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금밤
김동민2024-10-18조회 105추천 13
2024년 10월 18일 금밤
찬송: 157장, 158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믿음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적으로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첫 번째 중요한 것은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을 말씀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구원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도리라는 말은 믿는 사람이 길을 이뤄가는 길입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이 세상을 향하지 않고 하늘나라를 향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는 것은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 살아야하기 때문에 관심도 가지고 해야할 일은 해야합니다. 마치 밥도 먹어야하고 물도 마셔야하고 옷도 입어야하고 잠도 자야하니까 집도 있어야하고 보기도 안 좋고 그러니까 청소도 해야하는 것이고 골목 청소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일부러 주력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됩니다. 그게 우리의 주력은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서 구원으로 가는데 세상이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거기 필요한 일을 하지만 우리 필요한 나라는 하늘나라고 신앙 생활이라고 하고 믿음 생활 신앙생활들을 도덕의 잣대로 사회의 윤리대로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으라 믿는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라 말을 이렇게하고 마음을 이렇게 해가지고 가정 생활은 이렇게하고 부부사이는 이렇게 하고 성경에 할 수 있는대로 기록해놓으셨고 자연계시를 통해서 알려주시고 성경과 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각자 자신이 걸어갈 자신의 신앙처럼 모를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양심을 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는 말씀 속에 담아놓으셨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한 글자로 말하면 도입니다. 한글로 풀면 뭐라고 합니까. 말씀이라는 걸 한문으로 도 그걸 한글로 바꾸면요 길 이라고 합니다. 말씀 그 길입니다. 길은 사람이 가는 것이지요. 길은 없는 길은 갈 수 없는 것이고 없는 길은 주지 않았습니다. 하늘 가는 길로 주신 겁니다. 첫째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야하고 둘째는 말씀을 아는대로 믿어서 자기 것으로 삼아서 이 말씀으로 자기의 모든 법칙을 삼아야합니다. 그래야 맏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을 모르면 성경을 모르고 교리를 모르고 믿는 사람 맏을까. 이름은 믿는 사람인데 실제는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평양이 좋다고 그렇게 소리지르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굉장히 많습니다. 왜 평양에 안가서 사는지는 불가사의합니다. 거기가 좋으면 거기 가야지요. 안 가고 여기 있으면서 이 나라를 욕을 하고 그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름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호적만 그렇고 사상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나의 길, 천국을 향해 가는 나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내가 걸어갈 천국의 길 뭐라고 합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가 걸어갈 길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알아야하고 믿어야합니다. 믿음으로 붙들고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걸 살필 때 찾을 때 계산할 때 판단할 때 말씀으로 찾아야합니다. 말씀에서 하고 말씀으로 살피고 답을 찾고 말씀으로 판단하고 말씀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없으면 믿는 사람은 깡통이 됩니다.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다가 없으면 먹통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믿는 사람이 말씀을 공부해야합니다. 읽고 외우고 배우고 복습을 하고 하는 겁니다.
이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깡통입니다. 먹통입니다. 휴대폰 에러나면 뱅뱅뱅 돌지요. 진행이 안되고, 말씀없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그런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가만히 양심을 쓰고 찬찬히 생각을 해보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찾으면 길이 남게 되어있습니다. 길 없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은 한 번 깡통이 된 적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허비했습니다. 저도 며칠 전 갔다오다가 기계가 모르는 길이라고 돌려서 두 시간 걸리게 만들어버립니다. 따라와야죠. 그게 기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 말씀과 연결됩니다. 사도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사도는 모두 열 두 사도입니다. 열 두 사도인데 주님에 왔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옵소서, 믿음을 가지기는 가졌는데 믿음이 약해서 얕아서 많이 주십시오, 믿음을 좀 강하게 주옵소서 믿음을 보태주옵소서 그럽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더해주옵소서 그렇게 간청을 합니다.
