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1-24조회 79추천 10
2024년 11월 24일 주일 오후
찬송: 12장, 136장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오전 말씀이 원래 이 말씀의 동기입니다. 오전 말씀은 본문에서 외부적인 교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깊은 구원의 도리보다 그릇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봤고 오전에 말씀드렸고 준비 과정이 그렇습니다. 오전에 큰 집에는 일반적으로 궁궐, 대궐, 성전이 큰 집입니다. 땅도 넓고 집고 크고 왕들이 사는 집 부자들이 사는 집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그릇들이 많습니다. 그릇은 몇 가지 살펴보면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 동그릇 이렇게 재료적으로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크기가 있습니다. 크기도 있고 모양도 있고 용도도 있고 다릅니다. 집이 클수록 사람이 많을수록 필요가 많은 수록 다양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이 세상에는 그릇들이 많고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진짜 하나님의 집을 뭐라고 했습니까. 그 세상 안에 있는 진짜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도 집입니다. 교회도 크기 때문에 그릇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질로 된 그릇을 통해서 그런 걸 가지고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 놋으로 만든 그릇 흙으로 만든 그릇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그릇, 사람을 가르치는 그 그릇은 재료가 전부 다 하나입니다. 무슨 그릇입니까. 사람은 전부 다 무슨 그릇인가요. 질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 흙으로 만든 그릇인데 마치 요즘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그런 말이 있는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겠지요.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재료는 일단 사람이라는 그릇의 재료는 흙으로 다 동일합니다. 그 그릇의 크기, 용도에 따라 달라지겠죠. 물질의 그릇은 재료에 따라 달라지겠고 사람의 그릇이라는 것은 쓰임받는 것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겠습니다. 이 그릇이 각각 다 재료는 흙으로 동일하나 모양은 다 다른겁니다. 그걸 달리하신 분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만드신 겁니다. 집주인이 그릇을 만들 때 화병도 있고 국그릇도 있고 배설물을 담는 요강단지가 중요합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요강단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천하게 여기는 것은 귀할 때가 있습니다. 사슴의 가장 아름다움은 어디있습니까. 뿔이지요. 사슴은 늘 사슴인데 뿔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다리는 빼빼말라서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뿔은 자랑스럽게 자랑하고 다리는 천시했지요. 그 사슴이 어느 날 늑대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밥이 안 될려면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가 나무 숲에서 뿌리가 걸려버렸습니다. 맹수의 밥이 되니까 내가 자랑하던 뿔 때문에 죽었구나.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지헤를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압살롬은 잘났습니다. 머리털이 너무 좋아서 일 년에 한 번씩 잘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전쟁하다가 머리털이 걸려서 죽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던 그런 사람 때문에 개인도 과정도 나라도 큰 화를 면하고 유익을 보는 경우가 있고 화를 당하는 수도 많습니다. 성이 함락되려고 하는데 그곳에 가난한데 지혜로운 여인이 구원해냅니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이 그렇고 세상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외부로 드러나는 그런 것.
나이가 좀 들면 육체를 많이 못 움직이고 잠을 잘 못 자는데 그럴 때 단잠 자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백목사님 사촌동생이 유력한 분입니다. 경찰서 서장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수술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게 속에 있는 게 나와야하고 소변이 나와야합니다. 그런데 대수술했는데 소변이 안 나오니까 기도를 합니다. 퇴원할 때까지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는 그릇들이 있고 그릇의 재료는 흙으로 다 동일한데 쓰심에 따라서 크기 모양 다 다르게 했고 담는 그 그릇은 하나님께 정해놓으셨는데 키울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 그릇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어느 말씀이든지 그 사람이 들어야할 말씀을 하면 그 사람은 졸고 있습니다. 그릇. 사람의 그릇. 신앙의 그릇. 그릇을 말씀드립니다. 그릇은 크면은 많이 남기고 작으면 적게 남깁니다. 그릇이 크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인데 그 그릇은 어떤 그릇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 각기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꾀쟁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정직하게 지으셨는데 많은 꾀를 내는 대표가 야곱입니다. 130년을 꾀쟁으로 삽니다. 토끼는 뼈가 많습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그냥 지어냅니까. 춘향이 이야기가 전라도 이야기지요. 그건 전라도에 효녀가 많다는 겁니다. 다 교훈을 담고 있고 자연 계시입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진실했고 충성했는데 야곱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신앙은 좋은데 에서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밖으로 나와버리죠. 제일 외부적인 그릇이 재물의 그릇입니다. 재물을 주실 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겁니다. 그럴 때 조금 받으면 낮춰서 넘칩니다. 인내가 있습니다. 끈기가 있고 절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이 있습니다. 이게 정도가 그릇이 큰 사람은 인내도 있습니다.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도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넓이 높이 길이 다 다른겁니다. 그래서 그릇이 큰 사람들은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이런 것이 속에 있으면서 대외적으로 사람 관계에서는 이해심이 넓습니다. 어지간히 찔러대도 끄떡도 안합니다. 속에 꽉 찬 통들은 소리가 안 납니다. 빈 통은 때리면 소리가 납니다. 빈 깡통이 더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릇이 큰 사람은 오만한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아무리 부어주고 그 제물 때문에 자기의 인격을 팔지 않습니다. 억만금을 해줘도 돈 조금 들어오면 사람을 배반한다던지 신앙을 버린다던지 자기 재물의 그릇입니다. 언제 사람을 알 수 있습니까. 어려울 때보면 사람을 압니다. 가난할 때 병들었을 때 사람 관계 갈등 생겼을 때 그때 바탕이 그런 사람인지 그릇보다 하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이 들어와도 내 인격을 팔지 않겠다. 그 사람은 그 물질은 초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되어있어도 남을 우습게 보거나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아무리 도덕으로 하지만 신앙을 하지 않겠다. 그릇을 키우고 아무리 재물을 많이 담아도 아무리 지능이 탁월해도. 내 속에 진리를 해야 움직이고 주님 대속이라야 움직입니다.
