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밤
김동민2024-11-22조회 90추천 9
2024년 11월 22일 금밤
찬송: 6장, 7장
본문: 창세기 2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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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이 공과 제목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분을 살아계시다고 자꾸 말하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내 것인데 계속 내 것이라고 하면 의문심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의심이 있고 반발심 생기고 틈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그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러다고 하면 그런 면이 없지 않은데 시대가 그러지 못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인데 믿는 사람들 거의 대다수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믿고 의지하고 바로보고 맡기지 아니하고 순종하지를 아니하니까 우리 자신을 깨우쳐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지요. 하나님을 믿어서 두려워 떠시는지요.
사람의 두뇌도 한계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람의 뇌를 몇 프로도 못 쓴다고 하니까 연구하면 되겠지만 자기를 넘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머리를 쓰다가 안되면 바람도 쐬고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자꾸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몸에 병이 생겨버립니다. 체중이 60키로 되는 사람 어깨에다가 60키로 질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지나치게 지어버리면 짜부러버립니다. 몸도 그렇고 뼈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고 같은 원리로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음은 마음가짐이 좋고 다 좋겠는데 다 착각일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알 대로 다 알고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되 정도로 알려주시지 성령의 감화 감동 역사가 되는 겁니다. 어떤 분은 죄 없이 살고 하나님의 뜻만 찾고 동행생활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뜨겁게 역사하시는데 양심을 통해서 그 안에서 밝혀주시는 거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높으신 분인지 존귀하신 분인지 자꾸 기도해서 하니까 감당이 안 되는겁니다. 주의 성령을 거두어주옵소서라고 했답니다.
하룻강아지는 좋지 않은 건데 장점도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활동하는데 겁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겁이 많아집니다. 60대에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20대에 세상을 살아가면 세상을 못삽니다. 10대 철없는 철부지들의 체격 60대의 인식과 그런 것으로 살면 살 수 없습니다. 한 걸음도 못 움직입니다. 60대는 아무리 천재라도 10대에 맞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60대가 20대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10대는 절대를 붙일만큼 알 수 없습니다. 피부와 뼈가 그렇게 되어야하고 살아보지 않은 십대는 죽어도 모릅니다. 20대가 30대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두셨고 젊은 사람은 이 세상을 모르니까 함부로 말하면 겁이 없는 것이고 말하면 한 쪽으로 말하면 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데 다니엘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리오왕의 눈에 보였습니다. 살아계시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믿음이 부족하나 경험적으로 틀립이 없는 겁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인간의 심장까지 모든 걸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나의 보이는 은혜 말할 거 없고 중심 생각 감정 하나까지 내 마음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보고 계시고 CCTV로 촬영하시는 걸 믿고 계시는지요.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머리털까지 세아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 머리털이 언제 나고 빠지고 그걸 다 아시고 그 분이 다 주관하십니다. 그런 분인 줄 알고 세상을 사느냐, 하나님을 알대로 다 알면 못하는 것이지요.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가 얼마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적당한 겁니다. 태양 중심인데 지구 중심으로 성경적으로 말하면 옛날에 천동설이 천주교에서 주장한겁니까. 지동설이 맞는 것이죠. 맞습니까. 성경적으로 따지면 지동설이 맞습니까 천동설이 맞습니까. 천체 물리학으로는 지동설이 맞는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천동설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가까이 붙여놓으면 다 죽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가까이할 건 가까이할 게 있는데 아는 게 있습니다.
알아가는 것은 천국에서 신령한 몸으로 살기 때문에 영원히 아는 것이지 고깃덩어리 가지고 하나님 다 알면 무서워서 못 산다고 하지요. 그래도 알 만큼은 알고 믿을 만큼 믿어야합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볼 때 사시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다니엘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섬기는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피곤하신 하나님인가 목석같은 하나님인가.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드는 거지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게 중요한게 다니엘은 그리 했고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인류의 조상이 누구지요. 아담, 아담의 의미는 아담은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훌륭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아담은 선악과 따먹은 자기와 자손 전부를 사망에 빠뜨리게 한 사람입니다. 아담은 시조입니다. 자손 전부를 사망하게 했으나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첫사람입니다. 역사에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니까 두고 예수님은 첫째 아담 자손이 아닙니다. 어떤 훌륭한 위대한 신앙의 성자 성녀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 지은 건 나쁘지만 직접 만드신 첫 사람입니다. 허리에 양쪽에는 다 있는 겁니다. 아벨은 아담의 아들입니다. 에녹은 아담의 자손입니다. 노아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아담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예사로 생각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인류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건 직접 만드셨고 직접적으로 무형의 하나님이라서 아담에게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겠습니까. 형체 없으신 무형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나타나실 때도 아담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셨든지 그렇겠지요.
