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0일 수밤
김동민2024-11-20조회 105추천 11
2024년 11월 20일 수밤
찬송: 157장, 158장
본문: 다니엘 6장 1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특정 계층이라든지 특정인들에게나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모두 대속을 받아서 중생을 받아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말씀은 구원의 도리입니다.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왕도 나오고 총리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장군도 나오고 부자도 나오고 가난한 사람도 나옵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신앙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주로보면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 집안입니다. 아주 좋은 엘리트 집안입니다. 학벌이 최고 학벌입니다. 그래서 특수 학교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 바로 고위직에 임명이 되고 하나님의 신비한 그런 이상을 보면서 밝은 심령으로 이상 보면서 총리까지 올라가고 나중에는 총총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 전에 모르드개는 집안은 모르겠는데 총리까지 올라갑니다. 에스더는 인물이 굉장히 예뻤습니다. 그 나라 가장 미인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왕후가 되었습니다. 느혜미야도 이스라엘의 포로된 망한 이스라엘의 총독이었고 그 전에는 바벨론 나라에서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거구가 되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다니엘이라든지 느혜미야라든지 모르드개나 에스더 같은 사람들, 원래부터 좋은 집안 좋은 인품 인물 학벌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 기록해서 그들의 신앙 행적을 기록해놨습니다. 그것만 보면 아주 잘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었겠다. 그들의 세계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하고 있는 겁니다. 다니엘의 신앙과 우리의 생활. 다니엘이 그렇게 살았는데 그 환경과 우리의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니까 요셉도 총리였으니까. 성경은 누구를 통해 기록하셨든지 어떤 사람이 성경에서 기록되었든지 우리가 볼 것은 외부적인 보건, 집안이나 학벌 외모나 경제나 배경이나 권세나 이런 걸 볼 것이 아니고 참고만 할 것이고 최고의 사람을 기록할 것은 지향한 바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메이지 않고 높은 학벌 좋은 배경에 메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전부로 삼았던 신앙세계를 가르쳐주는 것이고. 나아만의 여좀 같은 경우는 말단입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올라가겠고, 둘이 비교하면 다릅니다. 서민 중의 서민이고 계집 종이었고 잘생겼으면 그리 안했겠지요 에스더도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후된 사람입니다. 또 배울 만큼 배웠을 거니까. 그런데 나아만의 여종은 이름도 고만할 거고 여종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에 여러 계층의 여러 사람을 통해서 기록해주신 것은 그들의 생애도 생애지만 성경이란 계층을 주신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거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그 사람을 귀족 떼어내 버리고 왕, 총리 떼어내 버리고 그런 환경을 우리에게 연결 시켜서 자기 현실로 그들의 그 현실 속에 살았던 그런 것을 자기 현실에 도리 구원으로 삼는 게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총리인데 왕이있고 총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총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치가 있습니다. 학생, 사무직, 현장직, 좀 높은 사람, 낮은 사람도 있고 여러 층들이 다 있는데 어떤 자기가 처한 위치 입장에 상관없이 다니엘에게 있었던 그 구원의 도리,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왕을 섬긴 다니엘이 세 단계로 해놨지요. 본문에 있는 것을 구분해 본 것입니다. 다니엘은 총리라는 그 자리에서 왕을 섬기면서 다니엘을 헤어리는 정적들이 눈을 뜨고 틈만 노리는 상황에서 다니엘에게 밑에 신하가 많았을 것이고 다니엘은 그런 말하자면은 왕족과 귀족이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갔고 그러기 때문에 더 어려웠고 더 조심을 했고 더 자기 자신을 단속을 했고 고차원적으로 섬긴 것이 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살았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그 사실을 다니엘이 말한 게 아니고 다리오왕이 보고 말한겁니다. 다니엘 입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지 않았고 다니엘의 행동과 역사를 보고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인격 대 신격으로 역사를 다리오왕이 봤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하나님은 눈치를 보고, 그 분을 의식을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겁이 나서 죄를 못 짓고 하나님이 보실 때 꾸중하고 싶어서 게으름하지 못하고 진실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심판하실 것이니까 심판하고 모든 생활을 하는 것을 왕이 봤다는 겁니다. 일반 말단의 공무원이 자기를 일하는 거하고 일의 차원이 다릅니다. 구청장즈음 되면 더 어렵습니다. 구청장이 되면 놀고 먹는 거 같은데 놀고 먹으면 엉망이 되고 감옥가는 것이지요. 보는 사람 많고 살피는 사람 많고 따지는 사람 많고. 구청장되면 천 가지가 되고 총리가 되면 만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올라가니까 더 다니엘은 두려워하고 살아계신 것을 봤다고 하지요. 우리는 각자 자기 처한 입장에서 현재 자기 위치에서 거기서 다니엘의 신앙을 적용시키는 걸 봤다고 합니다. 자녀라면 왕은 다니엘을 섬겼듯이 학생이면 선생님 그리 섬기면 되는 것이고 우리 주변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 오늘 새벽에 있을 때 그 대상이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이었고 왕을 섬겼으나 진짜는 왕을 섬김으로 그랬고 다니엘의 전투의 대상은 전투에 없고 예루살렘이었고 그리고 다니엘 눈에 바벨론의 출세 권력 자기를 노리를 정적들은 안 보이는 겁니다. 아예 상대가 안되는 겁니다.
