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0-06조회 103추천 17
2024년 10월 6일 주일 오후
찬송: 69장, 177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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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 신망애. 세 글자로 신망애입니다. 세 글자는 꼭 기억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믿는 사람은 신망애는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소망의 도다 사랑의 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신앙생활에 동력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당연히 있는 겁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겁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사랑이 특히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불교도 대자대비라고 합니다. 큰 사랑, 큰 자비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궁극의 사랑부터 영원한 사랑이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마땅히 들어있는건데 새삼스럽게 살펴보는 것은 신앙의 동력이기 때문에, 요셉의 신앙을 살피고 다윗의 신앙을 살피고 룻의 신앙을 살핀 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과 주권 성취를 생각해봤고 그들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들이 그러신 것처럼 흘러간 흔적들 이력들 발자취들 다 생애라고 하는데 요셉의 생애 걸어간 걸음 걸음의 이력, 이게 요셉의 생애인데 뜯어보니까 택배 상자가 왔습니다. 뭐가 들었을까요. 모르지요, 뜯어보면 알지요.
요셉의 생애라는 상자가 있습니다. 뜯어보면 아는 겁니다. 뜯어본다는 것은 들여다본다는 거지요. 뜯어가지고 어디로 봅니까 택배 안에 사과, 배가 들었네 물건이 들었네 알게 되는 겁니다. 밖에서 보면 요셉의 생애다 안을 들여다보니까 있는겁니다. 뜯어보면서 이렇게 걸어갔구나.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이었고 주권의 성치였는데 걸음 걸음을 인도하셨고 요셉과 다윗과 룻은 자기들은 자기 걸음으로 걸어간 거지요. 룻은 어려서 잘 몰랐을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을 알았을건데 몰랐는데 어디로가는지 몰랐지만 걸음걸음에서 자기 좋은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가는대로 형편에 손익계산을 따라서 그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인데 왜 이렇게 인도하시는가.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오늘 점심 시간에 집 앞에 차를 세워놨는데 어떤 사람이 쾅 박아서 부서졌버렸답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운전했는데, 오만 말이 다 나오는데 백 목사님은 택시를 타시면 택시비가 만 원입니다 하면 만 이천원을 줍니다. 나이 많은 사람 태운다고 조심했으니까 그런거지요. 심하게 불편하면 안하는게 맞지요.
왜 다른 사람이 박았을까. 기본 찻값이 있거든요. 손해를 많이 봅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봐야합니다.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믿는 사람은 왜 그럴까. 주권 성취인데 그런 게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입니다 주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주일을 왜 지키냐, 이건 껍데기입니다. 그런 걸 배워서 그럴 때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배움과 생각과 성장없이 주일 지키는 게 외식이라고 합니다.
구약에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바리새인들이 지켰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예수님을 못박아죽여라. 무슨 뜻이지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시지 무엇을 원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 어려움에 설상 가상이라고 어려움이 겹치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라고 주시는 겁니다. 지난주에 계속 공부한 말씀이 이럴 때 쓰여진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면 단 하나도, 사람마다 인도하신 현실이 있기 때문에 각자 자기 현실은 다섯글자, 필수불가결. 백목사님께서 모기소리만한 대답을 하면 혼을 냅니다. 결코 없으면 안되는 현실. 꼭 필요한 현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실 때 믿음의 종들, 다윗, 룻, 이런 걸음을 걸어갔는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돈 손해를 보고 명예 손해보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안 보이는 걸 보이는 것보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죽이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상관없이, 그 다음 가사 뭐죠. 손에 잡힌 것과 같이 굳게 믿고, 말씀이기 때문에 소금언약. 소금이라는 말은 변치 않게 하는 것입니다. 방부하지 않게 소금언약이다.