아담에게 생기를 넣어주셨고 그 아담을 에덴 동산의 책임자로 만드셨고 처음 하나님을 상대했던 사람이 아담이었습니다. 그런 아담인데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실감할 수 있고 두려워할 수 있고 떨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담이 하와인데 세월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담도 하나님 잊어버렸으니까 선악과를 따먹었겠지요. 세월 속에 아담 하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입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의 법을 배워서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지 그것을 아벨도 했고 가인도 했는데 가인은 형평성에 따라서 했고 아벨은 배운대로 했습니다. 아벨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 제사는 안 받으셨나요. 아벨은 하나님의 법칙대로 제사를 바로 드렸고 가인은 제멋대로 드렸으니까. 이 가인이 못되게 아벨을 협박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안 되어있는데 가인이 아벨에게 고했다고 다 되어있습니다. 아벨은 목전에서 형이 죽이려는 살해위협보다도 하나님이 더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찌언정 어길 수 없었습니다. 아벨이 섬긴거지요. 형의 살해 위협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게 믿음이었습니다.
300년 동안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구 대상입니다. 노아는 120년 이후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형체가 없는데 형체없는 하나님께서 목소리는 종들에게 나타나겠지만 신학적으로 다 나와있겠지만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구할 게 많을 거 같은데 더 깊이 들어가면 연구할 그런 게 많다 싶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몸이란 밖으로 사물을 상대하는 것이 몸입니다. 마음으로는 마음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위해서 있는 게 몸이고 몸을 위해 있는 게 사물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기 위해서 있는 게 영입니다. 그래서 그게 전부고 아래로 자기 마음만 상대합니다. 영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은 존귀한 존재인데 무능합니다. 마음이 말을 안 들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하는 겁니다. 영이란 사람의 심신이 사람이 하나님과 상대할 때 머리되는 주인이 영인데 그 영이 아담의 범죄로 죽었다는 말이죠. 그걸 어떻게 살아나느냐. 그것은 우리가 배운대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납니다.
진리는 구약에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 대속 입고 난 다음이 성령입니다. 그런 주님 대속이 있어야 사람의 죽은 영이 중생을 합니다. 주님 대속은 4000년 지나고 난 다음에 대속이 있었습니다.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니엘도 전부 구약성도들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 했습니다. 그들의 영은 살아있습니까 죽어있습니까. 300년 동안 동행한 에녹의 영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오랜 숙제로 과제로 신학에서는 나름대로 정립이 되어있겠지만 과제입니다. 영이 죽었는데 어떻게 교제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신다.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굉장히 많습니다. 과제고 연구로 두고 구약 성도들의 중심과 구약 성도들의 역사는 다윗이 성전의 모든 것을 성신이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성신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하지요. 성부 성자 성신, 성령입니다. 예표 시대인데 성신이 다윗에게 성전 구조를 전부 다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는 거지요.
에녹이 동행했고 노아는 120년 후에 홍수로 세상을 전멸시킬 걸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알려주셨을까 소리를 질렀을까 노아의 마음을 통해 전했을까 어떻게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습니까. 노아가 어떻게 들었겠습니까. 소리가 들렸을까요. 출장갈 때, 가다가 빛을 봤고 소리를 봤습니다. 속에서는 나는 소리 보다도 소리만 듣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7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소리를 들었으니 사울의 속에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외부로 들릴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형체로 비둘기같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성령이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비둘기의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제 비둘기 형체를 말씀하시는 건지 불의 혀같이 갈라져서 나타났다고도 하는데 사울이 들은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었습니다.