돈 좀 주옵소서 출세하게 해주옵소서 그건 어리석은 것이고 장사 잘 되게 해주옵소서 할 수 있지만은 어린 기도입니다. 성적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 어린 기도입니다. 그 기도하면서 그보다 먼저 할 것은 뭡니까. 성적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 그거보다 먼저 해야하는 게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안하고 성적을 잘 치게 해주옵소서, 너 같으면 들어주겠냐. 그런데 이 학생인데 성경 읽어야하겠고 심방해야겠고 일이 많아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도 읽어야하고 새벽기도 가야겠고 이거 하다보니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럴 때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공부 안하는데도 답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하니까 환하게 다 보이덥니다. 그게 다니엘입니다. 그렇게 믿은 분들이 다니엘 같은 분입니다.
이런 건 어떻게 확인이됩니까. 해보면 됩니다. 실제로. 여기 본문에 보면 보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고서 믿음을 더해달라고 합니다. 좋은 걸 구했습니다. 더해준다고 더 줄 수 있는가. 엘리사가 자기를 대접하는 그 가정의 여인에게 불러서 뭐가 필요하냐하니까 사양해서 뭘 해서 갚을까 물으니까 이 집에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내년에 아들이 생길 거다 그래서 아들을 줬습니다. 죽었는데 살려줬습니다. 믿음을 구한 것은 고급을 구한 것입니다. 믿음을 주님이 주시는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는 믿음을 더하소서, 주께서 가라사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겨자씨 믿음으로 가져라,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을 가지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순종했을 것이다. 이건 실제 이루어진 역사로 말합니다. 확정한다 된다 그 말입니다.
겨자씨 믿음이 뭔가 믿음은 믿음인데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살아있는 믿음 생명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생명있는 믿음이 무엇일까. 생명있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럴 때 생명에 역사 작용을 생각해봅니다. 살아있다니 작용이 있습니다. 활동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에 첫째적으로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존의 노력입니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겁니다. 이게 본능입니다. 모든 생물은 사는 데에 초점을 기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의 작용은 사는 데에 모든 걸 다 기울이는데 첫째 일이 뭡니까. 생명이 살아나가려면 첫째 이름 노력이 뭘까. 먹어야합니다. 안 먹으면 죽습니다. 모든 생명은 없는데 생명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생명있는 믿음은 살아야겠고 먹는 걸 말하니까. 겨자씨가 먹는 것은 땅 속에 심어놓습니다. 겨자 나무니까 땅 속에 심겠지요. 모든 재료는 흙입니다. 흙이란 땅이란 것은 속에 들어오면 세월 속에 흙을 만들어버립니다. 쇠도 흙이 됩니다. 사람의 뼈도 흙이 됩니다. 어떤 것이든 전부다 오래 오래 지나도 흙이 안 되는 것은 금, 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 비싼겁니다.
음식쓰레기를 넣어놓으면 몇 달 지나가면 없습니다. 생선 먹다남은 뼈다귀 이런 건 좀 오래갈련가 모르겠나. 옛날에 식사 같이할 때는 이걸 다 옥상에 버립니다. 1년이면 한 고무통에 넣는데 1년 지나면 흙 속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흙도 수명이 있습니다. 같은 흙에다가 몇 년 농사짓고나면 안됩니다. 그래서 시골에 해마다 거름을 가지고 퇴비 이런 걸로 살려놓는 겁니다. 흙이란 그래서 영양분이 뭐냐, 안에 박테리아 세금 이런 게 있거든요.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이 다 잡아먹어버립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볼펜 끝만합니다. 이 놈이 흙 속에 들어가면 그거 다 잡아먹지요. 주먹만한 거 고양이 같은 거 죽으면 흙에 묻으면 안되지요.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리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볼펜 끝만한 겨자씨를 땅에 심어놓으면 없어질 수도 있고 흙이 먹는 게 아니라 흙을 먹습니다. 겨자씨가. 그러면 살아나는 겁니다. 그 흙을 먹는 겨자씨를 가르켜서 실력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씨앗은 심어도 죽어버리고 싹이 안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땅 속에 심으면 땅을 먹고 자랍니다. 이걸 겨자씨 믿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이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먹어야합니다. 