그 소금 언약의 말씀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들의 눈 보는 것과 부모님의 눈 보는 것이 틀립니다. 어른들이 보는 눈과 아이들이 보는 눈은 다릅니다. 아는 사람이 보는 눈과 모르는 사람이 보는 눈은 다른 겁니다. 거기 피동 영향 받지 않고 믿음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신앙 걸음을 선택을하고 동력이 있었으니 생각을 하는 겁니다. 뭐든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만다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은 당연하나 당연한 게 아닙니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니까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봐라, 촬영해서 보여주니까 울음바다가 됐다고. 설교 시간보다 그거 한 번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들 아이 가져서 고생하고 낳는 것고 잘 처리해서 보이면 함부로 못하겠지요. 당연한 것을 당연히 생각하면 빼앗아버립니다. 일상 생활이 당연한데 뭐 때문에 빼앗겨봤습니까. 당연한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겁니다. 그때 예배드린다고 눈치 참 많이 봤습니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잔잔하게 일상생활이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 많은 수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 승객들이 놀랄까봐 신경쓰는 기사는 굉장히 조심합니다. 박는 그 정도 힘에 따라서 자동차가 흔들립니다. 그 기사가 그만큼 승객들은 편합니다. 승객들은 죽을 맛이 디는 겁니다. 교회가 고요하게 신앙생활이 된다는 말은 많은 수고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저께 새벽에 재독 집회 말씀에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머리, 저 어릴 때 주변머리가 없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눈치가 없고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참 주변머리없다. 저만 생각하고 모르는 것이지요. 눈치 염치 주변머리 참 중요합니다. 신앙 외적인 요소이지만은 곡식할 때 그런 걸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뭐든지 가정이든 건강이든 당연한 것은 어떠하다고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많은 수고가 들어있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힘 동력, 한문글자는 배우는 게 좋습니다. 성경 공부에 깨달음에 도움이 됩니다. 영감으로 깨달을 거 아니면 배워두는 게 좋습니다.
신앙의 동력 신앙 생활의 힘, 뭔가 움직이려면 동력이 필요한겁니다. 짐승도 식물도 사람도 동력이 다 필요한건데 어느정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전기 자동차 가다가 서버립니다. 그리고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힘이 없습니다. 동력이 약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이 약하면 빠져버립니다. 강한 만큼 힘이 있게 되는 겁니다. 기름 떨어짐으로 살에는 속력이 줄어듭니다. 다 떨어져가면 조심스럽기도 하고 문제가 많이 생기지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또 뜯어본 겁니다.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이 믿음이냐, 마음의 요소 존재의 사물, 들은대로 배운대로 자기 마음이 그대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말하는 그대로 말하는 겁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경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말씀 그대로 말씀을 자기 주관대로 세상 말이 아니고 말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성경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 믿음의 생성이라는 말은 우리 속에 생겨나는 건데 어떻게 생겨지느냐 입니다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 주시면 생길 수 없는게 믿음. 그래서 아무리 많이 배워도 아무리 날카롭고 끝을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고 종교성을 가진 철학자라도 은혜가 없으면 안 생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믿음이라는 표현은 인위적입니다. 땅에서 생긴 겁니다. 하늘에서 본 겁니다. 하늘에서 온 것이 믿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창조, 주권섭리 인간의 사후 세계 우리의 구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지는 겁니다.
이 믿음은 가지고 받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믿음은 종자적인 믿음입니다. 어디에 쓰는 게 종자입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믿음은 종자적인 믿음입니다. 종자적인 믿음을 받았으니까 믿음은 성장하는 겁니다. 종자적인 믿음도 은혜고 믿음을 길러가는 것도 은혜인데 우리들의 전부를 다 해서 노력해야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섯 번째 이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이 뭐냐, 이미 가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믿음 가진 믿음으로 믿음생활 할 때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내 속에 믿음이 강한 만큼 깊은 만큼 튼튼한 만큼 역사로 나타납니다. 속에 텅 비어 있으면 힘이 넘치니까 팽팽 돌아가니까 혈기왕성하니까 활발합니다.
