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금밤
김동민2024-11-29조회 115추천 9
2024년 11월 29일 금밤
찬송: 136장, 137장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에 보면 이번에 기름을 부으라는 그 제목에 전체 내용이 흐리게 되어있습니다. 이유는 주일 학생들에게 공과를 가르치는데 열 여섯 가지로 본문 해석이 되어있는데 이걸 다 가르칠 시간이 안될 것이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요절지에는 달리하고 가르치는 것에는 달리하라고 흐리해놨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시는 게 좋겠고 이 해석은 제가 임의로 한 것이기 때문에 안 맞거나 하면 질문도 좋고 반론도 좋고 그런 겁니다.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 일단 그릇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밥을 담는 그릇은 무슨 그릇인가요. 밥그릇 꽃을 꽂아놓는 그릇은 화병이지요. 큰 그릇 작은 그릇 용도에 따라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고 큰 집에는 그릇이 별로 중요하진 않으나 워낙 많으니까 옛날 가난할 때는 옷 하나 입으면 몇 십년 입었고 신발도 몇 년을 신었습니다.
그래서 처녀가 시집을 가면 반지꼬리라고 아는 분 있습니까. 안에 실 바늘 가위 골무 아시나요 골무, 바느질 할 때 쓰는 골무, 그런 걸 모르니까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옛날을 모르니까. 왜 그런 것을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 줍니다. 왜 주느냐, 남편 옷이 떨어지면 기워야한다. 다 기워신습니다. 바늘 실 가위 다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옛날에 입었는데 옷이 워낙 많으니 옷 귀한 줄 모르지요. 신발 귀한 줄 모르지요. 신풍 시골에 강아지가 입에 뭘 물고 다니더라고요, 10000원 파리바게트 빵을 물고다닌답니다. 그 빵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찐빵도 부잣집만 먹지. 또 옛날에는 결혼하면 반지꼬리 주지만은 그릇을 싸가지고 그릇을 싸서 시집갈 때 준다고 장만해 놓는 겁니다.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지금은 그런 것이 많으니까 예사가 됐지만 큰 집에는 여러 가지 있다 말씀하신 것은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겁니다.
그릇만 많겠습니까. 다른 것도 많겠죠.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그릇. 저 미개한 사람들은 손으로 다 먹습니다. 다 많은데 그릇을 가지고 도리를 가르칩니다. 큰 집에는 그릇이 많고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 큰 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큰 집. 가만히 있는 거지요. 하나님의 집, 그리고 많은 것이 있는 중에 교회입니다. 큰 집에는 이 세상에는 넓게 세상에 말할 때는 큰 집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불신자들도 많으니까 그 안 믿는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만 기록된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 다리오 이런 사람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또 블레셋 지방 사람들 불신자들입니다. 불신자들 전부다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보내셨고 그 중에 진짜 백성은 교회고 믿는 택자들만 그리 되겠지요. 넓은 세상에 별별 사람이 있는데 그릇 그릇들이 있는데 별별 종류의 별별 사람들의 그릇이 그렇듯이 그런 세상 사람들이 많이 있고 교회에도 별별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그 사람들 전부다가 그릇 그릇 그릇들입니다,
교회 안에는 거룩한 사람만 모인 게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여러 단체들 중에서 교회가 가장 사람들의 종류적으로 많을겁니다.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사같은 사람도 있고 사기꾼 같은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병자같은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병원에는 어떤 사람이 갑니까. 건강한 사람이 갑니까 병든 사람이 갑니까.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뭐라고 갑니까. 병자를 보살펴야하니까. 병원에 가면 별별 것이 다 있듯이 교회에도 별별 인간병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빚진 자들, 이런 자 저런 자들, 인간 찌끄래기들만 모여다녔습니다. 죄짓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겁니다. 탈남하고 월북하는 사람은 지금은 잘 없지만 옛날에는 꽤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넘어와가지고 간첩도 있을 것이고 죄짓고 도망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봐도 뻔한거지요. 다윗을 따라다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들 중에서도 죄짓고 도망친 사람들 더러 있을걸요. 그런 곳입니다. 이 세상이 그런 곳이고 교회가 그런 곳인데 말하자면 별별 사람이 다 있고 그 사람들 그릇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질은 그릇을 통해서 사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담을 수 있는 종류와 분량이 다른 겁니다. 수학은 굉장히 잘하는데 암기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학을 잘 못하면 암기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수학은 해보지도 않았고 약해서 따라가다가 나중에 도무지 못 따라가겠습니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사람 몸에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팔 다리 있고 이런 게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이 각각 로마서 12장에 자기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라. 그릇을 키우지 말란 말이 아니고 자기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걸 찾지 말아라고 합니다. 눈이면 눈을 키워야하는데 눈을 밝혀야하는데 그 역할을 하면서 왜 못듣지 이러면 안됩니다. 나는 왜 보지를 못하지. 이러면 탈이 나는 겁니다. 귀는 밝게 잘 듣는데 전력을 하고 중요한 거 필요한 건 안 놓치도록 들어야겠다. 밝게 들어야겠다. 입은 먹기도 하고 해야겠다. 옛날에 가장 그릇 중에 천대 받는데 가장 귀한 그릇이 뭐라고요. 요강단지, 모르지요 모두. 좀 보여줘야합니다. 요강단지는 놋으로 만든 것도 있고 사기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잘 깨집니다. 밤에 옛날에 화장실이 밖에 있었습니다. 이름도 통시라고 했습니다. 변소. 집 밖에 구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나갈려고 하면 춥기도 하고 무서워서 방안에다가 머리 맡에다가 요강단지 뚜껑 덮어놓고 잡니다.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없으면 불편합니다.