필사적으로 먹어야합니다. 참 좋은 비유인데 땅 속에 심어놓으면 겨자씨는 생명이 있으면 그 땅에 모든 걸 다 먹고 자라서 나물 종류인데 나물보다 커서 나물이 된다. 그래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으면 썩어버리고마는 겁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말하여라. 생명있는 믿음을 말하여라.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라. 생명있는 믿음을 가져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을 가져라. 작용적으로 생각해보면 겨자씨가 생명이 있어서 환경의 땅을 다 양식을 먹고 자라듯이 믿는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은 과거 믿음은 거름만 됩니다. 영양제만 됩니다. 미래 믿음은 소망일 뿐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현실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이란 현실 믿음을 말합니다. 너가 말하는 현실,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현실을 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예배당 문이 있습니다. 예배 마치고 나가실 때 저 문을 통과하지 말고 나가는 법이 있습니까. 창문은 다 막아놨습니다. 저게 출입문이니까. 없지요. 현실입니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세월의 전부입니다. 지나가는 세월은 현실이 지나가는 것고 미래는 현실이 와야하는데 내게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되어야합니다. 나의 현실이 되어야합니다. 내일이 있는데 나의 것이 될려면 알아야하는데 믿는 사람의 모든 세상 사람의 생활은 믿는 사람의 믿음이란 현실 믿음을 말합니다. 넓게 말하면 오늘 믿음 나중믿음 말고. 시간 시점인데 그 시간 속에는 단순히 시간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시간에 내가 있습니다. 지금이 시간적으로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지금 바로 현실입니다. 장소가 예배당입니다.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하고 듣고 계십니다. 장난치는 사람이 오늘은 별로 없네. 이게 현실입니다. 마치면 예배당문 나갈 겁니다. 현실이라고 하는데 그 현실 속에는 우리 믿음은 무슨 믿음이라고요. 장소적으로 현장믿음입니다. 사건적으로 현재 사건 믿음입니다. 믿음의 환경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환경이 현실입니다. 겨자씨 흙 속이 겨자씨 환경인 것처럼 우리들의 현실이 우리들의 환경이죠. 겨자씨가 땅 속에 심어졌을 때 흙 속의 박태리아와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때 생명이 있으니까 온도와 습도와 그런 걸 먹고 싹을 내고 그런 것처럼 믿는 사람이 현실을 만날 때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습니다. 그 시간 장소 사건 속에서 믿는 사람에 온도 습도 믿는 사람의 현실은 믿음의 양식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믿음의 양식이 듬뿍 들어있는 걸 현실이라고 합니다.
다른 각도로 설명해봅니다. 바다는 넓고 깊습니다. 고요한 바다라 그럽니다. 깊고 고요한데 그 깊고 고요한 바다 속에는 들어가보면 수 많은 생명들이 들어가있습니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육지에 있는 동물 이런 존재 종류대로 바다속에 다 있다고 합니다. 바다 속에 많은 것들이 있고 서로 작용을 하지요. 생물은 나고 활동을 하고 이게 계속 수 많은 것 보기에 고요한 바다인데 수많은 역사 작용들이 있고 이어지는 게 바다입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세월인데 흘러가는 세월 속에 수 많은 존재가 있고 그 존재들의 역사 작용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의 현실 속에는 수 많은 존재가 그 속에 있습니다.
현실에는 내가 있고 하나님이 현실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반대쪽에 마귀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요. 천국에 계십니까. 현실에 계십니다. 내 현실에, 마귀가 어디 있습니까. 마귀는 자기 현실에 있습니까. 지금입니다. 예배 드리는 곳이니까 당연하고 예배드리는 여기에 당연합니다. 꼬박 꼬박 조는 사람 속에 잠마귀가 들어가있습니다. 장난치는 사람 속에 장난치는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마귀는 눈에 안 보입니다. 그게 현실 속에 있습니다. 그 속에 천국과 지옥이 들어있습니다. 그 현실에 전지전능이 들어있습니다. 무지 무능도 들어있습니다. 무지와 무능 전지전능은 유식과 무식이라는 단어 아시지요. 이 말이 단숙한 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무식하다 모른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무식한 건 모르겠는데 영원한 천국이 절단나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른 건 몰라도 걸어가야하는 나의 구원 도리는 유식한 겁니다.