예배시간에 늘 지각을 하고 앞 자리 앉은 사람이 축 쳐지고 예배시간에 졸고 새벽기도 빠지고 그러면 믿음이 그 속에 가라앉았구나. 열심히 주일 지키고 새벽기도 그러면 뭘 안다고요, 보이지 않는 걸 아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면 저 분이 좀 피곤해서 조는 것과 신앙이 식어서 조는 것은 다릅니다. 일곱 번째 그래서 결과가 나타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기적을 가져옵니다. 빛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신기하다 그런 걸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는 게 믿습니다. 일곱 가지로 믿음을 분석해 놓은 것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란 쉽게 말하면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뭘 바라봅니까. 미래를 앞날을 내일을 바라본다. 내일을 기다린다. 기대한다. 불행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이건 선생님 옆에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민준, 김민준이지. 쥐 구멍에 살면서 뭘 바라는 겁니까. 잘 못들어봤지. 벼뜰날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게 소망입니다. 바라보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무슨 뜻이라고요 바라본다.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게 소망입니다. 우리 속에 어떻게 생기느냐 소망은 있습니다. 다 따지는데 그들 소망은 틀립니다. 무엇으로 소망을 주셨느냐 주님 부활하심으로 생겨진겁니다. 우리 소망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암흑 절벽입니다. 끝없이 내려갑니다. 무저갱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주님이 대신 죽으시고 다시 인성입고 부활하심으로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의 원칙인데 멀리 있고 안 보임으로 이루어 가지도록 하시면서 전체적으로 하게 되신 것입니다. 하늘인데 하늘이 멀리있고 너무커서 안 보이기 때문에 땅에 주신 것이고 모든 축복을 가르켜 뭐라고 한다고요. 표시판입니다. 천국이 있다. 영생이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이 모든 것입니다. 표시판을 붙들고 설치면 나중에 누구처럼 됩니까. 롯처럼 됩니다. 롯이 누구 조상이라고요. 모압 지방의 조상입니다. 롯이 의인입니다. 아브라함을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그래서 복을 받았는데 들고 설치다가 진짜를 놓쳐버렸습니다. 롯만 그런 게 아니고 일반 교계에서 절대 다수가 다 빠져버립니다. 교회마다 복을 말하면 세상 복입니다. 중들은 절에 가서 기도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교회 가서 기도하고, 자식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공부해서 판사가 될 겁니까. 그러면 뭐합니까. 판사는 하루 세 끼 다 먹었습니까. 철갑상어 먹으면 더 오래 삽니까. 오래 살면 100년 200년 살겠습니까. 멀리 보면 다 허무한 것인데 소망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사후세계인데 현상 세계에서도 표시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은 부자가 믿어서 가난해져야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가난해지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 기도하고 처리하고 금식해서 말라버려야합니다. 마지막에 십자가 못박혀 죽어야합니다. 하니까 어떤 껍데기 신자가 더럽게도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예수님 사시는 집보다 넓으면 회개하셔야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위로차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자세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사랑 13절 보니까 세 가지,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모든 것은 전부 사랑에서 시작되고 발현되고 말미암고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좋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상대방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특별한 관계입니다. 이 세상 인간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은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과 하나님 사랑,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은 혈육 사랑 이성 사랑 동족 사랑 세 가지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생기느냐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불신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이런 걸 하나 더 가집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그 위에 하하나님 사랑이 보태진다고 해야할까요. 이 사랑의 차원은 또 다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일방적인 사람입니다. 조건, 혈육 사랑,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지 남의 자식을 내 자식만큼 사랑안합니다. 마음이 가야 결혼하죠. 세상에 마음가서 결혼하는 사람치고 잘 사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의무입니다. 안 하면 하나님 앞에 무조건 99퍼센트 사람은 결혼 안하면 죄가 됩니다. 이 차원은 사랑의 차원 인간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 조건이 붙습니다. 다섯 번째 사랑의 활동이 있습니다. 외부 활동이 있게 됩니다. 좋게 복되게 하는 역사, 여섯 번째 그 방법은 수고입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 대속의 사랑은 사랑의 방법이었습니다. 인간 사랑은 그 사랑이 크고 강한만큼 전부 결과는 해결됩니다. 그래서 찬송가 171장 4절입니까.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어버립니다. 떠날 때 고통이 많고 눈물이 많아집니다.
많은 무덤 보면서 느끼는데 눈물 덩어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 눈물 흘렸을까. 사랑이 강한만큼 하게 됩니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도 사랑의 도 소망의 도입니다.
