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11-17조회 111추천 10
2024년 11월 17일 주일 오전
찬송: 10장, 12장
본문: 다니엘 6장 19절 ~ 2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도 다니엘을 공부했습니다. 다니엘의 뜻을 정하여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뜻을 쟁취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선한 뜻을 따라서 정한 그 뜻을 말로하지 아니하고 뜻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진심을 보시고 환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다니엘의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성취하게 하신겁니다. 뜻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하고 노력은 사람이 하는데 사람이 하는 건 뭐든지 한계가 있는 겁니다. 교통사고는 언제 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을 해야합니다. 불조심도 늘 조심을 하는 겁니다. 생명과 집결하는 안전 강제는 아무리 과해도 좋지 않습니다. 아주 안전불감증이 많았습니다. 불조심이라든지 교통 관련해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겁니다. 아무리 사람이 조심을해도 조심하는 게 아닌 겁니다. 군에 가는 청년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한 순간에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의 조심은 한계가 있는 겁니다. 사람은 완전자가 아닙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해야할 노력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겁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이 하는 건 한계가 있느니까 도와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그런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뜻은 다니엘이 정했습니다. 나라가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하나님을 뒤로하고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나라가 절단이 났습니다. 다니엘은 완전히 망한 때가 아닙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쫓겨나고 아들이 왕이 되고 히스기야가 왕이 됐기 때문에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나 많은 포로가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은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면 3 4대까지 망한다는게 성경인데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지는 그랬을지라도 내가 끊어버리겠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같은 상황을 만나도 이어집니다. 술을 먹고 어머니를 두드려패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아들들이 두 종류로 나뉜답니다. 하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같이 된답니다. 복있는 집안은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 고생을 보고 느끼고 우리 아버지가 저랬는데 죽어도 그러지 않겠다. 나는 가정을 챙기겠다. 그때부터 가정이 복되게 되는 겁니다. 어느 게 더 나은 것인가요. 생각해보면 나는 겁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된 생각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덜 주시면 안되는 것이고 바른 길 가면 좋은데 집안이 망할 이유가 뭐가 좋겠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되 잘못 섬겨서 잡혀갔는데 잡혀간 그곳에서 왕족과 귀족 집인이라서 특수 교육을 받도록 뽑혔습니다. 고위직에서 일하도록 했는데, 어렵게 하는 것인데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먹여서 건강 상하지 않도록 챙겼습니다. 감사할 일이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다니요 보통 문제가 아닌 겁니다. 다니엘은 그걸 보고 나의 건강과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 맡기겠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렇게 하다 다 망했으니 나는 거라지 않겠다. 그렇게 부탁을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다니엘의 마음을 궤뚫어본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상대의 눈을 보고 얼굴 표정을 보고 짐작을 합니다. 말씀이나 생각이 나오고 그럽니다. 하나님은 다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니까 온전한 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두 번 다시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뜻을 정하고 관련된 감독을 감동하게 해서 채소와 물 먹는 다니엘과 친구가 건강이 더 좋도록 만들어버리니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3년을 공부하고 10배가 되는 지능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불교도 신앙이 있고 종교마다 신앙이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위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감하고 그 분을 닮아가는 게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말씀은 어렵지 않은데 실감이 어렵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봅니다.