지금도 거동 못하는 분들은 요강단지 필요할걸요. 천대 받는 것이 가장 귀한 겁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대로 사슴이 평소에 뿔은 잘났고 못난 발을 멸시했는데 나중에는 발이 살려주고 뿔 때문에 죽었죠. 남한 사람 중에서 처형할 사람 찾아낼 때 손을 검사했다고 합니다. 공무원, 경찰, 지주를 찾아닙니다. 손이 험하면 일했다고 살려줍니다. 예수님 몸은 교회인데 엿새니까 평소 고요한 때입니다. 그때는 발 구석에 숨은 거 안 알아주는 거 그거 충성하는 겁니다. 환란 닥쳐서 그러면 내가 머리입니다. 책임자입니다. 나 잡아가십시오. 그게 머리입니다. 그런 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믿는 세계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엇이 담기며 크기와 가치가 정해지게 되는 겁니다. 귀한 것을 담으면 귀한 것이 되는 거고 많이 담으면 천한게 되는 거고 그런 겁니다. 어디 담습니까. 머리 속에 담습니다. 무엇 속에 담습니까. 보는 걸로 닮고 듣는 걸로 담습니다. 귀한 걸 다음으면 귀한 그릇이 됩니다. 집이 아무리 크고 좋아도 그 큰 집에 거지가 살면 거지집이 되고 초가라도 왕이 살면 왕궁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든 그릇인데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보배가 되는 겁니다. 우리의 눈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 내가 말씀을 닮는 그릇이 됩니다. 눈으로 읽음으로 말씀을 함으로 읽음으로 들음으로 마음 속에 생각 속에 담아놓으면 말씀을 담은 귀한 그릇이 되는 겁니다. 생각을 자꾸 하면 말씀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하면 주님과 가까워서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만화 오락 이런 걸 담아 놓으면 아무리 인물이 잘나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천한 것을 담으면 천한 것이 되는 겁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그릇은 무엇을 나타났습니까.
아내와 아들 둘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아내는 교회라, 남편이 남기고 간게 뭡니까. 내가 가면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 성령 남았습니다. 남편이 남겨온 것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밖이라는 것은 현재 닥치지 않은 남은 기회라고 그랬습니다. 밖에나 이웃들에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을 빌려라, 빌리니까 자기 것이 아닌 겁니다. 그걸 살펴라는 것이지요. 빌려가지고 방에 들어가서 골방입니다. 문을 닫고 은말하게 하라. 거기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 성령에 순종하라. 그리고 나서 차면 옮겨놓으라. 하늘로 옮겨지게 되는 겁니다. 그릇마다 다 부으라고 하면 성령에 순종하는 생활만 해라. 기름을 다 부었습니다. 빈 그릇을 가져오라 그랬는데 그릇이 다 차고 없습니다 하니까 이 여인의 아들들의 분량만큼 그릇을 빌렸을 겁니다. 하나에 역사 기록이고 실제지만은 이족역사인데 그릇을 만 개를 가져다 놓았으면 다 채웠을 겁니다. 트럭 다 채웠을 겁니다. 한 병 기름 가지고 다 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계실 때 모인 무리가 몇 명이었습니까. 5000명이 모였습니다. 빈 들판입니다. 200데나리온 떡을 사도 부족할겁니다. 하루 일당 20만원이면 얼마입니까. 4000만원입니까. 4000만원도 모자랄 겁니다. 아무것도 없느냐, 한 명 먹을 도시락, 보리떡 몇 개. 떡 다섯 개 물고기 몇 마리. 오병이어. 떡 병자입니다. 이거 있습니다. 이걸로 뭘 하겠습니까. 사람들을 앉혀라. 그리고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떼어달라고하는데 계속 나옵니다.