우리 모든 믿음 생활이 성경 말하는 겁니다. 사랑 일곱가지로 동력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야하고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69장, 177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2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신망애. 세 글자로 신망애입니다. 세 글자는 꼭 기억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믿는 사람은 신망애는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소망의 도다 사랑의 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신앙생활에 동력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당연히 있는 겁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겁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사랑이 특히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불교도 대자대비라고 합니다. 큰 사랑, 큰 자비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궁극의 사랑부터 영원한 사랑이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마땅히 들어있는건데 새삼스럽게 살펴보는 것은 신앙의 동력이기 때문에, 요셉의 신앙을 살피고 다윗의 신앙을 살피고 룻의 신앙을 살핀 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과 주권 성취를 생각해봤고 그들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들이 그러신 것처럼 흘러간 흔적들 이력들 발자취들 다 생애라고 하는데 요셉의 생애 걸어간 걸음 걸음의 이력, 이게 요셉의 생애인데 뜯어보니까 택배 상자가 왔습니다. 뭐가 들었을까요. 모르지요, 뜯어보면 알지요.
요셉의 생애라는 상자가 있습니다. 뜯어보면 아는 겁니다. 뜯어본다는 것은 들여다본다는 거지요. 뜯어가지고 어디로 봅니까 택배 안에 사과, 배가 들었네 물건이 들었네 알게 되는 겁니다. 밖에서 보면 요셉의 생애다 안을 들여다보니까 있는겁니다. 뜯어보면서 이렇게 걸어갔구나. 하나님의 예정의 진행이었고 주권의 성치였는데 걸음 걸음을 인도하셨고 요셉과 다윗과 룻은 자기들은 자기 걸음으로 걸어간 거지요. 룻은 어려서 잘 몰랐을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을 알았을건데 몰랐는데 어디로가는지 몰랐지만 걸음걸음에서 자기 좋은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가는대로 형편에 손익계산을 따라서 그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인데 왜 이렇게 인도하시는가.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오늘 점심 시간에 집 앞에 차를 세워놨는데 어떤 사람이 쾅 박아서 부서졌버렸답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운전했는데, 오만 말이 다 나오는데 백 목사님은 택시를 타시면 택시비가 만 원입니다 하면 만 이천원을 줍니다. 나이 많은 사람 태운다고 조심했으니까 그런거지요. 심하게 불편하면 안하는게 맞지요.
왜 다른 사람이 박았을까. 기본 찻값이 있거든요. 손해를 많이 봅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봐야합니다.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믿는 사람은 왜 그럴까. 주권 성취인데 그런 게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입니다 주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주일을 왜 지키냐, 이건 껍데기입니다. 그런 걸 배워서 그럴 때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배움과 생각과 성장없이 주일 지키는 게 외식이라고 합니다.
구약에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바리새인들이 지켰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예수님을 못박아죽여라. 무슨 뜻이지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시지 무엇을 원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 어려움에 설상 가상이라고 어려움이 겹치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라고 주시는 겁니다. 지난주에 계속 공부한 말씀이 이럴 때 쓰여진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면 단 하나도, 사람마다 인도하신 현실이 있기 때문에 각자 자기 현실은 다섯글자, 필수불가결. 백목사님께서 모기소리만한 대답을 하면 혼을 냅니다. 결코 없으면 안되는 현실. 꼭 필요한 현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실 때 믿음의 종들, 다윗, 룻, 이런 걸음을 걸어갔는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돈 손해를 보고 명예 손해보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안 보이는 걸 보이는 것보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죽이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상관없이, 그 다음 가사 뭐죠. 손에 잡힌 것과 같이 굳게 믿고, 말씀이기 때문에 소금언약. 소금이라는 말은 변치 않게 하는 것입니다. 방부하지 않게 소금언약이다.