다니엘은 상관을 안하는 겁니다. 그 총리라는 자리에 관심이 없으니까 세상을 연연하지 않으니까 앉혀놓으니까 앉아있는 것이고 총리자리의 욕심은 털끝만큼도 없으니까 그런데 정적들은 그게 전부니까 올라가려고 하는데, 적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싸움의 대상이 안되는 거지요. 전도 대상이고 양떼 관계고 양을 먹이는 목자와 양과 싸운다. 말이 안되지요. 목자는 양을 먹이고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싸운다. 관계가 잘못된 것이지요. 부모 자녀는 싸움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목회자와 교인이 싸운다 누가 이깁니까. 싸우는 게 아닙니다. 대상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인식이 그랬습니다. 그 정적들은 다니엘을 저것들 같은 줄 알고 끄집어내려고 했었는데 관심이 세상 말로 1도 없는 겁니다.
한국 사람이 지금은 떳떳히 밝힐겁니다. 옛날에는 밝히기 어려워서 자기의 나라를 드러내지 못하는가 집안을 숨기는가 자기 부모가 가난해서 채소장사하고 있으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말하기 좀 그런 그게 잘못된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모님이 채소장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된거지요.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고 이게 뭐가 잘못되냐 그 말이지요.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그 중에서도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총공회 간판을 부끄러워하고 교인들이 총공회라는 간판 때문에 들어와다가 나와버립니다. 찬송가 다르니 가버립니다. 고신이 부산의 본부다. 그 본부에서 서부 교회도 총공회 간판 걸고 그러면 서부 교회는 큰데 왜 안되냐. 간판이 문제가 아니고 찬송가라는 문제가 아니고 목회자 자기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다니엘의 신앙입니다. 이게 배경된 상태에서 사니까 하나님은 죄가 없었습니다. 명백함이오며, 학생은 그 자리에서 죄를 안 지으면 되는 겁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다니엘같은 것 요구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1학년이나 다니엘의 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의 자리를 받았는데 왜 나는 안되지 그러면 평생 불편한겁니다. 새끼발가락으로 귀하기 쓰이는 겁니다. 초등학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다하고 죄를 안 지으면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리고 맡겨놓으면 그러면 다니엘이 되는 겁니다. 모두가 다 총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다니엘이 가졌던 그 신앙이 가지면 되는 겁니다. 몇 가지라고, 첫째 세가지인데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그렇게 섬겼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가. 다리오 왕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참 사시는 하나님의 종이구나 그렇게 믿어보셨습니까. 저도 그리 못해 죄송하지만 원리가 그렇습니다. 왕이 보니가 모든 생활 전부가 하나님의 중심입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둘이 되어있으니까 어떤 세상 것에도 떳떳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것으로 믿으면 이 세상에서 도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히브리서 11장에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합니다. 재물을 빼앗아가도 가족을 빼앗아가도 다 빼앗아가도 할 거 없으니까 그러니까 세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건드리지를 못합니다. 소망적으로 거기를 바라보면서 사는 겁니다.