한 병인데 그릇이 있는대로 찹니다. 성령의 은혜를 가르치는데 무한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쏟아지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그릇의 분량입니다. 믿음의 분량, 믿음의 그릇, 믿음대로 되리라. 성경을 연구하는 읽는 그릇입니다. 얼마나 평소에 읽었느냐. 믿음의 그릇이 찰 겁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닌데, 지식의 그릇입니다. 박사들은 머리 속에 든 게 많습니다. 한 쪽으로, 눈 박사는 눈에 대해서 잘 알겁니다. 치과 박사는 이빨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겁니다. 의사들은 사람 몸에 대해서 일반 사람보다 많이 알겁니다. 많은 지식이 담겼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 말씀이 많이 답깁니다.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내 속에 얼마만큼 읽으면 내 그릇이 다 찹니까. 몇 독 읽으면 그릇이 다 찹니까. 우리 대동교회 정동진 조사님은 성경을 1000번 가까이 읽었다던다. 정확한 건 아닌데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굉장히 잘 압니다. 성경을 몇 번 읽으면 그릇이 다 차는가요. 100번? 1000번? 10000번? 읽는 만큼 들어가는 거지요. 나라는 사람 속에 성경 읽는 것이 읽고 연구해서 자기가 깨달아 아는 만큼 그릇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백목사님은 55년 동안 성경 연구하고 한도 없습니다. 이런 게 그릇입니다.
성경 깨달음의 그릇, 성경을 많이 읽어서 아는데 믿음의 그릇이 작으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그릇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독생자를 바쳐라고 해도 기뻐서 바쳤으니까. 다니엘의 믿음이 그릇도 큽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의 그릇도 크고 적극적으로 실행의 그릇이 엄청나게 큽니다. 아는 대로는 실행하는 실행의 그릇. 모두 그릇들입니다. 읽어서 아는 그릇 믿음의 그릇, 이런 것들을 담는 기본 그릇이 공과에 나와있는대로 인내, 절제 끈기, 충성, 세상 지식도 그렇고 이런 말씀과 믿음을 담을 수 있는 크기들입니다. 성경 읽고 싶어도 절제가 없으면 못 읽습니다. 인내, 의지, 절제력, 끈기, 충성, 얼마나 잘 참느냐. 부지런하냐 이런 기본 자질이 되는 겁니다. 세상과 신앙을 막론하고 위인들은 그릇이 큰데 그들의 공통점은 인내심입니다. 계속성, 한번 출발하면 끝을 봅니다. 절제력이 대단해서 어떤 것도 끊어버리고 조절합니다. 그런 것이고 자체적인 것이고 대외적으로 큰 사람들, 관계입니다. 그럴 때는 이해심이 굉장히 넓습니다. 박광현이가 그런 뜻입니다. 그릇이 클란가 몰라.
그릇이 큰 거. 체격은 작아도 그릇이 클 수 있습니다. 체격이 커도 그릇이 작을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대인인데 키가 작습니다. 그런데 그릇이 큽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인내심, 절제력 부지런함, 대외적으로는 포용력 이해심 관용 이런 게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거 있어도 아무리 그렇게 크게 해도 금그릇에다가 쓰레기를 담아 놓으면 쓰레기 그릇이 됩니다. 은 그릇에다가 흙을 담아놓으면 흙그릇이 됩니다. 그릇에다가 보배를 담아놓으면 보배합이 되는 겁니다. 그릇이 큰 사람들은 다 품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참고 그러지, 큰 그릇에는 인품, 넓은 그릇에 제물을 담을 수도 있고 학벌을 담을 수도 있고 권력을 담을 수도 있고 믿는 사람 그 속에 하나님 말씀을 담고 믿음을 담고 실행을 담고 그러면 하나님을 모시는 게 되는 겁니다.
