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2-01조회 82추천 8
2024년 12월 1일 주일 오후
찬송: 103장, 120장
본문: 열왕기하 2장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창세기 보면은 라헬이 죽는 장소가 길이 격한 곳에서 죽었다. 길이 험한 곳이다 그렇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갈렛길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을 격하고 두 사람을 떼어놓고, 간격 그 격자입니다. 영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감화감동, 영감의 감 자가 느낄 감자입니다. 감정이라고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있으면 이성이 앞에 있어야합니다. 감성이 앞에 있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넣어주신 요소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찬송도 보면 가사라던지 분위기라든지 형편이라든지 맞는 찬송을 하면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도 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격해지게 됩니다. 은혜라는 것은 감정이 움직이는 것은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용하는거요. 감정이 작용하는 것은 은혜 중에서도 가장 낮은 차원입니다. 이성이란 이치를 따지는 겁니다. 이성을 따라가야하지 감정이 움직이면 신앙생활에 큰 문제가 발성하고 인간 관계에도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게 감정입니다. 믿음의 종들은 감정 표현을 잘 안합니다. 아무리 기뻐도 못합니다. 논리만 따집니다. 면도칼입니다. 한국의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해서는 엄청나게 인자하고 자애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기 때문에 슬픈 감정은 눈물이 다 말라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감정 따라 움직이면 가벼운 사람이 됩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사소한 것에 그들 표현은 예민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지극히 가치낮은 것입니다. 본문에 엘리야 엘리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를 상징합니다. 엘리사는 우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올리실려고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토네이도가 영어입니까. 우리나라는 잘 안부는데, 미국이나 그런데에서는 아주 크게 불지요. 하늘에 올리시려고 하는데 광야에서 들판에서 부는 거지요. 길갈 베델 여리고로 들어왔으니까 반대쪽으로 간건가요. 성경의 지명은 여러 가지 가르치는 게 많습니다. 가르치는 구원도리가 많은데 지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길갈, 베델, 여리고, 이 본문의 말씀은 좀 아는 말씀입니다. 워낙 유명해서. 목회자 양성원 졸업식 때 아주 은혜롭게 하신 말씀이라서 웬만한 교인들은 다 아는 말입니다.
길갈, 베델, 여리고, 요단입니다. 지명과 순서 가지고 가르치는데 이때는 지명이 없고 길갈이라는 장소가 의미하는 의미, 베델이라는 장소가 가르치는 것, 여리고가 가르치는 것, 요단이 가르치는 것. 지명에 있는 역사들 활동들 사건들 그런 것을 통해서 구원 도리를 가르칩니다. 세상에서도 역사 공부하면 그런 것들이 있지요. 남한산성, 여수 근처는 이순신 장군이 해군 차렸던 거, 그런 지명들 역사들 사건에서는 의미를 다 부여하고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치는데 첫 번째가 길갈입니다.
우리가 여기 안전하게 앞장 서 가겠습니다. 마지막에 좋은 곳을 먼저 차지했는데 침략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짓밟히는 게 됩니다. 이쪽은 들판이기 때문에 좋은 곳을 먼저 취했는데 뒤에가서 보니까 적군에게 침략할 때 가장 불리한 장소가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런게 많습니다.
애굽에서 나옵니다. 출애굽, 우리에게 연결시키면 신앙 출발, 믿음생활 출발하는 겁니다. 중생이 되는 겁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신앙 출발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넙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무슨 뜻인가요. 학습 세례 문답에 나 나와있는데, 홍해는 빠져서 죽는 겁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게 뭡니까. 새해입니다. 광야 생활은 신앙 생활, 교회 생활입니다. 광야 생활이 끝나고 나면 어디로 갑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은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출애굽은 중생입니다. 그 다음은 홍해, 무엇이라고요. 세례입니다. 홍해바다 건너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홍해 바다 건너서 광야로 걸어갑니다. 평생입니다. 무슨 강 건너가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 천국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뭐라고요 길갈이라고요. 천국 들어갔는데 무슨 싸움이 시작됩니까. 요단강 건너간 이유는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 건너 가는 겁니다.