그 소금 언약의 말씀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들의 눈 보는 것과 부모님의 눈 보는 것이 틀립니다. 어른들이 보는 눈과 아이들이 보는 눈은 다릅니다. 아는 사람이 보는 눈과 모르는 사람이 보는 눈은 다른 겁니다. 거기 피동 영향 받지 않고 믿음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신앙 걸음을 선택을하고 동력이 있었으니 생각을 하는 겁니다. 뭐든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만다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은 당연하나 당연한 게 아닙니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니까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봐라, 촬영해서 보여주니까 울음바다가 됐다고. 설교 시간보다 그거 한 번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들 아이 가져서 고생하고 낳는 것고 잘 처리해서 보이면 함부로 못하겠지요. 당연한 것을 당연히 생각하면 빼앗아버립니다. 일상 생활이 당연한데 뭐 때문에 빼앗겨봤습니까. 당연한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겁니다. 그때 예배드린다고 눈치 참 많이 봤습니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잔잔하게 일상생활이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 많은 수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 승객들이 놀랄까봐 신경쓰는 기사는 굉장히 조심합니다. 박는 그 정도 힘에 따라서 자동차가 흔들립니다. 그 기사가 그만큼 승객들은 편합니다. 승객들은 죽을 맛이 디는 겁니다. 교회가 고요하게 신앙생활이 된다는 말은 많은 수고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저께 새벽에 재독 집회 말씀에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머리, 저 어릴 때 주변머리가 없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눈치가 없고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참 주변머리없다. 저만 생각하고 모르는 것이지요. 눈치 염치 주변머리 참 중요합니다. 신앙 외적인 요소이지만은 곡식할 때 그런 걸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뭐든지 가정이든 건강이든 당연한 것은 어떠하다고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많은 수고가 들어있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힘 동력, 한문글자는 배우는 게 좋습니다. 성경 공부에 깨달음에 도움이 됩니다. 영감으로 깨달을 거 아니면 배워두는 게 좋습니다.
신앙의 동력 신앙 생활의 힘, 뭔가 움직이려면 동력이 필요한겁니다. 짐승도 식물도 사람도 동력이 다 필요한건데 어느정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전기 자동차 가다가 서버립니다. 그리고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힘이 없습니다. 동력이 약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이 약하면 빠져버립니다. 강한 만큼 힘이 있게 되는 겁니다. 기름 떨어짐으로 살에는 속력이 줄어듭니다. 다 떨어져가면 조심스럽기도 하고 문제가 많이 생기지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또 뜯어본 겁니다.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이 믿음이냐, 마음의 요소 존재의 사물, 들은대로 배운대로 자기 마음이 그대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받아들이는 게 믿음입니다. 말하는 그대로 말하는 겁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경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말씀 그대로 말씀을 자기 주관대로 세상 말이 아니고 말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성경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 믿음의 생성이라는 말은 우리 속에 생겨나는 건데 어떻게 생겨지느냐 입니다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 주시면 생길 수 없는게 믿음. 그래서 아무리 많이 배워도 아무리 날카롭고 끝을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고 종교성을 가진 철학자라도 은혜가 없으면 안 생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믿음이라는 표현은 인위적입니다. 땅에서 생긴 겁니다. 하늘에서 본 겁니다. 하늘에서 온 것이 믿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창조, 주권섭리 인간의 사후 세계 우리의 구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지는 겁니다.
이 믿음은 가지고 받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믿음은 종자적인 믿음입니다. 어디에 쓰는 게 종자입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믿음은 종자적인 믿음입니다. 종자적인 믿음을 받았으니까 믿음은 성장하는 겁니다. 종자적인 믿음도 은혜고 믿음을 길러가는 것도 은혜인데 우리들의 전부를 다 해서 노력해야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섯 번째 이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이 뭐냐, 이미 가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믿음 가진 믿음으로 믿음생활 할 때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내 속에 믿음이 강한 만큼 깊은 만큼 튼튼한 만큼 역사로 나타납니다. 속에 텅 비어 있으면 힘이 넘치니까 팽팽 돌아가니까 혈기왕성하니까 활발합니다.