롯은 부자 되기 전에는 좋은데 부자되고나니까 신앙 팔아먹고 다 각각 그런 겁니다. 구원도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심도를 중심으로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건설구원,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나그네가 있고 사마리아인이 그리 지나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보살펴주고 두 데나리온을 줍니다. 두 아들은 주님이 우리에게 남긴 건설구원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가장이 죽고 나니까 빚쟁이가 와서 누가복음 16장에 죄의 빚입니다. 이 빚 때문에 종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종이 되는 거니까 두 아들을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믿는 사람이 주님 대속은 있는데 남은 구원을 마귀가 잡아서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여인이 엘리사에게 하소연합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가시고 난 다음에 남은 게 하나가 있습니다. 성령이 있습니다. 주신 분량의 기름입니다. 기름 한 병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한 병이란 그릇을 빌려라. 밖이라는 것은 현재가 아니고 다가올 미래입니다.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현실에서 그릇을 빌려라. 아직까지 죄 짓지 않은 죄에서 없어지지 않을 살펴라. 최대한 아껴라 그 말이지요. 그래서 여인이 두 아들과 함께 여인이 교회인데 교회의 주격은 영입니다.
영이 심신을 붙들고 마귀에게 종될 심신을 붙들고 그리고 들어갑니다. 집안에 방안에 문을 닫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문을 닫고 골방에 기도의 골방. 드러내지 말고 문을 닫고 모든 그릇의 기름을 부어라. 기름차는대로 올려놓으라. 다른 것을 또 가져놓으라. 또 성령으로 살아라. 그런데 그릇이 없나이다 자기 분량이 끝난겁니다. 그러니 기름이 멈췄습니다. 성령에 순종함으로 해결하고 심신의 기능을 살리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라, 그렇게 전체를 연결시켜서 그러는 겁니다. 일단은 예수님으로 생각해봅니다. 주님이 오셔서 남긴 것이 있는데 우리에게 남은 게 있기 때문에. 아내는 교회입니다. 두 아들은 심신의 요소로 생각하는 겁니다.
남은 심신의 요소로 살펴라 최대한 많이해라 최대한 아껴라 두 아들과 함께 영이 남은 심신의 요소를 붙들고 주님과 함께 드러내지말고 그리고 드러내지말고 성령으로 순종해 살아라. 다른 것들을 가져온다. 그러면 끝나는거지요. 인격도 그렇고 신앙도 주는겁니다. 깨달음도 그런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가 있으니까 큰 겁니다. 전부를 평생의 전부를 부어서 가득채워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지요. 인내가 끝나고 의지가 끝나면 진리 깨달음 성령의 감동 그 정도로 끝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자기 그릇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고행을 시킵니다. 자기 의지 충성 죽도록하는거지요. 그래서 그리하다가 병이 생겨서 문제고 게으른 사람들은 안해서 문제입니다.