요단강 건너는 길갈부터는 광야 40년이 있고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점령해가는 건데 천국은 그냥 주시는 나라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게 있어서 하늘나라 모든 것이 천국의 지위라든지 힘이 들어갑니다. 세상은 남을 부려먹는 것이고 천국의 권력은 일입니다 일. 사람의 가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하냐는 겁니다. 그 사람 가치는 그것만 합니다. 어떤 사람 열 가지 하면 그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을 학교도 보내고 피아노도 보내고 서예도 보내고 태권도도 보내고 수학도 보내고 다 보냅니다. 그만큼 실력있는 사람을 만들고 영원토록 하늘 나라에서 사는데 말씀으로 사는 그것이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항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니까 기하급수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데 영원토록하는 그 길을 이 세상에서 마련하는데 천국에 일할 수 있는 것을 접목하는 것이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천국은 그냥 가는데 공짜 좋아하면 이마가 벗겨진다고 합니까. 공짜는 세상에 없는 겁니다.
사람이 못하는 건 은혜로 주시지만 다른 것은 다 해야합니다. 그 첫 출발, 전초기지라고 할까요. 그게 길갈입니다. 그 다음날 땅에서 나온 소산 곡식 먹고 하나님의 은혜로 먹여살리던 만나 끝나고, 이게 건설구원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길갈의 은혜라는 것은 전초기지, 그런 것과 같은 게 길갈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은혜입니다. 자기가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경험해보는 길갈 신앙입니다. 평생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길갈 신앙을 경험해보는 사람은 길갈 신앙이 되는 것이고 남의 복음으로만 듣고 믿는 흉내만 내고 실제로 자기를 바쳐 드려서 말씀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은헤 역사를 체험해보지 못한,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사과를 압니까. 알지요. 왜 모릅니까. 수박을 안 먹어본 사람은 수박을 압니까 모릅니까. 망고, 저는 망고를 먹어본 거 같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달다고 합니다. 그런데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어느정도 단지 모릅니다 알기는 아는데.
저는 미국을 압니다. 북아메리카입니까 굉장히 큰 나라고 영어쓰는 사람들이고 바이든이고 트럼프가 당선됐고 그런데 실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는 잘 모릅니다. 길갈 신앙은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첫 경험이라고 하면 학생들의 반응에서 얻습니다. 저 개인의 신앙생활과 토요일 심방 갔을 때 반응이 말로 설명이 안됩니다. 저 자신이 하나님이 기도하고 바로살면 아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따라다니고 그럽니다. 힘들 거 없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기도 못하고 토요일 가면 힘이 없습니다. 억지로 가면 다 도망가버립니다. 어디 가야해요. 뭘로 설명합니까. 이게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면 이건 과학으로도 이치로도 말로 설명이 안되는 겁니다. 첫 출발이 그겁니다. 지금까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길가는 신앙입니다. 말하자면 에베소 교회가 주님 앞에 책망 받은 게 뭐를 버렸다.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길갈입니다. 길갈 신앙은 출발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중요합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출발을 못합니다. 뿌리가 없는 겁니다. 기초가 없고 무너지는 겁니다. 자기 최면 주관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써 확실히 있는 겁니다. 제대로 믿은 것은 다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이걸 가져도 수도없이 가졌습니다. 봤고 백 목사님 능력을 보고 그러면 평생을 달려갈 거 같은데 그래도 가시고 나니까 뒤에 가서 믿어도 탈선하고 말합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어느 시대 누구와 같습니까. 10가지 재앙을 저거 눈으로 보고 반석에 나온 물을 마시고 만나 메추라기를 40년 먹고도 그때 가나안 입구 가서는 돌아가자, 애굽으로. 그게 인간이고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의지가 중요하고 믿음이 중요한거지요. 그런 첫 신앙에 길갈 신앙입니다. 나는 길갈 신앙 버렸나. 가져와야합니다.
베델입니다. 베델은 제단 쌓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단은 뭐하는 곳입니까. 제사 드리는 단입니다. 어떤 제사입니까. 제사의 마지막에 말하면 누구입니까.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가 종착점은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소양염소 예수님을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미리 땡겨서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표시한다, 예표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표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짐승은 모두 상징하고 누가 제물이 되는 겁니까. 그 다음의 제물은 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가 되는 겁니다. 나를 잡지 않으면 내 속에 잡아야할 자기를 잡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자존심. 체면, 게으른 것, 끈기 없는 것, 나쁜 욕심, 감정, 시기질투. 이래야 제사가 되는 겁니다.