예배시간에 늘 지각을 하고 앞 자리 앉은 사람이 축 쳐지고 예배시간에 졸고 새벽기도 빠지고 그러면 믿음이 그 속에 가라앉았구나. 열심히 주일 지키고 새벽기도 그러면 뭘 안다고요, 보이지 않는 걸 아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면 저 분이 좀 피곤해서 조는 것과 신앙이 식어서 조는 것은 다릅니다. 일곱 번째 그래서 결과가 나타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기적을 가져옵니다. 빛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신기하다 그런 걸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는 게 믿습니다. 일곱 가지로 믿음을 분석해 놓은 것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란 쉽게 말하면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뭘 바라봅니까. 미래를 앞날을 내일을 바라본다. 내일을 기다린다. 기대한다. 불행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이건 선생님 옆에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민준, 김민준이지. 쥐 구멍에 살면서 뭘 바라는 겁니까. 잘 못들어봤지. 벼뜰날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게 소망입니다. 바라보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무슨 뜻이라고요 바라본다.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게 소망입니다. 우리 속에 어떻게 생기느냐 소망은 있습니다. 다 따지는데 그들 소망은 틀립니다. 무엇으로 소망을 주셨느냐 주님 부활하심으로 생겨진겁니다. 우리 소망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암흑 절벽입니다. 끝없이 내려갑니다. 무저갱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주님이 대신 죽으시고 다시 인성입고 부활하심으로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의 원칙인데 멀리 있고 안 보임으로 이루어 가지도록 하시면서 전체적으로 하게 되신 것입니다. 하늘인데 하늘이 멀리있고 너무커서 안 보이기 때문에 땅에 주신 것이고 모든 축복을 가르켜 뭐라고 한다고요. 표시판입니다. 천국이 있다. 영생이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이 모든 것입니다. 표시판을 붙들고 설치면 나중에 누구처럼 됩니까. 롯처럼 됩니다. 롯이 누구 조상이라고요. 모압 지방의 조상입니다. 롯이 의인입니다. 아브라함을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그래서 복을 받았는데 들고 설치다가 진짜를 놓쳐버렸습니다. 롯만 그런 게 아니고 일반 교계에서 절대 다수가 다 빠져버립니다. 교회마다 복을 말하면 세상 복입니다. 중들은 절에 가서 기도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교회 가서 기도하고, 자식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공부해서 판사가 될 겁니까. 그러면 뭐합니까. 판사는 하루 세 끼 다 먹었습니까. 철갑상어 먹으면 더 오래 삽니까. 오래 살면 100년 200년 살겠습니까. 멀리 보면 다 허무한 것인데 소망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사후세계인데 현상 세계에서도 표시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은 부자가 믿어서 가난해져야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가난해지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 기도하고 처리하고 금식해서 말라버려야합니다. 마지막에 십자가 못박혀 죽어야합니다. 하니까 어떤 껍데기 신자가 더럽게도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예수님 사시는 집보다 넓으면 회개하셔야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위로차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자세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사랑 13절 보니까 세 가지,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모든 것은 전부 사랑에서 시작되고 발현되고 말미암고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좋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상대방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특별한 관계입니다. 이 세상 인간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은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과 하나님 사랑,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은 혈육 사랑 이성 사랑 동족 사랑 세 가지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생기느냐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불신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이런 걸 하나 더 가집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그 위에 하하나님 사랑이 보태진다고 해야할까요. 이 사랑의 차원은 또 다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일방적인 사람입니다. 조건, 혈육 사랑,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지 남의 자식을 내 자식만큼 사랑안합니다. 마음이 가야 결혼하죠. 세상에 마음가서 결혼하는 사람치고 잘 사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의무입니다. 안 하면 하나님 앞에 무조건 99퍼센트 사람은 결혼 안하면 죄가 됩니다. 이 차원은 사랑의 차원 인간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 조건이 붙습니다. 다섯 번째 사랑의 활동이 있습니다. 외부 활동이 있게 됩니다. 좋게 복되게 하는 역사, 여섯 번째 그 방법은 수고입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 대속의 사랑은 사랑의 방법이었습니다. 인간 사랑은 그 사랑이 크고 강한만큼 전부 결과는 해결됩니다. 그래서 찬송가 171장 4절입니까.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어버립니다. 떠날 때 고통이 많고 눈물이 많아집니다.
많은 무덤 보면서 느끼는데 눈물 덩어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 눈물 흘렸을까. 사랑이 강한만큼 하게 됩니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도 사랑의 도 소망의 도입니다.
우리 모든 믿음 생활이 성경 말하는 겁니다. 사랑 일곱가지로 동력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야하고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