다리오가 본 세 가지가 있을 때, 두 번째는 죄를 안 지었습니다. 속한 그 단체에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가정이면 가정 학교면 학교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전부는 자기가 손해보면 손해보지 모든 건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머지 알아서 하셨습니다. 내가 올라가려 하는 것은 내 실력 이상만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내가 한 수십배 수백배보다 올라갑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벌은 돈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차원이 다릅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라고요, 전투의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속에 자기 자신 이스라엘이 정복할 가나안은 내 안의 나를 정복하는 겁니다. 자기가 정복하는 만큼 되는 겁니다.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전투의 대상은 나 자신이고 소망은 하나 뿐입니다. 그래서 더 높아졌고 알아서 다 제거해주셨고 온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총리라는 자리에서 거기서 했고 우리는 현재 입장에서 자기 자리에서 거기서 하는 것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다니엘의 충성과 나아만의 충성은 차이가 많은 거 같으나 꼭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 자기 처소에서 보고 그렇게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57장, 158장
본문: 다니엘 6장 1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특정 계층이라든지 특정인들에게나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모두 대속을 받아서 중생을 받아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말씀은 구원의 도리입니다.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왕도 나오고 총리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장군도 나오고 부자도 나오고 가난한 사람도 나옵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신앙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주로보면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 집안입니다. 아주 좋은 엘리트 집안입니다. 학벌이 최고 학벌입니다. 그래서 특수 학교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 바로 고위직에 임명이 되고 하나님의 신비한 그런 이상을 보면서 밝은 심령으로 이상 보면서 총리까지 올라가고 나중에는 총총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 전에 모르드개는 집안은 모르겠는데 총리까지 올라갑니다. 에스더는 인물이 굉장히 예뻤습니다. 그 나라 가장 미인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왕후가 되었습니다. 느혜미야도 이스라엘의 포로된 망한 이스라엘의 총독이었고 그 전에는 바벨론 나라에서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거구가 되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다니엘이라든지 느혜미야라든지 모르드개나 에스더 같은 사람들, 원래부터 좋은 집안 좋은 인품 인물 학벌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 기록해서 그들의 신앙 행적을 기록해놨습니다. 그것만 보면 아주 잘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었겠다. 그들의 세계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하고 있는 겁니다. 다니엘의 신앙과 우리의 생활. 다니엘이 그렇게 살았는데 그 환경과 우리의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니까 요셉도 총리였으니까. 성경은 누구를 통해 기록하셨든지 어떤 사람이 성경에서 기록되었든지 우리가 볼 것은 외부적인 보건, 집안이나 학벌 외모나 경제나 배경이나 권세나 이런 걸 볼 것이 아니고 참고만 할 것이고 최고의 사람을 기록할 것은 지향한 바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메이지 않고 높은 학벌 좋은 배경에 메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전부로 삼았던 신앙세계를 가르쳐주는 것이고. 나아만의 여좀 같은 경우는 말단입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올라가겠고, 둘이 비교하면 다릅니다. 서민 중의 서민이고 계집 종이었고 잘생겼으면 그리 안했겠지요 에스더도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후된 사람입니다. 또 배울 만큼 배웠을 거니까. 그런데 나아만의 여종은 이름도 고만할 거고 여종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에 여러 계층의 여러 사람을 통해서 기록해주신 것은 그들의 생애도 생애지만 성경이란 계층을 주신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거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그 사람을 귀족 떼어내 버리고 왕, 총리 떼어내 버리고 그런 환경을 우리에게 연결 시켜서 자기 현실로 그들의 그 현실 속에 살았던 그런 것을 자기 현실에 도리 구원으로 삼는 게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총리인데 왕이있고 총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총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치가 있습니다. 학생, 사무직, 현장직, 좀 높은 사람, 낮은 사람도 있고 여러 층들이 다 있는데 어떤 자기가 처한 위치 입장에 상관없이 다니엘에게 있었던 그 구원의 도리,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왕을 섬긴 다니엘이 세 단계로 해놨지요. 본문에 있는 것을 구분해 본 것입니다. 다니엘은 총리라는 그 자리에서 왕을 섬기면서 다니엘을 헤어리는 정적들이 눈을 뜨고 틈만 노리는 상황에서 다니엘에게 밑에 신하가 많았을 것이고 다니엘은 그런 말하자면은 왕족과 귀족이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갔고 그러기 때문에 더 어려웠고 더 조심을 했고 더 자기 자신을 단속을 했고 고차원적으로 섬긴 것이 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살았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그 사실을 다니엘이 말한 게 아니고 다리오왕이 보고 말한겁니다. 다니엘 입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지 않았고 다니엘의 행동과 역사를 보고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인격 대 신격으로 역사를 다리오왕이 봤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하나님은 눈치를 보고, 그 분을 의식을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겁이 나서 죄를 못 짓고 하나님이 보실 때 꾸중하고 싶어서 게으름하지 못하고 진실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심판하실 것이니까 심판하고 모든 생활을 하는 것을 왕이 봤다는 겁니다. 일반 말단의 공무원이 자기를 일하는 거하고 일의 차원이 다릅니다. 구청장즈음 되면 더 어렵습니다. 구청장이 되면 놀고 먹는 거 같은데 놀고 먹으면 엉망이 되고 감옥가는 것이지요. 보는 사람 많고 살피는 사람 많고 따지는 사람 많고. 구청장되면 천 가지가 되고 총리가 되면 만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올라가니까 더 다니엘은 두려워하고 살아계신 것을 봤다고 하지요. 우리는 각자 자기 처한 입장에서 현재 자기 위치에서 거기서 다니엘의 신앙을 적용시키는 걸 봤다고 합니다. 자녀라면 왕은 다니엘을 섬겼듯이 학생이면 선생님 그리 섬기면 되는 것이고 우리 주변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 오늘 새벽에 있을 때 그 대상이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이었고 왕을 섬겼으나 진짜는 왕을 섬김으로 그랬고 다니엘의 전투의 대상은 전투에 없고 예루살렘이었고 그리고 다니엘 눈에 바벨론의 출세 권력 자기를 노리를 정적들은 안 보이는 겁니다. 아예 상대가 안되는 겁니다.