길가에서 첫 체험하고 그걸 잡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로 발전해서 저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는 것이고 세 번째로 나갈 곳은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크고 강한 성인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여기까지 가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리고 까지 가는 신앙은 굉장한 신앙이 됩니다. 기도하니까 병이 낫습니다. 백목사님만 이런 게 아닙니다. 백 목사님 외에도 기도를 해서 능력으로 낫는 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빠져서 돈벌이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도하니까 병이 낫는데 나중에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짜고 치는 겁니다. 다 가짜인데. 그렇게 탈선된 사람들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 능력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 진짜 가치가 있느냐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요. 부흥을 일으키고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런 게 있습니다.
신령한 고급으로 하면 방언의 능력, 우리 교회 설교는 좀 어렵다고 하지요. 설교는 어린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해야하는게 저는 그게 안됩니다. 그들이 알아듣도록 할려고 하니까 안됩니다. 그것도 방언의 능력인데 신풍 목사님께서 그걸 정말 잘 하시지요. 적절하게, 그게 방언의 능력입니다. 여리고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능력 여리고 신앙인데 능력의 신앙입니다. 길갈에서 베델을 거쳐서 그 다음 단계가 여리고 신앙입니다. 우리 공회도 있고 일반 교단에도 있습니다. 평신도에도 있고 목회자 중에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주 어린 신앙, 길갈 신앙 조차도 경험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기독교가 이종교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목단체 사회단체, 그게 말하자면 성경을 바로 믿지 못하고 그런 것이고 실제로 말씀을 믿어보지 않으면 말씀을 기도해보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아보지 않으면 길갈의 경험은 못하는 겁니다. 베델로 올라가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회 대부분이 베델 신앙입니다. 그런데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여리고로 나가야하는데 여리고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머물지말고 요단으로 나아가야합니다. 한 번 죽으면 끝인데 최종은 현실의 요단은 어려운 말인데 지사충성. 전부를 다 해서 충성하는 겁니다. 자기 전부를 마음 다 힘 다 뜻다 해서 충성하는 게 요단 생활입니다. 엘리사는 뭐하러 갔습니까. 엘리사는 엘리야 따라서 요단까지 건너서 마지막에 영감을 하러 왔습니다. 신앙의 절정입니다. 우리 신앙의 최대 목표는 영감입니다. 말씀 연구의 최종은 영감입니다. 성경의 감화와 감동.
지난 주일에 기름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역사가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 감화 감동역사. 오순절이 일어나는데 오순절이 되기 전에 예수님 못박아 죽인 살벌한 분위기 속에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 목숨을 무릎쓰고 간절하게 되어있습니다. 오순절이 무슨 날입니까. 십계명하는 날이지요. 갑자기 갈라지는 게 보이고 각 사람이 성경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구 외칩니다. 베드로가 거기서 설교하는데 베드로가 한 나라 유대말로 히브리 말로 하는데 각나라 사람이 모였는데 한국말로 하는데 중국사람은 중국말로 들리네 일본 사람은 일본 말로, 러시아 사람은요 러시아말로 들리네. 그게 뭐라고요. 방언입니다. 성령의 능력. 어떤 잘 믿는 분이 지금은 안타깝게 됐는데, 가족들 전도하는데 언니 가족을 전도해서 갔는데 연보설교를 합니다. 교인들의 시험을 가장 많이 주는 설교가 십일조입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마치고나니까 너무 너무 은혜를 받은 겁니다. 그때부터 충성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공회에 속한 종입니다. 그게 방언의 능력입니다. 방언의 능력, 그래서 신앙의 마지막 절정, 우리들의 나아가는 방식의 절정, 영감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거, 말씀 속에 내제하고 있습니다. 실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감이라야 성경의 감화감동이라야 들리기도 하고 믿어지기도 하고 나도 변화되고 변화도 될 것이고 성령의 감화감동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성령의 감화감도. 인내도 그렇습니다.