우리 현실에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가 계십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 속에 영광도 있고 수치도 있습니다. 부유도 있고 가난도 있습니다. 존귀도 있고 귀천도 있습니다. 그 전부다가 다른데에 있지 않고 현실에 있습니다. 항상 꽃길만 되는 현실이 아닙니다. 꽃길만 걸어라고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저주하는 말이 됩니다. 그리될 수 없는 것인데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바다는 항상 고요하지만은 않습니다. 한번씩 태풍이 부는데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태풍이 있으면 몇 가지 작용을 합니다. 비를 많이 몰고옵니다. 부족한 수분을 채워주고 이게 지구에 남북조의 온도를 조절해준답니다. 동시에 바다를 휘저어서 생태계를 활성화시켜준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잔잔한 현실 주시다가 휘저어서 어렵고 괴로운 현실을 만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욥처럼, 몸에 병이 난다든지 사고가 생기다든지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꽃길같은 현실은 영양분이 잔뜩 들었고 태풍은 영양분이 없습니까. 그게 반대입니다. 식물이 잘 자라는 흙을 가르켜 옥토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명 없는 게 옥토에 들어가면 잘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생명 있는 옥토에 들어가면 잘 썩어버립니다. 잘 안 썩습니다.
환란 없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면 실력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젊은 학생들 모를텐데 미나리, 미나리 아는 사람. 우리 젊은 청년들도 미나리 아시는 분, 고구마도 그렇습니다. 마디 없는 건 안 심어도 줄기 잘라서 심어야하는데 마디를 사람으로 말하면 환란 역경을 말합니다. 그래서 현실에 어려움이 없는 현실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생명있는 믿음을 가져라. 그 현실이 믿음의 환경이다. 그 속에 믿음 양분이 다 들었다. 어려울수록 영양분은 많은 거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를 것이다. 이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
찬송: 157장, 158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믿음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적으로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첫 번째 중요한 것은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을 말씀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구원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도리라는 말은 믿는 사람이 길을 이뤄가는 길입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이 세상을 향하지 않고 하늘나라를 향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는 것은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 살아야하기 때문에 관심도 가지고 해야할 일은 해야합니다. 마치 밥도 먹어야하고 물도 마셔야하고 옷도 입어야하고 잠도 자야하니까 집도 있어야하고 보기도 안 좋고 그러니까 청소도 해야하는 것이고 골목 청소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일부러 주력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됩니다. 그게 우리의 주력은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서 구원으로 가는데 세상이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거기 필요한 일을 하지만 우리 필요한 나라는 하늘나라고 신앙 생활이라고 하고 믿음 생활 신앙생활들을 도덕의 잣대로 사회의 윤리대로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으라 믿는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라 말을 이렇게하고 마음을 이렇게 해가지고 가정 생활은 이렇게하고 부부사이는 이렇게 하고 성경에 할 수 있는대로 기록해놓으셨고 자연계시를 통해서 알려주시고 성경과 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각자 자신이 걸어갈 자신의 신앙처럼 모를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양심을 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는 말씀 속에 담아놓으셨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한 글자로 말하면 도입니다. 한글로 풀면 뭐라고 합니까. 말씀이라는 걸 한문으로 도 그걸 한글로 바꾸면요 길 이라고 합니다. 말씀 그 길입니다. 길은 사람이 가는 것이지요. 길은 없는 길은 갈 수 없는 것이고 없는 길은 주지 않았습니다. 하늘 가는 길로 주신 겁니다. 첫째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야하고 둘째는 말씀을 아는대로 믿어서 자기 것으로 삼아서 이 말씀으로 자기의 모든 법칙을 삼아야합니다. 그래야 맏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을 모르면 성경을 모르고 교리를 모르고 믿는 사람 맏을까. 이름은 믿는 사람인데 실제는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평양이 좋다고 그렇게 소리지르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굉장히 많습니다. 왜 평양에 안가서 사는지는 불가사의합니다. 거기가 좋으면 거기 가야지요. 안 가고 여기 있으면서 이 나라를 욕을 하고 그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름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호적만 그렇고 사상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나의 길, 천국을 향해 가는 나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내가 걸어갈 천국의 길 뭐라고 합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가 걸어갈 길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알아야하고 믿어야합니다. 믿음으로 붙들고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걸 살필 때 찾을 때 계산할 때 판단할 때 말씀으로 찾아야합니다. 말씀에서 하고 말씀으로 살피고 답을 찾고 말씀으로 판단하고 말씀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없으면 믿는 사람은 깡통이 됩니다.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다가 없으면 먹통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믿는 사람이 말씀을 공부해야합니다. 읽고 외우고 배우고 복습을 하고 하는 겁니다.