노아가 어떻게 들었을까. 이 소리는 아무래도 내면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노아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게서 노아로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가. 그런데 그 음성을 믿고 노아는 120년 동안에 방주 만드는데 전념을 다 하는 겁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는데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세상 사람들 전부의 비웃음보다 노아는 자기 속에서 해내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이겼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노아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거지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니 이것도 들렸는지 마음 속에 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리느냐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사랑하는 이삭을 가지고 학수고대하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후처로 자식이 여럿 있습니다만 구원 계통은 유일한 이삭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이 아들인데 이 아들 나이가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무짐 지고 갔습니다. 내가 네가 지시한 것으로 번제로 드려라. 잡아서 재로 만들어 드리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제사로 드려라.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아버지가 되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어보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부모가 되어보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식들 때문에 눈을 못 감는겁니다.
그 아들을 멀쩡히 살아있는 아들을 드려라. 그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을 때 자식을 매몰차게 쳐서 사람을 만들어야한다든지 끊어서 뭘 한다든지 아주 참 매몰차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여기는 뭐 목숨 자체니까 이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라고 하는데 번제로 달라고 하니까 있을 수가 없는 건데 살아계시니까 믿기를 그리 믿었지요. 이유없이 하는 분이 아니었고 결과가 다 좋았고 하나님이 살아있음을 다 겪었고 경험했으니까 바치면 이삭을 다시 살릴 것이다. 그걸 믿고 이삭은 잡은거지요. 그걸 믿는 것입니다. 그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연보를 많이 하는 분들은 해보니까 하나님께서 1000만원 주시면 2000만원 주십니다. 그런 말 들었습니다. 5000만원 연보하면 1억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연보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겁니다.
법치가 되어있으면 법을 아는 사람은 법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무서워했고 더 두려워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이런 것이 말하자면 섬기는 겁니다. 다리오 왕이 볼 때 한 번 만이 아니고 알고나면 봐오니까 하나님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살아있다. 그래서 다리오왕에게 사시는 하나님의 사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이종교 믿는 사람을 보면서 없는 걸 믿는다고 웃잖습니까.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걸 보면 아벨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더 믿었고 두려워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바라보고 순종했고 그렇게 믿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6장, 7장
본문: 창세기 2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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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이 공과 제목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분을 살아계시다고 자꾸 말하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내 것인데 계속 내 것이라고 하면 의문심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의심이 있고 반발심 생기고 틈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그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러다고 하면 그런 면이 없지 않은데 시대가 그러지 못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인데 믿는 사람들 거의 대다수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믿고 의지하고 바로보고 맡기지 아니하고 순종하지를 아니하니까 우리 자신을 깨우쳐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지요. 하나님을 믿어서 두려워 떠시는지요.
사람의 두뇌도 한계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람의 뇌를 몇 프로도 못 쓴다고 하니까 연구하면 되겠지만 자기를 넘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머리를 쓰다가 안되면 바람도 쐬고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자꾸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몸에 병이 생겨버립니다. 체중이 60키로 되는 사람 어깨에다가 60키로 질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지나치게 지어버리면 짜부러버립니다. 몸도 그렇고 뼈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고 같은 원리로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음은 마음가짐이 좋고 다 좋겠는데 다 착각일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알 대로 다 알고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되 정도로 알려주시지 성령의 감화 감동 역사가 되는 겁니다. 어떤 분은 죄 없이 살고 하나님의 뜻만 찾고 동행생활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뜨겁게 역사하시는데 양심을 통해서 그 안에서 밝혀주시는 거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높으신 분인지 존귀하신 분인지 자꾸 기도해서 하니까 감당이 안 되는겁니다. 주의 성령을 거두어주옵소서라고 했답니다.