이튿날에 다니엘을 사자 굴 속에 집어넣은 그 다음 날입니다. 다니엘은 최소 네 왕을 섬깁니다. 그리고 두 왕조 이상을 섬깁니다. 네 왕을 섬기고 두 왕조를 섬긴다는 말은 아주 권력에서 아부를 잘하거나 실력이 탁월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니엘은 아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 심오한 그 신비한 것 속에 그런 지혜 모든 왕들이 탐을 다 내는 거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직장이 없다. 뭐가 없다. 전부 핑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참 비겁한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 자기를 보배로 만들면 탐내는 사람 꽉 찼습니다. 그런데 쓸만한 사람이 없는 겁니다. 쓸만한 사람이 되면은 돈 많이 주고 하나님 바로 섬겨 10배나 뛰어난 지능이 되니까 해주는 겁니다.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백 목사님은 서부교회 때 4000명이 되었습니다. 일이 생기면 탄식을 하실 때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4000명인데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만큼 사람은 되기 어렵습니다. 네 왕을 이상 섬긴 다니엘입니다. 이때는 첫 번째 특수하게 공부하고 지능이 다른 모든 박사들 보다 선생보다 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게 또 못난 왕입니다. 그 때 나라가 망해버립니다. 왕조가 바뀌어버립니다. 이때 왕이 신하들하고 금은 그릇을 가지고 먹고 마시면서 우상 신들은 찬양하고 먹고 마시는 잔치 판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니까 벌벌 떱니다. 저걸 해석하면 누구든지 선물을 주고 3번째 높은 자리에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글자를 아무도 모르는데 다니엘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3번째 자리 주겠다 하니까 해석을 하는데 이 뜻은 임금님이 왕의 자격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나라의 왕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질이 안돼서 쫓겨나고 나라가 갈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 그 다음에 다리오 왕이 됩니다. 다리오가 왕이 돼고 다리오가 마음의 뜻대로 방백 120명을 세웁니다. 높은 사람 120명 세워놓고 그 위에 총리 세 사람을 세우고 그 위에 다니엘을 총총리로 세울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총리 나머지 두 사람과 전부 다 의논하니까 다니엘은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식민지 국가의 사람입니다. 소국의 망한 나라의 포로된 사람인데 그게 우리 나라의 왕 다음에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냐 그래서 온 방백들 총리들 뭉쳐서 다니엘은 쳐내려고 합니다. 연구를 하고 살펴봐도 국정원, 그런 걸 가지고 다니엘의 모든 것을 다 했는데 흠이 없는 겁니다. 사람이 그리 살 수 없는데 자기가 그렇게 노력하니까 되는 거지요. 우리 신앙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은 우리 목적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겁니다. 아무리 살펴도 흠이 없으니까 다니엘은 하나님 섬기는 율법하고 왕의 법하고 충돌시켜서 왕의 법을 지킬래 하나님의 법을 지킬래 그래서 그렇게 안 하면 죽는다. 그래서 아부합니다. 임금님은 천하의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런데 왕의 은혜로 다 사는 건데 우리나라 백성이 임금 외에 다른 신이나 남에게 누구에게 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한 달 동안만이라도 다른 왕이나 신에게 기도하든지 권하면 사자굴에 던집시다 라고 합니다.
그거 참 그렇듯하다. 옆에 누군가가 그렇게 찔러가지고 기독교도 통폐합시키고 하면서 한 일중에 하나가 국민들을 마음을 모아야합니다 해서 뭔지 기억하시나요. 국조가 단군이니까 섬길 수 있도록 합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교회들이 결사 반대를 했습니다. 신하들이 말하니 단합시키는 일로 괜찮겠다. 신하들의 그 꽤를 똑똑한 왕인데 하나님께서 어렵게 만들었겠지요. 임금님 도장 옥쇄롤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제는 됐다 그리고 선포했습니다. 한 달 동안 왕 외의 다른 것에게 기도하거나 권하면 던지겠다. 다니엘은 원수 나라에 포로로 잡혀 온 상태입니다. 자기 고국 예루살렘을 위해 열린 창에서 우리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우리 동포들 돌아가게 해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다. 그 사실을 다 압니다. 왕이 다니엘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는지 아닙니다. 다니엘이 여전히 하니까 이렇게 도장 찍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그때 왕이 충격을 받았겠죠. 다니엘 잡으려고 속였구나 그러겠지요. 그렇게 고민이 되어서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사정을 합니다. 내가 잘 몰랐는데 속았는데 이렇게 지나고 나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한 달만 참아라. 그런데 꼼짝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그러면 할 수 없이 16절 보실까요 이에 왕이 14절에 보면은 왕이 이 말을 듣고 다니엘이 구원하려고 건져내려고 해가 질 때 까지 이릅니다. 이때 왕은 신입니다. 백성들에게 그 지존이 신하 하나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그게 아까웠으면 다니엘이 말하니까 16절 할 수 없이 왕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너의 하나님이 구원하시리라. 사자굴에 집어넣고 굴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는 슬프고 괴로워서 다 폐하고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이 부분만 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그런 게 있습니다. 이튿날 왕이 새벽에 일어나서 사자굴에 가서 슬피 소리지릅니다. 다니엘이 왕이 왜 이렇게 소리 질러겠습니까. 혹시라도, 혹시 왕은 이 다리오왕은 하나님 안 섬기지만 하나님은 노래를 부르고 다 너무 아까우니까 온 나라에 이런 보배가 없는데 노래르 부르며 섬기니까 건졌을까 하고 했습니다.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굴에 슬피 소리질러 가로되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길 능하셨느냐. 실제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다니엘은 섬겼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생각하고 믿고 섬기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봐야합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믿으니까 앉아있겠지요. 그런데 오늘까지 믿어오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실존의 하나님. 인격의 희로애락의 역사가 있는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느냐.