우리 그릇을 자꾸 좀 키워서 기름이 그릇만큼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그릇만큼 주의 충성을 주는 것도 그릇만큼. 오만한 자의 자리에 남지 않았습니다. 부족하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6장, 137장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에 보면 이번에 기름을 부으라는 그 제목에 전체 내용이 흐리게 되어있습니다. 이유는 주일 학생들에게 공과를 가르치는데 열 여섯 가지로 본문 해석이 되어있는데 이걸 다 가르칠 시간이 안될 것이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요절지에는 달리하고 가르치는 것에는 달리하라고 흐리해놨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시는 게 좋겠고 이 해석은 제가 임의로 한 것이기 때문에 안 맞거나 하면 질문도 좋고 반론도 좋고 그런 겁니다.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 일단 그릇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밥을 담는 그릇은 무슨 그릇인가요. 밥그릇 꽃을 꽂아놓는 그릇은 화병이지요. 큰 그릇 작은 그릇 용도에 따라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고 큰 집에는 그릇이 별로 중요하진 않으나 워낙 많으니까 옛날 가난할 때는 옷 하나 입으면 몇 십년 입었고 신발도 몇 년을 신었습니다.
그래서 처녀가 시집을 가면 반지꼬리라고 아는 분 있습니까. 안에 실 바늘 가위 골무 아시나요 골무, 바느질 할 때 쓰는 골무, 그런 걸 모르니까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옛날을 모르니까. 왜 그런 것을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 줍니다. 왜 주느냐, 남편 옷이 떨어지면 기워야한다. 다 기워신습니다. 바늘 실 가위 다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옛날에 입었는데 옷이 워낙 많으니 옷 귀한 줄 모르지요. 신발 귀한 줄 모르지요. 신풍 시골에 강아지가 입에 뭘 물고 다니더라고요, 10000원 파리바게트 빵을 물고다닌답니다. 그 빵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찐빵도 부잣집만 먹지. 또 옛날에는 결혼하면 반지꼬리 주지만은 그릇을 싸가지고 그릇을 싸서 시집갈 때 준다고 장만해 놓는 겁니다.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지금은 그런 것이 많으니까 예사가 됐지만 큰 집에는 여러 가지 있다 말씀하신 것은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겁니다.
그릇만 많겠습니까. 다른 것도 많겠죠.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그릇. 저 미개한 사람들은 손으로 다 먹습니다. 다 많은데 그릇을 가지고 도리를 가르칩니다. 큰 집에는 그릇이 많고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 큰 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큰 집. 가만히 있는 거지요. 하나님의 집, 그리고 많은 것이 있는 중에 교회입니다. 큰 집에는 이 세상에는 넓게 세상에 말할 때는 큰 집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불신자들도 많으니까 그 안 믿는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만 기록된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 다리오 이런 사람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또 블레셋 지방 사람들 불신자들입니다. 불신자들 전부다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보내셨고 그 중에 진짜 백성은 교회고 믿는 택자들만 그리 되겠지요. 넓은 세상에 별별 사람이 있는데 그릇 그릇들이 있는데 별별 종류의 별별 사람들의 그릇이 그렇듯이 그런 세상 사람들이 많이 있고 교회에도 별별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그 사람들 전부다가 그릇 그릇 그릇들입니다,
교회 안에는 거룩한 사람만 모인 게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여러 단체들 중에서 교회가 가장 사람들의 종류적으로 많을겁니다.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사같은 사람도 있고 사기꾼 같은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병자같은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병원에는 어떤 사람이 갑니까. 건강한 사람이 갑니까 병든 사람이 갑니까.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뭐라고 갑니까. 병자를 보살펴야하니까. 병원에 가면 별별 것이 다 있듯이 교회에도 별별 인간병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빚진 자들, 이런 자 저런 자들, 인간 찌끄래기들만 모여다녔습니다. 죄짓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겁니다. 탈남하고 월북하는 사람은 지금은 잘 없지만 옛날에는 꽤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넘어와가지고 간첩도 있을 것이고 죄짓고 도망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봐도 뻔한거지요. 다윗을 따라다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들 중에서도 죄짓고 도망친 사람들 더러 있을걸요. 그런 곳입니다. 이 세상이 그런 곳이고 교회가 그런 곳인데 말하자면 별별 사람이 다 있고 그 사람들 그릇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질은 그릇을 통해서 사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담을 수 있는 종류와 분량이 다른 겁니다. 수학은 굉장히 잘하는데 암기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학을 잘 못하면 암기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수학은 해보지도 않았고 약해서 따라가다가 나중에 도무지 못 따라가겠습니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사람 몸에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팔 다리 있고 이런 게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이 각각 로마서 12장에 자기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라. 그릇을 키우지 말란 말이 아니고 자기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걸 찾지 말아라고 합니다. 눈이면 눈을 키워야하는데 눈을 밝혀야하는데 그 역할을 하면서 왜 못듣지 이러면 안됩니다. 나는 왜 보지를 못하지. 이러면 탈이 나는 겁니다. 귀는 밝게 잘 듣는데 전력을 하고 중요한 거 필요한 건 안 놓치도록 들어야겠다. 밝게 들어야겠다. 입은 먹기도 하고 해야겠다. 옛날에 가장 그릇 중에 천대 받는데 가장 귀한 그릇이 뭐라고요. 요강단지, 모르지요 모두. 좀 보여줘야합니다. 요강단지는 놋으로 만든 것도 있고 사기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잘 깨집니다. 밤에 옛날에 화장실이 밖에 있었습니다. 이름도 통시라고 했습니다. 변소. 집 밖에 구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나갈려고 하면 춥기도 하고 무서워서 방안에다가 머리 맡에다가 요강단지 뚜껑 덮어놓고 잡니다.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없으면 불편합니다.