하룻강아지는 좋지 않은 건데 장점도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활동하는데 겁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겁이 많아집니다. 60대에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20대에 세상을 살아가면 세상을 못삽니다. 10대 철없는 철부지들의 체격 60대의 인식과 그런 것으로 살면 살 수 없습니다. 한 걸음도 못 움직입니다. 60대는 아무리 천재라도 10대에 맞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60대가 20대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10대는 절대를 붙일만큼 알 수 없습니다. 피부와 뼈가 그렇게 되어야하고 살아보지 않은 십대는 죽어도 모릅니다. 20대가 30대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두셨고 젊은 사람은 이 세상을 모르니까 함부로 말하면 겁이 없는 것이고 말하면 한 쪽으로 말하면 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데 다니엘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리오왕의 눈에 보였습니다. 살아계시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믿음이 부족하나 경험적으로 틀립이 없는 겁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인간의 심장까지 모든 걸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나의 보이는 은혜 말할 거 없고 중심 생각 감정 하나까지 내 마음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보고 계시고 CCTV로 촬영하시는 걸 믿고 계시는지요.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머리털까지 세아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 머리털이 언제 나고 빠지고 그걸 다 아시고 그 분이 다 주관하십니다. 그런 분인 줄 알고 세상을 사느냐, 하나님을 알대로 다 알면 못하는 것이지요.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가 얼마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적당한 겁니다. 태양 중심인데 지구 중심으로 성경적으로 말하면 옛날에 천동설이 천주교에서 주장한겁니까. 지동설이 맞는 것이죠. 맞습니까. 성경적으로 따지면 지동설이 맞습니까 천동설이 맞습니까. 천체 물리학으로는 지동설이 맞는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천동설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가까이 붙여놓으면 다 죽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가까이할 건 가까이할 게 있는데 아는 게 있습니다.
알아가는 것은 천국에서 신령한 몸으로 살기 때문에 영원히 아는 것이지 고깃덩어리 가지고 하나님 다 알면 무서워서 못 산다고 하지요. 그래도 알 만큼은 알고 믿을 만큼 믿어야합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볼 때 사시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다니엘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섬기는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피곤하신 하나님인가 목석같은 하나님인가.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드는 거지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게 중요한게 다니엘은 그리 했고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인류의 조상이 누구지요. 아담, 아담의 의미는 아담은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훌륭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아담은 선악과 따먹은 자기와 자손 전부를 사망에 빠뜨리게 한 사람입니다. 아담은 시조입니다. 자손 전부를 사망하게 했으나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첫사람입니다. 역사에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니까 두고 예수님은 첫째 아담 자손이 아닙니다. 어떤 훌륭한 위대한 신앙의 성자 성녀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 지은 건 나쁘지만 직접 만드신 첫 사람입니다. 허리에 양쪽에는 다 있는 겁니다. 아벨은 아담의 아들입니다. 에녹은 아담의 자손입니다. 노아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아담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예사로 생각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인류도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건 직접 만드셨고 직접적으로 무형의 하나님이라서 아담에게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겠습니까. 형체 없으신 무형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나타나실 때도 아담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셨든지 그렇겠지요.
아담에게 생기를 넣어주셨고 그 아담을 에덴 동산의 책임자로 만드셨고 처음 하나님을 상대했던 사람이 아담이었습니다. 그런 아담인데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실감할 수 있고 두려워할 수 있고 떨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담이 하와인데 세월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담도 하나님 잊어버렸으니까 선악과를 따먹었겠지요. 세월 속에 아담 하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입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의 법을 배워서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지 그것을 아벨도 했고 가인도 했는데 가인은 형평성에 따라서 했고 아벨은 배운대로 했습니다. 아벨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 제사는 안 받으셨나요. 아벨은 하나님의 법칙대로 제사를 바로 드렸고 가인은 제멋대로 드렸으니까. 이 가인이 못되게 아벨을 협박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안 되어있는데 가인이 아벨에게 고했다고 다 되어있습니다. 아벨은 목전에서 형이 죽이려는 살해위협보다도 하나님이 더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찌언정 어길 수 없었습니다. 아벨이 섬긴거지요. 형의 살해 위협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게 믿음이었습니다.
300년 동안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구 대상입니다. 노아는 120년 이후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형체가 없는데 형체없는 하나님께서 목소리는 종들에게 나타나겠지만 신학적으로 다 나와있겠지만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구할 게 많을 거 같은데 더 깊이 들어가면 연구할 그런 게 많다 싶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몸이란 밖으로 사물을 상대하는 것이 몸입니다. 마음으로는 마음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위해서 있는 게 몸이고 몸을 위해 있는 게 사물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기 위해서 있는 게 영입니다. 그래서 그게 전부고 아래로 자기 마음만 상대합니다. 영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은 존귀한 존재인데 무능합니다. 마음이 말을 안 들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하는 겁니다. 영이란 사람의 심신이 사람이 하나님과 상대할 때 머리되는 주인이 영인데 그 영이 아담의 범죄로 죽었다는 말이죠. 그걸 어떻게 살아나느냐. 그것은 우리가 배운대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납니다.