늘 부족하고 늘 모자라고 왕이 되니까 교만해지는데 아무리 부어주고 부어줘도 오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충성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그렇게 큰 겁니다. 종류대로 말하면 어떤 것을 봐도 부러운 게 없고 그런 거지요. 그래서 제물이라든지 실력이라든지 직장좋은 사람 보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릇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전부 있는대로 해서 자기를 전부다 해서 마지막에 사도 바울이 나를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켜서 그리 되기 까지 달려가라. 무익한 종으로 하나님 앞에 그렇게 키우는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실 때 안심이 되고 만족이 되는 키우면 됩니다. 좁은 그릇 못난 그릇이 되지 마십시다. 신앙이 흔들리거나 식어지거나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앙이 전부니까 이런 큰 그릇으로 키워나가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장, 136장
본문: 열왕기하 4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오전 말씀이 원래 이 말씀의 동기입니다. 오전 말씀은 본문에서 외부적인 교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깊은 구원의 도리보다 그릇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봤고 오전에 말씀드렸고 준비 과정이 그렇습니다. 오전에 큰 집에는 일반적으로 궁궐, 대궐, 성전이 큰 집입니다. 땅도 넓고 집고 크고 왕들이 사는 집 부자들이 사는 집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그릇들이 많습니다. 그릇은 몇 가지 살펴보면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 동그릇 이렇게 재료적으로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크기가 있습니다. 크기도 있고 모양도 있고 용도도 있고 다릅니다. 집이 클수록 사람이 많을수록 필요가 많은 수록 다양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이 세상에는 그릇들이 많고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진짜 하나님의 집을 뭐라고 했습니까. 그 세상 안에 있는 진짜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도 집입니다. 교회도 크기 때문에 그릇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질로 된 그릇을 통해서 그런 걸 가지고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 놋으로 만든 그릇 흙으로 만든 그릇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그릇, 사람을 가르치는 그 그릇은 재료가 전부 다 하나입니다. 무슨 그릇입니까. 사람은 전부 다 무슨 그릇인가요. 질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 흙으로 만든 그릇인데 마치 요즘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그런 말이 있는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겠지요.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재료는 일단 사람이라는 그릇의 재료는 흙으로 다 동일합니다. 그 그릇의 크기, 용도에 따라 달라지겠죠. 물질의 그릇은 재료에 따라 달라지겠고 사람의 그릇이라는 것은 쓰임받는 것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겠습니다. 이 그릇이 각각 다 재료는 흙으로 동일하나 모양은 다 다른겁니다. 그걸 달리하신 분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만드신 겁니다. 집주인이 그릇을 만들 때 화병도 있고 국그릇도 있고 배설물을 담는 요강단지가 중요합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요강단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천하게 여기는 것은 귀할 때가 있습니다. 사슴의 가장 아름다움은 어디있습니까. 뿔이지요. 사슴은 늘 사슴인데 뿔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다리는 빼빼말라서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뿔은 자랑스럽게 자랑하고 다리는 천시했지요. 그 사슴이 어느 날 늑대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밥이 안 될려면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가 나무 숲에서 뿌리가 걸려버렸습니다. 맹수의 밥이 되니까 내가 자랑하던 뿔 때문에 죽었구나.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지헤를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압살롬은 잘났습니다. 머리털이 너무 좋아서 일 년에 한 번씩 잘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전쟁하다가 머리털이 걸려서 죽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던 그런 사람 때문에 개인도 과정도 나라도 큰 화를 면하고 유익을 보는 경우가 있고 화를 당하는 수도 많습니다. 성이 함락되려고 하는데 그곳에 가난한데 지혜로운 여인이 구원해냅니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이 그렇고 세상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외부로 드러나는 그런 것.
나이가 좀 들면 육체를 많이 못 움직이고 잠을 잘 못 자는데 그럴 때 단잠 자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백목사님 사촌동생이 유력한 분입니다. 경찰서 서장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수술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게 속에 있는 게 나와야하고 소변이 나와야합니다. 그런데 대수술했는데 소변이 안 나오니까 기도를 합니다. 퇴원할 때까지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는 그릇들이 있고 그릇의 재료는 흙으로 다 동일한데 쓰심에 따라서 크기 모양 다 다르게 했고 담는 그 그릇은 하나님께 정해놓으셨는데 키울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 그릇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어느 말씀이든지 그 사람이 들어야할 말씀을 하면 그 사람은 졸고 있습니다. 그릇. 사람의 그릇. 신앙의 그릇. 그릇을 말씀드립니다. 그릇은 크면은 많이 남기고 작으면 적게 남깁니다. 그릇이 크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인데 그 그릇은 어떤 그릇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 각기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꾀쟁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정직하게 지으셨는데 많은 꾀를 내는 대표가 야곱입니다. 130년을 꾀쟁으로 삽니다. 토끼는 뼈가 많습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그냥 지어냅니까. 춘향이 이야기가 전라도 이야기지요. 그건 전라도에 효녀가 많다는 겁니다. 다 교훈을 담고 있고 자연 계시입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진실했고 충성했는데 야곱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신앙은 좋은데 에서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밖으로 나와버리죠. 제일 외부적인 그릇이 재물의 그릇입니다. 재물을 주실 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겁니다. 그럴 때 조금 받으면 낮춰서 넘칩니다. 인내가 있습니다. 끈기가 있고 절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이 있습니다. 이게 정도가 그릇이 큰 사람은 인내도 있습니다.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도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넓이 높이 길이 다 다른겁니다. 그래서 그릇이 큰 사람들은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이런 것이 속에 있으면서 대외적으로 사람 관계에서는 이해심이 넓습니다. 어지간히 찔러대도 끄떡도 안합니다. 속에 꽉 찬 통들은 소리가 안 납니다. 빈 통은 때리면 소리가 납니다. 빈 깡통이 더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릇이 큰 사람은 오만한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아무리 부어주고 그 제물 때문에 자기의 인격을 팔지 않습니다. 억만금을 해줘도 돈 조금 들어오면 사람을 배반한다던지 신앙을 버린다던지 자기 재물의 그릇입니다. 언제 사람을 알 수 있습니까. 어려울 때보면 사람을 압니다. 가난할 때 병들었을 때 사람 관계 갈등 생겼을 때 그때 바탕이 그런 사람인지 그릇보다 하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이 들어와도 내 인격을 팔지 않겠다. 그 사람은 그 물질은 초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되어있어도 남을 우습게 보거나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아무리 도덕으로 하지만 신앙을 하지 않겠다. 그릇을 키우고 아무리 재물을 많이 담아도 아무리 지능이 탁월해도. 내 속에 진리를 해야 움직이고 주님 대속이라야 움직입니다.