지금도 거동 못하는 분들은 요강단지 필요할걸요. 천대 받는 것이 가장 귀한 겁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대로 사슴이 평소에 뿔은 잘났고 못난 발을 멸시했는데 나중에는 발이 살려주고 뿔 때문에 죽었죠. 남한 사람 중에서 처형할 사람 찾아낼 때 손을 검사했다고 합니다. 공무원, 경찰, 지주를 찾아닙니다. 손이 험하면 일했다고 살려줍니다. 예수님 몸은 교회인데 엿새니까 평소 고요한 때입니다. 그때는 발 구석에 숨은 거 안 알아주는 거 그거 충성하는 겁니다. 환란 닥쳐서 그러면 내가 머리입니다. 책임자입니다. 나 잡아가십시오. 그게 머리입니다. 그런 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믿는 세계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엇이 담기며 크기와 가치가 정해지게 되는 겁니다. 귀한 것을 담으면 귀한 것이 되는 거고 많이 담으면 천한게 되는 거고 그런 겁니다. 어디 담습니까. 머리 속에 담습니다. 무엇 속에 담습니까. 보는 걸로 닮고 듣는 걸로 담습니다. 귀한 걸 다음으면 귀한 그릇이 됩니다. 집이 아무리 크고 좋아도 그 큰 집에 거지가 살면 거지집이 되고 초가라도 왕이 살면 왕궁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든 그릇인데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보배가 되는 겁니다. 우리의 눈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 내가 말씀을 닮는 그릇이 됩니다. 눈으로 읽음으로 말씀을 함으로 읽음으로 들음으로 마음 속에 생각 속에 담아놓으면 말씀을 담은 귀한 그릇이 되는 겁니다. 생각을 자꾸 하면 말씀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하면 주님과 가까워서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만화 오락 이런 걸 담아 놓으면 아무리 인물이 잘나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천한 것을 담으면 천한 것이 되는 겁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그릇은 무엇을 나타났습니까.
아내와 아들 둘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아내는 교회라, 남편이 남기고 간게 뭡니까. 내가 가면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 성령 남았습니다. 남편이 남겨온 것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밖이라는 것은 현재 닥치지 않은 남은 기회라고 그랬습니다. 밖에나 이웃들에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을 빌려라, 빌리니까 자기 것이 아닌 겁니다. 그걸 살펴라는 것이지요. 빌려가지고 방에 들어가서 골방입니다. 문을 닫고 은말하게 하라. 거기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 성령에 순종하라. 그리고 나서 차면 옮겨놓으라. 하늘로 옮겨지게 되는 겁니다. 그릇마다 다 부으라고 하면 성령에 순종하는 생활만 해라. 기름을 다 부었습니다. 빈 그릇을 가져오라 그랬는데 그릇이 다 차고 없습니다 하니까 이 여인의 아들들의 분량만큼 그릇을 빌렸을 겁니다. 하나에 역사 기록이고 실제지만은 이족역사인데 그릇을 만 개를 가져다 놓았으면 다 채웠을 겁니다. 트럭 다 채웠을 겁니다. 한 병 기름 가지고 다 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계실 때 모인 무리가 몇 명이었습니까. 5000명이 모였습니다. 빈 들판입니다. 200데나리온 떡을 사도 부족할겁니다. 하루 일당 20만원이면 얼마입니까. 4000만원입니까. 4000만원도 모자랄 겁니다. 아무것도 없느냐, 한 명 먹을 도시락, 보리떡 몇 개. 떡 다섯 개 물고기 몇 마리. 오병이어. 떡 병자입니다. 이거 있습니다. 이걸로 뭘 하겠습니까. 사람들을 앉혀라. 그리고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떼어달라고하는데 계속 나옵니다.