다리오왕이 다니엘의 신앙생활 보니까 정말 살아계신 분으로 왕보다 더 두려워하고 떨고 섬기는 것입니다. 다리오왕 이방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독백처럼 그렇게 소리 질렀겠지요. 그런데 21절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합니다. 왕이여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셨사오니. 상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그럽니다. 다니엘이 밤새도록 사자들 사이에서 잘 잤을 거다. 그럽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반대하고 한 겨울입니다. 실컷 두드려 맞고 찬 물 부어서 젖은 상태로 감옥에 누워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잠이 드니까 온 몸에 땀이 흠뻑났다고 합니다. 그걸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고 입을 봉했느냐 나는 명백합니다.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죄가 없습니다. 죄 없는 백성을 하나님이 해할 리 없습니다.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왕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끌어 올리니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4장입니까. 3장입니다.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이 나옵니다. 이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이 굉장히 똑똑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내가 세웠다고 했다가 7년 동안 짐승이 되는데 절 안하면 뜨거운 속에 넣겠다고 공포합니다. 그때 세사람이 절하지 않다가 들어가는데 타죽는데 세 청년이 들어갔다 나왔는데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3장 27절 불이 너의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쇠를 녹이는 불에 집어넣었는데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왕이 보고는 온 나라에 공포를 합니다. 누구든지 사시는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면 영원무궁히 변치 않을 분이라 해서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독도는 어느나라 땅입니까. 독도는 우리나라땅이라고 다 알고있는데 계속 노래를 부르면 문제를 만드는 겁니다. 나라에 굉장히 해가 되는 겁니다. 이미 우리 거면 덮어놓으면 되는 겁니다. 딱지는 가만히 지나면 낫는겁니다. 그런데 또 떼어내고 떼어내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강조하면 하나님이 없는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종교가 다 무너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영이 죽어있어서 찾지 못해도 비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못 찾는 대신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지금 시대가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가 서울이지요. 가장 부자들 사는 구가 강남구지요. 그 강남구 아파트 뭐가 끓는지 아십니까. 쥐들이 돌아다닙니다. 인공지능 최첨단 시대 가장 비싼 강남구 아파트에 쥐가 드글드글하답니다. 고양이들은 배가 불러서 쥐를 안 잡습니다. 돌고 도는 겁니다. 기묘한 겁니다. 어제 신문에 조선일보에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과학이 인간의 물질이 해결하지 못한게 많이 생기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전돼도 전부 가는 줄 아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 점쟁이 미신들이 활개를 치고 이종교가 먹고 살고 가짜 기독교가 판을 치고 있는 겁니다.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기독교 신앙도 그리 되어가는 신앙입니다. 실제 신앙이라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앙인데 사사 마지막 시대 엘리 제사장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눈이 어두우니까 하나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안 보이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시대에 다니엘이 섬긴 하나님의 섬긴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 돌아보고 찾아보는 겁니다.
이종교는 어떤 그 종교도 근본이 사람입니다. 이 세상이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 선 안에 있고 이 세상 수준 아래에 있지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리 섬겨도 반응이 없는 겁니다. 없는 상대를 무인격의 존재를 상대하니까 반응이 있을 수 없는 거지요. 이번에도 그런 종교가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동물은 식물보다 더 예민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랑을 알고 잘해주니까 삐끼기도 하고 애완동물 강아지 고양이를 기르는 겁니다. 인격의 관계입니다. 그보다 귀한게 아이를 낳아 본 것과 안 낳아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를 수 많은 작용이 됩니다. 한 걸음 올라가는 게 인격의 관계입니다. 신격입니다. 인격을 만드신 그 신격인 하나님을 인간을 만드시고 상대하고 섬기고 닮아가는 것을 가르켜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토막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금쪼가리 섬기는 게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에 이런 신앙이 되어있는지 돌아봐야합니다. 나무토막 쇠덩어리 조각품 그런 것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신격을 섬기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걸 알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억해야겠습니다.