롯은 부자 되기 전에는 좋은데 부자되고나니까 신앙 팔아먹고 다 각각 그런 겁니다. 구원도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심도를 중심으로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건설구원,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나그네가 있고 사마리아인이 그리 지나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보살펴주고 두 데나리온을 줍니다. 두 아들은 주님이 우리에게 남긴 건설구원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가장이 죽고 나니까 빚쟁이가 와서 누가복음 16장에 죄의 빚입니다. 이 빚 때문에 종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종이 되는 거니까 두 아들을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믿는 사람이 주님 대속은 있는데 남은 구원을 마귀가 잡아서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여인이 엘리사에게 하소연합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가시고 난 다음에 남은 게 하나가 있습니다. 성령이 있습니다. 주신 분량의 기름입니다. 기름 한 병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한 병이란 그릇을 빌려라. 밖이라는 것은 현재가 아니고 다가올 미래입니다.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현실에서 그릇을 빌려라. 아직까지 죄 짓지 않은 죄에서 없어지지 않을 살펴라. 최대한 아껴라 그 말이지요. 그래서 여인이 두 아들과 함께 여인이 교회인데 교회의 주격은 영입니다.
영이 심신을 붙들고 마귀에게 종될 심신을 붙들고 그리고 들어갑니다. 집안에 방안에 문을 닫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문을 닫고 골방에 기도의 골방. 드러내지 말고 문을 닫고 모든 그릇의 기름을 부어라. 기름차는대로 올려놓으라. 다른 것을 또 가져놓으라. 또 성령으로 살아라. 그런데 그릇이 없나이다 자기 분량이 끝난겁니다. 그러니 기름이 멈췄습니다. 성령에 순종함으로 해결하고 심신의 기능을 살리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라, 그렇게 전체를 연결시켜서 그러는 겁니다. 일단은 예수님으로 생각해봅니다. 주님이 오셔서 남긴 것이 있는데 우리에게 남은 게 있기 때문에. 아내는 교회입니다. 두 아들은 심신의 요소로 생각하는 겁니다.
남은 심신의 요소로 살펴라 최대한 많이해라 최대한 아껴라 두 아들과 함께 영이 남은 심신의 요소를 붙들고 주님과 함께 드러내지말고 그리고 드러내지말고 성령으로 순종해 살아라. 다른 것들을 가져온다. 그러면 끝나는거지요. 인격도 그렇고 신앙도 주는겁니다. 깨달음도 그런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가 있으니까 큰 겁니다. 전부를 평생의 전부를 부어서 가득채워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지요. 인내가 끝나고 의지가 끝나면 진리 깨달음 성령의 감동 그 정도로 끝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자기 그릇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고행을 시킵니다. 자기 의지 충성 죽도록하는거지요. 그래서 그리하다가 병이 생겨서 문제고 게으른 사람들은 안해서 문제입니다.
늘 부족하고 늘 모자라고 왕이 되니까 교만해지는데 아무리 부어주고 부어줘도 오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충성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그렇게 큰 겁니다. 종류대로 말하면 어떤 것을 봐도 부러운 게 없고 그런 거지요. 그래서 제물이라든지 실력이라든지 직장좋은 사람 보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릇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전부 있는대로 해서 자기를 전부다 해서 마지막에 사도 바울이 나를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켜서 그리 되기 까지 달려가라. 무익한 종으로 하나님 앞에 그렇게 키우는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실 때 안심이 되고 만족이 되는 키우면 됩니다. 좁은 그릇 못난 그릇이 되지 마십시다. 신앙이 흔들리거나 식어지거나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앙이 전부니까 이런 큰 그릇으로 키워나가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