지난 주일에 기름붓는 거 우리는 주일 앞에 올 날까지 받고 받고 또 받고. 영감은 누구 역사라고요.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모시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그래서 영감이라는 말은 쉽게 되는 게 아닌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가 없어야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해야합니다. 이걸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속 공로를 베푸시고 성자 주님이 대속을 베푸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낼 것이고 천국을 알게할 것이다. 그 성령의 감화 감동이 영감이고 모든 게 다 해결이 될 겁니다. 조금 전에 성령에 충만했던 베드로가 사탄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좀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3장, 120장
본문: 열왕기하 2장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창세기 보면은 라헬이 죽는 장소가 길이 격한 곳에서 죽었다. 길이 험한 곳이다 그렇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갈렛길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을 격하고 두 사람을 떼어놓고, 간격 그 격자입니다. 영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감화감동, 영감의 감 자가 느낄 감자입니다. 감정이라고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있으면 이성이 앞에 있어야합니다. 감성이 앞에 있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넣어주신 요소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찬송도 보면 가사라던지 분위기라든지 형편이라든지 맞는 찬송을 하면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도 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격해지게 됩니다. 은혜라는 것은 감정이 움직이는 것은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용하는거요. 감정이 작용하는 것은 은혜 중에서도 가장 낮은 차원입니다. 이성이란 이치를 따지는 겁니다. 이성을 따라가야하지 감정이 움직이면 신앙생활에 큰 문제가 발성하고 인간 관계에도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게 감정입니다. 믿음의 종들은 감정 표현을 잘 안합니다. 아무리 기뻐도 못합니다. 논리만 따집니다. 면도칼입니다. 한국의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해서는 엄청나게 인자하고 자애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기 때문에 슬픈 감정은 눈물이 다 말라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감정 따라 움직이면 가벼운 사람이 됩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사소한 것에 그들 표현은 예민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지극히 가치낮은 것입니다. 본문에 엘리야 엘리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를 상징합니다. 엘리사는 우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올리실려고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토네이도가 영어입니까. 우리나라는 잘 안부는데, 미국이나 그런데에서는 아주 크게 불지요. 하늘에 올리시려고 하는데 광야에서 들판에서 부는 거지요. 길갈 베델 여리고로 들어왔으니까 반대쪽으로 간건가요. 성경의 지명은 여러 가지 가르치는 게 많습니다. 가르치는 구원도리가 많은데 지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길갈, 베델, 여리고, 이 본문의 말씀은 좀 아는 말씀입니다. 워낙 유명해서. 목회자 양성원 졸업식 때 아주 은혜롭게 하신 말씀이라서 웬만한 교인들은 다 아는 말입니다.
길갈, 베델, 여리고, 요단입니다. 지명과 순서 가지고 가르치는데 이때는 지명이 없고 길갈이라는 장소가 의미하는 의미, 베델이라는 장소가 가르치는 것, 여리고가 가르치는 것, 요단이 가르치는 것. 지명에 있는 역사들 활동들 사건들 그런 것을 통해서 구원 도리를 가르칩니다. 세상에서도 역사 공부하면 그런 것들이 있지요. 남한산성, 여수 근처는 이순신 장군이 해군 차렸던 거, 그런 지명들 역사들 사건에서는 의미를 다 부여하고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치는데 첫 번째가 길갈입니다.
우리가 여기 안전하게 앞장 서 가겠습니다. 마지막에 좋은 곳을 먼저 차지했는데 침략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짓밟히는 게 됩니다. 이쪽은 들판이기 때문에 좋은 곳을 먼저 취했는데 뒤에가서 보니까 적군에게 침략할 때 가장 불리한 장소가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런게 많습니다.
애굽에서 나옵니다. 출애굽, 우리에게 연결시키면 신앙 출발, 믿음생활 출발하는 겁니다. 중생이 되는 겁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신앙 출발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넙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무슨 뜻인가요. 학습 세례 문답에 나 나와있는데, 홍해는 빠져서 죽는 겁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게 뭡니까. 새해입니다. 광야 생활은 신앙 생활, 교회 생활입니다. 광야 생활이 끝나고 나면 어디로 갑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은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출애굽은 중생입니다. 그 다음은 홍해, 무엇이라고요. 세례입니다. 홍해바다 건너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홍해 바다 건너서 광야로 걸어갑니다. 평생입니다. 무슨 강 건너가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 천국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뭐라고요 길갈이라고요. 천국 들어갔는데 무슨 싸움이 시작됩니까. 요단강 건너간 이유는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 건너 가는 겁니다.