잠깐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장, 12장
본문: 다니엘 6장 19절 ~ 2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도 다니엘을 공부했습니다. 다니엘의 뜻을 정하여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뜻을 쟁취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선한 뜻을 따라서 정한 그 뜻을 말로하지 아니하고 뜻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진심을 보시고 환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다니엘의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성취하게 하신겁니다. 뜻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하고 노력은 사람이 하는데 사람이 하는 건 뭐든지 한계가 있는 겁니다. 교통사고는 언제 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을 해야합니다. 불조심도 늘 조심을 하는 겁니다. 생명과 집결하는 안전 강제는 아무리 과해도 좋지 않습니다. 아주 안전불감증이 많았습니다. 불조심이라든지 교통 관련해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겁니다. 아무리 사람이 조심을해도 조심하는 게 아닌 겁니다. 군에 가는 청년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한 순간에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의 조심은 한계가 있는 겁니다. 사람은 완전자가 아닙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해야할 노력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겁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이 하는 건 한계가 있느니까 도와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그런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뜻은 다니엘이 정했습니다. 나라가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하나님을 뒤로하고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나라가 절단이 났습니다. 다니엘은 완전히 망한 때가 아닙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쫓겨나고 아들이 왕이 되고 히스기야가 왕이 됐기 때문에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나 많은 포로가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은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면 3 4대까지 망한다는게 성경인데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지는 그랬을지라도 내가 끊어버리겠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같은 상황을 만나도 이어집니다. 술을 먹고 어머니를 두드려패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아들들이 두 종류로 나뉜답니다. 하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같이 된답니다. 복있는 집안은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 고생을 보고 느끼고 우리 아버지가 저랬는데 죽어도 그러지 않겠다. 나는 가정을 챙기겠다. 그때부터 가정이 복되게 되는 겁니다. 어느 게 더 나은 것인가요. 생각해보면 나는 겁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된 생각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덜 주시면 안되는 것이고 바른 길 가면 좋은데 집안이 망할 이유가 뭐가 좋겠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되 잘못 섬겨서 잡혀갔는데 잡혀간 그곳에서 왕족과 귀족 집인이라서 특수 교육을 받도록 뽑혔습니다. 고위직에서 일하도록 했는데, 어렵게 하는 것인데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먹여서 건강 상하지 않도록 챙겼습니다. 감사할 일이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다니요 보통 문제가 아닌 겁니다. 다니엘은 그걸 보고 나의 건강과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 맡기겠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렇게 하다 다 망했으니 나는 거라지 않겠다. 그렇게 부탁을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다니엘의 마음을 궤뚫어본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상대의 눈을 보고 얼굴 표정을 보고 짐작을 합니다. 말씀이나 생각이 나오고 그럽니다. 하나님은 다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니까 온전한 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두 번 다시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뜻을 정하고 관련된 감독을 감동하게 해서 채소와 물 먹는 다니엘과 친구가 건강이 더 좋도록 만들어버리니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3년을 공부하고 10배가 되는 지능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불교도 신앙이 있고 종교마다 신앙이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위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감하고 그 분을 닮아가는 게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말씀은 어렵지 않은데 실감이 어렵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봅니다.