한 병인데 그릇이 있는대로 찹니다. 성령의 은혜를 가르치는데 무한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쏟아지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그릇의 분량입니다. 믿음의 분량, 믿음의 그릇, 믿음대로 되리라. 성경을 연구하는 읽는 그릇입니다. 얼마나 평소에 읽었느냐. 믿음의 그릇이 찰 겁니다. 성경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닌데, 지식의 그릇입니다. 박사들은 머리 속에 든 게 많습니다. 한 쪽으로, 눈 박사는 눈에 대해서 잘 알겁니다. 치과 박사는 이빨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겁니다. 의사들은 사람 몸에 대해서 일반 사람보다 많이 알겁니다. 많은 지식이 담겼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 말씀이 많이 답깁니다.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내 속에 얼마만큼 읽으면 내 그릇이 다 찹니까. 몇 독 읽으면 그릇이 다 찹니까. 우리 대동교회 정동진 조사님은 성경을 1000번 가까이 읽었다던다. 정확한 건 아닌데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굉장히 잘 압니다. 성경을 몇 번 읽으면 그릇이 다 차는가요. 100번? 1000번? 10000번? 읽는 만큼 들어가는 거지요. 나라는 사람 속에 성경 읽는 것이 읽고 연구해서 자기가 깨달아 아는 만큼 그릇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백목사님은 55년 동안 성경 연구하고 한도 없습니다. 이런 게 그릇입니다.
성경 깨달음의 그릇, 성경을 많이 읽어서 아는데 믿음의 그릇이 작으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그릇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독생자를 바쳐라고 해도 기뻐서 바쳤으니까. 다니엘의 믿음이 그릇도 큽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의 그릇도 크고 적극적으로 실행의 그릇이 엄청나게 큽니다. 아는 대로는 실행하는 실행의 그릇. 모두 그릇들입니다. 읽어서 아는 그릇 믿음의 그릇, 이런 것들을 담는 기본 그릇이 공과에 나와있는대로 인내, 절제 끈기, 충성, 세상 지식도 그렇고 이런 말씀과 믿음을 담을 수 있는 크기들입니다. 성경 읽고 싶어도 절제가 없으면 못 읽습니다. 인내, 의지, 절제력, 끈기, 충성, 얼마나 잘 참느냐. 부지런하냐 이런 기본 자질이 되는 겁니다. 세상과 신앙을 막론하고 위인들은 그릇이 큰데 그들의 공통점은 인내심입니다. 계속성, 한번 출발하면 끝을 봅니다. 절제력이 대단해서 어떤 것도 끊어버리고 조절합니다. 그런 것이고 자체적인 것이고 대외적으로 큰 사람들, 관계입니다. 그럴 때는 이해심이 굉장히 넓습니다. 박광현이가 그런 뜻입니다. 그릇이 클란가 몰라.
그릇이 큰 거. 체격은 작아도 그릇이 클 수 있습니다. 체격이 커도 그릇이 작을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대인인데 키가 작습니다. 그런데 그릇이 큽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인내심, 절제력 부지런함, 대외적으로는 포용력 이해심 관용 이런 게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거 있어도 아무리 그렇게 크게 해도 금그릇에다가 쓰레기를 담아 놓으면 쓰레기 그릇이 됩니다. 은 그릇에다가 흙을 담아놓으면 흙그릇이 됩니다. 그릇에다가 보배를 담아놓으면 보배합이 되는 겁니다. 그릇이 큰 사람들은 다 품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참고 그러지, 큰 그릇에는 인품, 넓은 그릇에 제물을 담을 수도 있고 학벌을 담을 수도 있고 권력을 담을 수도 있고 믿는 사람 그 속에 하나님 말씀을 담고 믿음을 담고 실행을 담고 그러면 하나님을 모시는 게 되는 겁니다.
우리 그릇을 자꾸 좀 키워서 기름이 그릇만큼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그릇만큼 주의 충성을 주는 것도 그릇만큼. 오만한 자의 자리에 남지 않았습니다. 부족하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