요단강 건너는 길갈부터는 광야 40년이 있고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점령해가는 건데 천국은 그냥 주시는 나라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게 있어서 하늘나라 모든 것이 천국의 지위라든지 힘이 들어갑니다. 세상은 남을 부려먹는 것이고 천국의 권력은 일입니다 일. 사람의 가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하냐는 겁니다. 그 사람 가치는 그것만 합니다. 어떤 사람 열 가지 하면 그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을 학교도 보내고 피아노도 보내고 서예도 보내고 태권도도 보내고 수학도 보내고 다 보냅니다. 그만큼 실력있는 사람을 만들고 영원토록 하늘 나라에서 사는데 말씀으로 사는 그것이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항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니까 기하급수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데 영원토록하는 그 길을 이 세상에서 마련하는데 천국에 일할 수 있는 것을 접목하는 것이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천국은 그냥 가는데 공짜 좋아하면 이마가 벗겨진다고 합니까. 공짜는 세상에 없는 겁니다.
사람이 못하는 건 은혜로 주시지만 다른 것은 다 해야합니다. 그 첫 출발, 전초기지라고 할까요. 그게 길갈입니다. 그 다음날 땅에서 나온 소산 곡식 먹고 하나님의 은혜로 먹여살리던 만나 끝나고, 이게 건설구원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길갈의 은혜라는 것은 전초기지, 그런 것과 같은 게 길갈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은혜입니다. 자기가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경험해보는 길갈 신앙입니다. 평생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길갈 신앙을 경험해보는 사람은 길갈 신앙이 되는 것이고 남의 복음으로만 듣고 믿는 흉내만 내고 실제로 자기를 바쳐 드려서 말씀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은헤 역사를 체험해보지 못한,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사과를 압니까. 알지요. 왜 모릅니까. 수박을 안 먹어본 사람은 수박을 압니까 모릅니까. 망고, 저는 망고를 먹어본 거 같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달다고 합니다. 그런데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어느정도 단지 모릅니다 알기는 아는데.
저는 미국을 압니다. 북아메리카입니까 굉장히 큰 나라고 영어쓰는 사람들이고 바이든이고 트럼프가 당선됐고 그런데 실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는 잘 모릅니다. 길갈 신앙은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첫 경험이라고 하면 학생들의 반응에서 얻습니다. 저 개인의 신앙생활과 토요일 심방 갔을 때 반응이 말로 설명이 안됩니다. 저 자신이 하나님이 기도하고 바로살면 아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따라다니고 그럽니다. 힘들 거 없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기도 못하고 토요일 가면 힘이 없습니다. 억지로 가면 다 도망가버립니다. 어디 가야해요. 뭘로 설명합니까. 이게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면 이건 과학으로도 이치로도 말로 설명이 안되는 겁니다. 첫 출발이 그겁니다. 지금까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길가는 신앙입니다. 말하자면 에베소 교회가 주님 앞에 책망 받은 게 뭐를 버렸다.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길갈입니다. 길갈 신앙은 출발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중요합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출발을 못합니다. 뿌리가 없는 겁니다. 기초가 없고 무너지는 겁니다. 자기 최면 주관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써 확실히 있는 겁니다. 제대로 믿은 것은 다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이걸 가져도 수도없이 가졌습니다. 봤고 백 목사님 능력을 보고 그러면 평생을 달려갈 거 같은데 그래도 가시고 나니까 뒤에 가서 믿어도 탈선하고 말합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어느 시대 누구와 같습니까. 10가지 재앙을 저거 눈으로 보고 반석에 나온 물을 마시고 만나 메추라기를 40년 먹고도 그때 가나안 입구 가서는 돌아가자, 애굽으로. 그게 인간이고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의지가 중요하고 믿음이 중요한거지요. 그런 첫 신앙에 길갈 신앙입니다. 나는 길갈 신앙 버렸나. 가져와야합니다.
베델입니다. 베델은 제단 쌓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단은 뭐하는 곳입니까. 제사 드리는 단입니다. 어떤 제사입니까. 제사의 마지막에 말하면 누구입니까.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가 종착점은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소양염소 예수님을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미리 땡겨서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표시한다, 예표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표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짐승은 모두 상징하고 누가 제물이 되는 겁니까. 그 다음의 제물은 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가 되는 겁니다. 나를 잡지 않으면 내 속에 잡아야할 자기를 잡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자존심. 체면, 게으른 것, 끈기 없는 것, 나쁜 욕심, 감정, 시기질투. 이래야 제사가 되는 겁니다.