이튿날에 다니엘을 사자 굴 속에 집어넣은 그 다음 날입니다. 다니엘은 최소 네 왕을 섬깁니다. 그리고 두 왕조 이상을 섬깁니다. 네 왕을 섬기고 두 왕조를 섬긴다는 말은 아주 권력에서 아부를 잘하거나 실력이 탁월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니엘은 아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 심오한 그 신비한 것 속에 그런 지혜 모든 왕들이 탐을 다 내는 거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직장이 없다. 뭐가 없다. 전부 핑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참 비겁한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 자기를 보배로 만들면 탐내는 사람 꽉 찼습니다. 그런데 쓸만한 사람이 없는 겁니다. 쓸만한 사람이 되면은 돈 많이 주고 하나님 바로 섬겨 10배나 뛰어난 지능이 되니까 해주는 겁니다.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백 목사님은 서부교회 때 4000명이 되었습니다. 일이 생기면 탄식을 하실 때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4000명인데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만큼 사람은 되기 어렵습니다. 네 왕을 이상 섬긴 다니엘입니다. 이때는 첫 번째 특수하게 공부하고 지능이 다른 모든 박사들 보다 선생보다 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게 또 못난 왕입니다. 그 때 나라가 망해버립니다. 왕조가 바뀌어버립니다. 이때 왕이 신하들하고 금은 그릇을 가지고 먹고 마시면서 우상 신들은 찬양하고 먹고 마시는 잔치 판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니까 벌벌 떱니다. 저걸 해석하면 누구든지 선물을 주고 3번째 높은 자리에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글자를 아무도 모르는데 다니엘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3번째 자리 주겠다 하니까 해석을 하는데 이 뜻은 임금님이 왕의 자격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나라의 왕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질이 안돼서 쫓겨나고 나라가 갈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 그 다음에 다리오 왕이 됩니다. 다리오가 왕이 돼고 다리오가 마음의 뜻대로 방백 120명을 세웁니다. 높은 사람 120명 세워놓고 그 위에 총리 세 사람을 세우고 그 위에 다니엘을 총총리로 세울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총리 나머지 두 사람과 전부 다 의논하니까 다니엘은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식민지 국가의 사람입니다. 소국의 망한 나라의 포로된 사람인데 그게 우리 나라의 왕 다음에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냐 그래서 온 방백들 총리들 뭉쳐서 다니엘은 쳐내려고 합니다. 연구를 하고 살펴봐도 국정원, 그런 걸 가지고 다니엘의 모든 것을 다 했는데 흠이 없는 겁니다. 사람이 그리 살 수 없는데 자기가 그렇게 노력하니까 되는 거지요. 우리 신앙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은 우리 목적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겁니다. 아무리 살펴도 흠이 없으니까 다니엘은 하나님 섬기는 율법하고 왕의 법하고 충돌시켜서 왕의 법을 지킬래 하나님의 법을 지킬래 그래서 그렇게 안 하면 죽는다. 그래서 아부합니다. 임금님은 천하의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런데 왕의 은혜로 다 사는 건데 우리나라 백성이 임금 외에 다른 신이나 남에게 누구에게 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한 달 동안만이라도 다른 왕이나 신에게 기도하든지 권하면 사자굴에 던집시다 라고 합니다.
그거 참 그렇듯하다. 옆에 누군가가 그렇게 찔러가지고 기독교도 통폐합시키고 하면서 한 일중에 하나가 국민들을 마음을 모아야합니다 해서 뭔지 기억하시나요. 국조가 단군이니까 섬길 수 있도록 합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교회들이 결사 반대를 했습니다. 신하들이 말하니 단합시키는 일로 괜찮겠다. 신하들의 그 꽤를 똑똑한 왕인데 하나님께서 어렵게 만들었겠지요. 임금님 도장 옥쇄롤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제는 됐다 그리고 선포했습니다. 한 달 동안 왕 외의 다른 것에게 기도하거나 권하면 던지겠다. 다니엘은 원수 나라에 포로로 잡혀 온 상태입니다. 자기 고국 예루살렘을 위해 열린 창에서 우리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우리 동포들 돌아가게 해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다. 그 사실을 다 압니다. 왕이 다니엘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는지 아닙니다. 다니엘이 여전히 하니까 이렇게 도장 찍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그때 왕이 충격을 받았겠죠. 다니엘 잡으려고 속였구나 그러겠지요. 그렇게 고민이 되어서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사정을 합니다. 내가 잘 몰랐는데 속았는데 이렇게 지나고 나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한 달만 참아라. 그런데 꼼짝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그러면 할 수 없이 16절 보실까요 이에 왕이 14절에 보면은 왕이 이 말을 듣고 다니엘이 구원하려고 건져내려고 해가 질 때 까지 이릅니다. 이때 왕은 신입니다. 백성들에게 그 지존이 신하 하나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그게 아까웠으면 다니엘이 말하니까 16절 할 수 없이 왕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너의 하나님이 구원하시리라. 사자굴에 집어넣고 굴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는 슬프고 괴로워서 다 폐하고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이 부분만 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그런 게 있습니다. 이튿날 왕이 새벽에 일어나서 사자굴에 가서 슬피 소리지릅니다. 다니엘이 왕이 왜 이렇게 소리 질러겠습니까. 혹시라도, 혹시 왕은 이 다리오왕은 하나님 안 섬기지만 하나님은 노래를 부르고 다 너무 아까우니까 온 나라에 이런 보배가 없는데 노래르 부르며 섬기니까 건졌을까 하고 했습니다.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굴에 슬피 소리질러 가로되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길 능하셨느냐. 실제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다니엘은 섬겼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생각하고 믿고 섬기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봐야합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믿으니까 앉아있겠지요. 그런데 오늘까지 믿어오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실존의 하나님. 인격의 희로애락의 역사가 있는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느냐.