이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깡통입니다. 먹통입니다. 휴대폰 에러나면 뱅뱅뱅 돌지요. 진행이 안되고, 말씀없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그런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가만히 양심을 쓰고 찬찬히 생각을 해보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찾으면 길이 남게 되어있습니다. 길 없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은 한 번 깡통이 된 적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허비했습니다. 저도 며칠 전 갔다오다가 기계가 모르는 길이라고 돌려서 두 시간 걸리게 만들어버립니다. 따라와야죠. 그게 기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 말씀과 연결됩니다. 사도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사도는 모두 열 두 사도입니다. 열 두 사도인데 주님에 왔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옵소서, 믿음을 가지기는 가졌는데 믿음이 약해서 얕아서 많이 주십시오, 믿음을 좀 강하게 주옵소서 믿음을 보태주옵소서 그럽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더해주옵소서 그렇게 간청을 합니다.
돈 좀 주옵소서 출세하게 해주옵소서 그건 어리석은 것이고 장사 잘 되게 해주옵소서 할 수 있지만은 어린 기도입니다. 성적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 어린 기도입니다. 그 기도하면서 그보다 먼저 할 것은 뭡니까. 성적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 그거보다 먼저 해야하는 게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안하고 성적을 잘 치게 해주옵소서, 너 같으면 들어주겠냐. 그런데 이 학생인데 성경 읽어야하겠고 심방해야겠고 일이 많아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도 읽어야하고 새벽기도 가야겠고 이거 하다보니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럴 때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공부 안하는데도 답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하니까 환하게 다 보이덥니다. 그게 다니엘입니다. 그렇게 믿은 분들이 다니엘 같은 분입니다.
이런 건 어떻게 확인이됩니까. 해보면 됩니다. 실제로. 여기 본문에 보면 보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고서 믿음을 더해달라고 합니다. 좋은 걸 구했습니다. 더해준다고 더 줄 수 있는가. 엘리사가 자기를 대접하는 그 가정의 여인에게 불러서 뭐가 필요하냐하니까 사양해서 뭘 해서 갚을까 물으니까 이 집에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내년에 아들이 생길 거다 그래서 아들을 줬습니다. 죽었는데 살려줬습니다. 믿음을 구한 것은 고급을 구한 것입니다. 믿음을 주님이 주시는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는 믿음을 더하소서, 주께서 가라사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겨자씨 믿음으로 가져라,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을 가지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순종했을 것이다. 이건 실제 이루어진 역사로 말합니다. 확정한다 된다 그 말입니다.
겨자씨 믿음이 뭔가 믿음은 믿음인데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살아있는 믿음 생명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생명있는 믿음이 무엇일까. 생명있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럴 때 생명에 역사 작용을 생각해봅니다. 살아있다니 작용이 있습니다. 활동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에 첫째적으로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존의 노력입니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겁니다. 이게 본능입니다. 모든 생물은 사는 데에 초점을 기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의 작용은 사는 데에 모든 걸 다 기울이는데 첫째 일이 뭡니까. 생명이 살아나가려면 첫째 이름 노력이 뭘까. 먹어야합니다. 안 먹으면 죽습니다. 모든 생명은 없는데 생명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생명있는 믿음은 살아야겠고 먹는 걸 말하니까. 겨자씨가 먹는 것은 땅 속에 심어놓습니다. 겨자 나무니까 땅 속에 심겠지요. 모든 재료는 흙입니다. 흙이란 땅이란 것은 속에 들어오면 세월 속에 흙을 만들어버립니다. 쇠도 흙이 됩니다. 사람의 뼈도 흙이 됩니다. 어떤 것이든 전부다 오래 오래 지나도 흙이 안 되는 것은 금, 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 비싼겁니다.