다니엘은 상관을 안하는 겁니다. 그 총리라는 자리에 관심이 없으니까 세상을 연연하지 않으니까 앉혀놓으니까 앉아있는 것이고 총리자리의 욕심은 털끝만큼도 없으니까 그런데 정적들은 그게 전부니까 올라가려고 하는데, 적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싸움의 대상이 안되는 거지요. 전도 대상이고 양떼 관계고 양을 먹이는 목자와 양과 싸운다. 말이 안되지요. 목자는 양을 먹이고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싸운다. 관계가 잘못된 것이지요. 부모 자녀는 싸움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목회자와 교인이 싸운다 누가 이깁니까. 싸우는 게 아닙니다. 대상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인식이 그랬습니다. 그 정적들은 다니엘을 저것들 같은 줄 알고 끄집어내려고 했었는데 관심이 세상 말로 1도 없는 겁니다.
한국 사람이 지금은 떳떳히 밝힐겁니다. 옛날에는 밝히기 어려워서 자기의 나라를 드러내지 못하는가 집안을 숨기는가 자기 부모가 가난해서 채소장사하고 있으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말하기 좀 그런 그게 잘못된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모님이 채소장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된거지요.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고 이게 뭐가 잘못되냐 그 말이지요.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그 중에서도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총공회 간판을 부끄러워하고 교인들이 총공회라는 간판 때문에 들어와다가 나와버립니다. 찬송가 다르니 가버립니다. 고신이 부산의 본부다. 그 본부에서 서부 교회도 총공회 간판 걸고 그러면 서부 교회는 큰데 왜 안되냐. 간판이 문제가 아니고 찬송가라는 문제가 아니고 목회자 자기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다니엘의 신앙입니다. 이게 배경된 상태에서 사니까 하나님은 죄가 없었습니다. 명백함이오며, 학생은 그 자리에서 죄를 안 지으면 되는 겁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다니엘같은 것 요구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1학년이나 다니엘의 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의 자리를 받았는데 왜 나는 안되지 그러면 평생 불편한겁니다. 새끼발가락으로 귀하기 쓰이는 겁니다. 초등학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다하고 죄를 안 지으면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리고 맡겨놓으면 그러면 다니엘이 되는 겁니다. 모두가 다 총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다니엘이 가졌던 그 신앙이 가지면 되는 겁니다. 몇 가지라고, 첫째 세가지인데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그렇게 섬겼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가. 다리오 왕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참 사시는 하나님의 종이구나 그렇게 믿어보셨습니까. 저도 그리 못해 죄송하지만 원리가 그렇습니다. 왕이 보니가 모든 생활 전부가 하나님의 중심입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둘이 되어있으니까 어떤 세상 것에도 떳떳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것으로 믿으면 이 세상에서 도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히브리서 11장에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합니다. 재물을 빼앗아가도 가족을 빼앗아가도 다 빼앗아가도 할 거 없으니까 그러니까 세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건드리지를 못합니다. 소망적으로 거기를 바라보면서 사는 겁니다.
다리오가 본 세 가지가 있을 때, 두 번째는 죄를 안 지었습니다. 속한 그 단체에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가정이면 가정 학교면 학교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전부는 자기가 손해보면 손해보지 모든 건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머지 알아서 하셨습니다. 내가 올라가려 하는 것은 내 실력 이상만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내가 한 수십배 수백배보다 올라갑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벌은 돈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차원이 다릅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라고요, 전투의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속에 자기 자신 이스라엘이 정복할 가나안은 내 안의 나를 정복하는 겁니다. 자기가 정복하는 만큼 되는 겁니다.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전투의 대상은 나 자신이고 소망은 하나 뿐입니다. 그래서 더 높아졌고 알아서 다 제거해주셨고 온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총리라는 자리에서 거기서 했고 우리는 현재 입장에서 자기 자리에서 거기서 하는 것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다니엘의 충성과 나아만의 충성은 차이가 많은 거 같으나 꼭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 자기 처소에서 보고 그렇게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