진리는 구약에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 대속 입고 난 다음이 성령입니다. 그런 주님 대속이 있어야 사람의 죽은 영이 중생을 합니다. 주님 대속은 4000년 지나고 난 다음에 대속이 있었습니다.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니엘도 전부 구약성도들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 했습니다. 그들의 영은 살아있습니까 죽어있습니까. 300년 동안 동행한 에녹의 영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오랜 숙제로 과제로 신학에서는 나름대로 정립이 되어있겠지만 과제입니다. 영이 죽었는데 어떻게 교제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신다.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굉장히 많습니다. 과제고 연구로 두고 구약 성도들의 중심과 구약 성도들의 역사는 다윗이 성전의 모든 것을 성신이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성신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하지요. 성부 성자 성신, 성령입니다. 예표 시대인데 성신이 다윗에게 성전 구조를 전부 다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는 거지요.
에녹이 동행했고 노아는 120년 후에 홍수로 세상을 전멸시킬 걸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알려주셨을까 소리를 질렀을까 노아의 마음을 통해 전했을까 어떻게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습니까. 노아가 어떻게 들었겠습니까. 소리가 들렸을까요. 출장갈 때, 가다가 빛을 봤고 소리를 봤습니다. 속에서는 나는 소리 보다도 소리만 듣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7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소리를 들었으니 사울의 속에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외부로 들릴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형체로 비둘기같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성령이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비둘기의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제 비둘기 형체를 말씀하시는 건지 불의 혀같이 갈라져서 나타났다고도 하는데 사울이 들은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었습니다.
노아가 어떻게 들었을까. 이 소리는 아무래도 내면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노아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게서 노아로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가. 그런데 그 음성을 믿고 노아는 120년 동안에 방주 만드는데 전념을 다 하는 겁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는데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세상 사람들 전부의 비웃음보다 노아는 자기 속에서 해내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이겼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노아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거지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니 이것도 들렸는지 마음 속에 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리느냐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사랑하는 이삭을 가지고 학수고대하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후처로 자식이 여럿 있습니다만 구원 계통은 유일한 이삭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이 아들인데 이 아들 나이가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무짐 지고 갔습니다. 내가 네가 지시한 것으로 번제로 드려라. 잡아서 재로 만들어 드리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제사로 드려라.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아버지가 되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어보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부모가 되어보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식들 때문에 눈을 못 감는겁니다.
그 아들을 멀쩡히 살아있는 아들을 드려라. 그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을 때 자식을 매몰차게 쳐서 사람을 만들어야한다든지 끊어서 뭘 한다든지 아주 참 매몰차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여기는 뭐 목숨 자체니까 이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라고 하는데 번제로 달라고 하니까 있을 수가 없는 건데 살아계시니까 믿기를 그리 믿었지요. 이유없이 하는 분이 아니었고 결과가 다 좋았고 하나님이 살아있음을 다 겪었고 경험했으니까 바치면 이삭을 다시 살릴 것이다. 그걸 믿고 이삭은 잡은거지요. 그걸 믿는 것입니다. 그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연보를 많이 하는 분들은 해보니까 하나님께서 1000만원 주시면 2000만원 주십니다. 그런 말 들었습니다. 5000만원 연보하면 1억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연보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겁니다.
법치가 되어있으면 법을 아는 사람은 법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무서워했고 더 두려워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이런 것이 말하자면 섬기는 겁니다. 다리오 왕이 볼 때 한 번 만이 아니고 알고나면 봐오니까 하나님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살아있다. 그래서 다리오왕에게 사시는 하나님의 사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이종교 믿는 사람을 보면서 없는 걸 믿는다고 웃잖습니까.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걸 보면 아벨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더 믿었고 두려워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바라보고 순종했고 그렇게 믿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