음식쓰레기를 넣어놓으면 몇 달 지나가면 없습니다. 생선 먹다남은 뼈다귀 이런 건 좀 오래갈련가 모르겠나. 옛날에 식사 같이할 때는 이걸 다 옥상에 버립니다. 1년이면 한 고무통에 넣는데 1년 지나면 흙 속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흙도 수명이 있습니다. 같은 흙에다가 몇 년 농사짓고나면 안됩니다. 그래서 시골에 해마다 거름을 가지고 퇴비 이런 걸로 살려놓는 겁니다. 흙이란 그래서 영양분이 뭐냐, 안에 박테리아 세금 이런 게 있거든요.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이 다 잡아먹어버립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볼펜 끝만합니다. 이 놈이 흙 속에 들어가면 그거 다 잡아먹지요. 주먹만한 거 고양이 같은 거 죽으면 흙에 묻으면 안되지요.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리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볼펜 끝만한 겨자씨를 땅에 심어놓으면 없어질 수도 있고 흙이 먹는 게 아니라 흙을 먹습니다. 겨자씨가. 그러면 살아나는 겁니다. 그 흙을 먹는 겨자씨를 가르켜서 실력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씨앗은 심어도 죽어버리고 싹이 안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땅 속에 심으면 땅을 먹고 자랍니다. 이걸 겨자씨 믿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이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먹어야합니다. 필사적으로 먹어야합니다. 참 좋은 비유인데 땅 속에 심어놓으면 겨자씨는 생명이 있으면 그 땅에 모든 걸 다 먹고 자라서 나물 종류인데 나물보다 커서 나물이 된다. 그래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으면 썩어버리고마는 겁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말하여라. 생명있는 믿음을 말하여라.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라. 생명있는 믿음을 가져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을 가져라. 작용적으로 생각해보면 겨자씨가 생명이 있어서 환경의 땅을 다 양식을 먹고 자라듯이 믿는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은 과거 믿음은 거름만 됩니다. 영양제만 됩니다. 미래 믿음은 소망일 뿐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현실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이란 현실 믿음을 말합니다. 너가 말하는 현실,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현실을 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예배당 문이 있습니다. 예배 마치고 나가실 때 저 문을 통과하지 말고 나가는 법이 있습니까. 창문은 다 막아놨습니다. 저게 출입문이니까. 없지요. 현실입니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세월의 전부입니다. 지나가는 세월은 현실이 지나가는 것고 미래는 현실이 와야하는데 내게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되어야합니다. 나의 현실이 되어야합니다. 내일이 있는데 나의 것이 될려면 알아야하는데 믿는 사람의 모든 세상 사람의 생활은 믿는 사람의 믿음이란 현실 믿음을 말합니다. 넓게 말하면 오늘 믿음 나중믿음 말고. 시간 시점인데 그 시간 속에는 단순히 시간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시간에 내가 있습니다. 지금이 시간적으로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지금 바로 현실입니다. 장소가 예배당입니다.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하고 듣고 계십니다. 장난치는 사람이 오늘은 별로 없네. 이게 현실입니다. 마치면 예배당문 나갈 겁니다. 현실이라고 하는데 그 현실 속에는 우리 믿음은 무슨 믿음이라고요. 장소적으로 현장믿음입니다. 사건적으로 현재 사건 믿음입니다. 믿음의 환경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환경이 현실입니다. 겨자씨 흙 속이 겨자씨 환경인 것처럼 우리들의 현실이 우리들의 환경이죠. 겨자씨가 땅 속에 심어졌을 때 흙 속의 박태리아와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때 생명이 있으니까 온도와 습도와 그런 걸 먹고 싹을 내고 그런 것처럼 믿는 사람이 현실을 만날 때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습니다. 그 시간 장소 사건 속에서 믿는 사람에 온도 습도 믿는 사람의 현실은 믿음의 양식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믿음의 양식이 듬뿍 들어있는 걸 현실이라고 합니다.
