜 모르는 겁니까. 어리니까 어려서 모르는 겁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찌라도 주실찌라도 주권섭리입니다.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말씀가지고 현실을 살펴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궁한 사람이고 이걸 찾아서 양심으로 현실에 맞게 순종하는 겁니다. 가장 지혜로운 겁니다. 거기서 인간이 이래야하고 저래야겠는데 양심을 벗어나서 다 되겠는데 어디까지 가야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목적을 정해야하고 예정하고 창조하시고 승리하셨는데 그 승리가 우리 인간의 범죄고 사랑이고 건지라니까 도성인신하셔야하고 베푸셔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가르쳐야하고 책임지고 길러가야하고 이게 전부 다 사랑의 승리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이 가르치면 어릴 때 아이들은 왜 그런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몰라서 끌려서 억지로 하는 수도 그렇습니다. 공부 일 신앙도 그렇고 순종하는 거 좋은데 그게 참 안되지요. 자라게 되면 부모님 때문에 선생님 때문에 다니니까 자라고 나면 주일인데 가야지 아버지 어머니 가야하지 이게 의무감이고 책임감입니다.
그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완전사랑 자존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 받아야겠고 받는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 요한복음 14장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사랑하는자다. 나의 계명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하는 자다. 네 가지로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역사는 사랑입니다. 자존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을 할 때 이성으로 따져서 원하고 원함으로 주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