길가에서 첫 체험하고 그걸 잡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로 발전해서 저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는 것이고 세 번째로 나갈 곳은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크고 강한 성인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여기까지 가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리고 까지 가는 신앙은 굉장한 신앙이 됩니다. 기도하니까 병이 낫습니다. 백목사님만 이런 게 아닙니다. 백 목사님 외에도 기도를 해서 능력으로 낫는 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빠져서 돈벌이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도하니까 병이 낫는데 나중에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짜고 치는 겁니다. 다 가짜인데. 그렇게 탈선된 사람들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 능력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 진짜 가치가 있느냐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요. 부흥을 일으키고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런 게 있습니다.
신령한 고급으로 하면 방언의 능력, 우리 교회 설교는 좀 어렵다고 하지요. 설교는 어린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해야하는게 저는 그게 안됩니다. 그들이 알아듣도록 할려고 하니까 안됩니다. 그것도 방언의 능력인데 신풍 목사님께서 그걸 정말 잘 하시지요. 적절하게, 그게 방언의 능력입니다. 여리고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능력 여리고 신앙인데 능력의 신앙입니다. 길갈에서 베델을 거쳐서 그 다음 단계가 여리고 신앙입니다. 우리 공회도 있고 일반 교단에도 있습니다. 평신도에도 있고 목회자 중에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주 어린 신앙, 길갈 신앙 조차도 경험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기독교가 이종교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목단체 사회단체, 그게 말하자면 성경을 바로 믿지 못하고 그런 것이고 실제로 말씀을 믿어보지 않으면 말씀을 기도해보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아보지 않으면 길갈의 경험은 못하는 겁니다. 베델로 올라가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회 대부분이 베델 신앙입니다. 그런데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여리고로 나가야하는데 여리고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머물지말고 요단으로 나아가야합니다. 한 번 죽으면 끝인데 최종은 현실의 요단은 어려운 말인데 지사충성. 전부를 다 해서 충성하는 겁니다. 자기 전부를 마음 다 힘 다 뜻다 해서 충성하는 게 요단 생활입니다. 엘리사는 뭐하러 갔습니까. 엘리사는 엘리야 따라서 요단까지 건너서 마지막에 영감을 하러 왔습니다. 신앙의 절정입니다. 우리 신앙의 최대 목표는 영감입니다. 말씀 연구의 최종은 영감입니다. 성경의 감화와 감동.
지난 주일에 기름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역사가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 감화 감동역사. 오순절이 일어나는데 오순절이 되기 전에 예수님 못박아 죽인 살벌한 분위기 속에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 목숨을 무릎쓰고 간절하게 되어있습니다. 오순절이 무슨 날입니까. 십계명하는 날이지요. 갑자기 갈라지는 게 보이고 각 사람이 성경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구 외칩니다. 베드로가 거기서 설교하는데 베드로가 한 나라 유대말로 히브리 말로 하는데 각나라 사람이 모였는데 한국말로 하는데 중국사람은 중국말로 들리네 일본 사람은 일본 말로, 러시아 사람은요 러시아말로 들리네. 그게 뭐라고요. 방언입니다. 성령의 능력. 어떤 잘 믿는 분이 지금은 안타깝게 됐는데, 가족들 전도하는데 언니 가족을 전도해서 갔는데 연보설교를 합니다. 교인들의 시험을 가장 많이 주는 설교가 십일조입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마치고나니까 너무 너무 은혜를 받은 겁니다. 그때부터 충성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공회에 속한 종입니다. 그게 방언의 능력입니다. 방언의 능력, 그래서 신앙의 마지막 절정, 우리들의 나아가는 방식의 절정, 영감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거, 말씀 속에 내제하고 있습니다. 실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감이라야 성경의 감화감동이라야 들리기도 하고 믿어지기도 하고 나도 변화되고 변화도 될 것이고 성령의 감화감동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성령의 감화감도. 인내도 그렇습니다.
지난 주일에 기름붓는 거 우리는 주일 앞에 올 날까지 받고 받고 또 받고. 영감은 누구 역사라고요.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모시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그래서 영감이라는 말은 쉽게 되는 게 아닌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가 없어야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해야합니다. 이걸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속 공로를 베푸시고 성자 주님이 대속을 베푸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낼 것이고 천국을 알게할 것이다. 그 성령의 감화 감동이 영감이고 모든 게 다 해결이 될 겁니다. 조금 전에 성령에 충만했던 베드로가 사탄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좀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