다른 각도로 설명해봅니다. 바다는 넓고 깊습니다. 고요한 바다라 그럽니다. 깊고 고요한데 그 깊고 고요한 바다 속에는 들어가보면 수 많은 생명들이 들어가있습니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육지에 있는 동물 이런 존재 종류대로 바다속에 다 있다고 합니다. 바다 속에 많은 것들이 있고 서로 작용을 하지요. 생물은 나고 활동을 하고 이게 계속 수 많은 것 보기에 고요한 바다인데 수많은 역사 작용들이 있고 이어지는 게 바다입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세월인데 흘러가는 세월 속에 수 많은 존재가 있고 그 존재들의 역사 작용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의 현실 속에는 수 많은 존재가 그 속에 있습니다.
현실에는 내가 있고 하나님이 현실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반대쪽에 마귀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요. 천국에 계십니까. 현실에 계십니다. 내 현실에, 마귀가 어디 있습니까. 마귀는 자기 현실에 있습니까. 지금입니다. 예배 드리는 곳이니까 당연하고 예배드리는 여기에 당연합니다. 꼬박 꼬박 조는 사람 속에 잠마귀가 들어가있습니다. 장난치는 사람 속에 장난치는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마귀는 눈에 안 보입니다. 그게 현실 속에 있습니다. 그 속에 천국과 지옥이 들어있습니다. 그 현실에 전지전능이 들어있습니다. 무지 무능도 들어있습니다. 무지와 무능 전지전능은 유식과 무식이라는 단어 아시지요. 이 말이 단숙한 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무식하다 모른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무식한 건 모르겠는데 영원한 천국이 절단나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른 건 몰라도 걸어가야하는 나의 구원 도리는 유식한 겁니다.
우리 현실에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가 계십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 속에 영광도 있고 수치도 있습니다. 부유도 있고 가난도 있습니다. 존귀도 있고 귀천도 있습니다. 그 전부다가 다른데에 있지 않고 현실에 있습니다. 항상 꽃길만 되는 현실이 아닙니다. 꽃길만 걸어라고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저주하는 말이 됩니다. 그리될 수 없는 것인데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바다는 항상 고요하지만은 않습니다. 한번씩 태풍이 부는데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태풍이 있으면 몇 가지 작용을 합니다. 비를 많이 몰고옵니다. 부족한 수분을 채워주고 이게 지구에 남북조의 온도를 조절해준답니다. 동시에 바다를 휘저어서 생태계를 활성화시켜준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잔잔한 현실 주시다가 휘저어서 어렵고 괴로운 현실을 만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욥처럼, 몸에 병이 난다든지 사고가 생기다든지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꽃길같은 현실은 영양분이 잔뜩 들었고 태풍은 영양분이 없습니까. 그게 반대입니다. 식물이 잘 자라는 흙을 가르켜 옥토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명 없는 게 옥토에 들어가면 잘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생명 있는 옥토에 들어가면 잘 썩어버립니다. 잘 안 썩습니다.
환란 없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면 실력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젊은 학생들 모를텐데 미나리, 미나리 아는 사람. 우리 젊은 청년들도 미나리 아시는 분, 고구마도 그렇습니다. 마디 없는 건 안 심어도 줄기 잘라서 심어야하는데 마디를 사람으로 말하면 환란 역경을 말합니다. 그래서 현실에 어려움이 없는 현실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생명있는 믿음을 가져라. 그 현실이 믿음의 환경이다. 그 속에 믿음 양분이 다 들었다. 어려울수록 영양분은 많은 거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를 것이다. 이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