다리오왕이 다니엘의 신앙생활 보니까 정말 살아계신 분으로 왕보다 더 두려워하고 떨고 섬기는 것입니다. 다리오왕 이방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독백처럼 그렇게 소리 질렀겠지요. 그런데 21절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합니다. 왕이여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셨사오니. 상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그럽니다. 다니엘이 밤새도록 사자들 사이에서 잘 잤을 거다. 그럽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반대하고 한 겨울입니다. 실컷 두드려 맞고 찬 물 부어서 젖은 상태로 감옥에 누워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잠이 드니까 온 몸에 땀이 흠뻑났다고 합니다. 그걸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고 입을 봉했느냐 나는 명백합니다.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죄가 없습니다. 죄 없는 백성을 하나님이 해할 리 없습니다.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왕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끌어 올리니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4장입니까. 3장입니다.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이 나옵니다. 이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이 굉장히 똑똑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내가 세웠다고 했다가 7년 동안 짐승이 되는데 절 안하면 뜨거운 속에 넣겠다고 공포합니다. 그때 세사람이 절하지 않다가 들어가는데 타죽는데 세 청년이 들어갔다 나왔는데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3장 27절 불이 너의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쇠를 녹이는 불에 집어넣었는데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왕이 보고는 온 나라에 공포를 합니다. 누구든지 사시는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면 영원무궁히 변치 않을 분이라 해서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독도는 어느나라 땅입니까. 독도는 우리나라땅이라고 다 알고있는데 계속 노래를 부르면 문제를 만드는 겁니다. 나라에 굉장히 해가 되는 겁니다. 이미 우리 거면 덮어놓으면 되는 겁니다. 딱지는 가만히 지나면 낫는겁니다. 그런데 또 떼어내고 떼어내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강조하면 하나님이 없는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종교가 다 무너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영이 죽어있어서 찾지 못해도 비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못 찾는 대신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지금 시대가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가 서울이지요. 가장 부자들 사는 구가 강남구지요. 그 강남구 아파트 뭐가 끓는지 아십니까. 쥐들이 돌아다닙니다. 인공지능 최첨단 시대 가장 비싼 강남구 아파트에 쥐가 드글드글하답니다. 고양이들은 배가 불러서 쥐를 안 잡습니다. 돌고 도는 겁니다. 기묘한 겁니다. 어제 신문에 조선일보에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과학이 인간의 물질이 해결하지 못한게 많이 생기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전돼도 전부 가는 줄 아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 점쟁이 미신들이 활개를 치고 이종교가 먹고 살고 가짜 기독교가 판을 치고 있는 겁니다.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기독교 신앙도 그리 되어가는 신앙입니다. 실제 신앙이라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앙인데 사사 마지막 시대 엘리 제사장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고 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눈이 어두우니까 하나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안 보이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시대에 다니엘이 섬긴 하나님의 섬긴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 돌아보고 찾아보는 겁니다.
이종교는 어떤 그 종교도 근본이 사람입니다. 이 세상이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 선 안에 있고 이 세상 수준 아래에 있지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리 섬겨도 반응이 없는 겁니다. 없는 상대를 무인격의 존재를 상대하니까 반응이 있을 수 없는 거지요. 이번에도 그런 종교가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동물은 식물보다 더 예민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랑을 알고 잘해주니까 삐끼기도 하고 애완동물 강아지 고양이를 기르는 겁니다. 인격의 관계입니다. 그보다 귀한게 아이를 낳아 본 것과 안 낳아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를 수 많은 작용이 됩니다. 한 걸음 올라가는 게 인격의 관계입니다. 신격입니다. 인격을 만드신 그 신격인 하나님을 인간을 만드시고 상대하고 섬기고 닮아가는 것을 가르켜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토막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금쪼가리 섬기는 게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에 이런 신앙이 되어있는지 돌아봐야합니다. 나무토막 쇠덩어리 조각품 그런 것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신격을 섬기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걸 알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억해야겠습니다.
잠깐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